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어떤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짓겠다며 첫 삽을 뜨면 최대한 빨리 그 나라 주식 시장에서 빠져 나와라.
존 캐스티, <대중의 직관> 중
존 캐스티, <대중의 직관> 중
마천루의 저주(Skyscraper Curse)란 역사적으로 '초고층 빌딩의 건설 열풍은 경제 위기를 예고한다'는 일종의 경험적 가설이다. 1999년 도이체방크의 분석가 앤드루 로런스가 100년간의 건설업계 사례를 분석하여 주장했다.
2. 분석
마천루의 저주가 발생하는 이유로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크게 2가지 원인을 꼽을 수 있다. 물론 이 원인들은 상충하는 것은 아니고,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다.2.1. 비용 및 시간의 문제
마천루의 저주는 실제로는 공사 기간의 장기화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경기 순환 이론에 따르면 경기는 대략적인 주기를 따라 호황과 불황이 반복해서 나타나며, 주글라 파동(약 10년 주기), 쿠즈네츠 파동(약 20년 주기), 콘드라티예프 파동(50-60년 주기) 등이 있다. 반면 마천루는 검토에서부터 첫 삽을 뜨고, 완공하기까지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는 프로젝트이고, 이러한 기간이 길어질수록 각종 불확실성에 노출될 가능성은 커지기 때문이다.따라서 이는 시간적 관점으로 보면 큰 수의 법칙에 걸리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저층 건물이야 비용도 시간도 적게 소요되기에 그런 리스크가 적지만, 마천루 건설에는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시간 역시 상당히 소요된다. 그렇기에 보통 통화 정책 완화 시기에 마천루의 공사가 시작되지만, 경기 과열이 정점에 이르고 버블이 꺼지면서, 완공 시점에서는 불황의 직격탄을 맞는 것이다.
그렇다고 불황 시기에 마천루를 짓기에는, 공사 비용을 충당할 수단이 여의치 않는다. 결국 돈지랄을 할만한 시점이 돌아올 때 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고, 그 때에 와서야 마천루의 공사가 시작된다. 물론 완공까지는 하염없는 시간이 소요되고, 완공 시점이 되면 돈잔치가 끝나게 되어버리니, 머피의 법칙 마냥 어쩔 수 없이 성립되는 것이다. 모듈러 공법 등 신공법을 이용해 어떻게든 공사 기간을 줄이려는 것도, 거품이 꺼지기 전에 빨리 완공해서 분양해 줘야 건설사 입장에서도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1930년대에 지어진 두 빌딩만은 예외인데, 서로 마천루 경쟁을 벌이던 크라이슬러 빌딩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그렇다. 두 빌딩은 짓는데 단 1년 밖에 걸리지 않았으며, 심지어 당시는 대공황이 막 시작되던 시기였다.
2.2. 허영의 높이
땅값이 비쌀수록 건물을 높게 짓는 게 효율적이기 때문에, 마천루를 짓는다는 것은 그 지역의 땅값이 정점을 찍은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일부 도시에서는 땅 문제보다는 그냥 돋보이기 위해서 마구잡이로 짓기도 한다. 사실 '허영의 높이'라고, 신흥국들이 자신의 부를 과시하려 하거나 독재정권이 정권의 치적으로 삼겠다는 욕망 때문에 마천루를 줄줄이 짓는 경우도 많다. 물론 이 역시 후대에 경제적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큰 틀에서 보면 이것 역시 마천루의 저주에 해당한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류경호텔[1]이 꼽힌다. (한겨레 기사)'허영의 높이'는 초고층 빌딩은 물론이고, 소형 빌딩 등 일반적인 건물에도 적용된다. 특히 발주자의 허영이 크게 작용하는데, 이런 허영이 과도한 대출 등 리스크 관리 부실로 이어지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모종의 사유로 발주자가 흔들리기도 하는데, 이로 인해 공사 대금을 제 때 지급하지 않아 유치권에 들어가거나 아예 폐건물이 되는 일도 수두룩하다. 이렇게 공사가 중단되기라도 하면 당연히 시간적인 면에서도 손해이기 때문에, 결국 소형 건물이라고 마천루의 저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단지 마천루에 비해 경제적 악영향이 적을 뿐이지, 주변 환경이 흉흉해지는 등의 사회적 악영향은 마천루와 다를 게 없다.
비슷한 사례로, 이스터 섬의 경우 자원이 고갈될수록 더 큰 모아이를 지으려 했다고 한다. 크게 할수록 이득이 커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다고 하는데, 그런 이치로 보면 이 역시 넓은 의미에서 마천루의 저주에 부합한다. 종교적인 설도 있고 부족간 경쟁이라는 설도 있는 등 다양한 설이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비슷하다.
3. 사례
-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크라이슬러 빌딩
건설을 시작한 1930년, 완공된 1931년은 한창 세계 대공황 중이었다.
- 세계무역센터와 시어스 타워
두 마천루 모두 완공 후 1970년대 오일 쇼크로 스태그플레이션 발발. 세계무역센터의 발주자인 뉴욕시는 1975년에 파산 위기에 직면해 연방정부의 구제 금융으로 겨우 생존했지만 2001년 9.11 테러로 인해 엄청나게 큰 피해를 입었다. 시어스 타워를 발주했던 시어스는 1970년대로 들어서면서 바닥없는 추락을 거듭하다가 결국 미국 최대의 유통업체 자리를 월마트와 아마존닷컴에게 넘겨주고 2018년에 파산한다.
- 63빌딩
1997년 외환 위기로 1999년에 옷로비 사건이 결정타가 되어 신동아그룹 파산. 이후, 해당 마천루의 소유권은 한화로 넘어감. 덧붙여 시공사인 신동아건설은 1989년에 독립(신아그룹)했으나 결국 파고를 넘지 못하고 2001년 일해토건에 인수되었다(단, 21세기에도 활발히 건설 중).
- 도쿄도청, 요코하마 랜드마크 타워
각각 1991년, 1993년 완공.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되었다.
-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
1997년 말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로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대한민국, 홍콩, 러시아, 아르헨티나 순으로 위기를 맞았다.
- 상하이 세계금융센터
완공된 2008년은 한참 세계금융위기가 현재진행형이었다.
- 상하이 타워
2016년 완공 및 개장 이후 중국 경제의 성장이 둔화되어 2018년이 되어도 건물의 위쪽 절반 정도는 사용되지 못하고 비어있다. 단면이 모양이 독특해 면적 대비 실제 사용 가능한 가용면적이 적고 화재 등 소방시설 허가가 지연되어 개장이 늦어진데다 개장하기로 예정된 호텔도 아직도 열지 않아 임대가격이 비싸서 임대율이 절반이 되지 않고 15억 달러의 부채를 지고 있으며, 설상가상으로 사용 중 급수관이 터지는 등 부실시공 문제도 빈발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 롯데월드타워
2015년 건설 도중 삼성그룹과 현대그룹 못지않은 경영권 분쟁을 겪었다. 이후 이렇다 할 호재 없이 4차 산업혁명에도 후발주자로 뒤쳐저서 그룹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소릴 듣는다. 이후 2024년에 롯데그룹 유동성 위기설로 인해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