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2 15:52:24

무시 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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虫プロダクション
무시 프로덕션 (통칭 '무시 프로')
공식 홈페이지

1. 개요2. 역사
2.1. 전성기에서 몰락까지2.2. 전설적인 멤버들2.3. 파산 후
3. 대표작4. 참고 자료

1. 개요

1962~1973년까지 존재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애니메이션 제작사. 당시에 경쟁하던 회사로는 토에이 애니메이션, 철인 28호로 유명한 TCJ, 타츠노코 프로덕션, 도쿄 무비, 즈이요 엔터프라이즈였다. 창업주는 데즈카 오사무.

2. 역사

2.1. 전성기에서 몰락까지

1961년 데즈카 오사무가 도쿄도 네리마구 후지미다이에 있는 사저 옆에 창고 건물을 짓고 설립한 후, 스태프로 토에이 동화 출신 사카모토 유사쿠와 오토기 프로덕션[1] 출신 야마모토 에이이치를 합류시켰다. 이 셋은 1962년 실험작품 <어느 길모퉁이 이야기>를 만들어 제1회 오후지 노부로상 등을 받았고, 1963년 일본 최초 주간 연재 20분 애니메이션 철완 아톰을 제작하면서 일본 TV프로그램에 주간 TVA 제작 붐을 일으켰고, 업계 최초로 해외 진출을 했다. 주로 밀림의 왕자 레오, 리본의 기사, 도로로 등 데즈카 만화를 애니화했다. 타 만화가 작품을 원작으로 제작한 것 중 가장 유명한 건 내일의 죠이다. 작품의 성공으로 스태프 수도 조금씩 늘어 1964년 230명, 1966년 400명이 됐다.

그러나 1960년대 말부터 데즈카의 인기 만화 원작이라는 소재가 고갈되고, 데즈카 사장의 독단적 제작방식과 라이벌 회사와의 경쟁, 인력난 등으로 제작비와 인건비의 빚이 쌓이자 1966년 기준 4백 명에 이르던 종업원이 이듬해를 기점으로 점점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사카모토 유사쿠 등 초기 멤버들이 회사를 떠났고, 1968년에 데즈카 사장이 독자 프로덕션을 세우고 1971년에 사장직을 사임하면서 주로 데즈카와 관계없는 애니들을 제작해 오다가 1973년 8월 관계사 무시프로덕션상사가 파산됐고, 말기에는 은행으로부터 차입을 못 받아 방송사들의 발주까지 끊겨 11월에 최종 도산했다. 그리고 남은 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가 훗날 다시 뭉치는데 이 회사들이 선라이즈, 매드하우스이다.

2.2. 전설적인 멤버들

일부만 뽑아도 이 정도. 데즈카 오사무가 얼마나 인재를 잘 뽑았는지 실감케한다. 특히 야스히코 요시카즈처럼 학생운동 경력이 있어 취업이 거의 불가능했던 인물까지 받아주었다. 정말 재능만 보고 뽑았다는 것이다. 야스히코 말로는 토에이 애니메이션은 도쿄 예술 대학 정도는 나와야 정직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엘리트 회사였고 무시 프로덕션은 학력 하나도 안 보고 정말 능력만 보고 뽑았다고 한다.

안타까운 건 이 사람들은 무시 프로가 망하고 나서야 재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2.3. 파산 후

1979년에 구 무시프로덕션 노조원들이 사명을 물려받고, 주로 아동 대상의 소규모 상영회를 위한 교육용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드는 회사가 되었다. 가장 유명한 대표작은 어린 소녀의 태평양 전쟁 체험담을 그린 <うしろの正面だあれ>

3. 대표작

제작 시간순

4. 참고 자료

  •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 - 야마구치 야스오 저. 김기민/황소연 역. 미술문화. 2005.


[1] 신문만화 <후쿠쨩> 작가 요코야마 유이치가 세운 애니메이션 제작사이다. 당시 스태프 수는 20~30명으로 토에이의 1/10 규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