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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森 清治(모리 키요하루)[1] |
예명 | 清春(키요하루) |
국적 | 일본 |
출생 | 1968년 10월 30일 일본 기후현 타지미시 |
가족 | 부모님, 부인 및 슬하 2녀[2] |
직업 | 싱어송라이터, 디자이너 |
장르 | 일본 록, 펑크 록, 포크, 팝 록, 하드 록, 발라드 |
데뷔 | 1989년 밴드 SUS-4[3] |
솔로 데뷔 | 2003년 10월 30일 DVD 싱글 《オーロラ》 |
소속 | Fullface(2003~2006) mid field(2007~2017) loyal code(2017~) GLAM ADDICTION(대표)[4] |
소속 밴드 | 黒夢(1991~2015) SADS(1999~2019) |
좋아하는 음식 | 딸기, 새우, 게, 문어, 젤리, 아이스크림, 삼계탕, 불고기 |
싫어하는 음식 | 매운 것[5], 오이, 수박, 멜론, 양파, 참외, 당근 |
레이블 | UNIVERSIAL J(2003~2004) 콜롬비아 뮤직 엔터테인먼트(2004) tokyo lips pro(2005) bouncy records(2005~2007) Rock Chipper Records(2007~2009) 에이벡스(2009~2014) 워너 뮤직 재팬(2016) TRIAD(2017~2018) 포니 캐년(2019~) |
링크 |
[Clearfix]
1. 개요
독특한 비브라토로 극한의 처절함을 표현하는 일본 록의 자유로운 저니맨
일본의 가수.2. 생애
2.1. 성장기
기후 현 모리 가문의 3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모리 건축 판금(森建築板金)이라는 지역에서 유명한 회사를 운영하는 건축 기업가로 명망이 높았으며, 키요하루를 엄하게 길러서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이 아주 컸다고 한다. 때문에 키요하루는 어머니와 함께 있으려고 하는 경향을 보였고, 어떤 것을 상담하려고 할 때마다 어머니를 주로 찾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다고 한다. 이후 조용히 학창시절을 보내다가, 아버지의 가업을 잇기 위해서 기후현립 타지미 공업 고등학교 디자인과에 진학한다. 키요하루는 이 학교에 들어간 이유 중, '장발이 허용된다'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고.이 당시 키요하루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인해 학창 시절에 이지메를 당하던 학생이었는데, 어느날 이지메를 하던 학생이 놀려먹을 생각으로 "야 키요하루 노래 불러봐" 라고 시켜봤는데, 키요하루는 아무 생각없이 노래를 불렀지만 노래를 굉장히 잘해서 이지메시키던 학생들은 키요하루의 재능에 감탄했다고 한다. 그 친구들은 가수를 할 것을 권유하며 더이상 이지메를 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는 당시 일본의 유명 펑크락 밴드였던 THE WILLARD의 교내 카피밴드에 가입, 학교 축제에서 첫 무대를 선 것으로 음악과 인연을 맺는다.
2.2. 청년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아버지의 가업을 잇기 위해, 아버지의 지인이 운영하던 계단 난간 제작 공장에 취직한다. 하숙집에서 2년 동안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을 하면서 일을 차근 차근 배워나가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음악 활동을 이어온 키요하루는 결국 음악에 전념하기 위해서 '뮤지션으로 장래가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면, 가업을 잇는다'는 조건을 걸고 아버지의 회사에 들어온 지 1년만에 회사를 박차고 나간다.이후 아이치현 나고야시에 있는 라이브하우스 MUSIC FARM에서 보컬리스트 생활을 하다가 밴드 SUS-4의 보컬리스트로 발탁되면서 본격적인 비주얼계 아티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는 MUSIC FARM의 운영자가 당시 자신의 라이브하우스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을 중심으로 제작한 컴필레이션 앨범 MUSIC FARM OMNIBUS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고. 이 당시에 SUS-4에는 갓 고등학생이었던 히토키[6]가 로디로 뛰고 있었는데, 그러다 밴드가 해체되자, 1990년 11월에 SUS-4의 기타리스트 마미야 카오루와 히토키를 함께 밴드 GARNET을 결성하며 인디 씬에서 일약 유명인사로 발탁된다. 이 시기에 GARNET의 정식 베이시스트로 히토키를 중용하도록 밴드의 리더였던 마미야에게 제안시켜 이를 성사시켰고, 어려운 와중 속에서도 히토키를 다정하게 챙기는 등, 이 시기에 히토키와 가장 친한 소울메이트가 된다.
