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31 11:26:07

포스투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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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제2대 제3대 임시 제4대
포스투무스
소 포스투무스
vs.

라엘리아누스
마리우스 빅토리누스
소 빅토리누스
빅토리아
vs.

도미티아누스 2세
테트리쿠스 1세
테트리쿠스 2세
vs.

파우스티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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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tablewidth=100%><tablealign=center> 라틴어 문구 색상 범례
  • ignotus: 불명
황제 겸 집정관 }}}
201년 202년 202년 보결 203년 204년
루키우스 안니우스 파비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페르티낙스 아우구스투스 티투스 무레니우스 세베루스 가이우스 풀비우스 플라우티아누스 루키우스 파비우스 킬로 셉티미누스 카티니우스 아킬리아누스 레피두스 풀키니아누스
마르쿠스 노니우스 아리우스 무키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레갈리아누스 푸블리우스 셉티미우스 게타 마르쿠스 안니우스 플라비우스 리보
204년 보결 205년 206년 206년 보결 207년
루키우스 폼포니우스 리베랄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눔미우스 움브리우스 프리무스 세네키오 알비누스 푸블리우스 툴리우스 마르수스 루키우스 안니우스 막시무스
ignotus 푸블리우스 셉티미우스 게타 카이사르 루키우스 풀비우스 가비우스 누미시우스 페트로니우스 아이밀리아누스 마르쿠스 카일리우스 파우스티누스 가이우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아페르
208년 209년 210년 211년 212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아우렐리우스 콤모두스 폼페이아누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파우스티누스 헤디우스 롤리아누스 테렌티우스 겐티아누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아스페르
푸블리우스 셉티미우스 게타 카이사르 퀸투스 헤디우스 롤리아누스 플라우티우스 아비투스 아울루스 트리아리우스 루피누스 폼포니우스 바수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밀리우스 아스페르
212년 보결 213년 214년 215년 216년
(그나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세베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베루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퀸투스 마이키우스 라이투스 푸블리우스 카티우스 사비누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 데키무스 카일리우스 칼비누스 발비누스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아피우스 수에트리우스 사비누스 마르쿠스 무나티우스 술라 케리알리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아눌리누스
217년 218년 218년 보결 219년 220년
가이우스 브루티우스 프라이센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오펠리우스 세베루스 마크리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티투스 메시우스 엑스트리카투스 마르쿠스 오클라티니우스 아드벤투스 퀸투스 티네이우스 사케르도스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코마존
221년 222년 223년 224년 225년
가이우스 베티우스 그라투스 사비니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마리우스 막시무스 페르페투우스 아우렐리아누스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율리아누스 티베리우스 마닐리우스 푸스쿠스
마르쿠스 플라비우스 비텔리우스 셀레우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알렉산데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로스키우스 아일리아누스 파쿨루스 살비우스 율리아누스 가이우스 브루티우스 크리스피누스 세르비우스 칼푸르니우스 도미티우스 덱스테르
226년 227년 228년 229년 230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눔미우스 세네키오 알비누스 퀸투스 아이아키우스 모데스투스 크레스켄티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비리우스 아그리콜라
가이우스 아우피디우스 마르켈루스 마르쿠스 라일리우스 풀비우스 막시무스 아이밀리아누스 마르쿠스 폼포니우스 마이키우스 프로부스 카시우스 디오 섹스투스 카티우스 클레멘티누스 프리스킬리아누스
231년 232년 233년 234년 235년
루키우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 루키우스 비리우스 루푸스 율리아누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아킬리우스 프리스킬리아누스 마르쿠스 클로디우스 푸피에누스 막시무스 그나이우스 클라우디우스 세베루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살루스티우스 파일리그니아누스 루키우스 마리우스 막시무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파테르누스 마르쿠스 무나티우스 술라 우르바누스 루키우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퀸티아누스
236년 237년 238년 239년 240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율리우스 베루스 막시미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마리우스 페르페투우스 [루키우스] 풀비우스 피우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고르디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아피우스 수에트리우스 사비누스
마르쿠스 푸피에누스 아프리카누스 막시무스 루키우스 뭄미우스 펠릭스 코르넬리아누스 폰티우스 프로쿨루스 폰티아누스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아비올라 루키우스 라고니우스 베누스투스
241년 242년 243년 244년 245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고르디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베티우스 그라투스 아티쿠스 사비니아누스 루키우스 안니우스 아리아누스 티베리우스 폴리에누스 아르메니우스 페레그리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율리우스 필리푸스 아우구스투스
클로디우스 폼페이아누스 가이우스 아시니우스 레피두스 프라이텍스타투스 가이우스 케르보니우스 파푸스 풀비우스 아이밀리아누스 가이우스 마이시우스 티티아누스
246년 247년 248년 249년 250년
가이우스 브루티우스 프라이센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율리우스 필리푸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율리우스 필리푸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풀비우스 가비우스 누미시우스 아이밀리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메시우스 퀸투스 트라야누스 데키우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알리우스 알비누스 마르쿠스 율리우스 세베루스 필리푸스 카이사르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율리우스 세베루스 필리푸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나이비우스 아퀼리누스 베티우스 그라투스
