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3-04 22:58:37

손권(삼국지 유비로 천하쟁패)

1. 개요2. 작중 행적3. 기타

1. 개요

삼국지 유비로 천하쟁패의 등장인물. 원 역사의 손권에게서 모티브를 따왔다.

2. 작중 행적

작중 시작 시점에서는 동오를 다스리는 거기장군.[1] 그러나 당대인들에게는 이미 사실상의 오나라 군주로 여겨지고 있다.

212년 유수구 전투가 시작되어 7만 병력을 이끌고 조조와 대치 중이었다. 유비에게 일부 빌려준 강릉 땅에 몇 배로 이자까지 붙여서 형남 전역을 돌려받을 생각이며, 유비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기에 애당초 형남 전체가 손권이 빌려줬다는 전제 자체가 개억지라면서 분개한다. 안 그래도 열세한 전력 탓에 피 말리는 중인데 유비가 전력을 다해 돕기는커녕 입촉을 노리자 분노하지만, 유비가 21세기 역사학도였던 곽선호에게 빙의되면서 생각을 바꿔 한중을 공격해 장로를 몰아내고 한중을 점거하는데 성공했다는 연락을 받자 안도하고 조조군에게 화살 서신으로 이를 알려 조조군을 물러나게 하는데 성공한다.

원 역사를 보면 손권이 먼저 유장을 치자고 유비에게 제안했었는데 유비가 '지금 조조와 맞서 싸우는데 같은 반조조연합인 유장을 치면 안 되고 또 유장은 자신과 동족이니 신의를 저버릴 수 없다'면서 군사를 동원해 길을 막고 '나는 유장을 치느니 머리 풀고 입산하겠다' 드립을 쳤었다. 그런 인간이 이제는 대놓고 유장의 통수를 치고 자기가 입촉을 하면서 손권의 통수도 같이 쳤으니 손권 입장에선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본 소설에서는 곧이어 현대인이 빙의된 유비가 당초 표면상 목적대로 유장의 구원과 장로의 정벌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해버렸기 때문에 그 정도로 손유동맹의 사이가 파탄나지는 않은 것으로 묘사되었고, 실제로 조조의 위공 즉위와 순욱의 자살을 손권 측에서 유비에게 알리는 식으로 동맹이 아직은 건재함을 보여준다.

유비가 실질적으로 한중 하나만 들고 있어 여유가 없고, 동맹에 협조적이기에 한동안은 기다려주고자 한다. 한중 일대가 형남의 기준에서 월경지이기 때문.

그러나 예상보다 더 빠르게 익주를 장악해 성도 함락을 코앞에 두자 원 역보다 더 빠르게 선공을 날려 익양대치가 벌어진다. 본인도 형주 파구의 후방인 육구까지 와서 지휘하고 있었으나, 예상과는 달리 유비군의 대처가 너무 빨라서 장사군의 점령도 절반뿐인 성공으로 끝나자, 단기간에 장사와 계양군까지 빼았는 건 어렵다고 깨닫는다. 그러자 장사의 선박을 불태워 유비군의 기동을 방해하고 임상에서 대치에 들어간다.

유비는 협상에 응하려는 생각과 별개로 손권에게 스트레스를 주며 후에 재차 배신할 때 망설이게 만들 계획. 또한 215년이라서 곧 조조가 2차 유수구 전투를 벌일 시점이 다가오기에 손권, 노숙, 여몽 셋 다 계속 형주에 있을 수는 없다.

결국 장사와 계양을 양도받으나, 손권이 원 역사대로 219년이면 분명히 배신할 것이라 확신한 유비는 이를 대비해 쇠사슬 작전을 준비한다. 인간성을 떠나서 강남 왕조는 생존을 위해 양번에 매달릴 수 밖에 없고 익주에서 형주를 지원해주는 건 장강 삽협에 가로막혀 힘들기 때문이다. 다른 때에는 제갈량이 빈틈없이 사수하니 망설이더라도 219년에 북벌이 시작되어 수비군이 줄면 (설사 유비와 아무 문제가 없었어도) 생각이 안 날 수가 없었다.

