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26 10:54:10

제작진행

1. 개요2. 실사작품3. 애니메이션4. 노동환경

1. 개요

制作進行. 드라마영화, 애니메이션 같은 영상작품을 제작 시 전체적인 일정 관리와 잡다한 업무를 담당하는 직책.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무시 프로덕션에서 처음 이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에게도 사무나 서류 정리, 이동, 회의 같은 업무를 보게 했는데 매우 비효율적이라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그림만 그리게 하고 다른 업무를 해주는 비서 같은 사람을 따로 두기로 했는데 그것이 제작진행의 시초이다. 현대의 제작진행의 시스템은 대부분 무시 프로덕션에서 정립되어 다른 회사도 쓰고 있다고 한다.

제작/총괄을 보조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이 직책으로 시작해서 경험을 쌓아 프로듀서연출가가 되는 경우가 많다.

'제작진행'이라는 명칭 자체는 일본에서 만들어졌지만 한국의 애니메이션계에서도 통용되는 명칭인 듯하다.

미국에서는 라이카 스튜디오에만 있는 직책이다. 일본의 제작진행에 대한 업무를 두개로 나눠서 제작부의 Associate Producer(제작보조) 또는 총무부의 Production Runner(제작진행) 두 명이 나눠서 한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애니메이션 사업부에서 제작진행 업무를 하는 사람은 제2조감독이다. 제2조'감독'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디즈니에서는 조감독을 거쳐서 감독으로 직행[1]한다. 당연히 철저한 성과제에 따르므로 실적이 없으면 바로 해고당한다.

2. 실사작품

한국에서는 주로 Assistant Director, AD라는 명칭이 사용된다. 그외에 '조감독', '조연출' 등등.

간단히 말해 PD잡일꾼 겸 노예조수로서 온갖 잡무를 처리하는 역할이다. 각종 섭외부터 스케줄 관리, 간단한 소품 제작, 조달 및 세팅, 인원 관리, 타 스태프 및 출연자 이동차량 운전, 장소 예약, 스태프 및 출연자 식사 주문 등 방송 관련 일부터 회식 때 고기 굽기, 커피 타기, 청소, PD 및 출연자 뒷바라지하기 등 사적인 일까지 다 한다. '이것은 AD가 하는 일'이라고 정해진 업무는 딱히 없다. 그냥 시키면 무엇이든 하는거다(…). 사실상 촬영장에서 가장 낮은 계급이라고 할 수 있지만, PD로 가는 스타트라인인만큼 경쟁률은 대단히 높다.

3.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 제작에도 있어서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작은 프로듀서'로서 제작에 관련해 확실한 비중은 있는 편.

큰 제작사의 경우, 제작진행도 여러 명 있고, 이 중 경력 많은 사람이 제작진행의 총괄 리더 직책인 제작데스크가 된다. 하청을 주로 맡는 작은 제작사에서는 제작진행 1명이 제작데스크 겸임까지 하거나 제작진행이 1 ~ 3명에 지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큰 회사에서 제작 데스크를 하고 있을 정도라면 인맥이 꽤 있다는 것이라서 실력있는 제작 데스크가 자기 인맥을 데리고 다른 회사로 이적 해버리면 애니메이션 감독, 애니메이션 프로듀서가 이적하는 급의 대량 인력 유출이 발생하기도 한다.

몇 개의 에피소드로 나누어 방영되는 TV 애니메이션이라면 그중 몇개의 화를 배정받아서 그 화를 제작할 애니메이터를 모집하게 된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한 회사에서 애니메이션이 뚝딱 만들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고, 특히 애니메이터 같은 경우 스튜디오가 여기저기 분산돼있거나 자택에서 근무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를 타고 온갖 동네를 돌아다녀야 한다. 덕분에 운전면허는 필수사항으로 취급되고 있다. 이렇게 작화, 동화, 배경 등 각종 자료가 완성되는대로 다음 작업으로 넘어갈 수 있게끔 뛰어야하는 직책. 한마디로 작품의 스케줄 관리는 상당부분이 이 직책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의미로 가장 중요한 직책인 것.

마감이 다가오면 지옥이 시작된다. 사실상 잠을 잘 수 없고, 위아래로부터 지속적으로 압박을 당하는 꼴이 된다. 작업이 더딘 곳이 있으면 협박을 하든가 무릎을 꿇어서라도 스케줄을 맞춰야 하므로 육체와 정신 모두가 만신창이. 졸음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그렇다고 애니메이터를 너무 갈구면 인맥이 엉망진창이 되어서 연출, 프로듀서로 올라갈 기회까지 잃게되니 적당히 구슬려야 한다.[2] 거기다 인력이 부족해 인성이나 멘탈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도 그대로 쓰는 상황이므로,[3] 그런 사람들과 직접 대면하면서 일해야 하니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다는 폭로가 많다. 현재 셀 애니메이션의 작업환경은 대부분 디지털화되었지만, 아날로그로 작업이 진행되던 시절에는 그림을 한뭉치 짊어지고 다녀야 하여 힘도 필요했다는 모양. 아날로그 제작 시절의 제작진행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애니메이션 제작진행 쿠로미짱의 쿠로미[4]를 보면 되고 디지털 제작 시대의 제작진행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시로바코의 주연인 미야모리 아오이의 모습을 보자. 조금 미화가 되었기는 하지만 그나마 현실에 가까운 편.

