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렌스 페더 라스무센 Terrence Peder Rasmussen | |
출생 | 1943년 12월 23일,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
사망 | 2010년 12월 29일 (67세)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수감처 | 미국 캘리포니아 하이 데저트 주립 교도소 |
1. 개요
1970년대부터 서부 캘리포니아 주부터 동부 뉴 햄프셔 주까지 미국 전역을 떠돌며 최소 6명의 여성을 살해한 연쇄살인마. 자신의 신분을 속인 채 여성에게 접근한 뒤 살해하는 수법을 사용하여 카멜레온 킬러라는 별명을 얻었다. 테리 라스무센이라는 본명 외에도 밥 에반스, 고든 젠슨 등 여러 가명을 사용하며 수사망을 피하다가 2002년 전은순[1] 살인사건으로 검거되었다. 그 후 2010년 교도소에서 폐암으로 사망하나, 사망 후에도 지금까지 DNA 프로파일링 기법의 발달로 여러 건의 미제사건이 그의 범행으로 밝혀지고 있다.2. 생애
2.1. 젊은 시절
1969년 무렵의 테리 라스무센과 그의 딸
테리 라스무센은 1943년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 시에서 태어났다. 이후 애리조나주 피닉스로 이주하여 그 곳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하고 1961년 미 해군에 입대했다. 1967년 군대를 전역 후 1969년 첫 결혼을 했다. 그의 결혼생활은 처음부터 순탄치 못했는데, 부인과 네 명의 자녀를 지속적으로 폭행하였다. 결국 1975년 가중 폭행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고 첫 부인과 사실상 결별하기에 이른다.
이후 라스무센은 캘리포니아, 하와이, 텍사스, 오하이오, 버지니아, 오레건 등 미 전역을 떠돌며 생활하다 1970년대 후반 뉴햄프셔주 맨체스터에 밥 에반스라는 이름으로 정착한다. 특이한 점은 그가 이혼 후에도 여자와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이동하였다는 것이다. 첫 부인은 1976년 무렵 그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에도 그는 신원 미상의 여성[2]과 함께였다고 증언하였다. 그렇게 테리 라스무센은 밥 에반스라는 새 이름과 함께 전기/가스 관련 일을 하며 잘 살아가나 싶었는데..
2.2. 리사 방임 및 학대 사건
1985년 테리 라스무센은 뉴 햄프셔에서 다시 캘리포니아주 사이프러스로 이동했다. 그는 밥 에반스라는 이름을 버리고 커티스 킴벌이라는 새로운 가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4살짜리 딸 리사와 함께 움직였는데, 첫번째 결혼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딸을 방치하고 학대하였다. 결국 1985년 캘리포니아 주는 커티스라는 이름의 남자를 음주운전과 아동 학대 혐의로 고발하지만 법정 구속에는 실패한다.이듬해 테리 라스무센은 고든 젠슨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달고 캘리포니아주 스코츠 밸리(Scotts Valley)의 트레일러 파크[3]로 거처를 옮겼다. 어린 딸 리사와 함께 홀연히 나타난 고든 젠슨은 수수께끼로 가득 찬 사내였다. 이웃이 리사 어머니의 행방을 물으면 언제는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대답했다가, 다른 때는 지병을 앓다 사망했다는 식으로 일관되지 않은 답변을 했다. 뿐만 아니라 한창 부모의 돌봄이 필요한 5살배기 딸 리사를 방치하다시피 했기에 그는 빈민촌 안에서도 특별한 이목을 끌었다.
이를 보다 못한 이웃 주민 캐서린, 리처드 데커(Katherine & Richard Decker) 부부는 리사를 입양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입양 전 테스트 격으로 2주 간 임시로 리사를 맡기로 한다. 그런데 약속한 2주가 지나도 고든 젠슨은 아이를 찾으러 나타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리사의 행동에서 성적 학대를 받은 흔적이 나타났다. 아동 학대 정황을 의심한 데커 부부는 고든 젠슨을 아동 방치 및 학대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조사 결과 리사는 심각한 수준의 성적 학대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고, 경찰은 고든 젠슨이 살았던 트레일러를 감식한 결과 그가 작년에 아동 학대 혐의로 고발되었던 커티스 킴벌과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나 감식 결과가 나오기 전 커티스 킴벌은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다. 리사는 아동 보호 센터에 입양되었다.
