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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51538><colcolor=#ffffff> 사사키 마모루 佐々木守|Mamoru Sasaki | |
출생 | 1936년 9월 13일 |
일본 제국 이시카와현 노미시 | |
사망 | 2006년 2월 24일 (향년 69세) |
도쿄도 신주쿠구 | |
국적 |
|
직업 | 각본가, 방송 작가, 만화 스토리 작가 |
활동 | 1960년 ~ 2006년 |
학력 | 이시카와현립 코마츠고등학교 (졸업) 메이지대학 문학부 (일본문학과 / 학사) |
배우자 | 사사키 나오코 |
1. 개요
일본의 각본가, 방송 작가, 만화 스토리 작가.2. 생애
이시카와현의 농촌 노미시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 전후에 창간된 수많은 어린이 잡지에서 모험소설을 애독했으며, 신문과 문집 만들기에 열중했다. 고교 졸업 후, 상경해 메이지대학 문학부에 진학했다. 아동문학에 특히 큰 관심을 보였으며, 아동문학 연구부에 소속하기도 했다. 또 연구지 '작은 동료'의 동인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대학 시절부터 스나가와 투쟁에 참여하는 등 좌익 운동권 활동을 하였으며 이 때문에 제도권에 취업을 못하고 있다가 라디오, TV, 영화 시나리오 작가 일을 시작한다.대학교 4학년 때부터 교육영화작가협회의 기관지 '기록영화'의 편집자 겸 발행인을 맡아 오시마 나기사, 마츠모토 토시오, 이시도 토시로 등과 알게 되었다. 이후 오시마 감독이 쇼치쿠 퇴사 후 설립한 독립영화 제작사 소조샤에 참가해 조감독을 맡았으며, 1967년 개봉한 영화 〈닌자무예장〉부터는 오시마의 밑에서 많은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타무라 츠토무와 함께 〈감각의 제국〉 이전 오시마의 각본 작업 파트너로 유명했다. 〈교사형〉, 〈돌아온 술주정뱅이〉, 〈신주쿠 도둑 일기〉, 〈도쿄전쟁전후비화〉 등 오시마가 만든 정치적인 영화 각본은 사사키, 타무라와 공동 작업으로 탄생했다.
오시마의 소개[1]로 영혼의 파트너라 할 만한 짓소지 아키오를 만나게 되며 평생 친구로서 같이 지내며 작품활동을 같이했다. 짓소지는 후일 인터뷰에서 사사키에 대해 "발상은 기발. 하지만, 구성은 단단하다. 이상적인 각본가였다"라고 평했다. 이 콤비가 만든 대표작이 바로 〈울트라맨〉의 서성괴수 자미라가 등장하는 〈고향은 지구[2]〉이며 지금도 울트라맨 최고의 에피소드로 꼽는 사람들이 많다. 그외에도 명작 에피소드가 많으며 보통 울트라맨 팬들은 킨조 테츠오, 우에하라 쇼조, 이치카와 신이치, 사사키 마모루 이 4명을 쇼와 울트라맨 4대 작가로 꼽는다.
1970년에는 TV 드라마의 상식을 뒤집은 코미디물 〈오니모츠 코니모츠〉를 발표했다. ‘탈드라마’를 표방해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최종회 시청률은 29.2%를 기록했다. 또한 1974년부터는 야마구치 모모에와 우츠이 켄이 주연으로 출연한 히트 드라마 〈붉은 시리즈〉의 메인 각본가 중 한 명으로 활동했다. 그 외에도 다큐멘터리와 음악 프로그램 구성, 만화 원작과 소설, 작사가 활동 등 폭넓은 분야에서 활약했다. 그러나 70년대 중반부터는 다시 아동문학의 중요성을 깨닫고 주로 어린이를 위한 작품에 전념하게 되었다.
