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서효원 徐孝源 | |
출생 | 1959년 11월 29일 |
강원도 원통 | |
사망 | 1992년 12월 14일 (향년 33세)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가족 | 서희원 (형) |
학력 | 금성초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속중학교 (졸업) 동북고등학교 (졸업) 성균관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산업심리학 / 학사) |
직업 | 무협 소설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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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1세대 무협지 작가.성균관대 산업심리학과에 재학중이던 1980년에 위암 판정을 받아서 수술을 받았고,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 시한부 생명을 선고받는다. 이후 암 치료비를 벌기 위해 당시 고소득직종[1]이었던 무협을 집필하기 시작, 1992년에 폐기종으로 사망할 때까지 단 12년 동안에 128편, 1000여권에 달하는 저서를 남겼다. 다만 집필 과정을 일일이 검증할 수 없기 때문에 기네스북에 오르지는 못했다.
2. 작품 특징
서효원이 이렇게 다작이 가능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우선 서효원 특유의 문장이 한몫한다. 건조체의 궁극에 도달한 듯한, 작중 묘사와 수식어를 최대한 배제하고 사건 위주로 서술한다. 때문에 한번이라도 서효원 작품을 읽어본 독자라면 누구나 '이거 서효원이 썼구나'하고 쉽게 알아본다.황금의자.
무게가 천 근은 되어 보이는 황금의자 위에는 눈빛이 아주 차가운 중년인이 하나 앉아 있었다.
"구파일방 중 소림사를 제외한 아홉 문파가 제왕성에 칼부리를 돌렸다고?"
그는 도열해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두 줄로 늘어선 사람들. 그들 사이에는 핏빛 융단이 길게 깔려 있었다.
융단의 길이는 백여 장.
제왕전.
거대한 대전은 무림계가 두려워하는 신위를 지니고 있는 장소였다. 구파일방 장문인 중 여기 와서 경배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지 않은 자 있겠는가?
이곳은 무림인들에게는 꿈의 장소였다. 아주 오랫동안. 그런데 이곳이 지금 바닥에서부터 균열이 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제왕성'의 첫머리
두번째는 플롯이다.무게가 천 근은 되어 보이는 황금의자 위에는 눈빛이 아주 차가운 중년인이 하나 앉아 있었다.
"구파일방 중 소림사를 제외한 아홉 문파가 제왕성에 칼부리를 돌렸다고?"
그는 도열해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두 줄로 늘어선 사람들. 그들 사이에는 핏빛 융단이 길게 깔려 있었다.
융단의 길이는 백여 장.
제왕전.
거대한 대전은 무림계가 두려워하는 신위를 지니고 있는 장소였다. 구파일방 장문인 중 여기 와서 경배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지 않은 자 있겠는가?
이곳은 무림인들에게는 꿈의 장소였다. 아주 오랫동안. 그런데 이곳이 지금 바닥에서부터 균열이 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제왕성'의 첫머리
서효원은 많은 작품을 썼지만, 많은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즉 동일한 플롯을 조금씩 다르게 변주해 반복적으로 들려줬다[2]. 바로 부활이다. 일단 부활하려면 당연히 전에 죽었어야 하니까. 서효원 작품에서 주인공은 고생 정도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 거지반 죽었다 가까스로 살아난다. 물리적인 죽음이 아니라, 아이덴티티 상실이라는 변형도 즐겨 썼다. 서효원의 작품에 있어서 부활에 대한 집착은 본인이 시한부 생명 선고를 받고도 끈질기게 버티고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으며 이런 처절한 이야기 전개는, 특유의 건조한 문장과 결합해 하드보일드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하지만, 이러한 작풍을 뒤집어 말하자면, '또 그 얘기 또 그 문장'이란 소리다.
3. 다작에 대한 일화
한편, 서효원 다작에 관해서는 전설적인 일화가 많이 전한다.- 살아 생전에 오직 두 손가락으로만 타자를 쳤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독수리 타법의 달인.
- 시기가 시기인지라 타자기로 글을 썼는데 어찌나 빨리 타자를 치는지 한번은 타자기 판매원이 신상품이라면서 정말 빨리 쳐도 된다면서 가져왔는데 전력을 다한 타법에 견디지 못하고 부품이 팅~하고 튕겨져나와서 고물이 되었다고도 한다.
- 조금이라도 짬이 나면 원고를 썼기 때문에, 한꺼번에 몇 작품을 쓰는 일도 있었다고.
