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10:24:04

샘 알라다이스

빅샘에서 넘어옴
샘 알라다이스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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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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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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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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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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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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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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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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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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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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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축구감독
파일:Allardyce.jpg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샘 알라다이스
Sam Allardyce
본명 새뮤얼 앨러다이스
Samuel Allardyce
출생 1954년 10월 19일 ([age(1954-10-19)]세)
영국 잉글랜드 웨스트 미들랜즈주 더들리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91cm
직업 축구 선수 (수비수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선수 더들리 타운 FC (1968~1969 / 유스)
볼턴 원더러스 FC (1969~1971 / 유스)
볼턴 원더러스 FC (1973~1980)
선덜랜드 AFC (1980~1981)
밀월 FC (1981~1983)
탬파베이 라우디스 (1983)
코번트리 시티 FC (1983~1984)
허더스필드 타운 AFC (1984~1985)
볼턴 원더러스 FC (1985~1986)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 (1986~1989)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 (1989~1991)
리머릭 FC (1991~1992)
감독 리머릭 FC (1991~1992)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 (1992 / 감독 대행)
블랙풀 FC (1994~1996)
노츠 카운티 FC (1997~1999)
볼턴 원더러스 FC (1999~2007)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2007~2008)
블랙번 로버스 FC (2008~2010)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2011~2015)
선덜랜드 AFC (2015~2016)
잉글랜드 대표팀 (2016)
크리스탈 팰리스 FC (2016~2017)
에버튼 FC (2017~2018)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 (2020~2021)
리즈 유나이티드 FC (2023)
국가대표 없음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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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별명 빅 샘(Big S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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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축구선수 출신 감독.

롱볼 전술로 매우 유명한 감독이다. 이미지와는 안맞게 의외로 현대적 축구 매니지먼트의 선구자로 꼽히며 체계적인 선수단 관리를 주도해온 사람이다. 별명은 '빅 샘(Big Sam)'[1]이다. 영국 잉글랜드 현지에서는 'Fat Sam(뚱보 샘)'이라고도 많이 불린다.

오랫동안 잉글랜드에서 여러 클럽을 전전하다가 2016년에 로이 호지슨의 뒤를 이어서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이 되었지만, 그것도 잠시 후술될 추문으로 인해 단 한 경기 1승, 승률 100%의 기록을 남긴 채 잉글랜드 감독직을 사임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무려 9팀을 지휘해 본 역대 가장 많은 PL팀을 맡아본 감독이기도 하다.

2. 지도자 경력

2.1. 볼턴 원더러스 FC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블랙풀, 노츠 카운티 등에서 감독 생활을 했으나 실제로 이름이 알려진 것은 볼턴 원더러스 시절 부터다. 2부리그 중하위권에서 빌빌대던 볼턴은 "알라다이스 매직"으로 새롭게 태어나 2시즌 만에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하였고, 알라다이스는 10년 계약에 서명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1부리그로 올라선 볼턴은 밀집수비, 롱패스, 강력한 피지컬로 상징되는 특유의 "빅샘 스타일"로 강팀들의 혼을 빼놓으며 입지를 다진다. 2003-04 시즌에는 리그 8위로 칼링컵 결승에 진출, 2004-05 시즌에는 두 계단 더 올라가 6위로 유럽대회 출전권까지 가져가 버린다. 2005-06 시즌에서도 리그 8위와 UEFA컵 32강 진출 등 성공적인 한해를 보낸다. 2006-07 시즌 초중반 빅4까지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기세를 내뿜지만 결국 시즌이 진행되면서 페이스가 떨어졌고 시즌 종료까지 2경기 남은 시점 볼튼이 5위에 있는 상황에서 알라다이스는 소규모 클럽인 볼턴에 한계를 느끼고 자진 사임[2], 새로운 도전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알라다이스가 처음으로 이름을 본격적으로 널리 알린 시점이자 그 어느 커리어를 봐도 가장 화려했던 시절로 소규모 클럽인 볼턴을 UEFA컵에 몇 차례 진출하는 팀으로 올린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였다. 작은 구단인 볼턴에서 알라다이스는 아무리 늙고 예전같지 않은 선수라도 자신의 철학에 맞는 선수면 어떻게든 영입했으며 그 선수들을 완전 부활까지는 아니더라도 훌륭하게 잘 써 먹었다. 특히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었던 선수들을 여러 영입했는데 페르난도 이에로, 이반 캄포, 니콜라 아넬카[3] 등을 영입하며 꽤 재미를 보았다. 그 외에도 유시 야스켈라이넨, 제이제이 오코차, 게리 스피드, 나카타 히데토시[4] 등을 영입하면서 실질적인 볼턴의 황금기를 만들었다.

2.2. 뉴캐슬 유나이티드 FC

몰락 위기의 빅 클럽 뉴캐슬로 옮긴 알라다이스는 2007년 여름에만 이적시장에 20m 넘게 풀면서 과감한 돈지랄을 강행, 긴축재정의 볼턴에서 8년을 보내며 쌓인 한을 풀며 기대를 안고 새 시즌에 임했다.

뉴캐슬은 개막전 볼튼 원정에서 친정팀을 상대로 3:1 완승을 거두며 새 시즌을 기대하게 했으나 6라운드에서 당한 더비 카운티전 충격패를 기점으로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11월에 들어서면서는 홈에서 포츠머스와 리버풀에 3점차 패배를 당하며 홈팬들에게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너무나도 무난한 하위권 성적과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줬고 알라다이스는 홈팬들에게 삿대질을 당하는 등 야유에 시달리며 6개월도 못채우고 팀에서 쫓겨났다. 특히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악의 팀으로 꼽히는 2007-08 시즌의 더비 카운티총 승점 11점 중 무려 4점을 뉴캐슬이 내줬다는 사실은 지금도 치욕적인 일로 회자된다.