만화 스토리 작가로도 왕성하게 활동했다. 1970년부터 1975년까지 미즈시마 신지와 함께 야구만화 〈남자 바보 고시엔〉을 연재해 큰 인기를 끌었다. 미즈시마의 출세작이 되었고, 제19회 쇼가쿠칸 만화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 이후에는 당시 신인이었던 아다치 미츠루와 함께 수많은 야구만화를 발표했다. 또 80년대부터는 〈아들을 동반한 검객〉의 그림 작가 코지마 고세키와 함께 많은 시대극 만화, 순정만화 작가 카와하라 유미코와 함께 청춘 만화를 발표하기도 했다.
확실히 반대되는 입장인 건 맞지만, 텔레비전에서는 반체제 쪽을 주인공으로 삼을 수는 없어요. 그런 기획을 써도 통과되지 않겠죠. 다만, "시라누이 일족"이나 "독립 환상단"처럼 이 일본에서 국가 체제에 단호하게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게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 있어요(웃음). 단호하게 국가와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자기 만족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그 감정을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해요.
사사키 마모루 #
좌익 사상가였으며, 평생 일본 정부를 부정했다고 한다. 현재의 일본은 여러 나라를 강제 융합시켜서 만든 괴뢰 정권이며, 이 모든 책임은 천황에 있고 오키나와, 홋카이도를 원주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그의 작품에도 드러나는데 오시마 나기사의 대표작에서는 노골적으로 일본 우익과 천황제를 비판했다. 특촬물에서도 변하지 않아 〈아이언 킹〉에서는 악역으로 나오는 집단이 일본 정부에게 나라를 빼앗겨 다시 되찾으려고 하는 자들로, 다분히 류큐나 아이누를 의식하고 있다. 〈울트라맨 22화〉도 이러한 내용이라는 설이 많다. 잘 보면 국가에 배신당하거나 소중한 걸 빼앗긴 사람들이 복수를 하러 나타난다는 전개가 상당히 많다.사사키 마모루 #
1982년에는 ATG와 츠부라야 프로덕션이 제작하는 초대 울트라맨의 리메이크 작품인 〈울트라맨 괴수성서〉의 각본을 담당할 예정이었으나 천황 일가를 비판하는 내용이 있다고 하여 제작은 중지되었다. 후에 이 작품의 소재 일부를 재활용해 〈울트라 Q 더 무비 별의 전설〉이 제작되었고, 1990년에 개봉했다. 이 작품의 핵심인 '울트라맨에 의해 지켜졌음에도 결국 자신이 침략자가 된 지구인'이라는 소재는 소설 〈Another Genesis〉에서 활용되었다.
말년에는 각본가 활동보다는 자신의 고향 이시카와현의 발전을 위해 힘썼다. 이시카와현 현지에서 시청할 수 있는 민방국이 적었기 때문에 케이블 TV 회사의 설립에 진력해 사장으로 취임했고 #, 2002년 11월부터는 이시카와현에 온천시설과 극장이 모여있는 복합시설의 관장도 맡았다. 그러다가 2006년 2월 24일 오전 1시 10분, 췌장암으로 도쿄도 신주쿠구의 병원에서 향년 6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장례식은 가까운 가족만 참석하여 진행됐고, 상주는 아내 나오코가 맡았다. #
3. 작품 목록
3.1. 영화
- 오시마 나기사 감독작[3]
- 작은 모험 여행 (1963) - 유아지도
- 윤복이의 일기 (1965) - 협력
- 백주의 살인마 (1966) - 조감독
- 닌자무예장 (1967) - 공동 각본
- 동반자살 일본의 여름 (1967) - 공동 각본
- 일본춘가고 (1967) - 공동 각본
- 돌아온 술주정뱅이 (1968) - 공동 각본
- 교사형[4] (1968) - 공동 각본
- 신주쿠 도둑 일기 (1969) - 공동 각본
- 도쿄전쟁전후비화 (1970) - 공동 각본
- 의식 (1971) - 공동 각본
- 그 여름날의 누이 (1972) - 공동 각본
- 그 외 다른 감독들의 작품
- 비행소녀 (1963, 우라야마 키리오 감독) - 방언 지도
- 일본 제일의 배신남 (1965, 스가와 에이조 감독) - 공동 각본
- 일본 제일의 단절남 (1969, 스가와 에이조 감독) - 공동 각본
- 약칭: 연쇄살인마 (1975, 아다치 마사오[5] 감독) - 총괄 제작
- 성모관음대보살 (1977, 와카마츠 코지 감독) - 단독 각본
- 짓소지 아키오 감독 작품 울트라맨 (1979, 짓소지 아키오 감독) - 단독 각본
- 계엄령의 밤 (1980, 야마시타 코사쿠 감독) - 공동 각본
- 골프가 동트기 전 (1987, 마츠바야시 슈에 감독) - 단독 각본
- 울트라 Q 더 무비 별의 전설 (1990, 짓소지 아키오 감독) - 단독 각본
3.2. 드라마
한국에선 아무래도 일본 고전 TV 드라마가 알려져있지 않고 볼 방법도 없다보니 주로 울트라맨과 특촬물 위주로 소개하게 되었다.- 일곱형사 (1965~1968) - TBS 방영의 형사 드라마.
