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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휴거 대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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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보도 자료
1. 개요2. 전개3. 성경적 해석4. 사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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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2년 벌어진 휴거 소동. 휴거는 본래 교리신학적인 면을 다루는 개신교 목회자들이나 세대주의 개신교 신자들 외에는 한국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개념이었는데 대한민국의 비개신교인들에게까지 잘 알려지게 된 것은 다미선교회의 이장림 목사가 일으킨 휴거 대소동 때문이다.

2. 전개

감리회 이장림 목사가 미국에서 유입된 개신교 신학서들과 여러 종교 관련 책자를 읽던 중 'Rapture'를 '휴거'로 번역해[1] 특정 날짜를 명시한 시한부 종말론을 만들어냈다. 이 때 이장림이 번역한 서적 중 하나가 <휴거>라는 제목의 유명한 개신교 소설이다. 어니스트 W. 앵글리라는 미국인 개신교 목사의 작품으로, 1950년대를 배경으로 내용은 위에 설명된 휴거를 시작으로 휴거 후 7년간 대환난과 사탄(적그리스도)의 득세 → 요한묵시록의 실현 → 예수 재림까지를 다룬다. 내용은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 종말 교리를 그대로 소설로 썼는데, 어느 월요일 아침 사람들이 일어나 보니 노인에서 갓난아기에 이르기까지 수천 명의 사람들이 하늘로 올라가 없어졌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휴거였다는 내용. 이후 지상에 남은 사람들에게는 복음서와 요한 묵시록에 기록된 대로의 종말이 닥쳐오고, 그 와중에 어떤 사람들은 신앙을 지켜 적그리스도에게 순교당하고[2]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적그리스도의 표를 받고 죄악에 빠져 최후의 심판 때 지옥불의 고통을 당한다는 내용이다. 그냥 객관적으로는 널리고 널린 기독교 간증 신앙 소설이라고 보면 읽을 만한데, 전반적인 소설 수준은 낮고 잔혹한 면도 많다.

이후 이장림 목사는 1980년대 후반 다미선교회를 세워 휴거론을 내세우며 포교 활동을 하되, 휴거가 일어나는 날짜가 1992년 10월 28일이라고 점찍어 이에 대비했다. 왜 1992년이었냐면 요한계시록 종말 부분에 7년간의 짐승의 지배기에 대한 부분이 있는데 1999년 지구멸망설에 등장하는 공포의 대왕을 예수 재림으로 생각했을 경우 7년간의 짐승의 지배가 있기 위해서는 1992년 10월경 휴거가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웃긴 점은 7년의 짐승 지배기는 성경에서 가져왔으면서 정작 중요한 1999년의 지구 멸망은 성경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에서 단장취의했다는 점이다.[3]

20세기 후반의 사회 분위기는 세기말로 매우 뒤숭숭했다. 당시 앞서 서술되어 있는 노스트라다무스1999년 지구멸망설과 같은 유언비어가 매우 널리 퍼져 있었으며,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적그리스도와 지구, 인류 멸망에 대한 찌라시를 뿌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한 1991년 발발한 걸프 전쟁 또한 대규모 국제적 대전으로 번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국민들의 불안감을 가중시켜 휴거론 신봉자들의 수를 늘리는 데에 더욱 부채질했다.[4] 물론 대부분의 국민들은 휴거론을 믿지 않았으나, 사태가 커졌을 시 이로 인해 발생할 사회적인 혼란,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범죄(요샛말로 소위 묻지마 범죄) 발생 우려 때문에 적어도 미약하게나마 불안을 느꼈다. 그렇게 1990년과 1991년을 전후하여 휴거론은 사회 이슈가 되어 뉴스비전 동서남북 등의 여러 시사·정보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되었다.

휴거론이 국민들 사이에서 점차 확대되자 정부기관들이 나서기 시작했는데 교육부에서는 각급 학교에 휴거설을 믿지 말라는 내용의 가정통신문을 발송할 것을 지시했다. 심지어 검찰이 내사에 착수했지만 다미선교회에 딱히 적용할 수 있는 죄가 없었다고 한다. 속았다고는 하지만 신자들은 '종교 활동'의 명목으로 스스로 재산을 헌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휴거 소동에 빠진 아이들이 실종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본격적으로 공권력이 나섰고 후술하는 바와 같이 이 사태의 원흉인 이장림 목사가 구속되기에 이른다.

