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17 16:03:38

알파이 외잘란

알파이 외잘란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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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심볼.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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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제27대 국회의원
페흐미 알파이 외잘란
Fehmi Alpay Özalan
파일:27대의원외잘란.jpg
<colbgcolor=#ff8700><colcolor=#ffffff> 출생 1973년 5월 29일 ([age(1973-05-29)]세)
튀르키예 이즈미르이즈미르
직업 축구선수 (센터백 / 은퇴)
축구 감독
정치인
현직 제 27대 튀르키예 이즈미르 국회의원
링크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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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8700><colcolor=#ffffff> 선수 <colcolor=#373a3c,#ddd>알타이 SK (1992~1993)
베식타스 JK (1993~1999)
페네르바흐체 SK (1999~2000 / 임대)
아스톤 빌라 FC (2000~2003)
인천 유나이티드 FC (2004)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2004~2005)
1. FC 쾰른 (2005~2008)
지도자 에스키셰히르스포르 (2016~2017)
삼순스포르 (2017)
튀르키예 U-21 (2018)
국가대표 90경기 4골 (튀르키예 / 1995~2005)
신체 188cm | 체중 81kg
정당
[[정의개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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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클럽
2.1. 쉬페르리그 시절2.2. 아스톤 빌라2.3. 인천 유나이티드 FC2.4. 우라와 레즈2.5. 쾰른
3. 국가대표4. 플레이 스타일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
6. 여담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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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튀르키예의 前 축구선수로, 2002 월드컵 튀르키예의 3위에 공헌했던 선수이자(k리그에선 먹튀), 축구 감독이자, 정치인.

2. 클럽

2.1. 쉬페르리그 시절

1992년 튀르키예의 알타이라는 팀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고 1년 후 베식타스 JK에 합류했다. 팀에서 6년을 뛴 뒤에 재계약 협상을 했지만 지지부진했고 결국 페네르바흐체에 임대됐다. 튀르키예에서부터 그의 카드 수집 능력은 악명높아서 퇴장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2. 아스톤 빌라

알파이는 UEFA 유로 2000에서 좋은 활약을 보인 뒤 2000년 프리미어 리그의 아스톤 빌라로 이적하였다. 첫 시즌 훌륭한 모습으로 팬들의 지지를 받았고 다음 해 올로프 멜베리와 함께 믿음직한 센터백 라인을 구축하였다. 하지만 2001년 12월에 시즌아웃을 당해 2002년 FIFA 월드컵 직전에야 복귀했다.

월드컵에서 알파이의 활약은 많은 클럽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FC 바르셀로나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등의 관심이 있자 알파이는 이적을 원했지만 팀에서는 그를 보내지 않았고 월드컵 후유증으로 2002-03 시즌에 부진했다. 2003-04 시즌에는 개막전에서부터 팬들의 야유에 시달렸고, 득점한 뒤 홈팬들을 자극하는 세레모니를 하여 더욱 위기에 빠졌다.

심지어 국가대표 경기에서 데이비드 베컴조롱[1]하여 사실상 잉글랜드에 있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계약 만료 이후 알파이는 팀을 떠나게 됐다.

2.3. 인천 유나이티드 FC

SV 베르더 브레멘, 함부르크 SV, VfL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볼로냐 FC 1909 등에게 관심을 받았지만 알파이는 새로운 도전을 원했고 그 다음 행선지는 뜻밖에도 K리그의 신생구단 인천 유나이티드였다. 안종복 단장은 창단 감독이었던 로란트 감독과 함께한 자리에서 “내가 알파이 외잘란을 영입해 오겠다.”라고 포부를 밝히자 로란트 감독은 당연히 반색했다. 그리고 안종복 단장은 며칠 뒤 진짜로 계약을 성사시켜 돌아왔다. 계약기간은 2년, 연봉은 80만 달러로 신생구단으로서는 초대형 계약이었다. 당시 알파이는 엄청난 커리어의 소유자였기에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충분했고, 기대감도 상당했다. 알파이는 기자회견에서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이 보여준 열정 가득한 응원문화에 큰 감명을 느껴 K리그 행을 결정했다고 밝혔고[2] 본인 말고도 이름난 선수 몇 명이 K리그 진출을 고려하고 있다는 립서비스(...) 까지 했다.

