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9-16 10:36:10

마상쌍검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쌍검(무예도보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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馬上雙劍
무예도보통지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권 찌르는 무기 장창(長槍), 죽장창(竹長槍), 기창(旗槍), 당파(鐺鈀), 기창(騎槍), 낭선(狼先)
2권 베는 무기 쌍수도(雙手刀), 예도(銳刀), 왜검(倭劍), 교전(交戰)1
3권 제독검(提督劍), 본국검(本國劍), 쌍검(雙劍), 마상쌍검(馬上雙劍), 월도(月刀), 마상월도(馬上月刀), 협도(挾刀), 등패(藤牌)
4권 치는 무기 권법(拳法), 곤방(棍棒), 편곤(鞭棍), 마상편곤(馬上鞭棍), 격구(擊毬), 마상재(馬上才)
1:흔히들 왜검교전이라고 이야기하나 무예도보통지에는 '교전' 이라고만 되어 있다. }}}

1. 개요2. 난이도
2.1. 말의 조작2.2. 조선쌍검술의 특성2.3. 위험성
3. 마상쌍검의 필요성4. 평가5. 기타6. 관련 문서

1. 개요

마상육기의 하나. 무예도보통지 3권에 기록된 무예로 위에서 검 두 개를 사용하는 기법을 말한다.

마상쌍검의 자세 명칭 중에는 항우도강세(項羽渡江勢), 손책정강동세(孫策定江東勢), 한고환패상세(漢高還覇上勢), 운장도패수세(雲長渡覇水勢)처럼 중국 무장들의 이름이 사용되었다. 특히, 마상쌍검은 정면에 말 머리가 있으므로, 몸을 좌우로 많이 비틀어 양 옆의 적을 신속히 베는 것이 주류를 이룬다. 당연히 마술(馬術)이 능해야만 수련이 가능했다.

2. 난이도

2.1. 말의 조작

일단 '말 위에 탄 채로' 쌍검을 휘둘러 대는 매우 어려운 기예이다. 과거 등자의 품질이 좋지 않았을 때는 더욱 사용하기 힘든 무술이었다. 근대부터 서양에서 개발된 우수한 등자를 사용할 수 있는 현대인들에게도 이런 마상무예는 매우 어렵다. 기마궁수들도 달리는 말 위에서 활을 쓰기 힘든데, 하물며 양팔을 이리 저리 휘둘러대야 하는 마상쌍검의 난이도는 언급할 필요도 없다.

더군다나, 쌍검 때문에 말의 고삐를 쥘 수 없으므로, 말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매우 힘들어진다. 물론, 몽골 같은 곳에서는 고삐를 잡지 않고 허벅지만으로 말을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니 비슷한 케이스로 볼 수 있다. 오토바이와 달리 말은 의지를 가진 생물이니 잘만 훈련시키면 불가능하지만도 않은 일이다. 관련 자료.

사실 조선시대의 마상재만 보더라도, 말의 고삐를 빼고 달리는 기술 자체는 익숙하게 수련되었고 마상재의 난이도가 더 높기에 마상쌍검의 고삐를 놓고 칼을 휘두르는 동작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당장 마상편곤처럼 한손이 아니라 양손으로 큰 편곤을 휘두르는 기마술은 세계사적으로 드문 걸 보았을 때, 당시 조선의 기수들의 실력을 알 수 있다. 조선 통신사에서도 최고 인기있던 부분은 일본에서 볼 수 없는 마상재들의 묘기들이었다.

2.2. 조선쌍검술의 특성

조선시대의 쌍검술은 2개의 칼을 휘두르는 동작은 이미 완성되어 있는 '하나의 동작'을 매 상황마다 꺼내서 사용하는 방식이다. 즉, 손에 쥔 칼의 개수와는 상관없이 미리 하나의 동작을 '루틴'으로 저장해두었다가 재현하는 것이므로, 이런 방식이라면 칼을 1개만 써서 내려치든 2개를 써서 내려치든 운동 안에서는 극단적인 차이가 없는 일이 된다. 조금 더 복잡하게 칼을 사용하는 '한번의 행동'일 뿐이 되는 것이다. [1]

한마디로, '미리 연습해둔 하나의 춤 같은 동작' + '말을 탄다' 라는 개념을 합친 것으로 이해하면, 마상재격구 같은 마상무예가 발달했던 조선시대의 기준으로 "마상쌍검술"이 가능케 된다. 실제로 이런 방식으로 현실에서도 재현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2.3. 위험성

마상쌍검의 체술적인 기반이라고 볼수있는 기마 서커스 마상재가 당시 국제적으로 유명했던 조선 기병들의 장기였기 때문에, 마상쌍검이 조선시대의 기병들에게는 가능했던 기술이다. 마상재를 구사할 수 있는 실력이면 그 것보다 쉬운 마상쌍검도 가능할 것.