한편 이 당시 밴드의 자금난을 타개하기 위해서 키요하루가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는데, 대표적으로 러브호텔과 비디오 대여점, 비디오 카메라의 부품 공장에서 갖가지 일을 했다고 한다. 특히 러브호텔에서 일은 쿠로유메 시절 초기에도 이어나갔는데, 호텔에서 일을 할 때 침대 시트를 몰래 빼와(...) 무대 장식에 사용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hyde는 인쇄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남는 종이로 밴드 전단지를 알뜰히 인쇄했던 것을 생각하면 유사점이 있는 듯.
이후 GARNET이 마미야 카오루의 독선으로 이상하게 흘러가자, 키요하루는 히토키와 드러머 에이키[7]와 함께 밴드에서 탈퇴를 감행했고, GERACEE의 기타리스트였던 스즈키 신과 함께 쿠로유메를 결성한다. 이 시기부터의 일대기는 쿠로유메 항목 참조.
2.3. 90년대 이후
1999년 충격의 쿠로유메 해체 이후에는 쿠로유메의 서포트 멤버들과 밴드 SADS를 결성, 데뷔 싱글 TOKYO가 쿠로유메 해체와 관련된 가사로 화제를 모으며 큰 인기를 끈다. 이후 2003년에 SADS도 해체하자, UNIVERSIAL J와 레이블 계약을 맺고 DVD 싱글 '아우라'로 솔로 데뷔하고, 자신의 전공인 디자인을 살려서, 패션 디자인 브랜드를 런칭하고 활발하게 지내고 있다.3. 솔로 활동(2003~)
3.1. 데뷔 초(2003~2009)
전술했듯이 2003년 10월 30일, 자신의 생일날 UNIVERSIAL J에서 발매한 DVD 싱글 '아우라'를 통해서 솔로 활동에 포문을 끊었다. 이 때 키요하루의 나이는 35살. 늦깎이 데뷔였던 셈이다.[8] 아무튼 2003년 12월에는 '제 3의 문'이라는 콘서트를 도쿄와 오사카에서 개최, 미공개 곡들을 대거 공연하면서 솔로 활동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이후 2004년 2월 9일에는 쿠로유메 데뷔 10주년이 되는 날 싱글 'Emily'를 발표해 정식 데뷔를 마치고, 4월 9일엔 연달아서 정규앨범 Poetry를 발매한다. 이후 키요하루는 수록곡 비행선을 싱글로 내놓고자 했지만 UNIVERSIAL J의 고위 임원들이 수식성을 이유로 난색을 표했고, 이때문에 갈등이 있었다고 전해진다.2004년은 비교적 조용한 한해였는데, 데이비드 보위가 방일 콘서트를 가질 때 오프닝 게스트로 깜짝 출연해 공연을 가지기도 했다. 이후 콜롬비아를 거쳐서 2005년 tokyo lips pro와 계약을 맺은 키요하루는 커리어 상 바쁜 한 해를 보내는데, 싱글들 중 명곡으로 꼽히는 LAST SONG-最後の詞(최후의 노래)-를 발매하면서 정규 2집 Mellow를 발매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간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2005년 12월에는 정규 3집 '官能ブギー(관능적 부기)'를 발매해, '1년에 정규앨범을 1장만 낸다'는 자신의 제작 속도를 뛰어넘는 작업량을 보여주었다. 키요하루도 이 시기는 '전례없는 속도'였다고 회고할 정도.
