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3 22:59:02

북한 혁명론

1. 개요2. 역사
2.1. 붕괴론의 등장과 퇴색2.2. 혁명론의 등장
3. 정말 혁명의 징조일까?4. 혁명이 일어난다면
4.1. 새 정권의 성향4.2. 주변국에 대한 영향4.3. 남북통일에 대한 전망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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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 혁명론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국민[1]들이 백두혈통과 그 폭압적인 지배계층에 반발하여,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는 정치적인 예측이다.

북한 붕괴론의 일부라고 할 수 있으나, 북한 붕괴론에 대한 문서의 경우에는 북한이 망하고 통일될 것이다.라는 결과를 도출하는데 필요한 전제와 예측되는 과정 그리고 주변국의 생각에 대한 자료를 기입한 문서이지만, 북한 혁명론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국가가 망하지 않고 아래로부터의 혁명으로 국체가 변혁될 수도 있다는 글을 논하는 문서이다.

본 문서는 김정은 시대를 중점으로 서술된다.

2. 역사

2.1. 붕괴론의 등장과 퇴색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는 예측 자체는 김일성이 통치하던 때부터 존재했다. 김일성 말에는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 예측하는 사람은 극소수였지만, 동유럽의 공산정부가 붕괴하고 소련이 해체되었을 때, 한반도 또한 통일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생겼었다.

이후 김정일 시대에 이르러,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자, 북한과의 통일을 준비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당시에는 정말로 북한이 붕괴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국민의 정부노무현 대통령참여정부햇볕정책으로 북한 정권에 호흡기를 붙여주었고[2], 결국 북한은 붕괴하지 않았다.

1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사라진 고난의 행군이라는 위기에도 북한이 붕괴하지 않자, 북한이 붕괴하여 통일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접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후 좌파 정치인들은 햇볕정책의 정신을 계승하여 북한을 지원하여, 북한이 경제적으로 발전하게 만들어 통일로 이어지게 해야한다고 생각했고[3], 우파들은 햇볕정책은 실패했으며, 북한이 자멸할 때까지 적당히 현상유지를 해야한다고 생각했다.[4]

국민들의 경우에는 국민의 정부참여정부 때까지는 통일에 대한 열망만큼 기대감이 대단히 높았다. 당시 진보 정권에서는 김정일에 대한 나쁜 정보를 노출하는 것을 싫어 했고, 북한에 대한 지원을 경제협력으로 포장했기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북한의 경제체제가 외국에 기생하지 않으면 국가를 유지할 수 없는 기형적 체제다른 나라를 등쳐먹어서라도 체제를 유지할 열망이 강하다.라는 것이 밝혀지지 않았던 때라서 우리가 베풀었으니 잘 될 것이라는 근거없는 기대감이 만연했다. 이후 이명박 박근혜 시절의 보수정부 시절에는 고난의 행군으로도 붕괴하지 않은 북한이 이제와서 붕괴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많이 퇴색되었으나, 정부차원에서는 통일준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그렇게 퇴색되어가던 북한 붕괴론평화통일이 다시 각광을 받은 것은 김정일이 죽고나서 김정은에 대한 정보가 없었을 때였다. 이미 김정일이 피에 굶주린 사이코패스의 성향이라는 것이 밝혀졌던 것과 다르게, 김정은에 대한 정보는 유학파 출신[5]이라는 것과 나이가 젊은 편[6]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김정은이 결국 개혁개방을 할 것이라는 추측이나 노련한 장성택에게 실권을 뺏기고 허수아비로 전락할 것이라는 추측이 강했다. 이러한 추측은 장성택2013년에 고사포로 총살당하면서 끝장났지만, 북한에 대한 희망적인 관측은 계속되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지나치게 관용적인 대북정책으로 북한에 대한 비관적인 관측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과 우파 국민들의 경계심을 자극했으나, 국민들 사이에서는 통일론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특히 2018년남북정상회담북미회담은 결국 우리는 하나의 국가로 통일하게 될 것이다라는 기대감을 높혔다. 하지만 곧 북한이 대남강경기조로 돌아서[7]서 이러한 기대감은 끝장이 났다.

문재인 정부시기 한국이 단독으로 줄 수 있는 최대한으로 지원해주었음에도 북한이 적반하장의 극을 보여준 탓에 우파 국민들 뿐만이 아니라 좌파 국민들까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8] 단순히 실망감을 넘어서 우리가 아무리 지원하고, 아무리 협력해도 포탄으로 돌아온다.라는 관념이 강해져서 평화통일론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번졌다.

북한이 붕괴할 것이란 기대감과 평화통일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진 이후, 국민들의 북한에 대한 관심이 대단히 줄어들었다. 특히 김정은 정권이 영구적 분단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모습을 보이면서 우리는 하나라는 관념이 무너지는 바람에 좌파 국민들 중에서도 로동당 정권과 대화하는데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이 꽤 많이 늘어났다.

