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2 13:19:57

아마쿠사 시로 토키사다

아마쿠사 시로 토키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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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쿠사 시로 토키사다 초상화[1] [2]
<colbgcolor=#000000><colcolor=#fff> 출생 1621년(?)[3]
사망 1638년 4월 12일 (향년 16/17세)
가족 아버지
어머니
누나
여동생
종교 가톨릭[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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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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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세워진 동상
일본 에도 시대의 인물. 가톨릭 신자로 막부의 기독교 탄압이 가장 심했던 시절인 17세기에 살았다. 당시 불과 10대의 나이에 온갖 기적을 일으키며 주변으로부터 하늘이 내린 구세주로 추앙받았고 가혹한 박해와 수탈에 더 이상 버틸 수 없던 일본의 가톨릭 신자들과 함께 뜻을 모아 결의하여 시마바라의 난을 일으켰으며 선두에 서서 그들을 지휘했다.

2. 생애

본래의 이름은 마스다 토키사다(益田時貞). 정확한 생년월일은 불명이나 사망한 날짜로부터 역산했을 때 일본에서든 한국에서는 1621년생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아마쿠사 제도[5]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옛 가신이었다. 현대에 들어 아마쿠사 시로는 위 초상화처럼 주름진 유럽식의 러프(ruff)를 착용하고 있는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다.

어느날 한 외국인 선교사가 일본에 방문해 이르기를 조만간 이곳에 구세주가 나타날 것이라는 예언을 남겼는데, 정확히 그가 예언한 때에 태어난 것이 바로 아마쿠사 시로 토키사다였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학문에 능통하고 외모가 수려했으며, 물 위를 걷고 눈 먼 여자를 치료하는 등 온갖 기적을 선보이며 기독교인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주변으로부터 하늘이 내린 구세주로 칭송받았다. 그러던 당시 일본을 지배하고 있던 에도 막부가 기독교와 그 신자들을 잔인한 방식으로 박해하고[6], 과중한 세금과 연이은 흉작으로 인해 기아상태에 빠져 있던 백성들의 연공 감면 요구를 무시하고 가혹한 수탈을 자행하자 끝내 1637년 2만 ~ 3만 7천여 명의 기독교인들과 함께 결의하여 봉기를 일으키고 선두에서 그들을 지휘했다. 이때 아마쿠사 시로의 나이는 고작 16세. 이 사건이 시마바라의 난으로 일본 역사에서 꽤 중요한 이야기이다.

초반에는 몇 차례 막부군을 무찌르는 등의 통쾌한 전과를 내며 기세가 올랐지만, 이에 눈이 뒤집힌 막부가 반란군 세력의 4~5배에 달하는 12만의 진압 병력을 파병하면서 순식간에 전세가 뒤집혔다. 이는 일본 역사에서 초대규모 파병에 속할 정도로 당시의 혼란과 막부의 초조함을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아마쿠사 시로를 비롯한 수만 명의 기독교인들은 시마바라에 위치해 있는 하라성에서 몇 개월을 농성하다 끝내 진압되고 몰살당했다. 말 그대로 몰살, 내통자 1명을 제외한 가담자 전원이 순교했다. 진위 여부는 불명이나, 그가 죽기 전 "100년 후 부활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는 낭설이 있다.

불과 16세의 소년이 어떻게 그 많은 반란군을 이끌었는지도 미스터리인데, 아마쿠사 시로의 실질적인 역할은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결합과 단결의 상징이고 실제 군사적 지휘부는 막부에 반대하다가 추방당한 전 다이묘와 무사, 즉 로닌 위주로 따로 존재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하지만 문헌 등을 잘 살펴보면 시로 본인도 제대로 군사를 이끌고 전투에 참전했던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무턱대고 그랬을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이미 그보다 200년 전에 비슷한 선례가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이는 그저 추측일 뿐. 진실은 저 편에.

