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KBS 보도본부 소속 전현직 기자를 정리한 문서. 각주가 많아져 문서를 분리하였다.2. 현직
볼드체는 국장급 이상 간부. 44기, 49기 기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 1987년: 김혜송 (해설위원, 뉴스 중계탑 앵커)[1]
- 1991년(18기): 장한식 (보도본부장)[2], 이춘호 (전략기획실장)[3], 강석훈 (부산방송총국장)[4], 박승규 (KBS비즈니스 사장)[5], 신춘범, 윤석구, 이기문, 이동채, 이재강, 조재익
- 1993년(19기)
- 1994년(20기)
- 취재기자: 박재용 (심의실장), 김성진 (방송뉴스주간), 남종혁 (대전방송총국장)[10], 박상범 (창원방송총국장), 박영관 (전주방송총국장)[11], 이승기 (뉴스라인 W 앵커), 고영태, 김철민, 김태선, 박장범, 복창현, 이석재, 하준수
- 카메라기자: 이중우[12], 진만용
- 1995년(21~22기)
- 취재기자: 이웅수 (재난미디어센터장)[21기], 박진현 (시사제작국장)[21기], 박종복 (스포츠국장)[21기], 박상용A (감사실장)[16], 윤수희 (시청자센터장), 민필규 (이사회 사무국장)[22기], 구본국 (저널리즘책무실장)[21기], 이근우 (취재1주간)[21기], 이승환 (디지털뉴스주간)[21기], 설경완 (광주방송총국장)[21기][22], 이현진 (경인취재센터장)[22기][24], 이재환 (국제부장)[25], 김대홍 (해설위원, 일요진단 라이브 진행)[22기][27], 전종철 (뉴스레터K 진행)[21기][29], 권혁일[22기][31], 김명섭[21기][33], 김민성, 김봉진[22기][35], 김정환A[22기], 김태형[21기], 김현석[21기][39], 나신하[21기], 박찬형[21기], 박현철[21기][43], 선재희[21기], 안양봉[22기][46], 양지우[21기][48], 엄경철[21기], 연규선[21기][51], 유성식[21기][53], 윤양균[21기], 이경호[22기][56], 이석호[21기][58], 이유진[21기][60], 이은정[22기][62], 이주형[22기][64], 정재용[22기][66], 조일수[22기], 지창환[21기][69], 최문호[22기][71], 최재현B[21기][73], 최진호[21기][75], 황상길[21기][77]
- 카메라기자: 최연송[22기][79]
- 1996년(23기): 최성원 (시사제작2부장), 정창준 (뉴스와 화제 앵커)[80], 유승영[81], 최재훈, 최정근, 함철
- 1997년(24기): 김철우 (광고국장), 김덕원 (전략기획실 대외협력국장), 김도엽 (전략기획실 전략기획국장), 최동혁 (취재2주간), 양석현 (탐사보도부장), 최규식 (정치부장), 이민우 (네트워크부장), 박정호 (경제부장), 서태교 (뉴스제작2부장), 소현정 (디지털뉴스2부장), 박순서 (시사제작1부장), 송재혁 (스포츠취재부장)[82], 심병일 (스포츠사업제작부장)[83], 이재원 (시청자센터 시청자서비스부장)[84], 구영희[85], 금철영[86], 김상협[87], 김진우[88], 박에스더, 성재호[89], 유원중[90], 이영섭[91], 이영현[92], 정재준[93], 정인성, 정제혁, 조현진[94], 한성윤
- 1998년(25기): 송현정, 이미경, 이해연[95], 정충희[96], 한보경[97]
- 2000년(26기): 윤상 (보도기획부장)[98], 신강문 (통일외교부장 겸 남북교류협력단장), 최서희 (뉴스제작3부장), 이석재 (디지털뉴스1부장), 유광석 (제주방송총국 보도국장)[99], 곽희섭 (사회부장)[100], 김나미 (대외협력국 커뮤니케이션부장), 김민철A (해설위원)[101], 박현진 (해설위원)[102], 임승창 (해설위원)[103], 김현경 (주말 뉴스 9 앵커/재난방송센터 진행), 박일중 (뉴욕 특파원)[104], 권재민[105], 김대영[106], 김완수, 김진희A[107], 김태욱, 박주경, 정수영[108], 조성원, 조성훈[109], 최영철, 황동진[110]
- 2001년(27기): 송창언 (비서실장), 정정훈 (산업과학부장), 이윤희 (경제콘서트 앵커), 정윤섭 (방콕 특파원)[111], 김귀수[112], 김기현[113], 김석, 김정환B, 김학재[114], 모은희[115], 양영은, 이랑[116], 이병도[117], 이정화, 이진성, 정영훈[118], 정지주, 정홍규[119], 차세정, 최대수[120], 홍수진[121], 홍희정[122]
- 2002년(28기): 김주한 (대외협력국 대외협력부장)[123], 김세정[124], 김양순[125], 박석호[126]
- 2003년(29기): 김나나 (평일 뉴스광장 앵커)[1박2일], 기현정 (남북의 창 진행), 이충헌 (의학전문기자)[128], 강민수[129][1박2일], 국현호[131], 김명주, 박수현[132], 이소정, 이승준[133], 이정민[134], 최건일[135], 최진아[136], 하송연[137]
- 2004년(30기)
- 취재기자: 심연희 (문화복지부장)[138], 류호성 (뉴스 12 앵커), 최문종 (평일 뉴스 9 앵커), 조빛나 (베를린 특파원), 김가림[139], 김기중, 김도환[1박2일], 김성우, 박선자, 박장훈, 손기성, 송승룡, 우수경[141], 위재천[142], 윤진영, 이광열, 이승훈, 이철호, 이하경, 이화연, 임명규, 최선중, 최영은, 최정민, 최지영, 홍정표
- 카메라기자: 강희준, 고영민, 백창민, 엄진아, 왕인흡, 윤재구
- 2005년(31기)
- 취재기자: 강성원[143], 곽근아, 김성주, 김시원, 김웅, 노윤정[144], 류란, 박경호, 박희봉, 양민효, 은준수, 이수정[145], 임재성, 정아연, 차정인, 황현택[146]
- 카메라기자: 김태석, 연봉석, 임현식, 조승연
- 2006년(32기)
- 취재기자: 공웅조, 김기범, 김민경, 김영민, 노태영, 박미영, 박상용B, 박원기[147], 박예원, 박지은, 범기영[148], 송명희, 엄진아, 오중호, 우한울, 윤진, 이재교, 이지현, 이철호, 이하늬, 이호을, 이효연, 이효용, 임주영, 정성호, 지종익[149], 천준환, 최광호, 최세진, 최혜진, 홍석우
- 카메라기자: 박병규, 안광석, 이재섭, 임태호
- 2007년(33기)
- 취재기자: 송영석 (사사건건 진행), 김효신 (베이징 특파원), 안다영 (파리 특파원), 박상현 (언론노조 KBS본부장), 김준범, 김지선, 박선우, 박주미, 서영민, 신지원, 임종빈, 조태흠, 최창봉
- 카메라기자: 권태일, 김정은[150], 한규석
- 2008년(34기): 신방실 (기상전문기자), 고은희, 김경진, 김민경, 김진희B, 유동엽, 조정인, 지형철, 한승연, 허솔지
- 2009년(35기): 박광식 (의학전문기자), 김소영, 김영은, 김영준, 김진화, 민창호, 박대기, 윤성욱, 장덕수, 정연욱, 하선아
- 2010년(36~37기)
- 취재기자: 허성권 (KBS노동조합 위원장)[36기], 김지숙 (워싱턴 특파원)[37기], 김기화[37기], 김형석, 박병준[36기], 우정화[37기], 유진휘[36기], 이대완[36기], 이승철[37기], 정다원[37기], 정면구[36기], 최진영[37기], 허용석[37기], 홍혜림[37기]
- 카메라기자: 윤성구[37기]
- 2011년(38기): 강나루, 고아름, 김빛이라[1박2일], 김수연, 백인성, 서병립, 석민수, 신지혜, 이슬기, 정연우, 최준혁, 하누리, 홍성희
- 2012년(39기): 계현우, 김덕훈, 박민철, 박혜진, 손서영, 신선민, 옥유정, 유호윤[166], 이예진, 이재희[1박2일], 황정호
- 2013년(40기): 김가람, 김보람, 김유대, 류재현, 양창희, 이규명, 이연경, 이준석, 임서영, 정혜미, 조선우, 조연주, 조정아, 주아랑, 차주하
- 2014년(41기): 강푸른, 김민지, 김민철B, 김용준[168], 김진호, 박웅, 송금한, 오현태, 이세연, 이세중, 정새배[1박2일], 진유민, 홍진아, 홍화경, 황경주
- 2015년(42기): 김민정 (베이징 특파원), 김범주, 김수연, 김수영, 김채린, 문경원, 신이재, 윤봄이, 이지윤, 이지은, 이지철, 이현기[170], 임재희, 하무림
- 2016년(43기): 이화진 (파리 특파원), 조혜진 (워싱턴 특파원), 강병수, 김민혁, 김성수, 김세희, 김소영, 김태훈, 문준영, 박민경, 박영민, 송락규, 양예빈, 오대성, 오승목, 우한솔, 윤경재, 최은진
- 2018년(45기): 강예슬, 김청윤, 박찬, 방준원, 백상현, 이호준, 정상빈, 최유경, 최진석
- 2019년(46기): 공민경, 김아르내, 김혜주, 노도송, 민정희, 박산이, 박진수, 양민철, 이수민, 이유민, 이정은, 이형관, 임지초, 전현우, 정주화
- 2021년(48기): 정해주
- 2023년(50기): 김옥천, 김우준[171]
