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34694><colcolor=#ffffff> 타락파워전사 | |
타락파워전사 육성자 권순국(오른쪽)과 메이플스토리 4대 디렉터 오한별(왼쪽) | |
프로필 | |
본명 | 권순국 |
출생 | 1955년 ([age(1955-12-31)]~[age(1955-01-01)]세) |
광주광역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본관 | 안동 권씨 |
가족관계 | 아내, 아들 권홍인(1994년생)[1], 조카 장영재[2] |
소속 월드 | 카이니 → 루나[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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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타락파워전사 캐릭터[4] |
2. 소개
빅뱅 전 메이플스토리를 플레이해 봤다면 거의 모두가 아는 유저이며 게임 서비스 개시 이래 최초의 만렙이라는 점에서 이후의 만렙 달성자들과 차원이 다른 상징성을 가진다. 당시 만렙은 200이었고 대다수의 유저에게 이후 확장된 만렙보다 당시의 200레벨이 달성하기 더 어렵다고 여겨진다. 게다가 만렙 달성 당시 이미 나이가 53세로 게이머 중에서는 상당한 고령이었다.
타락파워전사(200) 이후 베베(250)[5], 오늘만징징(275)[6]으로 계보가 이어지지만 이 중에서도 타락파워전사의 인지도는 단연 독보적이다.[7] 일반 언론에까지 오르내리면서 메이플스토리를 넘어 한 게임에서 최초로 만렙을 찍은 유저의 대명사가 되는 등 메이플스토리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중년 이상에까지 이름이 널리 알려진 유일한 유저다.
패치에 패치를 거듭하며 레벨업이 쉬워지고 각종 정보력과 현질을 동원하고 버닝 이벤트를 활용하면 초고속으로 200레벨까지, 하이퍼버닝 이벤트를 활용하면 260레벨까지 육성이 가능한 요즘과 달리 타락파워전사가 만렙을 달성한 시기의 메이플스토리는 극악 수준의 레벨업 난이도로 유명했다.[8] 주력기의 대부분이 단일 공격기였는데 몬스터가 지금과는 비교가 힘들 정도로 느리고 적게 생성되어 단일 공격기로 사냥하는 게 정석이었으니 레벨업도 엄청나게 느렸다. 2차 전직도 최소 몇 달을 투자해야 가능했고 50레벨 정도면 어디 가서 알아주는 고렙이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스킬 구성도 얼기설기 되어 있어 타락파워전사의 직업인 히어로는 3차 전직까지 1차 전직의 주력 공격기인 '파워 스트라이크', '슬래시 블러스트'를 주로 사용하였을 정도였다. 4차 전직에 주 공격기로 '브랜디쉬'가 추가되긴 했지만 4차 전직 패치는 2006년 12월, 타락파워전사의 만렙 달성은 2007년 4월로 브랜디쉬로 사냥한 기간은 몹시 짧다. 거기다 파워 스트라이크는 1:1 기술, 슬래시 블러스트는 다수기였다지만 지금 메이플의 다수기와 비교하면 범위가 창피할 정도로 짧은 편이었다. 3차 이후 해당 기술들 사용 뒤 '파이널 어택'이 나가 한 대 더 때릴 수 있었다지만, 그래봤자 두 대.
당장 위아래에 서술되어 있다시피 그가 캐릭터 생성 후 만렙 달성까지 무려 3년 8개월이 걸렸고 이게 사상 최초라는 것만 봐도 얼마나 레벨업이 힘들었는지를 방증한다. 단적으로 레벨 200 달성 직전에야 추가된 4차 전직 주력기였던 브랜디쉬는 이후 성능이 상향[9]된 채로 2차 주력기로 내려갈 정도로 지금과 비교하면 얄팍하기 짝이 없던 스킬인데 이마저도 얼마 써 보지도 못했다. 이런 환경에서 레벨 200을 달성한 그의 위상은 가히 압도적이다. 공식에서도 그를 특별 대우해 주는 것이 납득되는 업적이다.