뉴캐슬에서 그의 실패를 분석해 보자면 일단 가용한 선수자원이 볼턴과 상당히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빅샘 스타일"을 고수했다는 점이다. EPL 전체에서 평균신장이 최하위권인 데다가 믿음직한 세트피스 전문가 하나 없었던 뉴캐슬에서 볼턴식으로 축구를 하려는거 자체가 무리수였다.

게다가 지나치게 권위적인 자세로 선수단의 신뢰를 얻는 데 실패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볼턴 선수들은 대부분 이름값이 떨어지는 선수들로, 그나마도 사실상 알라다이스의 손에 의해 큰 것이나 다름없어서 그에게 충성을 바쳤지만, 뉴캐슬에는 마이클 오언이나 마크 비두카같은 자존심 센 스타급 선수들이 즐비했으니 이런 고압적인 태도가 통할 리가 없었다. 하위권 팀을 맡아 돌풍을 일으킨 감독들이 명문팀에 부임할 경우 실패하는 일이 많은데, 그것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2.3. 블랙번 로버스 FC

알라다이스의 다음 목적지는 2008-09 시즌 강등 위기에 빠진 블랙번 로버스로, 그는 막장감독 폴 인스의 영향으로 총체적인 난국에 빠져있던 팀을 빠르게 수습하고 리그 15위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한다. 2009-10 시즌에도 10위라는 준수한 성적을 기록한다. 알라다이스와 마찬가지로 피지컬을 주요시하는 마크 휴즈 전 감독이 남기고 간 선수층이 그런대로 그의 전술에 잘 녹아들어가 이룬 결과라 할 수 있겠다. 특히 피지컬 괴물 크리스토퍼 삼바는 중앙 수비수에서 공격수까지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며 전술의 핵으로 부상한다.

그러던 중 2010-11 시즌 중반에 시즌을 인수한 인도계 재벌에 의해 특별한 사유 없이 경질당한다. 일단 표면적인 이유는 그의 수비적인 축구 스타일에 대한 불만이었는데 현지 쪽에서는 축구의 축자도 모르는 외국계 자본의 만행이라며 미친듯이 까고 있다. 경질 결정이 있던 날 친분이 있는 맨유알렉스 퍼거슨 감독에게 맨유 경기 보러가는 김에 차 한잔 하자고 전화했다가 불과 30분 뒤 "나 짤렸음"이라고 말해서 퍼거슨 감독이 놀랐다고 한다.[5][6]

프리미어리그에서 검증된 명장을 어처구니없이 경질한 블랙번은 스티브 킨 감독 체제에서 치른 잔여시즌 초기에는 퐁당퐁당 행보를 걷다가 10경기 무승으로 강등권 경쟁을 하게 됐고 간신히 15위로 생존했으나 다음 시즌 19위로 강등되며 아직까지도 프리미어리그에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

2.4.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2011년 6월에, 2010-11 시즌 20위로 챔피언쉽으로 강등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 계약했다.
프리미어리그의 승격을 목표로 볼턴 시절 애제자였던 케빈 놀란을 전격 영입, 2부 리그로 떨어진 팀임에도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예상대로 승격 플레이오프를 통해 승격에 성공.

승격 후 2012-13 시즌과 2013-14 시즌 모두 안정적인 성적을 거둬 잔류하였다.

2014-15 시즌, 안정적인 성적을 뛰어넘어 시즌 초중반 사우스햄튼과 함께 예상치 못 한 복병으로 팀 클래스를 높였다. 9월 21일에는 리버풀 FC를 3-1로 이기더니, 10월 25일에는 맨체스터 시티를 2-1로 이겼다. 둘 다 홈 경기이고, 리버풀은 지난 시즌의 포스를 많이 보여주지 못 하고 있지만 맨시티를 이긴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일이었다.

12월 7일, 스완지 시티와의 경기에서 뻥축 깎는 노인의 절정체를 보여주었다. 윌프레드 보니에게 선제골을 먹히고도, 앤디 캐롤의 제공권 장악 능력만으로 3골을 더 넣으며 대역전 성공. 캐롤은 이 경기에서 2골[7] 1어시를 기록했다. 모르간 슈네데를랭의 공백으로 급하게 DTD의 길을 걷는 사우스햄튼과 달리 아직도 4위를 유지함으로써 제대로 복병 노릇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후 결국 DTD의 운명을 피하지 못하고 쭉쭉 내려갔다. 소튼이 여차저차 전반기만은 못하지만 후반기에도 어느 정도는 버텨낸 것과는 달리 중위권으로 완전히 하락. 뭐 그렇든 말든 나름대로 준수한 성적인 것은 확실하다.

2014-15 시즌을 끝으로 웨스트햄 구단 측과 계약 연장을 하지 않으면서 결국 팀을 떠나게 되었다. 후임은 전 베식타스 JK 감독인 슬라벤 빌리치였다.

2.5. 선덜랜드 AFC

2015년 10월 9일 아드보카트의 후임으로 선덜랜드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계약기간은 2년간으로 알려졌다.