[1] 前 청주방송총국 보도국장(2011.1~2012.6), 前 문화부장(2012.6~2013.6), 前 해설위원(2014.8~2015.12 / 2016.5~8), 前 선거방송기획단장(2015.12~2016.5), 前 한국방송협회 사무총장(파견, 2016.8~2018.4).[2] 前 베이징 특파원(2003~2006), 前 1TV뉴스제작팀-뉴스제작1부장(2009.9~2011.7), 前 경제부장(2011.7~2012.12), 前 사회2부장(2013.12~2014.6), 前 해설위원(2014.8~2015.4), 前 콘텐츠창의센터 KBS대한민국미래기획포럼단장(2015.4~9), 前 선거방송기획단장(2015.9~12), 前 편집(방송뉴스)주간(2015.12~2017.7), 前 미래전략기획국장(2017.8~2018.4). 저서로는 <신라 법흥왕은 선비족 모용씨의 후예였다(1999)>, <이순신 수국 프로젝트(2009)>, <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2015)>,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전 3권, 2021)>, <부의 설계(공저, 2021)> 등이 있다.[3] 前 문화부장(2013.6~12), 前 정치외교부장(2013.12~2014.5), 前 정책기획국장(2015.12~2016.5), 前 미래전략기획국장(2016.5~2017.7), 前 취재주간(2017.8~2018.4), 前 해설위원(2018.4~2022.4).[4] 前 상하이 특파원(2008~2009.4), 前 베이징지국장(2009.4~2011.7), 前 사회2부장(2012.6~2013.12), 前 과학·재난부장(2013.12~2014.5), 前 비서실장(2014.7~2015.11), 前 국제주간(2015.12~2016.8), 前 TV프로덕션2담당(2016.8~2018.4).[5] 현역 시절인 2006년부터 2년여 간 1노조 위원장이기도 했다. 前 사회팀장(2010.2~6), 前 사회2부장(2010.6~2011.7), 前 문화부장(2011.7~2012.6), 前 취재주간(2014.8~2015.12), 前 스포츠국장(2015.12~2018.4).[6] 前 워싱턴 특파원(2001~2004), 前 대외협력실장(2013.1~2014.5), 前 사회2부장(2014.8~2015.12), 前 정치외교부장(2015.12~2017.8), 前 해설위원(2017.8~2018.4). 저서로는 <취재파일 1994(2022)>가 있다.[7] 前 뉴스제작2부장(2013.1~2014.5), 前 뉴스제작3부장(2014.5), 前 뉴스제작1부장(2015.3~12), 前 재난·과학부장(2015.12~2017.8), 前 남북교류협력단 남북교류협력부장(2018.4~2019.11), 前 방송뉴스주간(2019.11~2021.4), 前 KBS 아메리카 사장(파견, 2022.1~2023.8)[8] 前 네트워크부장(2020.5~2022.1)[9] 前 뉴스제작2부장, 前 국제부장, 前 방콕 특파원, 前 방송뉴스주간(2021.4~2022.3).[10] 前 대외정책실장(2014.8~2015.11), 前 비서실장(2015.11~2017.1), 前 경제부장(2017.1~2018.4).[11] 前 상파울루 특파원(2014~2017.8), 前 사회1부장(2017.8~2018.4), 前 한국방송협회 사무총장(파견,2023.12~2024.9).[12] 2013년부터 3년 간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 회장 역임.[21기] [21기] [21기] [16] 前 사회2부장(2017.8~2018.4), 前 뉴스제작3부장(2019.2~11), 前 국제부장(2019.11~2020.11).[22기] [21기] [21기] [21기] [21기] [22] 前 광주방송총국 보도국장(2015.12~2017.8).[22기] [24] 前 KBS노동조합(1노조) 위원장.[25] 前 대구방송총국 보도국장(2016.9~2018.4), 前 네트워크부장(2022.2~2023.3).[22기] [27] 前 도쿄 특파원(2008.6~2011.6)[21기] [29] 前 뉴스와 화제 앵커, 前 워싱턴 특파원.[22기] [31] 前 춘천방송총국 보도국장(2020.7~2021.2), 前 시청자센터 시청자서비스부장(2021.2~2022.12), 前 강릉방송국장(2023.1~12).[21기] [33] 前 경인취재센터장(2018.4~2019.2), 前 국제부장(2020.11~2021.4).[22기] [35] 前 스포츠기획부장(2018.4~2020.5), 前 스포츠국장(2022.12~2023.11).[22기] [21기] [21기] [39] 前 선거방송기획단장(2021.12~2022.4), 前 통합뉴스룸 국장(2022.4~2023.3).[21기] [21기] [21기] [43] 1997년 KBS가 MLB 중계권을 획득했을 당시 박찬호 전담 기자였다.[21기] [22기] [46] 前 사회1부장(2018.4~2018.9), 前 취재1주간(2021.4~2021.12), 前 시사제작국장(2022.4~2023.11).[21기] [48] 前 KBS 뉴스라인 앵커(2016.4~2017.1), 前 남북의 창 진행(2023.11~2024.5).[21기] [21기] [51] 前 문화부장, 前 모스크바 특파원. 배우자는 MBC 박선영 기자.[21기] [53] 前 네트워크부장(2019.11~2020.5), 前 경인취재센터장(2020.5~2021.7), 前 원주방송국장(2022.9~2023.12).[21기] [22기] [56] 前 언론노조 KBS본부장(2018.1~2019.12), 前 통일외교부장(2020.5~11), 前 보도기획부장(2020.11~2021.4), 前 전략기획실 대외협력국장(2021.4~2022.3).[21기] [58] 前 뉴스제작2부장(2019.2~2021.4), 前 경인취재센터장(2021.8~2022.3), 前 방송뉴스주간(2022.4~2023.3), 前 심의실장(2023.4~11).[21기] [60] 前 스포츠취재부장(2015.12~2017.1).[22기] [62] 前 뉴스제작3부장(2019.11~2020.11), 前 디지털뉴스주간(2020.11~2021.4).[22기] [64] 前 사회2부장(2018.4~2019.2), 前 정치부장(2019.2~2020.5), 前 시사제작2부장(2020.11~2022.3).[22기] [66] 前 스포츠국장.[22기] [21기] [69] 前 광주방송총국 보도국장(2017.8~2019.6), 前 광주방송총국장(2021.12~2023.12).[22기] [71] 2016년 퇴사 후 뉴스타파에 입사했다가, 2018년 특별채용 형식으로 복직. 前 탐사보도부장(2019.3~2020.5), 前 정치부장(2020.5~2021.4), 前 저널리즘책무실장(2023.1~11).[21기] [73] 前 베를린 특파원.[21기] [75] 前 네트워크부장(2023.3~11).[21기] [77] 前 대외협력국 커뮤니케이션부장(2019.3~11), 前 대외협력국장(2019.11~2020.12), 前 충주방송국장(2021.1~2022.12), 前 이사회 사무국장(2023.4~10).[22기] [79] 前 영상편집부장(2018.4~2019.9), 前 보도영상국장(2022.11~2023.11).[80] 前 홍보실·대외협력실 홍보부장(2015.12~2018.4), 前 시사제작1부장(2019.11~2020.5), 前 뉴스제작1부장(2020.5~11).[81] 前 경인취재센터장(2022.4~2023.3).[82] 배우자는 MBC 이동애 기자. 처형은 MBC 이동희 PD.[83] 前 스포츠취재부장(2023.3~11).[84] 前 워싱턴 특파원(2016.7~2019.6).[85] 前 문화부장(2019.1~2), 前 산업과학부장(2019.2~11), 경제부장(2019.11~2020.5), 前 시청자센터장(2021.12~2023.6).[86] 前 워싱턴 특파원, 前 정치외교·통일외교부장(2018.4~2018.7/2018.8~2019.5), 前 취재1주간(2021.12~2022.3), 前 선거방송기획단장(2022.4~2023.11).[87] 前 문화복지부장(2020.5~2022.3), 前 국제부장(2022.4~2023.3).[88] 前 보도기획부장(2020.5~11), 前 뉴스제작1부장(2020.11~2021.4), 前 국제부장(2021.4~2022.3), 前 취재2주간(2022.4~2022.12), 前 전략기획실 전략기획국장(2023.1~11).[89] 평기자 시절 언론노조 KBS본부 위원장(2015~2018)과 방송기자연합회 회장(2020~2022)을 맡았다. 前 사회부장(2019.2~11), 前 취재1주간(2022.4~2023.3), 前 통합뉴스룸 국장(2023.3~11).[90] 前 탐사보도부장(2018.4~2019.2), 前 시사제작2부장(2019.8~2020.11), 前 파리 특파원.[91] 前 사회부장(2019.11~2020.5), 前 사회재난주간(2020.5~2021.4), 前 탐사보도부장(2021.4~2022.11).[92] 前 KBS 뉴스라인 앵커(2013.10~2016.4), 前 KBS 아침뉴스타임 앵커(2016.4~2018.4), 前 뉴스제작1부장(2019.8~2020.5), 前 LA 특파원.[93] 前 진주방송국장(2020.5~2021.4), 前 사장 비서실장(2021.4~12), 前 해설위원(2021.12~2022.3), 前 뉴스제작2부장(2022.4~2023.3), 前 지역정책실장(2023.4~11).[94] 前 시사제작1부장(2020.5~2021.12), 前 문화복지부장(2021.12~2022.4). 前 취재2주간(2023.1~11).[95] 前 뉴스제작2부장(2021.4~2022.3).[96] 前 스포츠취재부장(2020.5~2021.12), 前 스포츠사업제작부장(2023.4~11).[97] 前 뉴욕 특파원.[98] 前 디지털뉴스제작부장(2020.11~2021.4), 前 디지털뉴스주간(2022.4~2023.3).