- 이 시기 무명 작가 작품을 유명 작가의 이름을 달고 내는 일이 많았는데, 서효원은 워낙 빨리 그리고 많이 쓰니까 '사기치지 마라. 이거 한 사람이 쓴 거 아니지?'하고 태클이 들어와서 멀쩡한 자기 작품을 다른 사람 이름으로 내야했다. 즉 필명을 하나 또 만들었다.
- 가장 압권인 일화는 서효원을 포함한 몇몇 무협작가들이 모여서 포커를 치던 중, 판돈이 떨어지자 서효원이 담배 한 보루와 원고지 뭉치를 들고 골방에 들어가 몇 시간 후 나와서[4] 반권 분량의 원고를 내놓으며 "이걸 판돈으로 계속 하자"고 한 것.[5] 술집에서 술 마시다가 술값이 없자 이렇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착오로 신작의 원고가 반권 가량 부족하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앉은 자리에서 몇 시간동안 반권 분량을 써서 보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 당시 상황을 잘 모르는 이들을 위해 첨언하자면, 서효원이 그 자리에서 반권을 썼다는 얘기에서 반권은 요즘 책 기준으로 환산하면 1/4권 가량에 불과하다. 서효원이 활동하던 당시에는 무협지 1질은 오늘날 서점용 판형으로 환산하면 3권이 조금 못되는 분량이었다.(세로쓰기 5권이 1질이었다.) 이후 세월이 흐르며 6권, 7권으로 늘어났지만 언제나 판형 자체는 작았다. 더구나 당시 무협은 제아무리 인기 작가라해도 원고 매수가 정해져 있었다. 90년대 후반 무협 재간 붐이 일었을 때 서점용 판형으로 다시 나온 과거 무협지들의 대부분이 3권 완결인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즉, 무조건 정해진 분량 안에 기승전결 구조를 짜맞춰서 완결짓는 기교는 필수였다는 얘기. 이런 환경에서 서효원은 무협 작가 가운데 손꼽히는 워커홀릭[6]에 다작에 속필인 작가였으니 저런 전설같은 일화를 남길 수 있었던 것.
- 공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이들 중에는 책방에만 가면 있는 서효원의 책 때문에 '서효원도 공장 돌렸나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혼자서 공장과 맞짱뜬 거다.
4. 대표작
대표작은 말하는 사람마다 중구난방인데, 아무리 못쓴 작품도 중간은 가는 고른 퀄리티를 보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독자의 입맛에 달렸다고 보는 편이 옳다. 대체로 범작은 있어도 졸작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그냥 아무 작품이나 읽어보고 마음에 들면 다른 작품도 계속 읽으면 된다. 반면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도저히 못 읽겠다 싶으면 깨끗이 포기하자. 특히. 소설에 꾸준히 구무협 클리셰가 나오는 것이 현대 독자들에게는 호불호가 크게 갈릴 요소이다. 예를 들어 절벽에 떨어졌더니 무공 비급이나 영약이 있다거나, 주인공이 절정 고수임에도 춘약에 당해 성욕이 끓어올라 여자를 강간하는 이야기가 수도 없이 나온다.참고로 실명 시리즈와 천년 시리즈는 제목만 비슷할 뿐 세계관이 이어지는 작품은 아니다. 즉, 실명대협과 실명마제는 서로 상관없는 작품이다.개중 이름난 작품을 꼽으면 다음과 같다.
- 대자객교(大刺客橋) (1983)
- 대설(大/雪=인문제십좌) (1985)
자객 집단인 살수인문의 고수 백무엽이 살생을 벌인다는 이야기다. 백무엽이 '인문제십좌'라 불리는 이유는 살수인문의 코드 네임이라서 그렇다. 제십좌는 열 번째 고수라는 뜻으로, 제일좌, 제이좌 순서다. 대자객교와 완전히 동일한 플롯이며, 그뿐만 아니라 초반 사건 전개조차 비슷하다. 다만 같은 이야기를 대자객교는 오밀조밀하게 다뤘고, 대설은 판을 크게 벌렸다. 서울창작 재간본의 경우 대자객교는 3권, 대설은 5권. 때문에 서효원의 대표작으로 대자객교보다 대설을 꼽는 팬도 많다.
