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0-06 01:01:07

유비의 북벌(삼국지 유비로 천하쟁패)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삼국지 유비로 천하쟁패/개변된 역사
유비의 북벌
장소
형주 전역
기간
218년 ~ 220년
교전세력 촉한 조위 동오
지휘관 유비
관우
장비
황충[A]
위연
법정[A]
방통
황권
마초
장임
왕평
장완
방덕
후음
제갈량
조운
진도
조루
오란
뇌동
등지
부융
조조[3]
하후돈
조홍
조인[4]
조진
조휴
허저
염행
장합
곽회
주령
전예
우금
만총
여상
호수
부방
장료
장패
조엄
은서
문빙
손권
여몽[5]
육손
전유
반장
서성
정봉
주연
송겸
마충
이이
사정
병력 13만 5천 30만 이상 5만
피해 규모 피해 불명 15만 이상 1만 5천 상당
결과
촉한의 승리
조위-동오 연합의 패배
영향
촉한, 형북 및 중원 장악
조위, 하북으로 철수 및 한나라 조정을 업성으로 이전
조위 우위에서 촉한 우위로 삼국 형세 재편

1. 개요2. 배경
2.1. 촉한왕 즉위2.2. 유비의 결단
3. 전력
3.1. 촉한군3.2. 조위군3.3. 동오군
4. 촉-위 전선
4.1. 유비의 출병4.2. 후음의 거병4.3. 조위의 토벌군 편성4.4. 형남과 동오의 반응4.5. 신야 전투4.6. 남양 대치4.7. 촉한군의 고난4.8. 대홍수의 시작4.9. 형세 역전4.10. 완성 구원전4.11. 봉기의 시작4.12. 조조의 백룡 사냥4.13. 양번 전투
5. 동오 참전
5.1. 오나라의 배신5.2. 공안 전투5.3. 위의 반격5.4. 공성지계5.5. 약국 전투5.6. 석양 전투5.7. 동오의 항복: 오하아몽
6. 다시 촉-위 전선
6.1. 번성 대치6.2. 결전6.3. 중원으로의 귀환
7. 전후 처리8. 결과
8.1. 조위 및 동오8.2. 촉한


1. 개요

간절히의 대체역사소설 삼국지 유비로 천하쟁패에 등장하는 가공의 전쟁. 유비가 조조와 결판을 내기 위해 총력을 다해 움직였으며 조조도 이에 맞서 대군을 동원, 이후 전력을 다해 군을 움직이고, 손오도 개입해 삼세력 합쳐서 50만이 넘는 대군이 움직이는 대전쟁이 되었다.

배경은 형북 일대지만 실제로는 형주 남양군, 형주 양양군, 형주 남군으로 총 3개의 전선에서 일어났다.[6] 동오의 참전으로 인해 강하군에서도 전투가 벌어지면서 사실상 형북 3군 전역이 전장이 되었고 이후 유비가 결전에서 승리하며 전장이 중원으로 옮겨졌다.

간절히 작품을 통틀어 전쟁 에피소드 중 분량이 가장 많고, 유비와 조조의 설전이 벌어지는 등 작품의 클라이맥스가 될 가능성이 높다.

2. 배경

2.1. 촉한왕 즉위

217년의 서량전쟁 종전 이후. 익주 호족들의 지지와 동삼군의 투항을 받은 유비는 위왕을 칭하는 조조에게 맞서기 위해 촉한왕으로 즉위한다.

촉한왕 즉위를 통해 유비는 자신이 제위를 탐내는 조조와는 다르다고 중원의 반조조파에 알릴 수 있었다.[7] 동오 역시 유비가 한중왕이나 대사마, 대장군을 칭하지 않자 유비가 천자를 욕심내지 않는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2.2. 유비의 결단

본래 수년은 시간을 들이면서 전력을 육성하면 유비군은 익주와 서량만으로 10~15만에 달하는 대군 동원이 가능했다. 그러나 유비는 황충과 법정, 그리고 유비 자신의 수명을 아는데다 218년 9월에 벌어지는 후음의 난과의 연계를 위해 218년에 북벌을 결심한다.

또한 조조가 말년에 온갖 억지와 계략으로 반대파를 학살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 폭거를 조금이라도 막으려면 그 전에 출병해야만 했다.

결국 유비는 218년 가을에 출정을 명한다.

3. 전력

3.1. 촉한군

  • 유비군 본대 7만+2만
  • 제갈량군(형남 촉한군) 4만 5천(수군 함선 900척)
  • 최종 병력 합산 13만 5천
  • 상술한 장수들 외에도 유봉, 진식, 장남, 상총, 첨안 등이 부장 및 후방 담당으로 참전했다.

3.2. 조위군

  • 조인군(양번 주둔군) 4만(전선 50척)
  • 조홍군 6만
  • 우금군 5만
  • 전예군/만총군 최대 1만
  • 호수, 부방군 2만
  • 조조 친정군 10만(회남 전선 병력 및 위왕 어림병 합산).
  • 관중군 5만
  • 문빙군 1만(전선 200척)
  • 최종 병력 합산 : 34~35만
  • 상술한 장수들 외에도 정욱, 가후, 유엽, 사마의 등이 조조의 친정군에 동행했다.

3.3. 동오군

  • 원정군 5만[대장 여몽→육손→전유]
    • 손권 직계군 1만 5천
    • 수군 함선 1천 척

4. 촉-위 전선

4.1. 유비의 출병

서량 전쟁이 끝나고 1년이 지난 218년 가을. 마침내 유비는 서량, 익주, 형주의 힘을 모아 북벌을 개시한다. 한중에 7만 대군이 모이고, 형남의 3만 제갈량군, 서량군까지 움직이기 시작하자, 조위 조정은 유비의 주력 진격로가 어디인가를 두고 고민에 빠진다.
많은 사람들이 유비가 서량에서 장안으로 진격하리라 추측하나, 유비가 자신을 기다리는 형주의 백성들을 버리지 못하리라 판단한 조조는 유비가 양번 쪽으로 올 것이라 확신하고 병주의 조홍, 장합, 곽회 등을 양번으로 남하시키고 양번과 완성 등 형북의 요충지에 수십만 대군을 배치하며 유비군을 맞을 준비를 한다.
조조의 예상대로 형주를 북벌 주요 루트로 삼은 유비는 조조의 대응을 보고 이 전쟁이 장기전이 되리라 판단해 상용에 본대를 모으는 한편 정통의 병법을 구사하는 황권을 선봉장으로 삼아 형북에서 고지대를 골라 진채를 세우라는 명을 내린다. 본래라면 황권군이 한수를 타고 내려오면 조위군이 추격해 방해할게 분명했으니 상당히 어려운 임무였으나 의외로 황권이 남양군에 들어설 때 남양 외곽은 텅 비어있었다.

4.2. 후음의 거병

사실 남양의 위군도 촉한군이 상용까지 와 형북에 진입하기 직전까지 오자 완성의 군사들 대부분이 출진해 외곽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그 사이에 완성의 주민인 후음이 오랜 분노를 폭발시켜 난을 일으킨다. 사전에 조짐도 없이 수만의 남양 군민들이 가세한[8] 후음의 반군이 완성을 점거하고 남양태수 동리곤도 포로로 잡아버리자 당연히 남양 외곽에 있던 완성의 병력들은 비상이 걸려 급히 완성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게 또 황권의 진군 타이밍과 겹치면서, 황권의 눈앞에 펼쳐진 건 텅 빈 남양 외곽이었고 황권은 이를 기회로 삼아 순조롭게 무당현을 선점한다.
후음의 난 소식은 촉한군 본영에도 전해지고 촉한군은 쾌재를 부르며 마초를 파견해 후음의 군세와 연계하도록 시킨다. 기병 5천을 끌고 강행군한 마초는 후음을 진압하기 위해 완성에 모이고 있던 조위군을 격파하고 그 과정서 동리곤[9]과 종자경을 포로로 잡으며 원역사에서 후음의 난이 진압된 요인 하나를 제거한다.

4.3. 조위의 토벌군 편성

시간이 흘러 유비의 형북 진출과 후음의 난이 벌어졌다는 소식이 업성의 조조에게 닿게 되고 조위 조정에서는 남양이 허무하게 넘어갈 위기라는 소식에 경악해 조인을 완성으로 보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나, 조조는 이를 유비를 격멸할 기회로 삼기로 한다. 상용군에서 한중으로 퇴각하는 건 거센 물길을 거슬러야 해 쉽지 않은 반면 남양에서 허창, 낙양까지의 지형은 길이 넓고 평야가 많아 조위군 입장에서는 고속도로가 뚫린거나 다름 없었고 남양을 뺏기더라도 양번에서 조인이 유비군 발목만 붙들면 낙양과 허창에서 대군을 추가로 동원해 유비가 도망칠 틈도 없이 쾌속 진격해 결판을 낼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조조는 조인을 출격시키지 않고 양번에 계속 배치해 유비를 멸망시킬 기회를 노리기로 한다.
그리고 유비를 칠 핵심 병력은 기존에 남하를 명령한 조홍, 장합, 곽회 등의 북방 대군세가 선발된다. 이들이 관중의 주력군과 형북 조위군을 합하면 10만에 달하는 데다가 평야에서는 강력한 조위의 철기들을 적극적으로 쓸 수 있기 때문에 진군만 제때 된다면 승산은 충분했다.
정욱은 유비와 형북 반란군의 기세를 꺾으려면 유비를 잘 알면서, 민심을 다독이는 재주가 있는 장수를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조조가 동의하자 가후가 먼저 나서서 전예를 추천한다. 과거 유비를 따르던 전예는 모친을 모시기 위해서 유비를 떠나 지금은 조조 밑에서 대군상으로 있었다. 군재와 민심을 얻는 재주를 가진 전예라면 유비와 형북 반란군을 흔들 수 있다는 판단에 조조는 전예를 남양 태수로 임명해 형북에 투입한다. 그러나 진군은 가후가 유비를 따른 이력을 기준으로 삼자 비슷한 이력을 지닌 입장으로서 자신도 끌어들이려는거 아니냐며 매우 불쾌하게 여겼다.
조조가 대응책을 마련하는 사이 유비도 상용군을 나와서 황권이 진지를 깔아둔 남양군 무당현에 상륙한다.[10] 이곳에서 유비는 마초가 보내온 동리곤과 종자경을 억류시킨 뒤 형북 공략을 개시한다.

4.4. 형남과 동오의 반응

한편, 강릉성에서 형남 촉한군을 총지휘하는 제갈량도 형북의 전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유비가 익주의 식량을 형남에 지원한 데다가, 완성의 반란으로 남양의 상당 부분이 유비군의 손에 들어왔다는 소식에 형남의 촉한군 장수들은 크게 흥분했고 대부분의 제장들이 형남의 자신들도 전력으로 양양을 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수뇌부인 제갈량, 조운, 진도는 여전히 고민하는데 유비의 주력군이 남양 상당부분을 차지했다고는 하나, 남양은 결국 평야 위주의 땅이라 조조의 대군이 당도하면 지켜낸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양양성의 조인이 건재한 상황에 여전히 수로를 사용하지 못하는 형남군이 단독으로 북진해도 조인을 쓰러트리고 양양을 먹을 수 있다는 확신도 없었다. 결국 제갈량은 유비가 당부한대로 동오의 배신을 대비해 일부 정병만 추려서 양양을 견제하기로 결정한다.
이에 마속이 손권은 합비의 패전으로 오의사성을 비롯한 호족들에게 군권을 나눠 준 상태라서 유비를 배신할 상황이 아니라 주장하고 등지와 비의 등도 찬동하나, 동오 호족들과 함께 싸워봤고 동오의 중신인 형 제갈근을 통해 동오 특유의 유대감과 공통된 목적의식을 알고 있던 제갈량은 마속의 간언을 물리치고, 결정적인 순간이 올 때까지 동오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기로 결정한다.
제갈량의 예상대로 손권은 형남군 2만명이 양양을 공격하러 빠졌다는 말을 듣자 바로 대군을 일으켜 강릉을 치려고 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전쟁을 벌여도 최대 3만이나 남은 형남군을 뚫을 수 없고, 천하의 비난을 사는 것은 물론 강동 명사들과 군사들의 민심조차 잃을 것을 알고 있던 고옹과 여몽은 이를 필사적으로 말린다. 여몽은 촉한군이 남양에서 끝내 패할 것이니 동오군이 나서서 형주와 익주를 지키자는 명분으로 군대를 보내야 한다며 손권을 달랬고, 익주까지 얻을 욕망에 빠진 손권은 여몽의 말대로 잠시 참기로 한다.

4.5. 신야 전투

형남과 강동이 일단 추세를 지켜보기로 결정했을 때 촉한군 주력은 장완과 방덕이 5천 병력으로 수로의 요지인 축양현을 점령해 후방이 어느정도 안정되자 형북 공략을 위해 무당현을 떠나 움직이고자 한다. 이에 법정은 두 가지 길을 제시하는데 하나는 한수를 타고 내려가 양양을 먼저 치고 나서 완성으로 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동진해서 완성과 연결해 남하하는 조위군을 상대한 뒤 양양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유비는 역사를 통해 증명된 양양성의 방어력을 알고 있기에, 양양보다 완성을 우선하기로 결정한다.

한편 조홍이 지휘하는 조위군 6만명은 하후연의 죽음으로 원한에 사무친 조홍의 영향으로 매우 빠른 속도로 남하하고 있었다.[11] 이에 조홍의 부장을 맡고 있던 장합이 너무 서두른다고 지적하지만 조홍은 기병 전력의 우위가 있으니 해볼 만 하다고 주장하며 말을 듣지 않으려 한다. 이에 장합은 기병만으로 숫적 우세인 유비와 싸울 순 없다면서 일단 남양태수로 새로 부임한 전예가 병력을 모으는 중이고, 당장 형주자사 호수와 남향태수 부방이 신야에 2만에 달하는 대군을 모아놨으니 일단 그들과 합세해 전력을 보강한 후 진격하자고 조홍을 설득한다.[12] 생각보다 많은 병력이 형북에 모여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홍은 서둘러 진격하려던 생각을 바꾼다.
그사이 완성을 향해 이동중이던 촉한군은 북동쪽에서 다가오는 조홍의 남하가 워낙에 빠른 탓에 완성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싸워야 할 상황에 놓인다. 본래 이상적인 환경은 완성 남측 신야현의 호수와 부방이 이끄는 조위군 2만을 정리한 후 조홍의 군대와 싸우는 것이나, 기병 대부분을 이미 마초에게 맡겨 완성 구원에 보낸 상황이라 시간이 부족했다. 유비는 원역사에서 호수와 부방이 관우에게 투항했다는 미래 지식을 떠올려 종자경을 시켜서 투항을 권했으나, 두 사람은 의외로 협상에 응하지도 않고 사절을 공격하며 격하게 저항했다.
이에 법정과 방통은 이것대로 써먹을 수 있다면서 그대로 호수와 부방을 치자고 권한다. 물론 정말로 치자는 것이 아니라, 조홍이 천천히 보급을 노리는 전술을 쓸 수 없게끔 위협하자는 용도였다. 유비는 이를 받아들여 보란듯이 신야현을 향해 남하하고, 본디 빠른 결전을 원하던 조홍은 여기에 넘어가 촉한군을 추격한다.[13]
결국 완성 남쪽 신야현 근처에서 조위군 6만과 촉한군 7만여 명이 회전을 벌이게 된다. 촉한군은 중앙에 유비와 관우가 2만 5천, 좌익에 황충이 1만 8천, 우익에 위연이 1만 7천. 각 진영에 기병 5백기에 후방에 장비와 마초가 남은 기병을 지휘했다. 조홍은 중앙의 유비를 잡는 것이 수적으로 열세한 조위군의 승기라 판단, 중앙에 기병 전력을 집중했다.
전투가 시작되자 염행의 경기병이 먼저 출병, 촉한군 중앙의 보군 방어진을 공격했다. 경기병이니 만큼 수레 방벽을 부수기엔 부족했으나, 빠른 치고 빠지기와 화공에 촉한군의 수레 방어가 조금씩 무너졌고 그 흐트러진 방어선을 향해서 조위의 철기들이 돌격을 개시한다. 그러나 유비는 이미 참모들과 삼복전법을 격파할 팔진도 전술을 훈련해 왔던 상태였고 수레에 얹은 특수제작 노 200기가 강철제 화살을 쏘아내자 화살 정도는 맞아도 끄떡없던 조위의 철기들도 철화살에 맞아 낙마했다.[14] 조위군은 지금껏 누구도 정면에서 막지 못했던 철기들이 촉한군 전열에 닿지도 못하고 허망하게 스러지자 경악하고 장합은 이를 보면서 유비군이 철저한 준비를 하고 자신들을 끌어들였음을 깨달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결국 정예 철기를 잃은 조위군은 촉한군과 정면대결을 하게 된다. 중앙에서 조위군 철기들이 붕괴하는 걸 본 방통이 좌우익에 먼저 전진해 공세를 명하는데 조홍이 유비를 잡기 위해 정예병을 거의 중앙에 모아놓았고, 덕분에 조위군의 양익이 촉한군보다 전력이 열세했기에 가능한 전법이었다. 이에 조홍도 열세를 뒤집기 위해 주령을 시켜 보병들을 전진시키고 주령의 보병에 맞서서 관우가 보병을 지휘해 전선을 유지하며 공세를 막아냈다.

그 사이에 방통의 예상대로 정병이 없는 조위군 양익은 촉한군 양익에게 일방적으로 밀렸다. 철기가 없는 조위군 양익 지휘관들은 촉한군의 수레 방어선을 부수기가 쉽지 않았고, 황충과 위연은 조위군을 압도한다. 조홍은 더욱 애가 타 역전하기 위해 중군의 공세를 닦달하나 주령, 염행, 곽회가 기보를 총동원해 두들겨도 관우가 지휘하는 촉한군 중군의 대오는 굳건했고 이대로라면 촉한의 중군이 무너지기 전에 조위군 양익이 먼저 무너질 판이었다. 유일한 해법은 단병전에 강한 무장이 소수 별동대로 전선에 뛰어들어 지휘관인 관우를 베는 것이지만, 관우의 무용은 조위군에도 익히 알려져있는 상황에서 관우와 일대일로 붙는다는 미친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지금 신야에 있는 조위군 내에는 없었다.[15]

그러던 와중 황충이 지휘하던 촉한군 좌익이 조위군을 몰아붙이면서 앞으로 돌출되어 틈이 생긴다. 조홍은 바로 장합을 시켜서 그 돌출된 좌익을 요격하려 했으나... 그 사이로 후방에서 대기하던 장비의 기병대가 튀어나온다. 경악한 장합이 장비를 막으려 했으나 황충이 먼저 강노수들을 움직여 조위군 우익에 일제사격을 퍼부었고 이에 당황한 조위군 우익이 자연히 중군 측으로 몰리며 기병을 몰고 돌격하려던 장합의 진로가 막힌다. 결국 한 타이밍 늦어버린 장합은 장비가 주령의 측면을 요격하는 걸 제때 막지 못했고 수습이라도 해볼 요량으로 장비와 맞서지만 곧이어 마초까지 튀어나오며 수습조차도 어려워졌고 조홍은 패전을 깨닫고 좌절한다.

4.6. 남양 대치

조홍이 이끄는 조위군 6만명이 크게 참패해 퇴각한 사실이 업성까지 전해진다. 조위의 정예철기가 촉한군에 큰 피해도 못주고 대패했단 사실에 조위의 원로인 정욱조차 현실을 부정할 정도로 충격을 받는다. 조조도 보고서를 통해 전황을 이해하고는 감탄하는데 그 와중에도 자기 같으면 직접 좌익을 지휘했을텐데 유비는 이걸 아랫사람에게 떠넘겼다며 애써 유비를 깎아내리려고 한다. 이후 조홍에게 완성을 포위하라고 지시하며 우금에게 5만 병력을 주어 원군으로 삼고 여남태수 만총도 양양으로 파견해 조인과 함께 유비를 압박하게 한다. 이러면 중원과 여남의 군사력이 빈다고 정욱이 우려하지만 원래부터 자국내 반란 세력의 거병을 유도해 쓸어버릴 생각이던 조조는 위의 안을 밀어붙인다.

한편, 양양성의 조인은 3만 군대를 동원해서 당양현에 진을 친 조운과 진도의 2만 군대를 요격한다. 양양의 조위군에 비해서 형남의 촉한군은 상대적으로 약체라 조운과 진도는 수비에 전념하면서 시간을 번다. 동오에서는 유비의 승전 소식을 듣고 손권이 조급해하고 있었는데 여몽이 아직 때가 아니라면서 국력 차이로 유비는 결국 조조에게 밀릴 테고, 그럼 형남의 제갈량이 병력을 이끌고 나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니 그때 치고 나가면 된다며 다시금 손권을 설득해낸다.

이후 남양에 도착한 전예는 남양 호족들을 불러모아 툭 까놓고 "좌장군은 좋은 사람이 맞지만 이대로 있다간 내가 죽을 것 같아서 떠났다."라는 자학성 발언을 하는데 이게 남양 호족들에게 "유비가 덕망이니 뭐니해도 결국 배신자(물론 적극적 배신자는 아니긴 하지만)인 전예는 조조 밑에서 잘 나가니 자신들이 조조에게 힘을 실어주면 조조가 승리하고 편한 출세가 가능하다."는 인식을 심어주었고 거기에 우금이 대군을 이끌고 남양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까지 듣게 되자 호족들은 조조가 여전히 10만 대군을 더 투입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깨닫고 조조 지지로 마음을 굳히게 되고 그 자리에서 전예는 민심 안정책이자 사실상의 본론인 소작료 감면 요청을 은근슬쩍 꺼낸다.

그 결과 조위군은 기존 조홍의 5만에 우금이 끌고 온 원군 5만, 호수, 부방의 형주군 2만, 전예, 만총이 모은 1만, 조인이 보내온 원군 1만까지 합쳐 총 14만의 병력으로 야전을 회피하고 철저히 수비와 보급로 습격만 해대며 촉한군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에 유비는 장비, 관우, 마초를 총동원해 보급로 수비와 경계에도 급급했고, 꿈에서 제갈탄을 볼 정도로 압박감에 시달리던 유비는 결국 한중에 있던 병력 2만까지 끌어온다.

4.7. 촉한군의 고난

완성의 후음은 촉한군이 서쪽으로 후퇴하면서 완전히 포위당해 조홍에게 항복하지 않고 죽겠노라고 다짐한다. 형남의 제갈량은 동오의 배반을 확신하면서도 북상해 유비를 구할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전세가 지지부진해지면서 후방의 민심도 서서히 불안해지는데 경자년에 한 황실이 망하고 호랑이 해와 토끼해 사이에 유비가 익주를 잃는다는 장유의 도참이 퍼질 정도였다. 익주에서 반란을 시도도 못할 정도로 닥닥 털어간 덕에 반란 걱정은 없던 게 다행이었다.

