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전자문학의 한 장르로써, 쓰여진 글 위에 하이퍼링크를 이용하여 새로운 형태의 정보를 제공하는 문학. 예를 들면 본문에 있는 한 단어의 링크가 그 단어에 대한 세세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혹은 다른 시점으로 그 사건을 바라보는 글로써 존재할 수 있다.그 말은 즉,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전반적으로 어느 부분이 이 글의 처음부분인지 혹은 중간부분인지 알 수가 없기에, 하이퍼텍스트 문학이라는 것은 전통적인 서사 형식을 벗어난 문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말의 의미는 즉, 해체와 창조의 예술, 포스트모더니즘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 예술이라는 뜻이다. 결국에는 하이퍼 텍스트 문학이란, 문학계의 포스트모더니즘인 셈.
딱딱한 정의가 어렵다면 쉽게 말해, 작품 속에서 집에 불이 났는데 '어떻게든 이 불을 끄려면 5쪽으로, 119에 신고하려면 36쪽으로, 집 밖으로 도망치려면 20쪽으로 이동하라'는 식의 페이지 안내를 따라 독자가 스토리를 이끌면서, 같은 작품도 기승전결이 다르게 읽히는 방식을 생각하면 된다.
흔히 알려진 매체로는 게임북을 예로 들 수 있고, 이걸 전자적으로 구성하면 비주얼 노벨, 텍스트 어드벤처 등이 된다.
실제로 의미상으로는 하이퍼텍스트의 텍스트 부분이 문학과 소설을 전반적으로 지칭하는 말이므로 실제로 역전 앞 같은 어법상 틀린 문장이지만, 국내 여러 기사나, 국내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하이퍼텍스트 시, 소설, 산문 등 하이퍼텍스트라는 것에 대한 강조와 그 뒤에 장르를 설명하는 것이므로 실제 사용상에 문제가 없다.
하이퍼텍스트 문학을 만들려면 HTML 같은 마크업 언어로 그대로 코딩하는 방법도 있고, 워드프로세서에서 제공하는 하이퍼링크 기능을 사용해도 된다. 혹은 Twine 같은 무료 하이퍼텍스트 문학 제작 도구도 있다.[1]
하이퍼텍스트 문학을 하이퍼서사라고 부르자는 의견이 있다. 이 의견의 관점에서 하이퍼서사는 여러 하이퍼텍스트 중에서 서사라는 장르의 특성이 부각된 하이퍼텍스트이다. 따라서 이 하이퍼서사는 하이퍼텍스트의 하위개념으로 취급된다.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이라는 개념과도 관계가 있으며 이쪽은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크리스 크로퍼드의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앤드류 글래스너)',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 사이버 서사의 미래 (자넷 H. 머레이)' 등의 번역서를 참조할 수 있다.
2. 역사
이 문단에서 설명하는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시를 위시한 운문이 아닌 산문(소설 등)이므로 유의하자.2.1. 하이퍼텍스트 문학의 시작
최초의 하이퍼텍스트 문학인 오후, 이야기 Afternoon, a story |
하이퍼텍스트 문학, 더 나아가 디지털서사의 시작에는 하이퍼픽션이 있었다. 이 하이퍼픽션은 영미권이나 유럽에서 나타난 새로운 문학사조이다. 초기의 하이퍼픽션들은 기존 문학의 주류로 있던 소설을 위시한 근대문학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추구했다. 기존 인쇄문학 위주의 근대문학에서 구현이 불가능에 수렴했던 디지털매체의 특성[2]을 적극으로 활용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다만 근대문학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문학의 정체성이 되고자 했던 하이퍼픽션의 방향성은 하이퍼픽션 쇠퇴의 원인이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뒤의 '하이퍼텍스트 문학의 쇠퇴' 부분을 참조하자.
하이퍼텍스트 문학의 시초라 불릴만한 작품은 마이클 조이스의 <오후, 이야기 Afternoon, a story>[3]이다. 1987년에 대중에 선보인 작품으로 하이퍼픽션이 1990년대나 2000년대에 주로 나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오래된 작품이다.[4] 이후 마크 아메리카의 <그래마트론 Grammatron>(1997), 수자네 베르켄헤거의 <폭탄을 위한 시간 Zeit für die Bombe>(1997), 아담 케니의 <박물관 The Museum>(2004) 등 다양한 하이퍼텍스트 문학 작품들이 나온다.