대자객교와의 공통점을 예로 들면 1. 작품 초반, 이혈릉/백무엽은 서생으로 변장하고 있다가, 자신을 호출하는 신호를 본다. 2. 이혈릉/백무엽은 암살 대상에 대한 편지를 전달 받는데, 이 편지는 책 속에 숨겨져 있었다.[7] 3. 편지의 내용은 각각 "사살에게!", "제십좌에게!" 로 시작하며, 편지 끝부분에 "너에게 일을 맡기는 이유는 네 경공/임기응변이 가장 뛰어나서다." 라는 말이 덧붙여져 있다. 4. 대자객교는 초반에 냉혼이라는 기녀가 이혈릉의 뺨을 때리는데 대설에서는 설향이라는 기녀가 백무엽의 뺨을 때린다.
내용과는 별개로 이 소설은 무협에 별 관심없는 일반인들에게도 유명한데 그 이유는 창세기전2가 이 작품의 스토리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맥빠들은 창세기전2의 기본 플롯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스타워즈와 만화 바스타드이며 기억상실이나 선악반전은 클리셰일 뿐이기 때문에 생억지라고 꾸준히 반론하지만, 대설의 스토리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은 마도가 천하를 통일하고 백도를 탄압하는 시대에 기억을 상실한 마도의 일인자가 백도의 구세주로 활약한다는 부분이다. 마도를 제국으로 치환하면 창세기전 2의 스토리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무엇보다 창세기전의 프로듀서인 최연규는 하이텔 무림동에서 활동하면서 무협 소설가를 지망했던 사람이었고 무림동에서 활동했을 당시 서효원 작가의 열성 팬으로 상당히 유명했던 이력을 지니고 있기에 이 작품을 모를 수가 없다.
- 실명(失/名) 시리즈
실명대협(失名大俠), 실명마제(失名魔帝), 실명천하(失名天下)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목에서 공통으로 쓴 실명(이름을 잃다)이란 단어가 뜻하는 것처럼, 아이덴티티를 상실한 주인공을 다루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제목만 같고 내용적으로는 아무 상관도 없는 작품들이다. - 실명대협
작중 마도 문파의 호법인 혈수광마웅이 전국에서 천 명의 아이들을 납치한다. 이들중 일천호[8]가 고된 훈련 끝에 마도 무림의 지존인 구마령주가 되어 백도 무림을 점령하려 들지만, 막상 혈수광마웅이 배신하여 백도로 가 운리신군이라 별호를 바꾸고 계략을 꾸며 구마령주를 끝장내 버린다. 이후 죽어가던 구마령주를 과거 인연이 있던 정파의 두 노고수가 구해주고 구마령주는 개과천선하여 백도의 고수가 되어 위선자인 혈수광마웅에게 복수한다는 이야기다. 서효원의 기존 작품들과 꽤 차이가 있는데, 다른 작품들에선 주인공들이 선인으로 나오는데 비해 이 작품은 주인공이 초반부에는 철저한 악인으로 나온다.[9] 이 때문에 최후반부에서 백도 무림으로 편을 갈아탔던 주인공의 정체가 밝혀지자 백도 무림인들이 어처구니없어 하며, 이 녀석도 사실은 좋은 녀석이었어 클리셰가 적용되어 주인공의 과거가 세탁된다.
실명 시리즈중 유일하게 2009년 청어람에서 재출간되어 21세기에 종이책이 나온 셋 뿐인 서효원의 작품이다.[10]
또한 만화가인 황성이 만화화한 적도 있다. 하지만 황성 문서에 적혀 있듯이 서효원 이름은 빼고 글, 그림 둘 다 황성이라 되어 있다. - 실명마제
검왕성주의 아들이었던 곡비룡이 자신의 검술 스승에게 배신당하여 무공을 잃고 얼굴을 뜯긴 채로 살아남는다. 그러나 과거 아버지가 물리쳤던 마도 고수의 마공을 얻고 복수한다는 내용. 얼굴, 무공을 잃었기 때문에 당연히 검왕성의 후계자라는 신분은 최후반부에서야 되찾는다. - 실명천하
명나라 황제의 배다른 동생인 주린이 반역을 획책했다는 누명을 쓸 위기에 처하자 직접 백성들에게 행패를 부린다. 그 때문에 "황족의 명예에 먹칠을 했다."는 이유로 황궁에서 쫓겨난다. 이후 이름을 목비린으로 바꾸고 무공을 익힌다는 내용. 당연히 원래 신분은 최후반부에서야 되찾는다.