필요한 기술은 운전면허 외에는 딱히 없다. 단 다양한 방면의 재능이 요구되며 기본적으로 몸쓰는 일이므로 IQ가 높고, 사회성이 좋고, 체력이 강할수록 하기 쉽다. 특히 가장 중요한 건 IQ인데 고문관스러운 제작진행이라도 IQ가 상위권이면 어떻게든 버틴다. 2010년대 이후로는 일본의 애니메이터가 부족해지면서 외국 애니메이터를 섭외하고 번역해서 지시를 내리는 역할도 제작진행이 담당하기 때문에 영어, 중국어외국어 능력을 요구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아예 일본어 좀 하는 한국인, 중국인 같은 외국인을 특채 채용해버리기도 한다.

동일한 일을 다른 기업에서 하는 것에 비해서 박봉이다. 다른 일반 기업에서 이런 영업 및 잡무를 도맡아한다면 애니 제작사에서 제작진행을 하는 것보단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이런 고되고 박봉인 일인데도 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건 이 일이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들이 연출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올라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등용문이기 때문이다.[5] "나중에 너 연출 시켜줄 테니까, 잡일부터 해라"라고 하는 것.[6] 나가이 타츠유키, 타카야나기 시게히토, 오노 카츠미, 나가사키 켄지, 쿠도 스스무 등이 제작진행 출신 감독이다. 일본 초밥 장인들이 기술 가르쳐준다고 하고 거의 무급으로 제자들을 부려먹는 문제가 있는 것처럼 일본식 장인 주의와 도제 교육의 폐단이 애니 업계에서 나타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하다가 그만두는 사람이 가장 많은 직종으로 악명이 높다.[7][8]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때는 제작진행이 도망가서 이타노 이치로가 운전하고 다니면서 제작진행 업무를 대행했다는 일화도 있다.

반면 작품제작의 등용문으로서는 그만큼 확실한 직책이라는 평가도 있다. 일단 여기서 버텨낼 경우 전술했던 온갖 인간군상을 대하는 터프함은 보장이 되는 셈이고, 워낙 하는 일이 많다보니 작품제작 전반에 대한 이해도와 인맥은 자연스레 쌓여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작 진행을 어느 정도 하고나면 감독이나 프로듀서를 노리게 되며, 애니메이터 중에서도 빠르게 감독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은 일부러 제작진행을 자원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아주 드문 사례지만 제작진행을 하다가 그림에 재능을 발견하거나 작화를 그리는 일에 매력을 느껴 애니메이터로 전직하는 케이스도 있다.(예: 나가사카 케이타, 칸노 요시히로)

영상 연출에 뜻과 재능이 있다면 제작진행을 통해 연출과 감독으로 올라가게 된다. 영상 연출에 별로 재능이 없거나 콘티를 제대로 못 그릴 정도로 그림 실력이 없는 경우에는 애니메이션 프로듀서를 목표로 한다. 자금이 있는 사람은 인맥을 살려서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창업하는 경우도 있다.

한 회사 소속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프리랜서로서 여러 회사 일을 동시에 봐주는 제작진행도 있다.(예: 나카메 타카시) 연출가보다 프로듀서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여러 제작사에서 인맥을 많이 쌓으려고 이렇게 일하는 경우이거나, 제작진행 밖에 할 줄 아는 건 없는데 인맥이 꼬여서 연출가도 프로듀서도 못 된 사람들이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사람들은 일정이 꼬인 작품에 긴급 투입될 때가 많다.[9]

애니메이션의 품질을 책임지는 직책이지만 짧게 하고 그만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작화 매니아들은 프로듀서, 감독, 애니메이터 같은 건 연구해도 제작진행은 보통 연구하지 않는다. 보통 프로듀서나 감독이 된 뒤에 뒤늦게 재조명된다. 다만 우메하라 쇼타, 토쿠노 유지처럼 프로듀서가 되기 전부터 유명했던 스타 제작진행도 존재하긴 했다. 우메하라 쇼타처럼 제작진행의 실력과 경력을 소개하는 프로듀서도 있다.

4. 노동환경

위와 같은 이유들로 인해 대단히 고된 직책으로 악명이 높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완전히 피폐해지는데다 박봉이기까지한지라 몇달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도 부지기수. 피로 속에서 쉴새없이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전철에서 졸다가 잠들어 버리거나 졸음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의 위험까지 있다. 대신 다른 거 다 필요없고 IQ만 높아도 문호가 열려 있으므로 지원하기는 쉽다.