- 울트라맨 (1966)
- 14화 진주조개 방위지령 - 물총괴수 가마쿠지라
- 15화 공포의 우주광선 - 이차원괴수 가바돈
- 22화 지상파괴공작 - 지저괴수 테레스돈
- 23화 고향은 지구 - 서성괴수 자미라
- 35화 하늘이 준 선물 - 메가톤괴수 스카이돈
- 36화 괴수묘지 - 망령괴수 시보즈
- 울트라 세븐[6] (1967)
12화 - 유성으로부터 사랑을 담아 - 흡혈우주인 스펠 성인[7]- 38화 용기있는 싸움 - 로봇괴수 크레이지곤
- 레몬같은 여자 (1967) - 키시다 쿄코 주연의 5화, 6화 집필.
- 코메트 양 (1967~1969)
- 괴기 대작전 (1968)
- 월화수목금금금 (1969) - 요시다 히데코 주연 드라마.
- 유도일직선 (1969~1971) - 메인 각본. 카지와라 잇키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스포츠 드라마. 원래는 1쿨 방영 예정이었지만, 상당히 큰 인기를 끌어 2년동안 방영됐다.
- 오니모츠 코니모츠 (1970~1971) - 전화 집필. 초현실적인 블랙 코미디를 표방해 '아방가르드한 TV 드라마'라는 평가받았다.
- 갓 구운 호카호카 (1971) - 나카야마 지나츠 주연의 홈 드라마.
- 실버 가면 (1971~1972) - 1화, 2화, 11화 집필. 짓소지 아키오와 같이 참여한 작품이며, 흥행에는 실패했다. 애정이 있어서 2006년 리메이크에 참여하려고도 했으나 사망하면서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다.
- 형사군 (1971~1972) - 시즌 1 메인 각본. 사쿠라기 켄이치 주연. 토에이 제작의 형사 드라마다.
- 아이언 킹 (1972) - 전화 집필. 역시 흥행 실패한 마이너한 작품이지만 워낙에 충격적인 내용이 많아서 지금도 찾아보는 사람들이 있는 숨은 걸작으로 꼽힌다.
- 울트라맨 타로 (1973)
- 34화 울트라의 나라 폭발 5초전! - 극악우주인 템페라 성인
- 35화 울트라 6형제 최후의 날! - 극악우주인 템페라 성인
- 붉은 미로 (1974~1975) - 붉은 시리즈 제1탄. 주연은 우츠이 켄. 평균 시청률 18.9%, 최고 시청률 22.7%를 기록했다.
- 호넨 만사쿠 (1974) - 전화 집필.
- 그림자 동심 (1975) - 2화 집필. 토에이에서 제작한 시대극이다.
- 날아라! 캇친 (1975) - 원안도 담당.
- TOKYO DETECTIVE 두 사람의 사건부 (1975) - 1화, 2화, 7화, 34화 집필.