- 천년(千/年) 시리즈
천년세가, 천년야망, 천년마제로 구성되어 있다. 천년이란 제목답게 주로 천년 전 고수로부터 현재 주인공으로 이어지는 싸움을 다루고 있다. 서울창작에서 천년 시리즈를 재간할 때는 이미 재간붐이 일어서 흐지부지 묻혔다. 그러나 처음 발표했을 때는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 천년마제(千年魔/帝)
원래 부잣집 아들로 잘 살고 있던 소년 탁옥룡이, 자신이 살던 집과 아버지가 옥룡마궁이라는 무림 단체에 습격당하자 운 좋게 탈출하여 복수한다는 내용. 이때 아버지가 사실 탁옥룡은 양자라는 사실을 말해준데다, 옥룡마궁의 고수에게 얼굴을 맞아 엄청난 추남이 되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뇌한다는 내용이다.[11] 당연히 최후반부에서 환골탈태하여 본래 얼굴을 되찾고, 자신의 친부모가 누군지 알아내서[12] 신분을 되찾는다.
주인공이 천년마제라 불리는 이유는 주인공이 초반에 얻은 무공이 자그마치 천년 전 고수가 남긴 무공이라 그렇다. - 천년야망(千年野/望)
무적세가라 불리며 무림을 지키던 하후세가가, 마도 고수들의 계략으로 무너진다. 살아남은 하후세가의 식솔들이 복수를 꿈꾸며 일천년 동안 힘을 기른다는 내용.
- 대곤륜(大崑崙) (1987)
80년대 후반 한국무협이 고사할 위기에 처하자, 세로판 대신 가로판 양장 무협을 출시하는 등 내부적으로 자정 노력이 일었다. 이 시기 작품 가운데 하나로 출간 시기가 80년대 후반인 만큼 서효원의 후기 작들 중 하나다.
백무영이란 소년은 자신의 원래 신분도 모른채 태어났을 때부터 여섯 명의 사부에게서 무공을 배우는데[13] 알고 보니 자신이 자객이 되기 위해 무공을 배웠다는 것을 깨닫는다. 작품이 흐름에 따라 사실 자신에게 무공을 전수해주던 일사부가 당시 백도 최고수인 잠풍이란 사실을 알게 되며[14] 이후 진짜 목표는 잠풍이 아니라 마도 최고수인 함백이지만 함백 암살에는 실패하고 주인공이 무공을 잃고 변황으로 도망친다. 스토리가 진행됨에 따라 자신이 과거 무림 최고수였던 백비룡의 아들이란 사실을 깨달으며[15] 사실 여섯 사부들은 백비룡을 죽인 원수인데, 백비룡한테 미안해서 백무영을 키웠다는 과거가 있다. 아무튼 최종적으로 자신이 백비룡의 아들이란 걸 깨달은 백무영이 최종보스를 물리치지만 무림맹주가 되어 달라는 잠풍의 요구를 무시하고 죽은 척하여 은둔하는 엔딩이다. 백무영의 뜻을 깨달은 잠풍이 큰소리로 "그 녀석, 결국 죽었구나!" 라고 말해주어 무림인들은 주인공이 죽은줄로 알고 있다.
제목답게 한국 무협중 드문 곤륜파 출신이 주인공인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곤륜파는 구파일방 소속 문파가 아닌, 변황에 있는 신비 문파로 나오기에[16] 다른 한국 무협 소설에서 나오는 곤륜파를 생각하면 실망할 수도 있다.
제목답게 한국 무협중 드문 곤륜파 출신이 주인공인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곤륜파는 구파일방 소속 문파가 아닌, 변황에 있는 신비 문파로 나오기에[16] 다른 한국 무협 소설에서 나오는 곤륜파를 생각하면 실망할 수도 있다.
후술하듯이 2008년에 대자객교과 함께 영상노트에서 재출간해서 21세기에 종이책으로 나온 서효원의 세 작품중 하나다.
- 천외천(天/外/天)
글 선생 밑에서 공부만 하던 서생 천후검이, 불행한 일을 겪고 사부의 유언에 따라 무공을 익히고 무림에서 암약하는 마도인들과 싸운다는 내용이다. 화형령주만큼은 유명(?)해지진 않았지만 초반부에 NTR이 나오며, 작품 후반부에 주인공이 사랑했던 여성이 주인공이 아닌 다른 남자를 선택하고 그 남자와 동반자살한다. '천외천'이란 제목은 작중 9개의 신비 문파가 나오는데 이중 하나가 천외천이다. 주인공은 원래 다른 문파의 무공을 익혔으나 최후반부에 천외천의 무공도 익히게 된다.
