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13 02:40:18

리로이 페르

파일:Thumb_leroy-fer2bfc.png
알란야스포르 No. 4
리로이 페르[1]
Leroy Fer
본명 리로이 요한 페르
Leroy Johan Fer
생년월일 1990년 1월 5일 ([age(1990-01-05)]세)
국적
[[네덜란드|]][[틀:국기|]][[틀:국기|]]
| [[퀴라소|
파일:퀴라소 기.svg
]] 퀴라소 |
[[수리남|]][[틀:국기|]][[틀:국기|]]
출신지 주테르메이르
신체조건 188cm / 체중 79kg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2], 수비형 미드필더
주발 오른발
유소년 클럽 DWO (~ 1999)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1999~2007)
소속 클럽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2007~2011)
FC 트벤터 (2011~2013)
노리치 시티 FC (2013~2014)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2014~2016)
스완지 시티 AFC (2016 / 임대)
스완지 시티 AFC (2016~2019)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2020~2021)
알란야스포르 (2021~ )
국가대표 파일: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11경기 1골 (네덜란드 / 2010~2014)
종교 카톨릭
가족 사촌 파트릭 판안홀트

1. 소개2. 유년기3. 클럽 경력4. 국가대표 경력
4.1. 청소년 대표
4.1.1. 네덜란드 U-17 (2006-2007)4.1.2. 네덜란드 U-19 (2007-2009)4.1.3. 네덜란드 U-21 (2009-2013)
5. 여담6.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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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네덜란드 국적의 알라니아스포르 소속의 중앙 미드필더이며 공격과 수비 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강력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야야 투레처럼 본인이 볼을 툭툭 치고 운반하는 것에 능하다. 하지만 패스미스의 빈도가 높은 편이다.

본래 노리치 시티 FC 시절이나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시절에 엄청난 중거리 골들을 기록하며 중거리슛 능력도 보유한 선수이지만, 현재는 많이 시도하지 않아 감이 떨어졌는지 그런 모습들은 자주 나오지 않는 편이다.

2. 유년기

페르는 네덜란드 남부 지역인 주테르메이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와 외할아버지는 퀴라소 출신이며, 친할아버지는 수리남계 혈통을 가지고 있다.

3. 클럽 경력

3.1. 유소년 경력

페르는 주테르메이르 지역 팀이였던 DWO라는 구단에서 유소년으로서 축구 인생을 시작했다. 첫 시즌, 페르의 팀은 친선경기에서 스파르타 로테르담이나 페예노르트같은 프로 구단의 유스 팀을 상대로 승리했다. 그러나 페르는 DWO에 9살까지만 머물렀고, 그의 친구였던 카이 람스테인과 함께 페예노르트 유스 아카데미에 입단했다.

3.2.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3.2.1. 2007-2009, 돌파구

페르는 2007-08 시즌 페예노르트에서 첫 돌파구를 갖는다. 2007년 12월 2일, 페르는 당시 감독 베르트 판마르베이크 아래서 첫 공식전 데뷔를 치른다. 17세의 나이로, 페르는 헤라클레스 아르멜로와의 경기에서 83분에 누리 샤힌과 교체 투입되었다. 팀은 당시 경기에서 6-0 대승을 거두었다. 4일 후인 2007년 12월 6일, 페르는 페예노르트와 첫 프로 계약을 체결하는데 계약 기간은 2012년 여름까지였다. 페르는 그의 에레디비지에 첫 시즌 동안 13경기에 출전했는데, 주로 후반 교체투입으로 뛰었다. 2008년 2월 3일 AFC 아약스 전에서는 페예노르트 1군 팀에 부상자가 나와서 그의 대체자로 페르가 선발 출전했다. 이때 포지션은 오른쪽 수비수였다. 페르는 오른쪽 수비수 역할을 계속 맡으며 연달아 4경기에 선발 출장했다. 2008년 3월 30일, 페르는 그의 에레디비지에 첫 골을 NAC 브레다와의 원정 경기에서 기록했다. 아쉽게도 팀은 그 경기에서 3-1로 패했다.

2008-09 시즌, 페르는 천천히 1군 주전이 되었다. 페예노르트의 새 감독 헤르트얀 페르베이크가 종종 페르를 당시 스트라이커 로이 마카이의 뒤,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기용했다. 2008년 9월 18일, 페르는 칼마르 FF와의 UEFA 유로파 리그 경기에서 선발 라인업에 포함되며, 최초로 유럽 대회 공식전 데뷔를 치렀다. 페예노르트는 홈에서 0-1로 패했지만 다시 떠난 원정 경기에서는 페르의 결승골에 힘입어 1-2 승리를 거두며 조별 그룹에서 안전한 위치를 차지했다. 시즌 동안에 복수의 유럽 빅클럽들이 페예노르트의 재능들을 탐냈지만, 페예노르트는 어떠한 제안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3.2.2. 2009-2011, 인정 받기 시작

