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9-16 22:06:07

제306보충대대

파일:대한민국 육군 마크.svg파일:투명.png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파일:육군본부 부대마크.svg 파일:지상작전사령부 부대마크.svg 파일:제3야전군사령부 마크.svg
중앙보충대대 제102보충대대
(구)제103보충대
제306보충대대
(구)제101보충대
※ 편제·직제·병과별 둘러보기: 육군의 편제
독립대대 · 대대 | 해체된 독립대대 · 해체된 대대
}}}}}}}}} ||
제306보충대대
第306補充大隊
The 306th Replacement Battalion
파일:제3야전군사령부 마크.svg
시작과 끝은 우리가!
창설일 1952년 2월 17일
해체일 2014년 12월 31일
상징명칭 306보충대
소속 파일:대한민국 육군기.svg 대한민국 육군
상급부대 파일:제3야전군사령부 마크.svg 제3야전군사령부
규모 대대
역할 3야전군 지역 입영장정 분배 및 배치
초대 대대장 예) 파일:중령 계급장.svg 중령 000(육사 00기)
해체 전 대대장 예) 파일:중령 계급장.svg 중령 조구증(육사 00기)
위치 경기도 의정부시 용현동
1. 개요2. 상세3. 입대과정4. 기타

[clearfi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ROKA_306th_Replacement_Battalion_Main_gate_01.jpg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715px-Guidebook_of_ROK_Army_306th_Replacement_Battalion.jpg
舊 제306보충대대 정문(출처) 舊 제306보충대대 안내문(출처)

1. 개요

대한민국 육군 (구)제3야전군사령부 예하 보충대대였다.

2. 상세

대한민국 육군보충대로서 1952년 2월 17일 부산시 동래구에서 동래여자고등학교[1]를 징발하여 제2보충대 5중대라는 이름으로 창설된 이후 1958년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2]으로 옮긴 후 101보충대대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3] 1980년대에는 306보충대대로 이름이 바뀌었는데[4] 1989년에 호원동에서 용현동으로 옮긴 후 2014년까지 있다가 해체되었다. 현재 호원동 자리는 호원동 건영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통상명칭으로는 제6831부대.

경기도를 담당하는 육군 제3야전군사령부 예하의 사단 신교대로 보내기 전 '장정'들을 분류하고 대기시키던 곳이다. 모집병이나 특수병, 징집병 관계없이 입영처가 제2작전사령부 관내 사단 신교대가 아닌 '306보충대'로 받았다면 이곳에서 입영하기 위해 집결해야 한다. 이곳에서 대기하는 입영 장정들을 3박 4일간 관리한 다음, 각 사단 신교대로 보내는 게 이 곳의 주 기능이었다. 덧붙여 후반기교육을 받고 3군 예하부대에 배치받은 이등병을 잠시 모았다가 각 사단 보충중대로 보내는 역할도 했다. 입영장정이 3박 4일간 머무르고 나가면 후반기 교육받은 이등병이 3박 4일 머무르러 왔다.

입영 행사는 매주 화요일에 치러졌다. 입영 시간은 오후 2시. 군 부대 관련 정보로 인해 자세한 지리 정보는 기술할 수 없으나 제306보충대는 경기도 의정부시에 있고 현재는 107번이 다니는 노선상에 있다.입영하기 전 기차[5]를 타거나 부모님이 태워다 주는 차, 전세버스[6]로 제306보충대에 도착하면 만감이 교차한다 서로를 부둥켜 안고 울고 있는 커플, 부모님의 눈시울, 친구의 잘 가라는 인사, 수많은 사람들의 군상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제306보충대 앞에 있는 음식점에서 파는 먹을거리는 쓰레기다. 차라리 좀 일찍 집에서 나서서 의정부 시내에 있는 맛 괜찮은 음식점에 들러 거기서 먹는 편이 좋다. 다만 입대하는 본인은 신경이 쓰이니 뭘 먹든 맛이 없다.

