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 [ 펼치기 · 접기 ]
- 어머니는 나의 우상과도 같았다.
마을 주민들은 무신 일이 생길 때마다 어머니를 찾아왔다. 그러면 분명 어떻게든 해줄 거라 믿었으니까...
그렇기에 어머니도 작은 목소리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였다. 이렇게 헌신하는 어머니를 누구나 사랑했다.
할머니도 곧잘 말씀하셨다. '네 어미를 볻받으려무나.' 모두의 신뢰와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위대한 여왕!
이사벨라 펜테실레이아를...! |
2화 | - [ 펼치기 · 접기 ]
- 현명하고 상냥하며 아름답기까지!
그것이 나의 자랑스러운 어머니였다.
약한 모습 따윈 본 적도 없을뿐더러,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두 언니도 그렇다고 했다. 매일같이 바쁜 어머니에게 '괜찮아?' 하고 물어봐도
'물론이지. 엄마는 여왕이잖니.' '마을과 소중한 가족을 위해서라면 없던 힘도 절로 난단다.'
'걱정해 줘서 고맙구나, 마틸다.'
그렇게 말하며 어머니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지금도 그때가 선명하게 기억난다. 어머니의 손이...목소리가... 여느 때보다 따듯했던 것까지. |
3화 | - [ 펼치기 · 접기 ]
- 여덟 살 때, 어떤 병이 마을을 덮쳤다.
'목상화' 몸이 나무로 변해버리는 정체불명의 병.
증상이 나타난 뒤 온몸에 번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제각각이라... 몇 달이 지나도 팔 하나로 그치거나, 며칠 만에 숲의 일부가 되어 버리기도 했다.
나와 어머니는 증상이 가벼웠다. 하지만 할머니와 언니들은.... 다리가 뿌리처럼 땅에 박혀 그곳에서 꼼짝달삭도 못 하게 되어버렸다.
어머니는 마을을 지키기 위해 병을 낫게 할 방법을 열심히 찾아다녔지만...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 방법은 알 수 없었다.
못 찾는 게 당연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왜냐하면....
목상화는 병이 아니었으니까. |
4화 | - [ 펼치기 · 접기 ]
- '목상화란 광분한 여신님의...
마녀의 저주다.'
그렇게 처음 말한 것은 할머니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숲에는 여신님이 계시고, 숲이 풍족한 건 모두 여신님의 은총이라고 믿어왔다.
옛날엔 여신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자들이 마을에 많았다지만, 세대를 거듭하며... 이제는 순수 혈통을 이어온 펜테실레이아 일족만이 남았다고 한다.
즉, 이제 여신님의 화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 건 우리 어머니와 나뿐.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여왕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누구나가 안심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와, 예언의 힘을 지녔다는 할머니만 빼고서.... |
5화 | - [ 펼치기 · 접기 ]
- 마을을 나서는 날,
어머니는 나에게 목걸이를 줬다.
'무슨 일이 있을 땐, 네가 마을을 지켜줘.'
그것은 대대로 여왕에게 전해 내려오는 소중한 보물. 목상화로 움직일 수 없게 된 언니들을 대신해, 내가 어머니의 뒤를 잇는 후계자가 된 순간이었다.
'넌 다른 사람을 위할 줄 아는 상냥한 아이란다. 그러니 분명 훌륭한 여왕님이 될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혼자서 다 짊어질 필요는 없단다. 넌 아직 어린걸.'
'두 언니와 할머니, 그리고 근위병 힐다도 있잖니. 모두 힘이 되어줄 거야.' '잘 지내렴... 사랑한다, 우리 딸.'
그 말을 끝으로 어머니는 마녀가 있다는 신전으로 향했다. 우리들의 마을을 뒤로 한 채... |
6화 | - [ 펼치기 · 접기 ]
- 며칠 뒤, 어머니는 나무가 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산 정상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운 채로....
모두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사라졌고, 마을도 활기를 잃었다. 이런 모습을 보며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슬퍼할 때가 아니야. 울고 있을 여유 따위는 없어. 지금은 내가 여왕이야. 그러니 어머니를 대신해서 내가 마을을, 가족을 지키는 거야...!
불안한 마음은 있었다. 다리도 몹시 떨렸다. 그래도 나는 소리 높여 외쳤다.
나는 마틸다... 마틸다 펜테실레이아! 여왕 이사벨라의 정통 후계자! 천해 (天海)로 올라간 어머니의 뜻을 이어받아, 내가 반드시 마녀의 저주를 풀어 보이겠어!
이것이 나의, 여왕으로서의 각오였다. |
7화 | - [ 펼치기 · 접기 ]
- 아무도 나에게 기대는 하지 않았다.
언니들은 죽음을 받아들였고, 할머니는 어서 숲을 떠나라고 했다.
곁을 지키는 근위병 힐다도 마찬가지. 언제나 내 걱정만 할 뿐.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존경하는 어머니가 나에게 모든 걸 맡겼으니까.
좌절할 것 같아도 참고 견디며, 힘이 되어 줄 자를 계속해서 찾았다. 반년 후, 천해에서 떨어진 한 인간의 신기한 힘을 빌려 우리들은 마녀를 쓰러뜨렸다.
이윽고 저주는 그 힘을 잃었다. 내 다리처럼 이미 변해버린 곳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지만... 적어도 앞으로는 저주에 겁먹은 채로 살지 않아도 됐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분명 모두가 웃음을 되찾을 날이 오겠지.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일상이, 분명 돌아올 것이다.
그러니 어머니, 부디 지켜봐 주세요. 이 마을을... 그리고 소중한 우리 가족의 앞날을. |