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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고기를 잡는 곳
漁場또는 어로를 말하기도 한다. 적절한 어획량을 유지하려면 어장관리를 잘 해 주어야 한다.
1.1. 연애 관련 은어
자세한 내용은 어장관리(연애) 문서 참고하십시오.일반적으로 사람이 자신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복수(複數)의 사람을 관리하는 것, 즉 하렘이다. 그렇지만 관리한 이성들을 여러모로 이용해먹는다[1]는 부정적인 이미지의 단어이다. 특히 경제적으로 이용해 먹는 경우[2]가 많으며, 경제적인 목적이 아니더라도 당하는 입장에서는 피를 토한다. 일반적으로는 어떤 이가 자신에게 성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다수를 관리한다는 뜻.
2. 중국 전국시대의 명검
魚腸월나라의 명인 구야자가 월왕 윤상의 명에 따라 만들었다. 당시 세트로 만들어진 검 다섯 자루의 이름은 각각 담로(湛盧), 어장(魚腸), 순구(純鉤),[3] 거궐(巨闕), 승사(勝邪)라 한다. 이 중 셋은 오나라의 공자 희광에게 전해졌다. 오와 앙숙이었지만, 보다 변방국이었던 월이 다음 왕위 계승의 유력 후보였으므로 선물을 한 검이었다고 전해진다.[4]
이 칼의 주인인 희광은 오나라 왕족이었으나 계승에서 밀려난 것에 대해 남몰래 불만을 품고[5], 모반을 일으킬 계획을 짰다. 신중한 사전 작업 끝에, 마지막 단계로 오자서가 추천한 전제라는 인물에게 어장을 빌려주어 암살을 결행하기로 한다. 당연히 오자서는 아무나 데려온 게 아니었는데, 전제라는 이 인물은 성정이 담대한 자로, 삼엄한 호위병 무리 가운데에서도 전혀 겁먹지 않고 재빨리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을 요구하는 자객의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이었다. 오자서도 할 수 있지만 그는 복수를 위해 아직 죽을 수 없기에 수소문 끝에 전제를 알아내고 데려온 거 였다. 전해오는 야사에 의하면, 이때 전제는 병이 깊어서 더 살 수 없었음을 알았기 때문에 그 스스로 이 암살을 이행하는 인물로 자원했다고도 한다. 전제가 내건 유일한 조건은 남겨둔 식솔의 앞날을 부탁한 것.
전제는 경계가 삼엄한 연회석에서 음식을 나르는 요리사(혹은 하인)로 위장해 오왕 료에게 접근했다.[6] 호위병들이 그의 온몸을 빠짐없이 수색했지만 당연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 다만 그가 나르고 있던 생선요리만은 건드리지 못했는데, 만약 생선을 건드리면 요리 모양새가 엉망이 될테니 넘어간 것이었고, 바로 이 때문에 어장은 생선 뱃속에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전제는 오왕 요 앞에 물고기를 차려놓는 척을 하는 순간(혹은 먹기 좋게 물고기의 살을 발라내는 척을 하다가), 재빨리 생선의 뱃속에 숨겨두었던 칼을 꺼내 오왕의 가슴을 찔러 죽였다. 오왕은 암살을 우려해 속에 갑옷[7]을 입었지만 명검답게 갑옷을 꿰뚫어 오왕 요는 단 한 칼에 즉사했다고 묘사된다. 암살자 전제는 그 자리에서 오왕 요의 호위병들에게 참살당했지만, 희광은 결국 이로 인해 왕위에 올라 스스로를 오왕 합려라 했으며, 후에 전제를 후히 장사지내주고 약속을 지켜 그의 가족을 극진히 대접해 주었다.
생선의 뱃속에서 숨겨져 큰 일을 했다는 의미로 이 칼에는 어장이란 이름이 붙었다. 즉 이전에는 무명이었단 이야기인데, 희광은 원래 엷은 뜬구름 같은 무늬가 있다고 하여 연운(連雲)이라 부를 생각이었다고 한다. 문헌에 따라서는 본래부터 이름이 어장이었고, 전제가 그 이름에서 착안을 하여 생선 뱃속에 칼을 숨겼다고도 한다. 이름이 운명을 결정한다는 견해에 더 가까운 전승이다. 유사한 설명으로 심괄은 저서 몽계필담의 기용(器用) 편에서 칼 위에 생긴 무늬가 물고기 창자처럼 생겨서 그렇게 불린 것이며, 반강검(蟠鋼劍), 송문검(松文劍)도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처]
이때는 아직 청동기가 무기로서 더 널리 쓰이는 시대였으나 보검이었으니만큼 철로 되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9]
본래 계승 순위대로라면 오나라 왕은 희광이 되어야 했으나,[10] 그래도 엄연히 한 나라의 왕을 비겁한 술수를 사용하여 죽였기 때문에 어장은 오왕 요를 암살하는데 쓰인 이후로는 보검으로서의 능력을 상실했다는 전승도 있다.
