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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애팔래치아산맥(Appalachian Mountains)은 캐나다의 뉴펀들랜드를 시작으로 미국 동부를 거쳐 미국 남부의 앨라배마 및 조지아에 걸친 거대한 고기 습곡산맥이다.이름은 중서부 애팔래치아 지역을 따서 지어졌다. 앨러게니산맥(Allegheny Mountains)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블루리지산맥(Blue ridge mountains)과 컴벌랜드 고원(Cumberland Plateau)으로 이어진다. 최고봉은 미첼산(Mount Mitchell)으로 해발고도는 2,037 m(6,684 ft)이다. 석탄 매장량이 풍부하다.
2. 자연지리
고기습곡 산지인 만큼 그렇게 높지는 않으며 200 ~ 1,000m 정도의 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앨라배마 주 최고봉인 체하 산은 해발 고도가 800m도 채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테네시의 스모키 마운틴(Smoky mountain)에 들어가면 나름대로 산세가 험해지고 대한민국의 강원도 같은 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1] 과거 해령처럼 현무암 분화를 하던 '트랩' 종류의 화산이었다.해발고도 1,000m대에서 시작하는 고원지대이다. 일단 도로부터가 고산을 등반하는 느낌이다.[2] 엘러게니 산맥은 애팔래치아산맥의 일부다.
로키산맥이 사막과 고원에 위치해서 히말라야스러운 풍경인 것과 달리 애팔래치아산맥은 미국 동부의 특성상 대한민국 등 동아시아의 산지 풍경과 별 다를 바 없다. 애초에 서부는 건조기후대, 동부는 습윤기후대로 기후부터가 다르다.[3]
아메리카흑곰이 많은데 겨울에는 겨울잠을 자니까 잘 안 나타나지만 여름에는 밖에서 고기를 구우면 곰이 몰려오기도 한다.
3. 인문지리
애팔래치아 산맥의 내륙 산간 지역은 해안의 대도시들과는 매우 다른 독자적인 문화권을 형성했다. 이곳의 주류 인구는 18세기경 이주해 온 스코틀랜드-아일랜드계(Scots-Irish) 이민자의 후손들이다.[4]이들은 척박한 산악 지대에 정착하여 자급자족하며 살았고,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강한 공동체 의식과 독립적인 성향을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은 '힐빌리(Hillbilly)'라는, 깡촌 사람을 가리키는 고정관념을 낳기도 했다. 켄터키 주 동부나 웨스트버지니아 주 등은 한때 석탄 산업으로 번영했으나, 산업 쇠퇴 후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하나로 꼽히며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4. 지질학적 역사 (초화산의 흔적)
현재는 완전히 활동을 멈춘 사화산이지만, 지질학적으로 애팔래치아산맥이 형성되던 시기의 이 지역은 지구의 역사를 바꾼 거대한 화산 활동의 중심지였다.- 고대 초대륙의 형성: 애팔래치아산맥의 근간은 수억 년 전, 여러 대륙이 충돌하여 초대륙 판게아가 형성될 때 솟아오른 거대한 산맥의 일부이다. 당시에는 히말라야보다도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 초대륙의 분열과 대멸종: 약 2억 년 전, 트라이아스기 말기에 판게아가 분열되기 시작하면서 이 지역을 중심으로 중앙 대서양 마그마 지대(CAMP, Central Atlantic Magmatic Province)라 불리는 엄청난 규모의 화산 활동이 발생했다. 이 분출은 지구 역사상 가장 큰 화산 사건 중 하나로, 이때 발생한 급격한 기후 변화가 트라이아스기-쥐라기 대멸종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5]
즉, 현재의 완만한 산맥은 지구의 판 구조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던 시기에 초대륙을 만들고 또다시 분열시켰던 거대한 지질학적 사건의 흔적인 셈이다.
5. 역사
애팔래치아산맥은 단순한 지형물이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의 역사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무대였다. 유럽인의 탐욕의 대상이 되었고, 제국 간의 각축장이었으며, 신생 독립국가의 정체성을 시험하는 첫 번째 관문이기도 했다.5.1. 고대 원주민의 땅과 유럽인의 첫 접촉
산맥의 이름은 16세기 초 스페인 탐험가들이 플로리다 북부에서 마주친 아팔라치(Apalachee) 부족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이들은 산맥에 거주했던 수많은 원주민 부족 중 하나에 불과했다. 산맥의 북부 지역은 강력한 부족 연맹체인 이로쿼이 연맹의 영향권 아래 있었고, 남부에는 체로키, 촉토(Choctaw), 크리크(Creek) 등 미시시피 문화의 후예들이 터를 잡고 살았다. 이들에게 산맥은 사냥터이자 교역로였으며, 신성한 영적 공간이었다.16세기, 에르난도 데 소토를 비롯한 스페인의 콘키스타도르들은 이 지역에 황금 도시가 있고 젊음의 샘이 흐른다는 뜬소문을 듣고 내륙 깊숙이 탐험을 감행했다. 그들은 황금을 찾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가져온 질병과 무력으로 수많은 원주민 공동체를 파괴하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았다.