아마쿠사 시로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손자이자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숨겨진 아들이라는 설이 있는데, 알려진 바로는 히데요리는 1615년 오사카 여름의 진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패배하여 자살했다고 하나 일설로는 사쓰마로 도망쳤고[7] 사쓰마에서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그게 바로 아마쿠사 시로라는 썰이다. 또 시로의 우마지루시(馬印)가 히데요시와 같은 호리병박이고, 시로한테 '도요토미 히데쓰나(豊臣秀綱)'라는 이름이 있었다고 가고시마 현 책에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선 영 설득력 없는 설이라고 받아들여지는 편.

부모 이외의 가족으로는 누나 2명과 여동생 1명이 있었다고 하는데 모두 시마바라의 난이 발발하기 전에 쿠마모토 번에 의해 체포된 상태였다. 아버지의 경우 최후가 구체적으로 전해지진 않으나, 어머니의 경우 난 진압 이후 시로로 추정되는 소년의 목을 잘라 보여주자[8] 그 자리에서 절규했다고 한다. 그 뒤에 붙잡혀 있던 누이들과 함께 참수되었다.

일본 기독교에서는 성인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그 이외 국제적인 기준으로는 성인에 속하지 않는데, 이런 경우는 흔히 민속 성인(Folk Saint)이라고 칭한다. 이는 아마쿠사 시로가 정식 가톨릭에 있어 성인으로 시성되지 못했기 때문인데, 세계적으로 이러한 경우는 허다할 정도로 많다. 그 유명한 잔 다르크도 정식 성인이 되기까지 여러 수모를 겪었고 상당히 긴 시간이 소요되었으며(1925년), 까다로운 조건 탓에 아예 성인으로 오르지 못하는 인물들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9]

3. 대중문화 속의 아마쿠사 시로

16세의 소년이 국가 전복을 기도했다거나, 반란군의 우두머리였다거나, 한이 서린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든가 하는 이유로 픽션에서는 보통 악역으로 등장한다. 특히 배경이 18세기 쯤 되거나, 가상의 막부 체제가 현대까지 이어져 온다는 설정 등 에도 막부가 배경일 경우에는 대개 악당으로 등장.

이런 아마쿠사 시로의 악당 이미지는 소설 마계전생의 공헌(?)이 상당히 크다. 마계전생이 일본 대중문화 쪽에 끼친 영향이 크기 때문. 두번째로 공헌한 건 아래 설명할 SNK의 게임 사무라이 스피리츠 시리즈다. 카쿠레키리시탄같은 것도 있긴 하나 아마쿠사는 어쨌건 악당 이미지로 통한다. 사실 생각해 보면 굉장한 고인모독인데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자 그를 위해 순교한 아마쿠사를 요괴들의 우두머리로 묘사했으니... 메이지 유신 이전 많은 일본인들은 에도 막부의 프로파간다 때문에 기독교를 악한 집단으로 보았고, 수만 명 가량의 기독교인들을 이끌고 난을 일으켜 혼란을 초래했다는 점이 더더욱 부정적인 이미지로 굳히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10]

아마쿠사 시로가 악당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건 사실 그 역사가 생각보다 오래되어, 그가 죽은 1600년대부터 이미 가부키에서 틈만 나면 악역으로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1719년에 나온 조루리경성 시마바라 와합전(傾城島原蛙合戦)#[11]에서는 나나쿠사 시로(七草四郎)라는 이름으로 피휘되어 기독교 주술로 두꺼비를 소환해 일본을 전복시키려는 주술사로 등장했다.(...) 기독교에서 저런 거 쓰면 바로 마녀사냥감이다. 최후도 비참한데 사라시나(更級)라는 여자를 인질로 붙잡고 희롱하다 죽이려던 찰나에 사라시나의 주머니에서 황금 뱀이 튀어나오자 뱀은 개구리를 먹는다는 법칙 때문에 요술을 잃고 그대로 역관광 당한다. 나오는 작품마다 이런 식으로 묘사되어서 이미지가 상당히 안 좋았는데 현대에 들어 마계전생과 사무라이 스피리츠가 쐐기를 박아버린 것이다.