2015-16 시즌 팀의 강등을 가까스로 막아내며 저력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2.6.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유로 2016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인 로이 호지슨의 후임으로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수장으로 임명되었다. 또 뻥축이라는 의견과 잉글랜드에 가장 알맞는 스타일의 선임이다라는 의견이 대립하는 가운데, 중하위권 반등에 상당한 능력을 가진 빅샘의 향방이 주목된다.

2016년 9월 4일, 2018 러시아 월드컵 유럽 최종예선 1차전 슬로바키아와의 경기에서 종료 직전 아담 랄라나의 골로 가까스로 1-0 신승을 거두며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 좋은 출발을 하는가 싶었다.

갑자기 축구협회의 서드파티 규정과 관련해서 논란이 확산되었다. 사업가로 위장한 텔레그래프 취재진과의 대담에서 FA에서 엄연히 불법인 서드파티 금지 규정 우회법을 알려주겠다고 하며 거액의 계약을 맺으려한 것이 언론에 유출된 것. 그 과정에서 로이 호지슨 전 잉글랜드 감독과 게리 네빌 코치를 조롱하는 등 영 좋지 않은 언행은 덤. 대표팀 감독이라는 사람이 앞장서서 FA 규정을 부인하는 행동을 했으니...

결국 9월 28일 부로 FA와의 계약을 상호 해지하는 방식으로 잉글랜드 감독직을 사임했다. 샘 알라다이스 본인이 그렇게도 되고 싶어했던 잉글랜드 자리는 채 3개월도 되지 않은 채 불명예스럽게 마감하게 되었다. 삼사자 군단을 맡은 지 67일만에 퇴진했다. 앞으로 축구계에 영원히 발을 못 붙일 상황인 줄 알았는데...영국 현지 네티즌들은 승률 100%의 레전드 명장이 떠났다며 애석해하고 있다더라. 이후 임시감독을 U-21 청대 감독인 가레스 사우스게이트가 맡게 되었고, 이후 가레스는 A대표팀 정식 감독으로 승격했고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잉글랜드 대표팀을 4강에 올려놨다.

파문의 심각성이 심각성인지라 앞으로 감독직에 복귀할 지도 미지수였다. 사실상 불명예 은퇴라고 보는 시각이 있었다. 그러나...

2.7. 크리스탈 팰리스 FC

12월 24일, 크리스탈 팰리스는 앨런 파듀 감독의 후임으로 앨러다이스 감독을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관련기사

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일단 31라운드. 16위를 유지하고 있다. 리그 잔류부터가 목표인 팀이니까. 무엇보다 30라운드에서 리그 1위를 순조롭게 달리던 첼시를 원정에서 2-1로 이겨버리는 이변을 낳기도 했다. 그 다음 경기 사우스햄튼한테 3-1로 패배한 거 빼고는 아스날 상대로 3-0 승리, 레스터 시티 상대로 2-2 무, 리버풀 상대로 2-1 승리로 무패를 기록했다. 첼시, 아스날, 리버풀 상대로 승리를 했다는건 대단한 일. 최종 순위는 14위로 강등은 면했지만 시즌 종료 후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퇴임 소식을 알렸다.

2.8. 에버튼 FC

한국시간 2017년 12월 1일, 에버튼이 쿠만 감독의 후임으로 앨러다이스 선임을 확정지었다.#
많은 투자를 했음에도 강등권으로 추락해버린 에버튼에서도 그가 팀을 구해낼 수 있을지가 관건.

출발은 매우 산뜻하다. 한번 열리면 걷잡을 수 없이 대량 실점으로 경기를 마쳤던 에버튼을 바꿔나가고 있는 중이다. 결과도 첫 5경기에서 4승 1무로 아주 좋은 편. 특히 시즌 전반기 최상급의 공격력을 보여주고 있는 리버풀과의 16R 원정경기에서 '버스 수비'를 제대로 세우는 극단적 실리 축구와 함께 승점 1점을 따내는등 팀을 중위권까지 끌어올리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후 강팀과의 연전이 이어지며 부진에 빠졌다. 스완지전 승리 이후로 FA컵도 리버풀에 패배하며 탈락하는 등 2무 4패의 성적을 거두고 있다. 다만 이 4패 중 3패는 리버풀, 맨유, 토트넘에게 당한 것이라, 애초에 강등권에서 허덕이던 팀으로서 용납하지 못 할 결과는 아니며, 리그 순위도 결과적으로 빅 샘 이후 계속 중위권을 유지하고 있어 아직 이를 갖고 비판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18위 강등권에서 8등으로 순위를 올렸지만 시즌을 마지막으로 계약 연장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결국 2018년 5월 16일자로 계약 연장이 불발되면서 에버튼을 떠나게 되었다.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경기 스타일이 재미없어도[8] 팀을 강등권에서 8위까지 올려놨는데 대우가 너무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그 이후 나온 칼럼들에 의하면 앨러다이스를 경질한 것은 단순히 그의 축구 스타일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앨러다이스는 감독 대행이었던 U-23 감독, 데이비드 언스워스 시절 이뤘던 웨스트햄 전 승리를 자신이 이룬 것이라고 가로챘다.[9][10] 언스워스는 이 발언에 분노했지만 구단 내에서 싸움이 일어날까봐 참았다고 한다. 언스워스 외에도 마케팅 담당 직원을 개인적인 이유로 원한을 가지고 대놓고 까는 인터뷰를 했고 길피 시구르드손의 부상 기간이 8주라고 구단 미디어 팀이 발표하자 그 이유로 기자회견에서 구단 미디어팀에게 욕설을 날리기도 했다.