2009-10 시즌 이후로, 페르는 성장해 팀의 중요한 선수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이전 오른쪽 수비 부터 스트라이커까지 많은 자리를 오가던 페르는, 마침내 당시 페예노르트의 새 감독이었던 마리오 빈에 의해 수비형 미드필더로 지속적으로 출전했다. 2009년 10월 20일, 페예노르트의 새로운 전술 디렉터로 부임한 레오 베인하커르는 페예노르트의 1군 스쿼드를 비판했지만, 동시에 팀에서 중요한 선수였던 페르에게는 찬사를 보냈다. 3일 후, 페예노르트의 주장이었던 지오바니 판브롱크호르스트는 심지어 '페예노르트 TV'에 페르를 '잃을 수 없는 선수'로 묘사했으며, 당시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베르트 판마르베이크는 '페르의 성장을 상당히 낙천적으로 보고있으며 나중에 네덜란드 국가대표에 소집될수도 있을 것'이라며 극찬했다.

2010-11 시즌부터 페르는 스쿼드의 부주장직에 임명되었다.

3.3. FC 트벤터

페르는 2011년 8월 말에 에레디비지에의 또다른 팀 트벤터에 500만 유로의 이적료로 합류하게 되었다. 페르는 이후 두시즌간 71경기 출전, 21골이라는 맹활약을 펼쳤다.

2013년 1월 28일, 860만 파운드에 에버튼 FC로 이적이 확정되어 마무리되는 분위기였으나, 메디컬 테스트에서 장기 무릎 부상이 발견되어 무산되었다.

3.4. 노리치 시티 FC

2013년 7월 13일, 노리치 시티는 페르를 이적료 440만 파운드, 4년 계약으로 데려오는데에 성공했다. 페르는 헐 시티 AFC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뤘으며, 2013년 8월 27일에 펼쳐진 베리 FC와의 리그 컵 경기에서 첫 득점을 올렸다. 또한 페르는 8월 31일, 홈에서 펼쳐진 사우스햄튼 FC와의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하는 데에 군계일학의 모습을 보여 MoM에 지정되기도 했다. 이렇듯 페르는 전반기 좋은 활약을 이어나가며 이달의 노리치선수 상을 받기도 했고, 네번의 MoM에 선정되었다.

페르는 2013년 10월 26일, 카디프 시티 FC와의 무승부 경기의 논란에 휘말린 적이 있었다. 팀 통료였던 알렉산데르 테테위가 경기 막판에 부상을 당해 카디프의 골키퍼인 데이비드 마샬이 테티가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경기가 중단되어야 하기 때문에 공을 터치라인 밖으로 내보냈다. 이때 혼란을 틈타 노리치 공격수 리키 반 볼프스빈켈이 페르에게 빠르게 스로인을 던졌고, 페르는 골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주심은 이 골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심판이 휘슬을 불지 않았는데 스로인을 진행해서'였다. 하지만 다들 알아시피 축구에서 스로인을 할 때 심판의 휘슬을 듣고 실행하라는 규칙은 없다. 아마도 비매너적인 행동이여서 심판이 재지한듯 보였다. 아니나다를까 카디프 선수들은 볼프스빈켈과 페르에게 화를내며 밀쳤고, 당시 카디프 감독이었던 말키 맥케이는 경기가 끝나고 인터퓨에서 페르의 스포츠맨쉽 부족에 대해 비난했다. 이후 BBC의 축구 매체인 'Match of the Day'에서 그 슈팅이 고의로 찼다는 것을 인정했는데, 카디프 선수들이 그렇게 반응할지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페르는 2013년 11월 9일,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와의 홈 경기에서 시즌 3번째 골을 넣었으며 팀은 3-1 승리를 거두었다. 이때의 퍼포먼스를 제이미 레드냅이 칭찬했고, 이런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인다면 프리미어리그의 스타 플레이어가 될 것이라는 말까지 남겼다.

페르는 11월 23일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와의 1-2로 패한 경기에서 만회골을 넣으며 노리치 팬들을 위로했다. 페르는 12월 7일,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와의 2-0으로 승리했던 경기에서 리그 3번째 골을 넣었는데, 이때 날아가는 카나리아를 따라하는 셀러브레이션을 했다고(...)[3] 한다. 페르는 또한 그 경기에서 개리 후퍼에게 어시스트까지 하며 Sky Sports에 의해 MoM에 지정되었다. 페르는 노리치의 페이스북트위터에서 팬들의 투표를 받아 '11월의 노리치 선수 상'을 받았다. 2014년 1월 1일에는 새해를 맞아 크리스탈 팰리스 FC와의 경기에서 82분에 퇴장을 당했다.