그리고 겨울군번의 경우 터져 나간다. 입대하는 날에 눈이 온다면 멀리서 왔을 경우 눈 때문에 자연히 늦게 도착하니, 밥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서 이쪽에서 먹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이때는 맛없더라도 식당이 터져 나간다. 평소에 이쪽으로 올 일이 거의 없었던 장정들이 절대 다수였어서, 맛이 있든 없든 간에 정신없이 먹게 되어 있다. 이 역시 빼도박도 못한다.

306보충대 입영일에는 수많은 차량들이 일시에 도로를 점거하는데, 주차장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이므로 일찍 와서 자리잡아야 한다. 그리고 내리자마자 입영 필수품이라고 파는 노점상들이 반겨 준다. 여기서 모든 개인 물품은 입소하자마자 다 회수하며, 신교대가 끝날 때까지 원칙적으로 보급품만 사용하게 되어 있다. 사 놓고도 쓰지 못한다. 이건 육군훈련소, 제102보충대대도 모두 동일하다. 밖에서 콜링카드인 후불 전화카드도 선전하는데, 아무 의미가 없다. 물론 부대마다 일반적인 공중전화가 아닌, 특정 통신사 전용 전화기가 다를 수 있으니 복불복일 수 있다. 이제는 306보충대가 해체되면서 다 옛말이 되었다. 거기에 나라사랑카드KT 월드폰 플러스 전화카드를 대체했다.

신병 입대장소로 주로 쓰였지만, 종종 논산훈련소신병교육대 수료 후 후반기교육까지 마치고 온 장병들을 3군사령부 예하부대로 분류해서 보낼 목적으로 쓰이기도 했다. 대개 금요일에 들어와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에 배출하는 방식으로 보냈다. 입영 장정들과 다르게 주말이라 크게 뭘 시키지도 않는데 일단 입영 장정들과 다르게 신체검사니 보급품 수령이니 하는걸 다 마친 건 물론이고 자대배치까지 이미 완료가 된 상태기 때문이다. 심지어 통제하에 PX도 이용하게 해줬다. 또한 여기 병사들도 앞으로 자대에서 많이 까일걸 알기도 하고 희박하게나마 아저씨 개념이 남아있어서 그런지 크게 갈구지도 않았으나 화요일에 들어올 장정들을 위해서 대청소를 시켰다. 배식도우미, 불침번 정도는 한다.

3. 입대과정

12시에서 1시정도까지는 군악대 및 입대 행사 관계자들의 위문공연이 펼쳐진다. 연병장에서 이것저것 공연을 보여주지만, 입대하는 본인 입장에서는 벌써부터 한숨만 나온다. 그러다가 1시 반쯤 빨간 모자를 쓴 구대장이 나와서 "이제 부모님과 헤어져야 할 시간입니다. 모두 저를 따라와주십시오." 하면서 입영 대상자들을 2줄로 세워 끌고 간다.

여기로 영장이 나왔다면, 경기도에 있는 부대로 뽑힐 확률이 높다.[7]

1시 50분부터 본격적인 입영행사 준비가 치러지고, 입영을 명 받은 장정들은 306보충대 넓은 연병장에 집합하게 된다. 2시를 기점으로 모든 위문공연 행사는 종료되고, 멀뚱멀뚱 서 있는 장정들 바깥 사분면으로 부모님들이 쳐다본다. 심히 부담스럽다기보단 장정 입장에서는 부모님 얼굴 찾느라 바쁘다. 그리고 최소 준장의 높으신 분 이상이 연단에 올라오면 본격적인 입영행사 시작이다. 높으신 분의 간단한 연설이 끝나면 장정들은 높으신 분에게 충성을 외치고, 이어서 부모님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올린다. 물론 인사는 '선봉'[8]으로 통일한다. 그냥 멋지게 "선봉! 다녀오겠습니다!" 정도로만 하고 끝내는 게 좋다.

부모님께 인사를 마지막으로 장정들은 306보충대 대강당으로 이동하는데, 부모님들은 아들 이름을 부르며 애타게 찾는다. 정말 눈물나는 입대 장면 중 하나다. 구대장의 칼제식과 함께 대강당으로 입장한 장정들은 본격적으로 군대 생활이 시작된다. 일단 존댓말로 말하던 빨간 모자 쓴 구대장은 냅다 욕설과 반말을 쓴다. 이것은 대강당 말고도 사각지대로 부르는 곳으로 가게 되는 경우에도 똑같은데 주호민 작가의 만화 에서 이것이 묘사되어 있다.