251년 252년 253년 254년 255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메시우스 퀸투스 트라야누스 데키우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비비우스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비비우스 볼루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발레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발레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퀸투스 헤렌니우스 에트루스쿠스 메시우스 데키우스 카이사르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비비우스 볼루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포플리콜라 발비누스 막시무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256년 257년 258년 259년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무스 … 아킬리우스 프리스킬리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발레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눔미우스 투스쿠스 (눔미우스) 아이밀리아누스 (덱스테르)
마르쿠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뭄미우스 바수스 폼포니우스 바수스
260년 261년 262년 263년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사이쿨라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눔미우스 알비누스
가이우스 유니우스 도나투스 루키우스 페트로니우스 타우루스 볼루시아누스 눔미우스 파우스티아누스 덱스테르 (막시무스)
동방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풀비우스 마크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풀비우스 퀴에투스 아우구스투스
갈리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카시아니우스 라티니우스 포스투무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카시아니우스 라티니우스 포스투무스 아우구스투스
호노라티아누스
264년 265년 266년 267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리키니우스 발레리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갈리에누스 아우구스투스 오비니우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아퀼리우스 파테르누스
사투르니누스 루킬루스 사비닐루스 아르케실라우스
갈리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카시아니우스 라티니우스 포스투무스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피아보니우스 빅토리누스
268년 269년 270년 271년
아스파시우스 파테르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안티오키아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우렐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에그나티우스 마리니아누스 파테르누스 비리우스 오르피투스 폼포니우스 바수스
갈리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카시아니우스 라티니우스 포스투무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피아보니우스 빅토리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피아보니우스 빅토리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피우스 에수비우스 테트리쿠스 아우구스투스
산크투스
272년 273년 274년 275년
티투스 플라비우스 포스투미우스 퀴에투스 아울루스 카이키나 타키투스 또는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타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우렐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우렐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유니우스 벨둠니아누스 율리우스 플라키디아누스 카피톨리누스 (아우렐리우스) 마르켈리누스
갈리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피우스 에수비우스 테트리쿠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피우스 에수비우스 테트리쿠스 아우구스투스
노빌리시무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피우스 에수비우스 테트리쿠스
276년 277년 278년 279년 280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타키투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메살라
(풀비우스) 아이밀리아누스 (루키우스 율리우스) 비리우스 루푸스 노니우스 파테르누스 (베티우스) 그라투스
281년 282년 283년 284년 284년 보결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프로부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루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리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유니우스 티베리아누스 빅토리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리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누메리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루키우스 카이소니우스 오비니우스 루피누스 마닐리우스 바수스 Ⅱ)
285년 286년 287년 288년
티투스 클라우디우스 아우렐리우스 아리스토불루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막시무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베티우스 아퀼리누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폼포니우스 야누아리아누스
동방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서방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카리누스 아우구스투스
288년 보결 289년 289년 보결 289년 보결
… a 마르쿠스 마그리우스 바수스 마르쿠스 움브리우스 프리무스 케이오니우스 프로쿨루스
… ivianus 루키우스 라고니우스 퀸티아누스 티투스 플라비우스 코엘리아누스 헬비우스 클레멘스
브리타니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마우사이우스 카라우시우스
289년 보결 290년 291년 292년
플라비우스 데키무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유니우스 티베리아누스 아프라니우스 한니발리아누스
… ninius 막시무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카시우스 디오 율리우스 아스클레피오도투스
브리타니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마우사이우스 카라우시우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마우사이우스 카라우시우스
293년 294년 295년 296년 297년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콘스탄티우스 카이사르 눔미우스 투스쿠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갈레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안니우스 아눌리누스 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콘스탄티우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갈레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카이사르
298년 299년 300년
아니키우스 파우스투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아우구스투스 플라비우스 발레리우스 콘스탄티우스 카이사르
비리우스 갈루스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아우구스투스 가이우스 갈레리우스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카이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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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아데스 포스투무스 소 포스투무스 라엘리아누스
빅토리누스 소 빅토리누스 마리우스 잉게누우스
레갈리아누스 아우레올루스 마크리아누스 소 마크리아누스
퀴에투스 오다에나투스 헤로데스 마에오니우스
발리스타 발렌스 대 발렌스 피소
아이밀리아누스 사투르니누스 테트리쿠스 1세 테트리쿠스 2세
트레벨리아누스 헤렌니아누스 티몰라우스 켈수스
제노비아 빅토리아 티투스 켄소리누스 }}}}}}}}}}}}}}}

