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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당동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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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경상북도 경산시 임당동 676-1 등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고분군
면적 99\,923㎡
지정연도 2011년 7월 28일
제작시기 삼국시대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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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부적리 고분군(신대부적지구)
2. 발굴3. 유물 전시4. 여담
4.1. 교통
5. 외부 링크6. 사적 제516호

1. 개요

경상북도 경산시 임당동 일대에 위치한 압독국 고분 무리이다. 임당동 고분군, 조영동 고분군, 부적리 고분군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사적으로 통합 지정 되었다.

본 고분군은 4~6세기 취락의 형성부터 고분군의 형성과 변화까지 많은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에 압독국과 관련된 정보를 비롯하여 신라 중고기의 지방진출 및 지배 양상에 대해서도 많은 근거로 거론되고 있다. 다른 사적이 된 고분군들은 사실 5~6세기대의 자료들이 중심이기 때문에 원삼국시대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한다.[2]

독무덤, 돌무지덧널무덤, 굴식돌방무덤 등 다양한 무덤 형식과 순장 풍습이 드러나며 금은제 장신구와 고리자루큰칼, 철기류, 오리모형 토기, 상어뼈 등 압독인들의 생활양식을 알게 해주는 수많은 유물들이 발굴됐다. 또한 고총고분군과 토성 등 생활유적이 복합된 유적으로 BC 2세기부터 약 1000년에 가까운 생활문화가 간직되어 있다. 신라, 가야, 독자적인 양식이 혼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장기간에 걸쳐 분묘가 이어지며 축조된 유적은 이곳이 유일하다고 한다.#

1.1. 부적리 고분군(신대부적지구)

부적리 고분군은 경산시 압량읍 부적리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2016년에 도굴된 BVI호에 대해서 긴급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결과 6세기 경의 昌자형으로 배치된 석곽 1기와 부곽 또는 합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곽이 확인되었다. 또 적석목곽묘의 형태를 띄고 있다는 점에서 늦은 시기까지도 적석목곽묘가 유지된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형태적으로 독특한 편에 해당하며 각 석곽들이 석실의 형타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이는 도굴 시에 주실을 모두 털어가고 석실처럼 도굴갱에 시멘트를 발라놔서 훼손이 심한 상태였기 때문도 있다.

2. 발굴

1982년 영남대학교 박물관이 2, 5~7호분 등에 대한 조사를 벌여 15곳의 무덤군과 옹관 등을 확인했다. 1987년 조영동 고총이 발굴되면서 문헌 기록에 단편적으로 나오는 압독국의 지배층 무덤임이 밝혀졌다.#


2024년 10월 발표에서 4단 장식 금동관이 발굴됐다 밝혔다. 이는 천마총 등에서 나와 익히 알려진 신라 금관과 디자인이 같은데, 한단계 낮은 재질인 것으로 보아 신라 중앙정부가 하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압독국이 독립적 지위를 가지고 신라의 간접 지배를 받았다는 설이 더욱 공고해졌다. 또한 지역에 나오지 않는 암석이 무덤에 쓰여 지역간 교류가 드러났고 긴 기간 한 가족이 차례대로 묻힌 가족묘도 발견됐다.

3. 유물 전시

경산시립박물관 고대문화실이 이곳에서 발굴된 것을 주요 주제로 한다. 게다가 발굴을 맡은 영남대학교 박물관은 아예 임당발굴유물실을 마련해 놓았다.

2023년 임당유적 전시관을 착공했다. 2025년 개관 예정. #

4. 여담

  • 경산 임당동·조영동 이외에도 2017년 경산하양읍 도리리 일대에서도 기원전후한 시점의 대형 목관묘가 발견되었던 바 있다. 특히 소명경이 확인되었는데 소명경은 비교적 유행이 짧았던 중국의 청동거울로써 전한 후대부터 전·후한의 전환기 시점을 지나서까지도 사용되었었다. 이를 통해서 창원 다호리 1호에 이어 나타나는 경주시 조양동 36호와 같은 시점인 즉 1세기 경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압독국의 위치 및 신라 고분문화 전개 상의 과정도 한층 정세부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
  • 최근에도 봉토분이 도굴된 사례가 있다. 바로 인근에 있는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 재직 중인 정인성 교수의 제보로 언론에 공개되어 또 다시 반출위기의 유물을 되찾을 수 있었고 나아가 발굴까지 이루어졌다. 도굴되었던 고분은 임당 1호분으로 조사를 통해서 신라의 지배방식인 위세품 사여체계 속에서 신라 금공품의 착장양태에 대한 면모를 재확인하고 논의를 진전시킬 수 있었던 조사였다.#

4.1. 교통

5. 외부 링크

6. 사적 제516호

서쪽으로 향한 구릉에서, 발굴 전 10여 기의 고분이 훼손된 상태로 지표에서 확인되었다. 1982년 2월 임당동 2호분이 도굴되어 순금제 귀걸이 및 장신구 ·은제허리띠 ·곱은옥 ·고리자루큰칼 등 중요한 문화재가 해외로 유출되기 직전 당국에 적발되어 임당동고분군의 중요성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발굴조사가 1982년 7월부터 12월까지 실시되었으며, 모든 경비는 영남대학교 박물관이 전담하였다. 또한 이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는 곳의 북편 능선이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에 의해 발굴조사되었는데, 여기에서도 많은 원삼국시대의 무덤들이 조사되었다.

이 고분군은 본래 사적 제300호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2011년 7월 28일 인접한 경산조영동고분군과 통합되어 사적 제516호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으로 재지정되었다.

제일 먼저 발굴된 고분은 제2호분이다. 이 고분의 봉토는 3분의 1이 이미 파괴된 상태였으나, 4분법으로 조사하였다. 봉토는 얇은 판석으로 된 청석을 정성스럽게 차곡차곡 둥글게 쌓았고, 바닥부분은 일부 흙으로 다지고 회를 사용한 흔적이 보인다.

구조는 표형분으로 2개의 무덤을 남북으로 함께 붙여 만든 것이며, 축조 순서는 남쪽에 있는 무덤이 먼저 만들어졌고 북쪽에 있는 무덤은 뒤에 붙여 만들어진 것이다. 1개의 무덤은 으뜸덧널과 딸린덧널로 구성되어 있고, 으뜸덧널의 뚜껑은 큰 화강암 편평석을 사용하였으며, 딸린덧널은 나무로 뚜껑을 하였다.

제2호분 다음에는 제5ㆍ6ㆍ7호분을 비교ㆍ조사하기 위해 차례로 발굴되었는데, 봉토축조 방법은 제2호분과 같은 방법이 사용되었으며, 봉토가 2개 또는 3개로 연결되어 있는 여러덧널식이었다. 제5ㆍ6ㆍ7호분을 모두 발굴한 결과 제5호분에서 독 1개, 제7호분에서 독 1개 등을 포함하여 모두 15개의 무덤이 발견되었으며, 제5ㆍ6ㆍ7호분의 주위에는 평면에 원형 또는 반원형으로 둘레돌이 돌려져 있었다.

[출처] 영남대학교 박물관, 2016, 경산 임당지역 고분군 XIII 조영EII-2호분. 8p[2] 대표적으로 의성 금성산 고분군이 그렇다. 의성 금성산 고분군과 관련하여 소문국(또는 조문국)의 이름을 자주 쓰지만 사실 조문국과는 거리가 멀고 신라화된 이후의 자료만이 확인되었을 뿐이다.[3] 정작 임당역이 훨씬 멀다. 그래봤자 영남대역에서도 몇 블럭 떨어져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