[99] 前 통일외교부장 겸 남북교류협력단장(2022.4~2023.3), 前 시사제작2부장(2023.3~11).[100] 前 전략기획국 전략개발부장(2023.11~2024.6). 배우자는 KBS 이윤희 기자.[101] 前 재난미디어센터장(2023.3~11).[102] 前 뉴스제작3부장(2023.3~11).[103] 前 경제부장(2020.5~2021.4), 前 보도기획부장(2021.4~2023.11).[104] 前 경제부장(2022.4~2023.3).[105] 前 스포츠제작사업부장(2021.4~2022.3), 前 국제스포츠이벤트추진단장(2022.4~2023.3).[106] 前 선거방송기획단장(2019.8~2020.5), 前 디지털뉴스제작부장(2020.5~2021.4).[107] 前 KBS 뉴스광장 평일 앵커(2006.8~2008.11), 前 문화복지부장(2019.11~2020.5).[108] 前 탐사보도부장(2020.5~2021.4), 前 사회부장(2021.4~2022.3).[109] 前 그룹마케팅총괄국 마케팅전략부장(2018.4~2019.2), 前 제작2본부 콘텐츠프로모션부장(2019.3~2021.3), 前 디지털뉴스1부장(2021.4~2022.3), 前 디지털뉴스주간(2022.4).[110] 前 디지털뉴스제작부장(2019.11~2020.11), 前 시사제작2부장(2022.4~2023.3), 前 LA 특파원.[111] 前 산업과학부장(2019.11~2020.10), 前 KBS 뉴스 12 앵커(2020.11~2023.4).[112] 前 베를린 특파원.[113] 前 워싱턴 특파원.[114] 前 뉴스제작2부장(2023.4~9).[115] 前 산업과학부장(2023.1~7).[116] 前 KBS 뉴스광장 평일 앵커(2018.4~2019.11), 前 베이징 특파원.[117] 前 통일외교부장(2021.4~2022.3), 前 정치부장(2022.4~2023.3).[118] 前 디지털뉴스주간(2023.3~11).[119] 前 사회부장(2020.5~2021.4), 前 뉴스제작1부장(2022.4~2023.3), 前 방송뉴스주간(2023.3~11).[120] 前 경제부장(2023.3~11).[121] 前 도쿄 특파원.[122] 前 남북의 창 진행(2020.5~2021.4), 前 전략기획실 대외협력부장(2021.4~12), 前 디지털뉴스2부장(2021.12~2023.3), 통일외교부장 겸 남북교류협력단장(2023.3~11).[123] 前 문화복지부장(2023.3~11).[124] 前 문화복지부장(2022.4~2023.3), 前 정치부장(2023.3~11).[125] 前 워싱턴 특파원.[126] 前 두바이 특파원, 前 뉴스제작2부장(2023.9~11).[1박2일] [128]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129] 前 KBS 뉴스광장 평일 앵커(2015.4~2017.1), 前 베이징 특파원(2017.6~2020.8).[1박2일] 2015년 2월 1박 2일 시즌3 <특종 1박 2일>에 출연하였다.[131] 前 남북의 창 진행(2018.4~2020.5), 前 뉴스제작1부장(2023.3~11).[132] 2004년 교양PD로 전직했다가 2007년 복귀.[133] 前 산업과학부장(2023.8~11).[134] 前 워싱턴 특파원.[135] 前 사장 비서실장(2021.12~2023.11).[136] 前 디지털뉴스2부장(2023.3~11).[137] 前 디지털뉴스1부장(2022.4~2023.11).[138] 前 KBS 뉴스 12 앵커(2016.12~2018.4). 배우자는 KBS 최문종 기자.[139] 2001 미스코리아 대구 진 출신.#[1박2일] [141] 前 두바이 특파원(2021.7~2024.6). 배우자는 KBS 박주경 기자.[142] 前 KBS 뉴스광장 토요일 앵커(2019.11~2020.11).[143] 前 언론노조 KBS본부장.[144] 前 사회부장(2023.3~11).[145] 前 KBS 뉴스 12 앵커(2018.4~2019.11).[146] 세계일보 출신.[147] 前 도쿄 특파원.[148] 한국일보, 여수MBC 출신. 前 KBS 뉴스 12 앵커(2018.4~2019.11), 前 사사건건 진행(2021.8~2023.4)[149] 前 도쿄 특파원.[150] 저서로는 2009년 5월(2011), 조국을 부정한다(2021) 등이 있다.[36기] [37기] [37기] [36기] [37기] [36기] [36기] [37기] [37기] [36기] [37기] [37기] [37기] [37기] [1박2일] [166] 前 베를린 특파원.[1박2일] [168] 前 뉴스레터K 진행(2024.1~5).[1박2일] [170] 과거 일베저장소 활동 전력으로 논란이 되었고, 2023년에는 김의철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직원 서명에 참여하였다.[171] YTN 출신.
3. 전직
3.1. 1950년대 이전
- 1943년: 문제안[172], 김우용[173]
- 1948년: 김인현[174]
- 1949년: 한영섭, 조동표, 신기철, 이건정, 이경수, 김영철, 조낙기, 구주현
- 1950년: 조용하, 홍순구, 양무용
- 1955년: 박상진, 윤태로, 한기욱
- 1957년: 송석두[175], 윤박[A]
- 1958년: 이낙용[A]
[172] '한국 방송기자 1호'로 알려진 언론인. 미군정과의 의견대립으로 인해 1946년부터 방송계를 떠나 조선통신, 경향신문, 자유신문, 서울신문, 조선일보 등지에서 신문기자로 활동하며 1950년 6.25 전쟁 때 서울신문 소속으로서 종군기자로 참전하여 1953년 휴전협정 과정을 상세히 보도하기도 했다.[173] 1946년부터 서울신문으로 이직하여 1962년 퇴직 시까지 사회부에서 주로 뛰며 부장까지 맡았고, 1963년 MBC로 촉탁 입사했다가 1966년 원호처 원호위원에 선임됐다. 이후 대한통운 사장 비서실장 등지 역임.[174] 1961년 MBC 개국에 따라 이직. 1993년 8월 12일 사망.[175] 원래 아나운서였으나, 기자로 전직.[A] 1961년 MBC 개국요원으로 이직.[A] 1961년 MBC 개국요원으로 이직.
3.2. 1960년대
- 1961년: 강윤영, 김기주[178], 김철린[179], 김충기, 송정기, 오길웅[180], 윤천영, 이기우, 이길영, 이창열, 전재만, 정기자
- 1962년: 홍삼용, 정인걸[181]
- 1963년
- 1964년
- 서울중앙방송국: 김찬식[185]
- 서울TV방송국: 신정호
- 1965년
- 1966년
- 1967년: 권용중, 김국웅, 배학철, 서복석[192], 이성한, 이양길, 황규환
- 1968년
- 1969년
[178] 1962년 MBC로 이직.[179] 입사 당시 KBS-TV 개국요원으로 합류했다가 이듬해 기자로 전직했으며, 1968년 TBC로 옮겼다가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TBC가 합쳐지자 복귀. 1981년 교통부 공보관으로 임용되면서 퇴직했다. 이상근 SBS미디어넷 이사의 장인으로 2023년 2월 1일 사망.[180] 前 제주방송국 방송과(부)장(1972~1974), 前 라디오국 특집반장(1978), 前 청주방송국 방송부장(1978~1981), 前 속초방송국장(1981), 前 제주방송(총)국장(1981~1984/1991~1993), 前 방송심의실 심의위원(1985~1991). 1993년 정년퇴임 후 1994년 KCTV제주방송 창립 당시 초대 사장을 맡다 1997년 11월 3일 사망.[181] 前 카메라취재반 주관/카메라취재부장(1977.7~1980.12), 前 카메라1부 부국장(1980.12~1981.2), 前 보도국 카메라취재부국장/뉴스센터 촬영총감독/보도국 카메라부국장(1981.2~1990.1), 前 영상제작국장(1990.1~1996.4), 前 TV본부 제작위원(1996.4~1997.7). 1997년 7월 정년퇴임했으며 대통령표창(1967) 및 국무총리표창(1987) 수상.[182] 1966년 MBC로 이직. 곽우신 기자의 부친이며 2010년 11월 17일 사망.[B] 1969년 MBC로 이직.[184] 공보부 선전과에서 넘어왔으며, 2년 후 서울특별시 공보실과 대통령 경호실 등을 거쳐 1969년 MBC까지 넘어갔다.[185] '한국 뉴스앵커 1호'로 손꼽히는 기자로 1967년 광부 양창선 매몰현장 중계방송 진행을 시초로 TV 프로 <뉴스의 초점>, <알고싶은 일들> 등을 진행. 前 사회교육국 전문위원(1976~1978), 前 방송위원(1978~1980). 퇴사 이후 시사평론가로서 미래사회연구소 소장을 맡으며 1라디오 <안녕하십니까(1981)> 및 <라디오 동서남북(1984~1991)> MC, 2TV <생방송 전국은 지금> '조간뉴스' 코너, TBS <교통시대> 및 <시사해설> '사건과 오늘' 코너 MC, 극동방송 <1188 전망대> MC, SBS 러브FM <792 뉴스대행진> MC 등을 맡았으며, 2007년 7월 4일 사망. 저서로는 <오늘을 생각한다(1981)>, <인생을 값지게 사는 길(1992)> 등이 있다.#[186] 前 AG관리국 편의업무부장(1986), 前 올림픽운영국 예약업무부장(1986~1989), 前 해설위원실 해설위원(1989~1990), 前 라디오제작2부장(1990~1991), 前 사회부장(1991), 前 방송심의실 심의위원(1991~1995), 前 노무국장(1995~1996), 前 대전방송총국장(1996~1997), 前 전주방송총국장(1997~1998), 前 보도본부장(1998~2000). 