사건으로부터 3년 뒤인 1989년 경찰은 제럴드 모커만이라는 남성을 절도 차량 운전 혐의로 입건하였다. 지문 감식 결과 그의 정체는 3년 전 종적을 감췄던 고든 젠슨이었다. 경찰은 아동 방치 및 학대 혐의로 그를 고소하였다. 경찰은 고든 젠슨 또는 커티스 킴벌이 리사와 친부 관계가 아닐 것이라고 추측하였으나 실제로 친자 검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4] 그 결과 고든 젠슨은 아동 방임 혐의만 인정되어 겨우 3년형을 받았고, 그나마도 1990년 가석방되어 형기의 절반만 살다가 나왔다. 그리고 가석방 2차 심사도 끝내지 않고 그는 또 다시 사라진다.
2.3. 전은순 살인사건
피해자 전은순의 생전 젊은 시절의 모습 | 피해자인 전은순의 30대 시절 사진 |
1999년 캘리포니아 주 리치몬드에서 화학자로 일하던 42세 여성 전은순[5]은 파티에서 래리 배너라는 남자를 소개받았다. 래리 배너의 정체 또한 테리 라스무센의 가짜 신분이었다. 고든 젠슨, 밥 에반스처럼 래리 배너도 신상과 행색이 매우 수상쩍었다. 항상 꾀죄죄한 차림에 소득 또한 거의 없었고, 과거에 대해서는 일절 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항상 말이 바뀌었다. 게다가 과거에 대한 물음을 받거나, 기분이 언짢아지면 폭력적으로 행동하였다. 래리 배너의 정체를 수상히 여긴 주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전은순은 래리 배너와 2001년 사실혼 관계를 맺는다. 다음 해에 전은순은 행방불명되었다.
전은순의 실종에 의문을 표한 지인들은 이를 경찰에 신고하였다. 경찰은 대대적인 수사를 펼쳤고, 래리 배너 또한 용의선상에 올랐다. 신분증, 운전면허증도 없이 임시 신분증 번호만 있던 래리 배너는 유력한 용의자로 간주되었다. 과거 리사 학대 및 방임 사건에서 지문감식에 며칠이 소요된다는 사실을 학습했던 래리 배너는 순순히 조사에 응했다. 하지만 2002년의 감식 기술은 80년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해있었고, 결국 래리 배너는 80년대 후반 차량 절도 및 아동 방임 사건으로 체포되었던 커티스 킴벌과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커티스 킴벌은 가석방 당시 심사를 마치지 않고 도주했기 때문에 체포 영장이 발부된 상태였다. 경찰이 래리 배너의 집을 수색한 결과 차고에서 1.5m 남짓의 고양이 모래 더미를 발견하였다. 그 안에서는 토막난 채 미라화된 전은순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단순 잡범이 흉악 살인범으로 밝혀진 것이다.
2.4. 검거 이후
2003년 테리 라스무센은 커티스 킴벌 명의로 15년 형을 선고받았다.[6] 커티스 킴벌의 과거 범죄 기록을 살펴보던 수사관은 그가 리사의 친부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고, 결국 리사 학대 사건이 일어난 지 18년만에 처음으로 리사에 대한 DNA 검사를 진행한다. 결과는 불일치였다. 리사는 아버지에게 학대받은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납치된 것이었다. 경찰은 추가적인 범죄의 낌새를 느끼고 리사의 친부모가 누구인지 추적하기 시작했다.경찰은 리사의 정체와 추가적인 범죄 혐의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추궁하였으나 테리 라스무센은 답하지 않았다. 이후 테리 라스무센은 2010년 폐암으로 인하여 교도소에서 사망했다.