심지어 고령의 나이에 걸맞게 대단히 느긋한 성격에 매너가 좋기로 유명했다. RPG 게임 랭커들이 웬만하면 논란 한두 개쯤은 달고 있고 개중에는 복귀가 힘들 정도의 큰 사건에 휘말린 유저도 있는데 타락파워전사는 오랜 플레이 역사에도 불구하고 다른 유저와의 트러블조차 없었다. 그러다보니 올드 메이플 유저들 사이에서 거의 신성불가침에 준하는 위상을 가질 수 있었다.
메이플스토리를 시작한 동기는 당시 9살이었던 아들이 해킹을 당해 게임 상에서 구걸하는 모습을 보고 직접 나서게 됐다고 한다. 아들을 도와주기 위해 캐릭터를 대신 키워 주다가 본인이 게임에 더 빠져 버렸고 본인의 캐릭터처럼 계속 키워나갔다. 이 때문에 계정의 명의는 아들의 명의로 되어 있다.
2.1. 최초 200레벨 달성
당시 현장. 2층의 레벨업한 캐릭터가 타락파워전사다.[10] |
200레벨 달성을 기념하여 변경된 공식 홈페이지의 배너 |
인터뷰에 따르면 본인 혼자 한 것이 아니고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키운 게 비결이라고 밝혔는데 보통 RPG 게임 랭커들이 레벨업 경쟁을 위해 돈을 주고 부주까지 구해가며 레벨을 올렸던 당시의 추세[11]를 감안하면 한 가족이 키워서 최초 만렙을 달성한 것도 대단한 업적이다.
이것이 더욱 돋보이는 이유는 빅뱅 업데이트 이전에 달성했다는 점인데, 실제로 250레벨을 최초로 달성한 세글자는 당시(언리미티드 직후 시기) 250 찍는 난이도가 빅뱅 전 200 찍는 난이도보다 쉬웠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그는 만렙이 확장된 지 약 1년 만인 2014년 2월 22일에 250을 찍었지만 빅뱅 전 200 찍기는 3년 반 이상이 기본이었다.[12]
게다가 이 당시는 필요 경험치에 대비해 몬스터들의 경험치가 지나치게 낮았고[13], 데미지도 약했던데다[14] 사실상 전 직업이 플점을 쓰고 광역기를 남발하는 현재와 달리 플점은 3차 전직을 한 표창도적의 전유물에 공격기들의 범위도 처참하기 그지없었다.[15] 때문에 고렙 접근성이 순차적으로 계속 낮아진 현재와 달리[16], 이 당시 학생들 사이에선 레벨 4~50만 되어도 고렙이라고 칭송받고, 3차 전직을 했다면 학교 전체에서 유명인 취급을 받던 때였다.
보스 컨텐츠 역시 자쿰은 30명이 레이드 공대를 짜서 들어가서 한 시간 내내 때려야지 겨우 격파가 되는 수준이었고, 혼테일은 2006년 9월 27일 출시 이후 약 1년 동안 격파가 되지 않았을 정도로 난공불락의 난이도였다.[17]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07년에 추가된 4차 전직의 직업 밸런스 중 히어로, 보마, 나로가 TOP 3로 꼽히며 190레벨대부터 과열경쟁에서 치고 올라오는 데 박차를 가하기 유리한 조건이었고 소속 길드인 JrFIM의 탄탄한 조직 기반으로 노쿨제네 비숍과의 높은 연계율로 타 경쟁자에게 추월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18]
타락파워전사가 카이니에서만 알려졌을 시절 신전 벽에서 공격스킬만 난사하는 모습이 목격돼서 매크로가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다. 그 시절엔 매크로가 대부분 좋지 못해서 점프를 하지 못하고 벽에 박기 일쑤였기 때문에 당시 카이니 유저들 중에는 매크로라고 믿는 유저들도 있었는데 타락파워전사는 조카가 잘 몰라서 작동이 서툴렀을 뿐이라고 해명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고 추후 타락파워전사가 고렙이 되었을 때 매크로로 의심되는 행위를 한 적이 없어서 조카가 매크로를 썼거나 정말 조작 미숙으로 인한 해프닝이라는 의견도 있다. 현재는 플레이포럼 폐쇄 사건으로 글이 전부 지워져서 타락파워전사의 매크로 의심 글도, 해명 고확 스샷도 찾기 힘들다.