2000년 KBS영상사업단 사장으로 임명되어 2년 간 재직.[187] 前 홍콩특파원(1984~1986), 前 영상편집부장(1988~1990), 前 카메라취재1부장(1990~1991), 前 카메라취재2부장(1991~1993). 1996년 3월 정년퇴임 후 2012년 3월 10일 사망.[188] 원래 아나운서였으나 1967년 기자로 전직.[189] 아나운서로 입사했다가 곧바로 기자로 전직. 前 정치부장(1979. 9.~1980), 前 해설위원(1980~1984.1), 前 국제방송국 부국장(1984.1~1985.8), 前 기획조정실장(1985. 8.~1986.4), 前 비서실장(1986.4~1988.3), 前 보도국장(1988.3~11), 前 국제방송국장(1988.11~1991.3), 前 방송심의실장(1991.3~1992.2), 前 조직관리국장(1992.2~1993.2), 前 사회교육방송국 전문위원(1993.2~1994.9). 1994년 퇴사 이후 한국방송개발원 방송인력개발실장과 방송정책연구실장, 한국방송제작단 회장, <LPN 로컬파워뉴스> 논설위원 등지 역임.[190] 1980년 신군부의 언론정화 당시 해직되었다가 1989년 복직.[191] 前 홍콩특파원(1986~1989).[192] 1998년 명예퇴직 후 2009년 '방송개혁시민연대' 설립 참여.[193] 前 외신부장(1988.3~1989.1), 前 기획보도실 특집3제작부주간(1989.1~1990.4), 前 해설위원(1990.4~1991 / 1995.7~1996.4), 前 모스크바 특파원(1991~1995.7), 前 라디오제작부장(1996.4~1997.5), 前 뉴욕지국장(1997.5~1998.10). 이후 대한언론인회 이사 등지 역임.[194] 前 방송심의실 심의부장(1979~1981.2), 前 보도본부 TV편집부장(1981.2~1982.11), 前 보도본부 부국장 겸 편집실장(1982.11~1984.1), 前 방송연수원 연구위원(1984.3~1985.2), 前 부산방송본부 뉴스센터주간(1985.3~1986.3), 前 뉴스제작실장(1986.3~12), 前 수석부주간(1986.7~12), 前 보도국 TV편집부국장(1986.12~1988.3), 前 청주방송총국장(1988.3~1989.1), 前 심의실 심의위원(1989.1~1991.3), 前 보도국 TV제작주간(1991.3~1992.2), 前 보도국장(1992.2~1993.6). 이후 1994년 YTN으로 합류하여 초대 보도국장을 맡으며 1995년에는 상무이사 자리까지 꿰찬 바 있고, 1998년 이후 중앙일보-중앙방송 상임위원, 대구 FC 단장 등지 역임.[195] 前 라디오정치부장(1982), 前 경제특집부장(1982~1983), 前 경제부장(1983~1984), 前 부산방송본부 뉴스센터주간(1984~1985), 前 뉴스센터 부주간(1985), 前 기사심의부주간(1985~1986), 前 남북대화부주간(1986), 前 TV편집1부장(1986~1987), 前 외신부장(1987~1988), 前 해설위원(1988~1990 / 1993~1995 / 1996~2000), 前 과학부장(1990~1991), 前 대구방송총국 보도국장(1992~1993), 前 국제주간(1995~1996). 2000년 3월 31일부로 정년퇴임.[196] 1980년 강제해직 후 1985년 한국방송사업단으로 취직했다가 1988년 복직.[B] 1969년 MBC 이직.[B] 1969년 MBC 이직.[199] 1970년 문화공보부 비서실로 발령났다가 1971년 복귀. 前 홍콩특파원(1981.3~1984.3), 前 외신부장/제4부주간(1984.3~1985.1), 前 국제방송국 방송부장(1985.1~7), 前 총괄부주간(1985.7~1986.3), 前 미주한국방송(KTE) 전무(파견, 1986.3~1989). 퇴직 후 한동안 미국에서 식품 도매업 및 컴퓨터 부품 도매업에 종사하다 <미주중앙일보>, <여성경제신문>, <세종경제신문> 등에 칼럼을 기고해왔다. 2010년대 들어 <계간수필>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하여 <나의 아픔 우리들의 상처> 등 수필집을 내기도 했다.[200] 1970년 문화공보부 비서실로 발령났다가 1971년 복귀. 前 기획보도실 특집2제작부주간-보도제작국 제작2부장(부주간)(1986~1996), 前 제작1부주간(1996~1998). 1998년 명예퇴직.[201] 前 도쿄 특파원(1981~1986), 前 카메라취재부장(1998.10~1999.12), 前 전문촬영기자(1999.12~2001.3). 2001년 3월 31일 정년퇴임.
3.3. 1970년대
- 1970년: 공정표, 오두범[202], 이윤성, 이홍기, 호천웅, 서영명(徐英明)[203]
- 1971년
- 1972년: 김광일, 문인수, 신광식[207], 오창현[208]
- 1973년(공사화 이후)
- 간부: 최서영[209]
- 취재기자: 김부억[210], 김택환, 장두원, 김은구[211], 이청수[212], 양휘부, 이인원, 한중광[213], 정용석[214], 황봉구[215], 김인규, 양승걸, 오광균, 홍성현[216], 김광석, 김경묵, 김상춘, 방윤헌, 남승욱, 장병기[217]
- 카메라기자: 한재후[218]
- 1974년
- 취재기자: 권혁부, 류근찬, 박대석, 심의표[219], 유자효[220], 이광호, 박동형, 이윤배, 유일상, 홍성규, 박정래, 이성완[221]
- 사진기자(카메라기자): 백승대[222], 박병국, 김동성, 김필건, 유승길, 황성규[223]
- 1975년
- 1977년: 김성배[227], 정서구, 이동식[228], 이병순, 박원기, 이일화, 이임호[229]
- 1978년
- 1979년
[202] 1978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이직.[203] 2004년 5월 20일 사망.[204] 원래 교양PD로 입사했다가 1980년 기자로 전직. 1994년 마이TV(현 SBS Golf) 상무로 영전.[205] 조선일보, 동아방송 출신으로 아호는 효암(曉巖). 前 중앙방송국 보도부/보도국장(1971.9~1974.7), 前 런던지국장(1974.7~1976.4), 前 파리지국장(1976.4~12), 前 국제국장(1976.12~1979.4), 前 워싱턴지국장(1979.5~1985.5), 前 올림픽방송본부장 및 아시아경기대회방송실시단장(1985.5~1987.8), 前 올림픽방송운영본부장(1987.8~1988.11), 前 기획조정실장(1988.11~1991.3). 1990년 서영훈 사장 사임 후 서기원 사장 선임 전까지 잠깐 사장 직무대행을 맡았으며 1991년부터 1년여 간 KBS 제작단(현 한국방송제작단) 사장을 맡았고, 방송위원회 위원(1993~1997), 한국방송개발원 이사장(1997~1999), KBS 시청자위원회 위원장(1999~2002), 대한언론인회 회장(2002~2006), 오라뉴스 대표고문(2007~2008) 등을 맡다가 2008년 1월 16일 사망.[206] 前 카메라취재부장(1986.12~1988.3), 前 영상편집부 제작위원(1988.3~1990.1), 前 카메라주간(1990.1~1991.3), 前 방송연수원 교수(1992~1993), 前 보도위원(1993). 1993년 정년퇴임 후 1995년 6월 14일 사망.[207] 동화통신 출신.[208] 2004년 12월 정년퇴임.[209] 서울신문, 조선일보, 경향신문 출신.[210] 대한일보 출신. 前 라디오수도권부장(1980.12~1981.11), 前 과학기술부장(1981.11~1982.7), 前 마산방송국장(1982.7~1984.7), 前 네트워크담당(부주간)(1984.7~1986.3 / 1986.7~10), 前 과학부주간(1986.3~7), 前 심의위원(1986.10~1987.6 / 1990.5~1992.7), 前 공주방송국장(1987.6~1989.8), 前 노무국장(1989.8~1990.5), 前 청주방송총국장(1992. 7.~1993. 4.), 前 보도위원(1993)[211] 조선일보, 서울신문, 경향신문 출신. 前 보도국 사회문화부장(1973~1976), 前 보도국 취재부국장(1975~1977.7), 前 보도국 부국장(1977.7~1980.6), 前 대전방송국장(1980.6~1982.11), 前 업무국장(1982. 11.~1984.7), 前 기획조정실장(1984.7~1985.8/1991.3~11), 前 사회교육방송국장(1985.8~1986.6), 前 보도본부 부본부장 겸 뉴스센터주간(1986.6~12), 前 부산방송본부장(1986.12~1989.4), 前 기획조정실 부본부장 겸 방송개혁발전위원장(1989.4~8), 前 인사관리실장(1989.8~1990.5), 前 경영본부장(1991.11~1993.3). 이후 KBS 아트비전 사장(1993. 3.~1995), KBS 이사회 4기 이사(1996~1998), KBS 사우회장(2007~2009) 등 역임.[212] 동화통신 출신. 1998년 3월 정년퇴임.[213] 동아일보/동아방송 출신.[214] 동화통신 출신. 前 주일특파원(1979.4~1986.6), 前 기획보도부주간(1986.6~7), 前 뉴스파노라마부주간(1986.7~12), 前 기획보도실 특집3제작부주간(1986.12~1987), 前 해설위원실 해설위원(1987~1989.1 / 1999.8~2001.6), 前 방송위원(1989.1~1990.2), 前 런던지국장(1990.2~1993.11), 前 국제부장(1993.11~1995.5), 前 도쿄총국장(1996.4~1999.8). 