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군 병력 및 물자 수송을 위해 국방부의 요청을 받아 한국철도공사에서 위탁 운행하는 열차를 말한다.이 열차들은 공통적으로 '건설'이라는 용어가 앞에 붙는다. 건설이라는 은어가 붙게된것은 1960년대의 유산으로, 특히 1960년대 초반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진행하면서 "재건"이나 "건설"이란 용어를 여기저기 갖다붙였는데 그 흔적이다. '군사→ㄱㅅ→건설'로 한글자모를 재조합해 위장했다는 설도 있다. 아무튼 공통점은 군용이라고 하면 보안사항에 걸리니 건설이라고 에둘러 말하던게 그대로 굳어져 버린 것. 다만 화물열차의 경우 철도물류정보서비스 사이트 전산에 가끔 품목에 ‘전차, 탱크류’라고 뜨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아무리 군용으로 굴리는 열차더라도 무상운송은 없으며 운임은 할인도 없이 그대로 국방부가 철도공사에 지불한다.[1]
병력 수송열차의 경우 현재 모두 육군 병력 수송을 위주로 운행되고 있다. 해군과 해병대는 전세버스를 대절하거나 그런것도 없이 알아서 기차타고 어디로 와라 하는 식으로 수송한다. 연무대역과 장성역에서 출발하는 정규 건설새마을/무궁화 열차를 제외하고는 보통 군전세객차의 형태로 운영된다. 이외에도 ROTC나 사관생도들의 훈련이나 졸업식 등의 행사를 위한 건설새마을 열차가 비정기적으로 운행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객차부족 및 버스이용 등을 이유로 운영되지 않는다
공군은 2000년대 초반까지 병력들을 수송하던 진주 - 서울 간 건설 무궁화호가 있었으나, 공군 병력이 워낙 적은데다 특기학교마다 후반기교육이 끝나는 시기가 달라서 그냥 버스로 이동하기 시작하면서 소리소문없이 사라졌고, 2010년대 이후 장거리 병력들은 사천공항까지 버스를 타고 간 뒤 그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가는 걸로 또 바뀌게 되었다.
주한미군도 병력과 군수물자 수송을 위해 열차를 운행하는데, 자체 보유중인 평판차(499000호대 평판차, 972000호대 평판차)가 있으며 평택 미군기지 또는 동두천 등 전방 지역 미군 주둔지에서 취급한다. 또한 컨겸평판(일반 화물뿐만 아니라 컨테이너 수송 용도로도 쓰는 평판차)이 미군건설화물에 사용이 된 적이 있다. 지금은 972000호대 미군평판차가 역할을 대신해주고 있다.
972000호대 평판차는 "주로" M2 브래들리 장갑차 운송에 쓰인다. 컨겸평판도 브래들리 전투차 운송에 쓰인적이 있다.
한국철도공사 승무원과 별개로 국군수송사령부 소속인 호송병이 탑승한다. 이들은 신병 배치를 위한 여객열차에서는 인솔/병력 이동관리를 맡으며, 화물열차에서는 화물 안전관리를 담당한다. 이들에 대한 설명은 호송병 문서를 참고.
2. 종류
- 건설 새마을호: 과거에는 장교나 부사관의 훈련으로 인한 대수송때 위주로 운행했으며, 유선형/장대형 새마을호가 운행할 때는 화랑대역 등에서 종종 볼 수 있었다. 2018년 새마을호 퇴역 이후 한동안 볼 수 없었다가, 2020년 이후 무궁화호 객차의 부족으로 인해 개조 새마을호 객차를 이용한 정규편성이 운행 중이다.
- 건설 무궁화호: 신병배치, 훈련 등의 이유로 병력을 대량으로 수송할 필요가 있을 때 주로 운행한다. 장거리 대량수송이니만큼 보통 9~10량, 길게는 12~13량까지도 편성한다.