모두 강당에 도착하면 간부들이 나와서 간단하게 306보충대 연혁과 현재 하는 일에 대해 설명해 주고 모집병, 사회복무요원, 특수병, 징집병으로 다시 세분화하여 나눈다. 자신이 징집병인데 모집병 쪽으로 가거나, 모집병인데 징집병 쪽으로 가는 걸 막기 위해 기본 검사만 4번 정도 한다.[9] 후술할 생활관 대기는 천국일 정도로 대기시간이 지옥이 따로 없는데 수천 명을 검사하다보니 시간은 시간대로 걸리는 데다 탄상자 뜯어서 만든 받침의자나 목욕탕 의자는 무진장 불편해서 빨리 시간이 가라, 차라리 훈련이나 작업을 시켜라, 자살하고 싶다. 죽고 싶다 등 쓸데없는 오만 가지 생각이 들게 된다.

이런 검사가 모두 끝나면 장정들은 드디어 생활관으로 입장하게 된다. 모집병, 징집병, 특수병 순으로 짜여진 생활관이 자신의 생활관이 되며, 한 생활관에 20명이 들어간다.[10][11] 이후 저녁식사 전까지는 아무런 일과가 없다. 하지만, 어딜가나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 전혀 알지도 못하는 20명 가량의 인원들과 서로 멍 때리고 있자니 지겨움을 넘어 별의 별 생각이 다 들게 된다. 그러나 사람이 많으면 어디서나 분위기 메이커가 있기 마련. 한두 명 쯤이 운을 띄우면 서로 나이대도 비슷한 사람들이라 금세 친해진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나라에서 주는 식사를 먹게 되는데 2,000명에 가까운 인원을 먹여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오래 기다린다.

한편, '향도'라고 불리우는 각 생활관의 대표를 뽑아 행정일을 시켰는데, 스피커에서 수시로 울리는 '향도 출입문 앞에 서!'라는 구대장의 목소리에 괴롭힘을 당해야 했다.

밥을 먹고 나면 괴로운 것이 화장실을 맘대로 보내 주지 않는다. 사정사정하고 애원할 듯이 매달려야 겨우 할 수 없다는 듯이 보내 주는 정도. 이렇게 저녁식사를 하고 나면 장정들은 복무 부적격자와 복무 적격자를 선발하기 위한 간단한 심리 검사를 하게 된다. 이 심리검사에서 불합격될 경우 1차적으로 중대장과의 면담이 있으며, 면담 결과를 토대로 퇴소 여부를 결정한다. 이런 경우 외에도 보충대에서 받는 검사 중에서 정밀검사대상으로 나와 정밀검사를 받게 되었는데 여기서 퇴소 여부가 결정되는 경우도 있다. 정밀검사대상이 되면 국군양주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게 된다. 이렇게 퇴소될 경우 3개월 후 재입대하거나, 병무청에서 재검사를 받게 된다. 병무청 재검사에 따라 입대여부, 사회복무여부, 면제여부, 재검여부가 결정된다. 그게 아니라면, 그냥 기록부에 복무 부적격자라고 나오는 정도다.

심리검사까지 마치면 생활관에서 세면도구와 군용 속옷을 지급받는다. 그리고 생애 최초의 불침번을 서게 된다. 이때의 기분은 정말 오묘하다 못해 괴로울 정도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면 기상나팔소리와 함께 본격적인 군대 생활이 시작된다. 둘째 날에는 기본적인 신체 검사 및 각종 피복류 지급을 하게 되며, 셋째 날에는 평생을 함께할 군번[12]이 나온다[13]. 그리고 이 날 입대할 때 입고 온 옷가지(속옷 포함), 반입금지 물품, 편지를 장정소포로 포장해서 집으로 보낸다. 종교활동을 하는데 이 때 '개신교(관문소망교회)', '천주교', '불교' 등과 무종교라는 선택지가 존재한다.