3.5.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노리치가 강등됨에 따라, 페르는 프리미어리그의 새로운 팀, QPR로 이적했다. 계약기간은 3년, 이적료는 800만 파운드였다. 페르는 토트넘 홋스퍼 FC와의 맞대결에서 데뷔했다. 다음 경기였던 선덜랜드 AFC전은 페르의 홈 데뷔전이였다. 그 경기에서 페르는 MoM에 선정되며 리그 첫 클린시트 승리를 기록하는데 맹활약했다. 페르는 레스터 시티 FC와의 홈 경기에서 첫 골을 기록했고 팀은 난타전 끝에 3-2로 승리했다. 7일 후, 홈에서 펼쳐진 번리 FC전에서 페르는 또다시 골을 기록했고, 팀은 2-0 승리를 거뒀다. 2015년 5월 2일, 리버풀 FC와의 홈 경기에서 페르는 동점골을 기록했지만 팀은 아쉽게도 1-2로 패했다.

3.5.1. 스완지 시티 AFC (임대)

15-16 시즌 존조 셸비가 유로 출전을 위해 겨울 이적시장을 통해 뉴캐슬 유나이티드 FC로 떠나버리면서 얇아진 스완지시티의 중원의 단기적인 대체자로써 1월,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로부터 임대이적하게 되었다. 상황에 따라선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가 EPL승격에 실패한다면 완전이적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9R 노리치 시티 FC전, 교체투입되어 길피 시구르드손의 골을 도우면서 첫 공격포인트를 올렸다.

3.6. 스완지 시티 AFC

16-17시즌,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프리미어 리그승격에 실패하자, 역시나 예상대로 스완지 시티 AFC로 완전이적하게 되었다. 이로써 기성용과의 시즌 내내 경쟁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시즌 전반기 팀내 최고의 활약을 이어나가는데...

개막전 번리 FC전에서 예페르손 몬테로의 크로스를 페르난도 요렌테가 헤더로 연결한 슈팅을 골키퍼가 막고 흘러나왔는데, 그 볼을 가볍게 밀어넣으며 득점했고, 이 골을 잘지켜 팀은 승리하고 페르도 MOM으로 선정되었다.

3R 레스터 시티 FC전에서로 2:0으로 지던 중 높은 타점에서의 기가막힌 헤더슛을 강하게 연결하여 만회골을 기록했다. 비록 팀은 패배했지만 페르의 평점은 스완지 선수들중 가장 높았다. 이로써 페르는 3경기 2골이라는 좋은 컨디션으로 시즌을 출발하게 되었다.팀내 유일한 득점자

4R 첼시 FC전에서 게리 케이힐을 파고들어 실책을 만들고 영리하게 득점까지 만들어냈다. 2경기 연속골이자 4경기 3골이라는 좋은 컨디션은 이어졌다.다만 팀내 유일한 득점자는 이제 끝

그러나 시즌 중반이 넘어가면서 초반의 기세는 한 풀 꺾였고 부상에서 복귀한 기성용잭 코크에 밀려 주로 서브 자원으로 나오고 있다.

폴 클레멘트 감독 부임 후 기성용은 부상과 더불어 서브로 내려가고 페르는 선발로 나오는 일이 잦아졌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기성용이 부상에서 복귀하면 입지가 어떻게 될지 의문을 자아내는 선수.

이후 계속해서 경기에 출장하다 2월 리그 경기 도중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했고 직후 시즌아웃 판정을 받았다. 결국 팀도 강등되었다.

2018-19 시즌을 앞두고 강등당한 스완지 시티 AFC를 떠나는 선수들이 여럿 생겨났으나 페르는 부상의 여파 때문인지 팀에 잔류했다. 그리고 새 시즌 팀의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3.7.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2기

2019-20 시즌 스완지시티와의 계약이 만료되었고, 자유이적을 통해 팀 동료이자 같은 국적인 뤼시아노 나르싱이 먼저 합류한 고향팀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으로 복귀했다. 페예노르트에 합류 후 토른스타와 함께 중원을 이루며 주전선수로서 좋은 활약을 선보이고 있다.

3.8. 알라니아스포르

2021년 8월, 알라니아스포르와 2년 계약을 체결했다.

2021-2022 시즌 총 28경기를 뛰면서 0골 0도움을 기록하였고 이제 선수생활 황혼기에 접어드는 중이다.

