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28 02:09:29

일본사의 음모론

1. 개요2. 왜 음모론이 도는가?3. 일본사 음모론들
3.1. 고대3.2. 중세3.3. 근세3.4. 근현대
4. 같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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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역사 속의 각종 사안에 대한 음모론들.

2. 왜 음모론이 도는가?

일본사에서 음모론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나도는 가장 큰 이유는 실질적으로 일본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의 이야기속에 명쾌하게 해명되지 않는 사안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혼노지의 변아케치 미츠히데오다 노부나가 암살 동기가 불분명하다. 온갖 추측이 있지만 명쾌하게 해명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 이 때문에 다양한 이야기들이 붙어서 음모론으로 발전하게 된다. 아케치 미츠히데의 뒤에 다른 숨은 배후가 있다거나, 또는 아케치 미츠히데가 실제로는 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참모역할을 한 난코보 텐카이가 되었다거나 하는 식.

하지만 대체적으로 일본의 역사학자들은 이런 음모론에 대해서 일부 사안을 가지고 지나치게 부풀리고 억측을 한 결과로 치부해 진지하게 다루지는 않는다. 다만 어느 정도 상상력이라는 부분에서는 흥미로운 소재들이라 창작물들에서는 간간히 이런 음모론들을 소재로 다루거나 이야기의 중요한 요소로 다루는 경우가 있다.

즉, 재미로 볼 수는 있겠으나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편이 좋다.

3. 일본사 음모론들

3.1. 고대

  • 일본인의 기원 - 일본인, 즉 야마토 민족의 기원이 정확히 어떤 인종인지는 학계에서도 아직 통일된 이론이 없으나 대개 남방계 아시아인, 북방계 아시아인, 그리고 이들이 들어오기 전의 원주민들인 고(古) 아시아인 등이 섞이면서 형성됐다고 알려져 있고, 반도 일본어설, 드라비다인설까지는 아슬아슬하게 학계에서 간신히 논의가 되는 수준이지만[1], 사이비 역사학에서 왜곡과 날조를 하면서 음모론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면 일본인 유대인설, 일본인 수메르인설 등 정신이 아득해질만한 주장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특히 일본인의 조상이 유대계라는 설은 의외로 인기가 있어서 아예 위키백과에서 본격적으로 소개될 정도. 요약하면 소위 말하는 텐구의 설화를 바탕으로 한 주장. 바구니에서 따왔다고 하는 카고메 문양을 다윗의 별과 연관시키기도 한다. 심지어는 성궤가 일본에 숨겨져있다는 주장까지 있다.[2]
  • 요나구니 수중 유적 - 요나구니 일대에서 발견된 특이한 형태의 수중 유적. 자연적으로 생겼다고 보기엔 특이한 부분이 많아서 알려지지 않은 고대 문명의 흔적이라는 설이 있지만 일부 음모론을 제외하면 그냥 자연적으로 형성된 지형이라고 결론이 났다.
  • 소가씨는 로마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사람들이었다 - 신라의 유물(로만 글라스)을 근거로 소가씨가 로마출신이라고 주장하는 음모론이 있다. 이런 음모론은 소가씨가 한반도에서 도래한것을 숨기려는 발로라는 추정, 혹은 중동과 일본을 엮으려는 무리한 오리엔탈리즘적 발로라는 해석이 있다.[3]

3.2. 중세

  • 미나모토노 요시츠네는 코로모가와에서 죽지 않고 칭기즈 칸이 되었다. - 오야베 젠이치로의 주장으로 일본 역사학계에서는 이미 논파된 음모론이지만 극적이기에 대중매체에서 종종 사용된다.[4]
  • 도쿠가와 이에야스 관련 음모론들
    • 이에야스의 어머니는 닌자였다.
    • 이에야스는 사실 다케다 신겐의 아들이다.
    • 이에야스는 알려진것보다 일찍 사망했고 이후 카게무샤가 그를 대신했다 - 의외로 유명한 이에야스 음모론. 이에야스는 알려진 시기보다 일찍 죽었으며 이후 카게무샤가 그를 대신했다는 것이다. 상세한 내용은 카게무샤 항목 참조. 개중에는 이에야스가 매사냥을 갔다가 카게무샤에게 암살당했으며 그 암살의 배후는 카스가노츠보네라는 설도 있다.
  • 가토 기요마사는 독살당했다. - 당대에서부터 널리 퍼진 음모론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장차 도요토미 가를 쳐내기 위해 히데요리를 보호하는 기요마사를 독살했다는 설이다.

