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4 13:11:33

김자지

金自知
1367년(고려 공민왕 16) ~ 1435년(조선 세종 17)

1. 소개2. 생애3. 여담

1. 소개

여말선초의 문관. 본관(本貫)은 연안(延安)[1], 자(字)는 원명(元明), 호는 일계(逸溪).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2. 생애

1367년 아버지 김도(金濤)와 어머니 죽산 안씨(竹山 安氏) 안수제(安受禔)의 딸 사이의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385년(고려 우왕 11) 문과 을축방(乙丑榜)에 동진사(同進士) 9위로 급제했다.#

조선 건국 뒤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에 따랐으며 음양, 천문, 지리, 의약 분야에서 전문가이다. 이쯤이면 만능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조선 시대 때에는 세종 때까지 벼슬자리에 있었으며 한 때 판결을 잘못 내려 파직을 겪었으나 뒷날 재기용되었다. 태종, 세종 때 형조 참의, 형조 참판, 호조 참판, 형조판서 등 제법 품계가 높은 벼슬에 여러 번 올랐다.

대사헌 재직 중에는 방자한 세도 공신들을 탄핵하려 5번이나 상소를 올려 당시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유능한 신하인데다가 박학한 학자이니 교과서에 나올 법한 인물이지만 교과서에는 전혀 나오지 않아 김자지 선생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라도 교과서에 실리는 인물은 얼마 안 된다. 한 시대를 풍미하거나 역사의 흐름을 바꾸거나 교과서에 사건을 서술하기 위해서 등장해야 하는 인물이 아니면 소개되지 않거나 간략하게만 소개한다. 물론 김자지 선생은 당대에 출중한 문인이지만 교과서에 실릴 사건을 일으킨 것이 아니므로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게 되었다.

현대에는 독특한 이름 때문에 호기심으로 김자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김자지가 관직에서 활동하던 시절에 알 지(知)의 발음은 '알 디'이므로 당시의 발음대로 읽으면 김자디. 음경을 지칭하는 속어와 발음이 달랐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알 지의 '디'가 '지'로 변화한 이유는 근대 시기에 대대적으로 발생한 구개음화. 참고로 김자지 선생의 남동생들은 김여지(金汝知), 김치지(金致知), 김학지(金學知). 김자지 선생부터 남동생들까지 이름의 뜻을 살펴보면 나를 알다, 너를 알다, 앎에 이르다, 배움을 안다. 아버지 김도는 깊은 뜻을 담아 아들들의 이름을 지었다.

김자지 선생 묘는 양평에 있으며 현재 양평군 향토 유적 30호로 지정했다. 동생들도 김자지와 같은 양평에 묘가 있다. 가족 묘로 조성해서 같은 곳에 모셨다.

3. 여담

아들만 9명이었다고 한다. 닉값

여담으로 조선 초의 문관으로 김보지라는 인물도 있다. 공교롭게 이 사람도 세종대왕 시대에 활동하여 시대적으로도 가깝다.

중종 대의 권신으로 유명한 김안로가 김자지 선생의 직계 후손인데, 안 좋은 방향이기는 하지만 현대인에게는 한국사 과목과 드라마 여인천하의 영향으로 김안로의 인지도가 넘사벽으로 높을 것이다. 김자지가 김안로의 고조부이므로, 김자지에게 김안로는 현손이 되겠다. 한편 김제남의 부계 6대조, 즉 인목왕후의 부계 7대조이기도 하다.


[1] 대장군공파 7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