3. 밝혀지는 여죄들
3.1. 베어 브룩 살인사건
3.1.1. 사건의 전개
사건 현장과 피해자의 생전 (추정) 모습들
1985년 11월 10일, 뉴햄프셔 베어 브룩(Bear Brook) 주립공원에서 사냥꾼이 이상한 드럼통을 발견했다. 그 드럼통은 숲에서 놀던 동네 아이들이 처음 찾아낸 것이었는데, 아무도 찾지 않는 숲 속 한가운데 부자연스럽게 서 있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드럼통을 넘어뜨리자 안에서 회백색 부패액이 흘러내렸고 그것이 썩은 우유라고 생각했던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몇달 뒤 사냥꾼이 넘어진 드럼통을 발견했고, 신고를 접수한 경찰이 뚜껑을 열자 비닐에 쌓인 시체가 발견되었다.
드럼통 안에서는 성인 여성과 9~11세로 추정되는 어린 여자아이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두 구의 시신은 나체로 토막난 채 발견되었으며, 둔탁한 흉기[7]로 폭행당하여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시신은 유기된 지 오래되어 사실상 백골상태였다. 그밖에 피해자의 신원을 추적할 만한 증거는 없었다. 경찰은 두 시신을 모녀관계로 보고 근방에서 실종된 모녀를 수색하였으나 성과는 없었다. 베어 브룩은 평화로운 시골 마을로 흉악 범죄가 자주 일어나는 곳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당시 인근에서 또 다른 살인사건이 일어나 수사력이 분산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베어 브룩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은 세간의 인식으로부터 사라져갔다.
시신 발견으로부터 15년이 지난 2000년 5월, 신입 경찰 수사관 존 코디는 장기미제 사건인 베어 브룩 사건을 맡게 되었다. 사건 현장을 거닐던 그는 첫 번째 사건 현장 100m 근방에서 두 번째 드럼통을 찾아냈다.[8] 첫번째 드럼통과 비슷한 시기에 유기된 것으로 보이는 두 번째 드럼통에서는 1~3세로 추정되는 여자아이의 시신 한 구와 2~4세로 추정되는 또 다른 여자아이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두 번째 드럼통의 시신 역시 첫 번째 드럼통의 시신처럼 둔기에 폭행당해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3.1.2. 시신들의 정체는 누구인가?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네 구의 시신 모두 나체 상태에서 유류품 없이 발견된데다가 유기된지 너무 오래되어 신원을 파악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시신에 남아있는 흔적과 드럼통만이 이들의 정체를 밝힐 유일한 단서였다. DNA 검사 결과 성인 여성과 가장 어린 아이, 가장 나이가 많은 아이는 모녀나 자매, 이모와 조카 관계로 추측되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2~4세 무렵의 여자아이는 나머지 세 구의 시신과 혈연관계가 전혀 없어 수사는 또 다시 오리무중에 빠졌다.당시 경찰이 제작했던 몽타주
그럼에도 경찰은 포기하지 않고 사건을 계속 추적하였다. 이들의 남은 골격을 토대로 몽타주를 제작하여 전국에 배포하였다. 2015년에는 고고학에서 쓰이는 방사성 동위원소 측정법을 통하여 이들이 미국에서 태어나고 거주했음을 밝혀냈다.[9] 그러나 이들의 신원을 정확히 밝히는 것은 요원할 것으로 보였는데..
3.1.3. 리사의 정체
베어 브룩 사건 피해자들의 신원은 전혀 연관이 없어보였던 리사 학대 및 방임사건을 통해 밝혀졌다.[10] 앞서 보았듯 리사는 테리 라스무센의 친자식이 아니었고, 경찰은 리사의 부모를 찾기 위해 십 년이 넘는 시간동안 수사를 멈추지 않았다.2013년에는 리사의 DNA정보를 DNA 가계도를 이용한 조상찾기 사이트에 등록했다. 혹시나 리사의 부모 또는 친인척의 DNA가 사이트에 올라올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2015년 뉴 햄프셔에 리사의 외할아버지가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DNA 가계도 사이트로부터 알아냈다. 캘리포니아 주 경찰은 뉴햄프셔 주 경찰과 공조하여 그녀의 외할아버지로부터 리사의 본명이 던 보댕(Dawn Beaudin)이며, 리사의 어머니는 데니스 보댕(Denise Beaudin)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데니스의 어릴 적 모습
리사의 외할아버지에 따르면, 리사의 어머니 데니스는 1981년 추수감사절 무렵 밥 에반스라는 이름의 남자친구와 6개월 난 딸과 함께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주지하다시피 이는 테리 라스무센의 가명 중 하나였다. 리사의 외할아버지는 테리 라스무센의 사진을 보자마자 밥 에반스와 같은 인물이라고 증언하였다. 리사와 달리 데니스의 행적은 실종 이후 묘연한 상태다.