그래도 땅에서 두 발 딛고 월도, 협도 따위를 수련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위험하다. 당연히 다른 마상 무예처럼 기마술에 탄탄한 기반을 수련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 위에 검술 훈련을 한다. 말이란 평생을 타본 전문기수라도 말의 상태나 노면 상태에 따라 죽을 수도 있는 것이라 목숨걸고 하는 일이란 것을 잊으면 안된다.

3. 마상쌍검의 필요성

참고로, 조선의 마상쌍검은 분명히 구현 가능했던 기술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시대의 주변 국가에서도 유명할 정도였던 마상재의 존재 때문에 기술적으로는 가능했다. 하지만, 얼핏 군사과학적으로는 기병의 주요역할인 기동타격, 중량싸움, 전략기동과는 동떨어진 무예이기에 최근에는 좀 더 과학적인 필요성을 중심으로 해석하는 경항이 있을 뿐이다.
  • 수련용 무예: 마상재보다 한 단계 쉬운 마상쌍검술도, 격구처럼 무예의 한 갈래라는 평가도 있다. 격구에서 실전 무술로 넘어가는 중간 수련 과정이라는 설.
  • 저강도 분쟁 시 전투훈련: 흔히들 착각하는데, 이미 춘추전국시대부터 도검은 오늘날로 치면 소총 같은 주무기보단, 권총 같은 보조무기였다. 전장에서 주무기는 이미 간극 장병기들이 대세였고, 그보다 저강도 분쟁 상황이나 오와 열을 갖춘 군대가 아닌 각개 싸우는 난전 형식의 전투에서 쓰이는 무기였다. 보병도 적 창보병 앞에서 칼을 주무기로 삼지 못한다. 체력관리가 중요했던 당시의 기병들이 소지하는 무기 중에서 가장 가벼운 병기였던 칼 2자루만으로 기병이 자신의 몸을 지키는 호신술 목적, 혹은 난전에서의 경보병 격파가 필요한 등등, 특수한 기병의 돌격 상황을 상정하고 훈련하는 제식무술이었다. [2] 애초에, 마상쌍검술은 기마검술의 카테고리 안에서 필요성을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기본적으로, 기마검술은 경보병과 후방부대를 격파하는 무장으로 주로 쓰였으므로 기병에게 칼을 2개나 쥐어주고 훈련하는 목적을 전투력이 떨어지는 후방의 비무장 병력에게 더 큰 충격효과를 주는 데에 있다고 보는 것은 가장 직관적인 해석이다.
  • 비정규전에서 정찰부대 사이의 무력시위: 근대까지도 기병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정찰과 탐색을 비롯한 비정규전 임무였다. 즉, 정찰 및 탐색 임무를 맡은 기병부대끼리의 비정규전투 접촉, 무력시위, 블러핑을 상황을 상정하여 마상쌍검 같은 기마무술의 훈련 가치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실제로도, 세계 각지의 군용무술 중에는 불필요해보일 정도로 화려한 기술이 종종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특히 특수작전 혹은 정찰부대와 같은 비정규전 병력들이 적의 정찰부대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블러핑 전술로서 일반적인 병사보다 복잡한 무술을 수련했다. 실제로, 이 해석 또한 가능성이 꽤 높다고 한다.[3]
  • 정보전 및 심리전 용도: 위처럼 기병은 단순한 전투병력인 것만이 아니라, 정보를 수집하는 현대의 정찰부대 같은 목적으로도 매우 독보적인 병력이었다. 그리고 당시의 정보 습득의 핵심은 전투지역 인근의 주민들이었는데, 이러한 정보원들을 통제할때는 전면전 군사병력들의 군사교리와는 동떨어진 과시적인 무예와 심리전이 동원되었다. '우리들의 군대는 이렇게 화려한 무술을 사용할 수 있다' 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해당 지역의 주민들을 정보원으로 회유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즉, 이런 전략적인 기병의 운용 방식에서 본다면, 당시 무관들의 판단으로는 마상재와 검술을 결합한듯한 마상쌍검을 정식 훈련과정으로 편성할만한 이유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4. 평가

일단 마상 무예는 기수가 무엇으로 무장하든 일단 말을 능숙하게 조종하는 것부터가 기본이다. 안 그래도 기수는 소중한 인재고 군마도 소중한 자산이니, 낙마하지 않고 제대로 말을 다루지 못하면 기병이 되지도 못했다. 따라서 조선시대에는 마상재를 기반으로 기수들의 평균 수준이 뛰어난 기반 위에서 마상쌍검 같은 세계사에서 희한한 기병을 정식 편제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수 인재풀이 존재했단 것이다. 당대 말을 타고 벌이는 기술의 숙련도를 증언하는 기록으로서 소중히 생각해야할 것이다.

