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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송진우의 지도자 경력을 정리한 문서.2010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다. 근데 선수시절부터 한솥밥을 먹은 적 없던 이승엽과 처음으로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1]
2010년 연수 코치를 마친 뒤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조성민과 같이 잠실구장을 방문하였다.
코치연수를 마치고 돌아와서 2010년 12월 7일부로 한화 이글스의 투수코치로 임명되었다. 2군에 있다가 1군으로 복귀한 김혁민이 인터뷰를 하면서 2군 송진우 코치를 말하였는데, 2군 선수들에게 한자를 가르치고 목표를 쓰게 하면서 후배(제자?)들의 마인드를 다잡았다고 한다. 참고로 김혁민은 실수로 목표를 쓴 종이를 숙소에 두고 왔는데 그 날 2시간 동안 러닝만 했다고 한다. 2군에서 올라온 김혁민이 바로 자리를 잡은 걸 보면 호랑이 코치로 2군에서 후배들을 잘 양성한 듯.[2]
김혁민에 이어서 신주영을 2군에서 올려보냈는데 이쪽도 준수한 불펜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수순으로 보이며 하나 둘 투수들을 자리잡게 만들었다.
2. 2012 시즌
2012년 7월 6일, 한화 이글스의 1군 투수코치가 되었다. 1군 투수코치였던 정민철은 송진우가 담당했던 육성군(2군) 투수코치가 되었다. 즉, 두사람의 역할 교체.그 다음날인 7월 7일, 8연패로 허덕이던 한화 이글스의 연패를 끊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선발이 잘 뛰어도 불펜과 마무리가 말아먹어 패배를 기록하던 것을 하나하나가 신의 한수 같은 교체 타이밍으로 박찬호의 승리와 바티스타의 세이브를 동시에 챙겨주었다.
3. 2013 시즌
그러나 2013년 현재 팀의 선발 로테이션과 불펜진이 아예 붕괴되고 혹사가 지속되자, 송진우의 대한 평가는 매우 안 좋다.[3] 한용덕 코치의 빈 자리와 함께 이대진 코치가 이렇다할 성과가 없어 도움을 거의 못받는 부분이 큰 것으로 보인다.결국 7월 18일 자로 2군 투수코치로 내려가게 되었고, 그를 대신해 정민철 2군 투수코치가 1군에 올라왔다.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에서도 서로 보직을 맞바꾸게 되었다.
4. 2014 시즌 및 1기 총평
올해에도 그다지 좋은 평가는 많이 받지 못했다. 그리고 10월 27일 한화는 송진우와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결정해 레전드는 그렇게 씁쓸하게 팀을 떠나는 줄 알았다.5. 2018 시즌
경기 전 혼자 밥을 먹고 있으면 젊은 선수나 고참 선수나 꼭 한 두 명씩 식판을 들고 내 앞에 앉는다. 이미 꿈을 이룬 것이 아닐까.
- 송진우 “난 153패 투수 출신 코치”
- 송진우 “난 153패 투수 출신 코치”
2017년 한국시리즈가 끝나자마자 한용덕 코치가 한화 감독으로 선임되어 장종훈 수석 타격코치, 강인권 배터리코치, 전형도 주루코치와 같이 한화 이글스 투수코치를 맡게 되었다. 이로서 송진우는 4년 만에 현장 복귀 겸 고향팀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등번호를 그의 영구결번인 21번으로 결정하면서 9년 만에 21번을 단다.
그동안 구제불능 취급을 받아온 송은범, 안영명을 승리조로 만들고 제구 난조와 부적응을 겪던 샘슨과 휠러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고 있어 야구계에서 '한화 투수진의 화타'라고 불리고 있다. 특히 구대성-류현진 등으로 이어지면서 이글스 투수들의 필살기로 자리잡은 써클 체인지업을 전수하고, 투수들의 정신 자세 관리에서도 호평을 받는 중.
제이슨 휠러는 송진우에게 직접 체인지업을 전수받으면서 어느 정도 효과를 봤었으나... 이닝 소화 능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방출당했다. 관련기사 제로맨 서균 역시 체인지업을 배웠는데 자신의 그립이 아닌 사이드암 계열 투수용 그립을 따로 알려주었다고 한다.
해설자 전향 이후 처음 인터뷰를 한 한화 선수에게서 "그때 제게 왜 그러셨어요. 매번 저를 볼 때마다 '에휴 답이 없다. 답이'라고 하셨잖아요. 그 말에 많이 좌절했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자신의 코칭 방법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4]
시즌 종료 후, 올해의 코치상을 수상했다.