파일:포스투무스.jpg
이름 마르쿠스 카시아니우스 라티니우스 포스투무스
(Marcus Cassianius Latinius Postumus)
출생 미상
사망 269년
직위 갈리아 방면 로마군 지휘관
반란 대상 갈리에누스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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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군인 황제 시대의 반란자, 갈리아 제국의 초대 황제. 갈리에누스 황제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켜 10년간 갈리아와 브리타니아, 히스파니아를 통치했다.

2. 생애

포스투무스의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다만 그가 갈리아 제국 황제의 자격으로 주조한 동전에 바타비아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헤라클레스 마구사노스와 헤라클레스 데우소니엔시스 같은 신들이 많이 있는 걸 볼 때 바타비아 출신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마구사노스(Magusanus)는 게르만 신화의 'Þunraz'를 라틴어로 번역한 용어로 추정되며, '데우소니엔시스(Deusoniensis)는 바타비아 지역 내에 있는 데우소(Deuso)[1]에서 딴 용어였을 것이다.

그는 일찍이 로마군에 입대하여 라인 전선에서 활약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직함이 무엇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발레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게르마니아 인페리오르 사령관으로 승진되었던 듯하다. 그는 발레리아누스와 갈리에누스 부자의 신임을 굳건히 받았다. 갈리에누스는 발칸 반도에서 반란을 일으킨 잉게누우스를 토벌할 때 차남 살로니누스를 포스투무스와 실바누스에게 맡겼다. 그러던 260년 여름, 포스투무스와 실바누스는 약탈을 한껏 벌인 뒤 본거지로 귀환하던 유퉁기족(Juthungi)을 공격하여 크게 격파하고 전리품을 확보했다. 두 사람은 곧 전리품 분배 문제를 놓고 다투었다. 포스투무스는 부하들에게 전리품을 나눠줘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실바누스는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게 원칙이라며, 일단 갈리에누스의 차남 살로니누스에게 넘긴 뒤 살로니누스가 원주인에게 돌려주는 책무를 수행하게 하자고 주장했다.

병사들은 목숨 걸고 싸워서 쟁취한 전리품을 내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그들은 곧 반란을 일으켰고 포스투무스를 지휘관으로 추대했다. 포스투무스는 즉시 살로니누스와 실바누스가 숨은 쾰른을 포위했고, 쾰른 수비대는 두 사람을 넘겨줬다. 포스투무스는 두 사람을 곧바로 사형에 처한 뒤, 갈리아 제국의 건국을 선포하고 황위에 올랐다. 갈리아 제국에 소속된 지역은 게르마니아 인페리오르와 게르마니아 수페리오르 속주, 라이티아, 루그두넨시스 남부와 나르보넨시스를 제외한 갈리아 전역이었고, 261년에는 포스투무스가 직접 브리타니아 섬을 찾아가 설득하여 충성을 받아냈으며, 히스파니아 속주도 뒤따라 가담했다. 포스투무스는 트레베로룸(트리어)를 수도로 정하고 원로원을 개별적으로 신설했으며, 집정관 2명을 선출하고 원형극장을 세우고, 프라이토리아니까지 신설했다.