2001년 6월 정년퇴임 이후 2005년 'FM분당(현 성남FM)'을 개국하여 대표로 재직해왔다.[215] 동화통신 출신. 1997년 정년퇴임 후 호남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경운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숭실대학교 언론홍보학과 등지 초빙교수, 대한언론인회 이사 등을 지내다 2014년 5월 17일 사망.[216] 前 사회부장(1990.2~1991.4), 前 라디오제작2부장(1991.4~9), 前 수도권부장(1991.9~1993.4), 前 정치부장(1993.4~1994.9), 前 취재주간(1994.9~1995.2), 前 TV제작주간(1995.2~1996.4), 前 보도국장(1996.4~1997.8)[217] 원래 편성PD로 입사했으나 기자로 전직. 前 뉴스기획부장(1991.9~1992.2), 前 보도제작국 제작1부주간(1992.2~1995.2), 前 TV편집부장(1995.2~1996.5). 1996년 국제방송교류재단(아리랑국제방송) 창립 당시 제작국장으로 이직한 이래 한국씨네텔 초대 대표(1999~2003), iTV 전무(2003~2004) 등을 역임하다 2004년 2월 8일 사망.[218] 문화공보부 물리기사 및 사진기사 출신.[219] 독립운동가 심재인의 차남. 1980년 신군부의 언론정화로 해직되었다가 1985년 복직. 前 경제부장(1993.4~1995.2), 前 사회부장(1996.4~1997.7), 前 국제부장(1997.7~1998.4), 前 취재주간(1998.4~12), 前 취재1주간(1998.12~1999.3), 前 부산방송총국장(1999.3~2000.1), 前 해설위원(2000.1~2001.4 / 2003.5~2004.7), 前 영업국장(2001.4~2003.5), 前 남북교류협력팀장(2004.7~2005.5). 이후 KBS 비즈니스 감사, 대한언론인회 이사 등지 역임.[220] 1972년 <시조문학>에서 '혼례'란 작품으로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며, 1986년부터 3년 동안 파리 특파원을 맡았다. 1991년 SBS 이직.[221] 원래 PD로 입사했다가 기자로 전직. 前 보도제작국 제작2부주간(1996.4~1998), 前 제작1부주간(1998~2001), 前 강릉방송국장(2001~2002), 前 보도제작국 선거방송기획주간(2002~2004). 2005년 정년퇴임 후 2008년 국제방송교류재단(아리랑국제방송) 방송본부장으로 영전.[222] 영화 촬영기사, 국방부 국군영화제작소, 한국방송연맹 홍보부, 한국반공연맹 출신으로 1987년 '한국TV카메라기자회(현 한국영상기자협회)' 창설에 참여하여 운영위원을 지내다가 1992년 1월부터 11개월 동안 제5대 회장을 지냈다. 前 보도국 뉴욕특파원(1988~1991). 1994년 퇴사 후 독립제작사 '톱프로덕션' 설립/운영.[223] 1994년 YTN 이직.[224] 합동통신, 대한일보, TBC 출신.[225] MBC 출신. 前 춘천방송총국 보도국장(1993~1994.8), 前 제주방송총국 보도국장(1994.8~1995.7), 前 전국부장(1995.7~1997.7), 前 사회부 기동취재부주간(1997.7~1998.5), 前 TV편집부주간(1998.5~10), 前 해설위원(1998.10~12), 前 여수방송국장(1998.12~2000.12), 前 시청자센터 홍보주간(2000.12~2002.11), 前 제주방송총국장(2002.11~2003.12). 2004년 퇴사를 전후해 제주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경기대학교 서울캠퍼스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및 학과장, 방송위원회 보도/교양 심의위원, 뉴스통신진흥회 이사 등지 역임. 저서로는 <영욕의 빛과 그림자(2022)>가 있으며 1989년 제21회 한국기자상 방송제작부문 등 10여개의 상을 받았다.[226] 1980년 신군부의 언론정화 당시 해직되어 삼성정밀공업에서 카메라 광고업무를 맡다가 1983년 복직. 前 춘천방송총국 보도국장(1995.2~1996.4), 前 TV편집부 부주간(1996.4~1997.7), 前 사회부 부주간(1997.7~1998.5), 前 국제부장(1998.5~10), 前 뉴욕지국장(1998.10~2001.4), 前 취재2주간(2001.4~2003.5), 前 보도국장(2003.5~2004.2), 前 부산방송총국장(2004.2~2005.12), 前 해설위원(2005.12~2007). 2007년 17대 대선 당시 이명박 대선후보 방송특보를 거쳐 2008년부터 4년 동안 KT스카이라이프 사장을 맡은 뒤, 2013년 부회장으로 추대되어 1년 더 재직했다. 저서로는 <이것이 경쟁력이다(1994)>, <미국은 아니다(2001)> 등이 있다.[227] 대한일보, 문화공보부 보도국 출신. 前 편집부장(1979.9~1980), 前 방송(문화)연구소 연구위원(1981.2~11 / 1985~1986), 前 연구부장(1981.11~1982.11), 前 종합기획실 부장(1982.11~1984), 前 TV센터 제작관리담당(1984~1985), 前 기획조정실 기획위원(1986.4~1987.2), 前 대구방송총국 보도국장(1987.2~1988.5), 前 충주방송국장(1988.5~1989.1), 前 기획보도실 부실장(1989.1~1990.6), 前 보도제작국장(1990.6~1991.3), 前 비서실장(1992.2~1993.2), 前 제주방송총국장(1993.2~1994.8), 前 정책연구실장(1994.8~1995.2), 前 전산정보실장(1995.2~3). 1995년 KBS문화사업단 이사로 임명되어 3년간 지내고 대한언론인회 이사 및 부회장, KBS사우회 부회장 등 역임.[228] 前 홍콩 특파원(1992.12~1993.1), 前 베이징 특파원(1993.1~1996.5), 前 과학부장(1997.11~1998.5), 前 전국부장(1998.5~10), 前 국제부장(1998.10~2000.6), 前 런던지국장(2000.6~2002.2), 前 취재2주간(2002.2~11), 前 편집1주간(2002.11~2003.12), 前 보도제작국장(2003.12~2004.7), 前 취재4팀장(2004.7~2005.4), 前 방송문화연구팀(소)장(2005.4~2007.9), 前 부산방송총국장(2007.9~2009.9), 前 해설위원실장(2009.9~2010.2), 前 정책기획센터(본부)장(2010.2~2011.7). 2011년 KBS 비즈니스 감사로 옮겨 2년을 지내고 2014년부터 2년 동안 영화진흥위원회 감사 역임. 저서로는 <천안문을 열고 보니(1996)>, <찔레꽃과 된장(2007)>, <책바다 무작정 헤엄치기(2019)> 등이 있다. 2017년 은관문화훈장 수훈.[229] 1989년 KBS노동조합(1노조) 공정방송위원회 간사를 맡기 시작했고, 1990년부터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선출된 후 같은 해 KBS 사태 당시 제작거부 투쟁에 참여하다 구속된 바 있었다. 1991년 1월 'KBS방송민주화투쟁 구속자협의회' 의장을 맡다가 3월부터 '직무부여' 형식으로 보도제작국에 배치되어 집중기획 프로를 제작해왔고, 9월 28일 한국의 유엔 가입과 관련된 특집물 제작 도중 과로로 순직했다.[T] TBC 출신.[231] 前 뉴스제작부주간(2000.6~2001.4), 前 경제부장(2001.4~2003.5), 前 취재2주간(2003.5~2004.2), 前 보도기획팀장(2004.2~2005.12), 前 부산방송총국장(2005.12~2007.9), 前 인적자원센터 연수팀장(2008.9~12), 前 경영개혁단장(2009.1~11), 前 보도본부장(2009.11~2011.1). 이후 KBS 비즈니스 사장을 2013년까지 맡았으며, 2008~2009년까지 한국방송협회 사무총장도 역임.[232] 개그맨과 동명이인.[233] 2005년 정년퇴임 후 2006년 JIBS 방송본부장으로 영전되어 2011년 대표이사까지 올랐다.[234] 영화 촬영기사 출신. 1983년 바인타브락 2봉 등정 과정과 남태평양 새우어업 현장 등을 취재했고, 1984년 9월 20일 단양팔경 취재 도중 헬기 추락사고로 순직.(출처: <TV가이드> 1984년 제166호 p43.)[235] 전남일보(현 광주일보), 전일방송 출신. 1994년 퇴사 후 언론중재위원회 위원, 호남매일 사장 등 역임.[236] 1991년부터 1년여 간 제3대 노조위원장을 맡았으며 1997년 7월 7일 백혈병으로 사망.[237]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강제 해직되어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 후 이 곳에서 줄곧 일했고, 2007년 방송문화연구소 연구위원으로 복직.[238] 前 스포츠국 스포츠취재부주간(1999~2002), 前 스포츠전문기자(2002~2003), 前 스포츠제작팀장(2005~2007), 前 해설팀/해설위원실 해설위원(2007~2009). 2009년 12월 정년퇴임.