또한 경기에서 승리하거나 만족스러운 성과를 얻으면 자신의 탓이라고 돌리고 패배하면 선수들 탓으로 돌려버리는 모습까지 보였으며 아스날 원정에서 5-1로 패배했을 때에는 스완지가 아스날을 이길 때의 전술을 그대로 빌려왔다고 대놓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임기 막바지에는 구단 훈련장을 1주일에 3일만 출근하는 기가 막힌 모습을 보였고 정작 출근을 했을 때에도 수석 코치인 새미 리와 크레이그 셰익스피어가 통솔하고 자신은 칼퇴근하였다.

그리고 위에 언급한 수석 코치, 새미 리를 임명한 것에 대해서도 말이 상당히 많았다. 새미 리는 앨러다이스가 볼튼 원더러스, 크리스탈 팰리스,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을 감독하던 시절에도 수석 코치로 임명하여 활약한 바 있다.[11] 그리고 수석 코치로서 새미 리는 아주 좋은 코치라는 평이 많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는데 새미 리는 리버풀 유스 출신에 10년 동안 리버풀에서 선수로 활약한 레전드라는 것이었다.[12] 이게 뭐 별 거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는데 앨러다이스보다 앞서 에버튼 감독을 한 적이 있는 로날드 쿠만도 사우스햄튼 감독 시절에 새미 리를 수석 코치로 두었지만 그는 에버튼 감독에 부임할 때 새미 리를 데려오지 않은 바 있다. 그 이유는 새미 리가 리버풀 레전드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앨러다이스는 이를 무시하고 자신의 라인이라는 이유로 새미 리를 에버튼 수석 코치로 두었고 이는 에버튼 팬들의 반발을 얻기도 했다.

앨러다이스가 에버튼 감독이 된 후, 프로 선수 성장 공동 관리자를 맡던 에버튼의 레전드, 조 로일이 사임한 것에도 말이 많았다. 확실하게 말이 나온 것은 아니나 앨러다이스와 로일 사이에 갈등이 있었기에 시즌 도중에 로일이 에버튼을 떠났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2.9.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

2020-21 시즌, 13R 이후 리그 19위에 머물러 있는 웨스트 브롬위치 이사진들이 슬라벤 빌리치 감독을 경질하고 샘 알라다이스를 데려올 계획이라는 기사가 났다. 12월 16일 오피셜이 떴고 웨스트 브롬위치에 부임하게 되었다. 계약기간은 2022년 6월까지이다.

그리고 14라운드 아스톤빌라와의 데뷔전에서 3대0 완패를 당했다.

그러나 15라운드 디펜딩 챔피언이자 1위 리버풀에 1:1 무를 캐며 박싱데이에 제대로 고춧가루를 뿌리는데 성공했고, 리버풀에게 또다시 안좋은 기억을 선사했다.[13][14]

그러나 기쁨도 잠시, 16라운드 리즈 유나이티드 전에서 5대0 참패를 당하였다.

그 다음 리그 17라운드 아스날전에서도 4대0으로 연속 대패를 당하였다. 팀의 잔류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18라운드 몰리뉴 스타디움에서 열린 오랜만의 블랙 컨트리 더비에서 3:2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며 17위인 번리와의 승점 차를 5점, 18위 풀럼과의 승점 차를 1점으로 좁혔으나, 번리와 풀럼은 WBA보다 1경기를 덜 치렀기에 잔류를 위해서는 더욱 분발이 필요한 상황이다.

19라운드 웨스트햄전에서 1대2 패배를 당하며 잔류가 정말 어려워질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그리고 20라운드 맨시티전에서 또한번 5점차 참패를 당하였다.

23라운드 토트넘전에서는 공이 터치라인 밖으로 나가자 본인이 직접 스로인을 던지려 하는 등 예능감을 보여주었다. 팀은 망해가고 있지만 즐거워하는 모습으로 일부 팬들의 비판을 받았다.

그 다음 맨유와의 경기에서 1:1로 비기고, 번리와의 경기에서도 퇴장으로 인한 수적 열세를 이겨내고 비기면서 승점을 벌었다.

26라운드 브라이튼과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17위와의 승점차를 일단 9점차로 좁혔다.

30라운드 첼시와의 원정 경기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5-2 대승을 거두며 강등권 탈출의 희망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토마스 투헬이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14경기 무패에 그 동안 단 2실점만 허용하며 유럽 최고 수준의 철벽 수비를 자랑하던 첼시였기에 5골 맹폭은 더없는 이변으로 평가받았다.

35라운드 아스날과의 원정 경기에서 3대1로 지게 되면서 강등이 확정되었다. 이번 라운드에서 강등될 세 팀 풀럼, WBA, 셰필드 유나이티드가 확정되었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 알라다이스 본인이 직접 WBA와의 계약 연장을 하지 않고 물러날 것이라는 의사를 밝혔다. WBA 구단에서는 팀을 더 맡아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알라다이스 본인은 프리미어 리그 재승격을 위해서는, 그리고 구단을 위해서는 젊은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한 뒤 구단의 재계약 오퍼를 거절했다고 한다.

이후 한동안 무직으로 있다가 2023년 1월, 에버튼 FC 재부임설이 돌았으나 션 다이치의 부임으로 낭설이었다.

2023년 5월 초, 리즈 유나이티드 FC로 부임이 임박했다는 소식이다. 계약 기간은 이번 시즌이 끝날 때까지라고 한다.

