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리일규 Ri Il-kyu | |
출생 | 1972년 ([age(1972-01-01)]세) |
평양시[1] | |
현직 |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2]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제21기) |
가족 | 배우자, 자녀 |
학력 | 평양외국어학원 (프랑스어과 / 졸업) 쿠바 아바나대학 (프랑스어과 / 졸업) 평양외국어대학 (에스파냐어과 / 졸업) |
경력 | 주 쿠바 북한대사관 3등(대외직급 1등) 서기관 (2011. 9 ~ 2016. 1) 북한 외무성 정책종합국 과장 (2016. 4 ~ 2016. 12) 북한 외무성 아프리카, 아랍, 라틴아메리카국 부국장 겸 당세포비서 (2016. 12 ~ 2019. 2) 주 쿠바 북한대사관 참사 겸 당세포비서 (2019. 3 ~ 2023. 1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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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전 외교관.2023년 11월경 탈북해 대한민국에 정착하였고, 이후 2024년 7월 16일 조선일보의 단독 보도로 공개되었다.
2. 생애
2013년 청천강호 억류 당시 파나마로 파견된 리일규 (왼쪽) |
쿠바 대사관의 3등서기관(대외직급은 1등서기관)으로 근무하던 2013년, 파나마에서 북한 선박 청천강호가 쿠바에서 지대공 미사일과 MiG-21 전투기 부품을 싣고 통과하려다가 압류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리일규는 파나마와 교섭을 벌여 청천강호의 억류를 해제시키고 선원과 선장을 석방시켜 김정은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평양의 외무성에서 2016년 4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정책종합국(1국) 과장, 이후 2019년까지 아프리카, 아랍, 라틴아메리카국 부국장 겸 당세포비서로 근무하였다. 2018년 미겔 디아스카넬 당시 쿠바 국가이사회 위원장의 방북 행사 등을 총괄하며 여러 차례 김정은과 대면하기도 했다.
2019년, 쿠바 대사관의 정무참사(정치 담당 참사관)에 임명되었다. 이때 맡았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한국-쿠바 수교의 저지였다.
2.1. 탈북
조선일보와의 인터뷰 | BBC코리아와의 인터뷰 |
탈북을 결심하게 된 직접적 계기는 노력에 대한 불평등한 평가, 그에 대한 좌절감과 분노 때문이었다. 북한 외무성은 주로 권세 있는 집안 출신이 많은데, 본인은 사무(事務) 출신으로 사회성분[5]이 노동자나 군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지 못해 최하위 직급으로 입직하여 성실히 노력해 고위직에 올랐다고 밝혔다.
2019년 8월, 쿠바에 북한식당을 내기 위해 평양에 가자 외무성 대표부지도와 부국장이 적잖은 뇌물을 요구했는데 리일규는 자금 여유가 부족해서 미뤘다. 이에 대표지도부과 부국장은 앙심을 품고 그를 소환하려 했고, 업무평가에도 불이익을 주었다. 2023년 목디스크로 오른팔 마비 증상이 생겨 멕시코로 이동해 치료하게 해달라고 외무성에 요청했으나 24시간도 되지 않아서 거절당했고, 이때 격분하여 북한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부모와 장인, 장모가 모두 사망한 것과 자녀의 미래에 대한 생각도 결심에 일조했다고 한다.
2023년 7월 중순부터 탈북을 준비해 11월경 가족과 함께 대한민국으로 귀순했다. 쿠바를 떠나 제3국을 거쳐 탈북했으며, 구체적인 탈북 방식에 대해서는 북한 당국이 사전차단할 수 있기 때문에 추후에 탈북할 다른 외교관들을 위해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새 여권이 발급되자마자 비행기표를 사놓고, 탈북 6시간 전인 밤 10시에 아내와 아이를 불러 "외국에 나가 살자"는 말로 탈북할 결심을 밝혔다. 자가용을 대사관 건물 주차장에 두었기에 차를 가지러 가는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새벽 2시에 택시를 불렀다. 당시 앞집에 다른 북한 외교관 가족이 살고 있어서 밤에 나가는 것을 수상하게 여길까 걱정했다고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모아둔 달러를 비롯한 소지품도 다 못 챙기고 급하게 탈출했다.
