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악성 三大樂聖 | ||
왕산악 王山岳 | 우륵 于勒 | 박연 朴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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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김정희 | 8월 장영실 | 9월 김소월 | 10월 세종대왕 | 11월 김홍도 | 12월 신재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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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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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 ||||||
1월 김만중 | 2월 최치원 | 3월 이순지 | 4월 서재필 | 5월 김명국 | 6월 유일한 | |
7월 도선 | 8월 심훈 | 9월 왕산악 | 10월 정인승 | 11월 전형필 | 12월 이제마 | |
1997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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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이세보 | 8월 박제가 | 9월 박진 | 10월 장지영 | 11월 왕인 | 12월 송진우 | |
※ 선정 당시 기관명은 문화부(1990~1993) → 문화체육부(1993~1998) → 문화관광부(1998~2005)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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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00d45,#94153e><colcolor=#f0ad73> 3대 악성 중 1명(고구려의 인물) 왕산악 王山岳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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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미상 |
사망 | 미상 |
국적 | 고구려 |
직업 | 음악가 |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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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구려의 인물. 삼국사기에는 본기가 아닌 잡지에 언급되며, 동국통감에는 양원왕 8년에 거문고를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거문고를 만든 사람으로 유명하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그 내용이 나온다.
玄琴之作也 新羅古記云 初晉人以七絃琴送高句麗 麗人雖知其爲樂器 而不知其聲音及鼓之之法 購國人能識其音而鼓之者厚賞 時第二相王山岳存其本樣 頗改易其法制而造之 兼製一百餘曲以奏之 於時玄鶴來舞 遂名玄鶴琴 後但云玄琴
거문고의 제작에 상관하여 『신라고기』[1]에서 이르기를, 처음 진(晉)나라[2] 사람이 칠현금을 고구려에 보내니 고구려인이 비록 그것이 악기임을 알아도 그 성음과 연주하는 법을 몰라 능히 그 음을 알아 타는 자에게 후상한다 하므로 때에 두 번째 재상[3]인 왕산악이 그 본래의 모양을 두고 자못 그 법제를 고치고 겸하여 백여 곡을 만들어 연주하니 이에 검은 학이 와서 춤추어 드디어 현학금이라 이름하고 뒤에 다만 거문고(玄琴)라 일렀다.
삼국사기 권제32 6장 뒤쪽 잡지 1악
거문고의 제작에 상관하여 『신라고기』[1]에서 이르기를, 처음 진(晉)나라[2] 사람이 칠현금을 고구려에 보내니 고구려인이 비록 그것이 악기임을 알아도 그 성음과 연주하는 법을 몰라 능히 그 음을 알아 타는 자에게 후상한다 하므로 때에 두 번째 재상[3]인 왕산악이 그 본래의 모양을 두고 자못 그 법제를 고치고 겸하여 백여 곡을 만들어 연주하니 이에 검은 학이 와서 춤추어 드디어 현학금이라 이름하고 뒤에 다만 거문고(玄琴)라 일렀다.
삼국사기 권제32 6장 뒤쪽 잡지 1악
문제는 기록이 이것뿐이라 이 사람이 활동하던 시기를 확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고구려에 칠현금을 보낸 진(晉) 나라를 동진(東晉; 316년~419년)으로 볼 경우 왕산악은 약 4세기경 사람으로 추정할 수 있다. 안악 3호분·무용총·장천1호분 등의 벽화에서 거문고의 원형으로 보이는 악기의 모습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