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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스 왕조 초대 칼리파 아부 알 아바스 أبو العباس عبد الله بن محمد السفّاح | |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이름 | 아불 압바스 압둘라 이븐 무함마드 앗 사파흐 أبو العباس عبد الله بن محمد السفّاح |
출생 | 721년 |
우마이야 왕조 알 후메이마 | |
사망 | 754년 6월 10일 (향년 33세) |
아바스 왕조 알 안바르 | |
재위 기간 | 아바스 칼리파 |
749년 11월 28일 ~ 754년 6월 10일 (5년) | |
후임자 | 알 만수르 |
부모 | 아버지 : 무함마드 이븐 알리 어머니 : 라이타 빈 우바이드 알라 |
종교 | 이슬람 수니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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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바스 왕조 초대 칼리파. 알 사파흐(السفّاح)는 "피 흘리는 자"라는 의미로, 적을 상대로 무자비한 전술을 구사했기에 붙여진 별칭이다.2. 생애
721년경 빌라드 알샴 하와라(오늘날 요르단 후메이마 유적지)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무함마드 이븐 아브드 알라로, 쿠라이시 부족의 하위 부족인 바누 하심의 부족장이다. 어머니는 레이타 빈트 우바이드 알라로, 역시 시리아의 저명한 부족 가문인 우바이드 씨족 출신이다. 그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삼촌인 아바스 이븐 압둘 무탈리브의 고손자였다. 일찍이 호라산 군 사령관으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호라산으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여러 이슬람 학자들과 접촉하며 이슬람 교리를 숙지했다. 743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형 이브라힘이 아바스 가문의 수장이 되었다. 그러나 745년 샤라반 이븐 압둘 아지즈가 이끄는 카와리즈파의 반란에 참여했다가 피살당했다. 이복형 아부 자파르는 모친이 비천한 출신이었기에 그가 새 수장으로 등극했고, 형의 원수를 갚기로 마음먹었다.당시 이슬람 세계는 우마이야 왕조에 대한 반감을 품은 이들이 도처에서 일으킨 반란으로 인해 혼란에 빠졌다. 시아파는 카르발라 참극 이래 우마이야 왕조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겼고, 우마이야 왕조와 시아파 모두를 부정하는 카와리즈파 역시 종종 반란을 일으켰다. 피지배인 취급 받는 마왈리 또한 불만이 가득했다. 그들은 이슬람교로 개종했는데도 지즈야를 강요하고 아랍인이 권력을 독차지하는 것에 반감을 품었다. 그리고 호라산을 포함한 이란 전역에서 박해받는 조로아스터교 신자들 역시 현 정권에 이를 갈았다. 그는 이러한 분위기를 읽고 우마이야 왕조를 타도하기 위한 청사진을 세웠다.
먼저 시아파의 상징이었던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의 손자 무함마드 하나피야가 죽기 직전에 자신을 정당한 후계자로 지명했다는 소문을 퍼트렸다. 이 소문에 혹한 시아파 인사들이 대거 아바스 가문과 손을 잡았다. 여기에 무함마드의 직계 후손이며 우마이야 가문의 권력 독점에 불만을 품은 하심 가문 역시 가세하여 혁명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지불했고, 노예 출신의 장군 아부 무슬림을 비롯한 마왈리들도 대거 가담했다. 이렇듯 거병을 준비하는 동안, 당국이 눈치를 채고 체포하려 들 것을 우려하여 대중에 가급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기밀을 철저히 숨겼다.
747년 호라산에서 라마단 기간(5월 16일 ~ 6월 14일) 동안 수많은 군중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스크에 집결했다. 그는 이 때를 틈타 군중을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오랫동안 호라산을 지배했던 총독 나스르 아븐 사야르가 반란 진압에 나섰으나, 당시 85세의 고령인데다 중병에 시달렸기 때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결국 748년 11월 9일 라이에서 사망했다. 나스르 사후 호라산의 우마이야 왕조군은 와해되었고, 아바스 반란군은 호라산 전역을 장악했다. 이후 749년 봄까지 이란을 석권한 뒤 이라크로 진격하여 여러 요충지를 공략했다. 749년 11월 28일 쿠파를 장악하는 데 성공한 반란군은 아부 알 아바스를 새 칼리파로 선출했다. 그는 이때서야 대중에 모습을 드러냈고, 우마이야 왕조의 상징인 백기에 대항하여 흑기를 군기로 썼다.