- 붉은 운명 (1976) - 붉은 시리즈 제3탄. 주연은 우츠이 켄과 야마구치 모모에. 평균 시청률 23.6%, 최고 시청률 27.7%를 기록했다.
- 돈이 되는 나무는 누구의 것인가 (1976) - 전화 집필. 코미디 드라마다.
- 11명이나 있어! (1977) - NHK 소년 드라마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
- 붉은 유대 (1977~1978) - 붉은 시리즈 제6탄. 주연은 야마구치 모모에. 평균 시청률 29.5%, 최고 시청률 32.4%를 기록했다.
- 서유기 (1978) - 1화, 2화 집필.
- 장미해협 (1978) - 1화~6화 집필
- 사람은 그것을 스캔들이라고 한다 (1978) - 메인 각본. 야마구치 모모에 주연의 미스터리 드라마.
- 붉은 영혼 (1980) - 붉은 시리즈 제8탄. 주연은 스기우라 나오키.
- 고등학교 성부부 (1983) - 메인 각본. 사사키 마모루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학원 드라마.
- 신부 의상은 누가 입는다 (1986) - 11화~13화 집필. 호리 치에미 주연.
- 온나 풍림화산 (1986~1987) - 시대극 드라마. 원안도 집필. 스즈키 호나미의 첫 주연작이다.
- 쿄대 미식축구부 탄생비화 너에게 눈물은 어울리지 않는다 (1988) - 스페셜 드라마.
- 하늘과 바다를 넘어 (1989) - 전화 집필. 고토 쿠미코 주연.
- 울트라맨을 만든 남자들 ~별의 숲에 달의 배~ (1989)
3.3. 만화
스토리 작가로 참여한 작품들.- 남자 바보 고시엔 (1970~1975, 그림: 미즈시마 신지)
- 용이 베다! (1972~1973, 그림: 이시이 이사미)
- 리틀보이 (1974, 그림: 아다치 미츠루)
- 고시엔 보이 (1974, 그림: 무라오카 에이이치)
- 야구혼 (1975, 그림: 카자마 에이지)
- 히라히라군 청춘인의 (1975~1976, 그림: 아다치 미츠루)
- 고시엔타마시 (1976~1977, 그림: 아다치 미츠루)
- 히라히라군 청춘음두 (1976~1977, 그림: 아다치 미츠루)
- 히라히라구 청춘태고 (1977~1978, 그림: 아다치 미츠루)
- 오히케에나슷테! 야구인의 (1978~1979, 그림: 아다치 미츠루)
- 천지에 몽상 (1983~1984, 그림: 코지마 고세키)
- 솔져보이 (1984~1987, 그림: 카와하라 유미코)
- 온나 풍림화산 (1986~1987, 그림: 아리사카 쿠니)
- 독안룡 날다 (1987, 그림: 츠치야마 시게루)
- 용기무한대 (1988, 그림: 카가와 유미)
- 페어리 (1988, 그림: 아리사카 쿠니)
- 잇큐전 (1989~1990, 그림: 코지마 고세키)
- 마카이도 (1989~1990, 그림: 코지마 고세키)
- 히로인의 초상 (1991, 그림: 아리사카 쿠니)
- 만화 잠자리 일기 (1994, 그림: 코사카베 요코)
- 미야모토 무사시 (1995, 그림: 코지마 고세키)
- 바람의 마호로바 죠몬모험코믹 (1996, 그림: 사카이 히로코)
3.4. 애니메이션
- 거인의 별 (1968) - 2화, 3화, 8화 집필
-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1974) - 20화부터 참여. 후반부부터는 메인 각본이었다.
- 허클베리 핀의 모험 (1976) - 메인 각본
- 해저 대전쟁 사랑의 20000 마일 (1981) - 단독 각본. 해저 2만리를 원작으로 한 스페셜 애니메이션.
- 신센구미 (2000)[11] - 공동 각본. 극장 애니메이션.
