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2 06:14:43

아리크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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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대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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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제국 대립 대칸
ᠠᠷᠢᠭᠪᠦᠬᠡ | 아리크부카
파일:아리크부카.jpg
묘호 없음
시호 없음
칸호 없음
보르지긴(Боржигин)
孛兒只斤(패아지근)
ᠪᠣᠷᠵᠢᠭᠢᠨ
아리크부카[1](Аригбуха)
阿里不哥(아리부가)
ᠠᠷᠢᠭᠪᠦᠬᠡ
종교 텡그리교
생몰 기간 1219년 ~ 1266년
재위 기간 1260년 3월 ~ 1264년 7월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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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몽골 제국의 건국자 칭기즈 칸의 4남인 툴루이의 막내 아들로 몽케 칸, 쿠빌라이 칸, 훌레구 칸의 동생. 즉 칭기즈 칸의 손자.

2. 생애

어릴 때부터 큰형인 몽케의 총애를 받았고 어머니인 소르가그타니 베키는 아예 같이 살 정도로 크게 아꼈다고 한다.

1259년 몽케 칸이 사망하자, 형제인 쿠빌라이와 훌레구가 각각 원정에 나선 틈을 타 아리크부카는 카라코룸에서 쿠릴타이를 소집해 대부분의 몽골 귀족들의 지지[2]를 받아 대칸의 자리에 추대되었다

이에 반발한 쿠빌라이가 개평부[3]에서 독자적인 쿠릴타이를 소집해 자기 휘하의 몽골족, 여진족 출신 장수들의 지지를 얻어 대칸에 추대되면서 정통성 문제를 놓고 내전이 벌어진다. 아리크부카는 명분과 정통성[4]에서 앞섰지만 결국 중원에 세력을 잡고 있어 풍부한 물자를 지원받을 수 있었던 쿠빌라이가 최종적으로 승리하면서[5] 아리크부카를 비롯한 반 쿠빌라이 세력은 제거되고 쿠빌라이는 비로소 정식으로 제5대 몽골 제국의 대칸으로 인정받게 된다.

아리크부카는 용서를 받아 몽골 고원 서부를 통치하다가 1266년에 사망했다.[6] 아리크부카가 차지하지 못한 몽골 제국의 대칸 지위는 124년 뒤 명나라에 밀려나 완전히 몰락한 천원제(쿠빌라이 칸의 후손)를 아리크부카의 후손인 조리그투 칸인 예수데르가 살해하고 차지하게 된다.[7]

애초에 군사력, 정통성에서 앞섰던 아리크부카가 진 것은 그럴 만한 깜냥이 아니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실제로 전투에서는 승리했는데 포로들을 잔혹하게 대했고 이 때문에 많은 인망을 잃었을뿐더러[8] 내분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계속 편을 잃었고 끝내 많은 일족들이 싸움에서 패배하기 시작하자 아리크부카에게서 등을 돌렸다. 아리크부카는 배신한 자들을 쫓느라 중앙아시아를 활보했고 안 그래도 세력이 줄어가는데 이들을 잔혹하게 살해하기까지 했으니 애초에 정치력이나 앞날을 내다보는 능력이 대칸에 걸맞지 않은 인물이었던 셈.

3. 대중매체

코에이에서 만든 징기스칸 4의 파워업키트 시나리오3(1229년)에서 몽골 제국 도시 회령에서 아버지 툴루이와 형들인 쿠빌라이, 훌레구와 함께 등장 하는데(큰형 몽케는 오논에 있다) 정치57/전투71/지모41로 아버지와 형들에 비해 평범한 능력치다. 크루세이더 킹즈 2에서 Horse Lord DLC 이후 구현되었다.

[1] 몽골어로 '정결한 황소'라는 뜻이다.[2] 주로 오고타이 가문, 차가타이 가문 세력이 아리크부카를 지지하였다.[3] 훗날 원나라의 상도로 오늘날 중국 내몽골자치구에 위치했음[4] 몽골인들은 막내에게 자기 재산을 물려주는 풍습이 있어 아리크부카는 몽골 본토를 다스릴 수 있었고 또한 쿠빌라이가 칭기즈 칸이 경계한 한화 정책을 펼치면서 대다수의 몽골인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몽케가 공공연히 자기 후계자로 아리크부카를 찍어둔 것을 가신들도 전부 알았지만 가산과 가권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말도 있으니 참고하자. 링크[5] 이때 고려 원종이 태자 시절에 몽골 제국과의 강화를 위해 카라코룸으로 가던 중 쿠빌라이를 만났는데 이 만남이 몽골과 고려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자세한 것은 여몽전쟁 참조[6] 그의 죽음에 대해 독살 의혹이 있으며 정황상 그럴 가능성도 높다.[7] 다만 이후로 아리크부카 계열이 완전히 대칸 자리를 독점한 것은 아니라서 이후로도 쿠빌라이 계통과 계속 대칸자리 두고 지겹게 싸웠다. 그래서인지 사한국도 그런 면이 강했지만 몽골도 조리그투 칸부터 다얀 칸 이전까지 92년 동안 15명의 대칸이 즉위하는 혼란이 벌어진다.[8] 이게 타민족이면 상관없는데 같은 유목민족에게 그랬다는 것이 문제다. 실제로 아리크부카의 할아버지인 칭기즈 칸자무카를 비롯한 다른 경쟁자를 이길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관대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