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 종단 무역 관련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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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 베르베르인&투아레그족 | |
상업 | 캐러밴 · 콜라나무 | }}}}}}}}} |
사하라 종단 무역 교역망. |
프랑스어:Commerce transsaharien
아랍어: التجارة العابرة للصحراء الكبرى
1. 개요
사하라 종단 무역 또는 사하라 무역로는 남유럽(주로 서남유럽), 북아프리카 등 지중해 일대, 서아프리카 사이를 이어주었던 무역로 중 하나였다.2. 역사
2.1. 교통발달
유럽과 서아프리카가 북아프리카,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약간 가깝다보니 유럽인과 서아프리카 사람들 간에 접촉, 교류가 있기도 했었다.지중해 일대와 서아프리카에 본격적으로서의 접촉은 7세기 후기 무렵부터였는데 이 때부터 북아프리카를 점령했던 아랍, 그리고 이들로부터 이슬람을 받아들인 베르베르인들로부터 접촉이 나타났다. 이후 아랍과 베르베르인들을 통해 일부 이슬람화가 진행되었고 무역로도 발달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하라 사막이 워낙 넓었기에 아랍인과 베르베르인들처럼 사막에서 생활했던 민족들의 도움을 받았으며, 리비아 남부는 페잔의 오아시스 개척 도시 일부를 빼면 모래 바람이 심해서 가기가 어려웠다.
2.2. 수출품들
8세기에도 무역은 이어졌으며 중세시대 후기에는 와가두 제국, 송가이 제국, 말리 제국, 소코토 칼리프국, 졸로프 왕국처럼 서아프리카 북부 즉 사헬 지대 서부에서 발달된 여러 나라들이 흥하면서 소금, 금, 콜라나무, 개오지 껍데기 등이 많이 해외로부터 수출되었으며 노예 무역도 있었다.[1] 사하라 종단 무역은 카넴-보르누 제국, 와다이 술탄국, 바기르미 술탄국처럼 중앙아프리카 서·북부 지역의 나라에서도 있었다.2.3. 유럽과의 관계
15세기에는 카탈루냐, 베네치아, 프로방스, 포르투갈 등 여러 유럽 국가들도 이 교역로를 통해 금을 수입했었다.16세기부터 포르투갈 제국이 대서양 항해를 하여 신항로가 개척되자 조금씩 쇠락해지기 시작했으나 이 때도 여전히 교류는 이어졌었다. 19세기 프랑스 식민제국 역시 처음에는 이곳에 철도를 세워서 상대적으로 더 편리하게 무역로를 방문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00년대부터 프랑스가 사헬 지대 여러 나라들을 점령하면서 공식적으로 끝난 거나 다름없었으며, 1960년대 프랑스로부터 독립되어도 해당 지역 나라들의 국경 문제 및 치안 불화 등으로 해당 장소들은 더 이상 무역로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되었다.
2.4. 현대
물론 무역이 완전히 끝장난 건 아니라서, 가끔 사헬 지대의 암염 등이 특산품으로서 수출되기도 한다.3. 캐러밴의 역할
캐러밴은 중앙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 사막의 교역을 잇고 지키는 중요한 상인들이었으며, 주로 투아레그족, 하우사족, 만데족 계열의 민족들이었으며, 일부 유대인들도 있었다.[1] 특히 콜라나무 열매는 향신료 못지 않게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중요하고 인기가 많은 사치품이자 음식 중 하나였다보니 사하라 무역로 남부 일대에서 많이 팔렸다. 개오지 껍데기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통화로 많이 쓰이기도 해서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물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