아마쿠사 시로의 일생과 거대한 두꺼비를 조종한다는 자극적인 소재왜곡는 대중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기에 이후 고전 작품에서도 종종 인용되었다. 대표적으로 김시민 항목에 나와있는 텐지쿠 도쿠베 이야기(天竺徳兵衛)는 나나쿠사 시로의 소재[12]를 그대로 가져왔고[13][14], 이후 1806년에는 두꺼비 소재만 차용해 거대 두꺼비를 소환하는 인술을 부리는 의적의 이야기를 다룬 지라이야 설화(自来也説話)가 나왔다.[15]

그나마 객관적으로 역사를 바라보기 시작한 현대에 들어서는 아마쿠사 시로도 마냥 악역으로만 나오지는 않는 편. 악역으로 나오게 되더라도 매력적인 악역으로 그려지는 편이다.

3.1. 마계전생

아마쿠사 시로 토키사다(마계전생) 문서 참조.

3.2. 기츠 엑스트라 가면라이더 타이쿤 meets 가면라이더 시노비

아마쿠사 시로 토키사다(가면라이더 기츠) 문서 참조.

3.3. 사무라이 스피리츠 시리즈

아마쿠사 시로 토키사다(사무라이 스피리츠) 문서 참조.

3.4. 검용전설 야이바

성우세키 토시히코.

오니마루 타케시용신구슬을 모으는 걸 방해하기 위해 옛 영웅들을 대량으로 부활시켰을 때 여우에 빙의돼서 부활한다. 거미사내(YAIBA)가 그를 찾기 위해 동물들을 괴롭힐 때 여우 상태인 그를 모르고 한 대 팼고 오니마루로 변신해서 거미사내에게 복수를 하지만 변신이 꼬리 때문에 들키는 개그를 하고 말았다. 천주교도하고는 아무런 상관없는 요술사로 나오며 야이바와 변신대결 등을 벌였지만 패하고 성불한다.

3.5. 백화요란 사무라이 걸즈

아마쿠사 시로(백화요란 사무라이 걸즈) 참조.

3.6. Fate 시리즈

아마쿠사 시로(Fate 시리즈) 문서 참조.

해당 시리즈의 특성상 판타지 요소가 첨가되어 있기는 하나 지금껏 대중문화에서 그려진 아마쿠사 시로 중에서 가장 역사적 고증에 충실하고 기존의 인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거의 유일한 사례다. 비록 주인공과 대립하는 위치에 있기는 하나, 상당히 매력적으로 잘 풀어내어 호평받았다.

3.7. 올랭피아 소와레

아마쿠사 시로 토키사다(올랭피아 소와레) 문서 참조.

3.8. 바키 시리즈 외전 '레츠 카이오는 이세계 전생해도 전혀 문제 없다'

어째서인지 마법사로 전생했다. 화염마법이 특기인 모양. 부하를 불태우는 걸로 등장해서 레츠와 결투를 벌이다 데미지를 입었으나 마법으로 회복한다. 이후 레츠에게 이세계의 '발버둥치는 자'에 대한 이야기와 단 한 사람만이 전생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러나 레츠가 '그딴 거 모르겠고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 때려눕혀서 중국무술 최강을 이세계에서 증명하겠다'고 답하자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만날 거라 한 후 퇴장.

3.9. 그 외

소년탐정 김전일아마쿠사 보물 전설 살인사건에서는 꽤나 긍정적으로 묘사된다. 이미 죽은 사람이라 별 비중은 없다.

온라인 게임 천하제일상 거상에선 귀곡성의 최종보스로 등장한다. 관련 퀘스트도 있는데 임무 수행원들이 주는 퀘스트 내용을 읽어보면 실제 아마쿠사 시로의 역사적 자료를 이야기해 주며 그와 동료들의 억울한 영혼을 잠재워 달라고 한다.
파일:天草四郎1.jpg 파일:天草四郎.jpg
100만인의 노부나가의 야망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서도 등장한다. 무력이 낮은 것만 제외하면 통솔, 지력, 정치 스탯이 70대 중후반 즈음 되는 B급 무장이다. 여기에 궁병 적성이 S급인데다 족경, 철포, 병기 적성 A로 매우 쓸 만하다. 그러나 전국시대가 끝난 직후에 활동한 인물인지라 군웅집결이 아니면 얼굴 보기가 힘들다.