5.2. 식민 시대의 장벽과 갈등
17세기 이후 영국이 동부 해안에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애팔래치아산맥은 문명의 경계선이자 거대한 장벽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산맥 너머의 광활한 오하이오 강 유역은 프랑스의 영향권에 있었고, 이는 두 제국 간의 피할 수 없는 충돌을 예고했다.결국 18세기 중반, 산맥을 둘러싼 영유권 다툼은 프렌치 인디언 전쟁(7년 전쟁)으로 폭발했다. 이 전쟁의 주된 무대는 바로 애팔래치아 서쪽 경사면이었으며, 젊은 시절의 조지 워싱턴이 버지니아 민병대를 이끌고 첫 전투 경험을 쌓은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전쟁은 영국의 승리로 끝났지만, 막대한 전쟁 비용과 새로운 영토 관리 문제는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전쟁 후, 영국 왕실은 원주민과의 추가적인 충돌을 막고 식민지인들을 해안가에 묶어두어 통제력을 유지하기 위해 1763년 선언을 발표했다. 이는 애팔래치아산맥 분수령을 경계로 서쪽으로의 이주 및 정착을 전면 금지하는 조치였다. 하지만 프렌치 인디언 전쟁에 참전하며 서쪽 땅에 대한 권리를 얻었다고 믿었던 식민지인들은 이에 격렬하게 반발했다. 대니얼 분과 같은 개척자들은 왕의 명령을 무시하고 '황야길(Wilderness Road)' 같은 비밀 통로를 개척하며 산맥을 넘었고, 이는 영국 본토에 대한 식민지의 불신과 저항 정신을 키워 미국 독립 전쟁으로 가는 중요한 길목이 되었다.
5.3. 미국 건국과 서부 개척
미국이 독립을 쟁취한 후, 애팔래치아산맥은 더 이상 '금지된 선'이 아니라 '넘어야 할 관문'이 되었다.하지만 산맥에 고립된 채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해 온 주민들은 신생 연방 정부의 통치에 쉽게 순응하지 않았다. 1791년, 연방 정부가 위스키에 세금을 부과하자 펜실베이니아 서부 애팔래치아 지역의 농민들이 격렬하게 저항한 위스키 반란은 대표적인 사건이다.[6]
5.4. 산업화 시대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애팔래치아는 미국의 산업화를 이끄는 심장부로 변모했다. 산맥 아래에 묻혀 있던 막대한 양의 역청탄과 무연탄, 철광석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광산이 개발되고, 광부들을 위한 '컴퍼니 타운(Company Town)'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채굴된 자원은 철도와 공장을 움직이는 동력이 되었다.그러나 그 이면에는 위험한 노동 환경과 낮은 임금, 그리고 광산 소유주에 의한 착취가 만연했다. 20세기 초, 애팔래치아의 탄광 지대는 미국에서 가장 격렬한 노동 운동의 현장이 되었으며, 블레어 마운틴 전투(Battle of Blair Mountain)와 같은 유혈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6. 자원과 경제
애팔래치아의 경제는 석탄으로 요약할 수 있다.6.1. 석탄
애팔래치아는 미국을 넘어 세계적인 규모의 탄전 지대다. 단순한 매장량을 넘어, 발열량이 높은 양질의 역청탄과 무연탄이 풍부하여 산업용으로 가치가 매우 높았다.이 석탄의 진정한 가치는 위치에 있었다. 미국의 초기 산업 지대와 인구가 밀집된 동부 해안과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막대한 양의 석탄을 저렴한 비용으로 채굴하고 운송할 수 있었다. 이 석탄은 철도와 증기선을 움직였고, 미국의 산업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핵심 동력이 되었다.
물론 그 대가도 따랐다. 대규모 채굴 과정에서 광범위한 삼림 벌채가 이루어졌으며, 특히 산 정상 자체를 폭파(!)해 석탄을 채굴하는 '산정상 제거 채굴(Mountaintop Removal Mining)' 방식은 일부 지역의 지형을 영구적으로 파괴하고 오염을 유발했다.
6.2. 쇠퇴와 몰락
20세기 중반, 에너지 시장의 주도권이 석탄에서 석유와 천연가스로 넘어가면서 애팔래치아의 석탄 산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여기에 채굴 기술이 자동화되면서 필요 노동력이 급감하자, 지역 경제는 회생 불가능한 수준으로 붕괴했다.이 결과 켄터키 주 동부나 웨스트버지니아 같은 전통적인 탄광촌은 미국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으로 전락했다. 고질적인 실업률과 인구 유출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문제이며, 인디 게임 Kentucky Route Zero와 영화 메이트원(Matewan)은 이러한 지역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6.3. 기타 자원
석탄 외에도 소량의 유전이 존재하며, 최근에는 마셀러스 셰일(Marcellus Shale) 지층을 중심으로 막대한 양의 셰일 가스가 발견되어 새로운 에너지 자원 지대로 주목받고 있다.비(非)광물 자원으로는 미국 인삼(American ginseng)이 유명하다.