4. 여담
- 엄청난 다작 작가였으며, 2006년에 사망할 때까지 3,000개의 작품을 질필했다. 다양한 활동을 했는데, 심지어 학교의 교가를 작사하기도 했다. # 또한 속필로 유명했다. 짓소지 아키오는 "사사키 마모루는 정말로 대단한 남자로, 속필 위에 계속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만들어 갔다"라고 말한 바 있다. #
- 일본 정부 전복을 노리는 적군파에 큰 금액을 후원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일본 우익들 사이에선 아나키스트로 잘못 알려져있기도 한데 일본 정부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지 아나키스트는 아니었다는 증언도 많다. 그러는 한편 일본공산당에 입당했다가 일본공산당은 썩었다면서 탈퇴한 바 있다.
- 추리물의 팬으로 요코미조 세이시를 특히 좋아했다고 하며 요코미조 세이시 작품이 영상화 될 때 각본을 집필하는 경우가 많았다.
- 1970년대에는 영화감독 아다치 마사오, 사진작가 나카히라 다쿠마, 평론가 마츠다 마사오와 함께 '풍경론'을 제안하기도 했다. ‘풍경론’은 고도 경제성장 하에서 급속하게 진행된 개발로 동질화되는 경관을 불가시적 권력으로서의 풍경으로 파악하는 이론이다. #
- 평소 자동차를 문명의 이기로 여겨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울트라 세븐의 로봇괴수 크레이지곤은 그의 자동차 증오가 담긴 각본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대인의 삶에 자동차는 필수불가결이라 했으며 대중교통은 인정해서 평생 택시만 타고 다니며 택시 안에서 각본 집필을 했다고 한다. 지인들에게도 "자가용을 운전하는 시간은 인생의 낭비. 택시가 비싼 것 같지만 타면서 다른 생각이나 일을 할 수 있으니 자가용보다 이득이다." 라며 택시 애찬론을 펼쳤다고 한다.[12]
- 1984년 발표한 소설 '울트라맨 괴수무덤' 후기에서 아래와 같은 글을 남겼다. #나에게 있어 전후 민주주의란 교실에서 교단이 없어진 것이고, 선생님의 위치가 그 교탁과 함께 교실 맨 뒤로 옮겨진 것이며, 그리고 그룹 수업이 시작되고, 공부는 각각의 그룹에서 자유롭게 진행하고, 모르는 부분만 선생님에게 묻는 방법이며, 그때까지 말을 꺼리던 남자와 여자가 손을 잡고 포크 댄스를 추는 것이었다. 그 '전후 민주주의'가 50년간 착실하게 행해졌더라면, 왕따나 그에 의한 자살이라고 하는 비극은, 절대로 일어날 리 없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전후 민주주의'는 언제, 왜 붕괴해 버린 것일까.그러나 나는 역시 어린이 프로그램을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다양한 방법에 의해서 어린이를 주된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계속 만들어 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고 어린이 프로그램은 세상의 양식 있는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대상이기도 했다. "간편하다", "말투나 행동이 나빠진다", "공부하지 않게 된다", "제대로 된 것의 견해나 조리 있는 생각을 할 수 없게 된다"……등. 최근에는 아이에게 TV를 보여주지 않는 운동이나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모든 비판을 받아들이면서도 나는 생각한다. 그래도 "다수결"이나 "대화"를 금과옥조로, 전후 일본을 이런 바보같은 세상으로 만든 당신들보다, 어린이 프로그램이 훨씬 더 노력해 왔다고. 그리고, 여러가지 의미를 담아, 우리가 아직 어릴적 부모나 교사나 모든 매체를 통해서 언제나 말해 온 말을, 지금 다시 한번 생각해 낸다. --너희는 나라의 장래를 책임지는 소중한 소국민이다
