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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창군

조선 인조의 손자
복창군
福昌君
봉호 복창군(福昌君)[1]
본관 전주 이씨
이름 정(楨)
생부 인평대군
생모 복천부부인 동복 오씨
(福川府夫人 同福 吳氏)
부인 군부인 창원 황씨
(郡夫人 昌原 黃氏)
자녀 1남 1녀[2]
묘소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신평리
생몰
기간
음력 신사년 12월 29일 ~ 경신년 4월 26일
양력 1642년 1월 29일 ~ 1680년 5월 24일
1. 개요2. 생애
2.1. 초반2.2. 숙종 시기2.3. 사후
3. 가족 관계4.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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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후기의 왕족. 인평대군의 3남이다.[3]

2. 생애

2.1. 초반

봉군된 시기는 정확히 모르나 《승정원일기》를 보면 늦어도 1659년(효종 10년) 이전인 듯 하다. 1662년(현종 3년)에는 숭헌대부 품계를 받았다.

1665년(현종 6년)에는 내수사[4]에 바치는 용천 지역의 포와 공물 수백 석의 이익을 빼앗았다하여 추고받았다. 1668년(현종 9년)에는 동생 복선군, 복평군과 함께 사냥으로 백성들에게 민폐를 끼쳐 추고받았고 그해 6월부터 11월까지[5] 청나라에 진하 겸 사은사로 다녀왔다.

1673년(현종 14년)에는 청나라 책들에[6] 인조반정 관련 내용이 잘못 적혔다하여 현종에게 대응해야한다고 동생 복선군, 복평군과 함께 상소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674년(현종 15년) 9월[7]에 사촌형 현종의 임종을 지켜보았다.

2.2. 숙종 시기

현종이 승하 후 당조카 숙종이 즉위했다. 이후 복창군은 현종 비 명성왕후 김씨서인들의 견제를 받았다. 숙종이 왕이 될 때 나이가 불과 14세였던 데다, 흔히 알려진 강한 이미지와 달리 몸이 꽤 허약했기 때문에, 자칫하다간 계유정난같은 사태가 생길까봐 불안했던 것이다. 현종과 숙종은 외아들이라 남자형제가 없었고, 그렇다면 왕위를 넘볼만한 가장 가까운 왕족은 당숙(현종의 숙부 인평대군의 아들들)인 복창군 형제였다. 더군다나 명성왕후는 서인 측인데 복창군은 남인과 가까워서 더욱 위협적이었다.

숙종 초반인 1675년(숙종 1년)에는 사은사, 동지사로 다시 청나라에 다녀오는 등 별 무리 없이 활동했으나, 복창군이 청나라에 갔다오자마자 명성왕후의 아버지 김우명이 복창군과 그의 동생 복평군이 궁녀와 사통했다는 고발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홍수의 변’으로 부른다. 자세한 것은 명성왕후홍수의 변 문서 참조. 이 일로 복창군은 전라도 영암으로 유배갔으나 숙종남인들의 비호로 몇 달 만에 풀려났다.

그러나 1680년(숙종 6년)에 명성왕후의 사촌오빠 김석주의 사주를 받은 정원로가 “허견이 복선군을 옹립하려 했다”고 고변했고, 결국 이에 엮여 거제도에 위리안치 당했다가 그해 5월 24일에[8] 사사당했다. 향년 40세.[9] 자세한 내용은 삼복의 변(三福의 變) 참조.

2.3. 사후

복창군 사사 이전에 큰동생 복선군진도로 유배갔다가 교수형당했고, 작은동생 복평군교동도귀양갔다가 훗날 풀려나 1700년(숙종 26년)까지 살았다. 복창군의 딸은 이 사건으로 남편에게 이혼당하고 혼자 살게 되었는데 숙종이 내수사에 명해 먹을거리를 내리게 하였다. 복창군은 죽은 형 복녕군의 아들 의원군 이혁을 양자로 삼았으나 죄가 연좌되지 않도록 파양시켰다. 이후 1689년에 관작이 신원됨에 따라, 양자 완원군 이식으로 하여금 복창군의 제사를 받들게 했다.

1864년(고종 1년)에 고종이 벼슬을 회복시켜주었다.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신평리 인평대군 묘 서편에 있다.

3. 가족 관계

  • 부 : 인평대군 이요(麟坪大君 李㴭, 1622 ~ 1658)
  • 모 : 복천부부인 동복 오씨(福川府夫人 同福 吳氏, 1622 ~ 1658) - 감사 증 우의정 오단(監司 贈 右議政 呉端)의 딸
    • 형 : 복녕군 이욱(福寧君 李栯, 1639 ~ 1670)
    • 동생 : 복선군 이남(福善君 李柟, 1647 ~ 1680) - 삼복의 옥에 연루되어 처형됨
    • 동생 : 복평군 이연(福平君 李棩, 1648 ~ 1700) - 숙부 용성대군에게 입적
    • 동생 : 이금온(李金溫, 1654 ~ ?)
    • 동생 : 정중만(鄭重萬)의 처
  • 부인 : 군부인 창원 황씨(郡夫人 昌原 黃氏, ? ~ 1673) - 황도명(黃道明)의 딸, 김육의 외손녀이며 명성왕후의 고종 사촌
    • 장녀 : 정부인 전주 이씨(貞夫人 全州 李氏)
    • 사위 : 심중량(沈仲良, 1658 ~ 1725) - 심재(沈梓)의 아들
    • 양자 : 의원군 이혁(義原君 李爀, 1661 ~ 1722) - 큰형인 복녕군의 아들로 복창군이 처형되자 숙종이 연좌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 파양시킴
    • 양자 : 완원군 이식(完源君 李烒) - 동생 복평군의 4남
    • 며느리 : 무송 윤씨(茂松 尹氏) - 윤주(尹周)의 딸
      • 손자 : 무림군 이당(茂林君 李塘)
      • 손자 : 무춘군 이육(茂春君 李堉)
      • 손녀 : 유처중(俞䖏中)의 처
      • 손녀 : 윤순(尹廵)의 처
      • 손녀 : 권항중(權恒重)의 처

4.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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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4153E> 〈장희빈〉의 복창군
* 1995년 SBS 드라마 〈장희빈〉에서는 배우 김형일이 연기했다.


[1] 봉호는 어머니의 본관지인 전라도 동복현(同福縣. 현재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에서 유래했다.[2] 후술하겠지만 양자이다.[3] 2남과 4남은 일찍 죽어서 성인이 된 아들 중에서는 차남이다.[4] 조선시대에 임금의 비밀 사유 재산인 내탕금을 관리하는 기구. 내사(內司)라고도 한다.[5] 음력 5월 ~ 10월.[6] 《황명통기(皇明通紀)》, 《십육조광기(十六朝廣紀)》, 《양조종신록(兩朝從信錄)》 등이었다고 한다.[7] 음력 8월.[8] 음력 4월 26일.[9] 당시 나이 셈법인 세는나이 기준. 만 나이로는 38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