2.10. 리즈 유나이티드 FC

2023년 5월 3일, 하비 그라시아를 해임하고 리즈 유나이티드 FC의 감독으로 부임했고# 계약기간은 이번 시즌 종료까지이다.[15]

35R 맨체스터 시티 FC전 두 줄 수비로 라인을 내려앉는 전술을 들고 경기에 임했다. 현재 리즈 유나이티드의 상황과 더불어 맨체스터 시티라는 거함을 상대함에 있어 나쁘지 않은 선택이긴 했으나, 패널티 박스 바깥에서의 압박이 없다시피 하여 맨체스터 시티 선수들이 편하게 공격에 임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전반전 일카이 귄도안의 슈팅에 2골을 내리 실점하였다. 본인도 이를 인지하였는지 후반전에 들어서자 압박을 가하는 전술로 변경했고, 이러한 압박이 어느 정도 통하여 로드리고 모레노가 추격골을 넣는데 성공해 침체돼있던 팀의 분위기를 끌어올렸으나 이후 추가득점 없이 본인의 리즈 유나이티드 데뷔전은 2-1 패배로 마무리 되었다.

36R 뉴캐슬 유나이티드 FC전에서는 중앙 수비수로서 불안한 모습을 자주 보인 로빈 코흐를 3선으로 올리고, 막시밀리안 뵈버라스무스 크리스텐센이 짝을 이뤄 센터백 듀오로 경기에 나섰다. 지난 맨체스터 시티전과 달리 선수들에게 강한 압박을 지시하며 뉴캐슬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공격전개에 있어 어려움을 겪게 만들었고, 수비 또한 호엘 로블레스의 안정적인 활약과 더불어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공격진들은 여전히 부진하였지만 오히려 수비수인 루크 에일링라스무스 크리스텐센이 각각 1골을 넣으며 승리를 가져갈 수도 있었으나 페널티킥을 실축한 패트릭 뱀포드, 2번의 PK를 내주는데 관여한 주니오르 피르포 이 두 선수가 워스트급 활약을 선보인 바람에 2-2 무승부로 만족해야 했다.

37R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샘 그린우드와 지난 경기의 징계로 인해 출전이 불가한 주니오르 피르포 두 선수를 제외하곤 선발 라인업과 포메이션 모두 동일하게 들고 나와 경기에 임했다. 전반 17분 로드리고 모레노의 득점으로 1-0 리드를 가져왔으나 이후 수비 집중력 문제로 3골을 내리 실점하며 지난 뉴캐슬 유나이티드전과 같이 리드를 지키지 못하면서 3-1로 역전패하였다.

결국 반드시 이겨야만 했던 웨스트햄전의 패배로 인해 자력으로 잔류하는 시나리오는 물건너간 상황이다. 같은 라운드에 진행된 노팅엄의 뜻밖의 승리, 에버튼레스터 시티가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마지막 경기인 토트넘전을 어떻게든 승리한다 하더라도 에버튼이 패배함과 동시에 레스터 시티가 무승부 혹은 패배를 기록해야만[16] 잔류를 확정짓는 상황이라 현재로서의 리즈 유나이티드의 잔류는 매우 힘들어졌다.

38R 토트넘에게 4대1로 대패하며 끝내 강등을 막지 못했다. 다만 승리했다 하더라도 다른 경기장의 상황 때문에 경기 결과에 상관 없이 잔류는 불가능한 상황이긴 했다.

이번 시즌이 끝난 뒤 리즈에서 짧은 임기를 마치고 떠날것이라고 한다.

결국 6월 2일 리즈와 상호 합의로 결별했다.#

3. 평가

3.1. 호평

클래식 그 자체인 전술과 다르게 시스템적인 분야에서는 당장 90년대까지도 근성과 패기만 있으면 되니까 과학기술 따위 꺼지라 그래라는 철학이 주류를 이루던 영국 축구계의 경향을 바꾼 장본인. 훈련법, 식이요법, 물리치료법 등등의 분야에서 그가 도입한 방식들은 이제 다른 감독들이 따라가고자 하는 하나의 정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알라다이스 팀의 선수들은 식단, 수면시간 등 일상시간의 모든 부분을 철저히 관리받는다. 이로 인해 볼턴 시절에는 "잉글랜드AC 밀란" 소리를 들으며 페르난도 이에로, 이반 캄포, 제이 제이 오코차, 미첼 살가도 등 노장 선수들이 30대 중반까지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1군 선수로 활약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많은 부분을 관리하기 때문에 보통 다른 감독들은 수석코치 하나에 코치 3~4명 정도 두는 게 고작인데, 알라다이스는 취직하는 곳 마다 각 분야별 코치, 데이터 분석요원, 영양사, 마사지사, 심지어는 침술사까지 무려 20명이 넘는 스태프를 몰고 다닌다.

특히 선수의 몸에 송신기를 붙여 경기 중의 활동범위, 몸 상태 등을 측정하여 마치 풋볼 매니저 시리즈에서나 볼법한 상세한 통계수치를 뽑아주는 소프트웨어 프로존을 잉글랜드 최초로 도입했으며, 이것은 이제 유럽 전역에서 폭넓게 사용되는 체계가 되었다.

그런 연유로 심지어 볼턴 대학에서 체육학 명예박사학위까지 받았다.