- 사형령주(死/刑/令/主)
무림에 어떤 연쇄살인마가 나타난다. 그런데 그 살인마가 남긴 증거는 주인공의 아버지가 범인이라는 것이었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결백을 호소하지만 분노한 무림인들은 듣지도 않고 아버지는 물론 모든 식솔들을 살해한다. 이중 하인 한 명만이, 주인공과 주인공의 어머니를 죽이며 "저와 제 아들만을 살려 주십시오." 라고 빌어서 하인과 갓난 아들만 살아 남는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하인은 주인공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아들과 주인공을 바꿔 치기한 것이었고, 세월이 흘러 주인공이 10살이 되자 하인은 후환을 없애기 위해 자신과 주인공을 죽이려는 백도 무림인들로부터 탈출시키고, 도망가던 주인공은 우연히 전대 마두인 사형령주를 만나 가르침을 받아, 무림에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범인의 정체는 후반부에서 밝혀 지며, 주인공은 3가지 아이덴티티가 있어서[17] 바쁘게 움직이는 작품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주인공의 진짜 아이덴티티는 최후반부에서야 되찾는다.
야설록이 쓴 동명의 소설이 있다.
- 화형령주(火/刑/令/主)
어떤 절의 스님이었던 주인공에게[18] 사부의 귀신이 나타나 무공 비급을 주며 익히라길래 익히고, 이후 마벽이란 절벽에 가 그곳에 숨겨진 무공을 얻게 된다. 그런데 사실 알고 보니 죽은 사부의 귀신이 아니라 마도의 대종사가 변장한 것이었고, 주인공이 보기 드문 천재인 것을 알고 주인공을 이용한 것이었다. 이후 주인공은 토사구팽을 당하나 운 좋게 어떤 여자에게 구해지고, 그 여자와 결혼하지만 NTR당한다. 마도 대종사에게 토사구팽당했을 때 기억을 잃어서 사랑하던 여성이 새로운 이름을 붙여줬으며 주인공의 진정한 아이덴티티는 후반부에서 되찾는다. 초반부의 충격적인 NTR 전개로 무협 갤러리에서 NTR 무협 추천해달라고 하면 가끔 언급되던 소설이다. 다만 2023년 기준으론 서효원 작품들이 인지도가 없어서 추천해주는 사람이 없다.
- 혈탑(血/塔)
서효원 작품중 엔딩이 100% 해피 엔딩인 몇 안 되는 작품이다. 다른 작품들은 상술했듯이 주인공이 슬픔, 허무함을 느끼거나 자신의 신분을 버리는데 이 작품은 엔딩에서 주인공이 버리는 것도 없고, 원래 좋아하던 여성과 결혼하여 해피 엔딩을 맞는다. 작품 초반 주인공이 마도가 쳐들어 와서 정체를 숨길 생각으로 인피면구를 쓰고 이름을 바꾸고 도망쳤는데, 이 때문에 마도 무림은 주인공이 다른 인물인줄 알며 진짜 아이덴티티는 최후반부에서야 되찾는다.
- 대자객단
주인공의 아버지는 원래 명나라 황실의 대장군이었으나 모함을 받고 사형당한다. 주인공은 아버지와 같이 죽겠다고 버텼으나 부하들에 의해 억지로 도망치게 된다. 이런 설정 때문인지 서효원의 다른 작품과는 달리 주인공이 탕아로 나온다. 원래 기존 서효원 소설 속 주인공들은 욕망도 숨기고 재물이나 여색을 탐하지 않는 모범적인 영웅상인데, 이 작품은 초반엔 주인공이 술이나 여자를 탐하기 때문.
- 자객 무
- 숭산
출간 시기는 불명이나 문체가 서효원의 다른 소설들과 많이 다르고 주인공의 성격도 기존 작품들과 많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작가가 쓴 대필 작품이거나 서효원이 스타일 변화를 시도한 것으로 추정된다.
- 창궁무적검
출간 시기부터가 2010년대이고, 뭣보다 각종 인터넷 서점에서 작품 소개로 "서효원의 미공개 유작 최초 공개."라고 적힌 것으로 볼 때, 서효원 이름만 달고 있지 서효원이 쓴 작품이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뭣보다 숭산과 마찬가지로 서효원의 기존 소설들과 문체, 주인공의 성격 등이 많이 다르다.