과거에는 여성을 잘 뽑지 않았다고 한다. 선라이즈의 프로듀서 카와구치 요시타카에 따르면 제작진행을 자원했을 때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과 같이 기동전사 건담같은 걸 만들겠다면서 여자들이 많이 왔는데[10] 선라이즈 측에서 운전하고 작화 종이를 박스로 들고 뛸 체력이 안 된다면서 여자는 다 잘라버리고 남자만 뽑았다고 한다. 가이낙스를 경영했던 오카다 토시오도 같은 이유로 여성을 잘 뽑지 않는 게 관행이었다고 했고 자신도 그렇게 뽑았다고 했다.

그나마 2010년대 이후로는 인터넷으로 하는 업무가 늘어나고 작화도 인터넷으로 전송받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좀 편해졌다고는 한다. 그리고 한 사람이 많은 일을 담당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아직 남성이 더 많으나 여성도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서 여성이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그래서 잘 안 뽑는 시기도 있었지만 야부타 슈헤이 말로는 2010년대 후반부터 OTT로 인한 애니메이션 수요 증가로 애니메이션의 제작 수가 늘어나면서 많은 제작사가 능력있는 제작진행을 프로듀서로 승진을 시켜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제작진행이 부족해지고 제작진행의 업무량이 다시 증가해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2020년대에 스케줄에 문제가 생기는 애니메이션이 늘어나고 있는데 주로 이쪽에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한다. #

일이 힘들기로 악명이 높고 업계 환경이 콘티를 못 그리면 감독을 하기 힘들어지는 쪽으로 변화하면서 연출가가 목표이지만 제작진행이 아닌 애니메이터부터 시작하는 감독도 늘어나고 있다. 신보 아키유키, 히라카와 테츠오가 그랬다고 한다. 그래서 제작진행은 더욱 부족해지고 있다. 히라카와는 이제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연출가는 아예 일을 주지 않는 쪽으로 업계가 바뀌었다며 프로듀서가 되고 싶은 게 아니면 제작진행을 해봐야 시간 낭비라고 주장한다.

때때로 자살하는 사람이 나오기도 한다. 한국의 경우 영화 방자전 촬영도중 조감독이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고[11], 일본에서는 A-1 Pictures에서 근무하던 제작진행이 퇴사후 자살하여 산재처리되어 화제가 됐었고, 매드하우스에서도 제작진행이 월 100시간이 넘는 잔업을 하다 결국 쓰러져 산재처리 받은 적도 있었다. 덕분에 이 직책에 필요한 재능은 오로지 체력과 인내심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 사실 이거저거 동시에 할정도면 지능은 검증됐다고 봐야하니.


[1] 디즈니는 세대교체가 빨라서 20대 후반에 영화/애니메이션 감독도 할 수 있다.[2] 제작진행 시절 애니메이터를 너무 갈궜다가 그 회사 소속 애니메이터와 관계가 나빠진 제작진행은 다른 회사에서 연출 데뷔를 하기도 한다.[3] 애니메이터는 그림을 그리는 막노동판이라 불릴 정도로 애니메이터들의 인간성 문제가 심각한 곳이다. 자세한 건 문서 참고.[4] 애니에서 쿠로미는 끝까지 제작진행 일을 열심히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쿠로미 짱의 모델이 된 제작진행 여성 직원은 얼마 안 가서 일을 그만두었다고 한다.[5] 애니메이션은 영화드라마와 달리 촬영에서 연출 및 감독으로 올라가는 사례가 매우 드물다. 애니메이션의 촬영은 영화에 비해서 하는 일이 매우 적고 지루한 반복 작업이 대부분이라 이쪽에서 인맥이나 창의성을 키우기는 힘들다.[6] 다만 대부분이 이런 고된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짧으면 반년 안에 이직한다. 즉, 경쟁률은 높지만 정작 이 분야로 취직한 사람들 중 연출이나 감독으로 승급한 사례는 경쟁률 및 직업의 인기에 비해 잘 없다는 것이다.[7] 각본가 슈도 타케시는 제작진행은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8] 프로듀서 우메하라 쇼타는 제작진행 지원 이력서에 "그만두지 않겠습니다." 라고 써놔서 한 번에 붙었다고 한다.[9] 이 상황을 잘 묘사하는 사례로는 애니메이션 제작진행 쿠로미짱 2화가 있다.[10] 기동전사 건담은 일본에서 여성 인기가 높았던 작품이다.[11] 사실 조감독 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드라마/영화 제작 현장은 미칠듯이 빡세다. 제대로 된 환경이 조성되어있지 않은 것. 이 업계의 남녀 성비 문제도 근본적으로 여기서 기인하는 부분도 적지 않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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