제니스의 랭커 유저 '번개의신vv'와 마지막까지 경쟁했으며, 2007년 4월 7일에 타락파워전사가 먼저 만렙을 찍음으로써 승리했다. 이후 다들 번개의신vv가 2위가 되리라 예상했으나, 뜬금없이 치고 온 옐론드(現 엘리시움)의 'lkc1031'이 2007년 5월 5일 2위를 차지하는 반전을 일으켰고, 번신은 그로부터 약 2주 뒤인 5월 22일에 만렙을 찍으며 3위가 되었다.
타락파워전사가 만렙을 찍은 지 1년이 지난 2008년에는 3개월만 열심히 노력하면 레벨 200을 찍을 수 있을 정도로 레벨업에 들어가는 노력이 매우 많이 줄어들었는데, 아란으로 200레벨을 처음 달성한 'Kara'는 2009년 7월 9일에 캐릭터를 생성하여 2009년 9월 14일 만렙을 달성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2.2. 만렙 확장 이후 은퇴
만렙 달성 이후엔 메이플스토리를 잘 하진 않으나 가끔씩 들어와서 고확으로 인사를 했다. 타락파워전사가 있었을 때 카이니에서는 타락파워전사가 한 번 접속했다 하면 그를 보기 위해 수많은 유저들이 몰려왔다. 카이니 서버에서 가장 큰 패밀리도 타락파워전사 패밀리였다.이렇게 그는 최초 만렙 달성의 위상을 떨쳤으나 2013년 1월 31일 250으로 만렙이 확장되면서 그 입지가 애매해졌고 많은 유저들이 타락파워전사의 랭킹 문제에 대해서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개인 사정으로 인해 결국 214레벨에서 랭커 도전을 포기했고 3위에 있었던 랭킹은 그 후로 끝없이 떨어졌다.[20] 타락파워전사가 만렙 확장 이후 힘을 못 쓰게 된 건 과거에 비해 레벨업이 매우 쉬워진 반면 직업별 사냥 성능의 차이가 크게 벌어졌고 메이플을 주력으로 삼는 유저들의 광렙 전략을 따라가기 벅찼다는 것이 주 요인으로 꼽힌다.
과거와 달라진 메이플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빠른 레벨업 방법을 수없이 알고 있고 아예 캐릭터를 키우는 것이 직업이 되어버린 새로운 시대의 네임드들을 상대로 아무리 타락파워전사라고 해도 따라잡기 매우 어려웠을 것이고 그의 직업인 히어로도 레드에서 모험가 직업이 개편되기 전에는 최악의 사냥 성능을 보였던 직업으로 악명높았다.[21] 그렇게 시대가 변하면서 빅뱅 이전의 괴물은 빅뱅 이후의 괴물을 이기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사냥에 대한 이야기를 추가로 하자면, 히어로는 빅뱅 이후 타락파워전사가 주력으로 사용하던 슬래시 블러스트/파워 스트라이크→파이널 어택과 브랜디쉬보다는 나은 '브레이브 슬래시' 라는 기술을 받았다. 그러나, 그 사냥기조차도 타 직업에 비하면 처참하기 짝이 없었으며, 250레벨 확장 이후 첫 만렙을 달성한 세글자의 '베베' (제논)은 십수마리씩 광역으로 쓸어담는 '퍼지롭 매스커레이드: 폭격'과 키다운 연사 사냥/보스기 '블레이드 댄싱'으로 사냥을 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메이플스토리 측도 타락파워전사의 기록을 인지하는 만큼 2013년 1월 31일 이전까지의 랭킹을 메이플스토리 아카이브에 기록하여 공개하고 있다. 이후에도 만렙이 확장될 때마다 랭킹이 재분류되고 있다.
