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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1b><colcolor=#ffc224> 제14대 연방준비제도 의장 벤 샬롬 버냉키 Ben Shalom Bernanke | |||
출생 | 1953년 12월 13일 ([age(1953-12-13)]세) | ||
미국 조지아주 노스오거스타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
재임기간 | 제16대 연방준비제도 의장 | ||
2006년 2월 1일 ~ 2014년 1월 31일 | |||
서명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00001b><colcolor=#ffc224> 부모 | 아버지 필립 버냉키 어머니 에드나 버냉키 | |
형제자매 | 동생 세스, 샤론 | ||
배우자 | 안나 프리드먼 | ||
자녀 | 아들 조엘 버냉키 딸 알리사 버냉키 | ||
학력 | 딜런 고등학교 (졸업)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 / A.B.) (1975년) MIT 대학원 (경제학 / Ph.D.) (1979년) | ||
지도교수 | 스탠리 피셔 (Stanley Fischer) | ||
정당 | (2015년까지) (2015년부터) | ||
경력 | 스탠퍼드 대학교 (경제학과 / 부교수)[1] 프린스턴 대학교 (경제학과 / 정교수)[2]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이사)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브루킹스연구소 (상임연구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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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앙은행의 역할은 시장의 패닉을 진정시키기 위해 최종대부자로서 대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다.[3]
미국의 경제학자로 앨런 그린스펀 의장의 뒤를 이어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으로 재직했다. 1953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노스오거스타의 유대인 이민가정에서 태어났다. 친가는 우크라이나에서 이민 온 유대인이고, 외가는 리투아니아에서 이민 온 유대인 집안이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최우등 졸업하고, MIT 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2. 상세
초창기에는 앨런 그린스펀의 통화완화 정책으로 말미암은 2003년 ~ 2007년의 세계 대호황(골디락스 경제)[4]에 대해서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통화흡수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러다가 대침체가 터지면서 공격적인 통화완화와 경기부양을 감행했다. 미국의 기준금리를 제로금리까지 떨어뜨리고 양적완화 정책까지 밀어붙였다. 다만, 2008년 금융위기 직후에는 효과가 어느 정도 나타났지만 이런 정책이 3년 넘게 지속되면서 효과가 떨어진 게 단점이다.연준 의장 지명 전에는 세계 대공황 연구를 많이 수행한 권위자로 유명하다. 하버드 대학원 거시경제학 과정에서 그의 논문을 거의 반 학기 동안 접할 정도라고.[5] 그리고 일본의 버블 붕괴에 대한 연구도 많이 하여 당시 일본 정부의 정책적 실수들을 지적, '자산 붕괴에 대한 공포가 시장에 만연할 때는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과감한 경기부양책을 지체없이 투입해야 한다'[6]는 결론을 얻게된다. 위에 언급된 2008년 미국 금융위기 때의 양적완화 정책이 이런 취지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린스펀 역시 대공황 전문가였던 버냉키를 추천했다고. 아이러니하게도 조지 W. 부시 대통령와의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대공황을 연구한 그의 학술적 배경은 부각조차 되지 않았었다.[7]
그런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2007년, 이미 모기지 관련 부실이 슬금슬금 지적되고, 이것이 연쇄적 파행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높아지자 '그럴 일 없다. 안전할 것이다' 같은 입장을 공개표명한 흑역사가 있다. 물론 대공황 연구자로서, 그런 위기를 인정했을 때 벌어질 집단적 공포가 파국을 가속할 것이라는 판단에서 시장을 안심시키기 위한 착한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볼 여지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기에는 당시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할 때까지 직접적인 대응이 없었다. 따라서 모기지 사태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은 전임 의장 앨런 그린스펀에게 있지만, 사태가 터지기 직전 그 후임으로 부임한 버냉키 본인도 일정 책임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다만 사고가 터지고 난 후 소방수로서 활약한 공이 매우 크다고 평가받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유명한 양적완화 정책은 2014년 10월 종료 선언을 하였고, 후임인 재닛 옐런이 금리 인상을 저울질하다가 결국 2015년 12월부터 서서히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이 사람의 정책 덕에 그나마 금융위기가 대공황급의 파국으로까지 악화되지 않고 비교적 수습이 잘 되었다는 게 통설이다. 버냉키의 양적완화 정책에 대한 긍정적인 논조의 정치학, 경제학 논문들은 버냉키가 없었다면 그 어떤 시나리오로도 제3차 세계 대전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8]
반면 신자유주의에 비판적인 비주류 경제학자들을 중심으로 버냉키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인해 시장에 풀린 자금이 민간투자 쪽보다는 주식시장으로 흘러가면서 실질적인 경기부양 효과는 미미했고 주식을 보유한 부유층과 그렇지 못한 중산층 사이의 양극화가 더 심해졌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9]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헬리콥터에서 달러를 뿌리는 것처럼 과감한 양적 완화 정책을 의미하는, 이른바 '헬리콥터 머니'는 중앙은행이 정부에 직접 자금을 지원하는 극단적인 경기부양 방법인데, 벤 버냉키가 연준의 이사로 있던 2002년 연설에서 디플레이션 퇴치 수단 중 하나로 헬리콥터 머니를 언급한 것이 계기가 돼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을 얻게 됐고, 본인이 연준 의장에 취임한 2008년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엄청난 규모의 양적완화 정책 덕분에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이 세계적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
후임으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재닛 옐런 부의장을 공식 지명했다.
