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3-10 20:29:11

바비 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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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로버트 조지프 "바비" 콕스
(Robert Joseph "Bobby" Cox)
생년월일 1941년 5월 21일
국적 미국
출신지 오클라호마털사
포지션 3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59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자유계약
소속팀 뉴욕 양키스 (1968~1969)
지도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감독 (1978~1981)
토론토 블루제이스 감독 (1982~1985)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감독 (1990~2010)
프런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단장 (1986~1990)
수상경력 MLB 올해의 감독상 4회(1985, 1991, 2004, 2005)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1995
파일:MLB_logo.png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cox.png
바비 콕스
헌액 연도 2014년
헌액 방식 베테랑 위원회(Veteran's Committee) 선정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영구결번
{{{#!folding [ 펼치기 · 접기 ] 3 6 10 21 29 31
데일 머피 바비 콕스 치퍼 존스 워렌 스판 존 스몰츠 그렉 매덕스
35 41 42 44 47
필 니크로 에디 매튜스 재키 로빈슨 행크 애런 톰 글래빈
}}}||

{{{#ffffff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역대 감독}}}
데이브 브리스톨
(1977, 대행)
바비 콕스
(1978~1981)
조 토레
(1982~1984)
러스 닉슨[1]
(1988~1990)
바비 콕스
(1990~2010)
프레디 곤잘레스[2]
(2011~2016)
{{{#ffffff [[토론토 블루제이스|토론토 블루제이스]] 역대 감독}}}
바비 매틱
(1980~1981)
바비 콕스
(1982~1985)
지미 윌리엄스[3]
(1986~1989)

1. 개요2. 선수시절3. 지도자 생활 초기4.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부임 : (...)5. 토론토 블루제이스: 토론토의 비밀번호를 끊다6. 애틀랜타 복귀 : 단장으로서 유망주들을 키우다7. 존 슈어홀츠의 등장 : 감독으로 복귀, 그리고 전설이 되다8. 레오 마조니9. 말년10. 은퇴 이후

1. 개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역사상 최고의 감독
MLB 역사에서 손꼽히는 지도력으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WS 우승 1회, NL 우승 5회 포함 14회 연속 지구 우승을 이끌었던 인물이자, 통산 2504승으로 감독 최다승 4위에 랭크되어 있는 명장이자 역대급의 화끈한 성깔도 보유하여 158회 퇴장(포스트시즌 3회 퇴장까지 추가하면 161회)으로 역대 최다 퇴장(...)의 기록을 가지기도 한 용장. 메이저 공홈에 올라온 주옥같은 퇴장 장면들

2. 선수시절

1959년 LA 다저스 산하 루키팀에 입단한 뒤 이팀 저팀 옮겨다니다가 1968년 뉴욕 양키스 소속으로 빅리그에 데뷔, 주전 3루수로 발탁된다. 그러나 타율이 낮은데다가 무릎조차 영 좋지 못해 빅리그에서의 커리어는 2시즌에 그쳤고, 결국 1971년 은퇴를 택한다.

3. 지도자 생활 초기

콕스는 뉴욕 양키스 마이너리그에서 감독 수업을 받는다. 그는 서른이 갓 넘은 나이에 마이너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고, 훗날 양키스의 영구결번자로 등극하는 론 기드리 등을 키워내며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했고, 이를 바탕으로 빅리그 1루 코치로 승격되어 빌리 마틴 감독을 보좌, 1977년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한다. 이렇게 젊은 나이부터 명감독의 편린을 보인 콕스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감독직 제의를 받고 이적하게 된다.

4.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부임 : (...)