2.2. 하이퍼픽션의 쇠퇴
활발히 나오던 하이퍼픽션은 점차 쇠퇴하기 시작한다. 20세기 후반, 21세기 초 서서히 뜨고 있는 디지털매체의 후광을 제대로 받은 하이퍼픽션이 침체된 데에 다양한 이유들이 제시되었다. 가장 설득력있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부족한 일관성이다. 매체의 특성을 살리는데만 집중하고 장르로서 갖춰야 할 일관성을 외면하다보니 장르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어졌으며 읽는 독자들은 이리저리 튀는 하이퍼픽션의 작품들에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고 피로해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들어 하이퍼텍스트 문학 특유의 일관된 장르적 특성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2.2.1. 원인 1: 내용이 빈약하다.
말 그대로 내용이 빈약해서 독자들을 끌어올 수 없었다는 의견이다. 겉만 보면 디지털매체의 특성에 맞는 새로운 기능들로 점철된 신문학의 표상이지만 실상은 속없는 찐빵과 다름없었던 것이다. 결국 당시 독자들은 독자로서 내용이 없던 하이퍼 픽션을 외면했으며 이것이 하이퍼서사의 쇠퇴로 이어졌다는 의견이다.하지만 이 빈약한 내용으로 인한 문제에 대해서는 장르가 성숙해질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반론도 있다. 첫 하이퍼픽션이 나온 1987년부터 하이퍼픽션이 침체될 때 까지 고작 20년 남짓할 시간이 흘렀으며 이 20년이라는 시간동안 장르를 근대문학과 동등한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어려웠다는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장르가 발전할 시간이 부족해 일어난 문제로 장르의 태생적인 문제와는 무관하다는 뜻이다.
2.2.2. 원인 2: 독자에 대한 이상화의 부작용이다.
하이퍼픽션에서 생각한 이상적인 독자와 실제 독자 사이 괴리감이 컸으며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쇠퇴했다는 의견이다. 하이퍼픽션에서 독자는 작가의 작품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근대문학과 달리 독자를 작품의 생산자로서 만들고자 했다. 이는 매체의 상호작용성에 기인한 이상화이며 그 이상화가 지나쳐 부작용을 일으켰던 것이다.이 또한 이상화가 지나친 기대치로 이어져 발생한 문제일 뿐 장르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는 반론이 있다. 공부 좀 한다는 어느 한 학생에게 수능 만점맞기를 기대했는데 그 학생이 수능 만점을 받지 못한 것을 보고 혼자 실망하는 격이다.
2.2.3. 원인 3: 하이퍼미디어로 전환이 너무 급속했다.
일부 학자들은 하이퍼픽션이 텍스트만이 중심이 될 수 있었던 산문장르였다고 생각했다. 이 관점에서 하이퍼픽션은 텍스트가 중심이었던 하이퍼텍스트의 영역에 속했던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의 멀티미디어화로 이 하이퍼텍스트는 빠르게 침체되었고 하이퍼미디어가 떠오르며 하이퍼텍스트를 기반으로 삼았던 하이퍼픽션 또한 덩달아 침체되었다는 의견이다.사실 이는 하이퍼텍스트와 하이퍼미디어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온 의견이라는 반론이 있다. 하이퍼텍스트와 하이퍼미디어는 분리된 별개의 개념이 아니며 하이퍼텍스트는 이들의 의견과 다르게 텍스트만 중심이 되는 매체가 아니다.
2.2.4. 원인 4: 애초에 하이퍼텍스트는 서사와 안맞는다.
근본적으로 서사는 하이퍼텍스트라는 체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이다. 애초에 이 둘이 어울리지 않으니 어느 작품을 써도 부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으며 이에 따라 필연적으로 이 둘이 어울려야 하는 장르인 하이퍼픽션도 흥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들은 디지털이라는 매체가 소설같은 서사보다 시에 더 어울린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이에 대해 반론하는 측에서는 하지만 오히려 하이퍼 시가 더 디지털매체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다. 보통 시도 은유 등으로 점철되어 해석이 어려운데 여기에 각종 링크 등이 더해져 그 난해함이 배가 되기 때문이다. 한편 은유 등이 없는 하이퍼서사는 이와 반대로 링크를 통해 서사적 의미가 더욱 풍부해진다고 한다.
2.3. 하이퍼텍스트 문학이 쇠퇴하였다는 분석은 옳은가?