당연히 이는 유비에게도 전해지고 막료들은 장유를 처형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장유를 대예언자로 만들고 싶지 않던 유비는 그를 내버려두기로 한다. 이 때 여름 장마가 한창이었다.

여름 장마가 지나간 뒤 우금이 원군을 끌고 나가 비어있던 허도에서 경기와 위황이 드디어 난을 일으킨다.[16] 경기와 위황은 사병을 끌고 헌제의 궁을 공격했으나, 치려의 필사적인 저항과 둔전중랑장 엄광의 시의적절한 지원이 맞물리며 결국 진압되고 만다.

반란이 진압된 뒤 반란 주동자들은 업성으로 끌려간다. 조조는 마음 같아선 주동자들을 당장 죽이고 싶어하지만, 아직 유비의 군세가 남양에 주둔 중인 시점에서 이들을 죽이면 이 둘이 맞물려 일이 커질까 고민한다. 그런데 경기가 한고조에게 한 황실이 망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느냐고 호소하자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치기 시작한다. 갑작스런 번개에 위나라 관리들이 동요하자 조조는 분노해 주동자들의 즉시 처형을 명령한다. 그와 동시에 부슬비가 내리며 219년 대홍수가 시작된다.

그러나 이 대홍수가 시작되기 전까지 형북의 촉한군은 나날이 몰리고 있었다. 조홍과 장합은 완성에 공성전을 걸었다가 반격이 본격화될 무렵 퇴각하기를 반복해 완성의 기세와 물자 소모를 가속시켰고 촉한군 본대를 마크하고 있던 우금은 호수와 부방의 군대까지 흡수해 병력을 7만까지 늘린 뒤 염행, 곽회의 기병을 적극 지휘하며 끝없이 촉한군을 압박했다. 남쪽에서는 조인이 만총에게 양번을 맡기고 직접 남양까지 들어와 촉한군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 결과 유비는 무당현에서 시작되는 보급선의 방비에만 3만 명의 군사를 배치해야 했고 남은 군대 6만으로 우금을 상대로 버텨야 했지만 수적 열세다보니 그것도 힘들었다.

그렇게 8월이 되자 관우와 장비에 방통, 장임 등 촉한군의 모든 장수와 모사들이 더는 버티기 어렵다 판단해 유비에게 양번을 통해 퇴각할 것을 건의한다. 특히 법정은 강릉의 제갈량이 전군을 몰아서 양양을 압박한다면 퇴각로를 열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에 장마에 대한 확신이 시들해지던 유비도 순간 혹했으나, 완성의 양민들은 촉한군이 없어지면 어떻게 되냐고 물으며 최대한 버티려 한다. 이는 효과적이라 관우는 침통히 고개를 떨궜고, 오직 장임만이 익주 군사들도 가족이 있다며 지금은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돌려서 말할 뿐이었다.

신하들은 퇴각을 촉구하며 엎드려서 나가지 않고, 유비는 이를 악물고 버티던 와중 장완이 눈치없이 화장실 갔다 돌아오면서 유비와 눈이 마주친다. 곧 분위기를 깬 장완에게 험악한 시선이 쏟아지자 장완은 당황해 "가을비가 내리니 퇴각하기 좋다"라는 말을 하며 지금 비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전한다. 이에 놀란 유비가 나가보니 정말로 형북에도 가을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고 드디어 시작된 가을 장마에 환호성을 지르던 유비는 당장 완성을 향해 진군하라 명한다.

그 시기 양주자사를 지내고 있던 온회는 며칠간 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 급히 합비를 찾아온다. 오랜 경험으로 습지대가 많은 형북의 한수와 지류들이 장마철이 되면 강폭과 유량이 몇배로 넓어지고 많아지는 것을 알고 있던 온회는 여름 장마의 물도 거의 안 빠진 판에 가을 장마가 며칠 간 이어지는 것을 보자마자, 지금이라면 강릉의 제갈량이 조인과 수비군이 상당수 빠져서 약해진 양번을 수륙양용으로 칠 수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다. 이러면 아예 새롭게 생긴 물길을 이용하는 것이라 기존에 강릉-양양 수로를 선점하고 지켜오던 문빙조차도 막을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온회는 이 점을 장료에게 설명하며 빨리 합비 주둔군을 움직여서 형주로 가야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통수권자의 명령 없는 군대 이동, 그것도 대오전선 최요충지인 합비를 텅텅 비우는 행동은 의사에 상관없이 반역죄고, 조조의 자비에 일가의 목숨을 맡기는 모험인지라 장료는 고민에 빠진다.

4.8. 대홍수의 시작

한편 업성에서는 조조가 맹덕전에 나온대로 한나라의 신하들을 숙청하기 시작한다.[17] 한나라 신하들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비는 계속 오고 있었지만 대부분이 북방 출신이라 대홍수의 영향력을 모르는 위나라 인사들은 이 홍수가 내포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그저 장졸들이 고생하겠다고만 가볍게 생각한다.[18]

남양의 유비가 움직일 때, 형주 강릉성의 제갈량과 참모들은 홍수로 불어난 수위를 재고 있었다. 장강 강변에 위치한 강릉성에서 형북의 양양성을 수군으로 치려면 한수를 타야 하지만 조위 수군 대장인 문빙이 강릉성의 물길인 하수에서 한수로 통하는 물길을 철저히 막고 있어서 체급도 작은 형주군의 북벌은 늘 불리했다.[19] 강릉에서 한수는 북쪽 육로로 40리 떨어져 있어서 걸어가면 반나절이면 충분한 짧은 거리였으나, 배에게는 너무나 먼 거리였다.

그러나 이번 홍수는 누구도 예상 못한 상황이었다. 곧 형주의 어부들은 한수가 불어난 수위가 평생 본 적도 없을 정도라서 당장 비가 그쳐도 몇 달은 물이 빠지지 않을 것이며, 강릉과의 사이에 새로 만들어진 물길들이 강릉에서 바로 한수로 진입할 수 있을 정도로 깊고 크다고 전해온다. 즉, 문빙의 조위 수군을 상대할 필요도 없게 되는 것이다.

제갈량은 드디어 유비가 말한 때가 왔음을 직감하고, 강릉의 수군을 모두 출격시킨다.

제갈량이 출격하던 그 때, 양번을 지키는 건 여남에서 원군을 데려와 조인에게 양번의 지휘권까지 넘겨받은 여남태수 만총이었다. 만총이 보기에 한중~상용을 타고 흐르는 한수의 특성상 양양까지 내려오려면 먼저 양양 북서 방향에 있는 등현을 지나야 하는데 조인과 우금에게 압박당하는 유비는 양양을 통해 퇴각을 시도할 확률이 높았다. 당연히 만총은 이에 대비해 등현이 위치한 양양 북서방향의 방비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북쪽을 경계하는 조위 수군의 후방 남쪽에서 갑자기 수백 척의 대선들이 나타났다. 남방에서 수군으로 양양성을 치려면 문빙이 지키는 석양성을 지나야 하는데 소리소문 없이 대규모 수군이 양양 뒤에 나타나는 건 말이 안되는 상황이라, 양번 수비군은 잠시 문빙의 수군이 실수로 연락을 못하고 온 게 아닌가 하고 현실을 부정했으나, 곧 이들이 형남군이라는 걸 깨닫고 당장 배를 돌리려 했다.

그러나 엄청난 폭우로 봉화도 북소리도 전해지지 않아 척후들이 직접 성과 함대까지 달려가서 소식을 전해야 했고 그에 따라 조금이라도 늦는다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만총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번성 문루에 나왔다가 수백 척의 형남군 함대를 보게 된다. 코앞까지 다가와 진용이 드러난 형남군은 충파 공격에 특화된 몽충 50척을 앞세워서 양번 수비군을 들이박기 직전이었고 이는 강하군에 있는 문빙의 수군과 양번 수비군을 합쳐도 압도적으로 많은 수였던지라 만총은 급히 명을 내려 북쪽을 경계하던 양번 조위군의 배를 돌리게 한다.

이때 형남군의 병력은 무려 4만 5천에 달해 압도적인 수적 공세로 양번 수비군을 밀어붙였다. 거기다 홍수의 기적을 목도한 병사들의 사기도 매우 높은 상태라 진격도 쾌속이었다.

양번 수비군의 전선 십수척이 몽충에 치여서 전투력을 상실하고, 양양과 번성에서는 자기들 사이에서 아군 함대를 밀어붙이는 형남군을 향해 화살을 쏘아댔으나, 폭우로 인해 상태가 부실한 화살비는 형남군에게 닿지도 않았다. 결국 육지에서의 지원도 답이 없는 상황이라 수도 사기도 밀리는 조위 수군은 계속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만총은 한수 가운데의 작은 섬을 중심으로 수로 방어선을 구축한다. 이 섬에는 보루와 목책을 건설할 수 있고, 강폭이 좁아서 형남군 대함대가 이동하기 불편했다.[20] 수군이 여기서 형남군을 상대로 버티는 사이 만총은 양양성과 번성 성벽에 발석거를 가져와 형남군 전선들을 공격했다.

그렇게 형남군과 양번 수비군의 수륙 전투가 격렬해질 때. 조운과 진도가 5천 병력을 끌고 우회해 전장에 도착한다. 제갈량은 처음부터 교착 상태가 되면 기습할 작정으로 두 장수에게 병력을 나누어둔 상태였고 이들은 한수 강변 측의 조위군 전선을 그대로 들이친다. 만총은 수백척의 대선[21]을 보고, 설마 제갈량이 따로 육상 병력을 준비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지라 허장성세에 당했다며 한탄할 뿐이었다.

한수의 북쪽 번성 측에서는 조운, 남쪽 양양 측에서는 진도, 정면에선 조루, 진봉, 첨안이 수륙 삼면에서 몰아치자 결국 한수의 조위군은 완전히 격파당하고 한수 수로는 온전히 형남군 손에 들어간다.

그나마 남양에 갔던 조인이 폭우로 인해 불길함을 느끼고 급히 복귀해 번성에 합류하면서 번성까지 완전 포위당하는 꼴은 막을 수 있었으나, 양양성은 한수 남쪽에 고립당했고 이미 한수 수로를 빼앗기고 전선들을 모두 잃은 이상 이제 불리한 건 조위군이었다.

4.9. 형세 역전

제갈량이 형남군을 동원해 양번을 떨어뜨리기 직전까지 가면서 남양군의 전황도 역전된다. 남쪽의 조인이 양번 수비를 위해 빠지고, 우금도 열세에 처한 양번을 돕는 게 더 급하지 유비랑 눈치싸움이나 할 때가 아니었다. 이제 전장의 주도권은 완전히 촉한군에게 넘어가 우금군의 선택지는 촉한군이 어떻게 기동하느냐에 달려 사실상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제갈량에게 출병 소식을 들은 촉한군은 이제 적극적으로 공세에 나섰다. 양번의 위기를 모르던 우금은 갑자기 공세를 취하는 유비에 맞서 군을 물려 수비하며 보급로를 노리는 전술을 유지한다. 이때 촉한군의 선택지는 우금이 양번에 못 가게 붙잡을지, 아니면 우금은 가게 두고 완성을 구원하러 갈지의 2가지가 있었다. 이에 유비는 곧 양번으로 달려가야 할 우금을 무시하고, 완성으로 가 조홍군을 격파하고 후음과 백성들을 구하기로 한다.[22] 이는 촉한군의 모토인 인의에도 부합하는지라 제장들도 찬성하고 유비는 여남의 반조조 세력을 봉기시키고자 포원과 습정, 뇌공에게 관인과 고신을 준비할 것을 명한다.[23]

한편 양주자사 온회의 서신이 전해진 업성에서는 난리가 났다. 온회의 서신을 받고 형주의 거미줄같은 물줄기와 변덕스러운 기후를 떠올린 조조와 모사들은 시급히 대책을 생각해야 했는데 조조는 양번 수비군에 경계령을 내리는 동시에 이미 늦었을 가능성을 생각하여 우금에게 어떤 손해를 보더라도 양번으로 가서 아군을 도우라고 전하며 최악의 경우에는 한수 북안의 번성만이라도 지키라고 명령한다.

사마의는 대응하기엔 늦었다고 판단하고 이미 제갈량이 양번의 조위 전선들을 모조리 격파했을 것이 뻔하니, 강하군을 지키는 문빙의 수군을 양번으로 부르자고 건의한다. 화흠이 경악해 제갈량을 쫓자고 강하군을 손권에게 넘겨주자는 말이냐고 반대하지만, 사마의도 이를 알면서 강하군을 포기하더라도 양번을 지켜야 한다고 판단해 의견을 낸 것이다. 어차피 양번이 무너지면 강하의 문빙은 중원과 연결이 끊겨 고립무원의 신세가 되어 유비나 손권에게 항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조는 그랬다간 손권의 욕심이 형남이 아니라 형북과 그 위로 향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수년 간 공들여온 조조의 대계가 전부 무너지기 때문에 이를 기각시킨다.

한편 조조의 명을 받고 비로소 양번의 상황을 깨달은 우금은 유비 견제를 포기하고 번성을 구원하기 위해 진군한다. 우금은 호수와 부방에게 현지병력 2만과 기병을 내주어 후방을 부탁한 뒤 보병을 이끌고 번성을 구원하러 출진하나 도착했을 때 이미 번성은 형남군의 맹공을 받고 있었다. 본래 성 밖에서 포위망 형성을 막으려던 조인은 형남 촉한군의 맹공에 성 안으로 쫓겨와서 간신히 버티는 중이었다. 폭우 때문에 활과 기병을 쓸 수 없는 번성[24]은 난장판이 되었고, 형남 촉한군은 기세가 올라 여러 공성장비로 번성을 쳤다.[25] 홍수 때문에 한수 수로를 빼앗긴 양양성의 병력은 번성을 지원할 수 없어 손가락만 빨고 있었고 활로를 찾기 위해 조인이 장사들을 데리고 직접 출진하나 조운이 그들을 막아서며 사투가 벌어진다.

정말 무너지기 직전인 번성을 보고 경악한 우금은 본래의 계획인 번성 북쪽에 군영을 건설 후 조인과 동시에 협격한다는 작전을 취소하고 곧바로 4만 군세 전부를 몰아서 번성에 합류한다. 본래 척후를 통해 우금의 남하를 알고 있던 제갈량은 어떻게든 우금이 도착하기 전에 번성을 점령하려 했으나, 조인과 만총이 끝까지 버티는 바람에 실패하자 분루를 삼키며 물러난다. 조심성 많은 제갈량답게 우금이 공격할 것도 계산했기에 후퇴도 정교했고, 배도 기병도 없는 우금은 끝까지 쫓지 못한다.

무너지기 직전에 구원받은 번성의 사기는 다시 오르고, 이에 만총도 오늘은 술과 고기를 나누어주며 연회를 열고자 하지만 서기 하나가 급히 수문에서 물이 역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한다. 만총이 이를 확인하러 간 순간, 수문이 터지며 물이 그대로 성안으로 쏟아지기 시작한다.[26] 가까스로 수해를 피해 도망치는 만총은 우금군에게 닥칠 참극을 예상하고 절망하지만 이를 알릴 방도도 없기에 발만 동동 구른다.

한편 물은 번성 북문 앞에 진영공사를 하던 우금군의 진영으로도 밀려오기 시작한다. 대부분 중원 출신이었던 우금군은 과거 위나라 대신들처럼 강이 범람한다는 뜻을 잘 몰랐고, 발목까지 차는 정도니 별 거 아니라고 무시하다가 그대로 휩쓸린다. 얕은 여울 정도라고 생각한 범람하는 강물은 곧 허리까지 찼고 매우 빠르고 강한 유속에 수많은 병졸들이 그대로 빠져서 떠내려가버렸다. 한 번 넘어진 병졸은 그대로 흙탕물 속으로 사라지고, 군마조차 버틸 뿐 도망치지 못하고 울부짖는다.

군의 중에 소식을 듣고 우금이 나왔을 때는 4만의 대군이자 정예에 사기가 높던 우금군은 무기고 자재고 전부 버리고 그나마 높이가 있는 옆의 언덕으로 도망치거나 공사용 목재를 잡고 버티기 위해 서로 밀치는 등 완전히 무너져버린 상태였다. 눈 앞에서 대군이 박살나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금 본인도 멘탈이 박살나 그저 멍하니 서있다가 호주가 그를 잡아끌어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다.[27]

형남 촉한군도 범람에 휘말렸으나 병사들이 형주 출신이라 수영에 능했고, 바로 옆에 수백척의 배가 있기에 금방금방 구조가 진행되어서 피해는 적었다. 그리고 형남 촉한군은 방금전까지 자신들을 잡아먹을 기세였던 우금의 4만 대군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광경을 보게 되었고 이를 보고 누군가가 천벌이라 칭하고 역시 그 광경을 바라보던 마량[28]은 빗소리가 마치 누군가의 목소리처럼 들리게 된다.

4.10. 완성 구원전

한편 오나라 건업에서는 손권과 중신들이 거의 24시간 형북의 전선을 관찰하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본래 형남을 노린 손권은 홍수의 기적으로 유비가 위기를 벗어나자, 잠시 유비를 치는 계획을 접고 조조를 칠까 고민하지만 형남을 오랫동안 갈구한만큼 제갈량과 군대가 다 빠진 형남을 먼저 치기로 결단한다. 그러나 이는 여몽이 반대하는데 형남군이 수로를 타면 강릉에 복귀하기 편하기 때문에 물살을 거슬러야 하는 동오가 기습하기 어려우며 제갈량이 봉화를 수십 개나 설치해 동오를 경계하는 것이 만천하에 알려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전에 말한 것을 바꾼 여몽에게 손권이 격노하자, 여몽은 양번의 조위군이 지난 전투로 많이 상하기는 했으나 우금군이 지원해 수가 8만이 넘으니 제갈량도 대치 이상은 못할 것이니 조금만 기다려 손유동맹의 원군을 명분으로 강릉을 차지하자고 설득한다.

그 때, 전령이 달려와서 한수가 범람해 우금군이 휩쓸려 전멸하고, 양번이 수몰되어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고 보고한다. 불과 한시진 전에 우금이 제갈량을 밀어냈다고 보고받은 손권과 중신들은 믿을 수 없었으나, 전령이 전말을 상세히 설명하자 이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양번의 홍수로 인한 우금군의 전멸 소식은 완성에 있던 촉한군 본대에도 전해졌고 이에 원역사에서 유비의 한중왕 등극을 반대했던 유파와 비시마저 유비가 한고조의 길을 걷고 있음을 인정하고 방통과 관우 역시 천명을 받들것을 요청할 정도로 촉한군 제장들은 고도의 흥분 상태에 놓인다. 이에 유비는 후음부터 구하자는 말로 제장들을 진정시켰고 뻘쭘해하는 제장들을 뒤로 하고 법정이 지금은 잔꾀부릴 필요 없이 한 점 집중 공격으로 뚫자는, 기존 본인의 기조와 정반대의 작전을 제시한다.[29] 그리고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이게 통할 것을 직감한 유비는 관우와 장비에게 이를 실행할 것을 지시한다.[30]

그 시각, 형남 촉한군은 하중도에서 앞으로의 전략을 논한다. 여기서 진도는 양번의 봉쇄도가 낮아지고 있으니 최대한 빨리 우금군을 정리하자는 의견을 제시하고 마량은 저들이 발악하면 피해가 커지니 좀 더 지켜봐야한다는 신중론을 제시한다. 이에 제갈량은 만일 봉쇄도가 낮아진 걸 이용해 조인과 만총이 도망가면 그것이 더 좋으니 일단 양번은 놔두고 우금군의 포위에 집중하자며 마량의 신중론을 따를 것을 결정한다. 그와 동시에 비가 그친 것을 확인한 제갈량은 이제 양번 공략에 시간 제한이 걸렸음을 깨닫고[31] 마침 군사들의 사기도 천명이 우리와 함께 한다며 높아져 있으니 전력을 다해 양번을 공격할 것을 다짐한다.

그 때, 번성 주변 언덕에 갇힌 우금군은 극도로 피폐해졌다. 조리도 못한 생쌀만으로 버티며 흙탕물[32]을 마시니 많은 병사들이 설사를 쏟으며 쓰러지고, 부장인 호주와 동형이 병자들을 그냥 익사하게 버리거나, 다 죽느니 항복하자는 생각을 할 정도로 몰린 상태로 그나마 우금이 통제력을 발휘해 버티고 있었지만 다 끝났다는 건 명확했다. 결국 동형이 항복하자고 건의할 때 우금은 아직 한나라와 위나라의 정체성 중 어디에도 정확히 속하지 못하는 병사들이 이리 황당하게 죽어야 하는가 고민한다.[33]

이들을 감시하는 중인 첨안은 우금군 눈앞에서 고기를 구워먹는 퍼포먼스를 보이면서 깨끗한 물과 고기를 실은 쪽배까지 보내 이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여기에 분노하면서 마음을 정한 우금은 결국 쪽배의 식량을 전부 엎어버리고 부장들과 함께 항복하기 위해 제갈량에게 가기로 한다. 그 뒷모습에 흙탕물 속에 가라앉은 식량을 아까워하던 우금군의 병사들은 우금의 속마음을 일부나마 알아채고 통곡한다.

비슷한 시기 후음이 버티는 완성도 곧 군량이 고갈되기 직전이었다. 다만 이들은 이제와서 항복해도 수천명은 처형당한다는 걸 알았기에 버티고 있을 뿐 사실상 살 수 있다는 희망은 버리고 있었다. 그렇게 밤을 맞은 완성의 인근에 반짝이는 불빛들 수백개가 날아오기 시작한다.

그 불빛의 정체는 촉한군에서 날려보낸 풍등으로 우금군의 전멸 소식과 촉한군이 곧 완성으로 온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물론 이는 조홍군에게 촉한군의 공세를 경고하는 것이나, 유비는 병사들의 사기를 믿고 이 작전을 밀어 붙인다. 촉한군의 작전은 장비, 마초, 황충이 목책을 돌파해 틈을 만들면 관우가 그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 완성으로 들어간다는, 정면에서 힘으로 밀어붙이는 작전이었다. 무모해 보이지만 수행하는 무장들이 오호대장군 중 넷이라 가능한 이 작전을 위해 장비, 마초, 황충이 공세를 개시하고 조홍군은 이에 맞서 장비는 장합이, 마초는 전예가, 황충은 주령이 막아세우며 치열한 접전이 벌어진다. 그 사이 관우는 틈이 만들어질 때까지 대기하고 있었는데 안량을 참할 당시 느꼈던 모든 것이 딱 들어맞는 때가 다시 오기를 바라며 새벽 동이 틀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한편 번성에도 우금의 항복소식이 전해지고 조인군은 일제히 동요하기 시작한다. 이에 한 부장이 차라리 조인이라도 나가서 밖에서 원군을 끌고 오는게 어떻겠냐는 의견을 제시하고 만총이 그러면 양번이 무너지고 황하 남쪽은 전부 유비에게 넘어갈 것이라며 반대하자 다른 부장이 형북은 그렇다 쳐도 설마 다른 주가 다 넘어가겠냐고 이의를 제기한다. 만총은 여남태수로 부임한 경험으로 인해 여남과 서주의 반조조 민심을 알고 있었지만 이것도 일종의 군사기밀이라 대놓고 말은 못하고 애둘러 변죽만 말하는지라 부장들을 납득시키는데는 실패했고 조인의 결단에 의지해야하는 상황에 놓인다. 만총에겐 천만다행히도 조인 역시 특유의 직감으로 번성에서 나가면 안됨을 알고 있었고 자신의 백마를 죽이는 퍼포먼스를 보이며 끝까지 버티겠음을 천명한다.