이후 월간 라이브 등의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던 키요하루는 2008년, 메이저 데뷔 15주년을 맞아서 여러 기획들을 선보이는데, 특히 기존에 실시하던 월간 라이브의 구성을 확 바꾸었다. 우선 밴드 사운드에 걸맞은 드럼과 베이스를 제거하고, 바이올린과 첼로, 신시사이저를 대신 투입했고, 도입 배경 영상을 라이브하는 배경으로 사용하는 등, 비주얼계 스타일의 악기 세트에서 많이 변화한 구성을 선보였다. 이것은 '노래는 원점에 서서'라는 키요하루의 음악적 자세에서 기인되었다고. 키요하루는 곡 수는 적지만 새로운 구성에서 노래하고자 하니 평소보다 피곤함을 많이 느낀다고 할 정도로 높은 난이도의 공연이 있었다.
이후 2008년 10월 29일 30대 마지막이 되어서 낸 싱글 'loved'를 발매, 그 다음날 있었던 라이브에서 쿠로유메 하룻밤 한정 부활 라이브 실시를 전격 발표, 여론의 화제를 부른다. 이는 2007년부터 히토키가 팬들을 위한 자리를 가져야 할 것을 줄기차게 주장하다가 키요하루가 '한번만'이라는 조건을 내걸고 극적으로 성사된 것이라는 후문이 있다. 이듬해 2009년 1월 28일에는 쿠로유메 해체 10년이 되기 바로 전날을 기념해 쿠로유메 시절의 곡들을 셀프 리메이크 한 'MEDELY' 앨범을 에이벡스에서 발매하고, 동시에 거액의 오퍼에 에이벡스로 이적했음을 발표했다. 그 다음날에는 메이저 데뷔 15주년을 기념한 공연과 함께 쿠로유메를 해산한다. 셀프 트리뷰트 앨범 MEDELY는 주간 차트 5위에 오를 정도로 큰 화제성을 부른다.
3.2. 2010~현재
에이벡스에서 이적한 이후 발표한 싱글 LAW'S가 바이오하자드 다크사이드 크로니클즈의 CM송으로 타이업 되면서 인기를 끌었고, 주간차트에서 셀프 트리뷰트를 제외한 키요하루의 솔로 앨범 가운데 가장 높은 6위를 기록한다. 이후 에이벡스에서의 오퍼와 히토키와의 관계가 극적으로 회복되면서 쿠로유메 재결성, SADS의 재결성이 이뤄졌다. 때문에 2012년 이후 솔로활동은 한동안 중단되었다가, 2016년이 되어서야 재개될 수 있었다.2017년에는 스기조의 솔로데뷔 20주년 셀프 커버 앨범 'ONENESS M'의 타이틀곡 'Voice'의 객원 보컬로 참여하였다. 2019년에는 1월에 SADS의 히트곡 '忘却の空 (망각의 하늘)'을 포함해 12곡을 수록한 커버앨범 'Covers'가 6월 발매를 예정한다는 발표를 하면서 포니 캐년으로 레이블을 옮겼다. 그리고 DEAD END의 보컬 MORRIE의 새 앨범의 3번 트랙 'Moonlight Baby'에 코러스로 참여하였다. 6월 21일에는 스기조의 유튜브 라이브를 자신의 바인 Babylon 롯본기 점에서 개최하였다. 7월 셋째주에는 50세 기념 콘서트의 DVD/블루레이 세트가 각각 오리콘차트 7/8위를 기록해 건재한 실적을 보였다.