당시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파였던 마르완 2세는 이집트에서 발발한 콥트교 반란 진압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동방에서 아바스 가문이 반란을 일으켜 쿠파까지 공략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는 이집트에서 철수한 뒤 전 병력을 긁어모아 이라크로 향했다. 750년 1월 25일, 티그리스 강 북부 지류인 대 자브 강에서 아부 무슬림이 이끄는 반란군과 우마이야 왕조군이 맞붙었다. 전투는 이틀 동안 지속되다가 우마이야 왕조군이 참패하여 300여 명에 달하는 우마이야 왕족들이 전사했다. 마르완 2세는 다마스쿠스로 피신했지만 주민들에게 입성을 거부당하자 팔레스타인을 거쳐 이집트로 피신했다.
그는 시리아로 진군하여 다마스쿠스에 입성한 뒤 우마이야 왕조를 따랐던 인사들을 모조리 처형했다. 이후 이집트로 추격대를 보내 파이윰 오아시스를 근거지로 저항하던 마르완 2세를 체포하여 750년 8월 6일에 처형했다. 마르완 2세의 수급은 쿠파로 옮겨져서 공개 효수되었다. 마르완 2세의 아들 압둘라는 에리트레아 지역으로 피신해 저항을 이어갔지만 몇 달 만에 전사했다. 이후 아직까지 살아있던 우마이야 왕족들에게 "신변을 보장해주고 재산을 유지해줄 테니 연회에 참석하라"고 통보한 뒤 어느 섬에 모아놓고 연회를 벌이다가 전원 학살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그는 시체 위에 카펫을 깔고 부하들과 함께 그 위에 앉아서 식사를 마저 즐겼다고 한다. 이때 초대에 응하지 않고 미리 도망쳐 살아남은 10대 칼리파 히샴의 손자 아브드 알 라흐만 1세는 아바스 왕조의 추격을 피해 서쪽으로 도망쳤고, 아바스 왕조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은 알안달루스에 도착해 754년 후우마이야 왕조를 건설했다.
우마이야 잔존 세력은 이라크의 마지막 우마이야 총독인 야지드 이븐 우바이라 알 파자리를 중심으로 항전을 이어갔다. 아바스는 이복형 아부 자파르를 파견해 우바이라를 토벌하게 했다. 자파르는 와시트에서 우바이라의 군대를 포위한 뒤 투석기를 대거 동원하여 도시를 폭격했다. 11개월간 이어진 항전 끝에, 주민들이 평화 협약을 맺어달라고 호소하는 걸 더 이상 무시하지 못하고 자파르에게 사절을 보냈다. 자파르는 그가 와시트를 떠나지 않고 아바스 왕조에 충성을 맹세하는 조건으로 사면했다. 그러나 얼마 후, 자파르는 우바이라가 배신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며 우바이라 및 42명의 동료 및 친척을 긴급 체포해 모조리 처형했다.
그 후 자파르를 다시 호라산으로 보내 아부 무슬림을 만나서 새 정권에 진정으로 충실한지를 알아보게 했다. 아부 자파르는 아부 무슬림과 접촉한 뒤 칼리파에게 돌아와서 "아부 무슬림은 거인 중의 거인이며, 그가 살아있는 한 인생을 즐길 수 없다"라고 보고했다. 하지만 아바스는 아부 무슬림이 754년 메카로 순례한 뒤 호라산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줬다.
751년, 고선지가 이끄는 당나라군이 트란스옥시아나를 침공했다. 이에 지야드 이븐 살리흐 장군이 이끄는 호라산 주둔 무슬림군이 출진하여 탈라스 전투에서 당군을 격파했다. 이때 사로잡힌 중국인들 중엔 종이를 제조하는 기술을 갖춘 기술인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이슬람 세계는 제지술을 습득했고, 나중에는 유럽에 전파했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동로마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노스 5세가 테오도시오폴리스(에르주룸)과 멜리테네(말라티야)를 공략하고 파괴한 뒤 주민들을 대거 동로마 제국의 영역으로 끌고 갔다. 아바스 왕조는 우마이야 잔존 세력과 싸우던 중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
754년 6월 10일, 아바스가 사망했다. 그는 죽기 전에 아부 자파르를 후계자로 지명하면서, 지난날에 사망한 형 이브라힘의 아들 이사를 자파르의 후계자로 선임했다. 이리하여 칼리파에 등극한 아부 자파르는 압둘라 알 만수르라는 제호를 사용하면서 아직 혼란스러운 정국을 수습하고 제국을 안정시키기 위해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