갈리에누스는 차남이 살해되고 갈리아 제국이 선포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당장 반란을 진압하러 가기엔 여건이 너무 좋지 않았다. 알레만니족이 라인강 하류 방어선을 돌파하여 이탈리아로 물밀듯이 진격했고, 록솔라니 족이 발칸 반도에 쳐들어오고 레갈리아누스가 이에 맞서고자 황제를 자칭했으며, 동방에서는 부친 발레리아누스사산 왕조의 왕중왕 샤푸르 1세에게 붙잡혔고, 풀비우스 마크리아누스가 잔여 로마군을 수습하여 사산 왕조군을 격퇴한 뒤 자신의 두 아들 소 마크리아누스퀴에투스를 황제로 추대했다. 여기에 이집트 총독 루키우스 무시우스 아이밀리아누스까지 마크리아누스의 반란에 동참했다. 갈리에누스는 이 난리를 당장 수습해야 했기에, 갈리아 쪽을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포스투무스는 이 틈을 타 갈리아에서의 지배권을 공고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로마로 쳐들어가지는 않고, 붕괴 직전에 있던 갈리아의 피해복구에 공을 들였으며, 라인 강 전초기지를 요새화하고 프랑크족과 알레만니족의 침입을 물리쳤다. 그는 이를 통해 병사와 주민들의 확고한 지지를 얻고, 261년 12월 10일 게르마니쿠스 막시무스의 칭호를 얻어냈다.

265년, 갈리에누스는 군대를 일으켜 갈리아로 쳐들어갔다. 포스투무스는 이에 맞서 어느 알려지지 않은 도시에 들어가 항전했다. 갈리에누스는 도시를 포위하고 맹공격을 퍼부었지만, 도중에 화살에 맞아 심각한 부상을 입고 어쩔 수 없이 이탈리아로 철군했다. 265년 말 포스투무스가 주조한 승리를 기념하는 특별주화가 출토되기도 했다. 이후 갈리에누스는 갈리아 제국을 일단 용인해주기로 하고 포스투무스가 이탈리아로 공격하지 않고 갈리아에 쳐들어온 게르만족을 대신 격퇴하는 조건하에 그가 갈리아 제국 황제를 칭하는 것을 묵인했다. 포스투무스는 이 조건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268년 갈리에누스의 기병대 지휘관 아우레올루스가 자신을 포스투무스의 대리인으로 칭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포스투무스에게 지원을 요청했던 것으로 보이나, 포스투무스는 그를 전혀 돕지 않았다.

포스투무스는 나름대로 제국을 잘 이끈 것으로 보이나, 268년경 주조된 동전의 질이 갑자기 안 좋아진 것을 보면 경제 사정이 안 좋아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심지어 데키우스 시기에 제조된 2 세스테르티우스화를 녹이지도 않고 자기 얼굴도장을 망치로 내리쳐서 갈리아 제국 통화로 쓰기까지 했다.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심각한 기근과 역병이 발생했거나 로마로 진격하지 않는 그에 대한 부하들의 반발이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권력을 확고히 했다. 268년 말에 10년 임기를 축하하는 의미가 담긴 기념 주화를 발행하였고, 269년 1월 1일 다섯 번째 집정관에 취임했다.

269년 초, 모군티아쿰(지금의 마인츠)에서 라엘리아누스가 반란을 일으켰다. 라엘리아누스의 직위가 무엇이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서 확실하지 않으나, 게르마니아 수페리오르 사령관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포스투무스는 즉시 모군티아쿰을 공략하고 라엘리아누스를 붙잡아 처형했다. 그러나 모군티아쿰을 약탈하려는 부하들을 막았다가, 격분한 그들에게 피살되었다. 포스투무스를 살해한 부하들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마리우스를 갈리아 제국의 새 황제로 선출했다.

[1] 오늘날 독일 디셴(Dies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