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도보통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1권 | 찌르는 무기 | 장창(長槍), 죽장창(竹長槍), 기창(旗槍), 당파(鐺鈀), 기창(騎槍), 낭선(狼先) |
2권 | 베는 무기 | 쌍수도(雙手刀), 예도(銳刀), 왜검(倭劍), 교전(交戰)1 | |
3권 | 제독검(提督劍), 본국검(本國劍), 쌍검(雙劍), 마상쌍검(馬上雙劍), 월도(月刀), 마상월도(馬上月刀), 협도(挾刀), 등패(藤牌) | ||
4권 | 치는 무기 | 권법(拳法), 곤방(棍棒), 편곤(鞭棍), 마상편곤(馬上鞭棍), 격구(擊毬), 마상재(馬上才) | |
1:흔히들 왜검교전이라고 이야기하나 무예도보통지에는 '교전' 이라고만 되어 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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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병기를 익히기 전 수족을 원활하게 하고 지체의 힘쓰기를 익히기 위한 무예의 첫 시작이라고 적혀 있다. 지금이야 법이 있는 시대고 화약병기가 있는 시대이니 만큼 냉병기를 들고 칼부림을 할 이유가 없기에 무술하면 대부분 맨손무예를 칭한다. 하지만 화약병기가 아직 주류가 되기 이전인, 냉병기가 주류이던 시절에는 맨손으로 하는 기예는 외적을 방어하는 개념으로의 武로는 좀 덜한 인식을 가졌다. 칼이나 창 들고 쳐들어 오는데 맨손으로 막는다는 게 말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다만 몸을 단련하는 기초로는 이만한 게 없으므로 초보 훈련용 및 기초체력 단련용으로 훈련한 것이다.2. 상세
무예도보통지의 맨손무예는 권법(拳法)이라는 이름이 당당하게 붙어 있다. 송태조 32세 장권을 기초로 하고 있는데, 수입해 온 이후로 자체적으로 수련하면서 이것저것 빼먹다보니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중국의 맨손기법을 기초로 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현각허이세 같은 경우는 오른발로 오른손을 차고 왼발로 왼손을 차는 식인데 이것은 중국권법에서 발차기를 정확하게 차서 경쾌한 소리가 나는지에 대한 자체 시험이기도 하다.[1] 중국권법의 투로에는 이러한 형태가 꽤나 많다. 현대 태권도에도 품새에 그러한 동작이 남아있다.현각허이세, 칠성권세, 도삽세, 하삽세, 복호세 등 꽤나 위압적인 세가 나오지만 실제로 언해본의 해석을 보면 무슨 필살기식의 개념이 아니라 한자가 가지는 함축성에 의해서 그렇게 상상되는 것일 뿐, 막상 해보면 그리 대단한 동작들이나 아크로바틱한 동작들은 없다.
왜검의 경우는 혼자서 수련하는 투로와 함께 합을 맞추는 교전이 따로 있는데 비해서, 권법은 갑, 을 두 사람이 각자 혼자서 세를 전개하다가 도중에 갑자기 갑과 을이 서로 합을 맞추는 방식으로 나가는 등 처음 보면 약간 난해해 보이기도 하다.[2] 과거 경당에서는 이 권법을 정도술의 기법을 많이 가미시켜서 수련했었고 많이 엉뚱한 동작들이 나오기도 했다. 십팔기 쪽과 더불어 권법이라는 이름 대신 '현각권'이라는 좀 더 그 당시에는 뽀대난다는 이름으로 수련생들 사이에서 불리기도 했다.[3]
예도와 마찬가지로 증(增) 이라 해서 추가된 세가 좀 있다. 이 증에 얽힌 부분이 흥미로운 부분으로, 무예도보통지의 권세는 38세이고 무예도보통지 권법이 기초로 삼은 태조장권은 32세이므로 얼핏 생각하면 6세가 증입된 것처럼 보이며, 이 추가된 6세가 조선 고유의 수박이라고 주장하는 사이비 무술 단체도 있다. 하지만 사실은 증입된 것은 10세이며,[4] 그 내용도 중국 무술에서 가져온 것이므로 무예도보통지 권법 상에는 조선 고유의 수박 같은 건 없다.
무예도보통지로 이르는 조선 무서 출간의 흐름은 무예제보 → 무예제보번역속집 → 무예신보 → 무예도보통지로 흘러간다.
무예제보에는 곤방, 등패, 낭선, 장창, 당파, 쌍수도의 6기만 쓰여있었으며 이는 사실상 원앙진에 쓰기 위한 최소한의 구성에다 곤봉, 쌍수도만 더한 것이었다.
이후 출간된 무예제보번역속집에는 무예제보에 넣지 못했던 권, 언월도, 구창, 협도, 왜검 등이 추가되었다. 번역속집에 따르면 기효신서 민본과 당본을 얻어 참고하고 새보전서 또한 참고했다고 했으며, 여기 추가된 권법은 기효신서의 권보 50세와 송태조 장권 32세를 기반으로 추가한 것인데, 그렇다고는 하나 태조장권 32세를 그대로 내지는 않았다.
