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1 11:33:53

제프리 힌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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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튜링상 수상자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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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62633><colcolor=#fff> 제프리 힌튼
Geoffrey Hinton
파일:70803910-E5AA-4FBF-8497-7E4E29276C98.jpg
본명 제프리 에베레스트 힌튼
Geoffrey Everest Hinton
출생 1947년 12월 6일 ([age(1947-12-06)]세)

[[영국|]][[틀:국기|]][[틀:국기|]] 런던 윔블던
직업 컴퓨터과학자, 교수
현직 토론토 대학교 (컴퓨터과학과 / 명예교수)
학력 파일:케임브리지 대학교 원형 아이콘.png 케임브리지 대학교 킹스 컬리지
(실험심리학 / B.A.) (1970년)

파일:에든버러 대학교 아이콘.png 에든버러 대학교 대학원
(인공지능 / Ph.D.) (1978년)[1]
지도 교수 크리스토퍼 롱게히긴스
Hugh Christopher Longuet-Higgins

1. 개요2. 일생3. 여담

[clearfix]

1. 개요

제프리 힌튼은 영국컴퓨터 과학자이자 인지 심리학자이다.

1986년의 다층 퍼셉트론과 (오차)역전파 알고리즘을 증명, 2006년의 심층신뢰 신경망 발표로 딥러닝인공신경망 방법론의 대세로 굳히고 GPU를 통한 병렬연산을 업계에 대중화시킨 선구자이다.

개인적인 연구 외에도 교수로서 일리야 수츠케버, 얀 르쿤, 알렉스 그레이브스 등의 걸출한 제자들을 배출해내며 능력을 입증한 바 있다. 따라서 인공지능대부라는 별명이 있다.

2. 일생

자연과학철학에 관심이 깊었던 그는 일찍부터 뇌에 흥미를 가지며 대학에서부터 관련 연구를 진행하였고 인공 신경망을 연구하며 박사 과정을 마쳤다.

졸업 후에는 서식스 대학교, UCSD, 카네기 멜런 대학교 등을 거친 뒤에 토론토 대학교로 합류한다.

1984년 홉필드 네트워크에 신경망 알고리즘을 결합하여 대규모 병렬 연산을 가능케 하는 볼츠만 머신을 제안한다.

1986년 다층 퍼셉트론과 (오차)역전파 알고리즘을 증명하면서 XOR 적용 문제를 해결하였다.

2006년 “A Fast Learning Algorithm for Deep Belief Nets”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심층신뢰 신경망이라는 알고리즘으로 비지도학습의 가능성을 선보였으며, 이로 인하여 기울기 소실 문제를 해결하고 2차 인공지능 겨울을 끝낸다.

2012년 1세대 MOOC 플랫폼인 코세라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이미지넷이 주최하는 ILSVRC 대회에서 압도적인 성과를 거두며 앞선 이론들의 효용성을 증명했다. 이 대회 이후로 컴퓨터 비전 분야에서는 기존 SIFT 방법론에서 탈피하여 힌튼 교수의 방법론이 주류가 된다. 뿐만 아니라 딥러닝이 상위 개념인 인공신경망의 개념을 대체하며 인공지능이라는 말과 거의 동일시되기 시작하고 그래픽 처리 작업에만 쓰이던 GPU를 딥러닝 학습용으로 확장시키며 병렬연산이 딥러닝 분야의 대세가 된다.

이후 컴퓨터 비전 스타트업인 DNN 리서치를 설립한다. 2013년에 기업을 구글에 4,400만 달러로 매각한 이후로 구글리서치 산하의 구글브레인 팀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한다.

2018년 ACM 튜링상을 수상하였으며, 이나모리 재단 교토상(The Inamori Foundation's Kyoto Prize) 등 다양한 상을 수상하며 그의 기여가 인정받고 있다.

2023년 5월 구글브레인과 딥마인드가 합병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글을 퇴사하였다. 이후 국제적 범위의 AI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Future of Life 재단의 인공지능 개발 일시 중단 성명서에 서명했다. 그 외에도 OpenAI의 성공 이후로 구글이 안정성은 안중에 없고, 본인들의 비즈니스 확장에만 집중한다고 비판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상술한 합병 과정에서 경영진과의 의견 충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딥마인드의 통합 CEO인 데미스 허사비스가 인공지능의 특이점에 도달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발언한 것과 대조되는 입장이다.

3. 여담

  • 전혀 연고가 없던 캐나다에 정착하게 된 이유로는 로널드 레이건 정부 때 미군이 니카라과의 항만에 지뢰를 심고 있었고, 이러한 비인간적 행위를 하는 미군으로부터 연구 지원금을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근무하던 카네기 멜런 대학교의 연구 자금 대부분이 미 국방부에서 나왔다고 한다.

[1] 인지과학의 창시자 중 하나인 크리스토퍼 롱게히긴스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인공신경망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