그동안 완성에서는 새벽 동이 틀 때까지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다. 촉한군의 기세도 매서웠지만 조홍군은 유비가 언젠가 이곳에 올 것이라는 확신하에 철저히 준비를 해둔지라 전선은 무너질 기미가 안 보였고 이에 전선의 변수가 될 수 있는 건 관우의 부대뿐인 상황에서 관평과 요화는 보군과 수레를 앞세운 전예와 주령 쪽을 뚫느니 기병전을 벌이고 있는 장합 쪽을 뚫는게 낫다고 주장한다. 관우 역시 이를 고심하나 그의 감은 자신이 가도 장합이 후위의 예비대를 끌어와 버틸 것으로 보여 계속 고민하던 찰나 마초가 이끄는 병력의 기세가 꺾이기 시작했고 관우는 곧장 그곳으로 돌격을 개시한다. 이에 대해 요화는 옳은 판단이 아니라 보고 관우도 자기의지인지 말의 실수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관우군의 돌격과 동시에 이전 화공의 흔적이던 재가 흩날려 전예군을 덮쳤고 관우는 그 틈을 이용해 전예군을 몰아붙인다. 전예는 기민하게 부대를 움직여서 관우를 막으려하나 움직임이 느려져 관우를 놓치고 만다. 사실 전예군은 이민족을 상대하는데 익숙한데 이민족들은 기세가 꺾이면 그대로 무너지고 이들의 특성을 거의 답습한 서량기병들도 마찬가지의 모습을 보인지라 전예군 병사들도 순간 다 끝났다 여기고 방심하고 만 것이다.[34]

물론 전예도 지장인만큼 곧바로 무너지지는 않고 2선의 보병들을 동원하며 관우를 압살하고자 했다. 상황이 위태함을 깨달은 노련한 군관들은 바로 장창방진을 짰으나 관우는 멈추지 않고 그 사이로 뛰어든다. 이미 밤샘 싸움으로 지쳐버린 병사들이, 여태까지 경험해 본 적 없는 관우의 압도적인 무력[35], 그리고 관우의 뒤를 잇는 마초의 지원 등이 겹치며 전예의 보병방진은 붕괴하고 만다. 후퇴 후 재정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유비군 항장 출신인 전예가 유비군을 상대로 후퇴하면 배반자로 몰리게 된다. 결국 전예는 가솔들과 문생고리들이 잘못되는 거라도 막고자 보여주기 식으로 관우에게 달려들지만 일 합만에 제압당하고 포로로 잡힌다.

관우가 전예군을 갈라버리고 전예도 쓰러뜨리자, 관우의 뒤를 받쳐주던 마초의 부대가 그대로 전예군을 타격해 무너뜨린 뒤 반전해 장비와 싸우는 장합의 측면을 급습한다. 장합은 본래 조홍군의 기병 주력을 지휘하던 만큼 예비대인 유기를 동원해 마초를 막았으나, 수와 지세에서 열세해지자 확연히 밀릴 수밖에 없었다.

전예군을 박살낸 관우는 파죽지세로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 본래 5~6만에 달하고 기병만 1만이 넘던 조홍군이지만, 전방의 장수들에게 기병과 정병을 거의 다 보내준 탓에 이제 완성과 관우 사이에는 5천 명 밖에 남지 않았다. 완성을 수비하는 건 훈련이 거의 되어있지 않은 농민군이었지만, 관우가 완성에 들어가면 관우와 그 부곡들의 지휘를 받게 될 것이니 조홍군은 역포위를 당할 판이었다. 이에 조홍과 함께 후방에 있던 염행이 이제 남은 방법은 관우를 죽이는 것 뿐이라며 출진을 자청해 관우를 막아섰으나 오히려 관우에게 한칼에 베여 죽어버린다. 결국 완성은 관우에 의해 해방된다.

관우가 입성했다는 소식은 장비와 마초, 장합에게도 전해지고 이에 장합이 급히 군사를 물릴 동안 장비와 마초는 완성 해방용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움직인다.

4.11. 봉기의 시작

대홍수로 우금군이 괴멸당하고 우금이 제갈량에게 투항했다는 사실은 호수와 부방에게도 전해지고 적 사이에 완전히 고립됐다는 사실을 깨달은 두 사람은 형주 출신 병사들이 동요하고 있다는 것도 고려해서 제갈량에게 투항하기로 한다.[36] 이 때 2만명 중 혼란 속에서 탈영하거나 촉한군 합류를 거부한 병사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투항한 병력이 수천 규모는 되고 군량과 물자도 거의 가지고 온 덕에 때마침 번성을 칠 계획이었던 형남 촉한군은 이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완성 해방과 우금군의 괴멸, 조홍군의 패배 등 형주 전역에 대한 소문이 천하에 퍼지자 각지에 숨어살던 반조조 세력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당장 진저가 이끄는 대별산맥의 게릴라들이 여남을 벗어나 예주까지 진출, 길비의 문생이라는 이유로 잡혀있던 곽현신을 구해주고 조조의 관리들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들을 죽이려던 찰나 내심 보험을 만들어두려던 곽현신이 이를 제지하며 함께 촉한군 산하로 들어가겠다는 의견을 전하고 관리들도 호응하는데 그 관리들의 이름은 등애와 석포였다.

그 사이 형남 촉한군은 한가지 문제에 대해 고심했는데 바로 군량을 어마어마하게 축내고 있는 우금군 포로 3만명의 처우를 어찌 하냐는 것이었다. 다들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분위기 상으론 몰살이 답이라 말하는 상황에서 서주 대학살의 PTSD가 남아있던 제갈량은 차마 그 분위기를 따를 생각은 못했고 남양에 있는 유비에게 결정을 맡기자고 한다.

4.12. 조조의 백룡 사냥

이 때 촉한군은 완성에 입성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조홍군은 이번의 큰 피해로 이제는 촉한군의 보급로를 칠 수 없을 만큼 밀려나 있었다. 곧 법정과 장수들이 한동안 준비 후에 양번을 취하여 형주를 완벽하게 차지하기로 하는데 그 때 제갈량의 포로 문제 처리 여부를 묻는 서신이 도착하자 당황한다. 황권은 당연히 갱살하라 하고, 방통은 제갈량은 그것도 알아서 못하냐고 화를 내는 지경에 심지어 원역사에선 끝까지 포로들을 먹여 살렸던 관우조차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곧 조조의 수십만 대군이 또 공격해올 텐데 3만명이나 되는 포로를 먹일 여유라고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비는 고심하다 자기도 모르게 포로들을 강릉으로 보내라 명해버리고 스스로 당황한다. 오리지널 유비가 잠깐 튀어나왔나보다

촉한군의 예상대로 조조는 직접 출정을 결정해 낙양까지 내려와 있었다. 조조는 유비가 한고조 전설의 망국의 백사가 아니라 백룡이었다면서 얼마 안 남은 수명을 걸고 유비를 무너뜨리기로 결심한다. 당시 조조가 얼마 안남은 수명을 걸어야 할 정도로 북중국의 조위 정권은 엄청난 위기를 맞고 있었다. 여남과 영천군, 홍농군, 그 외에 셀 수 없이 많은 지역에서 수백 수천명 규모의 반란이 일어나 각 지역간 소식이 끊겨 조조는 지방의 소식을 들을 수조차 없었다. 전령을 보내려면 호위병을 100명씩은 붙여야 하는 상황이나 병사 하나가 아쉬운 지방 태수들에게 이걸 바라는 건 무리였다. 이에 화흠이 믿을 만한 자에게 병력을 붙이면 지방 반란 대부분은 정리 가능할 것이라 조언하자, 조조는 그렇게 병력을 쪼개는 것 자체가 유비와 반란자들의 노림수라면서 지방군은 버티라고만 명령한다.

그리고 조엄, 은서의 장안군, 동남을 지키는 장료, 장패, 하후돈 등의 모든 정병들을 소집하기 시작한다. 만일 서주를 손권에게 내줘도 합비만 지키면 나중에 되찾을 수 있으니 괜찮다는 담 큰 계획이었다.[37] 그리고 손권에게 대장군 직을 내려주면서 손권이 유비를 배신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사한 우금군의 장졸들을 위로하라고 명하나... 정욱은 우금의 병졸들이 죽지 않았다고 보고한다. 무슨 말이냐는 조조에게 정욱은 유비군이 3만이나 되는 우금군 포로들을 강릉으로 보내 살려두었다고 보고하고, 이에 조조는 결국 유비가 그놈의 위선 탓에 패배를 자초했다고 대소한다.[38]

조조는 본래 군대가 모이면 바로 친정할 계획이었으나, 사마의가 전황이 지지부진하면 사기가 떨어진다면서 이를 말리고 우선 동남의 정병을 거느린 장패, 장료를 먼저 투입해 촉한군의 예봉을 꺾자고 권한다. 조조는 이를 받아들였으나, 동남의 정병들이 낙양까지 오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니 우선 관중에서 추가로 군을 징집해 조홍에게 지원해서 유비를 견제할 것을 명한다. 정욱이 최근 연이은 전쟁으로 관중에는 더는 여력이 없다고 하지만, 조조는 항복한 우금군 4만 병졸들의 집에서 강제로 장정들을 징집하라고 명한다. 이는 집안 남자를 전부 빼앗긴 관중 민초들의 삶을 파탄내는 행위였으나, 조조는 유비의 목을 베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로 인해 터질 문제는 그 이후에 생각하기로 한다.

같은 시기 오나라 건업, 조조가 손권에게 대장군 작위를 내렸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동오 조정의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조조에게 한실의 도장이 찍힌 대장군 작위를 받아 정통성을 굳힌 손권은 여몽의 말이 맞았다면서 그를 치하한다. 하지만 유비와 조조의 결전이 양번에서 벌어지게 되면서 제갈량도 함부로 군을 뺄 수 없는 상황임이 확실해지고, 유비와 조조의 목숨을 건 데스매치에서 유비가 이기면 강동 사람들은 평생 중원 조정에 굽신거리며 살아야 한다는, 강동 위기론이 팽배해 있었다. 손권은 합비 공방전 이후로 더욱 강력한 힘을 낼 수 있게 되었음을 실감하며 조조와 유비가 시대를 이끄는 호걸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 내심에는 반드시 한 때 자기보다 밑으로 여겼던 유비를 죽이겠다는 질투와 열등감이 넘쳐흘렀다.

서주 출신인 중신 장소는 조조가 준 대장군 작위가 당장 싸움을 회피하고 후일을 기약하는, 구밀복검의 계략임을 알고 있었으나[39] 강동 사람들의 살벌한 분위기에 입도 뻥긋할 수 없었다. 고옹 같은 강동 토박이들은 유비는 당연히 강릉을 돌려줘야 하며, 오히려 동오에 해를 끼치는 배신자라면서 억지투성이 성토를 해댔다.[40] 손권이 이 민심을 몰아 유비를 치자고 하지만 여몽은 지금 배신했다가 조조가 전력을 다해 유비를 마무리지어버리면 촉이 망해 강동도 위험해지니 아직은 둘의 힘을 더 빼야 한다며 때가 아니라 말렸고, 손권은 여몽의 의견을 받아들인다.

같은 시기 형북에선 유비가 위연과 왕평에게 1만 군사를 내려 완성 수비를 맡기고 8만 군사를 이끌고 양번으로 남하한다. 그 군세가 양번성을 포위한 제갈량과 합류하면서 촉한군 주력 12만 5천명이[41] 양번성 앞에 모인다. 그리고 이는 관우, 장비, 마초, 황충, 조운이라는 오호 대장군과 제갈량, 방통, 법정이라는 유비군 3대 책사들이 모두 모인, 진정한 촉한군의 총력이었다.

4.13. 양번 전투

유비는 물이 빠질 때까지는 직접 양번성을 치기 어려운 관계로 우선 양번 위군을 심리적으로 공격하기로 한다. 그에 따라 유비는 원역사에서 관우가 택했던 양번을 구하러 올 구원병이 패퇴시키는 모습을 보여주는 길을 택한다. 원역사의 관우는 병력 부족으로 실패했지만 지금 양번에는 촉한군의 전력이 모여있어 원역사의 관우보다 더 강력한 상태이기에 선택할 수 있던 전법이었다. 그리고 유비는 미래 지식으로 위군이 양번에 와서 할 작전인 땅굴을 파서 소식 전달하기 작전을 간파하고 이를 알려 제갈량이 미리 대책을 짜게 한다.

그 시간. 관중호군 조엄은 은서를 대장으로 삼은 장안 수비군 5만을 이끌고 완성에서 물러나 재정비 중인 조홍군 5만과 합류한다. 본래는 동남의 하후돈과 장료 등이 관할하는 26군 10만 대군을 기다렸다 진격해야 했으나, 양번이 떨어지기 직전이라 기다릴 시간이 없었던 탓에 곧장 진격을 개시한다.

10만 조위군은 위연과 왕평이 지키는 완성을 피해 육로로 행군해 양양군 언성의 촉한군을 몰아내고 그곳에 1차 주둔한다. 주둔 직후 열린 군사회의에서 조홍은 조인과 양번을 빨리 구하자고 주장하고 대부분의 장수들도 찬성한다. 이때 장합과 곽회는 대치를 유지하며 유리해질 때를 기다리자는 주장을 펴고 싶었으나, 두 번의 대패로 발언권이 없어서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그나마 장합, 곽회와 같은 생각이던 조엄이 나서서 우선 수비전을 위해 참호를 파는 척 하면서 양번에 가까이 가는 땅굴을 판 뒤[42] 이를 통해 양번에 최대한 가까이 접근하여 화살로 서신을 쏘아보내 양번 수성군에게 우군의 도착을 알리자는 작전을 제안해 조홍과 은서의 승인을 받아낸다.

이 작전에 3천의 인력을 투입한 조위군은 며칠의 시간을 들여 양번에 화살이 닿는 거리까지 통하는 수십리짜리 굴을 여러 개 팔 수 있었다. 이에 조홍은 자신의 인수를 찍은 친필서신 여러 장을 활을 잘 쏘는 군관과 정예한 병사들에게 쥐어주고 땅굴로 투입했으나 그들이 5~6리를 기어갔을 때 땅굴에 연기가 들어차기 시작한다.

이는 제갈량의 한 수로 그는 유비에게 위군이 땅굴을 파서 접근할 거라고 듣자 항아리에 물을 채우고 진동을 감지기로 쓰는 방법으로 모든 땅굴을 찾아낸 것이다.[43] 그리고 일부러 그들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안에다 불을 붙여버린 것.

땅굴이 전원 발각되었다는 사실에 당황한 조위군은 봉화를 올려 번성에 연락을 시도하나, 촉한군이 교란용 봉화를 더 올리는 것으로 가볍게 차단된다. 결국 조위군은 조인을 구하려면 싸울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조엄은 차라리 양번을 잃고 조인이 죽더라도 지금은 싸우면 안된다고 생각했으나, 당시 위나라 정국에서 왕족 조인이 죽어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가는 즉결처형 당할 판국이었다. 결국 조엄은 공세를 진행하되 최대한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을 타진하는 선에서 만족해야 했고 조위군은 번성을 구원하기 위한 공세를 시작한다.

한편, 유비 역시 자신의 미래지식을 또 뽑아내 지금 장안에서 온 원군 대부분이 훈련이 제대로 안 된 신병들이라는 사실을 전달하고 그들을 제대로 된 야전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작전을 짤 것을 요청한다.[44] 이에 장비가 오랜만에 전장에서 대놓고 물 탄술을 마시며 전장으로 조위군을 유인한다. 조엄은 유인책이니 넘어가지 말라고 제지하나 은서는 당장 장비의 행태를 보곤 군의 기강이 엉망이 되고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출진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45] 결국 조엄은 척후는 철저히 하라는 조건으로 출진을 허락할 수 밖에 없었고 이에 노초, 여건, 풍해 등이 이끄는 군세가 출진한다.

이때 장비의 병력은 기병 300기 정도였는데, 정말 은서가 코앞까지 오고 나서야 퇴각을 시작한다. 후방에는 황충의 8천 보병들도 있었으나 이를 미리 알고 있던 은서는 숫자로 밀어붙이기 위해 무려 3만 5천의 대군으로 출격했다. 당연히 황충과 장비가 합세해 은서를 막으려 했으나, 은서는 좌우익을 진격시켜 수적 우세로 밀어 붙였고 황충은 곧바로 퇴각을 명한다.

은서가 반격을 우려해 황충을 천천히 추격하자, 이를 본 조홍도 은서를 엄호하기 위해 남은 기병들과 장합, 곽회를 출격시켜서 황충, 장비와 다른 방면의 촉한군이 협력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덕분에 은서는 번성이 있는 한수 강변가까지 도착할 수 있었고, 이를 본 양번의 위군은 드디어 원군이 왔다는 사실에 감격하며 사기를 회복한다.

목적을 달성한 후에도 냉정함이 살아있던 은서는 수적 우세를 살리기 어려운 촉군의 보루를 공격하는 모험을 하지 않고 계획대로 후퇴하려 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신병이 많은 장안군의 움직임이 어긋나기 시작했고 계획대로는커녕 자꾸만 대형이 뒤틀리며 속도가 나지 않자 그제서야 위기감을 느낀 은서는 부장들을 보내서 후퇴를 닦달했다.

그 때 장비의 기병 300기가 이들을 급습해 엉망이 된 장안군의 대형을 휘저었고, 은서는 자신의 호위인 기병 500기를 출격시켜 간신히 장비를 저지한다. 그러나 숨을 돌리기도 전에 황충의 보군이 다시 공격해오자 은서는 한수 강변까지 밀리면서 계속 흩어진 촉군이 어떻게 반격하는 것이냐며 당황하지만, 본래부터 몇 번이나 패배 후 수습된 경험이 많은 유비군에 황충과 법정이란 명지휘관이 있으면 도망가는 척 하다가 재집결 하는건 그닥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황충은 강노수 부대로 은서의 기병들을 방해했고, 기병들이 멈춰버리자 장비의 기병과 황충의 보병들이 장안군을 그대로 덮쳤다. 장안군은 보병전에 이골이 난 촉한군의 공세에 무력히 밀렸으나 반대쪽에는 촉한군의 보루와 홍수로 불어난 한수라서 후퇴할 공간도 없었다. 결국 신병들이 사기를 잃으면서 3만 5천의 조위 장안군은 버티지 못하고 붕괴한다.

번성 위에서 이 광경을 보던 조인과 만총, 수비군도 절망에 빠졌다. 만총은 조위가 신병을 최전선에 우선 투입할 정도로 몰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신병들을 왜 곧바로 적진에 투입했냐며 탄식한다.

5. 동오 참전

5.1. 오나라의 배신

그 시각 오나라 건업에서는 손권과 동오 중신들은 은서의 대군이 처참히 패배했으며, 이로 인해 양양성의 위군이 장수 여상을 죽이고 유비에게 투항 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다. 이는 조인과 만총이 버티는 번성도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라는 소리고 형주의 균형이 무너진다는 의미도 되기에 여몽은 신속히 강릉으로 출병할 것을 권한다.

손권은 여몽을 대도독으로 삼은 뒤 정봉, 주연, 서성, 반장에게 5만 군사를 주어 강릉을 점령할 것을 명하면서[46] 조조에게 서신을 보내 촉한군이 후퇴할 수 없도록 공격해 달라고 요청한다. 동오는 마침내 촉한과의 전쟁에 돌입한다.

여몽은 우선 1만의 군사를 이끌고 육구로 가 편장군 육손과 합류하고 그가 지휘하는 1만의 군사를 합쳐 총합 2만의 군사로 제갈량이 구축한 봉수대를 타격하고자 움직인다.

동오군의 진격을 확인한 봉수대에서는 화급히 소식을 알리고자 했으나 동오군이 물에 젖은 가죽을 장작더미에 던지자 순식간에 무력화되버렸고 동오군은 순조롭게 봉수대를 접수한다.

그러나 제갈량은 유비의 지속적인 경고로 2차 대비를 했는데 바로 일부 노병들이 용 모양의 풍등을 띄우게 해서 소식을 알릴 수 있게 만든 것이었다. 당연히 풍등의 존재를 몰랐던 동오군은 처음엔 그저 주민들이 축제라도 하나보다 싶어 넘겼다가 그 풍등의 개수가 늘어나자 비로소 촉한군에게 들켰음을 깨닫는다.

한편 강릉을 지키고 있던 등지는 병력은 겨우 5천[47]에 불과하지만 이미 유비와 제갈량에게 동오를 경계하라는 말을 들어놓은 상태인데다 과거 임상 대치의 경험으로 우리가 버티면 원군이 온다는 믿음이 있어 제갈량이 준비한 쇠사슬과 쇠막대로 동오군을 막을 준비를 시작한다.

5.2. 공안 전투

여몽과 육손이 이끄는 2만 군세는 파죽지세로 장강을 가로질렀다. 영릉은 남쪽에 동떨어져 있고 무릉에는 병력이 전혀 없어서 싸울 수 없었기에 촉한의 관료들은 도망치거나 항복해야 했고, 여몽도 이들에게는 자비를 베풀어 민심을 다독인다. 그렇게 2만 오군은 남군에 도착한다.

여몽은 우선 장강을 사이로 남동쪽에 있는 공안을 점령하고 강릉을 칠 계획으로 공안으로 나아가고 촉한군은 소형선 60척으로 이를 막아선다. 전력상 열세가 명백한 상황에서 촉한군이 물러서지 않는 것에 육손이 의문을 품지만 여몽은 저들이 유비 충성파라 그러는 것이라 판단하고 몽충들을 출격시킨다. 그러나 등지는 강바닥에 쇠막대들을 촘촘히 세워두며 준비를 완료한 상태였고 이에 발목이 잡힌 몽충들은 하나하나 격파되고 만다. 여몽은 소형선들을 선봉으로 내세우지만 대형을 바꾸는 것에 시간을 잡아먹어야 했고 이에 육손은 촉한이 동오의 배신을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는데 계속 전쟁을 하는 것이 맞는가 의문을 품지만 손권의 분노가 두려워 말을 꺼내지 못했고 여몽은 예상보다 시간이 끌리고 양번에 소식이 전해졌다는 정황까지 보고받자 식은 땀을 흘리며 동요한다.