당시 휴거를 믿던 이들도 두 가지 부류로 나뉘었다. 휴거일에 바로 승천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승천하지 않고 세상에 남아 온갖 고초와 박해를 받는 끝에 순교하게 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들은 '환난성도'라고 불렸다. 물론 순교 후에는 당연히 천국에 간다나... 그래서 남게 될 사람들은 격투기를 배우는 등의 단련들을 하면서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한 생존주의적 수련을 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1992년 10월 28일 휴거 당일이 되었고, 이날엔 KBSMBC 같은 주요 방송국에서 다미선교회에 나와 몇십 분 동안 특집 방송을 진행하거나 CNN을 비롯한 각종 외신 언론의 기자들도 취재를 위해 몰려들었다. 물론 별다른 일은 없었다. 그리고 이장림 목사는 이미 휴거 예정일 한 달 전 쯤에 사기죄로 경찰에 구속되어 이를 알고 있던 이들에겐 비웃음거리로 전락한 뒤였다. 구속 사유는 신도들의 재산 34억여 원을 헌납받아 가로챈 혐의다. 이장림 목사의 집에서 압수된 3억 원짜리 환매채의 만기일이 1993년 5월 22일(휴거일로부터 약 반년 후)였는데, 이 점이 결국 시한부 종말론을 믿은 게 아니라 사기가 목적이었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다. 1992년 12월 4일 징역 2년, 1993년 5월 20일의 항소심에서는 징역 1년이 선고되었다. 이장림 목사는 부정 재산축재를 두고 자기는 휴거 대상이 아니라 환난성도라서 세상에 남아 사명을 다해야 한다는 식의 망언을 했다.

한편 휴거 불발에 광분한 신도들은 단상을 엎어 버리고, 함께 교회에 있던 다른 목사들을 폭행하고 비명을 지르는 등의 난동을 부린 후 집으로 돌아갔다. 그 와중에 나방 한 마리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 나방이 휴거되었다고 외치는 것을 들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하는 상황을 연출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 [5] 또한 일부 목사들은 분노한 신도들을 피해 목사관 내지는 자택으로 슬그머니 도망치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앞서 사기 혐의로 구속된 이장림 목사는 휴거 당일 수감된 상태로 휴거를 맞이했는데 휴거 불발 시 자해 등의 극단적 행동을 우려하여 철저하게 감시당하고 있었으나... 정작 그는 평상시와 다를 바 없이 식사를 하고 성경책을 읽은 뒤 밤 11시에 잠이 들었다고 한다.


다음날인 10월 29일 MBC 뉴스데스크 엄기영 앵커의 오프닝 멘트.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6] 조선일보 사회면의 기사 첫 구절은 더 심플해서 "휴거는 없었다."KBS 뉴스의 앵커 멘트도 "(전략)휴거의 기적을 기다렸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SBS 카메라에는 한 부모가 자식을 데리고 나오면서 '그래서 목사 말 들어서 휴거 잘 됐어?'라고 등짝 스매싱을 날리는 장면이 잡혔다.


당시 자극적인 소재로 눈길을 끌던 SBS의 '그것이 알고싶다'[7]에서 취재하기도 했다. 휴거라고 지칭한 당일 전후로 다미선교회에 출입하던 교인들을 인터뷰했는데 전날 '난 지금 천국 가. 너희들은 이제 큰일났다. 히히히' 수준의 발언을 했던 서울대생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다음날 자신이 역으로 '너야말로 이제 큰일났다. 히히히' 하는 비웃음을 당할 처지에 놓이자 참담하게 나오는 모습을 내보내 서울 시민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했으며 일부 교회에서는 분노한 신도들이 책임자 나오라며 교회 기물을 때려부수고 목사를 두들겨 패는 등 난장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MBC PD수첩에서도 휴거론에 빠진 신도들의 후일담을 다뤘다.

주범인 다미선교회가 역시 가장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당시에는 다미선교회가 너무 설치다보니 기성 개신교 교회들 가운데 많은 수가 여기에 낚이거나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서 말세적인 종말론 분위기가 널리 퍼졌다.

그리고 이후 일부 광신도들은 인지부조화의 훌륭한 예를 보여주었다.