한편 딸과 손녀가 실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데니스의 가족이 왜 실종신고를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범인이 고의적으로 피해자를 지인과 가족으로부터 멀어지게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 가능하다. 실제로 데니스 보댕은 실종 직전 가족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전은순 살인사건에서도 테리 라스무센과 혼인관계를 맺는 것에 대한 주변의 만류가 있었던 것을 보아 범인이 적극적으로 가족과 피해자를 이간질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그 결과 주변인들은 피해자가 실종되어도 가족의 반대를 피해 의절이나 사랑의 도피를 했거니 하고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11]
3.1.4. 34년만에 밝혀진 시신의 신원
테리 라스무센이 뉴 햄프셔 주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같은 주 안에서 벌어진 장기 미제 사건과 테리 라스무센의 연관성에 대한 조사가 벌여졌다. 베어 브룩 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시신은 완전히 부패하였으나 이들의 머리카락은 부패하지 않고 남아있었고,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테리 라스무센과 피해자의 머리카락의 DNA를 대조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그 결과 2016년 나머지 시신들과 혈연 관계가 없던 2~4살 무렵의 여자아이가 테리 라스무센의 친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테리 라스무센은 자신의 새 연인과 그 의붓 자식 뿐 아니라 자신의 친딸에게도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여 살해한 것이다. 31년간 밝혀지지 않았던 사건의 진상이 드디어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2017년에는 테리 라스무센의 정체를 확정지었다. 그 전까지 경찰은 테리 라스무센이 대외적으로 사용한 가명[12]을 기준으로 수사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뉴스 컨퍼런스를 통해 각 사건들간의 연관성을 추적하고, 진범의 DNA를 분석한 결과 진범의 본명을 밝혀낼 수 있었다. 뉴 햄프셔에서 데니스 보댕과 함께 사라진 밥 에반스, 캘리포니아에서 리사를 학대한 고든 젠슨, 커티스 킴벌, 제럴드 모커만, 전은순을 살해한 래리 배너는 모두 테리 라스무센이라는 동일한 인물이었다. 그는 1970년대 자신의 폭력 행위로 인해 이혼한 뒤, 이름을 바꾸어 여성에게 접근하는 방식으로 범행을 지속하였다.
나머지 시신들의 정체 또한 DNA 프로파일링을 통해 밝혀졌다. 2019년, 베어 브룩 사건에 관심을 가졌던 문헌연구가 레베카 히스(Rebekah Heath)는 1999년에 인터넷 게시판에서 올라온 사라진 자신의 이복여동생[13]를 찾는다는 글을 발견하였다. 자신의 이복여동생 사라 맥워터스를 찾는다며, 사라의 어머니인 마를리즈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에 외조부모에게 맡겨진 걸로 알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마를리즈의 형제들은 마를리즈의 생사를 모르며, 외조부모에게 맡겨지지도 않았다는 댓글을 남겼다. 이걸 본 레베카는 마를리즈와 그녀의 딸들이 베어 브룩의 희생자라고 추측했고, 곧 마를리즈가 라스무센과 결혼했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DNA검사 대조 결과 정말로 이들의 유전자가 일치하였다.