3.3. 근세

  • 에도 막부 관련 음모론들
    • 아케치 미츠히데는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 미츠히데가 역사상의 사실과는 달리 죽지 않았으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참모인 난코보 텐카이가 되어서 생존했다는 주장. 에도 막부 초기의 중요인물인 카스가노츠보네는 사실 미츠히데 가신의 딸이며 카스가노 츠보네를 통해 이에야스와 미츠히데가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는것이 이 음모론의 주요 핵심이다. 또한 도쿠가와 이에미츠가 사실은 카스가노츠보네의 아들이라는 음모론도 있다.
    • 시마바라의 난은 농민 봉기가 아닌 도요토미 가의 최후의 발악이다 - 위의 히데요리가 죽지 않았다는 설에서 나온 걸로 아마쿠사 시로 도키사다는 사실 히데요리의 아들이라는 설. 아마쿠사의 우마지루시(馬印)가 하시바 가문과 같은 호리병박이고, '도요토미 히데츠나(豊臣秀綱)'라는 이름이 있었다고 가고시마 현 책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오사카 성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도요토미의 잔당들이 이 반란에 대거 참여했다는게 근거. 물론 히데요리 생존도 설에 지나지 않아서 억측이라는 반박이 더 많다.
    • 추신구라 사건의 배후는 따로있다 - 당시 쇼군 도쿠가와 츠나요시의 정실(미다이도코로)인 노부코가 신분이 낮은 무사가문 출신인 시어머니 게쇼인의 작위수여를 막으려고 아사노를 충동질해서 작위수여에 깽판을 놓았고 이후 아사노의 가신을 충동질해서 복수극을 펼치게 했다는 주장. 이것과 연결돼서 심지어는 노부코가 츠나요시와 함께 무리심중(단체자살을 일컫는 일본식 표현)했다는 음모론까지 있다.
    • 아츠히메는 독살 매니아였다. - 도쿠가와 이에사다,도쿠가와 이에모치는 아츠히메에게 독살당했고 이후 그녀는 도쿠가와 가문의 중심으로 남았다는 음모론.
  • 사사키 코지로는 암살되었다 - 소위 말하는 미야모토 무사시와 사사키 코지로의 간류지마의 결투는 사실 결투가 아니라 카쿠레키리시탄이었던 사사키 코지로를 번의 사주를 받은 미야모토 무사시가 암살했다는 것. 누마타카기라는 기록에 의하면 간류지마의 결투때 사사키 코지로는 단신으로 나타난 반면 미야모토 무사시는 제자들과 함께 나타났으며 무사시가 승리했음에도 굳이 제자들이 코지로를 죽였고 코지로가 죽은 곳을 간류지마(간류의 섬)으로 불렀다는 등의 의혹에서 이런 주장이 제기된 듯. 누마타카기의 기록은 확실히 의혹을 더해주긴 하지만 과연 이 음모론이 역사적 사실인지는 근거가 충분치는 않다고 하겠다.[7]
  • 도슈사이 샤라쿠는 누구인가? - 혜성과 같이 등장했다 사라진 천재 화가임에도 불구하고 그 정체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당대의 한 배우였다는 설이 어느정도 설득력이 있긴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사실 이 사람이 김홍도신윤복이었다는 썰이 돌기도 하는데 이미 논파된지 오래다.

