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각사(銀閣寺)에 대한 내용은 긴카쿠지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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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한국어 | 고대 교토의 역사 기념물 |
영어 | Historic Monuments of Ancient Kyoto (Kyoto, Uji and Otsu Cities) | |
일본어 | 古都京都の文化財 (京都市、宇治市、大津市) | |
프랑스어 | Monuments historiques de l'ancienne Kyoto (villes de Kyoto, Uji et Otsu) | |
국가·위치 | 일본 교토부 교토시 | |
등재유형 | 문화유산 | |
등재연도 | 1994년 | |
등재기준 | (ii),[1] (iv)[2] | |
지정번호 | 688 | |
홈페이지 |
[clearfix]
1. 개요
로쿠온지([ruby(鹿, ruby=ろく)][ruby(苑, ruby=おん)][ruby(寺, ruby=じ)], 녹원사), 또는 통칭 킨카쿠지([ruby(金, ruby=きん)][ruby(閣, ruby=かく)][ruby(寺, ruby=じ)], 금각사)는 일본 교토의 사찰이다. 선종 불교의 일파인 임제종 쇼코쿠지(相国寺, 상국사)의 탑두사원(塔頭寺院) 가운데 하나로, 사리전인 금각(金閣)이 유명하다.2. 명칭
절의 원래 이름은 로쿠온지(鹿苑寺, 녹원사)이지만, 금각(킨카쿠)이라고도 불리는 사리전의 존재로 인해 킨카쿠지(金閣寺, 금각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킨카쿠지 입구의 기둥 푯말에는 '로쿠온지츠쇼킨카쿠지(鹿苑寺通称金閣寺, 녹원사 통칭 금각사)'라고 하여 각각이 정식 명칭과 통칭임을 밝히고 있다.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긴카쿠지'가 되어야 하나, 이렇게 표기하면 같은 도시에 있는 긴카쿠지(銀閣寺, 은각사)와 구별할 수 없어서 거의 쓰이지 않는다.[3] 이러한 점에서 국내에 들어온 번역서에는 킨카쿠지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긴카쿠지는 킨카쿠지와 이름이 대응되는 곳이나, 이 곳 역시 정식 명칭은 히가시야마지쇼지(東山慈照寺, 동산자조사)인 것을 통칭으로 긴카쿠지라 부르는 것이며, 킨카쿠지와 달리 은박이 덮인 전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외래어 표기법 그 자체는 원어의 음소 구분을 모두 보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도 않고 원어의 복원을 목적으로 하지도 않기에 이것을 가지고 표기법을 뭐라고 할 수는 없다.[4] 국립국어원은 긴카쿠지(金閣寺), 긴카쿠지(銀閣寺)처럼 한자를 병기해 구분하는 방식을 권장하는 듯하다. 외래어 표기법 제4장 제2절 제3항 및 이 질문과 답변 참고. 한국어 위키백과에서는 정식 명칭인 '로쿠온지'와 '지쇼지'로 표기하는 식으로 구분한다. 그러나 국립국어원과 한국어 위키백과가 지향하는 것과는 달리 일본 본토에서는 아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글 표기를 '킨카쿠지' 식으로 표기하고 있는 듯하다. 증거 원어 발음에 근접한 표기의 예
3. 역사
본래 무로마치 막부의 제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義満)가 별장으로 건립한 건물이었으나, 그의 사후 절이 되었다. 1467년 발생한 오닌의 난(応仁の乱) 당시 교토의 다른 건물과 함께 불탔으며, 이후 재건되었다.과거부터 교토를 대표하는 문화재 중 하나로 국보의 지위를 갖고 있었으나, 1950년 견습 승려의 방화에 의해 사리전이 소실되었다. 현재의 누각은 1955년 복원하였는데, 국보의 지위는 회복하지 못했고, 중요문화재로 남아 있다. 1994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3.1. 방화와 복원
1950년 7월 2일 새벽, 교토시 소방국에 킨카쿠지로부터의 화재 신고가 접수되었으며, 즉시 소방대가 출동했지만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리전이 완전히 불타고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당시 사리전에는 화재 경보기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경보기의 배터리가 방전되어 방화 시점에서 경보가 울리지 않았고, 결국 46평에 달하는 사리전 전체와 내부에 비치되어 있던 관음보살상, 아미타여래상 및 불경과 장식이 전소하였다. 이 과정에서 사리전과 별도로 국보 지정되어 있던 아시카가 요시미츠의 상도 소실되었다. 인명 피해는 없었다.