2019년 8월에는 MORRIE와 함께 미국 뉴욕에 건너가 소극장에서 원정 라이브를 합동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출국 며칠 전에는 전설적인 펑크 락 밴드 'GASTPUNK'의 공연을 hyde와 보러 가는 인증샷을 남겨 양 팬을 훈훈하게 했는데, 이 때 함께 찍은 사진에서 hyde가 담배를 물고 사진을 찍어 큰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9]
2019년 9월 3일에는 X-JAPAN의 Yoshiki가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에 출연하였다. 그 다음날인 4일에는 제작 문제로 발매가 지연되었던 커버앨범 'Covers'가 발매되었다. 10월에는 요시키가 진행한 콘서트에서 긴급 참전해 콘서트장을 뜨겁게 달궜다. 2020년 3월에는 새 정규앨범 'Japanese Menu'를 발매할 예정이며, 발매와 동시에 일본 전국투어도 있을 예정이다. 그밖에도 SUGIZO와 같이 촬영한 사진집이 발매되었다. 참고로 Japanese Menu에 수록된 'Survival Of Vision'은 무한의 주인 -IMMORTAL-의 주제가로 타이업되었다.
4. 보컬리스트로서
헤비메탈과 메인스트림 씬의 보컬들의 창법에 영향을 많이 받은 정도(正道)계열 보컬들과는 다른 변칙적인 스타일 때문에 호불호가 갈린다.[10] 이때문에 매니아들의 비주얼계 보컬들간 비교에서 저평가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성량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는 대표적인데, T.M.Revolution(니시카와 타카노리)와 이나즈마 락 페스티벌에서 쿠로유메의 '소년'[11]을 부를 때, 그것이 두드러졌다. 이를 유추할 수 있는 원인 중 하나로는 흡연이 있을 수 있는데, 큰 규모의 라이브에서는 거의 하지 않지만, 쿠로유메 시절이었던 9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도 공연장에서 심심치 않게 담배를 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노래 도중에 간주가 나오면 시도때도 없이(!) 담배를 피우고 질러대는 것을 보면 목이 성할 지 걱정이 될 정도.그러나 폭발적인 샤우팅과 전 음역대에 걸쳐서 나타나는 섬세한 비브라토로 대표되는 유니크한 보컬 스타일은 일본 비주얼계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의 가창력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그 독창성만큼은 인정하고 있다. 이것들은 그의 악곡에서 주로 나타나는 처절하고 극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2000년대 이후 라이브를 중심으로 활동을 하면서 그 특징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솔로데뷔 초기 발표곡 중 명곡으로 평가받는 '비행선'의 경우, 10분이 넘는 러닝 타임 동안 키요하루의 처절한 음색이 쉴 새 없이 들려올 정도. 또 키요하루의 보컬이 매니아들에게 큰 지지를 받는 것은, 이러한 보컬 스타일을 통해서 타인의 곡을 커버할 때,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소화력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X-JAPAN의 hide 사후 발매되었던 추모앨범 Hide Tribute에서 커버한 'Beauty & Stupid'는 비주얼계 리스너들에게 대 호평을 받았으며, 나카모리 아키나의 노래 'TATOO'또한 아키나의 팬들에게 원곡을 초월한 커버였다는 호평을 받았다. 여기에 곡들을무리없이 소화할 수 있는 라이브 능력은 비주얼계의 유명 보컬들에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정도다. 솔로 활동 당시 무려 9시간 동안 쉬지 않고 69곡을 선보인 건 대표적.