결국 하루를 꼬박 소비하고도 공안 공략에 실패하자 여몽은 차라리 육로로 진군할까 생각하지만 육상전 준비가 전혀안된 동오군에게 육로 진군은 무리였다. 다행히 쇠막대 설치 위치를 다 외워버린 육손이 선봉을 자처해 쇠막대 지역을 뚫고 진군해 수전에서는 동오에 열세일 수 밖에 없는 촉한군은 황급히 공안성으로 퇴각한다. 육손은 촉한군을 쫓지만 이번에는 장강 양쪽에 세워진 진성에 걸려 있는 쇠사슬이 기다리고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소식을 알리고자 보낸 전령선이 또 쇠막대에 걸려 버리며(...)[48] 육손이 전령선을 구하러 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결국 여몽은 수로 이용을 포기하고 먼저 진성을 점령해 사슬을 빼기 위해 2만의 대군을 거의 총동원하지만, 공성 장비는커녕 사다리조차 없던 탓에 활질밖에 할 게 없었고 진성에 주둔한 300명의 촉한군은 날아오는 화살에 방패로 대응하니 공성전이 지지부진해질 판이었다. 결국 육손은 진성에 집중하지 말고 병력을 빼서 공안의 배를 징발하여 흙과 바위로 속을 채운 뒤 그 무게로 쇠사슬을 끊자는 작전을 제안한다.

여몽이 승인해 육손은 인근을 정찰하지만 촉한군의 청야전술로 인해 조각배 하나도 찾을 수 없었고 결국 기존의 남군 조기점거 전략을 포기하고[49] 제갈량과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고 진언하고, 여몽은 이번 싸움이 어려운 싸움이 됐음을 한탄하며 손권을 통해 조조를 움직일 생각을 한다.

5.3. 위의 반격

그 시각, 업성에서는 여전히 조비의 짜증을 받아내던 위풍이 난을 본격적으로 계획하기 시작하고 같이 일을 꾸미던 장천과 만났다가 그에게서 가후가 건네줬다는 비단주머니를 건네 받는다. 그 안에 든 것은 "윗선은 이미 허위보고 건을 알며, 위풍 일당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니 경거망동 마라" 라는 내용의 서신이었다. 놀란 위풍은 거병을 미루기로 하지만 가후가 왜 자신을 도와주는지 의문을 품는다.

한편, 은서의 패전과 양양의 항복 소식은 낙양에도 전해지고 그곳에 있던 조위 조정 관료들은 모두 좌절한다. 조조마저 천도를 진지하게 논하고 심지어 천자를 유비에게 넘겨줄까라는 생각을 잠시나마 품을 정도로 몰린 상황에서 결국 모두는 다시 한 번 가후에게 이목을 집중한다. 가후는 자신은 자기 안위만 신경쓰고 싶은데 난세가 이리 만들지 않는다고 한탄하면서도 찬탈을 위해 일을 이리 꼬은 조조를 원망한다. 또한 위풍을 통해 만들어둔 굴을 생각하며 일단 동오에 지원 요청을 하라는 답을 내놓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손권의 지원요청 승낙 서신이 도착하며 천도 논의도 쏙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이미 출병할 준비를 갖추고 있던 장료는 조조의 명이 오자마자 즉각 출진하여 완성으로 향하고 거기서 단 1천의 기병만 이끌고 양번으로 질주하여 이전 합비 전투 때처럼 방심하고 있던 촉한군 진영을 덮친다.

진지 공사를 감독하던 오란과 뇌동이 맞섰으나, 오란은 전사하고 뇌동만 퇴각하다가 장비의 지원으로 간신히 살아난다. 장비가 장료와 싸우는 사이 뇌동이 보병을 정비하고, 마초까지 도착해 장료를 포위하려 했다. 그러나 다시 상당한 수의 병력이 도착하는데, 그들은 다름아닌 장패와 청주병이었다.

청주병의 정예함[50]에 계속 싸우면 안된다고 느낀 장비는 일단 군을 물린다. 막 도착한 장패와, 거의 탈진한 장료도 추격을 포기하고 군을 정비하면서 초전은 조위의 승리로 돌아간다.

오란의 전사 소식을 들은 유비는 탄식하지만 곧 조조의 주력군이 오기에 마냥 슬퍼하지 못하고 싸울 채비를 하다 동오의 배신 소식을 듣게 된다. 갑작스레 형성된 양면전선에 책사들이 고민하던 때, 유비가 먼저 제갈량과 진도에게 병력 2만을 내주며 강릉을 구원할 것을 명한다. 군대가 분산된다는 사실에 제갈량이 우려를 표하고 법정 역시 일단 양양 점령에 만족하고 철수해 손권과 싸울 것을 건의하지만, 유비는 그러면 중원의 반조조 인사들이 모두 죽을 것이라며 반대하고 자신의 모든 미래 지식을 동원해 조조를 막아내기로 결심한다.

한편 조조는 박망현에 도달해 하후돈의 26군과 합류한다. 조조가 하북에서 데려온 어림군과 하후돈이 동남에서 최대한 차출한 병력이 합쳐서 10만에 달했다. 이후 급히 남하한 조조는 완성의 촉한군이 후방 교란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진에게 2만 병력을 내어주며 완성을 포위할 것을 명하고 곧장 양번으로 가 조홍의 군세와 합류한다. 앞선 은서의 패전으로 의기소침해진 위군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정욱이 손권의 배신 사실을 촉한군에 알려 그들을 동요시키자는 작전을 제시하고 조조는 조위 군사들이 자신을 경애하는 마음을 품도록 만들기 위해 이를 승낙한다.

유비와 촉한군 장수들은 이미 동오에 대비할 전력을 차출한 후였기에 혼란은 없었으나, 병사들의 분위기가 뒤숭숭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유비는 곧 있을 사령관들의 수명 문제를 알기에 위기감이 심각하진 않았으나, 이를 말하기도 어려워서 그저 소문을 퍼뜨리는 병사들을 처벌하라 지시하고 최대한 맞서보자는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이 때 법정이 조위군의 여론전을 역이용할 계책을 올린다.

잠시 후, 조조는 촉한군이 전선에서 퇴각한다는 보고를 받는다. 모든 병사들이 배에 타서 한수를 건너고, 양양성을 수리한다는 말에 조조는 정욱의 계획대로 유비가 손권을 막기 위해 양양까지로 만족하고 철군한다고 판단하며 정욱을 칭찬한다. 이에 조홍이 후퇴하는 촉한군의 후방을 치는 것을 자원하고, 조조는 허락하는 대신 촉한군의 절반은 돌아가야 동오와 승부가 가능할 테니 그때까지 기다리라고 명한다.

장합, 곽회와 함께 출격한 조홍은 퇴각하느라 어수선한 촉한군의 후방을 장비가 지키는 걸 확인한다. 이에 조홍은 장합이 장비를 붙잡는 사이 곽회가 병주 기병으로 선착장에 대기중인 촉한군을 급습하고, 자신은 보군으로 뒤를 받치기로 한다. 또한 번성에도 전령을 보내서 촉한군이 포위를 풀었으니 나와서 호응해달라고 전한다.

그렇게 장합이 장비를 공격하자, 곽회는 기병대를 이끌고 우회해 촉한군의 후방에 도달했다. 그 때 갑자기 북소리가 울리더니 지면에서 튀어나온 화살비가 곽회의 기병대를 덮친다. 촉한군이 곽회의 우회를 예상하고는 참호를 파고 매복한 것으로, 본래라면 조심성 많은 곽회가 쉽게 속지 않았겠지만 이번 경우는 동오의 배신에 촉한군이 다급하다고 믿은 데다가 홍수로 바뀐 지형을 북방 출신인 곽회가 간파할 수 없었기에 속아넘어간 것. 예상못한 기습에 방심하던 곽회는 호위를 모두 잃고 퇴각하려 했으나 황충에게 저격당해 사망한다.

그러나 곽회가 선봉에 서는 타입이 아니었던 탓에, 아직도 수백의 규모는 됐던 병주 기병들은 기습 당한 것도 모른 채 촉한군을 치러 움직이다가 마찬가지로 매복한 조운의 습격을 받는다. 장창으로 무장한 조운의 공격에 전열이 무너진 병주 기병들은 그제야 곽회가 당했다는 걸 깨달으나, 그 뒤에서 달려오는 조홍군을 보고는 아직 전세가 유리하다 보고, 촉한군과 백병전에 들어가버린다.

장비와 싸우던 장합은 우회한 아군 병주 기병들이 걸으면서 보병과 싸우는 황당한 꼴을 보고는 기함하면서 곽회가 왜 저러나 고민하다가 이윽고 그가 잘못된 것임을 직감한다.

그렇게 조위군 기병의 발이 묶이자 촉한군은 곧바로 관우와 마초를 출격시켜 보병만 남은 조홍군을 분쇄하기 시작한다. 한 방 먹은 조조는 형주를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을 붙잡는 유비에 대한 증오를 다시 한 번 키운다. 유엽이 빨리 원군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나, 가후가 번성과 한수 일대는 완전히 촉한군의 영역이니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된다고 조언하고, 조조는 그에 동의해 장료와 장패에게 기병 2천을 주어 관우와 마초를 막아 조홍을 구원하게 한다.

가후의 예상대로 촉한군은 퇴각하는 척 하면서 일대를 참호로 도배하고 매복한 상태였다. 장료와 장패의 기병 부대만 돌격하자 유비는 조조가 완전히 넘어가진 않았다며 아쉬워하지만 지난 30여년간 전장에서 막무가내로 살아온 사람이 만난다는 전예의 말에 관우와 장료의 대결이 다가옴을 직감한다.

그 와중에 조조는 동오의 사절로 온 여대를 맞이하는데 촉한군이 수로를 막아 동오군이 강릉에 못 가고 있다는 소식에 그 탓에 조홍과 수만 위군이 당하게 생긴 것을 알고는 괜히 대장군직을 줬다며 손권에게 분노한다. 게다가 손권이 조조에게 문빙을 통해 강하를 열어주면 제갈량의 원군을 습격하겠다는 제안을 하자, 여차하면 강하 수로를 꿀꺽하겠다는 손권의 심보에 치를 떨면서도 유비를 물리치려면 감당해야 해 고민에 빠진다.

5.4. 공성지계

조홍이 정신없이 몰리던 한수 주변에 도착한 장료는 일부러 전투 태세를 풀고 관우를 부른다. 조홍군을 역격하던 관우는 과거 서황처럼 친하게 지내던 장료가 인사해오자 창을 내리고 화답하며 대화를 나눈다. 멀리서 한참 싸우느라 바쁘던 마초는 불리한 전력비에서 책사들의 계책이 통해 승기를 잡은 상황에 여유를 부리는 관우에게 황당해하며 직접 끼어들어 대화를 끊고자 했으나, 장패가 끼어드는 바람에 결국 장패와의 싸움에 집중한다.[51]

그렇게 장수들이 전장에서 뒤엉킬 때 배를 타고 거짓 후퇴를 하던 촉한군은 속속 돌아와 상륙하고 있었다. 규모를 속이기 위해 세운 허수아비도 모두 버려 한수는 쓰레기로 더러워지는데 이를 보던 정욱은 번성 주변에 매복한 촉한군을 정리하면 대군을 투입해 촉한군을 격파할 수 있다고 조언하고, 사마의는 공성구와 가축을 동원해 매복병들을 끌어내자고 계책을 올린다. 사마의의 계책에 모두가 감탄할 때, 가후만 무언가를 심각히 고민하고 있었다.

한편, 촉한군은 조조가 매복을 눈치챘음을 깨닫고 매복병을 퇴각시키기 시작했다. 유비의 명으로 황권과 장임이 달려가서 장남, 부융 등의 매복병 지휘관들을 도와 재정비를 진행하는데 이것이 촉한군이 내건 결정적 승부수였다.

그 때 고민하던 가후는 근간부터 이상한 점을 지적한다. 바로 유비가 먼저 조조에게 싸움을 걸었다는 것이다. 촉한군은 최대 12만명 정도인 반면, 조위군의 수는 거의 20만 대군에 육박했다. 수비의 이점을 살리기 위한 참호와 매복이야 그렇다쳐도, 굳이 거짓 후퇴로 위군을 끌어들여 싸움을 유도할 필요는 없었다. 만약 조조가 큰 손해를 각오하고 억지로 밀고 들어오면 촉한군에게는 주력군 소멸이라는 위기가 올 수도 있었던 행동으로, 유비가 원래 인의에 미쳐서 바보짓을 하는 자라고 한들 논리적으로 보면 이상했다.

이에 정욱과 조조마저 자신들이 너무 지난 유비의 행적에 대해 편견에 빠져 있었다며 당황하고, 결국 조조는 유비의 진짜 목표는 번성이라는 것을 깨닫고 고함을 친다.[52]

한편 번성의 조인은 조조의 고함대로 촉한군의 유도에 넘어가 출진을 준비한다. 당장 눈앞에서 조위의 조홍, 장료, 장패, 장합과 촉한의 관우, 장비, 마초, 황충, 조운이 뒤엉켜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고 여력이 남은 조위군 본대에서 가축과 공성구로 숨은 복병들을 위협해 끌어내고 있었으며, 이를 막기 위해 황권과 장임이 달려와 촉한군을 수습하고 있었다.

조조의 본대는 거리가 멀어서 이들을 바로 요격할 수 없었지만 번성에서는 바로 코앞이라 요격이 쉬웠다. 조인 입장에선 당연히 출격해서 촉한군의 발목을 잡는 게 옳아보였고, 만총도 동의하자 조인은 출격을 개시해 가까이에 있던 황권과 장임을 공격한다. 황권과 장임은 놀라지 않고 대응하나 기습 공세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조인의 출격이 확인되자 수로에서 대기중이던 방통은 즉시 나팔을 불어 신호를 보낸다. 번성에 남은 위군이 의아해할 때 남쪽 성벽에서 갑자기 수천명의 촉한군이 나타나 성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이들의 지휘관은 완성에 있던 위연으로, 거짓 퇴각 작전에서 쓴 허수아비를 한수에 버릴 때 그 사이에 숨어서 남쪽 성벽에 접근한 것이다. 조인이 정병을 데리고 나간 번성에는 지친 병력밖에 없었던 탓에 기습한 위연과 촉한군을 막을 수 없었고 뒤늦게 달려온 만총이 반격을 시도하나 위연이 달려들어 일검에 만총을 베어 쓰러뜨린다. 그렇게 만총마저 죽자, 방통이 지휘하는 촉한군 전선에서도 병력이 나와 번성 남쪽을 타고 오르기 시작한다.

조인은 뒤늦게 번성의 위기를 듣고 곧바로 회군한다. 황권과 장임이 붙잡았지만 조인은 촉한군의 선봉인 부융을 참살하고는 포위를 뚫고 번성으로 복귀했다. 남쪽 성벽을 차지한 위연은 번성 내부의 진창 때문에 제대로 기동하지 못했고 조인은 그런 위연을 죽여 성을 되찾고자 한다. 그러나 위연이 고전중인 걸 눈치챈 유비가 가까이에 있던 조운과 황충을 투입했고, 조운이 금방 성 안에 들어와 조인과 일기토를 벌이며 그를 저지한다.

한편 조조는 아직 매복을 걷어내지 못했음에도 억지로라도 번성을 향해 진군하고자 한다. 조홍을 구하러 보낸 장수들도 손해를 보더라도 당장 복귀해 번성으로 출격하라고 명하는 한편, 여대를 불러 문빙에게 강하 수로를 열라고 명할 테니까 빨리 제갈량을 칠 것을 요구한다. 여대가 희희낙락하면서 돌아가자 조조는 이걸로 양번을 되찾더라도 금방 손권에게 빼앗길 가능성이 높음을 알기에 탄식하면서 유비를 원망한다. 그 모습을 보던 가후는 평시의 조조라면 하지 않을 선택을 연달아 하는 것을 보면서 조조의 수명이 생각보다 훨씬 더 짧게 남았음을 깨닫는다.

조인이 오래 버티지 못한다 직감한 조조는 촉한군이 번성을 차지하고 수비진영을 정비할 시간이라도 주지 않고자 허저와 호사, 조휴와 호표기를 우선 출격시킨다. 그러나 유비가 역시 비슷한 판단을 내리고 번성을 대군으로 둘러쌓는 것이 약간 더 빨랐다.

허저와 조휴가 진군하고 있을 동안 번성에서 조인과 대결중이던 조운은 조인이 직접 지휘하지 못하면 번성의 위군이 못 버틴다는 걸 알고 있기에 조인을 진지하게 상대하지 않고 붙잡아만 뒀고, 조인의 예상대로 위군은 촉한군에게 계속 밀렸다. 심지어 방통이 번성 성내에 돗자리를 깔아버리자 이제 진창도 촉한군을 막을 수 없었다.

그래도 허저와 조휴는 피해를 각오하며 억지로 진군해 번성 주변까지 갔으나, 유비는 백이병, 청강병을 출격시켜 그들을 막는다. 파촉의 소수민족인 두 병사들은 후한 황실의 근위병으로 중용될 정도로 강했기에 허저와 조휴는 그들을 뚫지 못했고 황충까지 가세해 화살을 퍼붓자 버티기는커녕 오히려 밀려나기 시작했다. 이를 본 조인은 더 이상 버티는 건 무리임을 눈치채고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 번성 성벽에서 투신 자살한다.

번성이 떨어졌음을 깨달은 조조는 촉한군을 흔들기 위한 마지막 수를 꺼내고자 유비와 설전을 벌인다. 조조는 유비의 저항으로 인해 기껏 자신이 세운 질서가 깨지고 있다 주장하지만 그 조조가 세운 질서의 결과가 5호 16국 시대라는 또다른 난세라는 미래를 아는 유비는 대수롭지 않아한다. 이에 조조는 유비를 흔들 작정으로 자신이 길을 열어주어 동오의 수군이 한수로 진입했다는 정보를 알려준다.

이를 통해 조조는 동오군이 곧 퇴로를 끊을테니 저승에 가서 원소나 만날 준비를 하라며 유비를 비웃지만 유비는 제갈량을 믿고 있기에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천하를 얻으면 군호제를 폐지하겠다며 역으로 으름장을 놓는다.[53] 이에 조조는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채 돌아서고 유비는 곁에 있던 관우를 보며 자신이 역사를 바꿨음을 실감한다.[54]

5.5. 약국 전투

강릉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공안 일대에서 방황하던 동오군은 제갈량의 원군이 오고 있다는 소식에 결국 강릉의 공략을 포기하고 제갈량의 원군을 물리쳐 그에 준하는 효과를 얻기로 결정한다. 여몽과 육손은 직접 육구에 주둔중인 손권에게 허락을 얻어 작전을 진행한다. 유비 역시 이를 예상하지만, 제갈량이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며 어떤 걱정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제갈량과 촉한군 2만명이 강릉에 도착해 등지와 합류한다. 제갈량은 방어전이 가능해진만큼 쇠사슬과 쇠막대를 철거해 교역을 정상화하고, 동오에 사자를 보내 항의 겸 동태를 알아보려 한다. 그 순간, 전령이 들어와서 동오군이 전부 강릉 일대에서 퇴각해 양번 남쪽으로 북상 중이라 보고한다. 석양성이 전투없이 열렸다는 소식에 조조와 손권이 손을 잡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제갈량은 놀라고, 유비가 양번을 함락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마량은 한중의 여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형남에 의지 중인 주력군이 위험해질 것이 분명하다고 걱정한다. 마속 역시 지금 가만히 있어선 안되고 강릉에 위치한 자신들이 출정해 양번의 본대와 동오군을 협공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제갈량을 재촉한다.

북상한 동오군은 5만 전군을 이끌고 양양 남측의 수로 요충지인 약국현을 점령하는데 성공한다. 여몽은 자신들이 강릉에서 양번으로 가는 수로를 막은만큼 양번과 강릉에 있는 촉한군이 머지않아 공격할 것을 확신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수전을 대비했다. 이중 전선인 촉한군이 동원할 수 있는 병력도 한계가 분명하고, 전장 역시 수전이기에 동오 장수들은 승리를 자신한다. 탐욕스러운 반장은 벌써부터 양번과 석양성도 차지하자고 주장할 정도였다.

유비는 동오의 보급로 차단을 전해들으나, 애시당초 여몽이 머지않아 죽는다는 걸 알기에 싸울 필요가 없다는 걸 알고 있어 그냥 기다리라고 명령한다. 제갈량 역시 동오 수군의 사정거리를 피해서 육로로 보급하면서 공격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마속이 의미 없는 행동이라고 불만을 표하나, 제갈량은 조조와 손권이 급하니만큼 곧 복심을 보이리라 확신하며 제장들을 진정시킨다.

두 촉한 지휘관들의 예상대로, 매일매일 촉한군을 기다리던 여몽은 몸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었다.[55] 참다 못한 육손이 지상으로 진군할 것을 주장하지만 여몽은 지상전으론 동오가 이기지 못하는 걸 알기에 거절했고, 결국 12월이 오기도 전에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만다.

병상에 누운 여몽은 제장들을 모아서 후퇴를 명령하려 했으나, 서성과 반장이 순찰중이라 자리에 없었다. 하필 충동적이고 호전적인 용장인 둘이 자리에 없자 여몽은 육손과 정봉, 주연에게만 육손이 지휘해 꼭 퇴각해야 한다는 유언을 끝으로 사망한다.

그렇게 여몽이 눈을 감을 때, 양번의 유비는 동오 특유의 정치구조를 고찰하며 함대를 편성했다.[56] 2만명의 병력과 400척의 함대를 편성한 후 장완과 방덕을 배치하고 기다리기를 잠시, 동오가 육로로 보급로를 공격했다가 진도에게 격퇴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이를 들은 유비는 여몽이 드디어 사망했음을 알고 쾌재를 부르며 한수를 타고 진격한다.

그 시각. 약국현의 동오군은 실제로 격심한 내분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육손과 주연은 여몽의 뜻대로 퇴각하려 하지만, 반장은 지금 전황을 손권에게 고하고 다시 명을 받아야 한다며 퇴각에 반대했다. 심지어 여몽의 유언을 들은 정봉 등의 장수들도 가문은 좋지만 신참이라 별다른 전공이 없던 육손 편을 안 들었다. 육손이 전 대도독 여몽의 유언이라며 따르라고 주장하지만 여몽의 가문에 별 힘이 없다 보니 반대파 장수들에겐 그다지 무섭지 않은 무기였다.[57]

육손과 주연, 반장과 다른 장수들이 살벌하게 마찰하자, 육손은 지금 전투가 벌어지면 절대로 이기지 못함을 직감하면서, 그나마 자신이 여몽이 건재할 때처럼 순찰을 돌리고, 촉한군의 보급선에 습격시도까지 했으니 아직은 괜찮으리라 속단한다. 그러나 전령들이 급히 달려와 유비가 직접 400척의 함대를 몰고 접근중이라고 보고한다.

