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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평양시 중구역 서문동[이북5도] |
업무 시간 | 월, 목요일: 14:00~16:00 |
상급기관 | 러시아 외무부 |
공관장 | 알렉산드르 이바노비치 마체고라 (Александр Иванович Мацегора) |
링크 | [한국어] [러시아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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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러시아가 북한에 설치한 외교공관. 당연히 원래는 주북 소련 대사관이었으나, 1991년 소련 붕괴 당시 소련의 해외자산을 러시아가 가져간다[4]는 구 소련 국가들의 합의에 의해 러시아가 그대로 이어서 쓰게 되었다.이 건축물의 터는 일제강점기 당시 숭실전문학교가 있던 자리이다. 그런데 2007년 러시아 대사관 직원들이 이 자리에서 1935년에 쓰여진 '숭실전문학교 식수 기념석'을 발견하고 10년 동안 비밀에 부쳤는데,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이 숭실학당을 다녔기 때문에 혹여나 북한 측에서 내놓으라고 할까봐 그런 것이다. 기사(서울평양뉴스) 나중에 양측은 이 기념석을 그대로 두기로 합의를 봤다.남북통일이 되면 '주평양 러시아 총영사관'으로 바뀔 가능성이 가장 높다.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낮지만, 숭실대학교가 이 부지의 매수를 시도할 가능성도 아주 없지는 않다.[5] 다만 숭실대학교가 이 부지를 사들이더라도 서울캠퍼스를 버리면서까지 평양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은 없는데다가, 워낙 협소한 곳이라 캠퍼스는 평양시 미개발지역에 따로 개발하는 쪽이 합리적이다.
2. 대사관
평양시 중구역 서문동에 위치에 있다. 1940년대 말 소련군정 시기부터 1980년대말~1990년대 초까지 냉전 시대 전반으로 북한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소련의 대사관 자리를 그대로 물려받았기에 대사관 부지 규모가 서울의 주한러시아대사관에 비해서 상당히 큰 편이다.이 대사관 부지 안에는 외교관&직원들의 자녀들을 위한 학교도 있다.#(러시아어) 대사관 부지 안에 대사관학교가 있다는 점은 서울에 있는 주한러시아대사관과 동일하다.
러시아 대사관 건물은 본부청사를 비롯한 각종 전문부서가 밀집한 중앙당촌과 불과 수백미터 거리이다. 위성사진으로 보면 대사관 길 건너편에서 고층 아파트 한 채가 기다란 장벽처럼 그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데, 이는 러시아 대사관에서 중앙당촌에 시도할 수 있는 도감청을 막기 위함이다.
2.1. 영사관
문화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청진 주재 로씨야련방 총영사관홈페이지
페이스북
함경북도 청진시 라남구역에 영사관을 운영하고 있다.[6] 관할지역은 함경북도와 라선시이다.
3.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인원 철수
북한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방역을 이유로 국경을 차단하자 북한에 주재한 각국 공관은 후임자를 평양으로는 못 보내고, 현임자나 전임자도 본국에 오면 다시 평양으로 못 돌아가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이 때문에 러시아 대사도 본국으로 대부분 인원의 철수를 결정하는데,북한의 열악한 교통 사정과 국경 폐쇄 조치로 손수레를 끌고 두만강 철교를 통해 러시아로 넘어갔다. 위 영상에 등장하는 건 3등 서기관과 가족. 물론 평양에서부터 저렇게 간 것은 아니고 청진에서 한번 기차를 갈아 탄 뒤, 국경 지대에서 저렇게 한 것이다.
대사관 직원들이 둘만 남았다는 루머가 퍼지기도 했으나 사실이 아니다. 2023년이 되어서 국경이 개방됨에 따라 순차적으로 인원 교체가 시작되었으며 러시아 대사관 페이스북에 코로나 기간 동안 동고동락한 직원들을 평양역에서 배웅하는 영상이 업로드되기도 했다. 마체고라 대사가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러시아 대사관 인력을 대대적으로 확충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4. 역대 대사
- 주조 소련 대사
- 1. 테렌티 시티코프(1948.10~1950.10)
- 2. 블라디미르 라주바예프(1950.11~1953.9)
- 3. 세르게이 수즈달레프(1953.9~1955.6)
- 4. 바실리 이바노프(1955.6~1957.2)
- 5. 알렉산드르 푸자노프(1957.2~1962.6)
- 6. 바실리 모스코프스키(1962.6~1965.5)
- 7. 안드레이 고르차코프(1965.5~1967.4)
- 8. 니콜라이 수다리코프(1967.4~1974.8)
- 9. 글레브 크률린(1974.8~1982.12)
- 10. 니콜라이 슈브니코프(1982.12~1987.10)
- 11. 겐나디 바르토셰비치(1987.10~1990.10)
- 12. 알렉산드르 카프토(1990.10~1992.1)
- 주조 러시아 대사
- 13. 유리 파데예프(1992.1~1996.8)
- 14. 발레리 데니소프(1996.8~2001.7)
- 15. 안드레이 카를로프(2001.7~2006.12)[7]
- 16. 발레리 수키닌(2006.12~2012.4)
- 17. 알렉산드르 티모닌(2012.4~2014.12)
- 18. 알렉산드르 마체고라(2014.12~현재)
5. 관련 문서
[이북5도] 평안남도 평양시 신양동 39[한국어] [러시아어] [4] 소련의 붕괴는 각 공화국이 연방 탈퇴 선언을 통해 연방을 이탈하고 남은 러시아가 소련의 모든 권리와 의무를 승계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대외 자산과 함께 대외 채무도 모두 러시아가 승계하였으며, 그중 한 사례가 소련의 대 한국 채무를 무기로 변제한 불곰사업이다.[5] 숭실대 이사진들은 평양 복귀에 관해서는 꽤 완고한 사람들이다. 그것보다 김책공업종합대학과의 통합도 같이 병행할 가능성도 있지만.[6] 청진시에는 중국 영사관도 위치해 있다. 북한에 대사관을 두는 나라 중에서는 중국과 러시아만이 영사관을 운영한다.[7] 2016년 주 튀르키예 러시아대사 암살 사건의 피해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