그밖에도 다른 작품이 많다. 다만 가끔 인터넷 서점에서 전자책으로 '이광주'라는 작가와 공저인 작품들이 있는데[19] 이런 작품들은 확실치는 않지만 이광주의 작품이지만 서효원의 이름만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문체나 스토리가 서효원의 기존 작품들과는 상당히 다르다.
유고집으로 '나는 죽어서도 새가 되지 못한다'가 있다. 서효원이 생전에 지은 시들[20]과 산문, 그리고 그를 추모하는 글을 실었다.
서울창작에서 90년대 말 상당수 작품을 재판했으나, 최근 들어 영상노트에서 재판한 작품은 대자객교와 대곤륜 밖에 없다. 그리고 청어람에서 재판한 작품은 실명대협 뿐. 2020년 기준 대자객교, 대곤륜은 절판되었다.
그리고 2011년에 와서 전자책으로 수많은 양의 저서를 다시 재판했지만 100% 전부 재판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서효원이 가장 처음 쓴 작품인 무림혈서가 전자책으로 없는데 아마 종이책을 구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무협 연구가로 활동 중인 그의 형 서희원은 서효원의 지인들과 뜻을 모아 출판사 서울창작을 설립하고 서효원의 작품들을 재간했으며 네이버 캐스트에서 무협에 대한 글을 연재 하고 있다.
5. 내용에 대한 비판
금강, 야설록, 사마달, 검궁인과 함께 과거 한국 구무협을 대표하는 작가들 중 한명이지만 2024년 독자들이 보기엔 내용이 거북할 수도 있는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작품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중화사상이 심하다. 몇몇 작품들은 최종보스가 몽골인(원나라인)이며, 이럴 땐 주로 "중원을 다시 정복하려는 사악한 몽골인 vs 명나라 주인공"으로 전개된다. 귀검행에선 주인공이 "동이의 계집들은 온순하다는데... 네년은 매우 잔혹하구나."라는 말마저 한다. 여기서 동이는 당연히 고려나 조선, 즉 한국이다. 심지어는 여주인공의 외모가 아름답다는 묘사를 하기위해 전족을 한 발이 귀엽다는 투의 서술을 한 작품도 있다.
그러나 이점에 대해서 변명을 하자면 애초에 무협 자체가 중국이 무대이고 주인공들 역시 중국인이므로, 개연성만 따지면 중화사상을 지닌 것이 낫다. 중원 무림인이 고려 최고나 조선 최고를 외치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그래도 21세기 한국인 독자들 입장에선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
- 주인공이 절벽에 떨어질 때마다 기연을 얻는다. 이 기연은 전대 고수가 남긴 절세무공일 때도 있고, 만년 묶은 산삼같은 영약일 때도 있다. 전자의 경우 어떤 때는 전대 고수가 죽기 전에 벽에 글자를 새긴 정도지만, 천년마제나 혈탑처럼 마치 주인공을 위한 수련용 건물마저 미리 마련한 작품도 있는데, 21세기 독자들이 보기엔 억지스럽다.
매 작품마다 등장하는 이러한 장면은 작품의 긴장감을 떨어트리는데 한몫하였다. 예를 들어 실명대협에선 초반~중반까진 마교에 납치된 주인공이 수련한 끝에 대마종이 되고, 이후 무림 정복을 하다가 정파 측의 반격으로 무너지는 스토리가 연출되었다. 그러나 모든 걸 잃은 주인공이 좌절하는 스토리로 진행되다가, 절벽 밑에서 영약 한 번 얻고 다시 강자가 되어 상대방을 쓸어버리는 먼치킨 깽판물로 바뀐다.
이는 혈탑 역시 마찬가지인데, 초반엔 주인공이 1천일 동안 수련하다가 내공을 빼앗기고 폐인이 되는 과정을 자세하게 썼지만, 역시 뜬금없이 절벽에서 기연을 얻고 다시 강해진 주인공이 악당을 때려잡는 흔한 먼치킨 깽판물이 된다.
사실상 절벽에 떨어지는 것이 치트키나 인생 역전급으로 나온다. 주인공이 절벽에 떨어지는 장면이 나오면 "아, 이 녀석 엄청 강해지겠구나."할 정도이다.
사실상 절벽에 떨어지는 것이 치트키나 인생 역전급으로 나온다. 주인공이 절벽에 떨어지는 장면이 나오면 "아, 이 녀석 엄청 강해지겠구나."할 정도이다.