건설 KTX(가칭): 호남선 가수원-논산구간 고속화공사와 함께 추진할 KTX 운행계통으로, 기존 서대전역 종착 KTX를 (신)연무대역까지 운행할 계획이다. 향후 다른 노선까지 KTX 진입이 가능하도록 개량한다면 KTX를 통해 신병배치를 할지도 모른다. 일단 KTX-I의 경우 기준은 충족하며, KTX-청룡 또한 복합열차로 편성해서 1대는 춘천까지 가고 다른 1대는 옛 3군 지역에서 종착하면 되기 때문.
- 건설화물: 군수물자(전차·장갑차류, 탄약 등) 수송을 목적으로 운행하는 화물열차를 말한다. 대한민국 국군은 국군수송사령부가 담당하고, 주한미군에서는 제19원정지원사령부 직할 주한물자지원사령부 예하 제25수송대대[4](25TH TRANSPORTATION BATTALION)가 대표적이다. 주로 미군 평판차를 사용해 수송하며, 2021년에는 한국군 전용 평판차가 개발되었다. # 철도수송부대의 장점은 수송차량을 이용하는 야전수송부대와 달리 기관차에 화차만 잘 걸어놓으면 어차피 기관차는 선로로만 달리니 알아서 목적지까지 잘 가기 때문에 운반하는 화물 양에 비해서 운용하는 부대 인원은 굉장히 적지만 한번 수송 임무를 할 때 수송되는 물자의 양은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다.[5] 하지만 고정된 선로로만 이동하기 때문에 아예 군용선로거나 목적지까지 선로가 연결된 경우가 아니라면 하역 후 다시 목적지까지 알아서 수송해야 하며, 특히 기갑차량의 경우 고정고리를 풀고 안전하게 하역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등의 단점이 존재한다. 대형 화물차와 철도수송을 비교해보면, 화물차는 차량마다 최소 1명, 대부분 선탑자 포함 2명이 필요한 반면 열차의 경우 칸을 많이 연결해도 승무원 차이가 거의 없다. 게다가 전시라면 몰라도 평시에 대규모 군수물자를 수송할 때에는 선도차량들이 붙어 수송 행렬이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한다. 즉 인원이 상당히 많이 필요해진다. 다만 차량 수송의 경우 선로가 없는 곳까지 다이렉트 수송이 가능하다는 최강점이 있다. 운송하는 물자가 소량(5량 미만)인 경우에는 별도의 열차를 편성하지 않고, 일반 화물열차에 연결해 운행할 때도 있다.[6][7] 중계역에서 열차를 바꿔 연결하느라 장시간 대기할 때도 있는데, 역 직원들과 호송병 간에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이런 일도 발생한 적이 있다.
2.1. 폐지된 운행계통
- 건설 새마을호(정규)
- 건설 무궁화호(정규)
- 연무대→장성(#1493): 후반기교육장 훈련병력 수송 열차로 운행일은 당시 #1492/1496 열차와 같다. 2020년을 끝으로 폐지되었다.
- 병원열차: 국군의무사령부 병원열차대에서 보유했던 차량. 건설 무궁화호로 취급됐으며, 외부 도장은 2004년 이전의 무궁화호 도색이었다. 일반 무궁화호 차량과의 차이점은 모양이 다르며 한국철도공사 마크가 없고 적십자가 그려져 있는 것이다. 차량은 26~30 총 5량으로 구성됐다. 각 칸의 측면에는 '서울', '대전', '부산' '지휘/통제' 등 목적지의 국군병원과 운행목적을 나타내는 행선판이 달렸다. # 이 글에 따르면 월 1회 수요일에 운행했다. 국군대구병원이 있는 경산역[8]과 국군함평병원이 있는 함평역으로 향하는 2가지 운행계통이 있었다. 경부선에서는 별도의 열차로 독립되어 운행했으며(#4901), 호남선에서는 일반 무궁화호 열차에 병원차 1량을 연결해 운행했다. 병원열차 객차의 내구연한 만료로 인해 2023년 6월 28일에 운행을 종료했다. 객차들은 폐차되지 않고 국군의무학교로 이관되어 전시 열차 후송절차 실습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 건설 통일호: 통일호 객차가 충당된 건설여객 계통. 2000년대 초까지 많이 굴렸으나 2002~03년 즈음 통일호 객차 부족을 이유로 건설무궁화로 승격되는 계통이 많아졌고, 공식적으로는 2004년 4월 통일호 폐지와 맞물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2005~06년 사이 내구연한이 남은 통일호 객차가[9] 건설무궁화 등급을 달고 병력수송에 종종 사용되기도 했다.