경찰은 사건 직후 승려들의 신원을 조사하였는데, 1929년생으로 킨카쿠지의 견습 승려였던 하야시 쇼켄(林承賢)이 부재중이었으므로 그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색하였다. 그는 잠시 뒤 근처 야산에서 체포되었는데, 체포 당시 진정제를 먹고 할복한 채 쓰러져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곧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받았다. 이후 심문에서 "세상을 놀라게 하고 싶었다", "사회에 복수하고 싶었다" 등을 고백하는 등 조현병의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고 한다. 다만 미시마 유키오는 후에 이를 '금각에 대한 미적 갈망', '불교적 이상에의 동경과 관광지가 된 킨카쿠지의 모순적인 모습에 대한 반감' 등으로 분석한 바 있다. 근본적으로는 전후 일본의 혼란과, 종교적 가치관 등을 포함한 당시 일본 사회의 사상적 갈등을 배경으로 지목하는 학자도 있다.
화재 직후의 킨카쿠지 사리전. |
방화 이후 킨카쿠지는 메이지 시대 수리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상세 도면을 토대로 1955년 복원되었다. 상기했듯 금각은 오닌의 난 당시에 한 차례 소실된 적이 있는데, 문헌 조사 결과 초기의 금각이 더 화려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때문에 '창건 당시의 킨카쿠지를 재현하자'는 의도 아래 직전의 금박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인 20kg 가량의 금이 복원에 사용되었으며, 통상 0.1 마이크로미터 크기였던 금박은 5배의 두께인 0.5 마이크로미터로 커졌다.
처음에는 너무 복원을 서두르는 바람에 공개 직후부터 금박이 박리되는 등 문제가 제기되었고, "금각이 아니라 흑각(黑閣)이다"라는 오명까지 등장했다. 이에 문부성 문화청은 1980년대 2차 복원을, 1990년대에 3차 복원을 통해 금각을 재차 개조하였다. 이 과정에서 접착제를 사용해 두꺼운 금박을 영구적으로 고정시키는 화학적 처리가 동원되었다.
오늘날 일본 고건축계에서는 복원하면서 너무 금칠을 두텁게 하였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옛 금각과 비교해볼 때 고즈넉한 맛을 상실했다."는 지적이다. 복원이라고는 하지만 예전 사진과 비교하면 재창조 수준에 가까우며, (사진에서는 잘 안 보이지만) 빗물을 유도하는 관도 더 길고 화려한 것으로 바뀌었다. 화재를 방지하기 위한 스프링클러 장비도 설치되는 등 여러 요소에서 현대적인 건축공학이 적용되었다.
화재 이전의 킨카쿠지 사리전(1886년 촬영, 컬러 복원). |
복원된 현재의 킨카쿠지 사리전. 금박을 어색할 정도로 과도하게 덮었다는 비판이 있다. |
일본의 소설가이자 사상가인 미시마 유키오가 이 소실 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금각사》라는 소설을 쓴 바 있으며, 오늘날에도 이 작품은 일본 특유의 탐미주의, 유미주의적 작품의 대명사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5]
일각에서는 《금각사》의 방화 사건이 미시마의 극우적 천황 숭배 사상과 과격한 행동의 동기가 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4. 구성
- 사리전(금각)
금각의 원래 용도는 화려한 외관에 가려 그다지 부각되지 않는데, 이 건물은 사찰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처의 사리를 보관하는 사리전이다. 금각은 3가지 건축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건물이다. 1층은 헤이안 시대의 공가 귀족 주거 양식인 신덴즈쿠리, 2층은 무가 저택의 주거 양식인 부케즈쿠리, 3층은 선종 사찰의 양식인 부츠덴즈쿠리를 따랐다.[6] 불상은 2층에 안치되어 있다. 층마다 이름도 달리하는데 1층은 호스이인(법수원法水院), 2층은 조온도(조음동潮音堂), 3층은 쿠쿄조(구경정究竟頂)라고 한다. 소실 전에도 1649년과 1904~1906년 대규모 보수 공사를 거쳤다. 금각의 내부와 사리는 일반인들에게 공개하지 않는다.