이후에 무비지가 들어와 무비지를 참고로 무예신보를 내고, 무예신보로부터 51년 후에 무예도보통지가 나오는데 무예도보통지의 권보는 결국 태조장권 32세에 새보전서와 신서에 있던 것을 합해서 이래저래 섞어놓은 형태였다.
무예도보통지 상에서 이르기를 '중국의 32권은 자세의 맥락이 꾸준히 이어지고(즉 쭉 이어서 투로를 행할수 있다는 뜻) 또한 갑, 을이 상호가 공수 기술을 주고받는 형태로 이루어지는데(구미타치 또한 가능했다는 말), 근데 구보(무예도보통지 이전에 나온 무예제보번역속집, 무예신보)상에서 나온 그대로 재현하면 상호 공수가 실제로 제대로 되는 건 몇 자세 되지 않더라. 게다가 구판을 그대로 하다보니 좀 끊긴 부분이나 실제로는 수련하지 않는 부분이 생기는 등 수련과 전수 도중에 잘라먹는 일이 많이 생겼다. 그래서 열가지 자세가 없어졌는데 그걸 무예도보통지에 와서 추가로 덧붙였다(증)'고 쓰고 있다.
구모 상에서도 이미 태조장권 32세를 그대로 행하지 않았다. 무예도보통지 상의 38세 - 태조장권 32세 하면 6세가 늘어났으니까 왠지 추가한 것 같지만, 사실은 구보를 재구성하면서 퍽 줄인 것이다. (구보 상에서 권법은 40세 좀 넘는다) 또한, 무예도보통지 권법은 그 재구성이 갑, 을이 같은 타이밍에 투로를 전개해 상호 공수를 주고받는 구성이 되도록 구성하려 애썼기 때문에 태조장권을 그대로 구성한 것이 아니라 태조장권 상의 자세를 가져다가 이래저래 변화시킨 것이다.[5]
요약하자면, 조선에서 훈련하던 권법은 송태조 장권 32세를 기초로 기효신서 권보를 참고로 한 것인데, 무예제보번역속집-무예신보를 거치는 오랜 세월 동안 조선은 까먹던지 좀 이해가 안 가던지 해서 임의로 내용을 몇 군데를 빼먹고 수련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무예도보통지를 출간할 때쯤 되자, 조선에서 수련하던 형태를 재구성한 28세에다가 무비지 상의 태조장권을 보고 잘라먹은 기술들을 확인해서 증 10세를 추가하여 무예도보통지 권법 38세를 만든 것이다. 무예도보통지 권보 38세 중 태조장권에 직접 등장하지 않는 것은 오화전신세와 씨름 뿐이며,[6] 나머지는 갑, 을 상호 공수 대련을 위해서 짜 맞추다보니 반복된 것이 많다.
많은 무예도보통지 재현 단체들이 있지만, 원문에만 충실하기로는 무예24기 협회가 제일이라고 익히 알려져 있다. 십팔기협회쪽은 기본 투로나 동작이 중국무술에 기반한 것들이 상당수 있지만, 어차피 무예도보통지가 중국무술이 베이스인 이상 그 근본적인 무술에서 조선의 무예복원을 했다는 것이 비판받을 일은 아닌 듯하다.
사실 무예도보통지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그림만 본 투로나 동작을 복원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또한 동작 하나하나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는데 원 그림의 동작만 복원한다는 것이 무예로서 어떤 가치가 충분히 주어질 수 있을까?
왜검과 마찬가지로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된 권법은 매우 원시적인 형태의 중국권법의 형태로 단련 여하에 따라서 쓸 수는 있겠지만, 그러느니 그냥 정통 중국권법 배우는 것이 이득이다.[7]
[1] 깔끔하게 팡! 소리가 나면 정확하게 발길질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2] 사실 시작부터가 두 사람이~라고 해서 두 사람이 함께 권법을 시작한다고 나오고 있다.[3] 그런데 웃긴 것은 현각허이세라는 명칭에는 오히려 경당에서 했던 복원 모습이 훨씬 나아보이기도 했다는 상황이다. 다만 투로 없이 그림만 보고 복원한 것이라 초기에는 대체적으로 영 별로였던 듯하다.[4] 이건 무예도보통지 권법 한번만 읽어보면 아는 내용이다.[5] 증 10세는 란찰의(나찰의), 금계독립세, 정란, 귀축각, 지당세, 수두세, 신권, 일조편, 작지룡, 조양수. 전부 무비지 태조장권 32세 상의 기술이다.[6] 이 씨름도 별 쓸데없는 짓이라고 투덜거리면서도 우리가 전통적으로 그렇게 수련해왔으니까 빼기는 뭐해서 그냥 놔둔다-고 적혀 있다.[7] 무예24기 협회 같은 곳이야 '완전한 복원'이 목적이고 개개의 기예보다는 진법으로의 완성도를 더 중요시 하며 실전같은 것은 니들이나 해라 하는 식이기 때문에 애초에 이러한 고민 자체를 하지 않지만 일반 수련자의 경우는 실전이라는 놈이 또 작용을 한다.[8] 애초에 군사 훈련 종목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