공화당 소속이었으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공화당 대선 후보로 출마한 이후로 공화당을 탈당해서 현재 무소속이다.
2019년 탄소세 도입을 위해 전 연방준비제도 의장들과 함께 탄소세 도입 성명서에 서명을 하였다.
2022년 노벨경제학상을 더글라스 다이아몬드, 필립 디빅과 함께 공동 수상하였다. # 이에 대해 블룸버그 등의 경제매체에서는 정치적인 시상이라는 미묘한 평을 냈다. 아무리 1930년대 뱅크런이 은행 파산을 초래해 대공황이라는 경제위기를 더 키우고 장기화하는 결정적인 요인이었음을 증명했다는 학계에서의 업적으로 수상했다지만, 오늘날 버냉키는 '학자'보다 세계의 경제대통령이나 마찬가지인 '연준 의장'으로서 폭발적 양적완화 정책을 펼친 헬리콥터 벤으로 더 유명한 인물이다.[10] 때문에 2022년 전 세계 물가 폭등 속에서 버냉키와 정반대로 폴 볼커급의 고강도 재정긴축, 폭발적 금리인상을 고집하는 제롬 파월 현직 연준 의장에 대한 비판을 담아낸 정치적인 시상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다만 노벨경제학상 수상 결정이 나온 후 반년 가량이 지난 2023년 3월에 실버게이트은행, 실리콘밸리은행, 시그니처은행 등의 여러 (미국 기준) 중소형 은행들이 뱅크런으로 파산하고 과거부터 부실 의혹이 끊이지 않던 크레디트스위스, 도이체방크 등의 유럽 은행들도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이면서 세계금융위기 재현 우려가 불거지면서는 스웨덴 중앙은행이 근미래의 혼돈을 잘 예측했다거나 뱅크런 전문가들이 노벨경제학상을 외상으로 받아갔던거라는 씁쓸한 재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1] 경영대학원 부교수[2] 공공정책대학원 정교수, 1995년 ~ 2002년 경제학과 학과장[3] 인플레이션을 해결하기 위해 시장에서 마른 수건 쥐어짜듯 고금리로 돈을 뽑아냈던 폴 볼커와는 정 반대의 상황에서 정 반대의 방식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하여 비교가 되곤 한다.[4] 실은 금융위기가 터지기 직전이었지만[5] 그래서 대공황에 대해 공부하게 되면 이 사람 이름은 무조건 접한다.[6] 그는 교수 재직 시절 일본의 버블 붕괴 이후 장기간 디플레이션을 당시 일본은행의 소극적인 통화정책 탓으로 돌리며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7]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 의장이라는 직책이 위기 대응시에만 필요한 자리도 아니고 '앞으로 크나큰 경제 재앙이 찾아올 것이니 과거에 있었던 비슷한 사례를 많이 연구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분석을 할 사람은 없다.[8] 대공황이 2차대전의 주요 원인들 중 하나였음을 고려하면, 정말 대단한 호평이다.[9] 최근 본인 저서 "21세기의 통화정책" 에서 이러한 비판에 대해 어느 정도 부분적으로는 인정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양적완화로 공황을 피했고, 더 큰 공황이 왔다면 양극화는 훨씬 심해졌을 것임을 피력하며 반박하기도 했다. 결국 자신의 정책을 큰 틀에서 봐야한다고 주장한 것이다.[10] 물론 대중에게 알려진 계기가 연준의장으로서의 활동 때문이지만, 버냉키는 공황과 관련해서 세계 최고의 권위자라고 할 수 있으며 학부용 교과서도 집필하는 등 이미 학계에서 저명한 학자였다. 그렇게 능력을 입증하고 인정받았기 때문에 연준의장이라는 중책도 맡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