- 정원
정원 가운데 금각이 비치는 연못은 교코지(鏡湖池)라고 한다. 금각사가 세워진 이래 거의 변하지 않고 자리를 지킨 이 연못은 인공섬과 바위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것들 모두가 모여 우주를 상징한다. 인공섬 아시하라지마(葦原島)는 일본의 옛 이름 아시하라에서 따온 것이다. 바위들 중 하타케야마이시(畠山石)와 아카마츠이시(赤松石)에는 바위를 기증한 유력 가문의 이름이 남아 있기도 하다. 아름다운 연못임은 틀림없지만 금각이 워낙 압도적이다보니 '그냥 물웅덩이'로만 보이는 것이 함정.
- 부동당
현재의 건물은 우키타 히데이에가 재건한 것을 1962년 해체 수리 후 복원한 것이다. 이름에 걸맞게 본존으로 부동명왕을 모시고 있다. 오른쪽에는 경내를 빠져나가는 출구가 있다.
5. 관광
경주시와 같이 일본 학생들이 수학여행지로 많이 찾는 교토에서 기요미즈데라(清水寺: 청수사)와 함께 거의 필수적인 방문 코스로 여겨지고 있는 곳이다.입장료는 고교생 이상은 500엔, 미만은 300엔이며, 영업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이다. 은각사(긴카쿠지)와 마찬가지로 부적을 입장권으로 준다.
금각사는 금박이 덮인 화려한 누각 하나가 볼 것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절의 면적은 크지만 정원 자체는 오히려 수수한 누각을 가진 은각사 쪽이 볼 만하다.[7]
경내 출구에는 오미쿠지가 있다.
다른 사찰과 다르게 제비를 자판기에서 뽑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며, 한글로 쓰인 오미쿠지도 있다. 투입 금액은 100엔이다.
5.1. 찾아가는 길
교토에서는 버스를 타는 것이 여러모로 편하다.교토역에서 갈 때는 정류장 B구역에서 교토 시영 버스 101번이나 205번을 타고 킨카쿠지미치(金閣寺道)까지 가서 내리면 된다. 12번, 59번, 102번, 204번도 같은 곳에서 정차한다.
JR 사가노선을 타면, 엔마치역에서 내려 시영 버스 204번이나 205번으로 환승하면 된다. 표지판 혹은 사람들을 따라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킨카쿠지 정문이 보인다. 그대로 걸어 들어가면 그 유명한 금각이 보이기 직전에 매표소가 있다.
입구에는 유료 주차장이 존재하여 주차가 가능하다.
6. 매체에서의 등장
6.1. 문학
- 미시마 유키오는 금각사 방화 사건을 토대로 소설 <금각사>를 썼다. 작가 본인의 정치 성향과 별개로 이 소설은 20세기 일본 문학의 걸작으로 꼽힌다. <가면의 고백> <우국>과 더불어 미시마의 대표작으로, 만약 미시마가 할복자살을 하지 않았다면 이 소설에 대한 공로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말도 나올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8] 독서 마이너 갤러리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과 함께 가장 자주 언급되는 일본 소설이다.
6.2. 영화
6.3. 만화, 라이트노벨 및 애니메이션
교토를 대표하는 문화재로 외견이 아름답고 유명하다 보니,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등지에서 상당히 자주 나온다. 대개 학원물 만화에서 수학여행 답사지로 자주 등장한다.
케이온!에서 주인공 일행이 수학여행 중에 들린다. 간판에 한글로 '킨카쿠지' 표기가 있다.
- 럭키스타에서 수학여행지로 등장한다.
- 사카타 킨토키가 사용하는 목도의 손잡이에 한자로 새겨졌다.
- 신 근육맨에 카라스맨이 말하기론 오래전 골드맨이 지상으로 나와 "골든 캐슬"이라는 도장을 만들어 거기서 악마초인을 길러내 훈련을 시켰다고 했지만 정의초인과의 대립이 깊어져 도장을 떠나고 말았는데 그곳이 바로 킨카쿠지(금각사)이다. 참고로 그의 동생인 실버맨도 "실버 캐슬"이라는 도장을 만들어 정의초인을 길러냈는데 그곳이 바로 긴카쿠지(은각사)이다.