유비는 장완과 방덕을 부장으로 삼아 한수의 물길을 따라 최고 속도로 남하했다. 제갈량에게도 먼저 싸우고 있을 테니까 준비해서 합류하라고 전한 후 전투를 준비하자 장완은 너무 빨라 후퇴해야 할 경우를 걱정하지만, 유비는 어차피 이기지 못하면 촉한이 무너질 것이라면서 개의치 않는다. 애당초 유비가 친정한 이유도 조심성 많은 장수들이 공세를 늦추어 동오가 정비할 시간을 버는 걸 걱정해서였다. 그렇게 촉한군의 전선들이 약국현의 동오 수군을 습격한다.

상류에서 유비의 습격을 받은 건 마충, 사정, 이이의 부대였다. 유비는 각개격파를 걱정하는 장완을 개의치않고 전군을 동원해 동오군을 공격했다. 이때 방덕은 선봉을 맡아 직접 병력을 데리고 동오군을 학살하며 전선을 뒤흔든다.

유비가 상류의 동오군을 쳤다는 소식에 서성은 우리끼리 싸우지말고 유비부터 잡자고 자리를 파한다. 반장은 결국 육손 주장대로 퇴각했으면 유비가 후방을 찔렀을 거라면서 득의양양했고, 육손이 보기에도 그게 틀린 말은 아니라 결국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육손이 영향력을 잃자 반장과 서성, 송겸 등의 동오 장수들은 자기 휘하의 병력을 이끌고 마충을 두들겨패는 촉한군의 측면을 포위한다.

이를 본 장완은 기겁하며 포위당하기 전에 빠져나가야한다 주장하지만, 유비는 여몽이 없는 이상 오나라의 전술에 한계가 있음을 알기에 계속해서 마충, 사정, 이이만 공격하라고 명한다.

반장은 역포위를 당하면서까지 자신들을 무시하고 먼저 잡힌 세 장수만 박살내는 유비의 집념에 경악한다. 세 호족 장수의 군은 이미 무너져서 방덕이 오면 동오군은 겁먹고 싸우지도 않고 배에서 뛰어내리고 촉한군이 배에다 불까지 지르는 등 개판이 펼쳐졌지만 막상 원군으로 온 장수 어느 누구도 저들을 구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는 촉한군의 기세가 워낙에 사나워 선봉으로 나서면 큰 피해를 입을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호족의 사병을 연합시켜 군대를 편성하는 동오의 특성상 전쟁에서 공을 세워도 사병들이 전멸하면 호족으로선 패배나 다름없었다.[58] 특히 반장 같은 경우 원한관계인 사람이 많다보니 까딱 잘못해 사병들을 많이 잃으면 그날부터 협객들이 찾아올 게 뻔해서 제 목 때문에라도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본래라면 대도독이 후방에서 전황을 파악한 뒤 누군가를 지정해서 선봉에 세우거나, 혹은 열심히 싸운 장수나 피해가 큰 장수에게 상을 몰아줘서 벌충해주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지만, 현 동오군에는 대도독이 없으니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59]

그렇게 마충, 이이, 사정의 선단이 괴멸해가도록 동오군이 움직이지 않자, 장완은 이유를 몰라 황당해하고 유비는 여몽의 죽음을 실토한다. 장완이 어떻게 아신 거냐고 되묻자, 유비는 육손이 사실 자신과 내통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심지어 전군에 이를 알려서 소리치게 한다. 장완은 그럼 아군인 육손이 위험해지지 않겠냐고 걱정하나 유비는 육손이 완전히 아군이 아니라 양다리를 걸쳤으니, 결단을 내리게 해줘야 한다면서 빈말을 늘어놓는다. 당연하지만 육손의 내통은 거짓 정보로, 장차 촉한에 있어 골칫덩이가 될 육손을 제거하기 위한 유비의 한 수였다.

전방의 동오군 장수들이 멈칫하자 대도독을 대행하고 있는 육손은 손권 직계 병력을 끌고 나가려 했는데 손권의 측근인 전유가 이의를 제기한다. 육손이 전유를 설득하는 동안 결국 주연이 앞으로 나가 촉한군을 상대했고 이를 본 반장 등의 다른 장수들도 우회하여 촉한군을 후방에서 포위할 태세를 갖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들 적의 공격은 맞기 싫고, 공은 세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바람에 촉한군의 앞을 막는 전선은 적은데 후방을 공격하려는 전선은 많은 기형적인 진형이 펼쳐진다. 이를 간파한 장완은 촉한군이 주연군을 당장 뚫지 못하고 머뭇거리면 다른 동오의 무장들이 촉한군을 역포위하려 들 것이니 이 때 전진하여 돌파하면 된다고 역설한다. 이 전술은 촉한군은 순류를 타고 있고 동오군은 역류에 맞서고 있다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세밀한 수군 운용에 능력이 없는 유비는 장완에게 지휘권을 위임한다.

촉한군의 움직임을 보고 그들의 속셈을 간파한 육손은 손권 직계군을 이끌고 전진하려 했으나 진군하고 있던 아군 전선에 가로막힌다. 육손의 발이 묶여 있는 동안 촉한군은 장완의 지휘하에 주연이 이끄는 군세를 돌파했고, 그와 동시에 여몽은 이미 죽었고 그 사실을 육손이 촉군에 알려줬다고 외치게 하며 육손에 대한 반간계를 실시한다. 동오군 병사들도 아군의 움직임이 이상한 것을 느끼고 있던지라 여몽이 죽은 것을 직감해 동요했고, 육손 역시 위기에 빠진다. 육손은 이것이 촉한군의 반간계임을 전유에게 말했고 전유도 당장 육손의 배신을 믿지는 않았으나 기밀로 유지했던 여몽의 죽음을 촉한군이 어떻게 알았느냐에 대한 의심은 지우지 못한다. 결국 육손은 육가의 안위를 위해 더는 튀면 안된다고 판단, 촉한군이 외치는 유언비어를 핑계로 손권 직계 병력에 대한 지휘권을 전유에게 위임한다.

전유는 당황하면서도 일단 지휘권을 인수해 곧장 주연을 구원하려 했지만 이미 주연은 수적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대부분의 함선을 잃고 흩어지고 있었다. 주연이 구출한 마충과 사정 또한 추격한 방덕과 보광에게 전사하고, 이이는 촉한군에 투항하며 정면의 동오군은 완전히 붕괴된다.

물론 촉한군 후방에는 우회해서 공격하려고 진군하던 수백척의 동오군이 있었다. 그러나 촉한군이 주연과 마충 등을 격멸하고 뱃머리를 돌리자, 반장과 서성 등은 주연처럼 사병을 날리고 몰락하는 것이 두려워서 진격을 늦춘다. 결국 이들이 또 아까처럼 느릿한 추격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사이 제갈량의 원군이 하류를 지키던 정봉 등의 함대를 밀어내고 당도한다. 육손은 동오군이 각개격파할 기회를 잡고도 각개격파를 당한데다가 이제는 포위마저 당하는 것에 탄식하나, 결국 퇴각해야 할 것 같다는 전유의 의견에 소극적으로 찬성하며 마지막까지 나서지 않는다.

유비는 엉망진창이던 동오군이 철수를 시작하자 손발이 척척 맞는 걸 보면서 황당해한다. 능수능란하게 철수가 시작되어 유비가 이끄는 촉한군은 반격을 우려해 추격하지 못하고, 제갈량 역시 견제만 할 뿐 길을 막지 않았다. 유비는 보급로를 회복한 걸로 만족하기로 하는데, 본대에 합류한 제갈량이 자신이 동오군의 퇴로에 계책을 썼으니 신속히 동오군을 쫓자고 주장한다.

그 계책은 과거 동오군을 막은 쇠말뚝을 다시금 동오군의 퇴로에 박아둔 것이었다. 이후 선두에서 나아가던 전유와 육손의 함선이 쇠말뚝에 걸린 것을 시작으로 오군 전선들이 엉켜버리며 혼란이 빚어졌고 촉한군은 그곳을 그대로 덮치며 완벽한 포위망이 펼쳐지게 된다. 제갈량의 계책에 완벽히 당해버린 동오군은 촉한군의 화공에 그대로 당해버리거나 배를 강가에 대고 육로로 도망치는 등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

후방의 동오군이 사정없이 당하자 전유는 당황해 육손에게 조언을 구하고, 육손은 제갈량도 급했을 것이니 쇠말뚝을 고정시키진 못했을 거라 판단해 강릉에서 시도했던 무거운 소형선을 떠내려보내는 방법으로 길을 연다. 길이 열리자 반장은 공이 한 번은 있어야 책임 추궁을 무마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후방에 남아 촉한군의 추격을 막는다. 유비는 이를 동오군을 괴멸시킬 기회라 보고 아까워했으나, 촉한군의 체력도 다해가고 반장이 살아서 동오로 돌아가는게 분열을 조장하기 더 쉬울 것이라 판단해 추격을 중지한다. 그럼에도 동오군은 200척이 넘는 배를 잃었기에 확실히 대승이라 할 만했다.

유비는 장수들을 치하하고 양번으로 회군하자고 하나, 제갈량이 동오군이 회군하려면 석양성을 지나야 하는데 거기서 반드시 문제가 터질 것이라며 조금 더 남아있자고 조언한다.

제갈량은 이제 촉한과 동오는 원수가 되었으니 석양성과 강하군을 누가 쥐느냐에 따라서 후일 벌어질 전쟁의 유불리가 나뉠 상황이고 동오도 이를 알고 있으니 석양성을 그냥 두고 볼 순 없으리라 설명한다. 즉, 석양성에서 동오와 조위가 충돌하는 건 확정이라는 것이다. 장완 역시 양번에서의 대치보다는 석양성에서의 성과를 통해 조조를 흔들어야 한다고 덧붙였고 유비는 이를 받아들인다.

5.6. 석양 전투

한편 강하군에선 전유가 앞으로의 일을 논하기 위해 군의를 열었고 여기서 반장과 서성은 석양성 공격을 제안한다. 기껏 야심차게 준비한 원정은 수백 척의 전선과 수만의 병력을 잃은 대실패로 끝난 상황에서, 강하라도 확보하지 못하면 차후 유비를 막기엔 버겁기 때문이었다. 자연스레 육손에게도 발언권이 갔지만, 의욕이 꺾인 육손은 전쟁보단 가문을 챙기고 있었기에 그냥 가도 좋고, 석양성을 먹어도 좋다며 중도적 의견만 내놓는다.[60]

결국 동오군은 석양성을 도모하기로 결정하고 약국 전투에서 큰 피해를 본 주연을 앞세워 문빙에게 길을 내달라 요청하고 순조롭게 빠져나가는 척 하다가 맨 후방에 위치한 정봉과 반장이 석양성을 급습하는 작전을 세워 실행에 옮긴다. 주연은 너덜너덜해진 자신의 사병을 보고 비참함을 느끼나 덕분에 경계받지 않고 조위군을 만나 약국 전투의 패배를 알리고 석양성 주변에서 휴식까지 취한다.

이때 촉한군 측에서도 동오가 석양을 먹기 전에 우리가 먹어야하지 않겠냐는 의견을 제갈량과 장완이 제시하지만 유비는 문빙의 능력을 알고 있어 그라면 동오를 한번은 능히 막을 것이라 여기고 그냥 지켜보다가 동오와 문빙의 증오가 극대화 될 때 개입하기로 한다.[61]

그 사이 식수를 공급받은 주연이 빠져나간 뒤 뒤를 따르던 전유와 육손은 문빙이 의심하지 않는 듯 하고 촉한군도 가만히 있자 안심하면서 지나간다. 이후 도착한 반장과 정봉은 석양성 북문의 수비가 허술하다는 것을 깨닫고 밤을 틈타 그쪽을 급습하기로 결정한다. 둘이 석양성 침입에 성공하면 낮에 지나간 본대도 반전해서 들이친다는 작전이었다.

이후 정봉이 5백명의 정예병과 선봉으로 북문에 오른 뒤 반장이 3천의 병력을 데리고 진격하지만 성 안에 들어와 본 것은 요격 태세를 갖춘 문빙과 조위군이었다. 경악한 반장과 정봉에게 문빙은 이유를 알려주며[62] 함정과 화살로 무방비한 동오군을 휩쓴다. 문빙은 동오의 예봉을 미리 꺾어 성이 받는 공세를 줄이기 위해 일부러 이들을 성에 들인 것이다. 이에 동오군은 자신들의 공격을 예상해 빈틈을 만든 것이냐며 빈틈이 없었다면 싸울 일도 없었을거라고 뻔뻔하게 나왔고[63] 이는 당연히 문빙을 빡치게 만든다.

함정에 제대로 걸리기는 했으나, 정봉과 반장은 무용이 뛰어난 인물들이고, 곧 수만 군대가 석양성을 포위할 것을 믿고 정면에서 달려든다. 그리고 머지 않아 동오군 본대가 성문 앞에 당도하며 문빙은 별수 없이 퇴로를 열어줘야 했고 반장과 정봉은 간신히 본대에 합류한다.

이때 약국현에 있던 촉한군에게 조위군이 번성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으나 관우와 제장들이 힘을 합쳐 충분히 막고 있음을 알리는 서신이 도착한다. 비록 양번 포진이 제대로 기능하기는 하지만, 두 성이 직전의 수몰로 인해 상태가 좋지 않으니 촉한군의 고생이 심할 것을 아는 유비는 석양성에서 시간이 끌릴까 조마조마해하는데 이를 안 제갈량이 계책이 있다며 이를 실행하자고 제안한다.

한편, 석양성에서는 며칠간 전투가 이어졌으나 동오군은 쉽사리 성벽을 넘지 못하고 있었고 결국 꾀주머니인 육손에게 기대려 한다. 육손은 지금이라도 물러서는게 옳다는 건 알지만 촉한군의 이간계 탓에 섣불리 의견을 내지 못했고[64] 고심이 깊어질 때 약국현의 촉한군이 갈대로 뗏목을 만들고 불을 붙여 띄워보낸다는 첩보가 전해진다. 이는 연기로 선단의 움직임을 가리려는 수작이었다.

이에 동오군은 촉한군 역시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만장일치로 채택되어 송겸이 감시를 맡았는데 전선 3척이 내려와 확인해보니 이는 약국 전투에서 노획된 주연의 선박으로 내부에는 사람 없이 일부 물자와 병장기만 들어 있었다. 송겸이 배를 조사하자 '조융이 주연을 상대로 취함'이라는 커다란 글자가 쓰여 있었다. 송겸은 양번에 가느라 바쁜 촉한군이 후일의 전공 확인을 위해 전리품을 강릉으로 보내려다가 일부를 흘렸음을 눈치챈다.

이에 송겸은 자신이 그 배를 꿀꺽하고자 병사들에게 이를 비밀로 붙이게 하고 유일한 증거인 촉한군이 새긴 문장도 지워버린다.[65] 그러나 수천명이나 되는 병사들의 입단속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나포 목격자도 많았던 탓에[66] 주연이 곧장 송겸을 심문했고 송겸이 발뺌하며 싸움 직전까지 가자 육손은 골아파한다.

송겸은 이미 빼앗긴 배에 무슨 소유권이 있냐면서 뻗대었고, 분노한 주연이 폭발하기 직전에 서성이 둘을 뜯어말리며 촉의 이간책에 넘어가지 말라고 힐책한다. 물론 송겸과 주연도 이게 이간책인 건 알았으나 이렇게 떠내려온 배에 가문의 흥망이 걸린만큼 자제할 수 없었다. 결국 서성이 주연이 이번에 내려온 배는 포기하는 대신, 3일간 순찰을 서면서 얻는 건 그대로 가지라는 중재안을 내놓는 것으로 갈등이 봉합되긴 했지만 이 아사리판을 지켜본 육손은 차라리 도독끼리 경쟁하던 주유-정보의 이도독 체제가 나았다고 생각하고, 여몽의 죽음을 밀고하고 자신에게 덮어씌운 세작이 누구인지 추리하는 무의미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다음날, 주연은 간절하게 순찰을 돌며 배를 찾았다. 동오군 전체로서는 촉한이 이간책을 그만두고 돌아가는 것이 최선이었지만, 그러면 파산할지도 모르는 주연으로선 촉한군이 또 전리품을 보내면서 자신들을 경계해주는 게 간절했다. 첫날은 허탕이었으나 2,3일차에 전선이 3척씩 떠내려온 덕에 이를 취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피해를 수습할 수 있었다.

주연의 다음은 석양성 전투의 피해를 내세운 반장이었다. 반장 역시 간절히 상류만 바라보던 중 이틀차에 6척의 배가 한번에 내려오자 신을 내며 수습하라고 명한다. 그러나 방심한 반장의 병사들이 두 배의 가운데에 올랐을 때, 배 안에서 방덕과 진도가 이끄는 촉한군이 나타나 창칼을 휘두른다. 방심한 탓에 무력하게 썰리는 사병들을 보면서 반장은 우리를 방심 시키기 위해 배를 3척 씩 묶었냐고 분노하지만, 이와 동시에 갈대 연기 너머에서 촉한군 본대가 북을 울리면서 진격하기 시작한다.

반장은 본대에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저항하나, 공짜 배에 눈이 팔려서 자기 배를 대충 흩어놓은 데다가, 나머지 군사들도 싸울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본대를 지휘하는 제갈량이 반장의 기함을 집중 공격하라 명하자 방덕과 진도가 올라타 덤벼들었고 저항하던 반장은 결국 진도의 창에 찔려 전사한다.

반장이 죽자 반장의 사병들은 모두 흩어져 달아났고 촉한군은 곧장 석양성을 공격 중인 동오군의 본대를 들이친다. 당연히 동오군은 급히 방향을 틀어 촉한군을 상대해야 했고 문빙 역시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들이치면서 동오군은 포위당한 형세에 놓이고 만다. 물론 동오군이 숫적으론 우세했지만 이미 동오군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진 뒤였고 손권 친위군의 손실을 더는 누적시킬 수 없었던 육손의 지휘하에 철수한다.[67]

동오군이 철수한 이후 문빙은 동오군과 피말리는 전쟁을 직전까지 수행한 상황에서 쉴 틈도 없이 곧장 촉한군을 상대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에 놓였음을 알고 어찌 해야할지 고민하나 촉한군에서 문빙과 인연이 있던 괴기를 세객으로 보내 항복을 설득한다. 물론 괴기는 과거 유표의 후계 문제로 유비와 다툰 탓에 유비의 뜻대로 움직여줄 생각은 없었던지라 문빙에게 계속 싸울 것을 종용한다. 이에 문빙이 전황을 묻자, 괴기는 솔직담백하게 자신이 아는 정보를 풀어놓았고 조조가 직접 왔음에도 대치가 이어지고 있음을 안 문빙은 자신에게 원군이 올리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항복을 결심한다.

이때 유비는 제갈량이 왜 하필 괴기를 세객으로 보냈나 불만을 품고 있었는데 그가 바로 문빙에게 현실을 보여줄 유용한 패라는 설명을 들을 찰나 문빙의 항복 소식을 접한다. 이때 문빙이 자살할 작정임을 간파한 제갈량이 먼저 나서 조조는 당장 그대의 식솔을 해하지 않을 것이니 시간을 준다면 그들을 구할 방도를 찾겠다 설득해 문빙을 심복시키고 그렇게 문빙의 수군까지 합류한 촉한군은 유비가 일을 맡긴 제갈량을 제외하곤 다시 양번으로 향한다.

5.7. 동오의 항복: 오하아몽

한편 패전 소식을 접한 손권은 멘붕하여 현실 부정을 하지만 파촉 사람들에게 눌리는 꼴은 보고 싶지 않던 오나라 명사호족들이 달래준 덕에 다시 기운을 차린다. 고옹이 앞장서서 유수구의 정병을 하구로 빼서 대촉 방위를 하자는 등 뒷수습에 나서나 대도독 문제 등으로 시간이 걸렸다.

그때 손권은 갑작스레 울면서 노숙을 그리워하고 여몽을 비난한다. 노숙의 유비 우호노선을 여몽이 대도독이 되어 전횡하면서 망쳐놓아 일이 이 지경이 되었다는 것이다.[68] 손권은 제갈근을 촉한에 사신으로 보내 이번 전쟁을 여몽의 독단일 뿐이니 한 번만 봐달라고 빌라며 외교 정상화를 꾀하고, 내정으로는 여몽의 가족을 가두어 유비에게 보내기로 하고, 가산을 적몰하는 등 토사구팽을 진행한다. 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장소는 반대하려 하나 고옹이 붙잡는 바람에 말하지 못한다. 회의가 끝나고 장소가 고옹에게 왜 막냐고 따지자, 고옹은 강동을 위해 예주 출신 외지인인 여몽이 명예를 잃는 게 무엇이 문제냐고 반론한다. 장소가 죽은 여몽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 가족마저 화를 당하게 생겼다고 되묻자, 유비는 자신의 신조 탓에 여몽의 일가를 해치지 못할 것이고 만일 죽인다면 그걸 빌미삼아 강동이 단합하면 그만이라고 답변한다.

이는 서주 출신으로서 역시 외지인인 장소의 어이를 털어버렸고 장소와 제갈근도 강동의 외지인 서주 출신이란 걸 뒤늦게 떠올린 고옹이 서주는 강동과 한가족이라고 해명하나, 장소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답변조차 하지 않는다.[69]

이렇게 대장군부의 합의하에 여몽을 일방적인 전범으로 몰아넣고, 손권이 유비를 촉한왕 전하라고 공식적으로 존칭하면서 촉한-동오의 형주 전선은 동오의 패배 인정과 유비의 승리로 마무리 된다.

6. 다시 촉-위 전선

6.1. 번성 대치

동오가 철수하고 석양성이 항복하던 220년 봄. 조위의 20만 대군은 수적 우위에 기반한 번성 포위 공격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으나, 촉한군이 양양성과 연계해 방어에만 집중하니 별 성과가 없었다. 겨울을 전장에서 보낸 조조의 건강은 심각히 악화되었고, 한수 이남의 전황도 잘 알려지지 않은 데다 간간이 얻는 정보도 동오가 후퇴한다느니 하는 안 좋은 소문들뿐이라 조조의 불안감만 더해왔다. 그러던 중 강하군 방면에서 문빙의 선단이 올라오는 것이 보고 되고, 조조는 문빙이 해냈다는 생각에 기뻐하지만 문빙군이 그대로 촉한군에 합류하는 걸 보고는 석양성마저 떨어진 걸 깨닫고 충격으로 쓰러진다.

