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09 20:17:06

말 콜룸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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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fff><colbgcolor=#0065bd> 스코틀랜드 알바 왕국 국왕
말 콜룸 2세
Máel Coluim II
파일:말 콜룸 2세.jpg
17세기의 네덜란드 화가 야코브 데 베트 2세(Jacob de Wet II)가 그린 상상화.
이름 스코틀랜드 게일어: Máel Coluim mac Cinaeda (말 콜룸 막 키나다)
영어: Malcolm II (말콤 2세)
출생 954년
사망 1034년 11월 25일(향년 79~80세)
재위 알바 왕국 국왕
1005년 ~ 1034년
부모 키나드 2세
형제 둔갈, 보이테 막 키나다
자녀 베토크, 성명 미상의 딸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스코틀랜드 왕국의 전신인 알바 왕국 제17대 국왕. 알바 왕국 초대 왕조인 알핀 왕조의 마지막 국왕이다.

2. 생애

키나드 2세의 아들이다. 형제로 둔갈과 보이테 막 키나다가 있었다. 14세기 스코틀랜드 연대기 작가 포던의 존에 따르면, 키나드 2세는 995년에 나이가 많은 왕족이 뒤를 잇는 관행을 사망한 왕과 가장 가까운 혈통의 생존자가 왕위를 계승하는 것으로 변경함으로써, 자기 아들이 왕위를 물려받는 걸 보장하려 했다. 이에 반감을 품은 카우산틴 3세키나드 3세가 앵거스의 모르마르 콘카르의 딸 피날라를 사주해 키나드 2세를 암살하게 했다고 한다. 그 후 카우산틴 3세가 왕위에 올랐지만, 997년 엘 몬드 강과 테이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라틴베라몬 요새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키나드 3세에게 패사했다.

1005년 3월 25일, 말 콜룸 2세는 스트래선 지방의 크리프 인근 몬지바르드에서 키나드 3세를 사살하고 알바 국왕이 되었다. 포던의 존은 말 콜룸 2세가 대관식 직후에 노르드족을 물리쳤다고 밝혔지만, 이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서술하지 않았다. 다만 모르틀라흐 주교구[1]가 이 승리를 거두게 해준 하느님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설립되었다고 명시했다.

얼스터 연대기에 따르면, 말 콜룸 2세는 1006년 버니시아를 침공해 더럼을 포위했지만, 후에 노섬브리아 백작이 될 밤버러의 우트레드가 버니시아와 요크셔에서 소집한 군대의 역공으로 참패하고 본국으로 물려났다. 이때 현지 여성들이 잘린 알바인의 머리를 씻은 뒤, 머리 마다 소 한 마리씩을 받았고, 그 머리들은 더럼 성벽의 말뚝에 고정되었다고 한다.

1018년, 말 콜룸 2세는 버니시아에 대한 2번째 원정을 감행했다. 그는 트위드 강 인근의 카람 전투에서 노섬브리아 현지군을 격파했다. 더럼의 시므온이 집필한 <더럼에 대한 포위에 관하여>(De obsessione Dunelmi)에 따르면, 우트레드의 동생인 이드울프 쿠델이 카람 전투에서 패배한 뒤 로디언을 말 콜룸 2세에게 넘겼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로디언은 이전부터 알바 왕국의 지배를 받았기에 신빙성이 낮다.

<앵글로색슨 연대기>에 따르면, 크누트 대왕로마 순례를 다녀온 뒤 군대를 이끌고 알바 왕국으로 진군했다고 한다. 동시대에 활동한 부르고뉴 출신 연대기 작가 라울 글라버는 크누트 대왕과 말 콜룸 2세는 크누트의 아내 에마의 동생인 노르망디 공작 리샤르 2세의 중재로 서로 평화 협약을 맺었다고 한다. 연대기는 이 사건의 연도를 1031년으로 기재했지만, 많은 학자들은 리샤르 2세가 1026년에 사망했기에 1026년 이전에 벌어졌을 거라고 추정한다. 라울 글라버는 말 콜룸 2세를 "강력하고 호전적인 왕자였으며, 그의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뛰어난 기독교인이었다."라고 호평했다. 크누트 대왕은 말 콜룸 2세로부터 이전의 잉글랜드 국왕들이 획득했던 육지와 바다에서의 지원을 보장받지 못하고, 평화와 우정의 약속만을 받고 돌아갔다. 그 후 크누트 대왕은 노르웨이로 가서 올라프 2세와 대적했고, 알바 왕국에는 더 이상 신경쓰지 않았다.

