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8:26:32

정교회 한국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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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정교회 한국대교구
正敎會 韓國大敎區 | Orthodox Metropolis of Korea
파일:한국 정교회 대교구.png
<colbgcolor=#800000><colcolor=#efbc00> 형태 <colbgcolor=#FFFFFF,#191919> 정교회 대교구
전례 비잔틴 전례
소속관구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총대주교청 직할
주보성인 한국 정교회 24인 수호성인
교구 설정 2004년 6월 20일([age(2004-06-20)]주년)
주교좌 서울 성 니콜라스 대성당
교구장 암브로시오스 조그라포스 대주교[1]
관할구역 대한민국, 북한, 일본[2]
교구 현황 신자수 약 2~3천 명(최대 4천 명), 대주교 1명, 사제 9명, 본당 8개
대교구청 소재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18길 43(아현동)
정교회 한국대교구
한국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인 성 니콜라스 대성당
1. 개요2. 역대 교구장3. 상세4. 관할구역5. 교육기관6. 여담

[clearfix]

1. 개요

정교회 한국대교구(正敎會 韓國大敎區)는 대한민국, 북한, 일본을 관할하는 정교회 교구이며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청의 직할 교구다.

2. 역대 교구장

역대 정교회 한국대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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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
파일:그리스 국기.svg
(2004~2008)
2대
암브로시오스 조그라포스 대주교
파일:그리스 국기.svg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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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00000> 역대 정교회 한국대교구장
<rowcolor=#efbc00> 대수 이름 재임 재임기간 비고
<colcolor=#efbc00> 초대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 2004년 6월 20일 ~ 2008년 7월 20일 4년 1개월 1일 튀르키예 피시디아와 안탈리아의 대주교
2대 암브로시오스 조그라포스 대주교 2008년 7월 20일 ~

3. 상세

대한민국에서는 교세가 작다는 성공회보다도 신자 수가 적은 그리스도교 교파다. 9곳의 성당과 2곳의 수도원이 있다. 한국정교회 대교구 성당과 수도원 소재지를 보면 러시아그리스와 관계가 깊은 지역에 주로 세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한국 정교회 성당들은 가톨릭이나 성공회 성당과 비교할 때[3] 다소 특이하게도 인천광역시울산광역시에 먼저 성당이 세워져 있는데 이 점은 항구조선소의 존재가 정교회 확산에 미친 영향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한민국에 선박 수주를 맡기는 거물 선주들의 상당수가 그리스인 선주들이며 선박에서 일하는 외국인 선원들 중에서는 러시아인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규모가 작은 한국정교회는 한동안 다른 나라 정교회에 속했는데 1956년에서 1970년까지는 미국 대교구, 1970년부터 2004년까지는 뉴질랜드 대교구 소속으로 이 기간에는 해당 국가의 정교회를 통해야만 콘스탄티노폴리스와 소통할 수 있었다. 1993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콘스탄티노폴리스 한국정교회 대교구로 격상되었고 교회 규모의 확대를 인정받아 2004년 6월 20일부로 세계 총대주교청 직속의 대교구가 되어 콘스탄티노폴리스와 직접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정교회 한국대교구의 초대 교구장으로 그리스 출신 소티리오스 대주교가 착좌하였다.

그리스계 튀르키예인바르톨로메오스 세계 총대주교가 네 차례 한국을 방문했는데 첫 방한은 대교구로 격상된 지 2년이 지난 1995년에 있었다. 2000년에는 방한 기간 중에 60번째 생일을 맞아 한국에서 전통 환갑상을 받기도 했다. 2005년 방한 때는 직접 정교회 한국대교구 총대주교청 관할 50주년 기념 대영광식을 집전했다. 최근 방한은 2018년 12월이다.

현재 한국의 신자 수는 대략 2~3천 명(최대 4천 명 예상) 정도이다. 콘스탄티노폴리스 한국정교회의 본산인 성 니콜라스 성당서울특별시 마포구 아현동에 소재한다. 이 성당은 양식인데 그리스 정부에서 건물을 지어 주었다. 주택가 속에 있어서 초행길엔 조금 찾기 힘들 수 있다. 5호선 애오개역에서 내려서 5분 정도 걸으면 된다. 이 건물이 지어진 부지는 과거 러시아 정교회가 있던 자리를 팔아서 마련한 돈으로 구입한 것이라 한러 수교 이후 러시아 정교회 측에서 자기들 거니 돌려달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물론 들어줄 리가 없는 소원이라 성 니콜라스 주교좌 성당 바로 아래에 성 막심 성당이 있는데 러시아인들이 아쉬우나마 여기서 러시아어[4] 성찬예배를 할 수 있게 했다.

한국에는 각 이민자들의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지 않아 외국인 신자들과 한국인 신자들이 모두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으며 오리엔트 정교회 신자들이 일부 참석하기도 한다. 이 중에는 에티오피아인들도 가끔 있었으며 콥트교도들도 있었으나 신촌에 새로이 콥트 정교회 성모 마리아 성당을 만든 후에는 나오지 않게 되었다(콥트 정교회 문서 참조). 조금은 여러가지 면에서 다른 모습을 보이는 러시아인 교인들을[5] 위해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에서 사할린 한인 테오판 김 신부를 파견하여 슬라브어 전례를 실시하기도 했다.[6] 이 신부가 2011년까지 봉직하다가 러시아의 투바 공화국의 주교로 서품되어 콘스탄티노폴리스 정교회 한국대교구를 떠난 후 러시아인들을 위한 성직자는 공석이었다가 우크라이나인 신부가 파견되어 이르고 있다.