- 2020년 연출가 콘노 츠토무[13]는 인터뷰에서 "사사키 마모루는 오시마 나기사의 일파에 들어가 있지만, 그 3명[14]과는 기질이 달라서, 간단하게 말하면 시시한 이야기라도 재미있게 만들 수 있죠(웃음). 내가 사사키 마모루를 알게 되었을 때는, 1주일에 7편이나 레귤러 프로그램을 쓰고 있었어요. 하숙집에 가면 30분짜리 프로그램을 2~3시간 만에 써버렸죠. 사사키 마모루와 사귀게 되어 짓소지도 바뀐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 고향인 이시카와현을 사랑해서 이시카와현 야마나카마치로 이사하여, 그 온천 마을을 배경으로 한 일대기 드라마 '코오로기바시(1979)'를 집필하기도 했다. #
- '하얀 점퍼에 청바지'가 트레이드마크 복장이었다. 공식 석상에서 자주 하얀 점퍼에 청바지를 입었다. 격식을 차리지 않고, 꾸미지 않으며,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
- 2021년부터 이시카와현에 있는 네아가리 학습센터에서 사사키 마모루의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되는 유품에는 울트라맨의 시나리오나 기획서, 사사키의 부인으로부터 기탁받은 울트라맨 25주년 기념의 리토그래프, 츠부라야 프로덕션 창립 30주년 기념의 울트라맨 책자 등이 있다. #
5. 외부 링크
[1] 짓소지와 자주 협업한 촬영감독 나카보리 마사오는 후일 인터뷰에서 "오시마 씨는 짓소지 감독이 영상 표현만 쫓아가고 있다고(완성 작품을 보고) 화가 나서, 거기서 나이가 가까운 사사키 마모루 씨를 소개했습니다."라고 말했다.[2] 짓소지는 이 에피소드에 대해 "연출은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가 있었지만, 사사키 마모루의 각본은 훌륭했다고 생각한다"라고 평했다. #[3] 각본 뿐만이 아니라 스태프로도 참여했다.[4] 재일조선인 문제를 다룬 영화로 유명하다[5] 극좌 성향으로 유명한 아방가르드 감독이다.[6] 담당 에피소드가 적은데 이는 친구인 짓소지 아키오가 직접 각본을 작성하는 시도를 도왔기 때문이며 다른 에피소드에 아이디어를 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7] 방사능 피폭과 복수를 소재로 했는데 소재에 문제가 있어서 결번 에피소드가 되어 환상의 12화라고 불린다.[8] 사건의 원인이 일본 육군이 오가사와라 제도에서 현지인들을 학살하고 빼앗은 보물 때문에 시작되었다는 내용으로 본작이 방영된 1968년 당시에 있었던 오가사와라 제도 반환 건과 맞물려 나온 에피소드라고 한다. 오가사와라 제도 반환에 대한 이야기도 극중에 나온다. 구일본군이 숨긴 자금이 있다는 말은 그때나 지금이나 소문으로 많이 나돌며 이를 이용하여 사람을 속여 금품을 갈취하는 사기 행위는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다. 그 자금에 대한 이야기를 사람들은 "M자금"이라고 부른다. 해당 도시 전설의 내용은 오가사와라 사건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치치지마 식인 사건과 비슷하지만 그 관계는 알 수 없다.[9] 방사능 피폭 피해자에 대해서 다룬 에피소드. 극중 대사로 "과학자? 과학자가 무엇을 했나? 원폭이나 수폭을 발명했을 뿐이지 않나." "틀렸다고 말할건가? 아니, 틀렸을지도 몰라. 하지만 내가 하지 않으면 대체 누가 쿄코를 고쳐준단 말인가? 일본인가? 아니면 원폭을 떨어뜨린 미국인가? 아무도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어."가 있다.[10] 사사키 마모루 아니랄까봐 국가전복 세력을 소재로 삼았다.[11] 감독은 쇼와 시대 영화계의 거장 중 한 명인 이치카와 곤.[12] 평론가 카라사와 슌이치는 사사키 마모루에게 이 말을 듣고 택시를 많이 탔다고 한다.[13] 今野勉. 독립 TV 프로그램 제작사 'TV 맨 유니온'의 창립자. 수많은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제작에 종사한 유명 연출가.[14] 오시마 나기사, 이시도 토시로, 타무라 츠토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