보통 하이퍼텍스트 문학이라고 하면 순수문학 문단에서의 실험적인 문학을 의미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그것에 한정해서 보는 것은 좁은 시각일 수 있다. 분명 순수문학 영역에서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아직까지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그러나 비선형적 서사구조를 지닌 비디오 게임들은 굉장히 많이 제작되어 왔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물론 비디오 게임은 문학적 요소(스토리) 외에도 다른 요소를 많이 갖추고 있기 때문에 문학과 동일시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디오 게임 중에서도 텍스트 어드벤처 장르는 스토리성이 강하며, 그 중에서도 인터랙티브 픽션이나 사운드 노벨, 비주얼 노벨은 게임인지 여부가 논란이 될 정도로 문학성[5], 서사성이 강하다. 특히 시각적 요소가 최소화되고 텍스트 요소가 중심이 될 경우 하이퍼텍스트 문학의 정의에 완전히 들어맞는다. [6][7]
그리고 이러한 장르들 중에 완성도와 상업적 성공을 모두 얻은 작품들이 상당히 많다. 이는 하이퍼텍스트 문학이 쇠퇴했다기보다는 순수문학, 실험문학이라는 협소한 영역을 넘어서 대중서사 영역에서 흥행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이퍼텍스트 문학'에 대한 담론은 순수문학계를 중심으로 논의되었고 특히나 한국의 순수문학계는 대중서사에 대한 관심이 무척 적은 편이었으므로 이러한 현상이 쉽게 인식되지 못했던 것이다.
2.4. 한국에서의 상황
한국에서는 하이퍼텍스트 문학이라고 하면 <디지털 구보 2001>, <아랑은 왜>의 예를 들을 수 있으며, 실제 2000년대 초반을 전후로 많은 시도가 이루어졌고, 이후 블로그 에서도 하이퍼텍스트 문학에 대한 실험이 이루어진 바 있지만 의미있는 문학적 시도로 보기에는 여전히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그렇게 한국에서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대중들 사이에서 잊히는 줄 알았으나...2.5. 재도약의 움직임?
최근들어 침체된 하이퍼텍스트를 부활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특기할 부분은 하이퍼텍스트 문학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HN2 프로젝트를 통해 [8]를 통해 하이퍼텍스트 문학을 발전을 꾀하고 있다. 아래 문단에서 이 프로젝트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최신 하이퍼텍스트 문학작품들이 정리되어있으며 직접 링크를 타고 들어가 감상할 수 있으니 이쪽에 관심이 있다면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위키백과를 통해 각 작품에 대한 자세한 정리를 접할 수 있다.3. 특징
3.1. 유닛(Unit) [9]
유닛 하이퍼텍스트 문학을 구성하는 각 이야기 덩어리들을 지칭하는 단위라고 할 수 있다. 기존 근대 인쇄문학의 경우 한 이야기가 일관성있게 끊기지 않고 줄지어 이어지는 선형성 구조를 띄고 있다. 반면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이와 반대로 한 이야기가 여러 이야기 토막들로 끊긴 채 후술할 링크를 통해 이들이 서로 엮이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하나의 유닛은 하나의 생각덩어리[10]를 통해 만들어지며 이 표상이 지속적으로 해체, 분해된 끝에 시각적, 청각적인 형태로 그 모습을 갖추게 된다. 보통 한 유닛의 구성은 그 유닛의 제목과 이전 유닛과 연결되는 머리링크, 서사텍스트(내용물), 다음 유닛과 연결되는 꼬리링크[11], 스토리텔러(창작자)의 이름, CCL[12]로 이루어져있다.3.2. 하이퍼링크(Hyper link)
단위텍스트를 다 만들었다고 해도 이들은 아직 하이퍼텍스트 문학이라 부를 수 없다. 이들이 이어져 하나의 서사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때 이들을 잇기 위한 장치가 바로 하이퍼링크이다. 유닛들은 이들이 서로 엮임으로써 서사적 목적을 위한 일관성을 지니게 된다. 이 링크가 잘 엮인, 잘 구성된 하이퍼텍스트 문학에서는 기존 인쇄문학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수용자에 따라 그 작품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유동하는 생성적 텍스트를 볼 수 있게 된다.3.3. 멀티미디어
'텍스트'라는 단어 탓에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문학형식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위의 '유닛' 문단에서 언급했듯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시각뿐만이 아닌 청각적인 요소등 다른 감각도 자극하는 문학형식이다. 따라서 이러한 감각자극을 위해 영상, 음성파일 등 텍스트 이외의 다양한 것들을 단위텍스트에 녹여내 활용할 수 있다. 한편 청각 등을 배제한 시각적인 요소만으로도 텍스트를 하나의 이미지처럼 활용하는 등 여러 변수를 마련하고 다양한 메시지를 감각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비주얼 노벨도 이러한 멀티미디어 요소를 극대화한 경우이다. 아예 영화를 비선형적으로 구성한 인터랙티브 무비도 있으며, 관객이 투표 등으로 극의 진행에 관여하는 형식의 연극들도 있다.[13]
4. 사례
4.1. 한국
한국에서는 2015년 <두 가족 이야기>가 창작된 이후, 한국에서도 하이퍼서사(하이퍼픽션) 작품이 본격적으로 창작되기 시작했다. 하이퍼서사 연구자이자 <두 가족 이야기>의 총괄 기획자이기도 한 장노현 교수가 정리한 글에 따르면, 이미 수십 편의 하이퍼서사 작품이 창작, 유통되고 있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윤서연·이금영 작, <Fugue>(2016)
- 정숙희·이미형 작, <GOD BLESS YOU>(2018)
- 도민주·양예진 작, <순혜뎐>(2019)
- 유석민 작, <함무라비의 밀실>(2019)
- 김민희·박정윤·전성은 작, <타인의 신>(2019)
4.1.1. 소설
- 조하형의 '키메라의 아침'
4.1.2. 시
한국에서 만든 하이퍼 텍스트 시를 확인하고 싶다면 이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4.2. 그외 국가
실제로 영미권에서 하이퍼텍스트 문학은 어느정도의 기반을 다지고 수많은 실험들을 했었다. 워낙 예도 많고, 현재까지 운영되는 하이퍼텍스트 사이트가 존재한다. 작가로는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등이 있으며, 다양한 문학 분야 및 비평가들도 존재한다.역시나 비주얼 노벨, 텍스트 어드벤쳐, 인터렉티브 무비 등을 포함하면 훨씬 많은 작품들이 하이퍼텍스트 문학과 연관이 있다.
