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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fff,#fff><colcolor=#000092,#000092> 출생 | 1925년 12월 23일 | ||
| 프랑스 오트노르망디 센마리팀 루앙 | |||
| 사망 | 1993년 5월 1일 (향년 67세) | ||
| 프랑스 부르고뉴프랑슈콩테 니에브르 느베르 | |||
| 재임기간 | 제108대 총리 | ||
| 1992년 4월 2일 ~ 1993년 3월 29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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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원 선수 | 3 | ||
| 의원 대수 | 8, 9, 10 | ||
| 지역구 | 니에브르 1구 | ||
| 부모 | 父: 아드리앙 베레고부아[1] 母: 이렌 보들랭 | ||
| 배우자 | 질베르트 보네(Gilberte Bonnet) | ||
| 자녀 | 카트린, 리즈, 피에르 | ||
| 약력 | 느베르 시장 대통령 비서실장 경제재무부 장관 프랑스 국민의회의원 프랑스 총리 | }}}}}}}}}}}} | |
1. 개요
프랑스의 정치인. 제12대 프랑스 총리를 역임했다.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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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생의 동지였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과 함께 |
피에르 베레고부아의 아버지 아드리안 베레호비는 하르키우에서 태어났으며, 1920년 러시아 혁명을 피해 폴란드, 독일을 전전하다가 1923년 프랑스에 정착한 우크라이나 이민자였다. 아드리안은 프랑스인 여성인 이렌 보들랭(Irène Baudelin)과 결혼했으며, 피에르 베레고부아는 1925년 오트노르망디 루앙에서 우크라이나계 프랑스인으로 태어났다. 초등학교만 나왔으며 선반공과 철도 근로자 등의 직업을 거친 노동자 출신이지만 프랑수아 미테랑의 최측근이 되어 니에브르 1구를 기반으로 정부 요직을 두루 맡았다. 미테랑이 프랑스 대통령이 된 후 대통령 비서실장, 경제재무부 장관, 총리 등의 요직에 임명되었다. 느베르의 시장이 되기도 했다.
1992년 4월 총리에 임명되었고, 1993년 총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1993년 3월 9일부터 29일까지 군무장관으로 있었다.
생전 그의 이미지는 '청렴한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1986년 파리에 아파트를 구매하기 위해 미테랑의 친구인 로제파트리스 펠라(Roger-Patrice Pelat)에게서(베레고부아 본인의 친구이기도 했다) 150만 프랑을 빌리고 갚지 않아 1993년 언론으로부터 뇌물수수 혐의를 받았다. 나중에 갚았다고 해명했고[2] 상환도 확인되었으나 그가 무이자로 돈을 빌린 것도 문제가 되었고, 펠라가 내부거래 혐의로 조사를 받아 문제는 더욱 크게 커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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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레고부아의 자살을 보도한 프랑스 유력 일간지 <파리지엔> | |
당시 총리였던 베레고부아는 그해 3월의 총선에서 참패했으며 그에 대한 책임으로 총리직에서 사퇴했다. 그리고 사퇴한 지 5주 뒤인 1993년 봄 노동절인 5월 1일에 권총으로 자살했다. 기사. 후임 총리는 에두아르 발라뒤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