2018년 7월 3일 오후 1시 루나서버 16채널에 등장해 유저들을 반겼으나, 본인이 아닌 JrFIM의 길드마스터였다.[22] 해당 링크 5차 전직을 마쳤다고 하며 간간히 접속해서 육성할 것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타락파워전사 본인이 아니면 아무 의미 없다는 반응과 그래도 닉네임 자체만으로 포스가 느껴진다는 반응이 공존했다. 이후에도 간간히 메이플 접속을 하고 있다.
2023년 기준으로 242레벨이다.
3. 인지도
특히 빅뱅 이후 메이플이 큰 변화를 거치면서 인격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 유저들이 재력만을 앞세워 네임드가 되고 일반 유저들의 눈이 찌푸려지는 행동을 하거나 극성 유저들의 사건사고도 끊이지 않다 보니 유저들 사이에서 빅뱅 후의 네임드에 대한 반감이 상대적으로 커지면서 인격적으로도 큰 문제점이 없었으며 점점 과거의 잔재들이 사라져가는 메이플스토리에서 그나마 과거의 추억을 회상할 수 있도록 하는 타락파워전사의 평가는 계속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 타락파워전사가 활동할 때 유저 대부분은 지금보다 게임에 돈과 시간을 투자하기 어려운 학생들이었고 사냥터, 스킬, 아이템 등 각종 인게임 정보와 공략을 습득할 수 있는 경로도 매우 제한적이었다. 레벨 달성이 아닌 만렙과 메인 스토리 완료를 기본으로 깔고 부가적인 아이템 파밍과 던전 클리어 등을 통한 스펙업이 주류가 된 현재의 RPG 게임과는 달리 당시에는 바람의 나라, 메이플스토리처럼 레벨링 노가다를 요구하는 게임들이 대부분이었고 기본적인 게임의 난이도와 편의성 또한 지금과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극악했기에 어지간한 RPG 게임들에서 고렙 유저들에 대한 동경과 환상은 지금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었다.[24] 이러한 추억보정도 가미된데다 과거의 유저들이 성인이 되면서 아버지 뻘인 타락파워전사의 수 년에 걸친 근성에 존경심을 표하는 것도 크다.
게다가 이 시절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가 게임에 돈을 쓰거나 온라인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든지 자녀가 학업에 전념하지 않고 오락에 빠져 있다며 매우 부정적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지만 타락파워전사는 게임상에서 구걸을 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게임을 제지하거나 혼내기는 커녕 오히려 아들을 존중해 주었고 이내 온 가족이 합심하여 아들의 캐릭터를 키워 갔다. 즉 소중한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부성애가 키워 낸 캐릭터가 바로 이 타락파워전사다. 이러한 모습 덕분에 타락파워전사는 만렙을 달성하고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메이플스토리의 영원한 전설로서 인정받고 있다.
타락파워전사는 만렙 확장 이후 수많은 스틸러들에게 스틸을 당했지만 예전 비숍보다는 낫다고 평했다. 크고 작은 사건이 많은 세글자나 만렙까지 공정한 경쟁을 원한다며 메이플 인벤에 부주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쓴 글을 올렸으나 정작 본인도 부주를 채용한 것이 들통나니 해당 글을 바로 삭제한 오늘만징징같은 역대 랭킹 1위들과는 확연한 차이점이다.