2.2. 혁명론의 등장

북한 붕괴론에 대한 기대감이 줄어들고, 근시일 내로 평화통일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사라지자 북한에 대한 관심 자체가 많이 줄어들었다. 국민들이 북한이 미사일을 쏘거나 핵실험 재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자, 좌파 쪽에서도 옛 주사파 출신이 아닌 이상에야, 북한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을 강조하는 정치인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북한의 도발이나 신무기 실험과 별개로 2021년부터 코로나19인한 통제가 강해지기 시작했다는 말이 한국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혁명론으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나, 북한이 질병통제를 빌미로 국민들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실제로 곧 북한은 북중국경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여 밀무역을 차단했고, 밀무역으로 유지되는 장마당에 대한 탄압을 실시하여, 북한 민간경제에 대한 통제력 강화를 시작했다. 곧 상당수의 시장(시장)이 북한의 통제아래로 들어왔고, 유통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여 '국가중심의 통제경제' 상태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로인하여, 돈주의 70%~80%가 몰락했고 유통시장을 포함한 북한의 민간 경제는 붕괴했다.

문제는 북한국민들의 숨통에 호흡기를 달아주던 장마당 시장경제를 박살냈지만 그것을 대신할 대체제는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22년부터 2024년[9]까지 북한인민들의 살림살이는 퇴행에 퇴행을 거듭하여, 다시 기아 상태로 빠지는 지역조차 생기기 시작했다. 이러한 소식이 들려오자 북한이 붕괴하지 않더라도 국민들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언론매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지린성 북한 노동자 폭동 사건이나 신규 반체제 출현사건 그리고 북한 외교관 연쇄 탈북 사건이라는 지금까지는 없었던 초유의 사태가 연이어 발생하자, 북한에서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는 희망적인 추측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추측은 김정은이 군부대를 시찰할 때, 중무장한 호위를 대동하는 모습이나, 고위계층을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

3. 정말 혁명의 징조일까?

4. 혁명이 일어난다면

4.1. 새 정권의 성향

4.2. 주변국에 대한 영향

4.3. 남북통일에 대한 전망

5. 관련 문서



[1] 북한 사람을 대상으로는 국민보다 인민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지만 해외주제 북한인들과 탈북자 그리고 북한이탈주민을 제외하여, 본 항목에서는 인민보다 그 뜻이 더 좁고 명확한 국민을 쓴다.[2] 결과론적이다. 당시 민족주의적 색체가 강해서 동포들이 죽어나가는 꼴을 보기 힘들었던 시대였고, 또한 독일의 재통일과 동유럽 공산권과 소련이 무너진 것이 얼마되지 않았던 터라, 일종의 승자의 여유를 가졌던 때였다. 어차피 통일할 것이라면 좋게 통일하자는 것이 대세였던 것이다. 고난의 행군이 발생한 것은 김일성이 죽은 직후라 김정일에 대한 파악이 안되었던 때라서, 북한이 국민들을 일부러 굶겨 죽여가면서 핵이나 개발할 것이라는 예측은 하기 힘들었다.[3] 좌파우파온건파들은 북한의 경제적 발전이 통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초점은 상당히 다르다. 좌파는 경제적으로 발전하면 더이상 싸울 이유가 없게 되어서 서로 총을 내려놓고 통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우파는 경제적인 발전의 전제가 개혁개방이므로 경제적 발전의 전제가 되는 개혁개방의 결과 독재체제가 무너져서 통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4] 일반적으로 우파 온건파들은 재난 등으로 인한 경제적 지원에 반대하지 않고, 퍼주기식 지원만 아니면 경제협력 자체에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파 강경파의 경우에는 북한을 말려 죽여야한다는 생각이 대단히 강했다. 이들은 대북 강경파라고 불렸다.[5] 김정은은 스위스에서 유학한 사람이다. 하지만 유학이라고 뭘 배워온 것은 아닌것으로 보인다.[6] 당시 27살로 지도자가 되었는데, 지도자로써는 나이가 매우 젊었다.[7] 북한이 기대한 만큼 문재인 정부가 내어주지 않아서라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당시 남한의 국민들은 너무 많이 지원하고 양보한다.는 생각이 강한 것과 대조적이다.[8] 문재인 정권의 지지율과 국힘당에 대한 반감에도 정권이 바뀐 가장 큰 이유를 이 '실망감'에 찾는 사람도 있다.[9]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무기수출의 대가로 곡물을 수입하여 위기를 넘겼다는 말이 있지만 그게 언제까지 유효할지 지금도 유효한지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