동오군을 격파하고 양번에 돌아온 유비는 양양의 병력을 번성으로 증원하며 결전을 준비한다. 그리고 3만 병력을 데리고 직접 전장을 둘러보겠다고 한 후 나아가자 조조는 촉한의 사기를 올리지 않기 위해 병상에서 일어나 4만 병력으로 대치한다. 당연히 조조와 직접 싸울 생각이 없는 유비는 조조가 내보내는 호표기에 후퇴하면서 병호제를 폐지하겠다는 발언을 조위 전군에 들리게 크게 외친다. 이를 들은 조조는 자신도 병호제가 좋지 않은 것임을 알지만 천하를 안정시키기 위해 필요한 필요악이라 어쩔 수 없이 유지 중인 건데, 유비가 사욕으로 자신의 대계를 망친다고 생각하며 분노로 기운을 차리며 자신이 옳다고 확신한다.

유비의 참모들도 이 도발이 조조에게 통할지 의심하나, 조조의 수명을 아는 유비는 원역사에서도 조조가 죽고 청주병들이 대거 이탈했음을 떠올리며 조조의 공백기에 혼란을 부추기는 이 계책이 통할 것을 믿는다. 그리고 복귀한 유비에게 제갈량이 강릉에 있던 위군 포로들을 데리고 돌아오자 유비는 이 포로들을 조위군 본대에 돌려보내주기로 한다. 제갈량은 그러면 적군만 늘게 된다고 경악하지만, 유비는 저들이 청주병들에게 일종의 증표가 되어줄 것이라며 계획을 밀어붙인다.

그렇게 조금씩 나눈 조위군 포로들을 돌려보내던 와중, 갑자기 조위군이 전부 번성을 향해 몰려온다. 20만의 대군이 일거에 진군하자 촉한군은 당혹하는데, 법정이 저들이 이리 대책없이 진군해서 싸울 것 같지는 않다며 일단 지켜보자고 한다. 그렇게 번성 앞에 온 조위군의 앞에 조조가 호표기를 이끌고 직접 나서서 군사들을 둘러보는 일종의 사열식을 진행한다. 왕이 직접 앞에 나서서 자신들을 독려하자 조위의 병사들은 흥분해서 환성을 지른다.

20만명의 함성이 번성까지 울리자, 법정은 저 사열식이 조조가 유비의 의도를 눈치채고 응답하는 것이라며 포로송환 같은 잔재주로는 조조의 통제력을 흔들지 못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대놓고 자신들을 겁박하는 조조를 장비가 치려고 했으나 호표기가 번성을 견제하고 있는 상황에선 불가능했다.

이렇게 대놓고 농락을 당함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유비와 제장들도 이를 갈 수 밖에 없었으나, 유비는 우연히 조조의 행동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되고 조조와 군사들이 물러나자 유비는 웃으면서 포로는 마저 돌려보내고 전투를 준비하라고 명한다.

갑작스런 전투 준비 지시에 법정이 무언가 보셨냐고 묻자, 유비는 방금 조조가 병사들에게 손을 흔들며 화답한 것을 지적한다. 본래 조조는 위급할수록 군율을 중시하는데, 방금은 대열을 무너뜨리고 달려온 병졸들에게 웃음을 보이고 직접 손을 맞잡는 등 군율과는 거리가 먼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평소의 조조라면 실수로라도 절대 하지 않을 일이었다.

관우와 장비 등의 고참들도 긴가민가 했지만, 사실 유비에게는 미래 지식에 기반한 근거가 하나 더 있었다. 원역사의 조조는 비슷한 상황에서 오히려 달려나오지 않은 서황군을 칭찬했고, 간접적으로 다른 장수들을 면박해서 병사들을 괴롭혔었던 행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훨씬 더 위태한 상황인데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것부터가 조위군의 결속력에 금이 간다는 신호였다.

한편 조조는 자기 군영에서 쉬면서 이유없이 상태가 좋아진 몸에 회광반조가 아닌가 판단한다. 처음에는 스스로 부정했지만, 자신의 상태가 회광반조임을 내심 확신한 조조는 이제 정욱과 극소수 측근을 따로 불러 지휘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정욱을 불러 유비가 또 포로를 보냈느냐 묻는다. 정욱은 계속 보내고 있지만 조조가 건재하니 문제없다면서 안심시키고 나간다. 그리고 조조는 유비가 자신의 의도에 넘어가지 않았음을 깨닫고 원래의 유비라면 자신이 이러면 바로 포로 송환을 멈췄을 것이라며, 유비가 자신의 상태를 알고 있는 것인가 의심하면서 속이 타들어가는 걸 느낀다.

6.2. 결전

20만 전군을 동원한 사열식 이후, 가후는 최근 조조가 최고참 심복과 친족들을 제외한 어느 누구의 접견도 거부하는 것을 보고 의구심을 품는다. 그리고 잠시 후, 하후돈이 직접 조조의 칩거 사실을 알리고 정욱이 이제는 퇴각해야 함을 알리자 비로소 조조의 신변에 이상이 생김을 확신한다.

조위군 제장들이 의심하는 동시에 정욱과 하후돈은 철군하면서 형북의 백성들 역시 이주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한다. 화흠은 석달을 달라 요청하지만 하후돈은 위왕의 명이라며 20일 이내에 완료하라고 일축한다. 유엽이 민심을 완전히 잃는다며 반대하지만 하후돈은 유비에게 호응하는 자들은 부역자로 토벌하면 그만이라며 그 주장을 일축하고 화흠 등은 서주의 일이 여기서도 반복된다며 속으로 탄식한다.

대규모 이주를 강행하기 위해 조위군은 남양군의 농지를 불사르고 저항하는 농민들은 사살하기 시작한다. 이 광경은 완성에서도 훤히 보였고 후음은 저들을 구해야한다고 왕평에게 요청하지만, 위연이 빠진 이후로 성안의 군사들 중 조위군의 기병과 싸울 수 있는 정병이 없던 탓에 분루만 삼킬 뿐이었다.

조위군이 급하게 철군을 준비하고 그 과정서 남양의 백성들을 도륙하고 있다는 사실은 촉한군 본대에도 전해지고 유비는 조조의 수명이 진짜 얼마 안 남았음을 직감하면서도 피해를 보는 남양군의 백성들을 걱정한다. 당연히 관우는 단단히 열받아 백성들을 구해야한다 주장하고 제갈량 역시 백성들을 구하면 남양 재건에 도움이 된다며 출병에 찬성하자 유비는 망설임 없이 출병을 명한다.

그런데 조위군 본대가 남양군에 들어서자 지금껏 칩거하고 있던 조조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고 이를 본 가후는 조조의 심계를 간파한다. 조조는 자신이 죽더라도 친히 유비를 베기 위해, 그를 전장에 끌어내고자 남양군 백성들을 급히 이주시키는 계획을 짰던 것이다. 조조는 제장들의 앞에서 더 많은 병력을 강제이주에 투입하라 명하고, 그렇게 유비의 휘하 제장들도 분산되면 자신이 직접 나서 유비를 베겠다고 선언한다.

한편, 촉한군 모사들 역시 설령 조위가 양번을 되찾지 못하더라도 남양에서 촉한군의 기세를 꺾는다면 화북과 중원을 유지하기는 수월해지기 때문에 조조가 어떻게 움직일지는 짐작하고 있었다. 유비 역시 한 달만 기다리면 조조가 죽는 건 확실해진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에게서 유래한 촉한의 기풍 상 남양 민초들을 외면할 수는 없었고 결국 출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방통이 굳이 급하게 요격할 필요 없이 남양의 각 요지에 군사만 보내도 위군은 겁먹어 물러날 것이라 조언하고, 황권이 익주군과 호수, 부방, 문빙군을 앞세워서 진군하겠다고 한다. 황권의 전황을 읽는 능력은 확실했기에 유비는 황권에게 남양 민초들을 구하는 일을 맡기고 오호대장군과 주요 모사들은 곁에 둔다.

조위의 군영에서도 조조가 친정하는 마지막 회전을 두고 긴장 상태였다. 가후는 그간 보아온 바에 따라 유비의 모사들이 이번 계책에 절대 속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정욱은 평야에서는 유비를 포위할 병법을 쓸 수 없다고 걱정한다. 그러나 조조는 직접 청주병과 호표기 등을 지휘해 유비만 죽이면 된다면서 자신의 결정을 철회하지 않았다. 결국 조위는 최정예 3만 병력을 준비하고 조조가 이들을 직접 지휘해 유비를 상대하기로 한다. 그 와중에 가후는 이제 조조의 수명이 다했으며, 설령 이번 전투에서 조조가 이기더라도 유비는 살아서 도망가기만 해도 전쟁을 이기는 판이니 결과는 모른다며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고민한다.

이윽고 익주군과 호수, 부방, 문빙의 병력이 남양에 들어오자 황권의 예상대로 각개격파를 우려한 위군은 급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를 본 완성의 왕평은 수적으로 부족한 아군이 분산되는 걸 우려하나, 곧 결전이 벌어질 것을 직감하고 후음과 같이 피난하는 농민들을 구하는 일에 집중한다.

마침내 남양의 평야에 주둔한 유비의 본영을 향해 조조가 하후돈, 조홍, 허저, 장료, 장합이라는 쟁쟁한 무장들과 3만 병마를 몰고 달려오기 시작한다. 유비 본영의 병력도 오호대장군이 모두 포함된 3만 명으로, 양측 모두 철저히 준비된 정병들이 집결하면서 유비와 조조의 최후의 결전이 시작된다.

결전을 앞두고 유비와 조조는 마지막 설전을 벌이는데 역시나 서로의 가치관 차이만 확인한다. 유비조차도 돌격 시간을 위한 겉치레로 설전이 끝나자 오호대장 중 관우, 장비, 황충, 마초 4인방을 선봉으로 선제 공격을 감행한다. 이에 분노한 조조도[70] 장료와 허저를 선봉에 세우고 조휴, 조진, 장합이 뒤를 받치게 하지만 아무래도 촉한 무장들의 이름값에 비하면 밀릴 수 밖에 없기에 이미 죽고 없는 조인, 하후연, 악진, 서황을 그리워하는 한편, 선봉에서 달려드는 관우를 보며 관도대전 때 저놈을 괜히 살려보냈다고 후회한다.

촉한군의 최선봉으로 나선 관우는 남양의 학살로 눈이 뒤집힌 상태에서 허저와 충돌하고 조진은 우회하여 하후연과 곽회의 원수를 갚고자 황충과 충돌한다. 조진은 철기를 지휘해 황충의 강노수 부대를 잡으려 했으나,[71] 황충이 선봉의 철기를 두 번 연속으로 적중시키자 경악해 속도를 크게 늦추고, 그 사이에 황충의 보병들이 모여서 방어를 준비하면서 기병 돌격은 무위로 돌아간다.

그 외에 장료 역시 장비에게 붙들리면서 전황은 순식간에 팽팽해지고 가후는 굳이 수를 맞춰 3만의 병력으로 정면 승부를 한 게 패착이라고 판단하면서도 그래도 방법이 없지는 않다며 마초를 상대로 쓸만한 전법이 있다고 이야기를 꺼낸다.

잠시 후 마초를 향해 경보병 부대가 전진하기 시작한다. 가후가 제시한 전법은 바로 트라우마 자극으로 동관대전에서 경보병에게 발목이 잡힌 사이 조조군 기병의 반격으로 무너진 마초의 과거를 상기하도록 당시의 경보병을 선봉에 세운 것이다. 당연히 패전의 트라우마가 떠오른 마초가 흔들리자 장합이 놓치지 않고 철기로 들이치면서 마초는 위기에 몰린다. 그렇게 촉한군의 한 축이 사실상 무력화되자 조조는 유비가 마초를 구하기 위해 예비대를 분산할 것을 확신하고 장패를 보내 유비에 대한 일격을 시도한다.

마초가 밀리는 것은 유비군 본대에도 포착됐고 당연히 조조가 무엇을 노리는지도 모사들이 간파하지만 유비는 원역사의 유비라도 마초를 구하는 길을 택했을 것이라며 같은 서량 출신으로서 마초와 호흡을 많이 맞춰본 방덕에게 마초를 구원하라고 명한다.

그런데 방덕이 움직이자 장패는 방덕의 측면을 향해 돌격할 태세를 취했다가 방덕이 놀라 멈추면 물러나기를 반복하며 방덕을 막는다. 방덕의 병력은 어디까지나 보충용 원병이라서 청주병을 견제하면서 마초한테 갈 여유가 없었다. 유비와 모사들은 이것이 유비를 노리는 의도를 숨기는 위장임은 알았으나, 이런 기동이 가능한 장패와 청주병의 실력 앞에서는 딱히 답이 없었다.

그러나 그때, 유비가 직접 일군을 몰아 마초에게 가겠다고 주장한다. 이에 놀라서 말리는 모사들에게 유비는 조조가 노리는 건 자신인데 그 말은 조위군이 자신에게 끌려다닐 수 밖에 없다는 말도 된다며 자신이 직접 움직이는 것이 옳다 답하고, 곁에 있는 조운과 진도, 위연에 모사들까지 데리고 움직인다.

방덕을 견제하면서 유비를 칠 기회를 노리던 장패는 유비가 이리 과감하게 움직일 줄은 몰랐기에 당황한다. 조조가 장패에게 자율권을 주었다지만, 유비만은 무조건 죽여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무시할 수 없었고 혹여 유비가 마초를 구하면 방덕을 상대로 시간만 낭비한 꼴이었기에 고민하던 장패는 이를 갈며 유비의 본대를 추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장패가 재빨리 움직인 덕에 유비 본대의 후미에 따라붙었으나 그쪽에서 진도가 이끄는 백이, 청강병이 달려나온다. 촉한 최고의 정예보병이면서 숙장인 진도가 이끄는 백이와 청강병은 청주병에게도 어려운 상대였고, 장패가 속았다는 걸 깨달았을 때 방덕이 유비를 쫓느라 드러난 청주병의 후미를 습격하면서 장패와 청주병은 완전히 발이 묶이고 만다.

유비가 장패를 저지하고 있을 때 장비와 장료는 여전히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이어가고 있었다. 오란을 구해주지 못했던 기억을 마음에 담고 있던 장비는 경기병으로 장료를 끈질기게 쫓았고, 장료는 장료대로 전투가 한참인데 싸우기는커녕 도망만 치는 것에 자존심이 상해서 장비를 떨쳐내기 위해 온갖 화려한 기동을 선보인 끝에 드디어 거리를 벌린다. 장료는 그대로 속도를 높여 장비를 완전히 떨쳐내려 하나, 정작 장비는 장료가 멀리 떨어지자 미련없이 마초를 도우러 반전한다. 자신이 장비에게 농락당한 걸 깨달은 장료는 분노해 장비를 쫓으려 하나, 부장들이 허저가 위험하다고 소리친다.

각자 호사와 부곡들을 총동원한 허저와 관우의 일기토는 이제 관우 측으로 크게 기울고 있었다. 둘의 무예는 백중세이나 경험의 차이가 승부를 갈랐는데, 강적을 상대한 경험이 많은 관우에 비해서 오랫동안 호위만 전담한 허저가 강적인 관우를 상대한다고 초전부터 힘을 너무 쏟은 나머지 체력이 빠진 것이다. 허저의 발언에 대노한 것으로 보이던 관우는 오히려 냉정하게 힘을 아꼈고, 허저의 체력이 다하자 곧바로 반격해 압도했다. 허저의 패배가 확실해보이자 관우의 부곡들과 견제하던 호사들이 구하기 위해 달려드나, 관우는 무시하고 허저에게만 집중해 쓰러뜨린다.

허저가 죽었으나 이는 호사들의 복수심을 불태웠고[72] 관우는 호사들의 공세에 죽을 뻔 했다가 관평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난다. 그러나 대장이 죽었어도 전투를 이어가는 호사들의 굳건함에 관우의 부곡병이 당황하는 사이 장료가 난입하며 관우쪽 전선은 난전이 시작된다.

마초와 관우가 동시에 밀리는 상황에서 유비는 어디를 지원할지 고심하는데 법정과 방통은 마초 쪽은 장비가 갔고 관우라면 어떻게든 버틸 것이니 차라리 황충을 지원해 조조를 그쪽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주장했고 유비는 이를 받아들여 황충에게로 향한다. 조조는 유비가 스스로 본대를 움직여 전선에 달려오자 감탄하며 자신 역시 움직여야 한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관우와 유비 측 중 어디로 가느냐가 문제였는데, 단순히 전투만 생각한다면 당장 장료를 도와 관우를 끝장내는 게 쉽지만 조조의 목표는 파촉왕 유비를 죽여 조위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조조는 승산 높은 관우가 아니라 유비를 추격한다. 가후는 조조가 유비에 집착하는 걸 보고는 수명이 다해감을 눈치채고는 이제 조조의 실력에 따라 결과가 나온다면서 예측을 그만둔다.

한편, 장비는 마초를 도와 장합의 뒤를 받쳐 마초를 포위하려던 조홍을 견제한다. 정예 철기를 전방에 보낸 조홍은 장합이 전방에서 마초를 누르고 있는 사이 보병을 전진시켜 마초를 확실히 압살하고자 했으나 장비가 개입하자 그러지 못하고 장비 견제에만 집중해야 했다. 그렇게 대치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장비가 장료를 풀어놓는 바람에 관우가 위험해졌다고 생각한 부장이 관우를 구해야 한다고 의견을 내나, 장비는 의형을 믿고 조홍과의 전투에 집중한다.

그때 호표기를 지휘하는 조진은 사력을 다해 싸웠음에도 기선을 제압한 황충을 무너뜨리기는커녕 더는 진형 유지도 어렵던 차였다. 그런 상황에서 유비가 도착하면서 황충이 보병들을 전진시키자 조진은 퇴각을 결정하지만 타이밍 좋게 조조의 본대가 도착하면서 최악의 상황은 피했고 조진과 합류한 조조는 은서와 풍해를 앞세워 직접 유비를 치기 시작한다.

그 시간에 관우군은 거의 패주하고 있었다. 허저의 호사들도 대장이 죽어도 전장에 남아 버티는데, 장료의 기병대까지 가세하자 불리해진 전황에 익주 군사들 상당수가 도망쳤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익숙했던 관우는 전혀 기죽지 않고 원진을 짜서 전장에서 버티기에 돌입한다. 일찍이 관우를 따라 많은 전장을 겪어온 부곡들과 도망가지 않고 남은 익주 장병들은 이에 합세하는데 병사들이 보기에도 관우 측만 밀리고 있지, 다른 쪽은 이기고 있거나 최소 호각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겁먹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를 본 장료는 호사와 기병을 총동원해도 관우를 잡으려면 한참은 더 걸린다고 알았지만, 여기까지 와서 관우를 두고 갔다가 관우가 병력을 수습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그럴 수도 없었다.

관우가 버티기에 들어간 그때, 유비를 따라온 조조는 본대의 은서와 풍해를 시켜 유비군의 양익을 공격해 밀어붙인다. 둘은 오자양장보단 못해도 충분히 선봉장의 자질이 뛰어난 이들이기에 이들이 맹공을 퍼붓자 촉한군은 점차 밀리기 시작해 유비가 조운이나 위연을 시켜 수비할까 했으나 모사들은 지금 조운과 위연을 측면으로 돌렸다가는 조조가 유비를 직공할테니 지금은 현장의 촉한군 스스로 견뎌야 한다면서 만류한다.

유비 본대가 조조 본대와 본격적으로 충돌하던 그 시간, 조홍과 장비의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정병도 없는데다 기습당한 입장인 조홍은 장비의 치고빠지기에 무너지고 있었지만, 장합과 장료가 마초와 관우를 잡을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면서 최전선에서 대도를 휘두르며 버텼다. 다른 두 장수들이 위험해진 상황에서 생각보다 뚝심 있게 버티는 조홍을 본 장비의 부곡들은 마음이 급해져 장비를 재촉했지만, 장비는 개의치 않고 계속 유격전을 벌였다.

그리고 장비가 믿은 것처럼 관우 전선의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관우군이 친 원진을 포위한 장료는 공격을 준비하며 군을 재편하는데 이런 상황에 익숙치 않은 호사들을 재편하는데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 체력을 회복한 관우는 한 번 크게 웃고 나서 기병 100명을 데리고는 원진 밖으로 나와 나뉘어 파상공세를 거는 장료의 기병대를 향해 돌격한다. 관우의 무력을 아는 장료군이 감히 정면으로 승부하지 못하고 속도를 줄여 피하자, 관우는 방향을 바꿔 또 다른 기병대를 향해 똑같이 위협했다. 그런 식으로 관우가 원진 주변을 돌자 장료군은 관우군의 원진을 제대로 칠 수가 없었다.

이러다간 하루종일 싸우게 생겼음을 깨달은 장료가 관우를 잡으려고 달려나오나, 관우는 장료와 정면승부를 피하는 한편 촉한군의 원진에 바짝 붙어서는 장료를 도발했다. 관우를 잡으려고 원진에 가까이 가면 역으로 당할 수도 있기에 장료는 주변을 살피면서 답없는 대치전을 유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유비와 조조의 본대가 싸우는 현장에서도 분위기가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은서와 풍해의 선공으로 조위군이 촉한군을 밀어붙이는 듯 했으나, 정작 결정타는 하나도 주지 못한 것이다. 유비의 촉한 본대는 오히려 점차 적의 공세에 적응하며 막아내고 있었다. 조조는 유비가 보여주는 의외의 저력에 당황하고, 가후는 지금 자신들이 정말로 이기고 있는가 의문을 품는다. 유비는 생각외로 팽팽한 전황을 보며 지금의 이 전세가 유지되는 건 지금 이 순간이 유비 세력이 임협 시절의 야성과, 국가의 조직력을 겸비해 격상의 체급을 가진 조위와도 승부가 가능한 순간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제갈량은 이를 보고 천시에 이어 인화까지 자신들을 돕는다면서 지금 촉한의 전투력이 조위를 능가하고 있음을 확신한다.

유비와 모사들의 예상대로 전선마다 전황이 점점 촉한군 쪽으로 기울기 시작하자, 장비한테 밀리던 조홍군이 먼저 흔들리기 시작했다. 적어도 대의명분은 확고하던 유비와 달리, 조조의 명분은 호족들은 몰라도 병졸들에게는 와닿지 못했다. 평생 한실의 승상으로 권력을 휘두르다, 말년에 위나라를 건국하며 찬탈해가는 조조를 위해 질 싸움에서 죽을 때까지 버텨야 할 이유를 알아내지 못한 것이다.

조홍은 그래도 휘하의 숙련병들이라면 불리해도 버틸 것이라 믿었으나 오히려 그들은 가장 먼저 전황을 파악하고는 도주하기 시작하고, 조홍군의 진형이 무너지자 그 틈을 노린 장비가 돌격해 단 2번의 공격으로 조홍을 참수한다. 조홍이 죽자 조홍의 병사들은 기다렸다는 듯 흩어지고 장비는 곧바로 장합을 치러 움직인다.