이렇게 빅뱅 전후 네임드 유저들에 대한 평가가 갈리는 데는 메이플의 주요 컨텐츠가 크게 달라진 점도 있다. 필드 파티 사냥과 파티 퀘스트, 30인 보스 원정대가 주를 이루던 빅뱅 전의 메이플에서 비매너 행위를 한다는 것은 곧 파티 사냥에서 배제당하는, 즉 레벨업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레벨이 높으면 신용할 수 있었지만 빅뱅 후에는 파워 인플레이션의 효과로 점차 솔로잉, 던전형 컨텐츠가 주를 이루게 되고 캐릭터의 스펙업조차 캐시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면서 일반 월드와 리부트 월드 간 차이 논란과 같은 유저 간의 갈등도 비일비재 해지는 등 점점 초창기 시절의 향수와 이타적인 분위기가 사라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4. NPC 타락파워전사
<colcolor=#fff,#2d2f34> 프로필 | |
<colbgcolor=#f8ca00> 성별 | <colbgcolor=#fff,#2d2f34> 남성 |
종족 | 인간 |
직업 | 히어로 |
거주지 | 페리온 전사의 성전 |
표기 | |
GMS | FangBlade[25] |
MSEA | Dragon Warrior[26] |
JMS | 堕落パワー戦士 |
CMS | 堕落狂战士 |
TMS | 龍騎士 |
저는 레벨 200을 달성한 타락파워전사입니다.
페리온의 전사의 성전에 NPC로 있다. 다른 만렙 유저들은 전부 만렙 전용 맵에만 있고 말을 걸어도 딱히 이벤트는 생기지 않는 반면 타락파워전사는 전직 NPC 바로 옆에 있어서 보기도 쉽고 퀘스트에 관여할 정도로 격이 다른 대우를 받는다.[27]에반의 라이딩 퀘스트 때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데 만렙 전용 라이딩인 레드 드라코가 드래곤이기 때문이다. 에반이 미르를 타기 위해 타락파워전사를 찾아오는 이유가 이것이다.
패치로 만렙이 확장될 때마다 기존 만렙 달성자들의 분신은 모두 전당에서 삭제되었지만, 타락파워전사의 분신만은 여전히 남아있다. 상술했듯 '최초 만렙 달성'이라는 상징성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그대로 남기는 것으로 추정.
5. 여담
- 동시대 유명 헌터 유저 '아시안느'와도 친분이 있었다. 타락파워전사 이전 랭킹 1위였던 유저들[28] 중 한 명으로, 게임 초창기부터 플레이하여 꾸준히 1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타락파워전사와 맞먹거나 더 높은 인지도를 가졌던 유저다. 나이는 당시 20대로 알려졌으며, 50대인 타락파워전사를 '아버지'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다가 2006년경 갑자기 랭킹에서 사라졌는데 이와 관련되어 온갖 근거없는 뜬소문이 떠돌자, 타락파워전사가 본인 대신 홈페이지 서버 게시판에 그가 현실게이트로 떠난 해명글을 써주기도 했다.[29]
- 당시에 히어로는 두손검이 두손도끼보다 완벽한 상위호환 성능이었는데 타락파워전사는 3차전직 때까지 90제 도끼인 '클로니안 액스'를 사용했다.[30] 두손도끼와 두손둔기는 베기 발생 시에는 데미지가 약간 더 높았지만, 그걸 상쇄할 정도로 찌르기 시 데미지가 너무 약한데다가 공격속도마저도 더 느렸기 때문에 두손검의 하위호환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클로니안 액스는 두손검과 공속이 동일한 도끼이기도 하고, 타파전 본인이 밝히기를 도끼가 워낙 싸서 지작 도끼를 한 번 껴본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4차전직이 나오자 타파전도 두손검으로 다시 갈아탔다.
- 2008년 ‘e스타즈 서울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10, 20대가 대다수인 와중에 50대였으니 단연 돋보였다.[31]
- 템페스트 당시 벼루의 기자간담회 영상에도 출연했지만 그림체가 그림체다 보니 이를 알아보는 유저는 거의 없었다.[32]
- 10주년 기념 페스티벌에선 오한별 개발실장에게 특별상을 받았다.