- 내가 인기 없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희들 탓이야!에서 교토 수학여행지로 등장하는데 토모코가 요시다에게 불량한 학생은 성인식에 번쩍한 옷을 입거나 졸업식에 황금색 자수 놓은 옷같은 이미지가 있어서 금을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다가 멱살을 잡혔다.
- 닌자 슬레이어에서는 헤이안 시대의 일본을 지배하던 반신적 존재인 닌자가 모탈의 귀족들이 이끄는 군대와 벌인 전쟁에서 패한 뒤 쇠퇴하자 이후 먼 미래에 찾아올 카츠 완소와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킨카쿠 템플에서 집단 하라키리 의식을 통해 육체를 버리고 닌자 소울로 화하여 킨카쿠 템플 안에 머물게 된다. 하라키리 의식을 행하지 않은 리얼 닌자들도 몇몇이 존재했다.
6.4. 게임
- 온라인 FPS 게임 서든어택의 골든 아이 맵은 킨카쿠지를 모델로 하였다.
- 에로게인 아자나엘의 중요한 키워드가 되기도 하였다.
-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1에서 아시아 문화권의 사원은 킨카쿠지가 모델이다.[9]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3: 아시아 왕조에서는 일본의 불가사의 중 하나로 나온다.
- 동방 프로젝트 플레이어들에게는 그야말로 입에 거품을 물 만한 트라우마의 이름이다. 동방문화첩에서 호라이산 카구야가 사용하는 스펠 신난제「금각사의 천정 한 겹」의 초월적인 난이도 때문에 웬만한 폐인급 플레이어조차 상당수가 최소 1000번 정도의 트라이를 해야 할 정도. 심지어 이 스펠은 더블 스포일러 ~ 동방문화첩에서 코메이지 사토리의 상기 스펠 「어슴프레 떠오르는 금각사」로 재활용되기까지 했다. 이 때문에 "사나이는 닥치고 금각사"라는 태그까지 있다.
- 철권: Blood Vengeance에서도 나온다. 샤오유와 알리사가 서로 미시마 재벌과 G사의 스파이라는 걸 알고는 여기서 대판 싸우는데, 그 와중에 샤오유가 불리해지자 금각사 안으로 도망가서 알리사가 쫓아가는 와중에 양팔 전기톱으로 마구 헤집어놓았다. 그리고 이 둘의 승패가 갈린 후에는 안나와 G사 군인들이 아예 폭파시켜버렸다.
[1]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2]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3] 한글판 구글맵에서 검색할 때는 한글로 '금각사' 혹은 '긴카쿠지'로 검색하면 모두 금각사가 나오나 '은각사'는 나오지 않는다. 모바일에서 구글맵의 내비게이션 기능을 사용해서 은각사로 갈 사람은 '銀閣寺'로 검색해야 한다.[4] 외래어 표기법/일본어/논쟁 문서의 '한국어와의 음성적 대응보다는 일본어 자체의 음운 체계를 고려해야 한다.' 문단 참조.[5] 학원사판 《금각사》 에 수록된 《우국》이라는 소설은 한국의 유명 작가 신경숙이 표절하여 논란이 일기도 했다.[6] 이는 당대의 지배계층인 공가, 무가, 승려 세 세력을 전부 장악하겠다는 요시미츠의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요시미츠는 승려들에 대한 통제력 강화를 위해 출가하기도 했다. (다만 요시미츠의 출가는 신하의 신분으로 명나라에게 일본국왕으로 책봉받기가 어렵다는 문제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금각사의 구조는 공가의 조정보다 무가의 막부가 상위에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그 막부를 지배하는 것은 출가한 요시미츠 본인이라는 점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7] 그래서인지 일본인들은 금각사보다 은각사를 더 좋아한다고 한다.[8] 대체역사 소설 <비명을 찾아서>에서는 1986년 진갑이 된 미시마 유키오가 노벨문학상을 수여받는 장면이 나온다. 아무래도 일본제국이 유지된만큼 일본군도 유지되어서 할복할만한 명분이 없었던 듯.[9] 은각사일 수도 있긴 한데, 대중적인 인지도로는 금각사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