많이 조롱을 받지만 하위권 팀을 살리고 안정시키는 데에는 같은 돌려막기용 잉글랜드 감독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다. 또한 위의 첨단 피지컬 관리 및 프로존의 활용 외에도 미국 스포츠에 관심이 많아 현재까지도 축구계에서 새로이 개발되는 여러 세부 스탯이나 최신 기술에 관심이 매우 많으며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미지와는 다르게 전술적인 면을 제외하자면 상당히 혁신적인 인물. 그 결과물이 아름다운 축구와는 거리가 있기는 하지만, 또한 지속적으로 팀의 자원에 비하면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마치 공공재인 것처럼 당장 팀 성적을 끌어올려야만 하는 긴급 소방수가 필요한 팀에서 부르는데엔 다 이유가 있다.

3.2. 비판

스쿼드 매니지먼트 영역에서 빛을 발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전술 영역에서는 빛이 꺼져있다고 평가 받는다. 이는 그가 과거 영국식 축구 '킥앤 러시', 쉽게 표현해 '뻥축구'를 메인 전술로 취하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좋은 이야기만 주야장천 써져 있는데 사실 뻥축구를 싫어하는 축구팬의 적, 침대축구의 끝판왕으로 팬들에게는 비 오는 날 먼지나도록 까이는 인물이다.

문제는 그의 전술.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알라다이스는 과학적인 방법과 통계에 굉장히 의존하는 인물이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하기에 과학적으로 가장 승리확률을 높이는 방법으로 축구를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이라는 것이 뻥축구다.[17]

1. 미드필더까지 후퇴해 팀 수비라인을 낮게 내린 뒤, 공중볼 처리가 좋고 몸싸움을 잘 하는 피지컬 능력 좋은 공격수를 전방에 짱박아둔다.
2. 수비라인이 공을 따내는 순간 빠른 역습을 전개해 윙어, 미드필더 모두 최전방 공격수 머리를 향해 롱패스, 크로스를 올린다.
3. 위 과정을 무한반복한다. 계속하다보면 결국 다음 중 하나의 방법으로 골이 언젠가는 들어간다.

a. 스트라이커가 어쩌다 한번 정확하게 헤더를 성공시켜서 골을 넣는 경우
b. 스트라이커가 공중볼 경합에 승리해 빈 공간에 공을 떨궈서 2선에서 한박자 늦게 침투하는 미드필더가 골을 넣는 경우
c. 스트라이커가 수비진 깊숙히 몸싸움을 유도해 반칙 또는 코너아웃을 유도하여 세트플레이를 따내고, 마찬가지로 무지막지한 피지컬을 가진 수비수들이 우르르 올려와서 볼을 네트에 우겨넣는 경우.

웬만큼 피지컬,공중볼 경합능력이 되는 스트라이커라면 적어도 (c)의 상황은 지속적으로 유도할 수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훨씬 위력적이지만 관중에게는 눈물나게 재미없는 축구를 선사한다. 결국 그의 전술에서 공격수의 개인능력은 일체 중요하지 않고 스트라이커의 역할은 크로스를 맞출만한 표적이자 파울셔틀이 끝이다. 이 때문에 중앙수비수 크리스토퍼 삼바피지컬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블랙번에서 자주 원탑 공격수로 기용되는 웃지못할 사태가 벌어졌다.

뉴캐슬에서 경질당하기 직전 조재진의 영입을 강력히 추진한 것도 이러한 연유였으며 그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볼턴 시절을 보면 그가 철저히 자신의 취향에 맞춰 선수단을 구성했음을 알고 있다. 당시 부동의 원톱은 대갈사비라 불릴 정도로 지금까지도 프리미어리그에서 손 꼽히는 타겟맨으로서 회자될 정도로 유명한 케빈 데이비스였고, 그 뒤에 뒤늦게 박스에 침투하여 줏어먹는 거에 도가 튼 케빈 놀란과 빠른 스피드와 강한 체력으로 수비시에는 상대를 괴롭히고 공격시에는 공간에 침투하여 데이비스가 떨궈준 볼을 잡아주던 엘 하지 디우프, 스텔리오스 야나코풀로스[18]가 배치되었다. 이반 캄포개리 스피드가 파이팅 넘치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깊은 곳에서 패스를 올려주는 역할을 맡았고 수비라인은 압둘라예 파예, 라디 자이디[19], 압둘라예 메이테 등 신장이 190cm을 넘는 피지컬 괴물들이 채웠다. 알라다이스의 축구철학은 상기했듯이 잉글랜드 축구계에서 개혁적이었으나 그 결과물은 오히려 전형적이고 보수적인 잉글랜드 축구 스타일이 되어버렸다. 성과가 좋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정말 눈물나게 재미없었다. 잠이 안올때 볼튼 경기를 보면 딱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비유하자면 축구계의 임성한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스포츠에서 깡패는 성적이고 이에 따라 마케팅등 팀의 재정도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당장 성적을 내야하는 하위권 팀에게는 정말 명장이라고 할 만하다. 볼튼 원더러스도 그 덕에 2부 리그에서 1부 리그에 올라서서 몇 년간 잔류했다. 그가 팀을 떠나고 5년 뒤, 볼튼은 강등당하고 10시즌 째, PL로 올라올 생각을 못 하고 있다.