삼엄한 경계 속에서 암살을 위해 쓰인 점 때문인지 무협지에서는 호신강기를 파훼하는 전설의 암살병기로 등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3. 魚醬
생선을 이용하여 만든 간장(어간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간장, 된장 등에 쓰이는 한자인 醬자는 '젓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사실 이 어장의 제조법에서 콩으로 만든 간장이나 된장의 제조법이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간장과 제조법은 같으나, 콩 대신 생선을 소금에 절여서 발효시킨 것으로, 한국의 액젓과 비슷한 형태이다. 액젓 자체가 어장의 제조법을 참고하여 제조되었다는 말도 있다. 특히 동남아시아 지역 및 중국 남부 해안가 지역에서 조미료로 널리 사용된다. 국내에는 젓갈의 형태로 남아있다. 대표적인 어장으로 로마 제국의 가룸, 태국의 남쁠라, 베트남의 느억맘, 말레이시아의 부두 등이 있다. 남쁠라는 민물고기,[11] 느억맘과 부두[12]는 바닷고기로 만든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종류도 다양한데, 느억맘의 경우 발효과정 중 새우와 게 육수, 야채즙, 야자열매즙, 돼지고기 육수 등 다양한 부재료를 넣어 여러가지 종류를 만든다고 한다.자세한 사항은 피시 소스 참조.
[1] 생선을 어떤 장소에 계속 확보해놓고 필요할때 잡아서 먹는다는 1번 항목의 정의를 생각해보자.[2] 처음부터 어장관리하는 목적이 경제적인 이용을 하기 위해서거나 편하게 부려먹기 위한 것인 경우도 있다.[3] 순균(純鈞)이라고도 불린다.[4] 하지만 희광이 받은 검은 담로와 반영, 어장이라 하는 것으로 보아 기록 전승 중 혼란이 있었던 것 같다. 참고로, 반영은 합려가 자신의 딸과 함께 매장했다고 한다.[5] 원래 오왕 수몽(희광의 할아버지)에게는 네 명의 형제가 있었는데 희광은 그 중에서 장남 제번의 아들이었다. 그런데 선대왕의 4형제 중 넷째 계찰이 가장 어질고 현명해서 수몽과 수몽의 다른 아들들(즉 계찰의 형들)은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했으나 정작 계찰은 막내라서 사양했고 그 다음에는 다른 형제들에게 순서대로 왕위를 계승할 것을 유언으로 남겼으나 정작 계찰이 왕위를 물려받을 때가 되지 또다시 왕위를 사양하고 아예 수도에서 달아났다. 그 다음 왕으로 셋째 여매의 장남인 추우가 왕위에 올랐고 원래라면 왕위에 올랐어야 할 희광은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다.[6] 왜냐하면 오왕 요가 생선구이 요리를 좋아했고, 그래서 전제는 일부러 요의 환심을 사서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일부러 3년 동안이나 생선구이를 다루는 요리집에 들어가 생선구이를 배우는 요리사로 살았다.[7] 정비석의 소설 손자병법에는 사자가죽 갑옷이라 하고, 고우영 열국지에는 쇠그물 갑옷을 입었다고 그려진다. 참고로 사슬 갑옷은 생각보다 찌르기에 취약한 편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잘 만든 것은 칼 한 방에 쉽게 뚫릴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왕이 입는 갑옷이라면 나름 기술을 총동원해 만들었을 것이다. 연회에서 겉옷 안에 입은 갑옷이라니 전투용보다는 가벼운 물건이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그걸 한번에 뚫었다면 강하고 좋은 칼이었을 것이다.[출처] 심괄 저, 최병규 역 몽계필담 하권 36p 범우사 2002[9] 뜬 구름 같은 무늬라는 묘사는 철기시대 초기에 쓴 기법인 접쇠의 흔적일 가능성도 있다.[10] 애초에 희광이 쿠데타를 일으킨 것부터가 원래 혈통상 자신이 우선이었음에도 요가 왕위를 채간 것에 불만을 가졌기 때문이었다.[11] 태국 요리에서 필수적인 조미료이다 보니 태국 내 엄청난 수의 민물고기가 씨가 마를 정도로 이용되어 요즘은 이웃한 나라인 캄보디아의 똔레삽 호수에서 잡은 것으로 만든다.[12] 주로 멸치를 발효해 제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