현대인들이 "무"라는 개념을 지나치게 현대적인 의미의 '실전'으로 모든 의미를 재단하려 한다는 문제도 있다. 당시는 마상재격구 또한 당당한 "무예"의 한 갈래였던 시대였다. 즉, 무예적인 의미만으로도 충분히 정신적인 가치가 있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전략자산인 기병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평가이다.

옛날 사람들은 전사와 일반인 간의 영양수준부터 워낙에 차이가 났으므로, 마상쌍검술을 어떻게든 사용할 경지로 수련해놓기만 했다면, 실전에서도 써먹을 전력이 되었다. 특히 중기병의 역할은 그들이 휘두르는 무기의 살상력 뿐만아니라, 종합적으로 나타나는 위용과 상대 전력에 대한 충격을 줘서 진을 무너뜨리는 능력이 중요했다.

5. 기타

영국의 유명한 미니어쳐 제작자 중에서 역사 구현에 관심이 많은 페리 형제임진왜란을 소재로 한 미니어처 게임을 만들다 한국의 오크타운 주인장인 워보스가 각종 조선의 무기와 갑옷들의 정보를 알려주고 위의 사실을 언급하자 마상쌍검을 쓰는 부대가 실제로 있다[4]는 사실에 하악대며 피규어로 만들고, 결국 모델로 구현되었다. 조선 만세

엠파이어즈 근대사회의 여명에도 조선의 기병 중 하나로 등장. 적 공격시 스스로를 조금 치료하는 능력이 있다. 문제는 이게 적 목표물의 종류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공격 성공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거라 탱크나 건물을 칼로 내리쳐도 체력이 회복된다.[5]

정사인지는 불분명 하지만 후에 기록된 연의등 여러 매체에서 삼국지의 유비가 그 어려운 마상쌍검술을 주력으로 사용했다는 묘사로 유비도 실제로는 상당한 무술의 실력자였을거라는 추측이 있다.[6][7] 그리고 이 추측을 토대로 만들어진 정설개드립유비 패왕설(...).

16세기 임진왜란 직전에 여진족 토벌 작전을 기념하기 위해 그려진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壯襄公征討時錢部胡圖)를 보면 무려 마상쌍검을 실전에서 운용한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1 #2 두 번째 그림에는 심지어 마상쌍철퇴를 쓰기까지 한다. 저항하는 여진족 중에도 쌍대도를 들고 맞서는 보병이 있는 걸 보면 의외로 실전에서 쌍검이 많이 운용된 것으로 보인다.

6. 관련 문서


[1] 물론, 설명하기 위해서 이렇게 적은 것이지, 실제로는 이런 식으로 수련하거나 생각해선 안 된다. '말을 타고 있다' 라는 더 근본적이고 위험한 기반을 생각하며 상황에 맞추어 대처하는 방식으로 마상재와 마상무예를 하지 않으면 반드시 인명피해로 이어지는 큰 사고가 난다.[2] 전략적인 관점에서 기병에게는 활,창,곤이 더욱 중요한 무기이며 항상 우선적으로 단련하고 조선군에서도 이를 가장 먼저 관리 및 지급했다. 당대의 조선 군대에서도 이미 강력한 편곤과 기병용 조총 위주로 장비했다.[3] 심지어, 현대의 특공대 사이에도 이러한 블러핑과 무력시위 기만전술이 부대별로 몇개씩 존재한다. 일반적인 전면전에서는 화려한 무술동작이 자살 행위와 다름없지만, 비정규작전에서는 소수 병력들 사이에서 무술실력을 뽐내는 기싸움의 효과가 실제 싸움을 회피하고 꽤 유용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주로 비정규작전을 수행하는 특수부대 사이의 블러핑의 가치에 대한 추측은 꽤 있다.[4] 실제로는 운용비가 장난이 아니었던지라 소수 운영에 그쳤다.[5] 애초에 이 게임은 고각사격을 위해 포신을 위쪽으로 올린 조선의 대완구가 2차 대전 88 대공포보다 사거리가 길고, 조선군에 화랑이 있는 게임이다. 참고로 여기 화랑은 적 유닛의 체력이 50%이하가 되면 그 유닛이 뭐든 간에 무조간 한방에 죽인다(...)[6] 사실 그런 난세에 자기 몸 하나 지킬 무술은 필수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 조조나 원소, 원술 등도 소싯적에 검 좀 썼다는 말이 있으니 유비라고 검 정도는 못쓸 이유가 없다. 문제는 칼 좀 쓴다 수준과 말 위에서 펼치는 마상쌍검의 난이도이긴 한데, 유비는 당시 군주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약소한 세력으로 전장을 구르며 살아남은 실력자임을 감안할 때, 연의마냥 싸움을 꺼리고 회피하는 모습보다는 기마술 및 무예에 능숙한 모습이 훨씬 상식적으로 어울리기도 한다.[7] 게다가 이 시절이면 등자가 없었을 가능성도 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