3. 성경적 해석

성서에도 이미 이런 사태를 주의하는 경고가 있다.
하느님 나라가 언제 오겠느냐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질문을 받으시고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하느님 나라가 오는 것을 눈으로 볼 수는 없다. 또 '보아라,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 그리고 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영광스러운 날을 단 하루라도 보고 싶어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아라, 저기 있다.' 혹은 '여기 있다.'하더라도 찾아 나서지 마라."
루가 복음서 (누가복음) 17장 20~23절
해당 내용을 쉽게 요약하자면 '세계 종말의 시기는 인간이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여기저기서 주장하는 종말의 때를 절대로 믿지 말아라'는 뜻이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좁게 해석했을 때의 경우고 더 깊게 해석하면 기독교인으로써 어떠한 시기를 정하고 신앙심을 키우려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있지만[8]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면 대충 예수도 나중에 이런 일이 있을 걸 알아서 신도들에게 주의를 주었던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또 다른 구절에는 휴거, 곧 마지막 날은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도, 심지어 아들인 예수 본인도 모른다고 분명하게 적혀 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시느니라
마태복음 24장 36절[9]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리라.
마태복음 24장 42절

종합하자면 기독교의 기본 중의 기본 교리인 삼위일체의 예수도 모른다는 마지막 날을 그저 인간일 뿐인 목사가 예언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될 뿐더러 성서의 구절대로 해석하면 자신이 최후의 날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것은 스스로가 예수보다 더 전지전능한 자라거나 재림 예수라고 주장하는 자,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참칭하는 심각한 대죄를 범하는 적그리스도, 천하의 이단사이비 종교가 된다.

당시 다미선교회를 비롯해 휴거를 믿었던 교회들에서 많이 불렀던 찬송가 중 '하나님의 나팔소리'라는 노래가 있는데 이 찬송가의 1절과 2절 가사가 휴거를 묘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찬송가 가사의 진짜 의미는 휴거 그 자체가 아니라, 위에도 언급된 바와 같이 예수가 재림할 날이 언제인지 알 수 없으니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기다리자는 것이다.
주님 다시 오실 날을 우리 알 수 없으니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어서
기쁨으로 보좌 앞에 우리 나가 서도록 그 때까지 참고 기다리겠네
찬송가 <하나님의 나팔소리> 3절

4. 사건 이후

휴거 열풍이 불었을 때 숫자니 통계니까지 들이대면서 선동했던 다미선교회 이장림 목사의 행적은 결국 2011년 재발굴되어 '세계 종말을 열정적으로 예언한 사람들' 중 하나로 이그노벨상 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수학적 추정을 할 때에는 조심해야 한다", 즉 이 따위로 숫자 쓰지 말라는 것을 일깨워 준 반면교사의 의미라는 것이 공식적인 선정 사유인데 이런 거창한 선정 사유를 곧이곧대로 따라 읽는 것도 우스운 일이고 더 간단하고 솔직하게 말한다면 "세상에는 이런 질나쁜 바보들이 있으니 한번 보고 실컷 웃고, 혹시 비슷한 인간들이 또 나오면 속아넘어가지 말라"는 의미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해외의 관련 사이트들에서도 Rapture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우호적이든 반대 입장이든...[2] 참고로 먼저 구원받은 유대인들도 함께 구원받은 이방인들과 휴거에 참여하기도 한다.[3] 당시에는 베드로후서 3장의 '천년이 하루 같다'는 구절에서 따 와서 곧 온다는 개념에 사망 후 하루 뒤를 천년이라고 생각하던 걸 약간 더 늘려 이틀=2천년 같은 식으로 설명했다. 이 외에도 서기 2000년을 종말의 시기로 보는 근거라는 게 많았지만 끼워맞춘 것이라는 점은 큰 차이가 없다.[4] 이 점은 2020년 SBS의 교양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6회에서도 언급되었다.[5] KBS joy 예능 프로그램 차트를 달리는 남자 '최악의 사이비 종교' 편에서 휴거 소동을 다룰 때 이 나방 부분도 언급되었는데 이에 대해 MC들 曰, "나방은 원래 날아다니지 않나요...?"[6] 위 영상에서는 해당 멘트가 통째로 잘려나갔다. 들어보려면 MBC 웹사이트에서 해당 뉴스를 찾아봐야 한다.[7] 당시 그것이 알고싶다는 '미스터리 다큐멘터리'를 표방하는 방송이었다. 1996년 ~ 1997년 전후를 기점으로 시사고발 프로그램으로 성격이 바뀌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자리잡았다.[8] 천국에는 가고 싶은데 아직 본격적으로 교회 다닐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흔히 말는 '그래도 죽기 전에 제대로 믿으면 천국에는 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오해와 비슷한 맥락이다. 정작 기독교에서는 모태신앙으로 평생 동안 성서 공부해도 천국에 갈 자격이 생길지 말지 모른다는 걸 신도들에게 깨우치는 경우가 있고 애시당초 자신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당연히 자연사로 죽겠지라는 심정으로 어중간한 신앙심을 가질 시기를 정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셈이 된다. 그리고 어차피 이런 사람들은 높은 확률로 본인이 죽는 날까지 무신론자로 살 가능성이 높다.[9] KBS 모던코리아 휴거 편 중간에 이 구절이 인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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