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7-07 14:50:42

문빙(삼국지 유비로 천하쟁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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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작중 행적3. 기타

1. 개요

삼국지 유비로 천하쟁패의 등장인물. 원 역사의 문빙에게서 모티브를 따왔다.

2. 작중 행적

과거 유표 산하에 있던 장수로 조조 산하 최고의 수군 장수이며 현재 형북에 주둔하고 있다. 과거 형주 공방전 당시 관우를 격파한 전적이 있었으며, 217년 시점에서도 한수 연안을 방비하면서 제갈량을 고뇌하게 만들고 있다.

219년 가을장마가 시작되면서 아무것도 못하고 허망하게 촉한 수군이 새로 생겨난 수로로 지나가는 걸 보고만 있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이후 여대가 조조에게 사신으로 찾아와 문빙에게 길을 열어줄 것을 요청하는 장면으로 오랜만에 언급되며 조조가 이를 승낙하며 양번 본대로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조조의 명령대로 동오군이 지나가도록 한수를 열어주었고, 그렇게 들어온 5만 동오군은 약국현을 점령하고 촉한의 보급을 끊었으나, 여몽의 병사와 이에 맞춘 유비의 반격으로 크게 패하고 만다.

결국 허망히 복귀하던 동오군은 본래부터 눈독 들이던 석양성과 강하군을 최소한의 체면치레와 미래의 국방을 위해서 강탈할 것을 결심하면서 문빙은 큰 위기에 처하게 된다. 설령 동오군의 공세를 막아내더라도 그 다음엔 곧바로 촉한군이 밀고 들어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동오든 촉한이든 둘 중 하나에게 털리는 건 확정이기 때문.

선봉으로 내려온 주연의 함대가 만신창이인 것을 보고 순순히 쉴 곳과 식수를 내어주지만, 동오가 석양성을 기습하려는 함정임을 간파해 대비하고 있었고 예상대로 정봉과 반장이 야습을 가하자 그대로 격파해버린다. "밀약에 의해 맺어진 관계라 공식적으로는 적대관계"나 다름이 없고, 이에 문빙이 기습을 하는 것 역시 명분이 있다보니 정병을 세워 기습을 방비해야 하는데[1][2] 정작 정병들은 보이지도 않으니 문빙 입장에서는 한번쯤 야습을 방비해야겠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

네가 대비 철저히 한 걸 보여줬다면 우리도 그냥 갔을 거라며 역으로 뻔뻔하게 나오는 동오군에게 격분하여 인정사정없이 몰아붙인다. 이후 동오 본대가 도착하면서 어쩔 수 없이 반장과 정봉의 퇴로를 열어주고 그 뒤 철벽같이 버티며 동오군을 골치 아프게 한다. 그러나 촉한군의 강하군 진입으로 본의 아니게 촉한과 같이 동오군을 양면에서 협공하게 된다. 차라리 가만 있는 게 나은 선택지라고 생각했지만 동오에 대한 분노와 지속된 전투의 피로가 극에 달한 장졸들을 달랠 방법이 없었다.

결국 동오가 포기하고 빠르게 퇴각하면서 촉한군과 대치하고, 괴기를 통해 항복을 제안하는 서신을 전달받는다. 과거 반 유비 파벌로서 우호관계가 있었던 괴기에게 양번 대전의 상황을 묻자 유비에게 부정적인 괴기한테서 들은 전황이 유비가 불리하지 않다는 말이 나오자, 실제로는 조조가 형주에서 밀려나게 생겼음을 깨닫고 항복을 결정한다.

이후 자신은 당양 시절부터 유비에게 원한을 산 것도 있고 허도에 잡혀있는 가족들을 생각해 자결하려 했으나, 빙의 과정을 거쳐서 이전의 자신을 냉정하게 볼 수 있게 된 유비의 용서와 조조가 문빙의 가족을 바로 죽이고 보지는 못하리라는 제갈량의 설득으로 유비 산하로 합류한다.

이후 석양성은 유비군 장졸들에게 넘기고 자신은 강하 수군을 이끌고 양번으로 향한다. 조조가 퇴각하면서 남양에서 학살을 벌이자, 유비가 이를 막기 위해 황권을 보내면서 그 산하에 배속되어 함께 남양에 진군해 조위의 행태를 막는다. 문빙은 남양군 완현 출신인데 조위군에 의해 고향이 박살이 났으니 조조에 대한 충성심도 완전히 무너졌을 것으로 보인다.

유비의 북벌이 성공한 이후 강동 정벌에도 투입되며 왕평과 함께 2만여 명의 수군을 이끌고 한수를 따라 진격한다.

막 항복한 상황이라 처지가 불안한 데다 공명심도 강해서 어떻게 싸워야 잘 싸웠다고 소문 날까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관우가 문빙을 보고 막 들어온 경력직 신입이 나와 맞먹으려 든다고 싸운다.(...) 관우와 문빙이 같이 선봉을 서게 되자, 관우가 맹렬히 진격하는데 자신이 선두를 양보하면 아첨한다고 소문이 날까봐 전속력을 내서 동오군을 들이받는다.

관우보다도 먼저 하구성을 돌파하는데 성공했으나, 기다리는 건 육손과 반월진을 친 동오군이었던 탓에 삼면에서 반격받아 수세에 몰린다. 너무 서두르던 탓에 수비도 어려워 힘들게 버티다가 관우가 합류하며 가까스로 수습에 성공해 육손-서성을 격파한다.

3. 기타

유표 밑에 있다가 유종의 항복으로 조조 아래에 속하게 되었고,[3] 가족과 고향을 중시하는 등 삼국시대 흔히 나타나던 전형적인 토착 호족이다. 그와 별개로 자존심과 공명심도 상당히 강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1] 석양성이 고립된 상황에서 동오군의 진입 자체가 석양성에 위협이 되니 방어를 위한 선제공격이라는 명분이 된다. 다만 문빙은 밀약으로라도 위오동맹이 맺어진 것을 알기에 그래도 동오군을 배려해줬다고 봐야 한다.[2] 이러한 관계 때문에 여몽이 유언으로 석양성을 지날 때 조심하라고 한 것이다.[3] 당시 조조가 역심을 제대로 드러내기 전이라 한 조정 정통정부 승상의 밑에 들어간다는 단순한 생각밖에 안 했었다고 한다. 왕조 교체에 적극적으로 찬동한 건 아니지만 먹고 살려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위나라에 합류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