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23 17:43:56

평화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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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없어진 은행 및 예금취급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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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은행 | 대한민국의 비은행예금취급기관 | 각 기관의 코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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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和銀行
Peace Bank of Korea
은행 코드 83
SWIFT 코드 PBOKKRSE
상장 시장 코스닥 시장
종목 코드 022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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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고 정다운 평화은행

1. 개요2. 역사3. 여담4. 역대 은행장5. 자회사6. 노동조합

[clearfix]

1. 개요

1992년부터 2001년까지 있었던 시중은행.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주도해서 설립한 은행이다. 설립 목적은 근로자 금융지원. 홈페이지 도메인은 'www.pbk.co.kr'[1]이었다. 본점 주소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 126(역삼동 823-21) 대공빌딩이었다.

2. 역사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 당시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는 노동계 표를 의식해 공약으로 '노동자를 위한 금융기구 설립'을 내걸었다. 1991년 한국노총 금융노련을 주축으로 '노동금융'을 세워 준비 과정을 거쳐 1992년 11월 평화은행으로 정식 설립했다. 설립 초기 한국노총 측은 자본금 3천억 원을 목표로 했으나 일반 근로자들의 참여가 부족하여 국민은행, 포항종합제철 등 당시 국영기업들 돈을 끌어들였다.

설립 초기부터 근로자 위주 소매상품을 주로 팔아 '은행 문턱을 낮췄다'는 평가를 받았고, 1993년 장외시장 등록 후 1994년 비자카드 업무를 개시했다. 같은 시기 세워진 대동, 동화, 동남은행보다 실적이 좋긴 했으나 대기업 여신이 늘면서 재무구조가 불안정해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부실이 심화되어 1998년 제1차 금융구조조정에서 퇴출 여부까지 검토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나, 자산이 부채보다 많은 데다 '근로자 은행은 없앨 순 없다'는 노동계의 측면지원으로 간신히 퇴출은 면했다.

그러나 1999년 대우그룹 해체 여파를 맞아 2000년 제2차 금융구조조정에서는 현대건설반강제로 출자전환했던 게 부실화되어 지분을 감자당했고, 2001년 고려산업개발 부도 및 현대건설 유동성 위기에 휘말려 정부 주도로 한빛은행 등 자회사들과 함께 우리금융그룹에 편입됐으나, 타 계열 은행들과 달리 유일하게 정부와 맺은 경영개선 약정을 준수치 못해 2002년 1월에 한빛은행과 합병[2]했으며, 4개월 후 우리은행으로 행명이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3. 여담

  • 당시 한국주택은행만 취급할 수 있었던 국민주택기금 대출을 근로자주택마련대출이라는 이름으로 시중은행 최초로 취급했었다. 이 상품은 국민주택기금 대출이지만, 출시 초창기에는 한국주택은행은 취급하지 못했다.
  • 지점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었고 그나마도 점포망이 많이 부족했던 터라 제휴를 통해 우체국 금융창구에서도 사용할 수 있었고, 2000년 가을부터는 뱅크라인통장도 취급했다. 그래서 평화은행에서 발행한 뱅크라인통장은 모든 지방은행뿐만 아니라 우체국에서도 거래가 가능했다. 나름대로 거의 전국을 커버 가능한 통장이었던 셈.
  • 존재감이 미미했던 것과 달리 1992년 개점 당시 은행권 최초로 서명 거래 제도를 도입했으며, 이것이 모든 은행으로 확산되었다. 이 은행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거래를 하려면 무조건 도장 거래를 해야 했었다. 또한 평화비자카드신용카드에 사용자의 사진을 넣어 주는 서비스를 시행했다.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추구한다고 평화비자카드 광고를 직행좌석버스에만 집행하기도 했다.
  • ATM병맛 수준이었는데, 역삼동 본점 영업부를 포함한 전국 모든 지점에 입금 가능한 기기가 단 1대도 없고 죄다 출금/이체 전용이었던 것. 이게 한빛은행과 통합된 2002년까지도 마찬가지였는데, 이 무렵에는 지방은행조차도 입금 가능한 기기가 지점당 1대쯤은 있었다.

4. 역대 은행장

  • 박종대 (1992~1998)
  • 박태규 (1998~1999)
  • 김경우 (1999~2001)
  • 한기영 직무대행 (2001)
  • 황석희 (2001~2002)

5. 자회사

  • 넥스비텍: 2000년 삼성SDS와 출자해 세운 전산관리업체. 2002년 한빛은행에 합병되고 일부 인력이 우리금융정보시스템에 옮겨진 후에도 존속되다가 2008년 폐업됨.

6. 노동조합



[1] 지금은 'www.edupang.com'으로 포워딩된다.[2] 엄밀하게는 은행업을 한빛은행에 양도한 것이며, 평화은행 법인은 한빛은행의 신용카드 사업을 양수해 우리신용카드로 개칭, 신용카드사로 영업하다 카드대란으로 인해 2003년 12월 최종적으로 우리은행에 합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