5. 가족
부모님은 현재도 기후 현에서 계시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후 1998년에는 아내와 결혼하여 슬하에 2녀를 낳는데, 반항아 이미지가 강한 키요하루는 의외로 부부금슬이 매우 좋다고 한다. 아내와는 쿠로유메 데뷔 전부터 키요하루와 동거했을 정도였는데, 술집에 호스티스로 나가면서 뒷바라지를 정성껏 해주었을 정도로 키요하루를 사랑했다고. 장녀 유우키는 전술했듯 타카하시 미나미의 대 팬이라서, 키요하루가 타카미나의 사인과 선물을 갖다주었을 때 집안을 반 광란(...) 상태로 만들었다고 한다.6. 대인관계
30년 넘게 비주얼계 씬에서 활동해온 입지전적의 인물들 중 하나이다 보니, 상당히 많은 아티스트들과 친분이 있다. 그중 특히 LUNA SEA의 SUGIZO, 라르크 앙 시엘의 멤버 전원과는 아주 친밀한 관계인 편. 자신이 존경하는 DEAD END의 MORRIE의 트리뷰트 앨범에 참여하거나, 정규앨범에 참여하는 등의 친분을 자랑하기도 하였다. 또 상술했듯이 딸이 다카하시 미나미의 광팬이다 보니, 그녀가 MC로 나오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Mujack'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친분을 쌓아, 자신의 패션 브랜드에서 제작한 모자나 액세서리를 선물해주거나 하는 등 여러 접점을 만들었다.그 외에는 기타리스트 Miyavi, MERRY의 가라 등이 존경하는 선배로 들고 있다. 그 중 SID의 마오는 키요하루의 열성적인 팬으로 잘 알려져있다.
7. 여담
- 정통 락 음악 아티스트들이 힙합 장르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처럼, 그도 일본 힙합에 대해서 '돼지가 염불 외우는 것'(...)이라며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바 있었다.
- 2017년 있었던 라르크 앙 시엘의 TETSUYA와의 니코니코 동화 생방송에서는, GLAY의 데뷔 당시를 회상하며 갑자기 나타난 느낌이었다며 이야기 한 바 있었다. 각트는 더 갑자기 나타난 느낌이었다(...)라며 회고하기도.
- 레인지로버 벨라의 오너이다. 젊었을 적에는 혼다 시빅을 타다가, 쿠로유메로 큰 돈을 벌어들이자 재규어를 몰기도 하였다.
-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흰색의 강아지를 기르는데, 상당히 좋아하고 있는 듯 하다. 그의 인스타그램에서 이 강아지는 자주 등장하는데, 뿐만 아니라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뜬금없이 강아지 사진과 함께 하트만 딸랑 올려놓는(...) 등, 평소 이미지와의 갭에 팬들 사이에서도 제법 귀엽다는 반응이 많이 올라온다.
[1] もり きよはる. 간혹가다 '세이지'로 읽는 경우가 있어 적잖이 당황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2] 첫째 딸 유우키는 1998년생이라고 한다. AKB48의 멤버였던 다카하시 미나미의 광팬이라고. 둘째 딸은 2001년생인데 상당히 패셔니스트다.[3] 활동은 고교 시절 선배와 결성한 Double Bed를 통해서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했다.[4] 키요하루가 런칭한 셀렉트샵 프랜차이즈. 산하에 Moonage Devilment, MENTAL 등의 패션 브랜드가 있다.[5] 이때문에 2003년 SADS의 Masquerade PV 촬영 차 방한했을 때 김치를 못 먹어서 고생(...)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6] 이전에는 狂犬炳(광견병)이라는 밴드에 몸을 담고 있었는데, 이 밴드의 보컬이 hyde였다는 소문이 있다.[7] 훗날 쿠로유메의 드러머가 된다.[8] 특히 쿠로유메의 멤버로 키요하루와 영혼의 메이트였던 히토키는 1997년에 솔로앨범 Franchise Music을 내놓으면서 25살에 솔로데뷔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의외의 부분. 다만 라르크의 hyde도 2년 전인 2001년에 32살에 솔로 데뷔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다지 이상할 것 까지는 아니긴 하다.[9] 보컬 트레이닝을 시작하면서 hyde는 상당히 금욕적인 일상생활을 시작했는데, 이 때 담배도 금연했었기 때문.[10] 여담이지만 본인은 DEAD END의 보컬 MORRIE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그 스타일을 자신만의 것으로 변화시킨 것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었다.[11] abingdon boys school로서 커버한 곡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