3.4. 근현대

  • 도쿠가와 막부의 비자금 - 일명 도쿠가와 매장금(徳川埋蔵金)이라고 불린다. 도쿠가와 막부의 정부 자금 겸 비자금이었던 돈이 막부가 몰락하고 나서 메이지 정부가 조사해 보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썰. 약 400만 량(両)[8] 규모였다고 알려져 있으며, 당연히 메이지 정부는 구 막부가 이 돈을 꿍쳐두고 있다고 생각해서 전국을 이 잡듯이 뒤졌지만 결국 못 찾았다고 한다[9]. 후에 군국주의 일본이 몰래 발굴에 성공해서 군자금으로 사용했다던지, 아예 이 매장금 자체가 날조된 기록 혹은 분식회계(...)였다던지 하는 썰이 있지만 아직까지 밝혀진 게 없다. 이토이 시게사토MOTHER 2를 만들다가 이 설에 관심을 가지고 발굴 작업을 행하기도 했으며, TV 프로그램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 사카모토 료마 암살의 배후 - 오미야 사건의 배후가 교토 미마와리구미 혹은 그들의 사주를 받은 누군가라는 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으나, 정확한 진범과 진상 등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 외에도 신센구미 배후설, 사츠마 번 배후설 등도 거론된다. 정황상 료마가 죽기 직전 까지 크게 경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료마와 면식이 있거나 가까운 사람일 확률이 높다고 한다.

4. 같이보기


[1] 다만, 일본인=드라비다인설은 진작에 학계에서 논파된 얘기다. 일본인 드라비다인설은 일본언어학자오노 스스무일본어타밀어와 동계라는 설을 주장하면서 그 연장선에서 제시한 가설이지만, 형질인류학적으로 일본인과 드라비다인은 별 관련도 없었다가 밝혀진데다, 언어도 기초 어휘에서부터 차이점이 분명하게 나타나므로 완전히 논파되었다.[2] 신토신앙도 유대교 및 유대인과 간접적으로 관련있다는 설도 있다.[3] NHK의 다큐멘터리 실크로드도 이런 오리엔탈리즘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4] 요시츠네 자체가 워낙 일본사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인기 인물이다보니 죽지 않고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식의 음모론이 가장 많은 축에 속한다. 물론 칭기즈 칸은 역사책에 족보가 확실히 기록되었고 그 행적도 비교적 명확히 밝혀진 인물이다. 다만 몇몇 행적이 불분명한 부분도 있어서 이걸 끼워맞춰 억지춘향 격으로 주장한 것.[5] 다케다 신겐이든, 우에스기 겐신이든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만큼 동기는 있지만 당시 잇코잇키, 소헤이 등이 난무했던 일본의 불교 사정을 생각하면 그리 물렁하게 넘어갔을 가능성은 거의 없고 설령 만나는 주더라도 매우 경계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잇코잇키 때문에 불교를 싫어했던 오다 쪽이 더 예수회와 가깝기도 했고.[6] 일본에서 그나마 기리시탄에게 유화적인 인물이 오다 노부나가인데 죽이면 오히려 손해일 뿐이다. 당장 다케다나 우에스기같은 집안은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그리고 도요토미는 정말로 운이 좋아서 노부나가 뒤를 이을 수 있었던 거지 실제로는 혼노지의 변 당시를 보면 노부나가를 죽이기에 유리한 상황도 아니었고 아케치를 움직일 처지도 못 됐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마찬가지. 오다 노부나가와의 동맹이 있었기 때문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자리를 유지하고 있던 상황에서 나중이라면 몰라도 굳이 그 시점이어야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없었다. 노부나가가 자기 부인과 장남을 죽여서 그랬다는 말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오히려 이에야스가 부인과 아들을 숙청해야 할 이유가 더 많았다.[7] 꼭 카쿠레키리시탄이 아니더라도 미야모토 무사시가 제자 다수를 데려가 사사키 코지로를 몰매를 놔서(...) 죽였다는 음모론은 제법 퍼진 편이다.[8] 1량에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약 100만원 정도의 가치를 가지므로, 환산하면 약 4조원 정도의 금액이다.[9] 이 음모론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 희대의 바카게호혈사일족이다. 게임의 주인공 가문인 고케츠지 가문의 시조가 도쿠가와 막부의 비자금을 발견해내서, 게임의 배경인 섬 하나를 통째로 도시화할 정도로 일본 최고의 갑부가 되었다는 설정이다.[10] 정확히는 이와 세트메뉴인 고메이 덴노 독살설을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