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1-24 03:53:57

사마의(삼국지 유비로 천하쟁패)

삼국지 유비로 천하쟁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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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작중 행적3. 기타

1. 개요

삼국지 유비로 천하쟁패의 등장인물. 원 역사의 사마의에게서 모티브를 따왔다.

2. 작중 행적

서량과 형주를 쳐야 한다는 헌책이 거부당했음에도 거듭 나서려는 유엽을 제지한다.

서량 전쟁에도 책사로서 종군하다 유비의 맹덕전을 보고 이러면 조위 내의 유비 동조자들이 반란을 못 할 거라고 의아해하거나, 유비의 북벌에서 어차피 양번이 떨어지면 강하군도 유지할 수 없으니 문빙을 빼자고 말하는 등 확연히 승상부 책사들보다 한 발 앞서가는 면모를 보인다. 다만 아직 나이도 젊고 직위도 높지 않아 화흠 등의 고참들이 자신의 의견에 반박을 하면 재반박하지 않고 그냥 물러난다.

조조의 친정에 동행해 낙양까지 온다. 초반부터 직접 나서려는 조조에게 우선 동남의 장료, 장패에게 유비의 예봉을 상대시키고 조조는 그 후에 나서라고 간언해 받아들여진다. 이후 번성 전투에서 촉한군 매복병을 격파할 계책을 올려 모두를 감탄시킨다.

종전 이후 복귀해 조비 조정에서 청주병들의 이탈을 강경진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본인이 군사를 몰고 그 일을 도맡는다. 이후 그래도 의리를 지켜 황하에 주둔하며 장비의 사신도 쫓아낸 청주병들과 협상해 군에 남기는 건 실패하면서 끝을 내는 척하고는, 미리 앞서 태산에서 청주병들을 공격해 괴멸시킨다. 사실 사마의는 처음부터 이들을 살려 보낼 생각이 없었고, 청주병들은 조조를 부르짖거나 하후돈에게 중재를 요청했지만 하후돈은 바로 그 시기에 사망했기 때문에 도와주지 못했다.

조비는 사마의를 차기 사령관의 재목이라면서 치하하고 덕분에 조위의 혼란도 사그라들지만 청주병 몰살은 위나라 병사들의 활기를 완전히 죽이는 행위였다. 때문에 유엽은 사마의가 모르지도 않을 텐데 왜 그런 짓을 자청했는지 묻는데, 이에 사마의는 위왕이 원하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답변하면서, 나라의 미래보다 당장 위왕의 신뢰를 얻기 위해 행동했음을 은연중에 밝힌다.

이후 유비의 행동방식을 비판하면서 이대로 가면 천하가 무너질 거라 한탄하며 고개를 젓고, 중화 질서의 유지를 위해 유비를 무찌르겠다는 사명감을 불태우는 애국노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조창과 조식이 자기 세력을 이끌고 요동으로 도망치자 조비에게 고기방패를 떠맡긴 뒤 조비의 자리를 빼앗으려 한다 지레짐작(?)하고는 조창과 조식을 죽이기 위해 토벌군을 이끌고 쳐들어간다. 심지어 유비군이 대군을 몰고 쳐들어오는 상황에서 전방의 병력들까지 빼와서 조창이 이 정도까지 하냐고 분노했을 정도.

단순히 조비를 위해 요동에 처박혀 살려던 조식은 오해라면서 빨리 유비를 막으러 가라고 해명했지만 사마의는 이를 믿지 않았고[1] '변방은 중앙을 위해 죽는 게 순리'라는 희대의 발언을 시전하며 전투를 벌인다. 조창의 군재가 뛰어나기는 하나 2배가 넘는 병력을 몰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조창은 패퇴할 수밖에 없었고, 조창은 드넓은 평야라는 지형의 특성과 오랫동안 오환족을 상대하며 뛰어난 기동력을 가진 직속 기병의 이점을 살려 보병을 버리고 기병을 중심으로 전력도주해서 놓치고 만다.