피해자의 실제 사진과 몽타주 비교
베어 브룩 사건의 피해자 중 성인 여성의 이름은 마를리즈 엘리자베스 허니처치(Marlyse Elizabeth Honeychurch), 큰 딸은 마리 엘리자베스 보언(Marie Elizabeth Vaughn), 가장 어린 작은 딸은 사라 린 맥워터스(Sarah Lynn McWaters)로 밝혀졌다. 코네티컷에서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마를리즈는 부모님의 이혼 후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였다. 1971년 첫 결혼을 하여 첫째 딸 마리를 낳았으나 몇년 지나지 않아 남편과 이혼하였다. 그 후 1977년 두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둘째 딸 사라를 낳았지만 이듬해 남편과 결별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테리 라스무센을 만났다. 1978년 마를리즈는 가족과의 추수감사절 모임에 두 딸과 테리 라스무센을 데리고 왔었다. 그런데 아주 사소한 일로 인하여 가족 간에 다툼이 벌어졌고, 마를리즈는 추수감사절이 끝나기도 전에 두 딸을 데리고 사라져 버렸다. 그 뒤로 가족들은 마를리즈를 영영 보지 못하였다가 40년이 넘은 뒤에서야 그 행방을 찾게 되었다. 기사(영문)
물론 애초에 사망한 지 오래되어 시신이 훼손되었기 때문에 사망년도를 확정할 수는 없다. 다만 마리와 사라의 사망 추정 나이와[14] 라스무센이 1981년 데니스에게 모습을 보인 점을 고려했을 때 적어도 1981년 전에 사망한 건 확실시되며 1980년 전후 즈음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3.2. 남은 의문점들
- 리사의 어머니 데니스 보댕은 어디로 사라졌나?
- 드럼통 안에서 발견된 둘째 아이의 친모는 누구인가?
- 그 밖에 테리 라스무센이 살해한 피해자가 더 존재하는가?
4. 특징
4.1. 카멜레온 살인마
테리 라스무센처럼 가명을 바꿔가며 수 차례의 범죄를 저지르는 자를 카멜레온 살인마라고 한다. 마치 주변 환경에 따라 피부색을 자유자재로 변화시키는 카멜레온과 비슷하다는 뜻이다. 테리 라스무센은 어린 자녀를 가진 싱글 여성을 노리고 이별의 상실감과 자녀 양육부담에 공감하는 방식으로 피해자의 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수법을 사용하였다. 동시에 피해자와 그 가족을 이간질하여 주위로부터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자신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피해자를 폭행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이후 범행을 저지른 자신의 신분을 갈아치우고 또 다른 피해자에게 접근하여 범행을 지속하였다.카멜레온 살인마는 행정상의 허점을 공략하여 신분을 갈아치우며 수사망을 회피한다. 강력한 주민등록제도가 있는 대한민국과 달리, 국토가 넓고 개인정보보호에 민감하여 사회보장번호나 운전면허증으로 신분을 증명하는 미국의 경우 신분 세탁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또한 주 경찰 간 수사 공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지역을 이동하여 신분을 세탁하는 경우 수사망을 벗어나기 쉽다.
다만 신원확인 및 수사기술의 발전으로 이러한 편법은 사용하기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테리 라스무센은 80년대 지문확인에 오랜 시일이 걸린다는 것을 학습하고, 수사에 응하는 듯 행동하다가 신분 확인 및 영장 발급 전에 잠적하고 신분을 세탁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2000년대 지문감식이 당일에 가능해지면서 테리 라스무센의 수법은 들통나고 말았다. 2020년대에는 스마트폰으로도 즉석 지문인증이 가능할정도로 기술이 발달하여 신분세탁이 사실상 불가능할것으로 보인다.
4.2. DNA 프로파일링 기법의 활용
사건의 실마리를 잡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 DNA 프로파일러 바바라 레이-벤터(Barbara Rae-Venter).
이 사건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점은 DNA 프로파일링 기법을 통해 수 십년이 지난 미제사건의 범인을 특정해냈다는 점이다. 비슷한 시기 캘리포니아 주에서 최소 12건 이상의 살인범죄를 저지른 오리지널 나이트 스토커 사건의 범인을 잡을 수 있었던 것도 DNA 대조를 통해 가해자 풀을 좁힐 수 있었던 덕분이다.
두 사건에서 DNA 프로파일링에 중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위 사진의 바바라 레이 벤터라는 사람이다. 전직 가족 사건 전문 변호사였던 그녀는 직업상 친자 검사를 자주 접했는데, DNA 대조를 통한 혈연관계 추적이 범죄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실제로 DNA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인하여 오래된 유전자 샘플만으로도 사건의 피해자 또는 가해자를 밝혀낼 수 있었다. 특히 시신의 신원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사건들에서도 친족과의 유전자 대조를 통해 사건의 핵심적인 실마리를 찾아냈고, 수 십년 동안 미궁에 빠졌던 미제사건을 여럿 해결할 수 있었다. DNA 프로파일링에 대한 기사(영문)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DNA 프로파일링을 통해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등 장기미제 사건들이 점점 해결되어가고 있는 추세다.