- 주인공이 백독불침이나, 혹은 그런 설정이 아니더라도 독에 강한 것으로 나오는데 이상하게 춘약에는 도저히 못 당한다. 그래서 누가 춘약을 피우면 발정나서 근처에 있는 여성을 덮친다. 아무리 약 때문이라지만 따지고 보면 성폭행이다. 그런데 주인공에게 강간을 당한 여성은 오히려 주인공이 남자답다며 주인공에게 반한다.
그밖에 여성 캐릭터가 다치면 주인공은 늘 성행위로 내공을 나눠줘서 치료한다. 반대로 다친 주인공을 여성 캐릭터가 성행위로 치료해줄 때도 있다. 그리고 당연히(?) 남성 캐릭터가 다쳤을 땐 성행위로 치료 안 하고 그냥 영약 나눠주거나, 다른 치료법을 쓴다. 아니면 조연 남캐는 죽게 내버려 두거나.
- 전투 장면이 굉장히 길고 지루하다. 묘사는 짧지만 등장인물의 대사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악당들이 "으으...! 가히 천하제일의 검술이다!"라며 주인공의 무위에 경악하는 대사가 싸우는 내내 나온다. 막상 저런 대사들을 제외하면 전투 묘사는 엄청 짧으며, 실제로 읽어보면 주인공이 손을 휘두르자 번쩍! 하고 빛이 나더니 상대방이 죽었다는 묘사만 있다.
- 비판과는 별개로 용어가 묘하게 달라 무협 소설을 웹소설로 처음 접한 독자들은 헷갈릴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서효원은 '마교 교주', '천마' 대신 '마종사', '마종'이란 용어를, '무림맹주' 대신 '검왕성주', '중원 검협회주'같은 용어를 썼다.
그래서 이런 전개나 묘사는 후대 작가들이 비판하기도 했다.
- 홍정훈 작가가 쓴 흑랑가인에선 고수가 되고 싶은 사람은 바로 절벽에 투신한다, 춘약이라고 속이고 그냥 평범한 가루를 뿌렸더니 플라시보 효과로 고수들이 여성을 덮치더라, 무협에서 전투 장면은 1줄이지만 성행위 장면은 수십줄이다, 구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산삼 밭을 만들고 죽었다[21]같은 서술이 나온다.
- 유기선 작가가 쓴 극악서생에선 1부 중후반부에 병에 걸린 여성을 주인공이 치료해야 하는 상황에서, 주인공이 "옛날 무협에 나오는 성행위로 치료하는 짓은 하지 말고 다른 방법으로 치료하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서효원 소설에서 그런 장면이 나오던 걸 비꼰 것이다.
- 정구 작가의 박빙에선 주인공 오도경이 악당을 절벽에 떨어트려 죽이자, 다른 인물이 "절벽에 떨어지면 반드시 살아 남는단 말이야!"라며 혼낸다. 그런데 실제로 그 악당이 살아나서 다시 나타난다.
6. 작가 연보[22]
1959년 11월 29일 강원도 원통에서 출생1966년 3월 금성국민학교에 입학
1968년 4월 간염이 발병하여 앓아눕다. 이후 타계할 때 까지 병마에 시달리는 삶을 살았다.
1972년 3월 서울대학교 사대부속중학교에 입학.
1975년 3월 동북고등학교에 입학.
1978년 3월 성균관대학교 산업심리학과에 입학.
1980년 3월 위암 판정을 받고 위, 비장, 췌장을 절개하는 수술을 받았다. 집도의로부터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 시한부 생명을 선고받았다.
1980년 9월 무협 소설 작가로 데뷔, 데뷔때 부터 월평균 1만여매의 원고를 집필하였다.
1982년 2월 성균관대학교 산업심리학과를 졸업하였다.
1987년 집필한 무협소설이 100종을 돌파하였다. 이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다.
1988년 5월 시 운동단체 '바우시낭송단'에 가담하여 1991년까지 단장을 맡았다.
1989년 4월 잠잠하던 병세가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1989년 12월 각종 합병증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990년 6월 만화 전문 프로덕션 '서울창작 패밀리'를 동료작가인 사마달, 야설록, 설화담, 유남광, 형인 서희원과 함께 설립하였다.
1990년 12월 폐결핵 3기를 진단받았다.
1991년 11월 병원에서 가망없다는 통보를 받고 귀가했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6개월간은 집필과 외출이 가능했다.
1992년 5월 육체의 쇠잔으로 다시 병상에 눕다.
