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7 13:58:33

무시 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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虫プロダクション
무시 프로덕션 (통칭 '무시 프로')
공식 홈페이지

1. 개요2. 역사
2.1. 전성기에서 몰락까지2.2. 파산 후
3. 참고 자료

1. 개요

1962~1973년까지 존재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애니메이션 제작사. 당시에 경쟁하던 회사로는 토에이 애니메이션, 철인 28호로 유명한 TCJ, 타츠노코 프로덕션, 도쿄 무비, 즈이요 엔터프라이즈였다. 창업주는 데즈카 오사무.

2. 역사

2.1. 전성기에서 몰락까지

데즈카 오사무가 도쿄도 네리마구 후지미다이에 있는 사저 옆에 창고 건물을 짓고 시작한 애니메이션 회사로, 1962년 실험작품 <어느 길모퉁이 이야기>를 만들어 제1회 오후지 노부로상 등을 받았다. 1963년 일본 최초 주간 연재 20분 애니메이션 철완 아톰을 제작하면서, 일본 TV프로그램에 주간 TVA 제작 붐을 일으켰고, 업계 최초로 해외 진출을 했다. 주로 밀림의 왕자 레오, 리본의 기사, 도로로 등 데즈카 만화를 애니화했다. 다른 사람 작품 제작한 것 중 가장 유명한 건 내일의 죠.

1960년대 말부터 데즈카의 인기 만화 원작이라는 소재가 고갈되고, 데즈카 사장의 독단적 제작방식과 라이벌 회사와의 경쟁, 인력난 등으로 제작비와 인건비의 빚이 쌓이자 1966년 기준 4백 명에 이르던 종업원이 이듬해를 기점으로 점점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사카모토 유사쿠 등 초기 멤버들이 회사를 떠났고, 1968년에 데즈카가 독자 프로덕션을 세우고 사장직을 사임하면서 주로 데즈카와 관계없는 애니들을 제작해 오다가 1973년 8월 관계사 무시프로덕션상사가 파산됐고, 11월에 모기업까지 도산했다. 그리고 남은 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가 훗날 다시 뭉치는데 이 회사들이 선라이즈, 매드하우스.

2.2. 파산 후

스기이 기사부로,니시자키 요시노부,린 타로,데자키 오사무,사사가와 히로시,토미노 요시유키,칸다 타케유키,타카하시 료스케,스즈키 요시타케,호시야마 히로유키,스기노 아키오,아라키 신고, 카나야마 아키히로, 야스히코 요시카즈, 나카무라 카즈오, 아시다 토요오, 카와지리 요시아키, 누노카와 유우지[1] 등이 이 회사 출신이었다. 데즈카 오사무가 얼마나 인재를 잘 뽑았는지 실감케한다. 특히 야스히코 요시카즈처럼 학생운동 경력이 있어 취업이 거의 불가능했던 인물까지 받아주었다. 정말 재능만 보고 뽑았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건 이 사람들은 무시 프로가 망하고 나서야 재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1979년에 무시 프로노조원들이 사명을 물려받고, 주로 아동 대상의 소규모 상영회를 위한 교육용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드는 회사가 되었다.

3. 참고 자료

  •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 - 야마구치 야스오 저. 김기민/황소연 역. 미술문화. 2005.


[1] 스튜디오 피에로 창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