그러나 이 당시 애틀랜타는 참으로 암담했다. 프랜차이즈 확장으로 MLB에 참여한 시애틀 매리너스토론토 블루제이스보다 못한 성적을 내기 일쑤였으니... 그래도 준수한 파워를 보이던 포수/1루수인 데일 머피를 중견수로 기용하는 등 콕스 감독은 있는 형편에서 최대한 쥐어짜내는 야구를 펼쳤으나 결과는 6-6-4-5로 망했어요(...) 다만 데일 머피는 이렇게 중견수로 포지션을 옮긴 뒤 두번이나 MVP를 차지하는 등 1980년대 내셔널리그를 대표하는 타자로 우뚝 서게 되지만, 그럼 뭐해. 테드 터너 구단주가 콕스 감독을 짤라버리는데(...)[4]

5. 토론토 블루제이스: 토론토의 비밀번호를 끊다

만년 꼴찌팀인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콕스 감독을 중심으로 빌딩[5]을 재촉했다. 콕스 감독은 때맞춰 전력을 재정비하고 중장거리 타자들을 키워내며 팀을 1985년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우승으로 이끈다. 다만 이 시즌부터 7전 4선승제로 바뀐 ALCS에서 3-1로 캔자스시티 로열스를 리드하다가 아쉽게 3연패하며 WS 진출은 좌절된 것은 옥의 티. 하지만 그 해 아메리칸리그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한다.

6. 애틀랜타 복귀 : 단장으로서 유망주들을 키우다

그는 애틀랜타의 감독이 아닌 단장으로서 선수단 전체를 총괄하는 역할에 몰두한다. 이 기간에 드래프트라든지 여러 경로를 통해 발탁된 선수들이 톰 글래빈, 스티브 에이버리, 존 스몰츠, 론 갠트 등이며, 1990년 마지막으로 어떤 스위치히터를 전체 1지명으로 영입한다.

7. 존 슈어홀츠의 등장 : 감독으로 복귀, 그리고 전설이 되다

존 슈어홀츠라는 명단장 후보가 등장하고 때마침 브레이브스의 현직 감독도 시원치 않자, 콕스는 스스로 감독직에 오른 후, 머지않아 단장직을 슈어홀츠에게 넘긴다.

슈어홀츠는 부임 초기부터 FA로 그렉 매덕스를 영입하는 등 적극적으로 콕스를 지원해줬고, 콕스는 1991년부터 1994년 파업시즌[6]을 제외한 14시즌 연속 디비전 우승[7]이라는 금자탑을 이룩한다. 거액에 영입한 그렉 매덕스 역시 돈값 이상을 해주는, 라이브볼 시대 이래 최고의 퍼포먼스를 펼치며 사이 영 상을 독식했고, 매덕스의 사이영 독식이 끝나자 존 스몰츠톰 글래빈이 나타나 사이 영 상을 휩쓸었다. 타자들 중에서도 안종수가 10대의 나이로 월드시리즈에서 홈런을 까고 치퍼 존스가 명예의 전당급 커리어를 쌓으면서 데이비드 저스티스도 중요한 순간에 터져주는등 그야말로 뭘 해도 되는 집안 Dynasty(왕조)를 이룩했다. 콕스 감독 본인의 커리어 역시 활짝 펴서 1991년 감독으로 복귀한 첫 해에 NL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여 양대리그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는 위업을 달성하고 2004~2005 2년 연속으로 올해의 감독상을 다시 수상한다.

다만 슈어홀츠 사장[8]은 프랜차이즈의 레전드들인 매덕스, 글래빈, 스몰츠를 연봉을 많이 요구한다거나 전성기가 지났다고 판단하자 홀대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팬들에게 좀 많이 까였다. 물론 비즈니스적인 모습에서는 이성적인 선택이지만, 가슴으로는 영 찝찝하다는 평이 많았다.

8. 레오 마조니

토니 라 루사에게 데이브 던컨이 있다면 바비 콕스에겐 레오 마조니가 있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코치를 논한다면 레오 마조니(Leo Mazzone)는 빠질 수 없는 이름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투수왕국을 일궈낸 것이 사실은 선수들의 기량이 워낙 넘사벽이었기에 가능했다는 의견도 있지만, 스티브 에이버리나 케빈 밀우드, 러스 오티즈 등의 선수들도 브레이브스에서 호투를 펼쳤다는 점에서 투수코치인 마조니의 공을 폄하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그가 브레이브스를 떠나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이적함에 따라 브레이브스 왕조의 쇠퇴가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영향력은 지대했다 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90년대 브레이브스의 진정한 쓰리펀치는 매덕스-글래빈-스몰츠가 아니라 슈어홀츠-콕스-마조니라 주장하는 이들도 있는데, 프런트 오피스의 행보를 중시하는 시각에서 바라보면 꼭 틀린말은 아닐지도...?