1992년 12월 14일 새벽 1시 30분. 운명했다. 향년 만 33세
[1] 검궁인 인터뷰를 인용하자면, 당시 대기업 초임이 25-30만원이었는데, 첫 출판한 무협소설 한질의 원고료가 66만원이었다고 한다.[2] 검궁인은 구무협 작가의 스타일을 비율하면서, 사마달을 구성주의라고 불렀는데, 그보다 더 한 구성주의가 서효원이라고 평했다.[3] 금강, 야설록, 사마달, 서효원[4] 다른 작가들은 그가 포기한 것으로 여기고 계속 포커를 쳤다고 한다.[5] 금강의 말에 의하면 이건 루머라고 하는데 좌백도 그의 책 '부부만담'에서 '포커를 치다 말고 원고를 쓰고와서 다시 포커를 쳐서 과거 전설이 된 작가'를 언급했다. 다만, 이쪽에서는 창작이 빠르다는 의미가 아니라 집중력이 강하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창작을 해보면 백지에 글 한줄 적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것이다.[6] 또 다른 유명한 워커홀릭은 검궁인이 있다. 이쪽도 서효원 못지 않게 빨리 작품을 썼다. 위 각주에서 언급된 인터뷰에서도 나오지만, 한달에 한질을 꾸준히 쓴 사람은 서효원과 검궁인 뿐이었다. 당시 무협지 1질은 이후에 문고판으로 재간된 판본을 기준으로 하면 소설책 3권 분량이다. 즉, 두 사람은 1달에 무려 소설책 3권(...)을 써서 발표했다는 것. 다만 활동기간이 짧기 때문에 검궁인의 경우는 80종 정도로 끝난다. 재미있는 것은 검궁인도 폐결핵에 시달리다가 병 치료 등을 위해서 무협을 썼다는 것이다. 물론 검궁인은 2020년대인 현재도 쌩쌩하게 살아있다.[7] 이혈릉의 취미는 오래된 서가에서 중고 책을 빌려 보는 것인데, 중고 책 속에 편지가 있었고 백무엽은 거대 상단이 배달해준 책 속에 편지가 있었다.[8] 코드네임이다. 일호, 이호 순으로 있으므로 일천호는 가장 마지막 아이. 본명은 능설비로 원래 명나라 황제의 조카이나 "마도 고수에게 본명은 필요없다." 는 철칙 때문에 본명을 쓰지 못한다. 이 본명과 황제의 조카라는 신분은 최후반부에서야 되찾는다.[9] 수많은 정파 무림인들을 학살했다.[10] 나머진 영상노트에서 2008년에 출간된 대자객교, 대곤륜 종이책.[11] 양자라는 사실 때문에 "내 친부모는 누굴까?" 라는 고민을 수도 없이 하고, 얼굴이 망가져서 주변 관계도 끝장났다. 원래 탁옥룡을 사모하던 소녀가 있었는데 얼굴이 망가지고 못 알아본다.[12] 작중 꾸준히 주인공에게 덤비던 소림승 무혈검이 친아버지였다.[13] 여섯에게서 동시에 받는 것이 아닌, 순서대로 배웠다. 그래서 육사부 밑에서 몇년 수련하고 오사부로 넘어가고, 나중에 사사부에게 넘어가는 식. 다만 소설이 시작했을 땐 이미 육사부의 수련을 끝낸 상황이라 오사부부터 등장한다.[14] 일사부가 백무영에게 "잠풍을 암살하라." 고 명령했는데, 알고 보니 잠품이 일사부인 걸 알고 백무영이 당황하는 장면이 있다.[15] 백비룡의 초상화를 본 백무영이 "나랑 똑같이 생긴 얼굴이라니!" 라며 놀라는 장면이 있다.[16] 구파일방인 건 맞다. 다만 이 작품에서 구파일방은 마교에 대항하는 연합체가 아니라 강한 문파 9개를 묶어서 부르는 것 뿐이다.[17] 사부에게 배운 무공을 쓸 땐 '2대 사형령주'라 불리는데,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땐 다른 무공을 쓰며 '냉혈신마'라는 별호를 쓴다. 이 때문에 주인공의 정체를 모르는 무림인들은 이 둘이 다른 인물인줄 안다.[18] 무공을 익히던 절이 아니라 불경 공부만 했다.[19] 예로 고검구만리.[20] 서효원은 198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고 1988년부터 시 운동단체 '바우시낭송단'에 가담하여 1991년까지 단장을 맡았다.[21] 만년 묵은 산삼을 비꼬는 것.[22] 유고집 <나는 죽어서도 새가 되지 못한다.>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