- 건설 비둘기호: 역시 비둘기호 객차가 충당된 건설여객 계통으로 열차 자체는 사라진지 오래됐지만 일단 XROIS 전산상에 존재는 한다. 과거에 존재했던 등급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1998년 주한미군 수송에 동원되었던 것이 사진으로 남아있다.
- 입영열차: 과거에는 군 입대자가 지정 장소(주로 역 광장)에 집결한 후, 호송관의 지시에 따라 도착해있는 입영열차나 버스를 타고 훈련소까지 가는 식으로 입영 절차가 이루어졌다. 당시 입영열차는 비둘기호 등급으로 운영되었으며, 입영장정 외에는 탑승이 불가했고 호송관이 배치된 군용열차였다. 그러나 1978년부터 개별입영이 시행되며 가족과 친지들이 훈련소 정문까지 배웅해 줄 수 있게 되자, 자연스레 이용자가 줄어들면서 1985년에 폐지되었다.
3. 기타
- 건설 새마을/무궁화호 임시편성의 경우 #4900번대 열번을 받는다.[10] 2010년까지 임시 건설여객열차는 #6400번대 열번을 배정받았었다. 건설화물의 경우는 정규 #6000번대, 임시 #6600번대로 알려져 있다.
- 정기열차를 군 수송 열차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훈련소부터 자대까지 버스로 이동하기에는 너무 장거리이지만 전용열차가 마련되어있지 않을 때, 정기 여객열차[11]의 일부 칸을 군 수송 전용 객차로 전세할 수 있다.[12]
- 과거 신병을 수송하는 건설 무궁화호 열차들은 모두 주말야간 운행이었으나, 1999년 6월 연무대역발 육군훈련소 신병배출열차를 평일주간 운행으로 바꾼 이래 2004년 2월부터는 모든 신병배출열차가 평일주간 운행으로 바뀌었다.
- 입영열차는 1998년 2월에 무궁화호 등급으로 다시 부활했는데, 1985년에 폐지되었던 입영열차와의 차이점이라면 육해공 입영장정 전체 대상이 아닌 육군 102/306보충대 입영장정에 한정했다는 점, 환송을 위해 입영장정의 가족(=민간인)들도 함께 탈 수 있었다는 점이다. 때문에 호송병력이 탑승하지 않는 일반 전세여객열차로 운행했으며, 춘천 및 의정부 직행 여객수요를 고려해 출발 3일 전부터는 일반인들에게도 예매가 개방되었다.[13] 그러나 도로교통 발달과 잦은 지연 및 경유역이 적었던[14] 등의 문제로 승객이 적었으며[15], 그마저도 중앙선 전철 개통 이후 수요가 더욱 줄어들 것으로 판단되어 2005년 11월을 끝으로 폐지되었다. 부산, 마산, 광주에서 춘천, 의정부를 오가는 총 6개 노선이 있었으며, 보충대 입소일정에 맞춰 화요일마다 운행했다. 2005년 기준 해당 계통의 열번 및 구간은 다음과 같다.