2022년 발매된 태합입지전 5 DX에서도 등장한다. 다만 게임의 종료 년도가 1621년 1월 1일이라 1621년생인 아마쿠사 시로는 태합판 영웅집결에 해당되는 몽환의 장 시나리오에서밖에 등장하지 않고, 몽환의 장 시나리오는 주인공 카드를 전부 모아야 해금이 된다. 결국 아마쿠사 시로를 얻으려면 키리시탄인 다이묘들 카드를 모두 모으면 발동하는 콤보로 해금해야 한다. 능력치는 매력 이외에는 그다지 좋지 않다. 가상 시나리오에서만 등장해서 의미는 없지만 수명도 짧은 편.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에서는 간접적으로 언급된다. 마법 측의 카쿠레키리시탄 세력의 이름이 아마쿠사식 십자처교인데, 이는 그 시초인 아마쿠사 시로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세인트 영맨에서는 죽은 뒤 천국으로 간다. 그곳의 예수에게 자신은 후미에를 밟지 않았다고 호소하면서 그림을 건네줬더니 예수가 그게 자신인 줄 몰라서(...) 발닦개로 쓰는 모습을 보고 오열하는 장면으로 나온다.[16] 나중에 예수는 십자가나 성화를 밟아야 할 일이 생기면 밟아도 된다고 말한다.

여신전생 시리즈에서는 진 여신전생 IMAGINE부터 등장. 이때의 종족은 마인이었으나 진 여신전생 4에 다시 등장했을 때는 영걸로 등장한다. 참수되었다는 사실 때문인지 한 쪽 팔에 자기 머리를 끼고 있는 듀라한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프로레슬링 NOAH에서 2020년대 기준 활동 선수 중에서 AMAKUSA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선수가 있는데, 링네임과 기믹을 그에게서 따와서 복식도 아마쿠사 시로를 연상케 하는 에도 시대 키리시탄 스타일로 고수하고 있다. 마침 해당 선수의 출신지인 구마모토현에 아마쿠사시가 있기도 하고.[17]

대체역사소설 남한산성부터 시작하는 빙의생활에서는 주인공 이자원의 도움으로 살아남아 조선으로 망명한다. 이후 이자원을 주님이 보낸 성자로 여기며 조선의 전쟁에 적극 협력하다가 조선의 칭제건원 이후 규슈 정벌의 선봉에 서서 규슈를 정복하고 기독교인의 나라를 세운다.