5. 기타
- DNA 프로파일링을 통해 테리 라스무센 사건과 오리지널 나이트 스토커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상세히 설명한 한국어 포스팅. 이 문서보다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
-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데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40년 이상 지난 사건의 증거물을 보관하고 이를 끊임없이 추적한 경찰의 태도였다. 만약 장기 미제 사건이라는 이유로 피해자의 유해 등 증거물을 버렸다면 DNA 프로파일링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 베어브룩 사건은 신원불명 시신의 정체가 밝혀진 몇 안되는 사건으로, 시신을 기반으로 한 몽타주와 실제 피해자의 사진을 비교할 수 있는 희귀한 사례이다.
- 범인 테리 라스무센은 첫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4명의 자식을 두었으며, 이들은 첫째 부인이 이혼한 덕분에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특히 첫째 딸 다이앤 클뢰퍼(Diane Kloepfer)는 유전자 대조를 위한 DNA샘플을 제공하고 어렸을 적 아버지에 대해 공개적으로 증언하는 등 수사에 큰 도움을 주었다. 베어 브룩 사건을 보고 "그 피해자들 대신 내가 당했을지도 모른다"[19]라는 심정으로 사건에 임했다고. 그 덕에 베어 브룩 사건 피해자 가족과도 좋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마를리즈와 마리의 장례식에도 참여하였다. 현재 다이앤은 베어 브룩 사건의 피해자 중 자신의 이복자매인 신원불명 여자아이의 가족을 찾고 있다. 다이앤의 쌍둥이인 안드레아는 자신의 이복자매인 소녀의 이름을 아니타 문으로 지었다.
- 흉악한 범죄행태와는 별개로 테리 라스무센은 여성들에게 잘 먹히는 타입이었던 듯 하다. 다이앤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의 어머니는 이혼 후에도 테리 라스무센이 여태껏 본 사람 중 가장 잘 생긴 남자라고 여러 번 말했다고 한다. 이혼 후에도 테리 라스무센은 여성 피해자들에게 쉽게 접근하였으며, 가족 모임에 참석할 정도로 피해 여성들의 신뢰를 얻었다.
- 테리 라스무센과 그의 희생자의 findagrave[20] 프로필
- 마를리즈 허니처치https://www.findagrave.com/memorial/70371131/marlyse-elizabeth-honeychurch
- 마리 보언https://www.findagrave.com/memorial/141753654/marie-elizabeth-vaughn
- 사라 맥워터스https://www.findagrave.com/memorial/141753942/sarah-lynn-mcwaters
- 아니타 문https://www.findagrave.com/memorial/141754247/bear_brook-jane_doe-(middle_child_victim)
- 데니스 보댕https://www.findagrave.com/memorial/223744096/denise-beaudin
- 전은순https://www.findagrave.com/memorial/175848885/eunsoon-pamela-jun
- 테리 라스무센https://www.findagrave.com/memorial/199817524/terry-peder-rasmussen
[1] 재미교포 1세대로 한국에서 태어난 뒤 미국으로 이민을 했다. 미국에서도 한국 이름을 사용하였다.[2] 참고로 밥 에반스라는 이름으로 살던 시절에 엘리자베스 에번스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 그의 아내로 등록된 적이 있었다고 하며, 이 여성이 있는 사람인지도 알 수 없다. 이 여성이 빨간 머리 연쇄살인사건의 희생자인 엘리자베스 라모테(하술할 희생자들처럼 신원이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았다.)라는 의견도 있었으나, 엘리자베스 라모테는 1984년에 실종되었기에 아닐 가능성이 훨씬 높고, 하술할 마를리즈의 미들네임이 엘리자베스니 마를리즈일 수도 있다. 