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05 04:28:32

샤를로트 갱스부르

샤를로트 갱스부르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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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칸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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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주연상
제61회
(2008년)
제62회
(2009년)
제63회
(2010년)
산드라 꼬르벨로니
(리나 데 파세)
샤를로트 갱스부르
(안티크라이스트)
줄리엣 비노쉬
(사랑을 카피하다)

역대 세자르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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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여우상
제10회
(1985년)
제11회
(1986년)
제12회
(1987년)
로 마르사
(라 파이렛)
샤를로트 갱스부르
(귀여운 반항아)
캐서린 무체
(성녀 테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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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샤를로트 갱스부르
Charlotte Gainsbourg
파일:whatsapp-image-2022-11-04-at-20.13.15.jpg
본명 샤를로트 뤼시 긴스버그
Charlotte Lucy Ginsburg
출생 1971년 7월 21일 ([age(1971-07-21)]세)
잉글랜드 런던
국적
[[프랑스|]][[틀:국기|]][[틀:국기|]] |
[[영국|]][[틀:국기|]][[틀:국기|]]
활동 1984년현재
직업 배우, 가수
신장 173cm
부모 아버지 세르쥬 갱스부르
어머니 제인 버킨
형제 이복언니 나타샤 갱스부르(1964년생)
이부언니 케이트 배리(1967년생)[1]
이복오빠 폴 갱스부르(1968년생)
이부여동생 루 드와이옹(1982년생)
이복남동생 뤼시앵 갱스부르(1986년생)
파트너 이반 아탈(1991년 - 현재)[2]
자녀 아들 벤 아탈(1997년생)
딸 앨리스 아탈(2002년생)
딸 조 아탈(2011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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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주요 출연작4. 감독5. 음반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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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렌치시크의 아이콘[3]으로 유명한 프랑스배우이자 가수.

2. 생애

아버지는 샹송의 전설인 프랑스 가수, 작곡가, 시인, 배우 세르쥬 갱스부르이며, 어머니는 영국인 배우 제인 버킨이다.[4] 부모님 모두 한창 유명할 때 태어났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나중에 부모님이 헤어지면서 4살 많은 이부언니 케이트 배리와 함께 엄마 손에 자랐으며, 국제학교를 다녀서 프랑스어영어 모두 유창하게 구사한다. 당연하게도 모국어인 프랑스어가 영어보다 훨씬 편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영어를 구사할 때 프랑스 억양이 상당히 강한데다가 간혹 모르는 단어를 찾아봐야 한다고.

15살에 두 번째 작품 《귀여운 반항아》[5]세자르 신인 배우 상을 수상했고, 소피 마르소 버금가는 국민 여동생으로 사랑받았다. 한국에서는 라스 폰 트리에 영화와 2000년대 출연한 영어권 영화 위주로 알려졌지만 80년대하고 90년대에 아역 시절부터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자국에서 탄탄한 커리어를 쌓은 배우이다.

세자르 상을 받은 《귀여운 반항아》 뿐 아니라 프랑수아 트뤼포가 각본을 쓴 《귀여운 여도적》, 샤를로트의 삼촌이 직접 감독한 이언 매큐언 원작 《시멘트 가든》[6]등이 아역 시절 대표작.

2000년대에는 영어권 영화에도 진출해서 《아임 낫 데어》, 《21 그램》, 《수면의 과학》 같은 유명 감독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는데, 영어권 쪽 작품이 예술 계열 영화다 보니 마리옹 코티야르, 에바 그린, 레아 세두보다는 인지도가 낮다.

2006년에는 로맨틱 코메디 《결혼하고도 싱글로 남는 법》이 프랑스에서 연간 흥행 랭킹 2위에 오르는 대박을 일으켰고, 같은 해 공개된 20세기 초반 미국 이민자들의 삶을 다룬 이탈리아 영화 《황금의 문》은 베니스 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한다.[7] 정규 앨범 5:55도 흥행해서 2006년은 그에게 상업 영화, 예술 영화, 음악 활동 모두 성공한 해로 남게 되었다.

2년 뒤에 라스 폰 트리에의 《안티크라이스트》에서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여 여우주연상을 받고 배우로서 전환점을 맞았다.[8]

이후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와 《님포매니악》에 연달아 출연하면서 페르소나로 자리 잡았다. 《님포매니악》에서도 역시 파격적인 노출 연기로 많은 충격을 주기도 했다. 다만 《님포매니악》에서의 파격적인 장면들이 영상이나 짤로 인터넷에 돌아다니면서 당시 사춘기였던 아이들이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만약 이것이 정말 아이들에게 악몽과 같았다면 다시는 이런 것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2010년대에도 꾸준히 주목할만한 작품에 출연하고 있으며, 한국에선 다양성 영화로 소개된 《웰컴, 삼바》와 《새벽의 약속》은 자국에서 흥행에 크게 성공한 영화이다.

사실 배우로서 커리어는 한동안은 부업에 가까웠다고 한다. 배우인 어머니 손에 이끌려 출연한 뒤로 방학 기간에 짬짬히 출연하는 정도였고, 본인도 배우로서 딱히 수업을 받은 것도 아니여서 맨땅에 헤딩하듯이 실력과 경력을 만들어갔다고 한다. 《안티크라이스트》 개봉 당시엔 "내가 여배우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정말로 힘들다. 한번도 연기학교를 다닌 적이 없고, 어린 시절엔 방학 때만 영화 일을 했다. 그래서 영화계의 일원이 아니라는 느낌을 종종 갖는다. 메소드도 없다. 매번 나는 첫 영화를 다시 찍는 것 같다."라고 토로했을 정도다.