유비가 백마를 돌파해서 여양에 진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황급히 업성으로 귀환하는데, 조비에게 어쩔 거냐고 까이자 유비는 늙었고 중원을 평정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며 유비의 아들에게 딱히 군재가 있는 것도 아니니 업성을 중심으로 몇 년 버티면 되고, 부족한 병력은 가비능의 선비족을 끌어들이자고 제안한다. 중신들은 그러다가 선비족이 알박기하면 어쩔 거냐 우려를 표했지만 조비는 이를 받아들였고, 이 소식을 들은 유비는 이참에 위나라가 끌어들이는 이민족들은 지금 정리해서 몇십 년간 시간을 벌자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마의가 선비족이 촉의 대군에게 공격받지 않도록 직접 출병해 유비-관우를 견제하는 동안 장비와 위연이 짠 초승달진에 크게 당해 괴멸당하는 피해를 입는다. 현장에서만 1만에 달하는 선비족이 전사하고 유주 국경이 막히고 마초의 기병대가 들어와 사실상 재집결도 불가능해진다.

이후 촉한군이 조창, 조식을 앞세운 공세 끝에 성문을 돌파하자, 이미 조위는 망했다고 생각해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정병을 이끌고 일부러 시간을 낭비하면서 업이 함락당하는 데에 일조한다. 사마부, 유엽과 함께 군막에 모셔져 정중한 대접을 받아 안심하고 있었으나, 조비가 헌제를 시해하면서 분노에 눈이 돌아간 촉한군이 학살을 벌이기 시작하고 차라리 이 기회에 미래의 위협들을 미리 제거하기로 결심한 유비의 명을 받은 제갈량에 의해 사마부, 유엽과 함께 군막에 빗발처럼 쏘아진 수백 발의 화살에 맞아 살해당한다. 그 사마의조차도 가후가 조비를 충동질해서 유협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죽이는 퍼포먼스를 벌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사마의와 두 동생들을 죽이면서 미래의 사마씨 일족은 사실상 사라졌으나, 유비는 그 선에서 멈추면서 별다른 행적을 보여주지 못한 사마씨 일족은 살아남았다. 유비가 연좌제는 최소화했기 때문에 아직 어린 사마사(당시 14세)와 사마소(당시 11세)는 이때 죽지 않았을 수도 있다.

3. 기타

조조를 모방해 찬탈을 성공했으나, 수단 방법 가리지 않은 악행으로 인한 성공이 후손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줘 결국 팔왕의 난을 유발했고 이후에도 역사적으로 수많은 비극을 낳았다고 평가한다. 그와 별개로 사마의는 조조의 수법을 따라하기만 했지 조조와 같은 창의성은 없다고 디스하기도 했다.

의외로 조조에 대한 충성심은 진심인데 조조가 손권의 심리를 정확히 간파하며 자신도 예상 못한 지점을 짚어내자 '과연 조공의 지략은!'이라고 속으로 감탄하는 모습이 나오며, 조조 사후에도 조공이라 회상하면서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조조의 사상과 행동방식을 광적으로 신봉하는 모습을 보인다. 작가의 전작인 아! 내가 마속이다에서 조예 시절부터 조조 mk.2를 꿈꾸던 인물로 묘사된 것과는 다소 다른 부분인데, 조조 개인에게는 충성했지만 조조 사후 미덥지 않은(...) 후계자들을 보고 암흑진화해버린 듯하다.

팔왕의 난 때 후손들이 보인 모습처럼 장기적으로는 근시안적인 모습을 보이는 등 조조보다는 감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중원을 지켜야 한다면서 유비와 맞설 각오를 하고, 조창과 조식을 핍박하는 데 앞장 섰으면서 조씨 정권이 위험해지자 군웅할거보다 더욱 위험한 이민족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그 인과응보를 받아 유비에게 살해당하면서 원역사보다 30년이나 빠르게 역사에서 퇴장하게 된다.[2]


[1] 단순히 도망치려던 조식과 달리 조창은 조비의 세력이 소진되면 조식을 내세워서 위를 재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2] 처음부터 유비는 원 역사에서 쓸데없이 오래 살아(향년 72세) 찬탈의 기반을 다진 사마의를 자신이 살아있을 때 죽일 생각이었기 때문에 어차피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었다. 원 역사에서 제갈량이 사마의보다 16년 먼저 사망했고 방통이 제갈량보다 2살 연상이라 사마의보다 일찍 죽을 가능성이 높아 이들이 사마의를 견제하기 힘들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