아니면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희생자거나.[3] 미국의 대표적인 빈민촌으로, 캠핑카로 사용되는 이동식 주택만을 모아 둔 곳이다. 화이트 트래쉬로 불리는 가난한 백인 계층이 주로 거주한다.[4] 이는 미국의 사법거래 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든 것이다. 미국에서는 여러 죄목으로 기소되었을 때, 유죄를 인정하는 대신 형량을 거래할 수 있다. 그는 유죄가 확실했으므로 죄를 인정하는 대신 중한 아동 학대 혐의로부터 벗어난 것이다.[5] 한국계 미국인으로, 독특하게도 한국명을 그대로 사용했다.[6] 그때까지 경찰은 커티스 킴벌의 본명이 테리 라스무센이라는 것을 파악하지 못했다.[7] 주먹, 몽둥이 등[8] 두 번째 드럼통과 첫 번째 드럼통은 크기, 재질, 모양이 완전히 동일했다. 당시 수사관에 따르면 두 번째 드럼통은 당시 경찰이 획정한 현장 수색 구역을 아슬아슬하게 벗어난 곳에 있었다고 한다. 겨우 100m 거리에서 두 번째 드럼통이 발견된 것을 고려하면, 당시 수사망이 얼마나 허술했는지 추측해 볼 수 있다.[9] 유사한 사례로 역시 시신의 신원을 파악하지 못했던 리틀 미스 레이크 파나소프키 살인사건에서도 치아의 방사성 동위원소 분석을 통하여 시신의 주인이 생전 그리스에서 거주했음을 밝힌 경우가 있다.[10] 베어 브룩이 위치한 뉴 햄프셔 주는 미국 북동부에, 리사 학대 및 방임 사건이 벌어진 캘리포니아 주는 미국 서남부 끝자락에 위치해있다. 두 곳의 직선거리는 4000km가 넘는다.[11] 미국이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나라임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오히려 전은순 사건에서 피해자가 가족 및 공동체를 중시하는 한국계라는 배경이 있어 주변의 적극적인 신고가 가능했고, 그 덕에 범인의 범행이 발각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12] 밥 에반스, 커티스 킴벌 등[13] 작성자는 1970년에 태어났다.[14] 12월생인 마리와 사라는 마지막 목격 시점인 1978년 추수감사절 당시 6세, 0세였는데, 사망 당시 추정 나이가 각각 9-11세, 1-3세인 것을 보아 실종 후1~2년 정도 간격을 두고 사망했을 것으로 보인다.[15] 출생 추정년도는 1974-1976년이며, 70년대 후반에 밥 에번스라는 이름으로 개명했고, 엘리자베스 에번스라는 여성이 그의 아내로 등록된 적이 있었던 것을 보아, 출생 신고를 하지 않았더라도 성씨는 에번스로 불렸을 가능성이 높다. 밑에 언급할 다이앤의 쌍둥이 여동생인 안드레아는 이 여자아이의 이름을 아니타 문이라고 지었다. 외국의 고인 추모 사이트인 We remember에서는 제인 도에서 따온 듯한 제인 라스무센이라고 쓰여있다.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베어 브룩 제인 도다.[16] 1980년 4월 맨체스터에서 로렌 란이란 소녀가 사라졌는데, 테리는 소녀의 집에서 1마일 반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고, 2달 뒤 실종된 데니스 다노라는 여성은 테리와 같은 거리에 살고 있었다.[17] 그 예시로 1995년에 캘리포니아에서 발견된 샌 조아퀸 카운티 제인 도도 테리의 범행으로 강하게 의심받고 있다.[18] 베어 브룩 사건 피해자 중 둘째 아이의 탄생 추정 년도를 고려했을 때 이들이 신원불명인 둘째 아이의 가족이라고 보는 이도 있다.[19] 테리 라스무센은 이혼 전 자녀들을 학대했으며, 둘째 아이는 살해 후 드럼통에 유기했다. 이혼하지 않았다면 첫째 아내와 네 자녀도 살해당했을 거다.[20] 외국의 고인 추모 사이트이며, 유명인이나 자신의 가족들, 살해당한 피해자, 신원불명 사람, 애완동물 등 다양한 프로필이 존재한다. 유저들은 추모대상에게 꽃 이모티콘과 함께 추모글을 남긴다. 데니스처럼 생사불명이나, 사실상 죽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도 프로필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테리 라스무센같은 범죄자인 경우에는 욕설들이 쓰여있다. 참고로 어떤 유저는 테리 라스무센에게 Rest In Hell이라는 댓글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