4.2.1. 소설
- '끝없는 게임': 정확히는 동화로 분류된다. R. A. 몽고메리의 작품으로, 한국에선 '고릴라 박스(비룡소)'를 통해 정발되었다. '곧장 출발하려면 4쪽, 친구에게 전화한 후 함께 가려면 13쪽으로' 와 같은 식으로 페이지를 넘나드는 구성을 하고 있으며, 독자의 선택에 따라 이야기와 결말이 달라진다. 1권은 결말이 20가지, 2권은 무려 42가지나 된다. 게임북에는 이보다 더 많은 전개, 결말, 툴을 사용하고 있는데, 양자를 별도로 분류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 '99명의 막차'[14]: 일본의 이노우에 유메히토(井上 夢人)가 1996년 발표한 작품으로 컴퓨터매체의 자유로운 특성을 살려 제작한 하이퍼텍스트 문학이다. 긴자선의 지하철에 올라탄 99명의 승객을 담은 작품으로 독자는 자유롭게 마우스를 클릭하며 각 승객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볼 수 있다. 소설본문과 이메일로 오는 독자들의 반응을 온라인화 한 것이 특기할 부분이다.
4.2.2. 시
5. 참고문헌
장노현 ( Jang Nowhyun ). "하이퍼서사의 가능성과 국내 창작 사례 연구." 한국언어문화 0.63 (2017): 187-211.장노현(Jang Nohyun). "국내 창작 하이퍼서사의 현황과 형식 체계." 한국언어문학 115.- (2020): 233-260.
현대문화론 : 이노우에 슌, 문화사회학자가 본 일본의 현대 사회 (1998)
[1] 트와인은 렌파이등의 대용으로 간단한 게임을 만들 때도 사용한다.[2] 하이퍼텍스트 서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하이퍼링크가 대표적인 예시라 할 수 있다. 당장 종이책 형식의 소설에 하이퍼링크를 구현한다고 생각해보자.[3] 위 사진의 모습과 많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는 작품(사이트)이 시간에 걸쳐 업데이트 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4] 참고로 1987년이면 한국에서 어지간한 PC통신이 출시되기 이전 이들의 전신격인 서비스[15]가 막 나오던 시기였다![5] 여기서 문학성은 문학 분야에서의 '예술성'을 논하거나 경계짓기를 할 때의 애매한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문학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6] 사실 사운드 노벨의 개념을 정립한 카마이타치의 밤만 해도 현직 소설가가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7] 다만 키네틱 노벨처럼 선택지가 없어서 비선형성이 드러나지 않으면 하이퍼텍스트 문학에 해당하지 않는다.[8] 현재 2021년에도 진행 중에 있는 프로젝트이며 장기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9] 단위텍스트(Unit text) 등 다른 명칭들이 있으나 여기에서는 유닛이라는 명칭으로 부른다.[10] 조금 전문적인 단어로 표상.[11] 간혹 다음 유닛이 아닌 다른 곳으로 돌아가는 링크도 있을 수 있다.[12] Creative Commons License. 저작물 이용 조건을 제시하는 국제적인 표식이다.[13] 대체현실게임도 참조.[14] 일본어로 되어있으며 번역기 등을 활용해 감상할 필요가 있다. 본인이 일본어에 자신이 있다면 그냥 봐도 상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