가수로서 커리어도 주목할만한데 5:55 앨범은 자국에서 좋은 판매고를 올렸고 IRM과 Rest는 음악 웹진 피치포크의 베스트 뉴 뮤직으로 선정되는 등 찬사를 받았다.

3. 주요 출연작

4. 감독

  • 2021년 샤를로트에 의한 제인[9]

5. 음반

  • 1986년 Charlotte for Ever
  • 2006년 5:55
  • 2009년 IRM
  • 2011년 Stage Whisper
  • 2017년 Rest

6. 여담

  • 태어날 때 성은 갱스부르(Gainsbourg)였으나 18살때 아버지 세르쥬 갱스부르의 법적 성이었던 긴스버그(Ginsburg)로 개명했다. 즉 법적 이름은 긴스버그인 셈. 대외적으로는 아무래도 가장 잘 알려진 갱스부르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
  • 영화 촬영장에서 만난 배우 겸 감독 이반 아탈과 1991년부터 지금까지 교제하고 있으며[10] 슬하에 아들 벤(1997년생)과 딸 알리스(2002년생)하고 조(2011년생) 이렇게 1남 2녀를 두고 있다. 장남 벤은 아버지의 영화에 출연하는 등 부모의 뒤를 이어 배우로서 활동하고 있다.
  • 2013년에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언니 케이트[11]가 사망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평소 약물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렸던 언니가 파리 16구 아파트 창문에서 떨어져 사망한 것. 분명한 자살로 추정됐으나 샤를로트는 언니의 사망을 자살이 아닌 사고로 믿고 싶다고 말했다. 이 충격으로 평생 살던 파리를 떠나 뉴욕으로 완전히 이사했다. 뉴욕으로 이주한 후에는 음반 작업에 매진하면서 언니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분노를 담은 앨범 Rest를 발매했다. 뉴욕에서 맨하탄 그리니치 빌리지에 거주했는데 한인 커뮤니티에 목격담이 올라오기도 했다. 2020년에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 2023년 어머니인 제인 버킨이 세상을 떠난 후 생전 세르주 갱스부르가 살았던 파리의 집을 박물관으로 오픈하기로 결정했는데, 갱스부르가 사망한 그 시점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 정치적으로 좌파 성향이 강한 배우인데, 곱게 자란 부잣집 딸내미라는 점 때문에 현지에서는 괴리감을 느낀다는 평이 많다고 한다. 즉, 강남 좌파[12] 풍 이미지가 붙어있는 배우. 어느 나라건 간에 예술계 쪽에는 진보 좌파 성향을 갖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샤를로트가 딱히 특이한 건 아니다.[13] 2022년 프랑스 대선에서 마린 르펜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해 에마뉘엘 마크롱 지지 선언을 했다.

[1] 2013년 사망.[2] 세파르딤 유대계 프랑스인 영화 감독이자 배우. 결혼 제도에 부정적인 샤를로트의 뜻에 따라, 혼인신고는 하지 않고 아이 셋을 낳으며 30년 넘게 사실혼으로 지내고 있다.[3] 정작 자국 프랑스에서는 너무 영국적이라는 평이 있다. 실제로 어머니가 영국인이고 아버지가 프랑스인이지만 러시아유대인 혈통이라 프랑스인의 피는 단 한 방울도 안 섞였다. 프랑스가 다인종 국가인만큼 샤를로트뿐만이 아니라 프랑스인의 피는 단 한 방울도 안섞인 연예인들을 매우 흔하게 볼 수 있긴 하다.[4] 외가와 친가 집안 사람들 다 각각 영국프랑스 예술계의 로열 패밀리다. 어머니의 전 남편은 영화 음악가로 유명한 존 배리인데다, 새아버지는 프랑스의 원로 영화 감독인 자크 드와이옹이다.[5] 한국에선 1989년 1월 15일 KBS 명화극장에서 방영되어 중년층에 제법 인지도가 있다. 특히 주제가 'Sara Perche Ti Amo'는 1990년대 방송에서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낼 때 자주 BGM으로 사용되어 영화는 몰라도 노래는 안다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슬래셔 호러영화 《엑스텐션》에서도 삽입되어서 전혀 다른 분위기를 보여줬다.[6] 이 작품에서 나온 샤를로트의 대사 일부가 마돈나의 대표곡 중 하나인 What It Feels Like For A Girl에 샘플링되어 유명해졌다.[7] 마틴 스콜세지가 영화를 호평했다. 또, 당시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 중 하나였던 박찬욱은 이 영화에 황금사자상을 주고 싶었다고 한다.[8] 다만 프랑스 언론을 포함하여 일부에서는 그 해 여우주연상은 마르코 벨로키오 감독의 영화 《승리》의 주인공 조반나 메초조르노가 받았어야 했다는 의견도 있다.[9] 어머니 제인 버킨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10] 연예인은 물론이고 일반인들도 연애편력이 복잡해서 배다른 자녀나 아버지가 다른 자녀의 존재가 매우 흔한 그 프랑스 파리에서 샤를로트는 천연기념물급으로 연애편력이 매우 깔끔하다. 솔직히 한국에서도 드물다.[11] 모친 제인 버킨과 첫 번째 남편인 존 배리 사이에서 난 딸로 샤를로트에게는 이부 언니에 해당한다.[12] 프랑스에서는 캐비어 좌파(gauche caviar)라 불린다. 프랑스는 비록 왕정이 폐지됐긴 했지만, 영국처럼 여전히 귀족이나 전통적 거부 집안의 후예들도 많고, 미국 등에 비해 훨씬 계급 의식이 심하다.[13] 당장 헐리우드만 해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연예인 2세 출신 스타들도 진보 좌파 성향이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