기점역 | 종점역 | 열번 | 구간 |
부산 (경부선) | 의정부 | #4321~4322 | 부산-구포-밀양-동대구-김천-대전-수원-영등포-의정부/(남[16])춘천 |
춘천 | #4323~4324 | ||
마산 (경전선) | 의정부 | #4325~4326 | 마산-창원-진영-밀양-(이하 경부선 구간과 동일) |
춘천 | #4327~4328 | ||
광주 (호남선) | 의정부 | #4329~4330 | 광주-장성-정읍-익산-논산-서대전-수원-(이하 경부선 구간과 동일) |
춘천 | #4331~4332 |
4. 관련 문서
[1] 특히 전차와 같이 화차를 벗어나거나 2량 이상의 화차를 사용하는 화물은 '특대화물'로 분류되며 원 운임에 추가 할증이 발생한다.[2] 2019년 3월 31일 이전까지는 전곡역까지 운행했으나 경원선 동두천-연천 구간 이설 및 전철화 공사를 계기로 동두천역까지만 운행한다.[3] 2010년대 중반까지는 경원선이 아닌 경춘선을 타고 화랑대역(이설 이후에는 퇴계원역)에서 종착했다.[4] 제25수송대대의 경우 본부 및 본부중대와 근무지원팀 및 2개의 이동통제팀과 2개의 항만통제팀으로 구성된다.[5] 주한미군의 25수송대대도 겨우 500명 미만의 대대급 수준이지만 운반하는 화물량과 임무의 중요성은 굉장히 높다. 애초에 25수송대대 역시 예하 수송팀은 4개뿐인데 이 500명 수준조차 한 지역에 붙어있는게 아니라 전국에 지역팀 단위로 퍼져서 주요 기지시설마다 파견 배치되어 있다. 잘 정리된 철도 체계가 얼마나 적은 인력으로도 효율적인 수송을 담당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6] 이 경우를 연결지정이라고 한다.[7] 이 경우 차장차가 없어 호송병이 기관차에 편승하기도 한다.[8] 과거에는 국군부산병원이 있는 신해운대역까지 운행했으나, 부산병원이 폐지됨에 따라 경산역으로 단축되었다.[9] 1981년 최후 도입된 통일호 열차의 내구연한이 2006년까지였다.[10] 월 2회 운행하는 병원열차가 주로 이 대역 열번을 받고 운행했다.[11] 무궁화호, ITX-새마을 등[12] 이때 승객들은 군 전용 객차에 탑승이 제한된다. 모르고 들어갔다 해도 즉시 호송요원/승무원이 찾아가서 퇴거 요청을 한다.[13] 즉 이 열차는 군용열차(건설무궁화호)가 아니며, 공통점이라고는 국방부가 전세냈다는 것밖에 없다. 입영장정 친지의 환송편의를 제공함과 동시에 전세객차 공석을 민간 수요 충족에 활용한, 당시 국방부의 직접적 대민 서비스 중 하나로 볼 수 있겠다.[14] 당시 철덕들의 흥미를 끌었던 부분인데, 중간정차역이 얼마 없고 알짜배기 역들만 섰으며 특히 필정역이던 청량리역, 천안역, 구미역 등을 패스하는 비범한 다이어를 자랑했다(천안역은 2004년 초까지 정차). 그러나 이 때문에 일부 대형 역의 여객수요를 잡지 못했으며, 특히 청량리역 정차는 역 자체 수요 외에도 경부-중앙/경춘선 여객 환승편의 및 중앙선 경유지역의 수요 확보라는 메리트가 있어 항상 희망사항으로 꼽히는 요소였다. 거기에 임시열차에다 용산삼각선을 이용하는 바람에 적은 정차역에 걸맞은 위용은커녕 몇십 분 단위로 지연되는게 다반사였다고 한다.[15] 당시 위로 갈수록 승객이 줄어든 끝에 서울 이북으로는 거의 한 칸에 10명 꼴로 텅텅 비어서 다녔을 정도이며 보충대로 가는 편은 입영장정과 친지들이 탑승해서 그래도 어느 정도 찬 편이었다지만, 돌아가는 편은 입영장정도 다 입소했고 친지들도 거의 버스나 다른 기차편으로 빠지는 바람에 텅텅 비어서 갔다고 한다.[16] 춘천발 복편에 한해 남춘천역 경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