종교행사가 끝나면 하루 뒤 각자 배정될 신교대 발표가 난다.

운전병을 하고 싶은 사람은 사단배정 전에 면허증을 내라고 한다.

마지막 날에는 구대장들이 점심 식사 후 신교대 가서 주의할 점을 몇 가지 알려준 다음 신교대로 장정들을 보내 준다. 이때 각 사단별로 "육"번호판의 버스가 와서 장정들을 태워 간다. 배차문제상 보통 민간 관광 버스가 오고, 의외로 군버스는 많지 않다. 민간 관광버스라면 좌석도 매우 편안하고 1월의 추운 날씨도 못 느낄 정도로 난방을 빵빵하게 틀어 준다. 연병장에서 탑승하기에 기사 아저씨들이 발 털고 타라고 고래고래 소리친다. 신교대에서 본격적인 군사 훈련이 시작된다.[14]

4. 기타

2015년 1월 의정부 아파트 화재사고 당시 경의초등학교에서 잠시 머물던 이재민들의 임시거처로 사용되곤 했다. 다만 처음엔 그 상황에서도 왜 그런 데로 가야하냐?라며 질색하기도 하였지만 당장 대책이 없길래 잠시 머물렀다.

306 보충대의 해체 후엔 후적지에 제117공병대대가 들어왔으나, 1, 3군이 합쳐지는 과정에서[15] 2작사 예하 1115공병단으로 예속이 전환되어 지방으로 내려갔다.

2020년 4월에 의정부시에서 도시개발사업을 진행해서 아파트 및 주택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라고 공고했다. 아직은 사업 초기이며 진행 상황은 공개된 내용이 거의 없다.관련 링크

[1] 해당 학교는 1987년 이전했고, 그 자리에 우성베스토피아 아파트가 있다.[2] 당시 경기도 양주군 의정부읍 호원리. 의정부의 시 승격은 1963년.[3] 연혁을 보면 경기도 의정부로 옮긴 후 바로 101보충대대로 바뀐게 아니라 1960년 101보충중대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가 1962년에 101보충대로, 1963년에 101보충대대라는 이름으로 바뀐 것이다.[4] 정황상 102 보충대대가 제1야전군 직할부대였던 만큼 제3야전군 예하인 101 보충대대의 이름을 306보충대대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5] 코레일에서도 의정부행 입영열차를 운행하기도 했다.[6] 지역마다 집결지를 정해놓고 보충대로 장정들을 실어나르는 버스로 관광회사의 짭짤한 돈줄이었다. 병무청서 신검 받고 나오면 나눠주는 찌라시로 주로 접하게 되며 장정 외에 주로 같이 타는 부모, 형제자매는 무료나 할인 혜택이 있기도 했다.[7] 90%는 경기도 9%는 강원도 철원쪽이며, 1%는 운좋게 운전병 중 2야수교로 교육배치받고 후방으로 가게되는 경우이다.[8] 제3야전군사령부 경례구호였다.[9] 초기 인도인접 시에 병무청 직원과 함께 진행되고 병무청 직원은 당일 오후 5시에 돌아가야 하기에 철저하게 한다.[10] 종래 30명이라고 적혀있었는데 정원은 20명이며 2,800명 정도 입대할 때 어쩔 수 없이 22명에서 24명 정도 수용했던 경우도 있다.[11] 구대장이었던 경험으로 생활관에 24명이 배정받으면 한여름 생활관 내 온도가 33도다.[12] 주민등록초본 병적사항란에 군번이 표시된다.[13] 군번줄은 사단 신병교육대에 가면 준다.[14] 욕하고 소리 지르던 구대장들이 잘가라고 손 흔들어준다. 대게 사단들이 동일하며 신교대에 도착하면 선임조교가 정말 짧게 환영인사를 한 후 버스에서 내리면 빨리 뛰어오라는 교관들의 고함을 들을 수 있다.[15] 1군 예하의 1107공병단이 해체되고, 1101공병단이 존속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