6. 2019 시즌
5월 7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투수코치가 그라운드 키퍼와 마찰을 일으켜 멱살을 잡고 폭행을 했다가 나중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5월 31일에 전해지면서 유력한 인물로 예상되었지만 당일 상벌위원회 결과 투수코치가 아닌 불펜코치 김해님의 소행이었던 것이 밝혀졌다.6월 24일, 김해님 불펜코치와 같이 2군으로 내려갔다. 반대급부로 2군에서 정민태 투수코치, 마일영 불펜코치가 1군으로 올라왔다. 무능한 수석코치인 장종훈은 끝까지 데리고 가면서 전년도 불펜진 강화의 1등 공신 송진우는 2군으로 보내버리냐는 비판이 많았다. 다만 그렇다고 보직을 맞바꿔 올라온 정민태의 코칭이 낫느냐 송진우의 코칭이 낫느냐에 대해서는 이견이 갈리는 편.
7. 2020 시즌
6월 7일 한용덕 감독이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하자 1군 코칭스태프가 대거 바뀌게 됐고[5] 이 과정에서 1군으로 다시 올라오게 됐다.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2018시즌처럼 코치로서 무언가 팀의 변화를 보여줄만한 기간은 아니었기에 별다른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지만, 코칭과는 별개로 어린 선수들 사이에서 함께 세레모니를 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고 있다. 팬들로부터 ‘왜 송진우가 선수들과 친화적이라는 평가를 받는지 알겠다’는 반응을 이끌어냈다.
김민우[6]의 선발 안착과 윤대경[7], 강재민[8]의 필승조 진입 등 젊은 투수들이 1군에 안착하며 암울한 팀 성적과는 별개로 투수 파트에서는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송진우에게 배운 체인지업을 주 무기로 1군에서 강력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는 윤대경은 그의 성과.. 박상원과 김진영, 김종수까지 후반기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며 벌떼야구로 지키는 야구가 가능해져 상위권 팀들에게 매서운 고춧가루를 선사했다.
그러나 11월 6일 구단이 재계약 의사를 밝히지 않음에 따라 결국 한화를 다시 떠나게 되었다.
다만 투수파트의 공적에 있어서는 지분에 대해 이견이 있다. 최원호 감독 대행부터가 투수이론이 확실한 지도자였다. 대행을 맡기 전부터 2군에서 강재민과 윤대경 등을 지도하고 있었고, 김범수를 투구판 위치를 다시 잡게 하고 고관절 사용법을 가르치며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기 전까지 철벽에 가까운 투수로 바꾸기도 했다.
8. 한화이글스 코치 2기 총평
1기 시절의 답없던 모습에서 벗어났고, 윤대경 등에게 체인지업을 전수하는 등 성과는 있었다. 다만 온전히 투수파트의 성과가 송진우 코치의 것인지는 이견이 있는데, 송은범을 살린 정민태 코치도 이전 팀에서의 평가 보다 한화에서 같은 시기 일하면서 성과를 내었고, 최원호 2군 감독 역시 이론이 탄탄하고 김범수를 살려내기도 했다. 한용덕 감독도 한화와 두산에서 인정 받은 투수코치 출신이기도 했다.유능했던 투수 파트에서 투수코치로서 2기 시기는 반전한 지도자라는 것은 분명하다.
9. 독립야구단 스코어본 하이에나들 감독
2020 시즌 종료 후 한화 이글스를 떠나, 새로 창단되는 독립야구단 스코어본 하이에나들 감독을 맡게 되었다. 원창식, 임익준 등도 코치로 합류하였다.세컨 포수가 어깨가 약하다는 이유로 선발에서 제외하고 외야수를 포수로 투입하는등의 이상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9] 그 뒤로 절치부심하여 재정비한 덕분인지 창단 첫 해 독립리그 우승을 맛보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1년도 안되어 팀이 해체되고 말았다.
[1] 거기에 김현욱도 같이 끼어 들었다...[2] 김혁민이 1군에 올라와 선발테스트를 받는다는 소식을 듣자 팬들은 몇 년째 테스트만 하냐며 미덥지 않은 반응이었다. 하지만 지옥에서 돌아온 (최훈 카툰에서도 언급한) 김혁민을 보며 팬들은 감격... 그 이후로도 송진우가 올린 2군 투수는 1군에 올라오자마자 활약하는 기적 같은 모습을 보였고, 그들은 인터뷰에서 한결같이 송진우 코치에게 감사를 표현했다.[3] 심지어 한화 이글스 갤러리에서 김응용, 김성한 다음으로 엄청 까이고 있으며, 그의 별명은 돌진우이다.[4] 그 말을 한 선수는 허유강이었다.[5] 이미 6월 6일 정민태 1군 투수코치가 육성군으로 강등된 바 있다.[6] 9/10 기준 102.2이닝, ERA 4.12, WAR 2.10을 기록하며 커리어하이 시즌을 달리고 있다.[7] 9/10 기준 31.2이닝, ERA 1.42, WAR 1.12[8] 9/10 기준 21이닝, ERA 2.81, WAR 1.08[9] 해당 세컨 포수는 멘탈이 무너졌는지, 야구를 아예 그만하겠다고 선언하고 나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