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8-03 12:51:12

부분노

<colcolor=#c5b356> 고구려의 장수
부분노
扶芬奴
<colbgcolor=#000000> 출생
(음력)
생년 미상
미상
사망
(음력)
기원전 9년 4월 이후 (향년 미상)
고구려
이름 부분노(扶芬奴)
주군 동명성왕유리명왕
참전 행인국 정벌
선비족 토벌

1. 개요2. 활약상
2.1. 초기 행적2.2. 선비족 토벌
3. 창작물에서의 부분노4. 둘러보기

1. 개요

고구려 초기의 장수.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 대부터 활약한 기록이 있으며, 유리명왕 대까지도 활동했다.《구삼국사[1]김부식의《삼국사기》에 그의 활약상이 언급된다.

특히 유리명왕 대에 꾀를 내어 선비족을 무찌른 활약상이 돋보인다. 비록 기록이 적어 자세한 생애는 알 수 없으나, 부분노가 선비족을 무찔렀던 부분에 유난히 많은 비중이 할애되어 있는 것으로 보건데 아마 전략을 짜내는 데 능하여 왕의 총애를 받았던 지장이자 명장으로 추측된다.

2. 활약상

2.1. 초기 행적

동명성왕이 처음 고구려를 건국했을 때 비류국의 왕인 송양이 이를 두고 역사가 짧다고 하며 업신여기자 부분노가 나서서 비류국 궁궐의 오래된 북과 악기를 털어와 동명성왕에게 바쳤다는 기록이《구삼국사》에 남아있다. 동명성왕이
"그들이 꼭꼭 숨긴 물건을 그대가 무슨 수로 가져올 것인가?"
라고 묻자
"하늘에서 내려준 것인데 (하늘의 후손인) 대왕이 가져간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대왕이 부여에서 힘들게 지낼 때 오늘 대왕이 이렇게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런 대왕도 하늘이 시켜서 이렇게 한 나라의 왕이 되었는데, 이번에도 분명히 하늘이 대왕을 도우실겁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기원전 32년(동명성왕 6년), 10월에 오이와 함께 왕명을 받들고, 태백산 동남쪽의 행인국(荇人國)을 쳐서 그 땅을 빼앗고 고구려의 성읍으로 삼았다.

2.2. 선비족 토벌

이후 기원전 9년(유리명왕 10년)에 선비족이 고구려를 침입해 왔으나, 선비족들이 사는 땅이 험하고 거칠어서 이를 정벌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에 유리명왕과 신하들이 고심하던 중에 부분노가
"선비는 험하고 견고한 나라이며, 사람들이 용감하지만 어리석으므로 꾀로 굴복시킬 수 있습니다."
라고 하면서 계책을 냈다.

부분노는 선비족에게 거짓 배신자를 보내 고구려군 병사들이 약하고 겁이 많다며 속인 후, (유리명)왕이 약한 군사를 이끌고 선비족의 성 앞에 나섰다가 달아나면 선비족이 우습게 알고 뒤를 쫓을 테니 그 틈을 타서 정예 병력으로 기습 공격을 하면 승산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유리명왕이 선비족의 성 앞에 군대를 끌고 가서 부분노가 말한 대로 선비족의 군사들을 성문 밖으로 유인했다. 이때 산림에 숨어 있었던 부분노 휘하의 고구려군 정예부대가 열린 성문 안으로 진격하여 선비족을 대파했다.

결국 선비족은 고구려에 굴복하여 속국이 되었고,[2] 유리명왕은 그 공로로 부분노에게 식읍을 하사하려고 했다. 그러나 부분노가 모든 공을 왕에게 돌리며 받지 않자 유리명왕은 부분노에게 식읍 대신 황금 30근과 좋은 말 10필을 하사했다.

3. 창작물에서의 부분노

드라마 <주몽>의 등장인물로, 박경환이 연기했다. 원래 대소의 명령을 받고 주몽을 죽이러 온 부여의 장수였으나 주몽의 면모에 감화되어 고구려 귀화를 선택, 고구려의 개국을 돕는 장수가 된다. 중후반부에 투입된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극 초반에도 부여 의 신료 회합 등에 자주 모습을 비추던 카메오였다. 전투력은 나로보다 더 강하다. 또 의외로 주몽, 대소같은 천상계급 무예실력을 가진 사람들을 제외하면 전투력이 최강인데 오이,협보가 극 중반부까지 나로에게 상대가 되지 않고 무골도 둘 보다 조금 위인 수준이고 또 송주도 나로와 1승 1패의 전력을 가지고 있는데 부분노는 고구려 건국 이전 전투에서 나로를 쉽게 압도해버린다.[3]

게임 <바람의 나라>의 연대기 14편에 등장한다. 플레이어가 부분노 캐릭터를 조작하여 비류성에서 나발과 북을 훔쳐 와야 하는데, 성공적으로 절도에 성공한 후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 협부 및 무골과 합류하면 클리어할 수 있다.

4. 둘러보기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fff,#101010> 권 1
신라
김유신 ·
신라
장보고 (정연) ·
신라
침나 (소나) ·
고구려
부분노 ·
고구려
을지문덕 ·
고구려
안시성주 ·
백제
흑치상지 ·
고려
유금필 ·
고려
강감찬 ·
고려
양규 ·
고려
윤관
권 2
고려
오연총 ·
고려
김부식 ·
고려
조충 ·
고려
김취려 ·
고려
박서 (송문주) ·
고려
김경손 ·
고려
이자성
권 3
고려
김방경 ·
고려
한희유 ·
고려
원충갑 ·
고려
안우 (김득배 / 이방실) ·
고려
정세운 ·
고려
정지
권 4
고려
최영 ·
조선
이지란 ·
조선
최윤덕 ·
조선
이종생 ·
조선
어유소 ·
조선
이순신 ·
조선
권율
권 5
조선
곽재우 ·
조선
정문부 ·
조선
황진 ·
조선
휴정 (유정 / 영규) ·
조선
정기룡 ·
조선
김시민
권 6
조선
이정암 ·
조선
임중량 ·
조선
김덕령 ·
조선
정충신 ·
조선
김응하 (김응해) ·
조선
임경업 ·
조선
정봉수 ·
조선
류림 (류형)
참고: 윗첨자의 경우에는 독립적인 열전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해당 인물의 열전 속에서 함께 설명되는 인물들이다.
}}}}}}}}} ||




[1] 현재는 사라진 역사서로, 고려시대의 문인인 이규보의 저서《동국이상국집》의 <동명왕편>에서만 부분적으로 확인 가능하다. 이규보는 "《삼국사기》에는 기이한 건 다 무시하고 빼버렸는데 기이하다고 해서 역사를 기록하지 않는 건 옳지 않다."라며 구삼국사의 <동명왕 본기>를 그대로 옮겨놓고 자신의 시를 덧붙였다.[2] 사실 이 대목은 신뢰성이 그리 높지 않다. 선비족을 완전히 제압했다기보다는 선비족의 한 부락 정도를 복속시킨 것으로 판단해야 할 듯하다. 여담인데 고구려가 훗날 선비계 왕조인 전연에게 크게 깨지거나, 선비족 계통(혹은 그 자체)으로 추정되는 당나라에 의해 멸망하게 되는 역사를 떠올리면 미묘해지는 부분이다.[3] 부분노가 나로를 죽일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망쳤다. 이는 부여/한나라 연합군의 공습때문에 주몽에게 상황을 보고해야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