유비는 원 역사의 그를 배신자라고 생각은 하지만 손권이 죽는 순간 동오는 해체당하는 미래밖에 없다는 것도 알기에 조조에게 멸망하지 말라고 합비 공방전에서 쓰라고 300기의 서량군마를 선물로 주어서 친위대의 강화를 권했다. 합비 공방전은 손권이 무려 10만 대군을 몰아 친정했으나 장료, 악진, 이전의 7천 정병에게 야습당해 손권조차 죽기살기로 겨우 도망쳤을 정도로 크게 패한 전쟁이다. 감녕이 중용받는 것도 이 전투와 이후 유수구 전투에서 용장의 면모를 보여준 덕이었는데 하필 감녕과 그 부곡들이 죽었으니 손권이 죽을 가능성이 더 커진 셈이다.

결국 의기양양하게 벌인 합비 공방전에서 원 역사와 다를 바 없이 장료와 악진에게 대패한다. 유비가 준 군마 덕에 무사히 도주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이미 임상대치에서 별 성과가 없었던 판에, 적의 몇 배에 달하는 대군을 동원한 합비 공방전마저 대패해 권위에 타격을 입는다. 군민의 시선을 패전의 책임 소재가 아닌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고심하다 전사한 장군 진무의 장례식에 그가 아끼던 애첩을 순장하는 조치를 취한다.[2]

찬탈 준비에 모든 걸 건 조조는 자신에게 전권이 주어져야 할 분위기를 만드는 외부의 적으로 손권을 골라 2년에 한 번 꼴로 합비 방면으로 대군을 이끌고 대치 국면을 조성한다. 그때마다 호족들의 협력을 구하고 대군을 편성해 나가는 것이 위보다 국력이 약한 손오에는 큰 부담인데 조조 측에서 정말 손권을 결딴내려 공세적으로 나오는 것도 아니라서 적벽처럼 실적으로 바꿀 수도 없다. 손오 전체의 스트레스를 누적시키고, 무난히 확장을 거듭하는 유비를 향한 질투를 유발해 손유 동맹을 깨려는 조조의 계략이었는데 손권은 보기 좋게 넘어가 쳐들어오는 조조가 아니라 유비에게 질시 어린 시선을 던진다.

이는 조조가 손권의 성격을 간파하고 한 계책이었는데 유비군 참모들은 부친 손견이 천자를 구한다고 맹활약한 반동탁연합의 맹장이고, 형 손책은 생전 조조를 박살내겠다고 공언하고 다녔는데 손권이 아버지와 형의 유조를 어겨가며 조조 좋은 일만 시켜줄 이유가 무엇이겠냐며 아무리 그래도 배신은 안 할 거라 믿고 있지만, 유비는 모사들은 너무 매사를 '상식적으로' 보는 면이 있다고 혀를 찼다.[3]

217년 유수구 전투에서 제대로 조조군과 싸우기도 전에 전염병이 돌아 노숙, 능통이 쓰러진다.

3. 기타

간절히 작가의 전작인 아! 내가 마속이다에서 노년의 모습으로 나오던 인물인데 상대적으로 젊은 편인 본작에서도 어째 젊은 시절이라도 성격이 나빠 보인다(...)는 평을 듣는다. 심지어 매체에서 묘사되지 않던 순장 고증까지 나와서 더 비판을 받았다. 손권이 오래 살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새삼 손권이 오래 살기는 했다고 평한 독자도 있다.

많고많은 단점과 비난에도 강동에 있어선 매우 중요하고 호족들의 충성을 받는데, 왜냐하면 중앙 조정에게 수난을 당하던 강동의 독립정권 군주이기 때문이다. 자기 권력을 위해 당장의 이득을 보는 비겁한 짓도 주저않는 손권과, 중원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후한 시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강동 호족들의 의사 하비로 손씨 정권이 유지되는 것.


[1] 손권의 오왕 즉위는 221년. 오황제 즉위는 229년이다.[2] 이 일화는 정사에 기록된 실화로 후대 역사가인 손성이 임금이 할 행동이 아니라며 비판하기도 했는데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어 충격 받은 독자가 많다.[3] 21세기 사람의 기억이 있는 주인공의 입장에서 '상식'이 얼마나 의미가 없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