3.4. 1980년대
- 1980년
- 간부: 강용식[T]
- 취재기자: 이민희[240], 김경용[T], 오일룡[T], 길종섭[T], 구박[T], 성대석[T], 임응식[T], 김우철[T], 이상근[T], 이보길[T], 우석호[T][251], 장종덕[T], 엄광석[T][254], 이봉희[T], 백낙천[T][257], 류현순[T][259], 유연채[T], 차만순[T], 김벽수[T][263], 고수웅[T], 김장년[T], 진홍순[T], 김관상[T], 민충기[T], 김홍[T], 김청원[T], 백낙범[T], 송도균[T], 조순용[T], 박원훈[T], 이재희[T][276] 황호형[T], 정희보[T], 이종학[T], 조봉환[T], 주동원[T][282], 강갑출[T][284], 박중길[285], 김기덕[286], 박응칠[D], 이병대[D], 백선기[D], 최동호[D], 김수연[D], 김진원[D][293], 배석규[D][295], 송석형[D][297], 엄효섭[D][299], 이종구[D], 장순재[D], 이궁[302], 하금열[D], 김용한[C][305], 김승두[C][307], 마권수[C], 김준석[C], 이성영[C], 이정식[C], 김기석[C], 김진기[C], 정두진[C], 윤기로[C], 김운라[C], 박남훈[C], 이인철[C][319], 이춘발[C], 박기의[C], 윤덕수[C], 강욱중[C], 이현덕[C], 김종일[325], 최정길[서], 최영배[서], 채수평[서][329]
- 카메라기자: 한규설[330], 이광춘[T], 박충[T][333], 김옥상[T][335], 이건수[T], 이우승[T][338], 민상기[T][340], 김봉호[T][342], 이은원[T]
- 1981년
- 취재기자: 김병호, 허원제, 신현국[344], 엄호현[345], 안상윤[8기][347], 권인혁[9기][349], 권종욱[9기], 김백[9기][352], 김재명[9기], 김점석[9기][355], 김진원[9기], 문재철[9기][358], 박득송[359], 박연재[9기], 이광출[9기], 이문호[9기], 이희완[9기][364], 이세강[9기], 이재황[9기], 이준삼[9기], 이태성[368], 이화섭[9기][370], 전여옥[9기], 전복수[9기], 정옥량[9기], 정찬호[9기], 조재옥[9기][376], 주희순[9기], 진상옥[9기][379], 차시출[9기], 최석태[9기], 홍지명[9기], 황성수[9기][384]
- 해설위원: 이계익
- 기상전문기자: 조석준
- 카메라기자: 최기홍[8기][386], 강철원, 남상규[387], 남정구[388], 백승민, 유준하, 임찬식, 전한옥[389], 강성호
- 1982년: 김기춘[390], 정성근
- 1983년: 박영문, 최수호[391]
- 1984년: 김명전[392], 심재철(沈載喆), 유승재, 이찬휘[기상][394]
- 1985년
- 취재기자: 유균[395], 백선기[11기], 최창근[11기], 고대영[11기], 정혜승[11기], 임창건[11기][401], 이현님[11기], 이남석[11기], 김진석[11기], 박인섭[11기], 채일[11기][407], 박영애[11기][409], 김대회[12기], 감일상[12기], 류희림[12기], 백운기[12기], 강선규[12기][415], 권순범[12기][417], 박상현[12기], 임홍순[12기], 김창환[12기], 김석호[12기], 김영철[422], 강철구[423], 박규희[424], 우동혁, 이강균[425], 주원[426], 최종림
- 카메라기자: 고화석[11기], 유혁근[11기], 이승익[11기], 노수긍[11기], 서경호[11기][432], 김민수[11기], 권원규[11기], 김영창[11기], 이형기[11기], 구재영[11기], 이중완[11기], 최태희[11기], 곽재우[440], 박동혁, 강상윤, 김진오, 백성진, 박상구, 하석봉, 박진관[441], 박재효, 김주한, 최무열, 김진욱, 김봉곤, 윤홍식, 이필용, 심상근, 이준하, 김진환, 김병길
- 기상PD: 김철수[442]
- 1986년: 윤창중, 한상덕[13기], 이영성[13기][445], 김인영[13기][447], 김정훈[13기], 이선재[13기], 김홍배[13기], 임오진[13기], 강정기[13기], 이춘구[13기], 정기웅[13기], 한기봉[455][13기]
- 1987년
- 취재기자: 정필모[14기], 임병걸[14기], 신경렬[14기][460], 장현규[14기], 윤준호[14기], 김시곤[14기][464], 설원태[14기][466], 강재현[14기], 김종진[14기], 배종호[14기], 장기철[14기], 김혜례[14기], 김만석[14기], 이은경[14기], 홍기섭[14기], 송철호[14기], 김영근[14기][477], 김진수[14기], 정해석[14기], 성창경[14기], 백인순[14기], 조한제[14기], 정일태[14기], 김흥규[14기], 박찬기[14기], 배태휴[14기], 오수학[14기], 곽영지[14기], 박상호[14기], 김기정[14기][491], 김영훈[14기], 이홍렬[14기][494], 문중선[15기][496], 황명수[15기][498], 추은호[15기][500], 김구철[15기], 박선규[15기], 이준안[15기][504], 차병준[15기][506], 김종술[15기][508], 김용진[15기], 김익진[15기][511], 오영철(吳永哲)[15기][513], 오헌주[15기], 김용석[15기], 박익원[15기], 방석준[15기], 유용[15기], 최웅기[15기][520], 김진업[15기], 이귀영[15기][523], 김방홍[15기], 한증성[15기][526], 배재성[15기][528]
- 카메라기자: 장준영[14기], 이희엽[14기], 강형식[14기], 양용철[14기][533], 한동학[534], 박찬근
- 1989년: 변덕수[535], 정지환[536], 김용만[537], 용태영[538]
[T] TBC 출신.[240] 조선일보, TBC 출신. 2024년 1월 27일 사망.[T] TBC 출신.[T] TBC 출신.[T] TBC 출신.[T] TBC 출신.[T] TBC 출신.[T] TBC 출신.[T] TBC 출신.[T] TBC 출신.[T] TBC 출신.[T] TBC 출신.[251] 1990년부터 SBS 이직.[T] TBC 출신.[T] TBC 출신.[254] 1984년 주미공보관으로 임용된 후 주핀란드공보관 등을 거쳐 1990년 SBS 이직.[T] TBC 출신.[T] TBC 출신.[257] 1991년 SBS 이직.[T] TBC 출신.[259] KBS 부사장(2013~2014), KBS 이사(2024.9~)[T] TBC 출신.[T] TBC 출신.[T] TBC 출신.[263] 1991년 SBS 이직.[T] TBC 출신.[T] TBC 출신.[T] TBC 출신.[T] TBC 출신.[T] TBC 출신.[T] TBC 출신.[T] TBC 출신.[T] TBC 출신.[T] TBC 출신.[T] TBC 출신.[T] TBC 출신.[T] TBC 출신.[276] 1995년 YTN 이직.[T] TBC 출신.[T] TBC 출신.[T] TBC 출신.[T] TBC 출신.[T] TBC 출신.[282] 1991년 SBS 이직 후 1995년 YTN 이직.[T] TBC 출신.[284] 1994년 YTN 이직.[285] 한국일보, DBS 출신.[286] 라디오DJ, 영화감독과 동명이인으로 동양통신-DBS 출신.[D] DBS 출신.[D] DBS 출신.[D] DBS 출신.[D] DBS 출신.[D] DBS 출신.[D] DBS 출신.[293] 1981년 MBC 이직 후 1991년 SBS 이직.[D] DBS 출신.[295] 1994년 YTN 이직.[D] DBS 출신.[297] 1991년부터 SBS 이직.[D] DBS 출신.[299] 1981년 MBC 이직 후 1991년 SBS 이직.[D] DBS 출신.[D] DBS 출신.[302] 합동통신, DBS 출신으로 1991년 SBS 이직.[D] DBS 출신.[C] CBS 출신.[305] 前 춘천방송(총)국 뉴스센터부(보도국)장(1986~1987). 1988년 CBS로 복귀.[C] CBS 출신.[307] 前 LA특파원(1986~1989), 前 국제부장(1991~1992). 1992년 2월 22일 사망.[C] CBS 출신.[C] CBS 출신.[C] CBS 출신.[C] CBS 출신.[C] CBS 출신.[C] CBS 출신.[C] CBS 출신.[C] CBS 출신.[C] CBS 출신.[C] CBS 출신.[C] CBS 출신.[319] 배우와 동명이인으로 2005년 3월 정년퇴임.[C] CBS 출신.[C] CBS 출신.[C] CBS 출신.[C] CBS 출신.[C] CBS 출신.[325] 전일방송 PD 출신. 前 광주방송총국 보도국장(1999. 11.~2002. 11.), 前 보도국 전문기자(2002. 11.~2004. 7.). 2006년 9월 정년퇴임 후 방송위원회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장, 광주전남언론인회 회장 등 역임.[서] 서해방송 출신.[서] 서해방송 출신.[서] 서해방송 출신.[329] 2001년 10월 20일 자택 화재로 사망.#[330] 대한제국 시절 참정대신과 동명이인. 국립영화촬영소 및 TBC 출신.[T] TBC 출신.[T] TBC 출신.[333] 1991년 SBS 이직.[T] TBC 출신.[335] 2020년 6월 25일 사망.[T] TBC 출신.[T] TBC 출신.[338] 1991년 SBS 이직.[T] TBC 출신.[340] 前 워싱턴특파원(1996.4~1999.12), 前 영상3(영상취재/스포츠)부주간(1999.12~2002.11), 前 영상취재/뉴스부주간(2002.11~2003.5), 前 영상취재주간(2003.5~2004.7). 2009년 정년퇴임.[T] TBC 출신.[342] 1989년부터 1년 간 제2~3대 한국영상기자협회 회장을 맡았다. 前 보도국 카메라취재부 영상편집부주간(1997. 7.~1998. 10.), 前 보도본부 전문촬영기자(1999~2001). 2001년 정년퇴임.[T] TBC 출신.[344] 미국의 소리 한국어뉴스 담당 기자 출신으로 前 뉴스80 앵커(1982~1983.8), 前 워싱턴 특파원(1983.8~1986). 