하지만 2004년 개막전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경기에서 전북의 에드밀손아킬레스건을 끊은 위험한 태클을 보여 순식간에 논란을 만들기 시작했다. 에드밀손은 이 부상으로인해 다음 시즌에 결국 은퇴했다. 그리고 다른 수비수들(이상헌, 김현수 등)과의 호흡 역시 부족하여 잔실수가 있거나 부진하는 모습이 있었다. 알파이는 8경기에 출장해 경고 2회와 퇴장 1회를 기록하며 거친 플레이로 일관했으며 전남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 퇴장 당한 것이 그게 그의 마지막 경기였다.[3]

사실 그 전부터 알파이는 자신이 유명하다는 점을 내세우며 갈등을 자주 일으켰다. 알파이는 다른 선수들과 코치진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훈련에 무단 불참하는 등 문제가 많았다.# 이후에 임중용이 그를 비판하는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결국 8경기 출전에 그친 채 일본의 우라와 레즈로 떠났다. 이적료는 120만 달러였다.

2.4. 우라와 레즈

가자마자 K리그를 비판[4]하면서 한국 팬들에게 어그로를 끌었다.(...) 첫 시즌에는 '올 시즌 최고의 수비수'에 선정되는 활약이 있었으나 아니나 다를까 다음 시즌에는 7경기에서 6번의 옐로카드와 3번의 레드카드를 받는 정신나간 플레이로 계약을 파기당했다.

2.5. 쾰른

국가대표 복귀를 원한 그는 독일의 1. FC 쾰른으로 이적했다. 그리고 제 버릇 개 못준다고, 이번엔 거기서 J리그를 비판했다(...) 팀의 강등 이후, 맨체스터 시티 FC, 포츠머스 FC, 셀틱 FC, 갈라타사라이 SK, 베식타스 JK 이적설이 있었지만 잔류했다. 그 악명은 어디 가지 않았는지 2005년 함부르크 SV기 드멜을 팔꿈치로 가격하기도 했다. 이후 2007-08 시즌이 끝난 뒤 은퇴를 선언하였다.

3. 국가대표

1995년 루마니아와의 친선경기에서 데뷔했고, 1995년 캐나다와의 친선경기에서 첫 득점을 올렸다. UEFA 유로 1996, UEFA 유로 2000에서도 엔트리에 포함됐었던 알파이는, 2001년 마케도니아에게 해트트릭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도 핵심 수비수로 활약했으며, 팀이 3위로 대회를 마친 뒤 베스트 11에도 선정됐다. 2003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프랑스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였다.

유로 2000 포르투갈과의 8강전에서 페르난두 쿠투에게 주먹질을 해 퇴장당한 바 있다.

브라질과의 2002월드컵 조별예선 1차전에서 경고를 앉고 뛰던 후반, 골키퍼와 1:1 상황이 되는것을 막으려고 공격수를 넘어뜨려서 퇴장을 당했다. 경기 직후 심판의 PK선언은 오심 논란에 휩싸였는데 반칙 위치가 PK구역 밖으로 보이기 때문에 오심 논란에 휩싸인 것이지 퇴장 때문에 오심 논란에 휩싸인게 아니다.

그러다가 2005년 스위스와의 2006 FIFA 월드컵 독일 예선에서 튀르키예가 승리했으나 1, 2차전 합계 결과 탈락하자, 튀르키예 선수들이 일으킨 난투극에 휘말려 FIFA로부터 A매치 6경기 출장 정지와 1만 5천 스위스 프랑의 벌금을 부과받는 징계를 받았고, 이후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하였다.

4. 플레이 스타일

체구가 좋고 제공권이 강력한 선수. 피지컬은 물론 태클 능력을 포함한 수비력도 준수하다. 하지만 참을성이 부족하고 거친 말투도 있는데다가 플레이 역시 거칠어서 그가 뛰었던 모든 리그와 국가대표팀을 불문하고 온갖 논란과 구설수를 많이 일으켰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여담

  • 2018년에 튀르키예 총선에 출마하여 이즈미르시의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전통적으로 공화인민당 콘크리트인 이즈미르에서 정의개발당 소속으로 당선이라 튀르키예 정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 50대에 가까워지는 나이지만 오히려 현역시절보다 더 심하게 근육울 키워서 몸이 더 좋아졌다. 머슬&피트니스 표지모델도 할 정도니...
  • 2024년 8월 튀르키예 국회에서 난투극에 참가해 상대편 의원에 주먹을 날렸다.#

7. 관련 문서



[1] '너 같은 선수는 튀르키예에 널렸다.'는 내용이다.[2] 나중에 K리그로 이적해 온 뒤 모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기자에게 '근데 한가지 물어볼 것이 있는데 월드컵 때 있었던 그 관중들과 뜨거운 응원은 어디로 갔는가?' 라고 물었다고 한다.[3] 참고로 그 경기가 철거 전 구 숭의공설운동장 마지막 공식 경기였다.[4] K-리그는 성에 차지 않아 더 높은 수준에서 플레이하고 싶었다고 주장했다. 본인 스스로 감바 오사카를 4-0으로 박살냈던데 일조한건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