2008년부로 현재까지 그리스 출신 암브로시오스 대주교가 제2대 한국 교구장으로 재임 중이다.[7] 이전에는 초대 교구장인 소티리오스 대주교가 첫 그리스 출신 교구장으로서 1975년 12월 1일부터 2008년 7월 20일까지 30여 년 이상 한국에서 재임하였다.

규모가 매우 작아 예비신자 교리는 청년회와 연동해서 진행한다.

4. 관할구역

지역 명칭
서울특별시 성 니콜라스 대성당[8], 성 막심 성당[9], 성모 마리아 소성당
부산광역시 성모희보성당
인천광역시 성 바울로 성당
울산광역시 성 디오니시오스 성당[10]
전주시 성모안식성당[11]
완주군 성 안나 학교 성당[12]
춘천시 성 보리스 성당
파주시 용미리 구세주 부활 성당[13]
양구군 성 안드레아 성당, 양구 성 안드레아 수도원
가평군 가평 구세주 변모 수도원

5. 교육기관

파일:학교법인 성 안나 교육재단.png 학교법인 성 안나 교육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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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기관
중등 전주예술중학교전주예술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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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그리스도교 계열인 가톨릭과 개신교의 각 교파와 달리 고등교육기관종합대학은커녕 성직자를 양성하는 신학대학도 설치되어 있지 않다.[14][15][16] 다만 종교 활동과는 무관하게 매 반기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의 그리스·불가리아학과와 협력하여 정교회 국가들의 전통 음식을 선보이는 바자회를 개최하고 있다.

6. 여담

  • 그리스에는 선박을 진수할 때 정교회 사제가 축복하는 관습이 있다. 그리스인들이 한국에서 선박 제작을 많이 주문하곤 했는데[17] 특히 그리스 부자(富者)들은 진수식을 할 적에 한국의 최고위 성직자인 소티리오스 대주교를 많이 모셔와 배에 축복을 받았다. 조선소 근처에서 살았거나 근무한 사람들이라면 검은 라손(ράσον)[18]을 입고 검은 기다란 사각형 모자인 칼리마프히온(καλυμμαύχιον)에 성모 마리아(παναγία) 목걸이를 착용한 백인 노인이 나뭇가지에 물을 적셔 새로 제작된 배에 뿌리면서 저울 같은 것에 향을 태우는 모습을 볼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그 백인 노인이 소티리오스 대주교였을 가능성이 높다.
  • 한국 대주교는 일본의 관할주교(Exarch)를 겸한다. 원래는 모스크바 총대교구청 산하의 일본 정교회와의 영적인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일본에서 특별한 활동은 하지 않았지만, 2018년 정교회 분열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는 일본에 방문해 성찬예배를 집전하며, 우크라이나 정교회와 협력해 세계 총대주교청 산하의 일본 관할교구를 조직하기로 했다.

[1] 정식직함은 '한국의 대주교, 일본의 대리주교'[2] 일본 정교회는 모스크바 총대주교청에 의해 자치교회로 선언되었으나 세계총대주교청을 비롯한 다른 정교회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3] 가톨릭은 가장 먼저 도입된 그리스도교인 만큼 역사가 오래된 대도시인 서울특별시대구광역시, 광주광역시에 관구가 하나씩 있고 수도권이 강세이긴 하지만 전국적으로 인구에 따라 고르게 교구가 나뉘어 있다. 대한성공회서울특별시대전광역시, 부산광역시 세 곳에 교구가 있다.[4] 정확히는 교회 슬라브어[5] 여담으로 가톨릭은 "총대주교 자리가 문제라면 자리를 더 이상 안 만들면 되지"라는 간단한 논리로 수위권 문제를 해결했다. 현대 가톨릭의 총대주교 자리는 다른 주교들과 비교했을 때 실질적으로 큰 권력이 없다.[6] 참고로 테오판 김 신부가 위에서 말한 모스크바 정교회 대한교구의 교구장 주교다.[7] 2016년 11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정교회 성직자가 교회협의회 회장을 맡음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최초라고 한다.[8] 주교좌성당[9] 슬라브인들을 위한 성당이며 성 니콜라스 대성당의 부속성당이다.[10] 성 니콜라스 대성당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진 비잔티움 양식 성당이다.[11] 기존의 성당이 있었으나 효천지구 개발로 인해 철거되고 한동안 인근 상가 건물 한층을 임대해 성당으로 사용하다가 기존 성당의 옆자리에 세워진 새 성당으로 되돌아왔다. 새로 지어진 현 성당은 정교회 성당으로는 전국에서 세번째, 전주시에서는 천주교 전동성당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진 비잔티움 양식 성당이다.[12] 전주예술고등학교의 부속성당. 전주예고는 정교회에서 설립한 대표적인 미션스쿨이기도 하다.[13] 교회 묘지용 성당[14] 교세나 신자 수가 비슷한 기독교한국루터회가 산하에 루터대학교를 두고 있는 걸로 보아서는 의아한 일이다.[15] 그러나 이는 정교회에서 신품성사를 베풀 때(주교를 제외하고) 후보자의 학위 소지를 필수 조건으로 여기지 않음을 간과한 서술이다.[16] 여담으로 1990년대에 한국에 성 니콜라스 신학원이 서울 성 니콜라스 대성당 내부에 존재했고 그곳에서 한국인 성직 후보생과 동남아시아 출신 성직 후보생들이 수학했다.[17] 정주영 회장이 조선소 세우려고 지폐의 거북선 그림으로 영국 은행을 설득했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사건에서 성공에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은 대한민국 정부의 보증과 더불어 아리스토틀 오나시스의 친척이 보증을 서 준 것이었다.[18] 일종의 장삼으로, 가톨릭의 수단에 해당하는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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