1986년 문화공보부 해외공보관 외보부장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고, 1988년부터 4년 동안 대통령비서실 공보비서관을 지낸 뒤 1992년 동아마스터비전(현 동아TV) 설립 당시 부사장으로 모셔졌다. 1995년 신한국당 이홍구 대표 특보와 대전 유성지구당 위원장을 지내다가 1996년 15대 총선 때 대전 유성구 후보로 출마했으나, 조영재 자유민주연합 후보에게 졌다. 이후 동아방송예술대학 상임이사, 글로벌커뮤니케이션스 대표이사, 성균관대학교 교수, 대구가톨릭대학교 언론광고학부 석좌교수, 아리랑TV <Diplomacy Lounge> MC 등지 역임.[345] 중앙일보 출신. 한자명 중 '涍' 자가 '성씨 효'라고 읽혀지나 본인은 '호'라고 읽는다. 그런고로 인물정보나 언론에선 '엄효현'이라고도 기재되어 있다. 前 프랑크푸르트 특파원(1981.5~1984), 前 프랑크푸르트지국장(1984~1989). 1989년 문화공보부 3급 공무원으로 임용되었다가 1990년부터 3년 동안 민주사회연구소 소장을 맡았다. 1993년 문민정부 출범 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실 홍보2비서관으로 임명되었다가 1994년부터 4년 동안 한국방송개발원 원장을 역임했다. 1996년에는 전 독일 외교안보 보좌관 호르스트 텔칙의 저서 <329일: 베를린장벽 붕괴에서 독일통일까지>를 번역한 바 있다. 1988년 국민포장 수훈.[8기] [347] 1983년부터 1987년까지 교양PD로 일한 적 있으며 1991년 SBS 이직.[9기] [349] 1989년 6월 11일 교통사고로 순직.[9기] [9기] [352] 1991년 SBS로 옮겼다가 1994년 YTN으로 또 이직.[9기] [9기] [355] 2013년 12월 31일 정년퇴임.[9기] [9기] [358] 1995년 YTN 이직.[359] 1994년 YTN 이직.[9기] [9기] [9기] [9기] [364] 사회부 사건기자 시절인 1984년 파랑도 취재로 한국기자상을 받았으나, 동년 9월 20일 단양팔경 취재 도중 헬기 추락사고로 순직.[9기] [9기] [9기] [368] 2002년 10월 29일 사망.[9기] [370] 당초 PD직으로 입사했으나 이후 기자로 전직. 1990년부터 1년여 간 KBS 노동조합 부산지부장을 맡은 바 있었다. 前 사회2부장(2001.4~2002.11 / 2003.5~2004.7), 前 TV편집부주간(9시뉴스)(2002.11~2003.5), 前 시사보도팀장(2005.4~12), 前 1TV뉴스제작팀장(2005.12~2008.5), 前 해설위원(2008.5~12), 前 방송문화연구소장(2009.1~9), 前 보도(시사)제작국장(2009.9~2011.1), 前 부산방송총국장(2011.1~2012.1), 前 보도본부장(2012.2~2013.5). 이후 동서대학교 영상매스컴학부 객원교수, GS홈쇼핑 사외이사 등지 역임.[9기] [9기] [9기] [9기] [9기] [376] 당초 PD직으로 입사했으나 기자로 전직. 1991년 SBS 이직.[9기] [9기] [379] 1991년 SBS 이직 후 1994년 YTN 이직.[9기] [9기] [9기] [9기] [384] 1994년 YTN 이직.[8기] [386] 원래 카메라맨으로 입사했다가 1982년 10기 카메라기자로 재입사. 현역 시절인 2000년부터 2년 동안 제15~16대 한국TV카메라기자협회 회장을 맡았다. 前 영상편집제작팀장(2004.7~2006.12), 前 뉴스시스템혁신프로젝트팀장(2006.12~2008.12). 2012년 정년퇴임했으며 저서로 <Avid Xpress DV & Pro(2004)>, <Avid Xpress Dv & Pro, Media Composer(2008)> 등을 냈다.(개인 홈페이지)[387] 1994년 YTN으로 이직.[388] 1983년 6.25 특집 <총성없는 전장, 서해5도를 가다> 제작에 참여하여 사내 우수프로그램상을 받을 정도로 촉망받는 인재였으며, 오디오 및 방송보도기재에 조예가 깊고 연구열 또한 높았다. 1984년 9월 20일 단양팔경 취재 도중 헬기 추락사고로 순직.(출처: <TV가이드> 1984년 제166호 p43.)[389] 前 보도본부 영상편집부주간(2002. 11.~2004. 7.), 前 영상취재팀장(2005. 12.~2007. 9.), 前 순천방송국장(2007. 9.~2009. 10.). 2013년 정년퇴임.[390] 前 청와대 비서실장과 동명이인. 前 베이징 특파원(2002.2~2005.5), 前 남북교류협력팀장(2005.5~2008.9), 前 이사회 사무국장(2009.4~2012.1), 前 부산방송총국장(2012.2~2014.3). 2014년 4월 KBS 미디어 감사로 임명되었다가 2015년 국제방송교류재단(아리랑국제방송) 방송본부장으로 영전되어 3년 동안 재직. 이후 영산대학교 방송사진예술학과 교수로 재직 중.[391] 1995년 YTN 이직.[392] 원래 라디오PD로 입사했으나 기자로 전직. 2001년 대통령비서실 언론비서관으로 임명된 후 EBS 부사장, 삼정투자자문 대표, 삼정KPMG그룹 부회장, EY한영 부회장, GOOD TV 대표 등 역임.[기상] [394] 1991년 SBS 이직.[395] TBC 및 중앙일보 출신.[11기] [11기] [11기] [11기] [11기] [401] 前 워싱턴 특파원(2000.4~2003.7), 前 국제부장(2003.7~2004.7), 前 취재3팀장(2004.7~2005.12), 前 해설위원(2005.12~2006.7), 前 시사보도팀 CP(2006.7~2008.4), 前 시사보도팀장(2008.4~9), 前 정책기획센터장(2008.9~2010.2), 前 보도국장(2010.2~2011.7), 前 대전방송총국장(2011.7~2013.5), 前 보도본부장(2013.5~2014.5). 이후 KBS 아트비전 감사를 6년 동안 지내고 2021년부터 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객원교수로 재직 중.[11기] [11기] [11기] [11기] [11기] [407] 당초 전문언어PD로 입사했으나 후에 기자로 전직. 前 파리지국장(2006.7~2009.12), 前 보도(시사)제작국 탐사보도팀(부)장(2009.12~2011.1), 前 스포츠국 스포츠취재부장(2011.1~10), 前 심의실 심의부 심의위원(2013~2014), 前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 뉴스국장(파견, 2014~2018). 2019년 6월 30일부로 정년퇴임한 후 2023년 국방부 국방홍보원장으로 임명.[11기] [409] 당초 전문언어PD로 입사했으나 곧바로 기자로 전직.[12기] [12기] [12기] [12기] [12기] [415] 前 국제팀장(2006.5~2008.4), 前 정치외교팀장(2008.4~12), 前 시청자센터 홍보팀장(2009.1~2011.1), 前 시사제작국장(2011.1~2012.1), 前 심의실장(2012.2~12), 前 해설위원(2013~2014.8), 前 보도본부장(2014.8~2015.12). 이후 2018년까지 3년 간 KBS 비즈니스 사장을 역임.[12기] [417] 前 뉴스제작부주간(2003.5~2004.7), 前 상파울루 특파원(2005.7~2008.9), 前 탐사보도팀장(2008.9~2009.11), 前 네트워크팀장(2009.11~2010.2), 前 편집주간(2010.2~2011.7), 前 방송문화연구소장(2011.7~2012.1), 前 시사제작국장(2012.2~2013.5), 前 정책기획본부장(2013.5~2014.9). 이후 KBS 비즈니스 감사를 3년 동안 지내고 순천향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초빙교수, 극동대학교 초빙교수, 대한방직 사외이사 등을 지내며 2021년부터 이사로 선임됐다.[12기] [12기] [12기] [12기] [422] 코미디언, 배우와 동명이인.[423] 1990년 '초록카페 사건'으로 1991년 해고되었다가 1994년 복직. 1991년에는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편집실장 및 노조 편집국장, 2000~2001년까진 노조 부위원장도 맡았다. 前 창원방송총국 보도국장(2009.1~2010.6), 前 부산방송총국 보도국장(2010.6~2011.12), 前 울산방송국장(2011.12~2014.8). 2015년 정년퇴임 후 2020년 부산광역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전성하 국민의힘 경선후보 캠프에도 참여했다.#[424] 2000년 퇴사 후 중소기업 '가제보'를 운영해 오다 2008년 휴온스 홍보/광고담당 고문으로 영전.[425] 前 <사건 25시(1기)> 및 <KBS 뉴스광장> 앵커. 1999년에는 2년 전 모 의류업체로부터 청탁 등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어 서울지법으로부터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고, 퇴사 후 미지온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라이프팩 회장 등을 역임.[426] 배우와 동명이인.[11기] [11기] [11기] [11기] [11기] [432] 1991년 SBS 이직.[11기] [11기] [11기] [11기] [11기] [11기] [11기] [440] 원래 카메라맨으로 입사했다가 1991년 전직, 현역 시절인 2005년부터 1년여 간 제19대 한국영상기자협회 회장을 맡았다. 前 영상편집부장(2010.6~2011.1), 前 보도영상국장(2011.1~2013.6), 前 순천방송국장(2013.6~2015.4). 2018년 6월 30일부로 정년퇴임 후 미디어피아 방송본부장, 한국드론진흥원 이사장 등 역임.[441] 1995년 KBC로 이직.[442] 2010년 퇴사 후 2012년 온케이웨더 기상예보사로 영전되어 날씨 관련 칼럼을 기고해왔고, 이후 웨더커뮤니케이션즈 이사 역임.[13기] [13기] [445] 입사 3개월 후 퇴사하고 1987년 한국일보로 입사.