7. 애팔레치아 트레일
미국 내의 산맥을 종주하는 트레일(trail) 코스 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전통있는 코스가 바로 애팔레치아 트레일이다. 최북단의 메인주에서부터 최남단 조지아주까지 애팔레치아 산맥 약 3,500km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등산 코스이며 미국 및 전세계의 수많은 등산객들이 매년 종주에 도전하는 것으로 이름높다.[7]미국의 유명 작가 빌 브라이슨이 쓰고 홍은택이 번역한 베스트셀러 '나를 부르는 숲 (A Walk in the Woods)' 을 통해 국내에도 알려졌다.
8. 치안
아름다운 자연 이면에 거칠고 고립된 이미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광대한 산맥 대부분이 휴대전화 통신이 원활하지 않은 음영 지역에 속하며, 이러한 지리적 고립은 독특한 치안 환경을 만들어냈다.단순한 깡촌이라기보다, 이곳에는 외부의 법보다 지역의 관습과 이해관계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고가의 임산물(林産物)을 둘러싼 분쟁이다. 이 지역에서 자생하는 미국 인삼(American ginseng)이나 송로버섯 등은 고가에 거래되는데, 이 이권을 두고 토지 소유주와 외부에서 온 전문 채집꾼(심마니) 간의 폭력적인 갈등이 벌어지기도 한다. 관광객이 아닌, 이러한 사업을 목적으로 들어온 외부인이 조용히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는 소문이 파다할 정도다.
일반 여행객의 안전 문제도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공식 기록에 따르면 1974년부터 2024년까지 50년간 애팔래치아 트레일(Appalachian Trail)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은 12건이다. 이는 트레일의 총 길이와 이용객 수를 고려하면 극히 낮은 수치이지만, 동시에 이곳이 범죄로부터 완벽히 안전한 청정 구역은 아님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실제로 산맥을 생활권으로 끼고 있는 일부 외진 카운티에서는 실종이나 폭력 범죄가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8]
이 때문에 애팔래치아 국립공원 측 역시 비교적 안전하지만, 범죄로부터 자유로운 곳은 아니다라고 경고하며, 특히 단독 여행객에게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물론 최근에는 주요 등산로를 따라 통신 기지국이 설치되고 스타링크 같은 위성 인터넷 서비스가 보급되면서 과거에 비해 구조 및 신고가 훨씬 수월해졌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지정된 경로(Official Route)에 한정된 이야기다. 공식 루트를 조금만 벗어나도 바로 통신 음영 지역에 직면하게 되므로, 국립공원 측은 어떤 경우에도 지정된 경로를 벗어나지 말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
9. 대중문화 속 이미지
- 작곡가 에런 코플런드의 대표작인 발레곡 '애팔래치아의 봄(Appalachian Spring)'은 19세기 애팔래치아 개척민의 삶을 그려낸 작품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 폴아웃 76은 핵전쟁 이후의 웨스트버지니아를 배경으로, 애팔래치아의 자연환경과 지역 민담, 괴담 등을 게임 속에 구현했다.
- 험준한 산골이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가는 미지의 공동체나, 정체불명의 괴물이 출몰하는 공포의 무대로 자주 그려진다. 영화 데드 캠프가 대표적. '애팔래치아의 오래된 신들(Old Gods of Appalachia)'[9]이라는 코즈믹 호러 오디오 드라마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이미지 때문에 '미국에서 가장 위험하고 기괴한 곳'이라는 인식이 퍼져있다.
10. 관련 문서
[1] 반대로 서부 축의 로키산맥은 캐나다 서남부에서 멕시코 북부까지 뻗어 있으며, 멕시코 고원으로 연결되는 대형 산맥이다.[2] 미국인들도 애팔래치아 산맥의 스모키 마운틴 등은 친근하게 갈 수 있는 관광지로 여기는 반면 로키 산맥은 모험을 하러 간다고 생각할 정도다. 그리고 건조기후대인 로키산맥은 더 황량하다.[3] 테네시는 부산광역시와 위도가 같고 버지니아주는 수도권과 같은 위도대이다.[4] 이들은 가톨릭 신자가 다수인 아일랜드인이 아니라, 영국 정부의 정책으로 아일랜드 북부 얼스터(Ulster) 지방에 이주했던 장로회 신앙의 스코틀랜드인들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스카치-아이리쉬(Scots-Irish)'로 불린다.[5] 일부 연구에서는 이 분화의 규모를 화산 폭발 지수(VEI) 8등급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으로 추정하기도 한다.[6] 이 사건은 신생 국가가 중앙의 권력을 변방까지 관철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를 보여주었다.[7] 그리고 그 도전자 중 태반은 첫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다.[8] 예를 들어 버지니아 주의 자일스 카운티(Giles County)는 전미 평균보다 폭력 범죄율은 낮지만, 절도나 주거침입 등 재산 범죄율은 더 높게 나타나는 등 복합적인 치안 상태를 보인다.[9] #[10] 속명이 애팔래치아산맥에서 따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