단 본인은 꾸준히 뻥축구의 달인이라는 시각을 벗어나려고 하며, 꾸준히 본인이 그런 전술의 신봉자라는 사실을 반박해 왔다. 실제로 웨스트 햄 시절에는 뻥축구라 치부하기 어려운 스탯이 나오기도 했고. → 허나, 당시 웨스트햄은 성적도 안 좋았고 경기력도 별로였다. 바로 그러한 연유로, 빅샘하고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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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이 정면으로 대치되기 때문에 아르센 벵거 감독과 묘한 라이벌 관계에 있다. 물론 벵거는 알라다이스를 자신의 라이벌로 생각하지는 않고 상대하기 껄끄러운 깡패 녀석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볼턴 시절 상대전적을 보면 알라다이스가 밀리지 않을 정도로 그의 피지컬과 밀집수비에 기반을 둔 축구는 아스널의 패스 플레이를 꽤 효과적으로 상대했다. 하지만 상대 전적은 6승 6무 4패로 벵거의 우세다. 그가 거쳐온 팀들이 아스날보다 훨씬 약하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나쁘지 않은 성적이지만 천적 운운은 과장이다. 벵거의 진짜 천적은 상대전적상 주제 무리뉴다.[20]

침대축구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이런 전술 외에도 볼턴에서의 성공 이후로 급속도로 오만해진 것도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이유다. 실제로 그는 언론에서 좋게 봐주기 어려울 정도의 오만한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특히 최근에는 "나는 볼턴이나 블랙번에 어울리는 감독이 아니다. 인터 밀란이나 레알 마드리드가 내가 가야할 곳이다. 그런 클럽으로 간다면 나는 매번 리그 우승이나 더블을 차지할 것이다."라는 개드립을 쳐버려서 자기팀 다른팀 할 거 없이 먼지가 나도록 까이고 있다. 아무리 아르센 벵거 감독의 비난에 대응하여 한 말이라지만 이런 레알드립은 아무리 좋게 해석하려 해도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건 분명하다.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됐는데 잉글랜드 감독으로서 슬로바키아와의 월드컵 예선을 치르고 경질되었다. 이유는 비리 스캔들 때문. 텔레그래프 탐사보도팀이 EPL 이적 시장 진입을 원하는 에이전트 사업가로 위장한 뒤 앨러다이스 감독과 만났는데 이 과정에서 앨러다이스 감독이 이른바 서드파티 오너쉽을 텔레그래프 탐사보도팀에게 소개한 것. 참고로 서드파티 오너쉽은 선수 소유권을 구단이 아닌 제3자가 가진 뒤 이적 과정에서 수익을 챙기는 편법이다. 이는 FA 선수 이적과 관련해, 규정을 피해가는 편법이며 피파는 이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텔레그래프 측은 "앨러다이스가 감독이라는 자신의 직위를 이용하여 선수 이적 규정을 피하는 편법을 알려줬다. 또 이에 대한 대가로 약 6억원의 돈을 요구했다"고 폭로했다.

이후 그는 FA 내부 심사를 통해 경질되었다. 67일 만의 경질.

이후 2016년 12월, 앨런 파듀가 성적부진으로 경질 되어 그의 전 구단인 크리스탈 팰리스에서 빅 샘에게 손을 내밀었다. 결국 그는 크리스탈 팰리스 감독으로 복귀한다. 크리스탈 팰리스 취임 인터뷰 자리에서 그는 "대표팀 해임 후 첫 4주간은 내 커리어에 가장 어두웠던 순간 중 하나였다"며 "약간은 히스테리컬한 증상이 있을 정도였다"고 했다.

분명 중하위권 기준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능력을 갖춘 인물이지만, 인성 면에서는 꾸준히 악평을 달고 다니는 감독이기도 하다. 웨스트햄, 에버튼에서 잘린 이유에도 팬들과 도무지 사이가 좋아지지 않았던 점이 한몫했다.

4. 기록

4.1. 선수

4.1.1. 대회 기록

4.1.2. 개인 수상 기록

4.2. 감독

4.2.1. 대회 기록

  • 리머릭 FC (1991~1992)
    • 리그 오브 아일랜드 퍼스트 디비전: 1991-92

4.2.2. 개인 수상 기록

5. 기타

  • 스스로 잉글랜드에서 가장 우수한 감독이라고 자신하고 있었기 때문에[21][22] 꿈은 역시 잉글랜드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리가 빌 때마다 입질을 강하게 하는데, 2006년에는 스티브 맥클라렌에게 패배했고 2010년에는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월드컵에서 참패하고도 유임되는 바람에 꿈에 그쳤다. 2012년에는 로이 호지슨이 감독이 되면서 또 실패.
로이 호지슨유로 2016의 막장운영으로 인해 경질되면서, 퍼거슨이 잉글랜드축구협회에 빅 샘을 후임 감독으로 추천했다고 한다. 그리고 빅 샘을 잉글랜드 대표팀의 감독으로 선임했다는 BBC 보도가 나왔다. 관련기사. 2016년 7월 22일자로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공식 선임되며 숙원을 이뤘다. 잉글랜드 감독이 공석일 때 앨러다이스 감독은 선덜랜드측에 '대표팀에 선임 될 수 있게 집중하게 해달라'는 요청을 하였고 선임된 이후엔 첫 인터뷰부터 함박웃음을 지으며 "웃음을 감출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좋아했다. 하지만 그 오랜 꿈은 그 누구도 아닌 본인의 부패스캔들로 인해 개박살이 났다.
  • 헤비레인이라는 게임의 제작사 측에서 샘 앨러다이스를 모티브로 스캇 셸비를 제작했다고 한다.