조홍이 무너지던 그 순간, 본대의 가후는 돈을 그리 바른 조조의 정병이 유비를 끝내 무너뜨리지 못한 순간 이 싸움은 진 것이라 논평하고 조조도 왜 자신이 이기지 못하는지 깨달았다. 조조군은 어느샌가 약해져 있어서, 조조가 젊은 시절과 다름없이 예리한 판단력과 용맹함을 보여줘도, 밑의 병사들이 독하게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이다. 조조를 존경하고 따르던 고참병들도 오랜 세월의 연이은 전쟁과 확장된 영토에 따라 흩어져갔기에, 이젠 조조가 난세에서 자신들을 구해줬다고 여기는 병사들도 거의 없었다. 이제는 찾기 힘든 과거의 고참병들을 그리워하며 조조는 병사들을 아꼈어야 했다고 후회하나 이는 곧 유비에게 패한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라 함부로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조가 슬슬 자신이 잘못한 것인가를 체감하는 순간, 이제 조조는 끝이라는 듯, 유비가 조운, 위연과 함께 돌격한다.

사실 직전에 촉한군 모사들은 지금이면 위연을 출진시켜 조심스레 나아가라 한 것이었지만 유비는 그걸 내가 직접 나가라 하고 싶은데 왕에게 대놓고 나가라긴 뭣하니 위연을 보내라 돌려말한 것이라고 오해해 자신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돌격한 것이다. 이때 은서와 풍해 역시 돌격하는 유비를 목격하지만 전방의 적이 굳건한 상황에 병력을 돌리는 건 쉽지 않았기에 서로 눈치를 보느라 유비를 막지 못했다.

정욱은 은서와 풍해가 각자 눈앞의 적에게 집중하던가, 손해를 보더라도 당장 유비를 추격하는 게 낫지만 성향상 최악의 선택지인 정면에도 집중 못하고, 망설이다가 따로따로 조조의 명령대로 군을 돌려 유비를 쫓을 것이라 예상한다. 조조는 허수아비들이라 한탄하고 이미 죽고 없는 서황과 하후연, 포로로 잡혀 있는 우금을 아쉬워하고 일단 그나마 믿을 만한 조진에게 유비를 막으라고 지시한다.

한편, 마초는 장합을 상대로 거의 궤멸당하기 직전이었다. 동오보다 더한 호족 연합체인 서량제장들의 군대는 상당수 도망쳤고, 마초는 마대 중심의 직할 병력만이 아득바득 버티고 있었다. 그나마 방덕이 지원을 오면서 숨통을 터주긴 했지만 장합은 침착하게 마초에 대한 압박을 유지했고 마초가 마대라도 탈출시켜야하나 고민하던 그 순간, 조홍의 수급을 치켜든 장비가 당도해 장합의 후방을 들이친다. 장합군은 조홍의 죽음과 후방 기습으로 열세에 처하자 사기가 크게 떨어진다.

그 사이 유비 쪽에서는 은서와 풍해 역시 뒤늦게나마 유비의 본대를 향해 달려들었지만 따로노는 은서, 풍해, 조진의 손발이 하나도 맞지 않았다. 풍해의 군세가 황충에 의해 저지되면서 유비는 직접 선두에 선 채 조진을 상대한다. 군주가 선봉에 선 촉한군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고 이미 황충을 상대로 예봉이 한 번 꺾인 조진은 이들을 막지 못한다.

조조는 이제 남은 건 자신도 똑같이 하는 것 뿐이라 생각하지만 직접 싸울 수 없으니 유비의 조운처럼 주변 장수에게 그 역할을 맡겨야 하는데 그 역할에 딱인 허저도 이미 죽고 없는 판에 그 역할을 맡을만한 장수가 없었다. 하후돈은 종친으로서 군부의 중심을 잡아줘야하고, 조휴는 이런 자리에 나서기엔 능력이 애매했다. 그나마 주령이 있었지만 조조는 주령을 사적으로 싫어하던 탓에 그에게 이런 역할조차 맡기고 싶지 않았다. 결국 조조마저 위험하다고 판단한 주령이 자청하여 유비를 막으러 나섰다.

이에 유비는 주령에게 투항을 권하나 조조의 감정과는 별개로 조조에게 진심으로 충성하던 주령은 이를 거절해, 설득할 시간도 아까웠던 법정이 공격을 청한다. 결국 유비의 명에 진군하는 촉한군은 순식간에 주령군을 무너뜨리고 조운의 검이 주령에게 떨어진다.

주령이 전사하고 그 부대도 무너졌으나, 그 틈을 타 장패와 청주병들이 진도를 떨쳐내고 유비의 후방에 접근하는데 성공하면서 주령의 희생이 아주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역으로 장패에게서 자유로워진 진도 역시 다시 촉한 본대의 후미에 합류하면서 장패를 막아서고, 유비는 현 상태에서도 장패를 충분히 막을 수 있으니 개의치말고 조조를 계속 쳐야한다는 법정의 주장에 호응해 계속해서 공세를 이어간다.

한편 마초와 싸우던 장합은 장비가 후방을 치면서 일이 어려워지자 장합은 고민에 빠진다. 장합은 장비에게 부대가 괴멸당하더라도 마초의 수급을 얻는다면 결과적으로는 승리가 아닌가 미련을 갖지만, 장비의 기습과 조홍의 죽음에 병사들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전황이 좀 나아진 것을 확인한 촉한군의 서량 기병들이 다시 마초 밑으로 복귀하기 시작하면서 전황은 점점 더 어려워졌고 결국 장합은 더 이상의 공세를 포기한다.

관우를 공격하던 장료 역시 여전히 답없는 대치 중이었다. 이대로 가면 정말 관우의 체력이 다하는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에 장료가 분노할 때, 본영을 살피던 호사들이 다가와 본영이 위태롭다고 보고하자 장료는 기겁하여 급히 본영으로 회군한다.

장패가 유비의 후방을 공격하고 있음에도, 조조의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주령의 전사는 본대 군졸 전체의 사기를 떨어뜨렸고, 조조가 아무리봐도 더는 싸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정욱은 그나마 주령의 희생으로 잠깐은 막았으니 퇴각하자고 진언하려다가, 그래도 조조의 판단이 더 나을 거라 믿고 입을 다문다. 그러나 가후는 후대를 못 믿어서 도박을 했다가 망하고 만 조조가 더 나은 판단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버렸고, 그러면서도 나중에 책임론이 불거질까봐 걱정해 퇴각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가후의 예상대로 조조는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검을 든 유비가 눈에 보일 거리까지 다가온다. 참다못한 정욱이 조조를 재촉하는데, 일그러진 조조의 표정을 보고 그제서야 이미 자신들은 완전히 패배했고, 조조는 패배를 인정하지 못해서 입을 다문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낭비한 잠깐의 시간 동안 유비는 조조 코앞까지 와닿는다.

조운과 위연이 선봉에 선 촉한군은 압도적으로 조위군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조조가 사정권에 들어오기 직전, 갑자기 주변의 조위 병사들이 마구잡이로 달려든다. 이들은 조조가 그리워하던 조조군 1세대 병졸들로, 자식들이 병역을 잇는 걸 괴로워하면서도 떠돌던 자신들을 살려줬던 조조를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촉한군의 앞길을 막아선 것이다. 대형도 뭣도 없는 마구잡이식 돌격이기에 두 장수의 적은 아니었으나, 아예 인간방패 노릇을 하겠다는 듯 달려드니 조운과 위연도 잠깐 멈출 수밖에 없었다.

1세대 병졸들의 희생으로 틈이 생기자 조휴가 직접 조조를 끌고 후퇴하기 시작하고 모사들도 바로 도망쳤다. 그러나 조조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데, 조조가 생각하는 건 방금 자신을 위해서 죽어나간 주령과 군사들에 대해서였다. 자신을 구할 아주 잠깐의 시간을 위해서 허무하게 죽어간 그들에게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정작 그들에게 감사할 생각은 들지 않는다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에 시달리던 조조는 결국 그들이 자신이 경멸하는 한 왕조의 충신들과 닮아서 그런다는 걸 깨닫는다. 그 말은 지금의 조조 역시 한 왕조만큼 썩었다는 의미였고, 여기까지 생각이 닿은 조조는 피를 토하며 기절한다.

6.3. 중원으로의 귀환

조조의 본영이 무너지면서 조위군의 붕괴는 겉잡을 수 없이 빨라졌다. 촉한의 모사들은 이제 조조만 잡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며 추격을 유지할 것을 강권하고 유비도 조조 추격을 계속한다. 그러나 조조를 존경하는 조위 장병들이 아직도 상당히 남아서 그들이 촉한군을 물고 늘어지고 장료까지 도착하자 더 이상 추격은 할 수 없게 된다.

한편, 조조가 의식을 완전히 잃자 가후는 지금 여기서 잡혀선 안된다는 판단하에 드디어 적극적으로 나선다. 가후는 하후돈에게 지휘권을 쥐고 퇴각을 명령해달라 요청하면서 조조의 병환도 숨겨야 함을 전한다.[73]

결전이 끝난 시점에서 완성은 엄청난 수의 피난민들로 인해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 이때 왕평은 물론 피난민을 돕자고 주장한 후음마저도 후회할 정도였는데 타이밍 좋게 남방에서 유비가 대군을 몰고 돌아오자 끝내 이겼음을 깨닫고 모두가 감격하며 피난민들 역시 돌아갈 수 있게 되면서 완성의 기능은 다시 회복된다.

촉한군 본대가 완성에 입성한 뒤 황권과 장임 등 남양 해방을 지휘하던 다른 장수들도 완성에 모여 앞으로의 계획을 위한 군의가 열린다. 그곳에서 모든 제장들은 가까운 허도로 가 황제 폐하를 구출하는 것을 시작으로 중원을 평정해야 한다 주장했고, 가장 신중한 성격의 황권도 적극 동의하자 유비는 이를 승락한다.[74] 물론 조조가 이를 예상하고 방해한다면 고전할 것이 분명했지만, 유비는 조조의 상태를 이미 알고 있기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다음날 촉한군은 박망현을 지나 중원에 도달, 마침내 여남까지 당도하고 그곳에서 유비는 자신이 중원에 돌아왔음을 선포한다.

그 시간, 남양 결전에서 패배한 조위군은 허도까지 전력으로 후퇴하지만 조조의 수명이 그때까지 버티지 못할 지경이었기에 그 와중에 결국 조조의 상태가 제장들에게 전해진다. 패전한 부대를 수습하던 장료, 장합, 장패 등은 조조의 막사에 모여 조조의 상태를 보곤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조조는 그들을 진정시킨 뒤 하후돈을 대장군으로 임명해 전군의 통수권을 맡기고, 한나라의 수도를 허도에서 업성으로 천도하고 천자와 한 조정 역시 빨리 업성으로 옮기라고 명령한다.[75] 거기에 더해 절대 황하를 건너 유비와 싸우지 말라고 하후돈에게 대략의 지침을 정해준 조조는 조진과 조휴한테는 천자를 끝까지 지켜라 라고 강조하고는 하늘을 뒤집고 백룡을 베고자 했으나 하늘에 눌려 실패했다는 유언을 남기지만 정욱과 하후돈조차 이 유언을 이해하지 못했고 가후 역시 대강 짐작했을 뿐 그 뜻을 온전히 알진 못했고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 모습을 본 조조는 자신의 진정한 이해자는 숙적인 유비뿐이었다고 생각하며 사망한다.

조조가 사망할 때, 여남에 들어온 촉한군은 재정비 과정에서 반 조조 지사들을 흡수해 전력을 보강해 여남군의 조위 잔여 세력을 몰아 붙인다. 여남군은 어지간한 주를 능가하는 대군이었지만[76] 태수 만총이 다수의 병력을 데리고 2년 가까이 떠나있다가 죽었고 그 병력들이 다 증발해버린 상황에 후임 태수도 없었다. 조위의 현령들은 반조조 지사들의 공격도 버티기 어려운데 유비가 10만에 준하는 대군을 몰고 오자 버티지 못하고 항복하여 결국 여남 전역은 불과 며칠 만에 촉한에게 완전히 점령된다.

여남의 식량으로 우선 보급은 해결되었으나, 보급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려면 결국 낙양과 허도 인근의 둔전 장악이 필수인지라 모사들은 빨리 허도로 가야 한다고 재촉했다. 물론 보급 문제에 더해 허도에 있는 천자인 헌제만 구출할 수 있다면 격문을 돌려 조조를 역적으로 선포할 수 있으니 일이 수월해짐을 알기에 그랬으나, 예주는 평야라서 무작정 정예병들을 선행시켰다간 조위의 복병에게 당할게 뻔 한지라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모사들과 지장인 황권까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지만 결국 조비가 천자를 빼돌리는 건 막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고 대신 황하 이남을 완벽히 장악하는 길을 택한다.[77]

한편, 허도에서는 유비의 예상대로 어사대부 치려가 헌제를 강제로 끌어내고 있었다. 헌제는 3일 정도만 있으면 유비의 대군이 허도에 올 것을 알았기에 악을 쓰며 버티나, 치려와 군졸들은 복황후의 죽음 당시 자신들이 앞장 섰던 탓에 유비한테 잡히면 자기들이 죽을 판이라 물불 가릴 형편이 아니었다. 만일 경기와 위황, 혹은 다른 한나라 조정 신하들이 있었다면 그들이 저항해 며칠이나마 시간을 벌었겠으나, 조조가 경기, 위황의 난 이후 OX 퀴즈 숙청이라는 황당한 짓으로 한나라 조정 신하들 대부분을 숙청한지라 그렇게 해줄 신하들이 없었다. 결국 헌제는 업군으로 끌려가고, 철수를 지휘하던 정욱은 허도 시가지에 불을 질러 유비군의 진격을 늦춘다.[78]

결국 헌제 납치와 허도 방화 소식은 유비에게 전해진다. 그래도 허도의 둔전과 백성들은 남았기에 유비는 제갈량과 황권 등의 모사와 제장들에게 뒷처리를 맡기고는 익주, 형주, 량주, 사례, 예주, 서주, 연주까지 7개 주를 사실상 장악한 상황에서, 하북의 위나라와 강남의 오나라 중 어디를 먼저 칠지 고민에 빠진다.

7. 전후 처리

촉한군 9만여명은 아무런 저항없이 허도에 입성했다. 비록 허도가 전부 불타서 허도 주변의 신급현에 주둔해야 했으나, 점령에는 문제가 없었다. 신급현에 주둔한 촉한군은 중원을 접수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관우와 장비는 연주로, 조운은 서주로, 진도는 여남을 비롯한 예주 일대로, 마초와 방덕은 장안으로 향한다.[79] 하나같이 중원의 주요 지역들이었으나, 그나마 한 번은 저항할 것으로 예상되는 장안을 제외하곤 촉한군에 저항할만한 곳은 중원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중원을 접수할 절차를 밟는 유비에게 동오의 제갈근이 사신으로 찾아온다. 유비는 결전 이전에 동오의 만남 요청을 거부했었지만, 사신이 제갈량의 친형이라서 그의 입지를 고려해 만나기로 한다. 제갈근은 미리 손권이 정한대로 이번 촉-오 전쟁의 전범을 대도독 여몽으로 한정하고, 그의 자식들을 바치며 관계 정상화를 요청한다. 물론 유비는 되도않는 거짓말임을 알았으나, 나중에 오를 칠 경우를 생각해 한번 인내하고는 받아들여준다.

그 사이 동오 조정 역시 비상사태였는데 손권의 예상보다 조조가 빨리 무너져 버렸기 때문. 형주원정 패전의 뒷수습 시작도 못한 판이던 동오는 더는 확장할 생각도 못하고 유수구와 하구 방어를 강화해 강동 본토는 지키자는 수세적인 태도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촉한은 너무나 강해져 있었기에 정면승부를 하게 되면 오나라가 버티지 못할 것은 자명했고 이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손책의 유훈을 받은 사람인 장소에게로 향한다.[80] 모든 이들의 주목을 받은 장소는 아직 하북에 조위의 세력이 남아있으니 촉한도 그쪽에 집중할 것이라며 무조건 항복보다는 관망하자는 의견을 제시한다. 사실 장소가 보기에도 항복이 답이나 그는 실권이 없었고 또한 과거의 조조와 달리 유비는 강동인들에게 무시받던 몸이라 항복을 주장하면 역풍을 맞을 것이기에 항복을 주장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장소는 유비가 하북을 먼저 치기를 기대할 수 밖에 없었다.

한편, 신급현의 촉한군은 중원을 접수하던 중 전예의 정보 제공으로 허도 인근의 군선들을 손에 넣는다.[81] 이로서 중원에서 쓸 수 있는 수군 병력 확충도 가능해진 때 법정과 황충이 병으로 쓰러져 사망한다.[82]

그 시간, 위나라에 있던 위풍은 자신을 엄청 갈구던 조비가 위왕에 등극하면서 암울함을 느끼고 있었다. 차라리 들고 일어나서 한나라 충신 코스프레라도 했어야한다 후회하면서도 결과적으로 나라가 망하기 직전에 놓인 덕에 본인의 허위보고가 자연스레 묻힌지라 아예 실수할거면 나라 망할 급으로 해야한다고 생각하던 때 조비에게 천자와 조식, 조창에 대한 여론 조사를 해보라는 지시를 받고 어떻게 보고해야 조비가 좋아할지 고민에 빠진다.

그 때 신급현의 유비는 법정과 황충의 장례식을 치른다. 두 제장들은 병상에 눕고 얼마 못가서 세상을 뜬 것이다. 유비 역시도 자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동오와 조위 중 어디를 쳐야하나 고민하는데 조비와 손권의 수명을 고려하여[83], 여전히 하북을 쥐고 있어 강대한 조위 대신 동오를 치기로 결심한다.[84]

이후는 유비의 강동정벌로 이어진다.

8. 결과

8.1. 조위 및 동오

중원과 하북을 상대로 강동과 파촉이 연대해 저항하던 기존의 삼세력 체제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조조는 전국에서 30만이 넘는 대군을 동원하여 양번에 투입했으나, 종합적으로는 사상자 10만 이상, 사상자를 제외한 포로도 최대 10만이라는 막대한 손실을 보고서 간신히 10만의 병력을 추슬러 퇴각하다가 사망했다. 이로 인해 조위는 중원을 지킬 수 없게 되어 황하 이북으로 밀려나는 처지가 되었으며 상당한 인적 자원 역시 잃게 되었다. 또한 군주인 조조의 죽음으로 정치적 혼란을 맞이하게 되었다.

양번대전의 패배는 조위의 남방 방어선의 전체적인 붕괴를 불러왔다. 당장 대전이 벌어졌던 형주의 양번 방어선 뿐 아니라 동남의 회남 방어선 역시 조조가 병력을 끌어쓰는 바람에 실질적인 방어력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85] 10만이 넘는 병력이 남았다고는 하나, 이들을 동남에 복귀시키면 하북 본토를 지킬 병력이 없는 만큼 조위는 서주와 회남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86]

여기에 주요 지휘관들을 잃은 것도 뼈아픈 손실이다. 조인, 조홍, 우금, 만총 등 조위 군부의 중심인 인물들이 대다수 전사하거나 포로가 되었고 그 외에도 허저, 주령, 곽회, 염행, 문빙, 전예 등이 죽거나 전향하는 등 뛰어난 인재들을 많이 잃었다. 더욱이 작중 조위는 아직 실감하지 못하는 문제지만 정욱, 하후돈, 가후 등의 원로들의 수명도 다해가고 있거나 마음이 떠나있어서 뒷수습이 쉽지 않다. 지극히 예민한 문제인 조비의 남정 시도나 헌제의 안위, 조씨 숙청 문제에 대해 입바른 소리를 낼 원로들이 곧 사라지는 셈이다.[87]

동오 역시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 기껏 동맹을 적으로 돌리며 기습적으로 배신한 결과는 패전과 손권 친위대의 치명적인 질적 저하였다. 특히 차기 대도독감이던 육손과 주연의 피해가 컸는데, 육손은 패장이란 불명예와 함께 간첩 의혹까지 얻게 되었고, 주연은 사병의 과반을 상실하는 피해를 입었다. 인성과는 별개로 실력은 뛰어났던 반장의 사망도 충격이 컸다.

게다가 동오가 형주를 열망하던 이유인 장강 방어선의 효용성도 이번 전쟁을 통해 반 이하로 떨어져 버렸다. 본래 동오의 형주 침공 정당화 명분은 파촉과 형주에서 한수를 타고 장강으로 진입하는 전략을 취하면 동오로선 일방적으로 얻어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88] 형주를 먹으면 강변 사방에 요새를 설치해서 이걸 일차적으로 막을 수 있고, 익주까지 아군이면 아예 이런 공격의 시도 자체가 어렵다. 그러나 촉한이 형남을 사수하고 양번과 강하까지 차지하면서 동오가 전쟁 이전부터 우려하던 시나리오인, 장강과 한수가 하나로 연결되는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어버렸다.[89]

설령 하구를 철옹성으로 만들 수 있다고 쳐도 촉한은 형주뿐만 아니라 회남도 장악했기 때문에 북쪽에서 시간을 들이면 장강으로 진입이 가능하다. 전쟁 자체가 명백한 동오의 배신으로 시작된 만큼 익주 세력과의 관계는 사실상 돌이킬 수 없게 되면서 동오는 촉한에게 절대적인 을 미만의 위치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동오의 군사적 손해 또한 막대했는데, 본래 강동은 자체적으로도 10만 이상의 군사를 동원 가능해 파촉을 능가하는 국력을 지니고 있었으나,[90] 근래 해마다 벌인 전쟁에서 연달아 패전해 사실상 형남 2군을 상실해 국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되었다.

8.2. 촉한

형남을 수성하고 추가로 형북을 얻어 형주의 지배를 공고히 하였으며 조위에게 재기 불가능의 타격을 입혀 하북으로 몰아내고 중원과 회남, 관중을 차지해 삼국 중 1강으로 올라설 정도로 압도적인 세력 확장을 달성하였다.

더불어 조위와 동오에 비하여 인재풀에서도 피해가 적었다. 북벌 중 오란이나 부융 등이 전사했지만 지휘관 급이 아닌 일개 부장 정도이며 황충과 법정을 자연사로 잃긴 했지만 최종 결전이 끝난 이후 잃은 터라 전역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원 역사에선 사망하거나 타 세력으로 넘어간 관우, 장비, 방통, 방덕, 황권, 장임 등이 아직 남아있으며 새로 전예와 문빙 등도 합류한지라 이들의 공백을 메꿀 이가 넘쳐난다. 추가로 등애와 석포 같이 이때는 하급 관원이었던 인재들이 자연스럽게 넘어오고 있어 인재풀은 풍족하다.

비록 중원이 조조에게 무리한 징병과 수탈을 당한 탓에 어느 정도 복구하는데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민심이 유비와 촉한에게 우호적인 것 또한 차후 영토를 지배하는데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조위에 저항하던 반란군이나 저항 세력들이 촉한에 붙으면서 점점 세력이 불어나고 있다.