4. 국가대표 경력

네덜란드 연령별 대표팀을 다수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페르는 아직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뛸지, 퀴라소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뛸지 결정하지 못했었다. 2008년 10월에는 "개인적으로 나는 나의 섬(퀴라소)에서 무언가를 의미하고싶다. 그게 내가 아직도 고민하는 이유다. 내 머리는 네덜란드를 고르는 것이 더 나을 거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매 2년마다 큰 대회에 나가는 것이 보장되니까. 하지만 내 마음은 퀴라소를 생각하고있다. 내가 퀴라소 국가대표로 월드컵에 나간다면 환상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퀴라소를 대단히 신장시킬수 있을 것이다. 내 뿌리는 내 커리어보다 강하고, 나는 더 높은 코스로 가기 위해 노력중이다. 난 아직 모르겠지만, 내가 퀴라소 국가대표로 뛰기 위한 감정들은 매우 강하다."라고 자신의 심경을 고백했다.

그러나 2009년 8월 26일, 페르는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에서 뛸 것이라고 최종 선언했고,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23인에 선택받았다. 페르는 그의 첫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2014년 6월 23일 칠레전에서 교체선수로 출전해 첫 득점을 올렸다.

4.1. 청소년 대표

페르는 네덜란드 연령별 대표팀을 모두 거쳤으며, 특히 U-17 대표팀에서 'UEFA U-17 챔피언십' 예선전에서 가장 크게 활약했다.

4.1.1. 네덜란드 U-17 (2006-2007)

페르는 '2007 UEFA U-17 챔피언십 벨기에' 에서 네덜란드 U-17 국가대표팀의 주장이었다. 예선전은 무패 행진을 달렸다. 그리고 조별리그로 넘어갔는데 조에는 개최국 벨기에 U-17, 아이슬란드 U-17, 잉글랜드 U-17 팀이 있었다.지옥의 조 벨기에 U-17과의 경기에서는 아쉽게 2-2 무승부로 끝났고, 아이슬란드 U-17와의 경기는 3-0으로 완승을 거뒀다. 하지만 마지막 경기였던 잉글랜드 U-17와의 경기에서 2-4로 패하면서 탈락했고, 아쉽게도 '2007 FIFA U-17 월드컵' 티켓 또한 물건너 가게 되었다.

4.1.2. 네덜란드 U-19 (2007-2009)

'2007 UEFA U-17 챔피언십'이 끝난 직후, 페르는 네덜란드 U-19 대표팀에 소집되었다. 하지만 '2008 UEFA U-19 챔피언십 체코' 와 '2009 UEFA U-19 챔피언십 우크라이나' 에서 팀은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내며 실패했다.

4.1.3. 네덜란드 U-21 (2009-2013)

페르는 2009년 3월 31일, 네덜란드 B팀이라고도 불리는 네덜란드 U-21팀에서 임시 대체자원으로 소집되어 이탈리아 U-21 팀과 친선 경기를 통해 비공식 데뷔전을 치렀다. 2009년 8월 11일에는 '2011 UEFA U-21 챔피언십 스페인' 예선전과 친선전을 잉글랜드 U-21과 가졌는데, 이때 페르가 선발 출전했다. 경기 스코어는 0-0 무승부.

5. 여담

  • 페르는 다양한 별명이 있다고 한다. 그의 유년시절 별명은 'De Uitsmijter (The Bouncer)' 였다고 한다.(...)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유스팀 코치 예안-폴 반 가스텔이 지어주었다고... 그의 강력한 피지컬을 표현하는 별명이라고 한다. 다른 별명은 'Lerra'와 'Ferovic' 라고 한다. 네덜란드 U21팀 감독 코르 포트가 페르와 파트리크 비에라와 닮은 점이 많아서 지어준 별명이라고 한다.
  • 은근히 스포츠와 가까운 집안에서 태어난 듯 하다. 페르의 외할아버지는 퀴라소의 축구선수였으며, 그의 아버지인 리즐리 페르는 야구선수였다. 그의 유일한 남동생인 리그레그 페르는 페예노르트 U-17팀에서 뛴 적이 있다고 한다.
  •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자라왔다고 한다. 주테르메이트에 있을때는 항상 교회부터 갔다고... 신이 자신에게 축구의 재능을 주었다고 믿으며 매일 감사한다고 한다. 오른팔에 십자가 문신이 있는 것을 보면 가톨릭 신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대단한 강등 전도사다. 노리치 시티 - 퀸즈 파크 레인저스 - 스완지 시티 순으로 그가 머무른 클럽들은 모두 강등이 되었다. 딱히 본인이 못해서 강등된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억세게도 팀 운이 없는 선수이다.

6. 같이 보기


[1] 이름 'Leroy'는 영어권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성이 아닌 이름으로 쓰일 때는 /ˈliː.rɔɪ/(리로이)로 발음된다. 네덜란드어에서는 외래어에서 유래한 이름에 네덜란드어 발음을 적용시키지 않는다.[2] 가끔 공격형 미드필더나 좌측 미드필더도 본다.[3] 카나리아는 노리치 팬들을 상징한다. 스완지로 치면 백조를 따라한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