미국 국무부 파텔 부대변인은 2024년 7월 18일 브리핑에서 리일규의 한국 망명과 관련한 논평 요청에 대해 "북한 정권의 참혹한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북한 주민이 있다는 것은 놀랍지 않다"고 말했다.#
2.2. 한국 생활
2024년 7월 16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로 탈북 사실이 처음 공개되었다. 이후 다수의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하였으며, 북한 관련 포럼 및 행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8월 2일, 영국 BBC와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해당 인터뷰에서 김정은과 북한주민은 도널드 트럼프가 자국에 더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며,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8월 27일, 민주평통 사무처를 방문하여 특별 강연을 하였다. 강연에 앞서 수석부의장 김관용과 접견하고 차담 시간을 가진 후 사무처장인 태영호가 자신의 사무실을 둘러보게 하였는데, 태영호를 대하는 모습이 마치 직장 상사를 대하는 부하 직원과 같은 모습이었다. 외교관 후배이자 학교 후배로서 선배인 그를 깍듯하게 모신 듯하다.#
9월 26일, 민주평통 제21기 상임위원으로 위촉되었다.#
11월 15일, 통일부-인권위-권익위 북한인권 공동토론회에서 북한 외무성과 재외공관이 2016년부터 2023년 사이에 주고받은 북한 인권 관련 외교전문 12건을 공개했다. 해당 전문은 북한 외교관으로 근무할 당시 직접 입수해 탈북할 때 가져온 것으로, 다른 전문의 추가적인 공개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3. 언론 보도
- [단독] '김정은 표창장' 받은 駐쿠바 北외교관 한국 망명
- 조선일보 [통일은 된다… 탈북자 리포트] [1] 망명 외교관 리일규
- KBS [뒷北뉴스]
4. 여담
- 성명의 한자 표기는 알려진 바 없다. 다만 한국 언론의 중국어, 일본어 뉴스나 중국 및 일본의 언론에서는 李日奎로 표기되고 있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해당 한자로 표기했다.
- 김정은과 여러 차례 대면했는데, 가까이서 보면 '혈압이 굉장히 높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술에 취한 것처럼 얼굴이 새빨갛다고 한다. 김정은은 연회장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데도 얼굴이 화면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새빨갛고 대화를 하면서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호흡이 가빴다고 한다. 리일규의 이와 같은 증언이 이제 만나러 갑니다 662회에서도 김정은의 건강 문제에 대한 주제에서 또 인용되었다.
- 북한 외무성에서 부국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에는 월급이 3000북한원(약 0.3달러)[6]였으며, 쿠바에서 참사관으로 재직하던 시절에는 월급으로 500달러(약 69만 원)를 받았다. 월급이 너무 적어 외교행낭을 이용해[7] 불법 시가 담배 밀수를 해서 부족한 돈을 보충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리일규는 북한 외교관을 넥타이를 맨 꽃제비로 표현했다.
- 같은 북한 외교관 탈북민 출신인 태영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리일규에게 "참 잘 왔다"면서 함께 통일을 꼭 이뤄 언젠가 다시 평양에 가보자는 이야기를 했다. 태영호와는 평양외국어학원 동문이고, 예전에는 탁구 라이벌이었다고 밝혔다.#
- 태영호가 탁구에 대해 언급하면서 한 번도 못 이겨봤다고 한 것처럼 북한 외무성 내에서 탁구를 잘 치기로 유명했던 모양인지, 2024년 4월 7일자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 2015년에 탈북한 베트남 주재 북한대사관 서기관 출신인 한진명이 류현우 전 쿠웨이트 대사대리에게 외무성 6국에서 탁구 잘 치기로 유명한 리일규를 아느냐고 물어보는 장면이 나온다. 해당 장면(3:56~) 류현우 대사대리는 리일규와 평양외국어대학 동창으로, 같은 외무성 아프리카, 아랍, 라틴아메리카국에서 15년 동안 일했다고 밝혔다.