[1] 실제로 191cm나 되는 거구이다.[2] 볼튼은 새미 리 체제로 남은 2경기를 치러 7위로 UEFA컵 티켓을 따냈다.[3] 아넬카는 영입 당시 볼턴 역사상 최고 이적료를 기록했다.[4] 나카타의 경우는 실패이긴 하지만.[5] 본문에 써 있듯이 퍼거슨 감독과 친분이 있다. 물론 축구계의 마당발 퍼거슨 감독과 친분없는 감독찾기가 더 힘들지만. 샘 알라다이스가 경질당하자 퍼거슨 감독이 블랙번 구단의 처사를 비난하기도 했다.[6] 퍼거슨 감독이 정말 기대하고 아꼈던 맨유의 로컬 유스 라벨 모리슨이 이적할 때도 웨스트햄으로 보냈는데 이후 인터뷰를 보면 샘 감독이 모리슨에게 적절하다고 판단한 듯하다.[7] 두 번째 골의 경우, 레온 브리튼에 맞고 공의 궤도가 바뀌어 브리튼의 자책골이 되는 듯 했으나, PL 당국에서 캐롤의 골로 인정했다. 어차피 브리튼이 방해를 안 했어도 들어갈 골이었기 때문이다.[8] 참고로 앨러다이스가 부임했던 2017-18 시즌의 에버튼은 공격 지표에서 전부 하위권을 기록했다. 그 중, 팀 슈팅, 유효슈팅, 드리블 성공, 찬스 메이킹은 19위였다.[9] 정확히는 언스워스가 웨스트햄과의 경기 직전에 제발 1군 감독을 그만하게 해달라고 얘기했다고 말했다고 한다.[10] 참고로 언스워스는 에버튼 유스 출신에 프로 데뷔까지 성공했으며 오랫동안 에버튼에서 선수 생활을 하기도 했다. 감독 대행으로서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U-23 감독으로서는 톰 데이비스도미닉 칼버트르윈같은 유망주들을 잘 키워내기도 했고 2016-17 시즌에 리그 우승을 이루기도 했다.[11] 새미 리는 앨러다이스가 볼튼 감독에서 사임했을 때 후임 감독으로 잠시 활약했다. 그러나 감독으로 활약은 좋지 못하여 조기 경질되었고 그 이후에는 코치로만 활동하고 있다.[12] 심지어 볼튼에 있기기 전에도 리버풀에서 코치를 꽤 오랫동안 맡은 바 있었다.[13] 리버풀이 현재 안필드에서 수십경기째 무패 행진 중인데 이 무패 행진의 시작전에 마지막 홈 패배가 바로 샘 앨러다이스의 크리스탈 팰리스에 1:2로 패한 것이다.[14] 선덜랜드 감독 시절인 2015-16 시즌부터 팰리스, 에버튼을 거치며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리버풀에 1승 4무로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15] 여담으로 리즈가 프리미어리그에서 강등됐던 2003-04 시즌 리그 36라운드 볼튼 원정 4:1 패배로 강등을 확정지었는데 당시 볼튼 감독이 샘 알라다이스다.[16] 에버튼이 무승부를 기록할 경우도 가능성은 있지만 3골의 득실차를 극복해야만 한다.[17] 어째서 이 방법이 승률이 높은지에 대해서는 롱볼축구 항목을 참조하자. 또한 샘 알라다이스의 팀은 언제나 롱볼축구에 최적화되어 있어 롱볼축구에 강하다. 이는 다른 팀이나 다른 나라라고 다를 건 없어, 주제 무리뉴마우리시오 포체티노도 한 골이 필요한 급박한 상황에서는 피지컬이 좋은 스트라이커를 넣고 어떻게든 공을 박스 안으로 우겨넣어 결정지으려 한다. 국가대표팀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결과적으로 상대에 비해 기술이 밀리면 신체조건이라도 앞서야 하고, 이 우위를 극단적으로 끌어올려 활용한다면 골이 들어가고 승률 또한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다른 감독들은 상술했듯이 간혹 한두 번 쓰는 걸 샘은 매 경기 90분 내내 뻥축구만 하니 욕을 먹을 수밖에 없다.[18] 야나코풀로스가 속해있던 그리스 대표팀의 오토 레하겔 감독도 앨러다이스 감독과 비슷한 전술로 유로 2004에서 우승했다.[19] 자이디는 특히 프리킥 상황에서 교묘하게 상대 골키퍼의 시야를 가리는 방법을 종종 써먹었다.[20] 첼시가 맛이간 2015-16 시즌 커뮤니티 실드에서 1:0으로 첫승을 챙겼다. 그럼에도 상대전적은 2승 6무 7패로 여전히 압도적 열세.[21] 막상 찾아보면 어이없게도 틀린 말도 아니다. 기껏해야 해리 레드냅 정도? 외국인 감독을 우대하는 성향과 잉글랜드 축구 자체의 한계로 바비 롭슨 이후 EPL의 잉글랜드 출신 명장 계보는 끊어졌다. 그나마 롭슨도 클럽을 둘러싼 어려운 여건과 고결한 인품때문에 높이 평가받는거지 트로피로 따지면 일천하다. 월드컵 4강, 유로 준우승을 거둔 가레스 사우스게이트가 있지만 사우스게이트는 역대급 전력이라 평가받는 2010년대 후반~2020년대 잉글랜드 대표팀을 맡았지 프로팀 감독으로는 아무런 성과가 없으며 그 대표팀에서도 전술적으로 신통한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22] 실제로 근 10년간 챔피언스 리그를 보면 잉글랜드 팀이 우승한 경우는 있지만 잉글랜드인 감독이 우승한 경우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