9. 말년

말년엔 스몰츠의 노쇠화와 글래빈의 부상, 그리고 지구 라이벌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전성기, 플로리다 말린스의 이따금씩 나오는 갑툭튀가 겹치는 바람에 제대로 된 성적을 내진 못했다. 그래도 2010년에 은퇴를 선언하자 그가 가는 마지막 원정길마다 각 팀들이 선물을 전하며 명감독의 마지막 시즌을 함께했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와일드카드 레이스에서 승리하며 마지막 시즌에 다시금 포스트시즌을 경험할 수 있었다. 물론 이때도 클러치 에러 등이 겹치며 시리즈를 3-1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게 내주지만, 홈에서 가진 마지막 경기에서 패배가 확정된 순간 팬들은 콕스 감독을 위해 따뜻한 박수를 보내줬고 샌프란시스코 선수와 스태프들도 덕아웃에서 나와 기립박수를 보내는 명장면이 연출되었다.

이렇게 그는 통산 2504승 2001패에 올해의 감독상 4회, 그것도 양대리그에서 모두 수상이라는 흠좀무한 커리어를 쌓고 은퇴하였다.

10. 은퇴 이후

2011년 8월 12일 그의 등번호인 6번이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어 성대한 기념행사를 가졌다. 22분 영상 그의 지휘 하에 사이 영 상을 휩쓸었던 그렉 매덕스, 톰 글래빈, 존 스몰츠 등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었고, 브레이브스 프랜차이즈 사상 첫 감독 영구결번이라는 뜻깊은 행사에서 시구 후 심판의 퇴장 선언이라는 개그도 나왔다. 옥의 티라면 이 날 상대였던 시카고 컵스 선발 투수 카를로스 잠브라노치퍼 존스를 상대로 빈볼을 던지고 짐 싸서 나가버린 것. 잠브라노는 이로서 브레이브스 팬덤 뿐만 아니라 컵스 팬들에게도 인식이 안좋아졌고, 컵스 구단 측에서 브레이브스에 공식 사과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2012년에는 예고 없이 터너필드를 방문했다가 관중들로부터 열광적인 환호를 받기도 했다. 2013년에는 애틀랜타가 치른 브레이브스 산하 마이너리그 선발 팀과의 시즌 개막 직전 마지막 연습경기에서 마이너리그 선발 팀의 지휘봉을 잡기도 했다.

한편으로 토론토 팬들은 2012년 시즌이 종료된 후 존 패럴 감독이 보스턴 레드삭스로 떠난 뒤 새 감독 자리 인선을 두고 콕스 감독의 복귀를 기원했다고 한다. 물론 은퇴한 양반 불러오는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 존 기븐스 감독이 팀을 맡는 걸로 일단락되었다.

2013년 명예의 전당에 만장일치로 입성했다. 그런데 같이 입성한 감독이 역대 감독 다승 5위 조 토레역대 감독 다승 3위 토니 라 루사라는 콕스만큼이나 비범하기 짝이 없는 인물들이라 통산 2000승을 달성한 감독 셋이 동시에 입성하는 초유의 기록이 나왔다. 세명 합산 승수가 7558승!


[1] 중도 경질[2] 중도 경질[3] 중도 경질[4] 콕스의 후임은 조 토레. 그러나 토레는 단기간만 감독을 맡고 물러난다.[5] 애초에 지어진 것이 없으니 빌딩은 아니다[6] 이 때는 공식적으로 지구 우승팀이 없었다. 시즌이 중단되기 전까지의 순위는 몬트리올 엑스포스가 1위.[7] 91-93 서부, 94-2005 동부. 왜 초창기 서부지구였냐면 1969년 디비전 획정 당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시카고 컵스가 어른의 사정으로 동부에 배치받는 대신 애틀랜타가 억지춘양식으로 서부에 배치됐기 때문이다.[8] 2007년 말부터는 프랭크 렌에게 단장직을 물려주고 사장으로 승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