<오크니 사가>에 따르면, 말 콜룸 2세는 오크니 제도의 통치자 시구르드 2세 흐로도비르손에게 자기 딸 중 한 명을 결혼시켰다. 또한 시구르드 2세의 아들인 토르핀 2세 시구르드손은 아버지가 사망했을 때 5살이었으며, 말 콜룸 2세의 궁정에서 양육되었다고 한다. 이 시기에 오크니 제도를 비롯한 스코틀랜드 북부 지역이 알바 왕국의 영향력 아래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1020년, 모레이 모르마르[2]이자 막 베하드의 아버지인 핀들라크 막 루어드리가 길라콤게인 막 마엘브레테가 선동한 백성들에게 살해되었다. 뒤이어 모레이 모르마르에 오른 말 콜룸 막 말 브리그티가 1029년에 사망했다. 일부 학자들은 이 시기에 말 콜룸 2세가 모레이의 지배권을 장악했다고 추정한다.

1032년, 말 콜룸 막 말 브리그티의 뒤를 이어 모레이 모르마르가 된 길라콤게인 막 마엘브리테가 거주지에서 일어난 화재로 수행원 50명과 함께 산 채로 불에 타 죽었다. 일부 학자들은 말 콜룸 2세가 유력한 왕위 계승자인 그를 질시해 음모를 꾸며서 그를 암살했다고 주장했고, 다른 학자들은 막 베하드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방화를 저질렀다고 추정한다. 이후 막 베하드가 모레이의 모르마르가 되었다.

<사슴의 서>[3]에 따르면, 말 콜룸 2세는 올드 디어 수도원에 2개의 다보흐[4]를 수여했다고 한다. 또한 전승에는 로마 순례를 다녀왔다고 하지만, 이것이 사실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라울 글러버는 크누트 대왕이 말 콜룸 2세의 갓난아들의 세례를 참관했으며, 아기를 직접 '성스러운 세례 샘'에 넣어줬다고 밝혔다. 이로 볼 때 말 콜룸 2세는 어린 아들이 있었던 것 같으나, 1030년대엔 이미 사망했다. 성명이 알려지지 않은 그의 딸은 오크니 제도 통치자 시구르드 2세 흐로도비르손과 결혼해서 아들 토르핀 2세 시구르드손을 낳았지만, 게일인 계열인 알바 귀족들은 노르드족의 피가 흐르는 토르핀 2세를 왕으로 받들고 싶어하지 않았다. 이에 말 콜룸 2세는 자기딸 베토크와 던켈드의 평신도 수도원장이자 아솔의 모르마르인 크리난의 베토크의 아들인 돈카드 1세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파일:말 콜룸 2세의 석조 기념물.jpg

아일랜드 연대기 작가 마리아누스 스코투스는 말 콜룸 2세를 "Rex Scotiæ"(스코틀랜드의 왕)이라 칭하면서, 1034년 11월 25일에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는 앵거스 주의 글래미스 성에서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티거나흐 연대기>는 그를 "스코틀랜드의 왕이자 유럽 서부 전체의 영광"이라며 높이 평가했다. 포던의 존은 현재 '글래미스 2호'로 알려진 픽트족의 석조 기념물이 말 콜룸 2세의 묘비라고 주장했다. 이 석조 기념물은 청동기 시대에 세워졌던 입석을 재활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각상의 건립 연대는 분명하지 않지만, 여러 학자들은 말 콜룸 2세의 시대보다 앞선 8세기 이전에 건립되었을 거라고 본다. 다만 일부 학자는 석조 기념물에 새겨진 도상이 말 콜룸 2세의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1] 훗날 애버딘으로 이전되었다.[2] Mormaer, 중세 스코틀랜드의 지역 통치자를 지칭하는 용어[3] The Book of Deer. 10세기에 쓰여진 라틴어 복음서[4] davoch. 가 모는 쟁기가 하룻동안 땅을 갈 수 있는 범위를 일컫는 용어. 중세 스코틀랜드의 토지 측정 단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