[13기] [447] 前 방콕 특파원(2001.7~2004.7), 前 해설위원(2006.4~12/2008.5~12/2010.6~2012.1/2013.1~2014.3), 前 행정복지팀장(2009.1~2010.3), 前 인터넷뉴스주간(2012.2~12), 前 이사회 사무국장(2014.3~8), 前 강릉방송국장(2014.8~2015.11), 前 보도본부장(2015.11~2017.1). 2017년 3월 KBS 미디어 감사로 발령나서 2년 간 몸담았고, 이후 국제FX렌트본부(주) 대표이사, 복음언론인회 대표, 차별금지법바로알기 아카데미(차바아) 운영위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권리특별위원 등 역임. 저서로는 <2008년 촛불시위와 프레임 전쟁(2011)>, <누워서 가는 태국여행(2013)>,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2019)> 등이 있다.[13기] [13기] [13기] [13기] [13기] [13기] [13기] [455] 원래 PD직으로 합격했으나 얼마 안 가 기자로 전직.[13기] [14기] [14기] [14기] [460] 1991년 SBS 이직.[14기] [14기] [14기] [464] 前 모스크바 특파원(1998.7~2001.6), 前 디지털뉴스팀장(2006.12~2008.12), 前 경제팀장(2009.1~2010.3), 前 해설위원(2010.3~2011.7), 前 취재주간(2011.7~2012.12), 前 보도국장(2012.12~2014.5). 2020년 정년퇴임.[14기] [466] 서울 오류중학교 및 관악고등학교 교사 출신. 1988년 세계일보로 옮겼다가 1996년 경향신문 이직.[14기] [14기] [14기] [14기] [14기] [14기] [14기] [14기] [14기] [14기] [477] 前 해설위원(2011~2013.9 / 2014.12~2016.9), 前 이사회 사무국장(2014.8~12). 2018년 6월 30일부로 정년퇴임 후 KBS 이사 역임.[14기] [14기] [14기] [14기] [14기] [14기] [14기] [14기] [14기] [14기] [14기] [14기] [14기] [491] 1988년 국민일보 이직.[14기] [14기] [494] 코미디언과 동명이인으로, 원래 아나운서로 입사했으나 후에 기자로 전직했다. 1994년 YTN으로 이직.[15기] [496] 1994년 YTN으로 이직.[15기] [498] 1991년 SBS로 옮겼다가 1995년 YTN으로 또 이직.[15기] [500] 1994년 YTN으로 이직.[15기] [15기] [15기] [504] 2021년 정년퇴임.[15기] [506] 1989년 재입사 후 1991년 SBS로 이직.[15기] [508] 1994년 YTN으로 이직.[15기] [15기] [511] 1994년 YTN으로 이직.[15기] [513] 前 법무실장(2011. 9.~2012. 12.), 前 디지털뉴스국 디지털뉴스부장(2013. 12.~2014. 5.), 前 심의실 심의부 심의위원(2014. 5.~2016), 前 인재개발원 교수(2016~2018. 12.). 2018년 12월 20일부로 정년퇴임했으며 저서로는 <방송기자가 쓴 논술 잘 하는 법(2005)>, <2막의 멘탈(2016)>, <인생 180도 바꾸기(2019)> 등이 있다.[15기] [15기] [15기] [15기] [15기] [15기] [520] 1991년 SBS로 이직.[15기] [15기] [523] 1994년 YTN으로 이직.[15기] [15기] [526] 원래 아나운서로 입사했다가 기자로 전직. 2019년 3월 31일부로 정년퇴임.[15기] [528] 원래 일반사무 직종으로 입사했으나 이후 기자로 전직.[14기] [14기] [14기] [14기] [533] 현역 시절인 2009년부터 1년여 간 제21대 한국영상기자협회 회장을 맡았다. 前 뉴스시스템혁신프로젝트팀(추진단)장(2009.11~2013.6), 前 영상편집부장(2014.8~2015.12). 2021년 12월 31일부로 정년퇴임.[534] 1993년 다솜방송 이직.[535] 1994년 YTN으로 이직 후 1997년 12월 23일 췌장암 투병 도중 사망. 사후 한국기자협회 YTN지회는 그의 뜻을 기리고자 그의 이름을 딴 기자상을 제정한 바 있다.[536] 前 탐사보도팀장(2006.12~2007.9), 前 대외정책팀(실)장(2007.9~2008.9 / 2011.1~2012.12), 前 비서팀(실)장(2008.9~2009.9), 前 정치외교팀(부)장(2009.9~2011.1), 前 편집주간(2013.1~2014.8), 前 런던 특파원(2014.8~2015.12), 前 보도국장(2015.12~2017.8), 前 대전방송총국장(2017.8~2018.7). 2023년 퇴사 후 2024년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비상임이사로 임명.[537] 코미디언과 동명이인. 원래 PD직으로 입사했다가 후에 기자로 전직.[538] 前 두바이 특파원(2004~2006), 前 사회1부장(2008~2012), 前 부산방송총국장(2018~2020). 2006년 3월 특파원 시절 팔레스타인에서 취재 도중 무장단체에 납치되었다가 하루 만에 풀려난 적이 있다. 2021년에는 언론사불자연합회 12대 회장에 취임하기도 했으며 2024년 KBS 사장 후보를 신청했으나 탈락했다.
3.5. 1990년대
- 1990년: 강흥식[539], 김의철, 김종명[540], 최연택
- 1991년: 민경욱, 박영환, 황상무, 안형환, 홍사훈, 김환주[541], 백진원[542]
- 1993년: 손관수[543], 오세균[544]
- 1994년: 박태서, 임장원
- 1995년
- 1997년: 현명근[552], 이주한
- 1998년: 박종훈[553], 조종옥, 홍성철[554]
[539] 1994년 YTN 이직.[540] 前 런던 특파원(2004.12~2011.1), 前 뉴스제작2부장(2011.1~2012.6), 前 과학·재난부장(2012.6~12), 前 국제부장(2012.12~2013.12), 前 순천방송국장(2016.8~2017.8), 前 대외협력실장(2018.4~2019.2), 前 대외협력국장(2019.2~8), 前 보도본부장(2019.8~12). 삼한일렉트로닉스 창업주 김종인(1951~2022)의 동생이기도 하며 2022년부터 국회방송자문위원장도 역임.[541] 前 비서실장(2011.9~2012.12), 前 정치외교부장(2013.1~12), 前 LA 특파원(2014.7~2017.7), 前 통합뉴스룸 국장(2017.7~2018.4), 前 해설위원(2019~2022). 2023년 정년퇴임 후 2024년 뉴스통신진흥회 이사 임명.[542] 前 상파울루 특파원(2008~2011), 前 디지털뉴스부장(2013.6~12 / 2014.8~2015.7), 前 심의실 심의부 심의위원(2019~2023). 2024년경 퇴사했으며 저서로는 <올라! 브라질(2013)>이 있다. 2018년에 모 사회1부 리서치 여직원(2013년 퇴사)이 SNS를 통해 6년 전 MT 당시 그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하자, 이에 백 기자 본인이 허위사실이라며 명예훼손으로 그 여직원을 검찰에 고소했다가 기각됐다. 결국 감사실에서 '주의' 처분.(당시 기사, 피해자의 관련 포스타입 게시글)[543] 현역 시절인 2015년부터 1년여 간 제8대 방송기자연합회 회장을 맡았다. 前 상하이 특파원(2011.3~2014.6), 前 비서실장(2018.4~2019.2), 前 사회주간(2019.2~2020.4), 前 광주방송총국장(2020.4~2021.12), 前 보도본부장(2021.12~2023.11).[544] 前 선양 특파원.[545] 前 4시 뉴스집중/사사건건 앵커(2016.4~2020.6), 前 방콕 특파원(2020.8~2023.8). 2024년 명예퇴직.[22기] [22기] [22기] [22기] [550] 축구인과 동명이인. 2019년 10월 5일 사망.#[22기] [552] 1999년 9월 14일 히말라야 캉첸중가봉 등정 생중계 취재 도중 눈사태로 순직.[553] 2024년 명예퇴직.[554] 2021년 카카오로 이직.
3.6. 2000년대 이후
4. 참고 문헌
- KBS 연감[561] 1962~1963, 1973~2021
- 한국방송연감 1971~1973 - 한국방송회관.
- 한국신문방송연감(현 한국언론연감) 1977~2003-04 - 한국언론진흥재단.[562]
- 신문백년인물사전 - 한국신문편집인협회. 1988.
- 한국언론 인물사전: 1883~2009 - 한국언론재단. 2009.
- 한국 방송기자 통사 - 김성호 저. 21세기북스. 2014.
[555] 2018년에 KBS기자협회장 역임. 2024년 명예퇴직.[556] 김한양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개명인지 필명인지는 불명. 2015년 12월 퇴사 후 드라마 제작사인 실크우드를 설립했으며, 시간,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등을 제작했다. 이후 2020년 8월에 신세계그룹의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마인드마크에 인수되었으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하여 2023년 3월에 매각됐으며, 2024년 현재는 우주제작소로 사명 변경된 것으로 보인다. 자회사로는 같은 해 KBS에 입사한 前 아나운서 한석준이 대표로 있는 출판사 '비단숲'이 있다.[557] 야구인과 동명이인. 2006년 5월 8일 사망.[558] 서울신문 출신. 2006년 SBS로 이직.[559] 조선비즈 출신. 2022년 1월 18일 사망.#[560] 2022년 2월 10일 사망.#[561] 1973-75년판부터 1995년판까지는 'KBS 연지'. 1962~1963년판은 한국방송문화협회 명의로 간행.[562] 1999년 한국언론재단 출범 이전까지는 한국언론연구원 명의로 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