- 네이버 웹툰 호랭총각에서는 직접적인 언급은 아니지만 그의 가족들의 캐릭터 육성과정을 지켜본 걸로 추측되는 작가의 일화(유료화)가 있다.
- 한때 젤라비 피자하우스라는 피자집을 운영하기도 했는데 이후 퓨전 레스토랑으로 전향했지만 레스토랑 4층의 전세 문제를 시작으로 거주민들과의 마찰로 인해 문을 닫았다.
- 이스터 에그로 모험의 서 7장에서 파괴된 메이플 아일랜드의 초보자 NPC들 중에 그의 이름을 딴 암흑파워법사가 있다. 메이플 월드가 검은 마법사의 공격으로 초토화되자 하필 이 때 메이플 아일랜드에 도착한 다른 모험가들은 무슨 상황이냐며 당황하거나 이벤트냐고 현실도피를 하는 것에 반해 홀로 "강력한 무기만 있었다면..." 이러면서 상황을 똑바로 인지하고 분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 노멀 시그너스를 100회 잡으면 달성할 수 있는 업적 이름이 '타락파워여제'다. 특별한 사연이 있는 건 아니고 타락한 여제라는 컨셉에 맞춰 개그성 업적명을 지은 것이다.
- 그에 대한 정보는 메이플스토리의 TMI에 대해 다루는 해외 유튜브 영상이나 나무위키의 이 문서를 번역기를 돌리는 것 등을 통해 해외 유저들에게도 알려졌다. 링크
- 메이플스토리에서는 캐릭터 생성이나 일부 컨텐츠 이용 시 매크로 방지를 위해 문자 입력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문자는 메이플스토리 게임 리소스 내의 모든 이름값들 중에서 랜덤으로 추출해서 띄워주는 식이다. 타락파워전사도 위에서 볼 수 있듯 NPC로 존재하기 때문에 입력 문자로 아주 가끔 나타나는데 워낙 유저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상당한 이름이라 이렇게 뜨면 커뮤니티에 영접 인증글이 올라오곤 한다.
- 여담으로 캐시 코디 중에서 청모자가 제일 유명하다. 16주년 뉴트로 이벤트, 18주년 블루밍 이벤트, 20주년 메모리아 주년 이벤트 때 캐시샵에서 랜덤상자를 판매했는데 바로 사고 까면 교환불가이고 랜덤으로 청모자를 팔았다. 당시 가격은 200캐시.
- 27000일 이벤트 때(6000일) 타락파워전사와 대화해 볼 수 있었다. 예전의 그리움을 느낄 수 있냐며 레벨 범위 몬스터 200 마리를 잡아와 달라고 했다.
- 빅뱅 이전 메이플스토리와 그 극악한 렙업을 그대로 구현한 메이플랜드 출시 이후 그를 다시금 바라보게 된다는 반응이 많다.