작품중 비밀 종교집단의 미남의 교주가 나온다면 높은 확률로 이 사람이 오마쥬된것이다. 흔한 예로 귀멸의 칼날의 도우마
[1] 상상화다. 수려한 용모를 가졌다는 기록만이 전해지는데, 그를 직접 보고 묘사한 초상화는 현존하지 않는다.[2] 초상화 오른쪽에 보이는 깃발(포르투갈어: LOVVADO SEIAOSACTISSIMO SACRAMENTO / 지극히 존귀하신 그리스도의 성체여 찬미받으소서)은 아마쿠사 시로 진중기(天草四郎陣中旗). 십자군의 깃발, 잔 다르크의 깃발과 함께 세계 3대 군기(世界三大軍旗) 혹은 세계 3대 성기(世界三大聖旗)의 한 축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시마바라의 난 때 키리시탄들이 내걸었던 깃발로, 야마다 에모사쿠가 그렸다.[3] 추측이다. 정확한 생년월일은 불명.[4] 세례명은 일본어 위키백과의 아마쿠사 시로 문서에 따르면 예로니모 혹은 프란치스코라고 등재되었다.[5] 현 행정구역으로는 구마모토현 카미아마쿠사시[6] 대표적으로 '후미에'가 있다. 가톨릭 신자들에게 예수가 그려진 성화를 밟게 하는 정신적인 폭력이다. 또한 운젠다케(雲仙岳)에 있는 유황 온천에서 벌어진 고문도 있는데, 당시 마츠쿠라 가문 측은 그 펄펄 끓는 유황 온천에 기독교인을 넣어 강제로 개종시켰고 이러한 잔인함에 가톨릭과 척을 지었던 개신교 네덜란드인조차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7] 오늘날에 가고시마에는 히데요리의 묘라는 것이 전한다. 몇몇 기록에도 히데요리가 사쓰마나 류큐 왕국으로 도망쳤다는 이야기가 적혀있다고 한다.[8] 정작 막부군은 아마쿠사 시로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참수한 목을 그의 어머니에게 보여줬던 것은 아마쿠사 시로 본인이 맞는지 제대로 확인하기 위함이었다.[9] 가톨릭은 정치적인 이유 또는 단순히 분위기에 휩쓸려 복자 또는 성인을 마구잡이로 인정하는 문제를 막기 위해 대상자를 시복/시성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만 파고 드는 악마의 대변인 제도를 갖고 있다. 교회법에 정통한 전문가, 심지어 반 가톨릭적인 인물이 선출되기도 하는 이 악마의 대변인의 집요한 공격을 방어해야만 시복/시성이 이뤄지는 만큼 조금만 흠결이 있어도 가경자 단계에서 머물게 된다.[10] 그런데 당시 일본에 있던 기독교인들 중에 실제로 일본인 노예 무역에 관여한 자들이 있었다고 한다. 프로파간다로 과장된 걸 감안해도 아예 지어낸 건 아니라는 의미. 그런 면에서 아마쿠사가 대부분 매체에서 악역으로 나오는 건 당대 기독교인들에 대한 인식을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11] 풀이하면 성을 기울이는(傾城) 시마바라(島原)의 개구리 싸움(合戦). 경성은 성(나라)을 위태롭게 만들 정도의 아름다움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문자 그대로 나라를 위태롭게 만드는 역적을 의미한다.[12] 이국의 주술을 사용함, 두꺼비를 소환함, 일본에 반란을 일으킴, 최후에는 뱀한테 죽음.[13] 한국에서는 김시민 목사가 '모쿠소 호간'으로 왜곡되고 덴지쿠 도쿠베가 그의 아들로서 기독교 주술로 두꺼비를 불러내 일본을 전복시키려다 패배한다는 내용으로 알려져있지만, 사실 이건 진주성 전투 이후에 각색한 내용이고, 덴지쿠 도쿠베 이야기는 그 전부터 나왔다. 특히 1757년에 나온 덴지쿠 도쿠베 왕래문(天竺徳兵衛聞書往来)에서는 도쿠베의 정체가 나나쿠사가 변장한 모습이라고 나오기도 한다.[14] 참고로 덴지쿠 도쿠베(天竺徳兵)도 아마쿠사와 마찬가지로 실존인물인데 가부키에서 악역으로 나온다. 이유는 쇄국정치를 하던 시국에 해외 무역을 했기 때문. 덴지쿠 도쿠베란 이름도 사실 '천축(天竺)에 갔다온 도쿠베(徳兵)'라는 이명. 하지만 쇄국 시기에 이국에 갔다왔다는 악명(?)과 그가 직접 집필한 여행기가 대중들의 흥미를 자극하던 차에, 도쿠베가 나나쿠사 시로의 설정을 이어받은 악역으로 등장한 가부키가 대박을 치면서 이국의 피를 이어받아 일본에 반란을 일으키는 두꺼비 요술사라는 기믹은 도쿠베를 대표하는 이미지이자 하나의 장르가 되어 아예 텐지쿠 도쿠베물, 줄여서 텐토쿠물(天徳もの)이라 불리기도 했다. 나나쿠사와의 차이점은 도쿠베가 자신이 갔다온 이국에 대한 경험담을 늘어놓는다는 점. 두꺼비 요술도 이때 배운거라고 각색된다.[15] 이 작품은 1839년에 지라이야 호걸담(児雷也豪傑譚)으로 리메이크 되었으며, 훗날 만화 나루토에 등장하는 지라이야, 오로치마루, 츠나데의 모티브가 된다.[16] 사실 그림이 너무 많이 밟혀 다 뭉개진 상태였기 때문에 자신인 줄 몰랐다고 한다.[17] 단, 해당 선수는 구마모토시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