단순히 세력의 확장을 넘어서 전략적으로도 하북과 강동을 상대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는 데에 성공했다. 중원과 하북의 경계인 황하는 물줄기의 범람과 퇴적 등이 극심해서 장강이나 진령산맥에 비교하면 안정적인 방어선이라고 하기에 어렵다. 동오와의 전선도 합비를 포함한 회남을 차지하면서 동오를 북쪽에서 공격하는 게 가능해졌다. 또한 형주의 거의 전부를 손에 넣으면서 한수를 타고 장강에 진입하는 작전도 쓰기 쉬워졌다.


[A] 정확히는 북벌 종료 직후 병사했다.[A] [3] 원래부터 좋지 않은 건강에 패전의 충격까지 더해져 병사했다.[4] 정확히는 패색이 짙어지자 자결했다.[5] 정확히는 병사.[6] 강릉이 있는 남군과 양번이 있는 양양군은 본래 1개의 군이었으나 삼국시대 접어들어 분할된 곳이다. 형북이 특히 요충지에 지형이 난해하다 보니, 유독 개편이 많이 된다.[7] 원 역사의 한중왕 대사마에 비하면 작중의 촉한왕 복파대장군은 둘 모두 격이 엄청나게 낮은 것으로, 향후 합류할 중원의 반조조파 등에게 그들이 합류해 보다 격이 높은 직에 오르면 기존의 공신들과 비슷한 대우를 할 수 있음을 보인 것이다.[8] 혼자서 500명의 장정을 모아 봉기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변변한 무기도 없어서 대장인 후음조차도 몽둥이를 휘두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들고 일어선 후음을 본 남양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가세한 것.[9] 후음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종자경의 설득으로 풀려나 토벌군을 모으고 있었다.[10] 황권이 무당산을 끼고 고지대에 진을 설치한 덕에 대군세가 몰려와도 오래 버티는 게 가능했다.[11] 그 인색한 조홍이 자신의 사재를 털어 군사들에게 포상을 줄 정도로 이번 전쟁에 이를 갈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12] 장합의 생각은 촉한군의 기세가 지난 관도대전 당시의 조조군처럼 만만치 않으니 일단 시간을 끌며 그 기세를 꺾어놔야한다는 것. 과거 원소군 시절의 경험이 영향을 끼친 건데 문제는 남양은 이미 완성과 신야에서 반란이 일어날 정도로 조조에 대한 민심이 아작난 상태라 장기전의 핵심인 민중의 지지와 지원을 얻기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 이는 관도대전과의 결정적 차이점으로 독자들도 장합이 명장임은 알지만 최소한 지금만은 조홍의 판단이 옳다고 보고 있다.[13] 장합도 뭐라하지 못한게 이 출병 자체가 호수와 부방이 공격받아 그들을 구하러 가는 것이기에 이들과 연계하자 했던 자신의 제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14] 보통 화살보다 훨씬 무겁고 튼튼한 화살이라 빗겨맞기만 해도 충격에 뼈가 부러지고 낙마할 수 밖에 없다.[15] 조홍은 자기가 나서서 관우를 죽인다고 발작했지만 장합이 뜯어말렸고, 장합조차도 쫄아서 '일대일은 해볼만 한데 근처에 유비군 장병이 많으니 자칫하면 포위당해서 안돼'라고 정신승리를 시전하며(...) 나서지 않았다.[16] 유비를 구하기 위해 거병했는데 본디 더 빨리 거병하려 했으나 여름 장마 때문에 미뤄야 했다.[17] 유비가 퍼뜨린 유언비어대로 하는 건 아니라고 본 정욱이 다른 방법은 없냐고 물었지만 막무가내로, 오히려 유비의 경고에도 똑같은 선택을 하고 죽어나가는 이들을 비웃는다.[18] 조조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소설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모습을 많이 보여온 가후조차도 깨닫지 못했다. 소설상에선 그들이 홍수를 경험해 볼 일이 없던 중원이나 서량 출신이라 홍수의 무서움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표현한다.[19] 심지어 임상대치 이후로 동오에게 넘긴 형남의 무창 등을 지나야 하기에 뭔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20] 마량에 따르면 본디 유표가 조조를 막고자 설치한 방어시설인데 유종이 항복하면서 들어다 바쳤다고(...) 한다.[21] 알고보니 제갈량은 보급선까지 탈탈 털어서 창검을 진열해놓고 허장성세를 해놓은 상황이었다.[22] 대홍수 사태를 예상도 못한 우금은 배가 없어서 양번에 가도 포위를 막는 것 말고는 제갈량을 공격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갈량이 위협만해도 우금, 조인 모두 양번에 묶여있어야 한다.[23] 이때 유비가 독백하기를 과거 헌제가 이각, 곽사에게 잡혀있을 때 옥새가 분실되어 나무토막에 대충 관인을 파서 결재를 했던 상황이라 권위가 추락했던 것이라며 만약에 헌제 밑에 유능한 목공이라도 있었다면 좀 나았을 거라고 평한다.[24] 그나마도 활은 수성전에서 필수적인지라 꺼냈지만 폭우 때문에 얼마 못 버티고 망가져버렸다.[25] 마침 제갈량의 취미생활로 각종 개량과 신규 설계를 해왔던 걸 배로 날라왔다고. 이를 본 우금이 무슨 공성구를 물 쓰듯 쓰냐고 어처구니없어한다.[26] 이 때 만총은 유표가 양번성을 지은 이후 30년간 이런 일이 있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고 현실을 부정하는데, 나이 먹은 병사가 수문이 막힌 게 아니라 강 자체의 수위가 지면보다 높아져서 역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27] 이 와중에도 속으로 병사들을 구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방법을 떠올리지 못하는 우금이 압권.[28] 마침 이 폭우와 홍수가 고조께서 역적놈들에 분노하여 천벌을 내린거라고 독려하다 아쉽게 물러나게 되자 너무 나갔다고 민망해하던 참이었다. 대자연의 분노 앞에 멍해진 형남 촉한군 제장과 병사들이 마량에게 시선을 집중한 것은 덤.[29] 왜냐하면 조홍군에게도 우금군의 전멸 소식이 전해졌을 것이니 사기가 바닥을 칠 것이 뻔하고 촉한군은 그와 반대로 사기가 하늘을 뚫을 지경이기 때문이다.[30] 단순한 힘싸움 구도는 관우의 특기 분야고 장비가 붙어서 여차할 경우 관우의 빈 틈을 커버해줄 수 있으니 적절한 인선이다. 마초와 황충도 이 둘의 인선을 보고 좋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을 정도.[31] 비가 오지 않으니 이번에 이용한 강릉-한수를 잇는 수로도 사라질 수 밖에 없기 때문. 그래도 늪지 대부분이 다 잠긴 덕에 최소 3~4달은 걱정이 없다고 한다.[32] 거기다 이유는 모르겠어도 비린내까지 풍겼다고...[33] 우금 역시 내색은 안 했지만 한장에서 위장으로 소속을 바꿔가는 과도기에 심란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게 이번 참상에서 터져버렸는데 그럼에도 과거 식량이 없어서 원소군의 포로들을 처리해버린 과거를 근거로 항복해도 병사들이 살거란 장담을 못하는 상황이라 항복을 망설이고 있었다.[34] 대홍수와 마찬가지로 절묘하게 타이밍이 맞아들어간 상황으로 전날에 전예가 마초군을 막기 위해 시도한 화공과 이민족 토벌 전문이었던 전예군, 그리고 마초군의 기세가 꺾인 순간까지 모든 요소가 톱니바퀴처럼 맞아떨어져서 겨우 성공할 수 있었던 셈이다.[35] 관우는 장창병들을 청룡언월도로 한 번에 한 명씩 찔러 죽여서 멈칫거리게 한 뒤 그 짧은 빈틈을 놓치지 않고 돌격하여 전열을 무너뜨렸다.[36] 이때 우금이 먼저 투항한 것도 항복 결심에 영향을 미쳤다. 최고위급 사령관도 항복했는데 그보다 직위가 더 낮은(즉, 더 받은게 적은) 자기라고 항복하지 말란 법은 없었던 것.[37] 이는 서주라는 지역 자체가 탁 트인 지형이라 방어도 어려운데 서주 대학살로 인구와 산업 인프라가 박살나버렸기 때문에 유비의 북벌 시점에서는 사실상 빈 땅 취급받았으며 그래서인지 원역사에서도 광릉에서 진등이 손책을 막아낸 것과 장패가 관리했다는 정도를 빼면 그렇게 중요한 대우는 못 받았다. 즉, 손권 입장에선 먹어도 지키기가 어려울 뿐더러 먹을만한 동기도 없는 땅이 이 시점에서의 서주다. 괜히 손권이 원역사에서도 서주 쪽이 아닌 여강 쪽에 위치한 합비에 집중한 것이 아니다.[38] 포로에게 먹일 식량 때문에 자발적으로 보급을 위태롭게 한 것을 비웃은 것이다.[39] 속으로 원소도 그리 당하지 않았나라 말하기도 했다.[40] 물론 고옹의 내심은 조조가 찬탈을 해야 강동이 그 명분으로 자립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있었다. 거기다 과거 아버지의 수모로 인해 한 왕조에 대한 개인 감정도 좋지 않았다. 물론 독자들은 강동 자립을 위해 더 야만적인 순장도 용인한 사람이 그런 말을 하냐며 조소를 보내는 중.[41] 우금군을 관리하느라 5천명이 빠졌으나, 이후 호수와 부방이 항복한 덕에 병력이 더 늘었다.[42] 땅굴을 파면 흙이 나오다 보니 의심을 살 수 있기에 그나마 비슷하게 흙이 나오는 참호를 파는 척하자고 제의한 것이다.[43] 이는 전국시대에 저술된 묵자에도 적혀 있는 꽤 오래된 땅굴 대응 전법이다.[44] 물론 이런 극비급 내부 정보에 대한 출처를 묻지 않을 리 없기에 가상의 고위직 세작을 만들어 그가 목숨 걸고 전해준 정보라고 거짓말을 친다.[45] 장안 수비군의 군의에서도 나오지만 여기서 서황의 공백이 매우 크게 묘사된다.[46] 강릉을 점령하고 협상하는 척 백제성까지 점령하라고 명한다. 사실상 익주까지 먹겠다는 것.[47] 원래 병력은 7천이지만 사로잡은 위군 3만을 지키느라 2천 명이 빠졌다.[48] 이는 쇠막대 위치를 다 외운게 육손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동오 군관들에게는 구체적인 위치가 미처 전달되지 못했던 것.[49] 여몽은 애당초 유비한테 형주를 빌려주면 안되었다면서 한탄한다. 작중 수십 수백번을 나오는 말이지만 애당초 형남 대부분은 유비군의 분투와 유비의 민심 장악력에 힘입어서 점령한 땅이다. 손권 측의 말대로라면 주요 지역인 강릉의 남군은 주유가 남군 공방전을 통해 얻어내 유비에게 빌려줬겠으나, 유비 역시 유기 생전부터 형주와 양주를 잇는 하구 지역을 가지고 있다가 손권에게 넘겼다. 여몽은 이 사실은 외면하고 동오에게 유리한 점만 강조하고 있다 볼 수 있다.[50] 정사에서 청주병은 이른바 조조군의 주춧돌이 되어준 정예병들이다. 조조군 1세대라 불려도 과장이 아닐 정도.[51] 그러면서 촉한군의 중소기업적 마인드를 떠올리곤 그것 때문에 자신도 이리 활약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52] 정확히는 양양성과 번성, 한수를 끼고서 이상적인 포진으로서 조조를 막는 것.[53] 이는 조조 사후 청주병의 이탈을 알고 있던 유비가 조조군 내부에 작은 균열을 내고자 던진 수였다.[54] 원역사였다면 이 시기에 관우는 진작 죽었어야 했기 때문. 당연히 여기서는 손권에게 포로로 잡히지도 않았으니 멀쩡히 유비 곁에 살아있을 수 있었다.[55] 사실 촉한군의 수로 보급로를 막았다고 하지만 동오 역시 보급로를 강하의 문빙이 보는 길을 통해서 받는 데다가, 물에서 나가면 승률이 곧바로 반 이하로 떨어지는 상황에서 싸워야 하는 극히 위험한 환경이었다. 만약 유비가 초창기 법정의 의견대로 양양까지로 만족하고 퇴각하는 순간, 동오군은 바로 도망치지 못하면 괴멸 확정이다. 여몽부터가 한겨울에 땅에 내리지도 못하고 배에서 먹고 자며 대군을 통솔해야 하는데 그런 생활이 건강에 좋을 리가 없었다.[56] 동오는 방위를 위해서 북쪽의 유수구, 서쪽의 하구에 주력군을 둬야 하는데, 건업에서 거리가 먼 서쪽 전선의 군은 대도독을 두어야 했다. 당연히 군주 입장에선 군권을 가진 대도독이 마음에 들지 않기에 손권은 대도독을 비판하는 일부 무장들을 대도독과 배치하여 대도독을 견제케 했는데 원역사의 노숙→여몽→육손으로 이어진 대도독 계보가 증명하듯 대도독이 유능하고 시류도 잘 타면 문제가 없지만, 현임 대도독이 죽고, 후임이 큰 공훈이 없으면 심대한 약점이 되었다.[57] 그나마 그 무기를 활용하는 육손의 가문이 오의사성이라 불리는 대가문 중 하나인 육씨라서 유언이 무기 취급이라도 받은거다. 실제로 반장은 여몽이 죽자마자 곧바로 자신의 상급자였던 그를 관작이 아닌 자로 부르며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즉, 여몽의 유언을 따르자 주장하는 육손의 가문빨이 아니었다면 이런 논의도 없이 곧바로 유언을 쌩깠을 것이다.[58] 일례로 능통이 언급되는데 선대가 황조에게 전사까지 하고, 본인도 합비에서 손권을 돕기 위해 정예병 300명을 모두 잃었다. 손권이 아껴서 능통이 병사하고 나서는 그 자식들을 직접 챙겼는데도, 동오 정계에서는 능씨 가문의 영향력이 사라져버렸다고 한다.[59] 전선에서 직접 보는 대도독이 없으니 후방의 손권이 보고를 바탕으로 사후평가를 해서 포상을 해줘야 하는데, 주변 장수들이 큰 공을 세우거나 피해가 큰 장수를 위해 제대로 증언해줄 가능성이 없었다.[60] 이때 육손은 유비가 자신들을 따라올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했지만 어차피 자기가 말해도 안 들어줄 제장들이라며 가능성 암시조차도 주지 않았다.[61] 이때 유비는 원역사 황권과 나헌의 사례를 떠올린다. 황권과 나헌은 본디 촉한의 장수였지만 두 사람 모두 당장 자기가 싸우던 오나라가 아닌 팔짱끼고 지켜보던 위나라에 투항했었다. 유비는 이번 싸움을 일단 지켜보다 문빙과 동오의 갈등이 극에 달할 때 개입해 동오를 격파하고 문빙의 투항까지 받아낼 생각인 것.[62] 문빙의 기습을 대비할 정병을 세우지 않았다. 본디 조위와 동오는 이번엔 손을 잡긴 했지만 공식적으론 적대관계라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문빙이 기습할 것을 대비해 어느 정도 경계 태세를 보여야 정상인데 그런 경계를 조금도 하지 않은게 오히려 문빙이 이것들 통수치려고 저러나 의심하게 만들었던 것. 이에 정봉은 석양성을 지나갈 때 조심하라 했던 여몽의 유언이 이런 의미였냐며 탄식한다.[63] 석양성 오기도 전부터 석양성 먹을 생각을 했던게 동오군인지라 독자들은 진짜 뻔뻔함이 극에 달했다 평하는 한 편 동오는 사고방식 자체가 일반인과 다르다 말하고 있다...[64] 사실 진작에 물러서서 촉한군이 석양성에 눈독 들이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미 양측이서 수천의 사상자를 내며 싸웠던지라 이간계가 아니었어도 말하기 어려웠다.[65] 다만 촉한군이 너무 깊게 새겨놨고 먹물도 엄청 들이부어 깊게 스며든 탓에 다 지우진 못했다.[66] 육손은 동오군 내부에 있는 촉한군의 첩자가 소문을 퍼뜨렸으리라 판단했다.[67] 육손을 제외하면 손책, 손권 2대에 걸쳐 육성한 친위무장, 측근세력[91]에 손권 자신의 직할 병력까지 대거 동원해 손유 동맹 공식 결렬이란 리스크를 감수하고 야심차게 추진한 원정에서 한치의 영토도 얻지 못하고 직계 병력과 친위 세력이 큰 손실을 입었다. 오의 사성을 비롯한 관료들이 손권을 그들의 합당한 군주로 인정하고 있으니 손씨 정권이 뒤집어질 일은 없지만 권위의 약화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68] 그러면서도 여몽을 추천한게 노숙이었다며 은근슬쩍 노숙에게도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보인다.[69] 장소와 제갈근 외에도 동오에는 보즐, 엄준, 서성 등 서주 출신 인사들이 많은 상황에서 저런 말을 했으니 이 말이 나중에 알려진다면...[70] 분노한 이유는 황당하게도 중원 최대세력인 조조의 최정예군을 상대로 유비가 정면 승부를 받아들였기 때문. 다만 가후도 인정하듯이 양군 최정예의 질적 차이는 사실상 없다시피한 상태였다.[71] 억울하게 죽은 하후연과 곽회의 복수를 해준다고 소리치는데 황충은 그들이 억울할 게 뭐냐면서 헛소리 취급했다. 복수 자체야 충분히 명분이 있으나, 억울하다는 표현은 전장에서 적의 계략에 당해 전사한 것이 부당하다는 것인데 전장에서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니 당연히 상대나 제3자가 들으면 코웃음칠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하후연과 곽회가 제명에 못살고 갔다는 게 있지만(둘 다 원역사 수명보다 빨리 갔는데 하후연은 2년, 곽회는 35년이나 빨리 죽었다.) 이건 작중에선 유비 빼면 아무도 모르니...[72] 게다가 이들은 호위병으로서 설사 호위대장의 유사시에도 흔들리지 않고 경호 임무를 할 수 있게 훈련 받은지라 이런 상황에서의 평정심 유지에 능했다.[73] 그러나 속으로는 조조를 더 이상 전하가 아닌 맹덕이라 부르며 사실상 조조에 대한 충성심은 버린 상태다.[74] 이는 대의뿐만이 아니라 군량 문제라는 실용적 이유도 있었는데 남양이 비옥한 땅이라지만 1년 반에 달하는 전쟁으로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했을 뿐더러 결전 직전 벌어진 학살로 인해 대군을 부양할 수 없는 상태였고 그렇기에 촉한군에게는 허도와 낙양에 조조가 만들어 둔 대규모 둔전의 식량이 꼭 필요했다.[75] 불편한 관계인 한과 위의 조정을 한 도시에 모아야 할 정도로 위나라의 사정은 위험했다. 허도를 둘러싼 여남, 영천에서는 이미 수천이 넘는 반란군이 유비에게 합세하는 중이었고, 이들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괜히 중원을 지킨다고 버텼다가는 위나라의 남은 군사도 무너질 것이 뻔했고 가후 역시 옳은 선택이라고 동의한다.[76] 량주의 인구가 당시 많이 쳐도 70만명 정도인데, 여남군은 후한 시기 이미 인구가 100만명에 달했다.[77] 조위가 저항을 포기한지라 기존의 익주, 형남, 량주에 더해 사례, 예주, 연주, 서주까지는 이미 유비의 영역이나 마찬가지였다.[78] 본래는 둔전까지 파괴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방치했다. 그쪽 둔전의 식량이 목적이던 촉한군에겐 천만다행인 일이었다.[79] 관우와 장비만 관우에겐 정병을, 장비가 관우의 후방을 받치라면서 신경을 쓰는데 관우가 점령할 연주 동군은 황하와 접한 국경 요충지이자 조조의 영향이 짙게 남은 곳이라서 특히 주의를 요한 것 같다.[80] 장소가 적벽대전 당시 항복을 주장했음에도 지금까지 동오 정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다 장소가 이 유훈에 근거해서 항복을 주장했기 때문이다.[81] 허도에선 물길이 좀 까다롭긴 하지만 장강으로 가는 길, 즉 동오의 수도권인 건업까지 가는 길이 있다. 그 사이의 요충지가 바로 합비성이기 때문에 조위와 동오는 합비를 중요시했으며 거기서 계속 싸운 것이다.[82] 원 역사에서도 두 사람 모두 220년에 자연사한다.[83] 조비는 유비가 죽고 3년만인 226년에 40세도 못 채우고 세상을 떠난 반면 손권은 70세가 되는 252년까지 살아남아 삼국지 장수라인을 꼽을때 반드시 언급되는 인물이다.[84] 비교로 송무제 유유의 예시를 드는데 송무제는 천재적인 군사능력으로 남조 세력임에도 동오와는 급이 다르게 화북을 제외하고는 중원을 모두 정복했다. 다만 측근의 죽음과 방심으로 인해 관중을 비워두고 떠났다가 화북에서 세력을 정비한 혁련발발의 공격으로 빼앗기고 만다. 자신을 대신할 사령관을 12살짜리 아들로 앉히는 등 단순히 국력 문제만은 아니지만, 어쨌든 화북의 힘이 일통되면 중원을 다시 가르기엔 충분했다.[85] 비록 조조가 동남 26군에 최소한의 병력은 남겨두었지만, 이들은 지상전에 약한 동오라도 작정하면 뚫을 수 있다고 조조 스스로 평가할 정도였다.[86] 이 10만이 넘는 대군도 하북 현지 병력이 아니라 절반 가까이는 황하 이남, 관중 지역 병력이다. 하후돈이 동남에서 차출한 병력과 조엄, 은서가 관중에서 징집한 병력들이 얌전히 고향을 포기하고 하북까지 가서 위나라를 위해 싸울 리도 없다.[87] 그나마 가후는 원역사에서도 유비보다 3년을 더 살기에 수명 문제에선 상대적으로 자유로우나 그 특유의 처세술로 인해 먼저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88] 원 역사의 동오가 이렇게 망했고 1천여 년 후 남송도 이렇게 망했다. 물론 정치적 혼란으로 형주 방어선이 생각보다 쉽게 무너진 탓도 컸지만.[89] 특히나 강하가 촉한에게 넘어간 것이 치명적인데, 촉한이 강하를 점유함으로써 남군과 양번이 한수로 연계가 되고 석양성이 촉한의 대 동오 방파제가 되어 동오는 수군으로 촉한을 노린다는 선택지가 사실상 봉쇄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촉한은 수군 양성을 대규모로 할 기반이 마련되어 동오의 장강 요충지인 파구만 들어내면 장사와 계양은 꽁으로 잃는 것은 물론 아예 장강의 주도권을 상실한다.[90] 파촉도 시간을 들이면 10만의 동원이 가능하지만 수로가 편한 동오에 비해서 진령산맥 탓에 1년을 준비해도 7~9만이 한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