- 200레벨 달성 당시 53세(1955년생)이다. 나이가 알려지기 전까지는 메이플 유저라서 어릴 것이라고 예상했던 사람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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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타락파워전사 계정의 본주다. 2013년에 인하대 정보통신공학부에 입학하였다.[2] 메이플스토리 10주년 기념 행사에 권순국, 권홍인과 함께 참석했다. 타락파워전사가 소속되어 있는 JrFIM 길드의 일원으로, 길드 정기모임을 통해 아내를 만나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고 한다.[3] 월드 통합으로 인한 소속 변경.[4] 타락파워전사의 당시 만렙 200을 찍은 코디이면서 페리온 전사의 성전에 있는 대표적인 코디다. 타락파워전사를 존경하는 유저들은 코디를 따라하거나 비슷하게 닉네임을 짓거나 경험치까지 맞추는 경우도 있다.[5] 과거 크로아 서버 당시.(글자네테리서,제논.) 현재는 루나 서버 카인 캐릭터 '페이커' 육성 중이다.[6] 3세대 만렙달성자인 오늘만징징 닉네임을 가졌던 유저는 현재 닉네임을 변경해서 만렙 달성 이후의 행방을 전혀 알 수가 없다. 이 유저는 당시 유저 수가 가장 적은 노바 서버 출신이다.[7] 그나마 275레벨 확장 이후에는 5차 전직으로 사냥이 더욱 수월해지고 아케인 리버에서 경험치가 높은 몬스터가 추가되며 레벨업의 장벽이 낮아졌기 때문에 경험치 7만대의 무기고에서 사냥을 해야했던 250레벨 최초 달성 정도가 비교적 인정받는 편이다.[8] 이는 3번째 만렙 달성자였던 번개의신vv가 2020년 2월 복귀하면서 다시금 주목받게 되었는데 대부분의 유저들이 경악할 정도로 엄청난 레벨업 속도를 보여주면서도 "경뿌 경쿠 그런거 없어도 옛날보다 훨씬 레벨업 빠른데?"라거나 "꼭 한방으로 사냥을 해야 돼?"라고 묻는 등 당시의 고레벨 랭커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사냥을 해 왔는지 몸소 증명하고 있다.[9] 현재는 최대 6명 공격이지만 초창기에는 3명이었으며 이마저도 스킬 레벨 1렙에는 1명으로 시작해서 마스터해야만 3명을 공격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10] 2007년 4월 7일 '아이언테일a'라는 유저가 촬영한 스크린샷. 당시 레벨업 장면을 촬영한 스크린샷은 총 6장이 남아 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하고 널리 퍼진 스크린샷이다(사실 정작 잘 찍힌 스크린샷은 따로 있다). 타락파워전사 본인이 당시 카이니 길드 카페에서 이 스크린샷을 자신의 이름으로 다시 게시하기도 했다. 한편 이때 기념 영상도 촬영되었으나 영상 사이트들이 폐쇄되면서 현존하지는 않는다.[11] 메이플스토리의 대리 게임은 2021년에 공식적으로 금지되었으며 이전까지는 랭커들이 방송 등에서 부주 얘기를 가끔 꺼내고 대리 게임을 컨텐츠로 즐길 정도로 공인되어 있었는데 리그 오브 레전드 같은 경쟁 게임과는 달리 타인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기 때문에 가능했다.[12] 참고로 세글자가 만렙을 찍었던 당시는 아케인 리버는 커녕 타락한 세계수와 헤이븐도 없었으며, 최종 사냥터가 미래의 문의 '무기고2'였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스타포스 필드도 없었다. 만렙에 가까운 유저들을 위한 고레벨 사냥터는 기계무덤이 최초이며 이전에는 몬스터의 레벨이 만렙과 한참 동떨어진 것이 당연했고 부실한 경험치는 몹을 많이 잡는 것으로 커버해서 레벨을 올렸다.[13] 보스가 아닌 몬스터의 최고 레벨은 T-스켈로스의 113이었다. 경험치 획득량을 보면 4차 초기엔 시간당 1000만도 꿈의 경험치였는데 199에서 200 찍는 데 필요한 경험치는 약 21억이었다.