- 평양랭면이 남한의 냉면보다 맛있다는 남한 내 인식과는 달리 북한에서 먹던 평양랭면은 밍밍한 맛이었다고 밝혔다. 이와 달리 남한의 마트에서 파는 봉지에 든 평양냉면은 맛있어서 매일 사서 먹는다고 한다.#
- KBS 인터뷰에서 밝히기로는 쿠바인이 "노스에서 왔냐, 사우스에서 왔냐"고 물을 때마다 북한이 창피해서 사우스라고 답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다고 한다.[9] 북한은 가난한 것도 모자라서 온갖 불량 행위를 다하는 불량 국가라서 수치심을 느꼈다고 한다. 차라리 못살기만 했으면 동정이라도 받았을 것이라는 언급도 덧붙였다. 외교관의 긍지는 자신의 국가라는 격언과 함께 북한 외교관 생활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 외교관들이 해외에 나갈 때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초상휘장을 떼서 주머니에 넣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북한 고립의 가장 큰 이유는 '3대 세습'이라고 비판했으며, 세습이 진행될 때마다 외교력이 더 떨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친북 성향의 국가[10]조차도 북한과 같은 급으로 취급을 받는 것을 기피했으며, 북한의 외교적 고립을 가장 뼈저리게 체감한 것이 주재국 주민의 시각이었다고 한다. 북한의 외교관들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묻는 것을 가장 싫어했고, 국적을 답할 때 '노스(North)'라고 답하는 게 치욕스러웠다며 "내 국가가 창피스러운데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 김정은 시대 북한 대외정책의 특징은 “김정은의 권위를 지키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는 것”이라고 밝혔는데, 김정은이 자신의 '위대함'을 각인시키는데 굉장히 집착을 하고 있다 보니 외교관들이 김정은에 대한 외부 비판에 대응해 싸우는 것이 충성심을 평가하는 척도였다고 한다. 이와 함께 김정일 시대에는 국제사회에서 북한 정권을 이른바 악마화하는 여론이 있어도 일체 반응하지 않는 외교를 구사했는데,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는 외부에서 김정은의 권위에 대해 비판을 가해올 경우 적극 반박하는 태도로 전환했다고도 밝혔다.#
5. 관련 문서
[1] 대한민국 헌법과 국적법을 바탕으로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의 주민과 후손들은 외국 국적을 따로 취득하지 않은 이상 태어날 때부터 한국 국적을 보유하게 된다. 북한에 행정권이 미치지 않음에 따라 북한주민은 남한 국적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을 뿐, 남한 국적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 표기를 하지 않는다. 대법 96누1221 판결[2] #[3] 리일규 프로필 참조[4] 정무참사의 경우, 대한민국의 공무원 급수와 대응하면 2급 공무원으로 취급된다.[5] 일반적으로 노동계급, 군인계급, 사무원계급, 농민계급으로 나뉜다.[6] 북한의 시장 환율이 2024년 7월 기준 '1달러 = 12,000북한원 초반'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약 0.25달러, 공식 환율(1달러 = 100북한원)로는 30달러(한화 약 41,200원)이다.[7] 외교행낭은 비엔나 조약에 의해 당사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가 내용물을 확인하는 게 불가능하다.[8] 한국과 쿠바는 2024년 2월 14일 수교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유엔 회원국 중 2개국이던 단독 수교국이 시리아 1개국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참관국인 팔레스타인까지 포함하면 2개국이다.)[9] 채널A 인터뷰에서는 쿠바인이 "¿Corea bueno? ¿Corea malo?(좋은 한국인이야? 나쁜 한국인이야?)"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좋은 한국은 어디고 나쁜 한국은 어디냐"고 되묻자 노스는 나쁜 한국, 사우스는 좋은 한국이라는 답변이 되돌아왔다고 한다.#[10] 이란, 시리아, 쿠바, 베네수엘라 등이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