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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과 하와이 주의 관계.2. 역사
2.1. 미국의 하와이 병합 과정
하와이 왕국은 태평양 한가운데라는 지리적 이점에 더해서, 서구와의 교류도 활발했기 때문에 서구 문명을 꽤 많이 받아들여 상당한 수준의 근대화를 이루었다. 식민지화 되지 않고 정식 국가로 인정을 받아 서구 국가와의 교류도 있었다. 이때 미국에서도 많은 이민자가 와서 사탕수수 농장을 경영하고 있었는데[1], 이들의 힘이 점점 커져서 하와이의 국정을 좌지우지하게 되자 위기를 느낀 역대 하와이 왕들은 영국, 일본 등 열강에게 미국을 견제해 달라고 도움을 청했다. 그 중에서 일본에게는 보호령 편입을 청하였다. 실현되었다면 태평양 절반이 일본령이 되는 일이 일어났을 터이지만 당시 자기 몸 건사하기 힘든 일본은 영미에게 오가사와라 제도 영유만 승인받고 거절했다.결국 마지막 하와이 국왕인 릴리우오칼라니(Liliʻuokalani) 여왕이 미국인의 농장을 모두 국영화 조치를 해버리자 미국인들은 근처 미 해군 선박에 도움을 요청하였으며, 그 즉시 수병 150명으로 하와이 여왕을 추방하고 하와이 왕국을 멸망시킨 후 하와이의 미국 편입을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 대통령이 반제국주의자였던 그로버 클리블랜드였기 때문에 보류되었다.
결국 왕정을 무너트린 백인[2]들은 자신들끼리 샌퍼드 밸러드 돌(Sanford Ballard Dole)[3]을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해서 임시로 하와이 공화국을 설립하고 준비과정을 거쳐 1897년 합병조약을 체결한 뒤 하와이를 미국령으로 편입해버렸다.
2.2. 주 승격 이전
하와이 합병 직후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조선에 행했던 민족말살정책과 비슷한 것들이 시행되었다. 대표적으로 학교 등에서 하와이어의 사용과 교육을 불법으로 규정한 것. 학교나 놀이터 등에서 하와이어를 사용하는 것이 발각된 학생은 체벌을 포함한 징계를 받았고, 집 등 사적인 공간에서도 영어만을 사용하도록 강요받았다. 해당 법안은 1986년이 되어서야 폐지되었다.태평양 중심 해역에 자리잡은 지리적 환경은 군사전략상으로도 미 본토와 아시아를 잇는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부여하였으니, 미국령으로 편입되기 전인 1887년에 이미 진주만에 미 해군기지가 설치된 이래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의 중심부가 되었다. 일본군이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도발하는 최초의 표적으로 이곳이 선택되기도 하였다.
2.3. 주 승격 이후
1959년 8월 21일 하와이는 미국의 주로 승격되었다. 1960년대부터 하와이 주권운동이 다시금 고개를 들었는데 이에 대한 결과로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하와이인에게 미국의 통치 및 착취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를 했다. 하지만 대학에서 하와이 역사를 가르치는 강사/교수들(대부분 하와이 원주민의 피가 섞여있다.)은, 미국에 의한 강제합병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만큼 여전히 반감이 강하다. 어차피 사과만 했지 영토와 주권을 돌려준 것도 아니니 말이다. 가끔 하와이 주권운동가들이 시위를 벌이는데 2008년에는 옛 왕궁인 이올라니 궁전을 점거하는 시위가 두 차례 벌어지기도 했다.미국 본토의 상당수의 주와 마찬가지로 국경일인 콜럼버스 데이를 챙기지 않는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이 식민지 착취의 시작이기 때문. 그래도 각 주마다 콜럼버스 데이에는 명칭을 바꿔서 휴일로 한다(Indigenous Peoples' Day 즉, 원주민의 날).
2016년 하와이 원주민이 미국 연방정부와 동등한 지위에서 협상할 수 있는 자치 정부 수립 여부가 투표에 부쳐졌다. #
3. 관련 문서
[1] 이들은 거의 대부분 반세기 전에 하와이로 선교를 온 성직자들의 자손이었다.[2] 백인들을 지칭하는 단어로 하울리(Haule)라고 부르는데, 원래 하와이어로서의 뜻은 이방인이라는 뜻이지만, 당시 이방인들은 모두 백인이었기 때문에 현재 백인을 가리키는 단어가 되었다. 나쁜 단어는 아니지만, 백인들 앞에서는 하울리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3] 식품 회사인 Dole의 창업주 제임스 돌의 사촌. Dole은 샌퍼드 돌이 하와이에서 권력을 잡고 자신의 사촌인 제임스 돌에게 막대한 파인애플 농장 이권을 줘서 생긴 회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