[14] 혼테일 격파 전 시즌 당시의 맥스 데미지는 199999가 최대였으며, 이 당시 스탯 공격력이 1만도 안 되는 유저들이 허다했다.[15] 이 당시 주력기들은 Y축은 100픽셀 정도에 X축도 200픽셀 언저리였다. 이 정도면 대략 캐릭터 사이즈에서 좌우로 2명의 캐릭터, 높이는 캐릭터 키의 반을 조금 넘는 정도다.[16] 2018년 여름 처음 출시된 테라 버닝으로 200 레벨 접근성이 상당히 완화되었고, 2022년 여름 출시된 하이퍼 버닝은 250 레벨의 접근성도 완화되었다. 여기에 2023년 여름 하이퍼 버닝이 260으로 상향 조정되고 200~260 레벨 구간의 요구 경험치도 대폭 삭감되면서 구구 만렙인 250레벨의 위상은 크게 낮아졌고, 구 만렙인 275레벨의 접근성 역시 상당히 낮아졌다.[17] 자쿰은 출시 4개월 만인 2005년 4월 베라 서버에서 최초로 격파되었고, 혼테일은 출시 11개월 만인 2007년 8월 9일 데메토스 서버(現 유니온)에서 최초로 격파되었다.[18] 브랜디쉬의 타격범위는 다크나이트의 버스터, 팔라딘의 블래스터나 차블에 비해 근소한 차이지만 당시로서는 무시하기 힘든 조작 여건을 만들 정도로 우월했고 화력마저 보스형 단일딜링으로 최상위 직업군의 70%에 달하는 딜링에 3마리 타겟을 보유했다. 가장 핵심은 혼테일 격파전까지 사실상 등장하지 않은 마스터리북에 주 화력 스킬인 브랜과 어콤이 포함되지 않았다.[19] 카루타 세트가 생기기 전 여제 세트가 유명했다. 당시 시그너스를 잡으려면 넘사벽이었다.[20] 이로 인해 한때 타락파워전사가 캐릭터를 삭제했다는 루머가 돈 적이 있었다.[21] 오히려 그 히어로로 한동안 랭커 자리를 유지했다는 것이 대단한 점이다.[22] 계정을 길드마스터에게 양도한 것으로 보인다.[23] 빅뱅 전 가이드북 중 하나인 퀘스트탐정의 저자이다. 복귀 이후에도 한동안 컨셉 유지를 위해 3차 전직인 허밋에 머물러 있다가 2023년 8월 말 드디어 나이트로드를 달았다.[24] 대표적으로 인게임에서 가이드북 필자 등 유명 고렙 유저가 뜨면 마을과 채팅창이 북적이거나 고렙 유저를 따라다니면서 너도 나도 고렙 스킬 한번 보여달라는 유저들이 많았던 것을 생각하면 된다. 다른 RPG 게임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특히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메이플스토리 같은 부분유료화 게임이 드물었고 바람의 나라 등 대다수의 RPG 게임이 정액제를 시행했기 때문에 계정비 결제 능력이 없는 아이들은 고렙은 고사하고 체험 레벨 한도까지만 육성하는 게 고작일 정도로 RPG 게임에 접근하기도 힘들었다.[25] 2008년 3월 14일 GMS 최초로 200레벨을 달성한 유저다. 아예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외형도 딴판이다.#[26] 이쪽도 마찬가지로 외형이 전혀 다르다. 외형은 페리온의 무기상인 리버와 비슷하게 생겼다. #[27] JMS에서는 堕落パワー戦士라는 이름으로 동일하게 존재하지만 GMS와 MSEA에서는 해당 국가의 200레벨 달성자로 캐릭터가 변경되어 있다. CMS와 TMS에서는 각각 타락광전사 / 용기사로 번역되었지만 캐릭터 이미지는 타락파워전사의 것이 아닌 별개의 것으로 쓴다.[28] 아시안느가 1위를 달리고 있을 때 타락파워전사는 5위권이었으며 이후 번개의신vv와 지발돈좀 등의 유저들이 1위를 거쳤다.[29] 20대 후반이 되면서 취업전선에 뛰어들게 되었는데 랭킹 1위에 대한 정신적 압박이 심해 자신의 캐릭터가 점점 랭킹이 밀려나는 추한 꼴을 보느니 그냥 최고 랭커인 모습 그대로 아예 캐릭터를 삭제했다고 한다.[30] 10% 2작, 60% 4작이다. 고렙 두손검에 이렇게 작이 됐다면 부르는 것이 값이었을 것이다.[31] 저 10대에 카트황제 문호준 선수가 있었다.[32] 자세히 잘보면 털모자와 얼굴장식에 단풍잎 장식을 하고 있는 게 과거 타락파워전사의 코디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